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장군님이나 잘하세요: Kapitel 81 – Kapitel 90

100 Kapitel

제81화

조금 전 할머니와 송채리를 만났던 순간들이 송청아의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갔다.할머니가 향낭을 건넸을 때, 송채리의 반응은 평소의 그녀답지 않았다. 그때도 어렴풋이 이상하다고 느꼈었다.향낭을 선물한다는 사실을 미리 몰랐다면, 송채리는 질투를 참지 못했을 터였다. 그렇게 가벼운 말투로 농담을 건넬 리 없었다.더구나 마지막에 덧붙인 말.‘언니가 안 받으시면 제가 가져도 되지요?’그것은 명백한 도발이었다. 어떻게든 송청아가 향낭을 받게 하려는 듯했다.하지만 그때 송청아는 온통 할머니에게만 마음이 쏠려 송채리의 이상한 태도를 흘려 넘기고 말았다.조금 전 송채리가 무심결에 던진 눈길 덕분에야 확신이 섰다.약은 바로 그 향낭 안에 들어 있었다!처음 향을 맡았을 때는 모란과 작약을 채운 향낭이라 여겼다. 그런데 돌이켜 보니 그 사이로 아주 옅은 미심초 향이 섞여 있었던 것 같았다. 할머니를 만난 기쁨에 경계를 늦추지만 않았어도 알아챘을 터였다.미심초는 몇 해 전 송관산이 소국 국경에서 발견한 풀이었다.그렇다면 이 향낭에는 틀림없이 송관산의 손이 닿아 있었다.그것을 건넨 할머니도 알고 계셨을까…….송청아는 차마 더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끝까지 파고들어 알아낸 진실이, 오히려 제 가슴을 더 아프게 할까 두려웠다.그녀는 고개를 작게 저어 생각을 떨쳐 냈다. 그리고 다른 결심을 굳혔다.송청아가 불쑥 송채리의 소매를 움켜쥐어 제 앞으로 끌어당겼다. 몸속에서 치미는 괴로움을 억누른 눈빛이 칼날처럼 차가웠다.“이 일을 배윤호에게 말하면…… 어쩌려고 이러니…….”송채리는 우스운 소리라도 들었다는 듯 경멸 어린 웃음을 흘렸다.“후후. 지금은 그런 걱정보다, 조금 뒤에 다른 사내와 한자리에 누운 이유를 윤호 오라버니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하셔야 할 텐데요.”송채리는 송청아의 손을 뿌리친 뒤 화미에게 눈짓했다.“화미, 큰부인을 방으로 모셔다드려. 쉬셔야겠어.”화미는 대답과 함께 휘청거리는 송청아를 억지로 부축해 데리고 갔다.그러나 두 사람 모두 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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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뒤에 남은 화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송청아는 지난 생에 청룡사를 한 번 찾은 적이 있었다. 절 남쪽에는 욕탕을 갖춘 별도의 처소가 있었다. 황족과 황실의 인척들이 향을 올리기 전, 목욕재계할 수 있도록 마련한 곳이었다.그곳이라면 몸의 열기를 식힐 물이 있을 터였다. 손님들도 모두 앞뜰에서 향회를 구경하고 있으니, 그 처소를 찾는 이는 없으리라.송청아는 마지막 남은 이성을 붙들고 온 힘을 다해 그쪽으로 향했다.도착해 보니 과연 인적이 없었다.안도한 송청아는 곧장 욕탕이 있는 안뜰로 뛰어들었다.비틀거리며 안쪽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시야가 온통 흐려져 있었다. 귀에서는 심장이 북을 두드리듯 쿵쿵 울렸고, 입에서는 뜨겁고 가쁜 숨만 새어 나왔다.온몸에 불이 붙은 듯 달아오르고 근질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몸속의 괴로움이 극에 달하자 소름마저 오스스 돋았다.욕탕에 다다른 송청아는 겉옷을 벗을 겨를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가장자리에 사내의 목욕옷 한 벌이 걸쳐져 있다는 사실은 미처 보지 못했다.풍덩 소리와 함께 몸이 물속으로 잠겼다.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가 끊긴 듯했다. 오직 제 심장 뛰는 소리만 귓가에 둔중하게 울렸다.불덩이 같던 몸에 서늘한 물이 닿자 더없이 시원했다. 송청아는 저도 모르게 팔다리를 움직였다. 차가운 물결이 온몸을 어루만지는 감촉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싶었다.머릿속도 얼마간 맑아졌다. 그러나 몸 안의 괴로움까지 가시지는 않았다.송청아는 숨을 참은 채 조심스레 눈을 떴다.물빛 너머로 긴 다리 한 쌍이 자신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길고 창백한 다리에는 균형 잡힌 근육이 단단하게 붙어 있었다. 사내다운 힘이 느껴지면서도, 빼어난 장인이 정성껏 깎아 낸 작품처럼 흠잡을 데가 없었다.조금 더 위로 눈길을 옮기자 얇은 사 같은 옷자락이 다리 곁에서 가볍게 일렁였다. 은밀한 곳을 가리고는 있었으나 그 윤곽까지 감추지는 못했다.송청아는 그제야 상황을 깨달았다.욕탕 안에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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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신경찬의 목울대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이마에는 땀이 맺히고 목 안은 바싹 말랐다.그녀에게 이끌려 제 안에서도 어떤 감정이 고개를 드는 듯했다. 부드러운 허리를 받친 팔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그대로 제 가슴 깊이 끌어안고만 싶었다.그러나 이내 숨을 고른 신경찬은 그녀를 조금 위로 고쳐 안고 고개를 숙였다.“혹시 약에 당한 것이오?”송청아는 힘없이 그의 가슴에 기댄 채 고개를 끄덕였다. 서늘한 체온이 그저 기분 좋았다. 조금이라도 더 몸을 기대고 싶었다.다음 순간, 그녀의 두 팔이 저절로 신경찬의 허리를 감쌌다. 한층 바짝 달라붙으며 평평하고 단단한 복부를 더듬은 송청아는 몽롱한 와중에도 생각했다.‘이 사내는 몸도 참 좋구나.’신경찬의 아랫배에 힘이 들어갔다. 뜨거운 열기가 순식간에 치솟으며, 그녀를 욕탕 가장자리에 눕히고 마음껏 사랑하는 광경이 머릿속을 스쳤다.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자신이 혐오스러웠다.그녀는 지금 약에 취해 정신이 흐린 상태였다. 어찌 그 틈을 타 제 욕심을 채울 수 있겠는가.정신을 차린 뒤 자신이 짐승만도 못한 짓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녀는 뼛속까지 자신을 미워할 터였다. 두 번 다시 만나려 하지 않을지도 몰랐다.품에 가두고 뜨겁게 사랑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바라는 것은, 맑은 정신으로 제 마음을 받아 주는 그녀였다. 기꺼이 자신을 원하고, 때로는 먼저 손을 내밀어 주기를 바랐다.마음이 깊어지는 순간 저도 모르게 제 이름을 불러 주기를.지금 이곳에서, 그녀가 아무것도 모르는 채 관계를 맺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지금 송청아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제대로 분간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신경찬은 몇 차례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답답하게 치미는 열기를 억누른 뒤, 제 몸을 감싼 그녀의 팔을 조심스레 풀었다.그러고는 송청아를 가로로 안아 욕탕 밖으로 나왔다. 가장자리에 놓인 목욕옷을 집어 재빨리 몸을 감싸 주다가, 그제야 팔의 상처를 발견했다.팔에는 길게 베인 자국이 나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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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얼굴에는 땀인지 욕탕의 물인지 모를 물기가 촉촉하게 빛났다.젖은 머리카락 몇 가닥이 뺨과 목덜미에 달라붙어 굽이치다가, 목욕옷 아래 차마 눈길을 두기 어려운 곳으로 이어졌다.욕망의 물결에 휩쓸리기라도 한 듯, 온몸에서 억누를 수 없는 열기와 요염함이 배어났다.살짝 벌어진 붉은 입술 사이로는 가늘고 나른한 신음이 이따금 새어 나왔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신경찬의 가슴이 거세게 요동쳤다. 마음속을 수많은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 견디기 어려운 갈증이 일었다.신경찬은 뛰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그녀의 팔을 받쳐 목욕옷 안으로 넣어 주었다.그런데 뜨겁고 보드라운 손가락이 그를 붙잡았다. 송청아는 그의 손을 제 몸으로 끌어당겨 누르며, 가지 말라고 가냘프게 중얼거렸다.신경찬의 손끝이 움찔 굳었다. 잠시 숨마저 멎었다.목욕옷 아래의 살결은 매끄럽고 부드러웠다. 따뜻한 체온과 굴곡이 손끝에 닿자 온몸의 피가 들끓었다. 저도 모르게 근육이 팽팽해진 그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그녀의 움직임이 잦아들고서야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신경찬은 조금 붉어진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손을 빼냈다.송청아가 눈썹을 찌푸리며 불만스레 중얼거렸으나, 그는 조심스럽게 목덜미를 받쳐 들고 빙백산을 먹였다.빙백산은 어머니의 고국인 장국의 영약으로, 온갖 독을 풀 수 있었다. 신경찬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늘 몸에 지니고 다녔다.약을 먹고 얼마쯤 지나자 송청아의 미간이 조금씩 펴졌다. 입에서 새어 나오던 뜨겁고 나른한 신음도 잦아들었다. 다만 의식은 여전히 흐렸다.신경찬은 마음을 추스르고 부드러운 수건을 따뜻한 물에 적셔 꼭 짰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과 목덜미에 맺힌 물기를 닦아 주었다.하지만 몸을 감싼 목욕옷만큼은 차마 열어 보지 못했다. 흠뻑 젖은 옷 아래로 구름처럼 여리고 부드러운 몸의 윤곽이 드러날까 두려웠다.그 모습을 보고 또다시 욕심이 일어, 자신을 다스리지 못할까 봐.정신을 차린 그녀가 자신이 몸을 보았다는 사실을 알고, 무례하게 여겨 원망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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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표정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것을 보니, 엉뚱한 상상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 신경찬이 먼저 설명했다.“송 소저, 걱정하지 마시오. 이 목욕옷으로 몸을 감싸 방으로 안고 왔을 뿐이오. 빙백산으로 독을 풀어 주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차린 것이고.”송청아는 고개를 내려 제 옷차림을 살폈다. 흠뻑 젖기는 했어도 옷은 여전히 몸에 그대로 붙어 있었다. 곁에 단정히 앉은 신경찬의 태도 역시 한 점 거리낌이 없었다. 그제야 남몰래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아무 일도 없었다니 다행이었다.그러나 뒤이어 들려온 장난스러운 말에 송청아는 다시 굳어 버렸다.“다만…… 조금 전 송 소저의 모습은, 나도 참으로 새로웠소.”머릿속이 웅 하고 울렸다. 얼굴이 금방이라도 피가 배어 나올 듯 붉어졌다.대체 자신이 무슨 짓을 했기에 저런 말을 한단 말인가.그는 또 어떻게 생각했을까. 자신을 방탕하고 경박한 여자로 여기지는 않을까.신경찬은 당황해 얼굴을 붉히는 그녀를 흡족하게 바라보았다.송청아는 부끄러워할 때마다 귓불까지 옅은 앵두빛으로 물들었다. 그 위의 작은 점이 도드라져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전하, 용서해 주세요. 제가 약에 취하는 바람에 그만…….”송청아는 어쩔 줄 몰라 말을 흐렸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가 도리어 그녀를 더욱 생기 있고 사랑스럽게 보이게 했다.“알고 있소. 괜한 걱정은 하지 마시오. 저기에 수건과 따뜻한 물, 갈아입을 옷을 두었소. 몸을 닦고 갈아입은 뒤 나를 부르시오. 문밖에서 기다리겠소.”송청아는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신경찬이 방을 나가 문을 닫고서야, 그녀는 목욕옷으로 얼굴을 가렸다. 밀려오는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해 침상 위에서 이리저리 몸을 굴렸다.신경찬도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돌아왔을 때 마침 송청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송청아는 그가 준비한 연보랏빛 옷으로 갈아입은 뒤였다. 푸른 잎과 구름무늬가 어우러진 옷차림으로 창가의 긴 의자에 앉아, 팔의 상처에 약을 바르고 있었다.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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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송청아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서늘한 목소리로 덧붙였다.“아까 약이 든 향낭을 송채리에게 몰래 옮겨 두었어요. 이쯤이면 그쪽도 약효가 나타났겠지요.”신경찬의 입가에 절로 웃음이 번졌다.“묘수로군. 준비가 되거든 구경하러 가 보시오. 나도 함께 보고 싶지만, 달리 처리할 일이 있어 아쉽게 되었소.”송청아도 입꼬리를 살며시 올렸다. 흥미로운 일을 앞둔 듯한 그 미소에는 짓궂고도 은밀한 속내가 어려 있었다.‘송채리, 넌 과연 누구와 운우지정을 나누게 될까?’*한편, 화미가 송청아를 부축해 떠난 뒤 송채리는 느긋한 마음으로 정원에 앉아 다과를 즐기고 왕씨와 담소를 나누었다.그러다 향 한 대가 탈 만큼 시간이 흐르고서야 화미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서쪽 객실은 여기서 그리 멀지 않았다. 송청아를 데려다 놓고 돌아오는 데 그 절반이면 충분할 터였다. 그런데도 아무런 기별이 없자, 일이 어긋났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송채리는 초조하게 자리를 지키며 조금 더 기다렸다. 하지만 끝내 화미가 나타나지 않자 더는 참지 못하고 혼자 서쪽 객실로 향했다. 직접 가서 사정을 확인할 생각이었다.그런데 얼마쯤 걸었을까. 갑자기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몸에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처음에는 볕이 따가운 데다 걸음을 서두른 탓에 땀이 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걸을수록 몸속에서 불쾌한 열기가 거듭 치밀었다.그제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렸다.미처 이유를 헤아리기도 전에 서쪽 객실 하나에서 이목구비가 반듯한 사미승이 걸어 나왔다. 입가에는 사람을 홀리는 듯하면서도 불순한 기색이 역력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송씨 집안에서 송청아를 해치려고 미리 마련해 둔 자였다.“여시주, 이제야 오셨군요. 소승이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십니까.”사미승이 성큼성큼 다가왔다.아직 의식이 남아 있던 송채리는 그 모습을 보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너…… 송씨 집안에서 보낸 사람이야?”사미승은 송씨 집안의 관리인에게 은전을 받고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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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배윤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채리야, 너 지금…….”그는 서둘러 침상으로 다가가 이불을 끌어다 송채리의 몸을 덮어 주었다.그러나 송채리는 나른하게 두 팔을 들어 그의 목을 휘감았다. 그러고는 몸을 살짝 일으켜 귓가에 입술을 대고 애원했다.“저 좀…… 도와주세요…….”뜨거운 숨결이 귓바퀴를 스치자 배윤호의 온몸이 팽팽하게 굳었다. 미처 생각을 추스르기도 전에 송채리의 입술이 그의 입술에 포개졌다.맞닿는 순간, 부싯돌이 부딪치듯 아찔한 불꽃이 일었다.창가의 향반에서는 그윽한 의란향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가느다란 연기가 서로 얽히며 허공으로 흘러올랐다. 송채리의 손길도 그 연기처럼 그의 허리로 미끄러졌다. 이윽고 허리띠를 잡아당겨 풀어 버리고는 침상 아래로 떨어뜨렸다.다음 순간, 배윤호가 망설임 없이 그녀 위로 몸을 숙였다.*한편 송관산과 여씨는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했다.이쯤이면 송청아가 그 사미승과 한창 몸을 섞고 있으리라 여긴 두 사람은 계획의 다음 단계를 실행에 옮겼다.여씨는 고씨를 찾아가 송청아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아차린 양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고는 하인들을 보내 사방을 수색하게 했다. 실상은 손님들 사이에 소문을 퍼뜨리려는 수작이었다.송청아에게 일이 생겼다는 말을 들은 심설화도 다급히 사람을 풀어 그녀를 찾았다.손님들은 다과를 즐기던 정원에 모여 초조하게 소식을 기다렸다.그때 송씨 집안에서 미리 손써 둔 하인이 나타났다.“부인, 찾았습니다! 큰부인께서는 서쪽 객실에 계십니다만…….”하인은 짐짓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그 수상쩍은 머뭇거림에 사람들의 호기심이 부쩍 일었다.“그 아이가 어찌 되었다는 게냐?”여씨가 근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하인은 한동안 더 망설이더니 얼굴까지 붉혔다. 그러다 마지못해 입을 여는 시늉을 했다.“부인께서 직접 가 보셔야겠습니다!”사람들은 더욱 마음이 급해져 여씨와 고씨에게 어서 가 보라고 재촉했다.속으로 쾌재를 부른 두 사람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마침 송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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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네…… 네가 어째서 여기에…… 넌 분명…….”송청아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입가에 걸린 미소가 섬뜩했다.“제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데요? 저 객실 안에 있어야 하나요?”문밖에 모인 손님들도 배씨 집안 사람들의 말을 듣고 어리둥절해졌다.“배 장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게요? 저 안에 있는 건 며느리가 아니라 아드님이오!”“그리고…… 송씨 집안에서 얼마 전 되찾았다는 따님도 함께 있소!”그 말에 두 집안 사람들은 마른하늘에 벼락이라도 맞은 듯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여씨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가장 먼저 사람들을 헤치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침상 위에서 이불을 움켜쥔 채 흐트러진 옷차림으로 앉아 있는 두 사람은 틀림없이 배윤호와 자신의 친딸 송채리였다.“너…… 너희가……!”여씨는 기가 막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으려는 것을 뒤따라온 송관산이 가까스로 받쳤다.배진성과 고씨도 방 안으로 들어왔다. 눈앞의 광경을 확인한 그들은 차라리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윤호야…… 네가 어쩌다가…….”송채리는 이불 속으로 온몸을 숨긴 채 덜덜 떨고 있었다. 바닥에는 벗어 던진 옷가지와 패옥이며 장신구가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배윤호는 속적삼을 주워 입으며 사뭇 떳떳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버님, 어머님. 장인어른, 장모님. 저와 채리는 누군가의 함정에 빠진 겁니다!”“함정이라고?”“그렇습니다!”배윤호는 속적삼을 여몄지만 이불을 걷지는 못했다. 바지가 아직 바닥에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그는 침상에 앉은 채 창가의 향로를 가리켰다. 향은 이미 다 타고 없었다. 남은 잿가루만 미풍에 가늘게 떨렸다.“이 방에는 정욕을 돋우는 의란향이 피워져 있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들어왔을 때 채리는 사미승에게 봉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자를 쫓아냈는데 저도 향에 취해서, 그만…….”두 집안 사람들은 저마다 이마를 짚거나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았다. 더는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송청아를 위해 마련해 둔 함정에 하필 배윤호와 송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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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그날의 소동은 결국 배씨와 송씨 두 집안이 체면을 송두리째 잃는 것으로 끝났다.그들은 송청아가 뼈에 사무치도록 미웠지만, 더는 그녀에게 분풀이하지 못했다. 자칫 손님들 앞에서 자신들이 이 모든 일의 원흉이라는 사실을 드러낼까 두려워, 치미는 울분을 고스란히 삼켜야 했다.그러나 손님들 역시 어수룩한 이들이 아니었다. 송청아를 보았을 때 두 집안 사람들이 보인 반응만으로도 사건의 전말을 얼추 짜 맞춘 뒤였다.사람들은 그들 앞에서는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하지만 봄 향회가 끝나기가 무섭게 그날의 이야기는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사람들의 입을 거칠 때마다 온갖 소문이 덧붙어 이야기는 점점 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송청아는 마지막 말을 남긴 뒤 더 머무르지 않고 홀로 장군부로 돌아갔다.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그녀는 은근히 욱신거리는 팔의 상처를 눌렀다. 그리고 마음을 굳혔다.이제 그 화리서를 꺼낼 때가 되었다.*같은 시각, 청룡사 남쪽 객실 뒤뜰.승복을 걸친 중년 사내가 청인의 안내를 받아 뒤뜰의 오솔길을 걸었다. 길 끝에는 팔각정이 자리하고 있었다.정자 안에는 신경찬이 탁자를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그 위에 놓인 바둑판에는 한창 대국이 진행되다 만 듯 흑백의 돌이 어우러져 있었다.신경찬은 검은 돌 하나를 손에 든 채 판세를 살피며 다음 수를 고심하고 있었다.“주군, 무정 스님께서 오셨습니다.”신경찬이 눈을 들었다. 무정이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숙였다.“빈승 무정, 제왕 전하를 뵙습니다.”신경찬이 이내 느슨한 미소를 띠며 맞은편을 가리켰다.“스님, 앉으십시오.”무정이 자리에 앉자 청인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녹음이 우거진 뒤뜰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 나뭇가지 위에서 맑은 새소리가 쏟아졌다. 겹겹의 푸른 잎 사이로 신경찬을 바라보던 무정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듯 입을 열었다.“헤어진 지 십 년이 되었군요. 전하께서는 그간 평안하셨습니까?”한 손으로 소매를 받치고 돌을 내려놓으려던 신경찬의 움직임이 잠시 멎었다. 눈 밑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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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유비는 스스로 황제의 총애를 내려놓았다. 그저 제 궁에서 신경찬을 훌륭히 길러 내고, 그렇게 평온한 일생을 보내기만을 바랐다.신경찬도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청풍명월처럼 맑고 고결한 기품에 수려한 외모까지 갖춘 데다, 지략과 재능 또한 여러 황자 중 단연 으뜸이었다. 황제는 그런 아들을 각별히 아끼고 중히 여겨, 소국에서 가장 뛰어난 스승들을 붙여 가르치게 했다.시서와 기마, 궁술은 물론 문무의 도리와 병략에 이르기까지, 신경찬은 어느 하나 모자람이 없었다. 누가 보아도 장차 황위를 물려받을 후계자로 키우려는 듯했다.그러던 중 장국이 돌연 군사를 일으켜 소국을 침략했다.유비의 형제와 숙부, 백부들이 군사를 이끌고 소국의 성을 잇달아 함락했다.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던 소국 황제도 즉시 군대를 보내 맞서 싸웠다.전쟁은 삼 년이나 이어졌다. 소국은 마침내 장국군을 몰아낸 데 그치지 않고 국경을 넘어 진격했고, 끝내 장국 전역을 손에 넣었다.유비의 친정인 장국 황실도 전란을 피하지 못했다. 황족들은 죽거나 다쳤고, 부황과 모후는 생포되어 소국으로 압송될 처지에 놓였다. 소국에서 심문을 받고 죄를 치를 예정이었으나, 두 사람은 압송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소식을 전해 들은 유비는 울다가 정신을 잃었다.이튿날, 황제의 어안에는 상소가 눈처럼 쌓였다. 하나같이 유비를 죽여야 한다는 내용이었다.고심을 거듭한 황제는 유비를 여산 행궁으로 보냈다. 신경찬은 궁에 남겨 태후에게 맡겼다.그리고 십 년 전, 봄비가 내리던 그 밤이 찾아왔다.당시 신경찬은 열 살이었다.그날은 유비의 생신이었다. 신경찬은 어머니 곁을 지켜 드리고 싶어 일부러 산에 올랐다.모자가 오붓하게 저녁을 먹고 있을 때, 갑자기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들이닥쳤다.유비 곁에 남은 호위는 본래 많지 않았다. 그중 묵궁은 유비가 장국에서 시집올 때부터 곁을 지켜 온 사람이자, 신경찬이 자라는 모습을 어려서부터 지켜본 이였다.다른 호위들이 맞붙어 싸우는 사이, 묵궁은 믿을 만한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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