Alle Kapitel von 최고의 서브를 구합니다: Kapitel 121 – Kapitel 130

139 Kapitel

121화

첫 번째가 떨어졌다.쫙—선이 하나 그어졌다.은유의 어깨가 순간 움츠러들었다.숨이 코로 짧게 새어 나왔다.열은 손보다 늦고, 더 가늘었다.한 줄이 엉덩이 한가운데를 가로질렀다.처음엔 하얗더니, 바로 붉어졌다.강혁이 그 선을 내려다봤다.케인 끝을 그 옆에 살짝 댔다.위치를 재는 손이었다.다시 올라갔다.쫙—조금 아래.은유가 이를 악물었다.손가락이 시트를 움켜쥐었다.허벅지에 힘이 들어갔다.다리가 잠깐 모이려다 다시 벌어졌다.호흡을 골랐다.세 번째.왼쪽.살이 맞으며 살짝 출렁였다.네 번째.오른쪽.은유의 숨이 중간에 끊겼다.“하…….”이마가 시트에 가까워졌다가, 다시 팔을 펴고 자세를 잡았다.강혁은 바로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았다.등줄기의 땀, 흔들리는 숨, 다리에 들어간 힘을 봤다.손바닥으로 방금 맞은 자리를 쓸었다.선 위로 피부가 얇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열기가 손바닥에 옮았다.“괜찮아.”은유가 잠깐 입을 열었다.“따갑지만.. 괜찮습니다.”“참아.”“네…….”케인이 다시 올라갔다.이번엔 조금 더 무거웠다.쫙—“읏!”은유의 허리가 앞으로 밀렸다.무릎이 살짝 꺾였다.엉덩이에 선명한 선이 하나 더 겹쳤다.붉고, 가늘고, 가장자리가 하얗게 일어났다.은유가 숨을 급하게 들이마셨다.눈가가 조금 뜨거워졌다.바로 울 정도는 아니었다.그런데 맞을 때마다 몸이 먼저 피하려고 했다.강혁이 허리를 손으로 잡아 다시 낮췄다.“자세.”은유가 이를 악물고 허리를 내렸다.엉덩이가 다시 뒤로 나왔다.갈라진 사이로 젖은 흔적이 조금 비쳤다.케인이 몇 번 더 떨어졌다.왼쪽, 오른쪽, 조금 아래.선이 겹치며 엉덩이 전체가 얼룩처럼 붉어졌다.은유의 팔이 떨렸다.시트에 남긴 손가락 자국이 깊어졌다.숨이 짧아지고, 맞을 때마다 작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아…… 하.”평소라면 왜 맞는지가 있었다.규칙, 시험, 교정.오늘은 그 말이 없었다.그런데도 손은 멈추지 않았다.은유가 입을 열었다.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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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화

강혁의 눈이 움직였다.“왜.”은유가 잠깐 생각했다.계약 때문도 아니었다.벌도 아니었다.잘못해서도 아니었다.“제가 하고 싶으니까요.”강혁이 은유를 바라봤다.케인은 이미 내려져 있었다.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강혁이 케인을 서랍 위에 내려놓았다.은유는 아직 침대에 손을 짚고 있었다.“일어나.”은유가 천천히 허리를 폈다.다리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한 걸음 옮기려는데 무릎이 살짝 흔들렸다.강혁이 바로 팔을 잡았다.“천천히.”“네.”은유가 침대에 엎드렸다.붉어진 살이 시트에 닿자 짧게 숨을 들이켰다.“아…….”강혁이 옆에 앉았다.손바닥으로 엉덩이 위를 천천히 훑었다.방금 전과는 다른 손이었다.붉게 올라온 선을 하나씩 살폈다.손끝으로 가장자리를 눌러보고,열이 많이 오른 곳에서는 잠깐 멈췄다.은유가 베개에 얼굴을 반쯤 묻었다.“많이 아파?”“따갑습니다.”“그건 알아.”강혁의 손이 멈췄다.“많이 아프냐고.”은유가 자기 몸을 한번 느껴봤다.“괜찮습니다.”강혁은 바로 손을 떼지 않았다.한동안 붉어진 자리를 보고 있었다.은유가 고개를 돌렸다.“주인님.”“왜.”“아까 왜 멈추셨습니까?”강혁의 손가락이 멈췄다.은유는 답을 재촉하지 않았다.강혁이 한참 뒤 말했다.“내가 좀 이상했어.”은유의 눈이 조금 커졌다.강혁이 자기 행동을 그렇게 말하는 건 드물었다.“어떻게요?”“네 반응을 제대로 안 봤어.”은유는 잠시 생각했다.틀린 말은 아니었다.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았다.“그래서 멈추신 겁니까?”“응.”강혁의 손이 다시 움직였다.이번에는 아주 천천히,열이 남은 피부를 쓸었다.“그렇게 하면 안 되니까.”은유가 그를 바라봤다.이 남자는 여전히 정확했다.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알았다.그런데 왜 그랬는지는 아직 몰랐다.은유가 물었다.“제가 계속해달라고 했는데도요?”“그거랑 다르지.”“뭐가 다릅니까?”강혁이 은유를 봤다.“네가 괜찮다고 하는 거랑.”잠깐 멈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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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화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은유가 먼저 눈을 떴다.천장을 잠깐 올려다봤다.익숙한 천장이었다.강혁의 침실.그런데 오늘은 눈을 뜬 순간부터 느낌이 달랐다.은유가 옆을 봤다.강혁은 아직 눈을 감고 있었다.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알람까지 십이 분.다시 누워 있을까 하다가 몸을 일으켰다.오늘은 첫 출근이었다.침대가 움직이자 강혁이 눈을 떴다.“몇 시야.”“아직 일곱 시 전입니다.”“알람 안 울렸잖아.”“잠이 깼습니다.”강혁이 은유를 봤다.“긴장돼?”은유가 잠깐 생각했다.“조금요.”“조금 아닌 것 같은데.”은유가 웃었다.“많이요.”강혁이 다시 눈을 감았다.“씻어.”“네.”은유가 침대에서 내려왔다.욕실로 들어갔다.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렸다.화장을 마친 뒤 옷장 앞에 섰다.며칠 전 가져다 놓은 옷이 한쪽에 걸려 있었다.문제는 오늘 입을 옷이었다.첫 번째 셔츠를 꺼냈다.입었다.거울을 봤다.벗었다.다른 블라우스를 꺼냈다.그 위에 재킷을 걸쳤다.거울 앞에서 몸을 한번 돌렸다.조금 딱딱해 보였다.다시 벗었다.침대 위에 옷이 하나씩 늘어났다.강혁이 욕실에서 나오다 그걸 봤다.“뭐 해.”“고르고 있습니다.”“그건 알겠는데.”강혁이 침대 위를 봤다.“몇 벌을 입는 거야.”은유가 거울 앞에서 재킷 단추를 채웠다.“첫날이지 않습니까.”“그래서.”“너무 튀어도 안 되고, 너무 편해 보여도 안 되고요.”강혁이 아무 말 없이 은유를 봤다.은유가 거울 속으로 그 시선을 마주쳤다.잠시 뒤 재킷을 벗었다.침대 위에 놓인 두 벌을 들었다.하나는 흰 블라우스에 짙은 슬랙스.다른 하나는 얇은 니트에 재킷이었다.은유가 두 벌을 번갈아 봤다.그러다 강혁 쪽으로 돌아섰다.“주인님.”“왜.”은유가 옷을 들어 보였다.“골라주십시오.”강혁이 눈을 내렸다.한쪽을 보고,다른 쪽을 봤다.“이거.”흰 블라우스 쪽이었다.“이유는요?”“네가 물어봤잖아.”“그래도 이유가 있으실 것 아닙니까.”“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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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화

은유는 회사 앞에 2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생각보다 너무 일렀다.건물 앞에 서서 잠깐 숨을 골랐다.유리문 너머로 사람들이 오갔다.사원증을 목에 건 사람들.커피를 든 사람들.휴대폰을 보며 빠르게 걷는 사람들.은유가 가방끈을 한번 고쳐 잡았다.아침에 강혁이 골라준 블라우스 소매가 눈에 들어왔다.괜히 한번 정리했다.그리고 안으로 들어갔다.첫날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렀다.인사.자리 안내.사원증 발급.업무용 메신저.메일 계정.몇 명의 얼굴과 이름을 한꺼번에 외우려다 중간부터 포기했다.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은유는 그냥 하나씩 적었다.설명을 들을 때마다 메모했고,모르는 건 물었다.아는 척하지 말고.아침에 강혁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조금 웃음이 났다.“왜 웃으세요?”옆자리 직원이 물었다.은유가 고개를 저었다.“아, 아닙니다.”다시 화면을 봤다.오전이 지나고 점심시간이 됐다.몇 사람과 같이 밥을 먹었다.새로 온 사람에게 으레 나오는 질문들이 이어졌다.어디 사는지.출퇴근은 얼마나 걸리는지.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은유는 필요한 만큼만 대답했다.“집은 가까우세요?”은유가 젓가락을 들다 잠깐 멈췄다.가까웠다.정확히는,어디를 집이라고 해야 하는지 잠깐 생각했다.자기 집도 있었고,강혁의 집에서도 거의 생활하고 있었다.은유가 웃었다.“그렇게 멀지는 않습니다.”그 정도로 넘겼다.오후에는 실제 업무를 조금 받았다.처음이라 어려운 건 없었다.자료를 정리하고,기존 문서를 읽고,간단한 작업을 하나 맡았다.은유는 생각보다 집중했다.한동안 휴대폰을 보지도 않았다.강혁 생각도 별로 나지 않았다.그게 이상하지 않았다.자기 할 일이 있었다.누군가의 서브가 아니라,그냥 서은유라는 이름으로 해야 하는 일이었다.그 시간이 좋았다.퇴근 시간이 가까워졌다.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정리했다.은유도 마지막으로 메일을 확인했다.내일 할 일을 메모했다.컴퓨터를 껐다.가방을 들었다.회사 밖으로 나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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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화

“주인님.”“응.”“저 오늘 어디로 갈지 생각도 안 했습니다.”강혁의 손이 은유의 어깨에서 멈췄다.“뭐?”“퇴근하고요.”은유가 얼굴을 조금 들어 그를 봤다.“그냥 여기로 왔습니다.”강혁은 말이 없었다.은유도 대답을 요구하지 않았다.다시 그의 가슴에 뺨을 댔다.강혁의 손이 천천히 움직였다.은유의 머리카락을 한번 쓸었다.“잘했어.”은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뭐가요?”강혁이 잠깐 멈췄다.“첫 출근.”은유가 웃었다.“그 얘기였습니까?”“그럼 뭐.”“아닙니다.”은유는 더 묻지 않았다.강혁도 설명하지 않았다.그런데 팔은 풀리지 않았다.은유가 조금 더 가까이 붙었다.강혁이 내려다봤다.시선이 마주쳤다.은유는 피하지 않았다.강혁의 손이 머리카락에서 뺨으로 내려왔다.엄지가 천천히 피부를 쓸었다.은유가 얼굴을 조금 들었다.이번에는 누가 먼저였는지 분명하지 않았다.입술이 닿았다.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은유가 강혁의 셔츠 앞을 쥐었다.끌어당기자 강혁이 따라왔다.소파 등받이에 등이 닿았다.키스가 깊어졌다.이가 부딪힐 만큼.은유의 손이 단추를 풀었다.하나.둘.가슴이 드러나자 손바닥을 올렸다.심장 박동이 손끝에 전해졌다.강혁의 손이 은유의 허리 안으로 들어갔다.피부와 옷 사이.허리를 쓸며 위로 올라갔다.은유가 숨을 삼켰다.강혁의 입이 목으로 내려갔다.맥박이 뛰는 자리를 혀로 쓸었다.은유가 그의 머리를 잡았다.밀어내지 않았다.더 붙였다.강혁이 은유의 상의를 걷어 올렸다.은유가 팔을 들어 벗겨지게 했다.속옷 끈이 어깨에서 미끄러졌다.강혁의 입이 가슴에 닿았다.혀가 돌자 은유의 허리가 들렸다.“하…….”은유가 강혁의 벨트를 풀었다.지퍼를 내리고, 손을 넣었다.이미 단단했다.손바닥으로 한번 쓸자 강혁의 숨이 짧게 새어 나왔다.은유가 그를 소파에 앉히듯 밀어 내렸다.무릎을 짚고 올라갔다.다리를 벌리고 그의 허벅지 위에 앉았다.강혁이 은유의 허리를 잡았다.당기지 않았다.은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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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화

은유가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 강혁은 서재에 있었다.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익숙한 집 냄새가 났다.“다녀왔습니다.”서재 안에서 대답이 들렸다.“응.”은유는 구두를 벗었다.가방을 내려놓고 침실로 들어갔다.옷장 문을 열었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비어 있던 공간에 자기 출근복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블라우스.재킷.슬랙스.구석에는 회사에 들고 다니는 가방까지 있었다.은유는 입고 있던 옷을 벗어 걸었다.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욕실에서 손을 씻었다.거실로 나오자 서재 문이 열렸다.강혁이 나왔다.“오늘은.”은유가 그를 봤다.“네?”“어땠어.”이제는 회사 이야기를 묻는 것도 자연스러웠다.은유가 냉장고에서 물을 꺼냈다.“어제보다는 덜 정신없었습니다.”“일은.”“조금씩 맡기 시작했습니다.”“할 만해?”은유가 컵에 물을 따르며 생각했다.“아직은요.”강혁이 식탁 의자에 앉았다.은유도 맞은편에 앉았다.“그래도 재미있습니다.”“뭐가.”“제가 할 일이 있다는 게요.”강혁이 잠깐 은유를 봤다.은유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주인님은 오늘 뭐 하셨습니까?”“일.”“그건 압니다.”“알면서 왜 물어.”“뭘 하셨는지 궁금해서요.”강혁이 피식 웃었다.“별거 없어.”“요즘 주인님이 그냥이라는 말도 하시고, 별거 없다는 말도 하십니다.”“왜.”“사람 같아서요.”강혁의 눈이 가늘어졌다.은유가 웃었다.“농담입니다.”“아닌 것 같은데.”“반은요.”둘은 저녁을 먹었다.은유가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조금 이야기했고,강혁은 필요한 만큼만 들었다.전처럼 해결책부터 내놓지 않았다.은유가 말을 멈추면 물었고,다시 이야기하면 들었다.식사를 끝낸 뒤 은유가 그릇을 치웠다.강혁이 말했다.“놔둬.”“제가 하겠습니다.”“오늘 피곤하잖아.”은유가 잠깐 강혁을 봤다.“이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강혁은 더 말리지 않았다.은유가 설거지를 마쳤다.손을 닦고 돌아서는데 강혁이 거실에 서 있었다.은유가 물었다.“왜 그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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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화

이미 젖어 있었다.손가락이 입구를 천천히 쓸었다.은유의 숨이 짧게 새어 나왔다.강혁이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안이 바로 조여들었다.깊게, 느리게 움직였다.은유가 허리를 들려 했다.로프가 그 움직임을 가로막았다.조금만 들리고 다시 내려앉았다.열이 아랫배로 모이기 시작했다.은유의 숨이 거칠어졌다.강혁이 그 변화를 내려다봤다.호흡.손가락이 시트를 움켜쥐는 힘.허벅지에 들어가는 긴장.은유가 입을 열었다.“주인님…….”허락을 구하는 목소리였다.강혁의 손이 멈추지 않았다.오히려 조금 더 깊이, 조금 더 빠르게 움직였다.은유의 허리가 떨렸다.절정에 가까워지는 감각이 분명히 왔다.“주인님.”이번엔 더 짧았다.강혁이 손을 빼냈다.은유의 숨이 허공에 걸렸다.안이 비어 있는 감각이 갑자기 커졌다.강혁이 낮게 말했다.“아직.”은유가 눈을 감았다.다리 사이가 아직 욱신거렸다.로프에 묶인 채로는 스스로 끝낼 수도 없었다.강혁은 그 상태를 한동안 보기만 했다.은유의 가슴이 오르내렸다.뺨에는 아직 열이 남아 있었다.흐트러진 숨이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그런데도 강혁의 시선은 떨어지지 않았다.은유가 눈을 떴다.강혁과 시선이 마주쳤다.피하지 않았다.그대로 기다렸다.강혁의 손이 다시 내려갔다.처음부터 깊었다.은유의 허리가 바로 들렸다.로프가 사타구니를 당겨 그 움직임을 막아냈다.은유가 이를 악물었다.열기가 빠르게 다시 모였다.조금 전보다 몸이 예민해져 있었다.강혁은 서두르지 않았다.손가락의 각도를 바꾸고, 속도를 늦췄다가 다시 올렸다.은유의 숨이 끊겼다.허벅지가 떨렸다.강혁이 그 떨림을 손끝으로 읽고 있었다.은유가 고개를 젖혔다.입술이 벌어졌다.거의 끝에 닿는 순간, 손이 멈췄다.빼지 않았다.그냥 멈춘 채 안에 남아 있었다.은유가 헐떡였다.조금만 움직여도 넘어갈 것 같았다.그런데 강혁은 움직이지 않았다.은유가 그를 올려다봤다.강혁도 은유를 보고 있었다.평소라면 다음 지시가 있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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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화

저녁 일곱 시가 넘었다.강혁은 서재에 앉아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화면 한쪽에 차트가 떠 있었고, 다른 쪽에는 읽다 만 자료가 열려 있었다.마우스를 움직이다 손이 멈췄다.화면 오른쪽 아래의 시간을 봤다.7시 12분.다시 자료를 내렸다.몇 줄 읽고 창을 바꿨다.휴대폰이 책상 옆에 놓여 있었다.강혁은 손을 뻗지 않았다.잠시 뒤 서재에서 나왔다.주방으로 갔다.냉장고를 열어 안을 한번 보고 닫았다.식탁에는 아무것도 올라와 있지 않았다.강혁은 물만 꺼내 마셨다.거실로 돌아가다 현관 쪽을 한번 봤다.조용했다.다시 서재로 들어갔다.7시 31분.휴대폰 화면을 켰다.은유에게서 온 연락은 없었다.강혁은 메시지 창을 열지 않았다.화면을 끄고 내려놓았다.다시 일을 했다.이번에는 조금 오래 집중했다.도어락 소리가 난 건 여덟 시가 가까워졌을 때였다.강혁이 화면에서 눈을 들었다.현관문이 열렸다.“다녀왔습니다.”평소와 같은 목소리였다.강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서재 밖으로 나오자 은유가 구두를 벗고 있었다.가방을 내려놓고 허리를 폈다.강혁이 잠깐 봤다.“늦었네.”“네. 오늘 조금 늦었습니다.”은유가 웃었다.웃기는 했는데 평소보다 느렸다.어깨도 조금 내려가 있었다.“야근했어?”“야근까지는 아닙니다. 맡은 게 조금 늘어서 정리하고 왔습니다.”은유가 가방을 들었다.“연락드릴 걸 그랬습니다.”“됐어.”강혁이 바로 말했다.은유가 그를 봤다.“별일 없었잖아.”“네.”은유가 침실로 들어갔다.강혁은 거실에 남았다.잠시 뒤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은유가 나왔다.머리를 묶으면서 주방 쪽을 봤다.“저녁 드셨습니까?”“아니.”은유의 손이 멈췄다.“아직요?”“응.”“왜요?”강혁이 냉장고 문을 열었다.“지금 먹으려고.”은유가 잠깐 그를 봤다.“저도 바로 준비하겠습니다.”“됐어.”강혁이 안에서 반찬을 꺼냈다.은유가 가까이 왔다.“제가 하겠습니다.”“가서 앉아.”은유는 움직이지 않고 강혁의 얼굴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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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화

거실로 갔다.소파에 앉아 등을 기댔다.강혁이 뒤늦게 나왔다.은유는 쿠션을 하나 끌어안고 있었다.“피곤해?”“조금 전보다 낫습니다.”“좀 더 쉬어.”강혁은 소파 반대편에 놓인 태블릿을 집었다.은유가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한번 두드렸다.강혁이 봤다.“여기 앉으십시오.”“왜.”“저만 쉬면 심심합니다.”강혁이 잠깐 서 있었다.그러다 은유가 가리킨 자리에 앉았다.태블릿 화면을 켰다.은유도 휴대폰을 꺼냈다.둘 사이에 대화가 끊겼다.각자 화면을 보고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은유의 휴대폰이 조금씩 아래로 내려갔다.한 번.다시 한 번.강혁은 태블릿을 넘기다 옆을 봤다.은유의 눈이 반쯤 감겨 있었다.“졸려?”은유가 눈을 떴다.“아닙니다.”강혁이 잠깐 봤다.“자.”“안 잡니다.”말이 끝나자마자 은유가 하품을 참았다.강혁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은유가 그걸 봤다.“웃으셨습니까?”“아니.”“웃으셨습니다.”“자라니까.”은유가 쿠션을 끌어안은 채 몸을 조금 옆으로 눕혔다.“잠깐만 눈 감겠습니다.”“그래.”은유가 눈을 감았다.몇 분 지나지 않아 손에 들려 있던 휴대폰이 기울었다.강혁이 떨어지기 전에 받아냈다.화면을 끄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다시 태블릿을 들었다.한 페이지를 넘겼다.조금 뒤,또 한 페이지를 넘겼다.옆에서 은유의 호흡이 천천히 길어지고 있었다.강혁의 손이 멈췄다.고개를 돌렸다.은유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강혁은 다시 태블릿을 봤다.화면을 한 번 내렸다.두 문단쯤 읽었다.손가락이 멈췄다.옆을 봤다.은유의 고개가 소파 등받이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다.목이 불편해 보였다.강혁이 태블릿을 내려놓았다.은유의 어깨를 잡아 천천히 몸을 눕혔다.쿠션을 빼서 머리 아래에 받쳤다.은유가 잠결에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다시 편한 자리를 찾듯 얼굴을 움직였다.강혁의 허벅지 쪽으로 가까워졌다.그대로 멈췄다.강혁은 잠시 내려다봤다.얼굴 옆으로 머리카락 몇 가닥이 흘러내려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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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화

은유가 욕실에 들어간 뒤,강혁은 서재로 들어갔다.문을 닫지는 않았다.책상 앞에 앉았다.모니터는 켜져 있었지만 손이 가지 않았다.잠시 화면을 보다가 서랍을 열었다.안쪽에 서류 몇 장이 정리되어 있었다.강혁은 망설이지 않았다.그중 한 묶음을 꺼냈다.계약서였다.책상 위에 펼쳤다.첫 장.계약 기간.급여.주거.기본 규칙.강혁은 천천히 내려갔다.이미 다 아는 내용이었다.몇 번이나 확인했던 문장이었다.페이지를 넘겼다.두 번째 장.세 번째 장.손이 멈췄다.계약 기간.2년.계약 갱신할때 자기가 늘린 숫자였다.강혁이 한동안 그 부분을 봤다.서랍에서 펜을 꺼냈다.뚜껑을 열었다.끝을 계약서 위에 가져갔다.기간을 더 늘릴 수도 있었다.조건을 바꿀 수도 있었다.급여를 줄이거나,없앨 수도 있었다.주거 조건도 다시 정할 수 있었다.강혁의 손이 멈춰 있었다.펜 끝이 종이에 닿지 않았다.한참 뒤,조금 움직였다.다시 멈췄다.어디를 고쳐야 하는지 알수없었다. 강혁이 펜을 내려놓았다.계약서를 처음부터 다시 봤다.급여.은유는 이제 자기 월급을 받는다.주거.옷장 한쪽에는 은유의 출근복이 걸려 있었다.욕실에는 화장품이 늘었고,현관에는 은유의 구두가 있었다.서비스.시간.규칙.강혁의 시선이 문장 위를 지나갔다.손가락으로 페이지를 넘겼다.마지막 장.서명.최강혁.서은유.두 이름이 나란히 있었다.강혁은 거기서 오래 멈췄다.머릿속에 한 문장이 떠올랐다.왜 필요합니까.강혁의 손가락이 종이 끝을 눌렀다.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그때도 그랬다.그때는 이미 한 계약이라고 했다.기간이 남았다고 했다.끝낼 이유가 없다고 했다.강혁은 그 답들을 떠올리지 않았다.다시 첫 장으로 돌아갔다.2년.펜을 한번 더 집었다.이번에는 뚜껑도 열지 않았다.손에 쥔 채로 계약서를 봤다.한동안 그대로 있었다.그러다 펜을 내려놓았다.계약서를 덮지도 않았다.강혁이 서재 밖을 봤다.욕실에서 물소리가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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