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낮에는 선비, 밤에는 마물: Kapitel 51 – Kapitel 60

116 Kapitel

역모의 혈판과 아비의 결백

참판 댁 서재 책상 위에 놓인 낡은 서첩.도진은 옷자락에 싸 온 서첩을 조심스럽게 풀었다. 연화가 등잔을 당겨 놓자 눌려 있던 종이의 굴곡이 드러났다. 남자는 손에 묻은 먼지를 털고 겉장을 넘겼다.연화는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가 글씨를 보려고 곁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깨가 닿았지만 어느 쪽도 물러나지 않았다. 등잔의 불꽃이 흔들릴 때마다 그녀의 손이 등잔 받침을 붙들었다.그 안에는 5년 전 궁중 독살 미수 사건을 조작한 상세한 기록과 함께, 왕실 종친 익양군과 좌참찬 윤자명이 각자 손가락을 깨물어 피로 서약한 '역모의 혈판' 원본이 숨겨져 있었다.도진의 손이 멎었다. 윤자명의 이름만으로도 쉽게 넘길 수 없는 기록인데, 그 곁에 익양군의 이름까지 있었다. 그는 처음 읽은 줄로 돌아가 한 번 더 살폈다.연화가 손끝으로 종이 가장자리를 눌렀다."제가 잘못 본 것이 아니지요?""아니다. 여기에 쓰여 있다."도진은 대답하면서도 혈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미 마른 피였으나 그 이름을 마주하자 목 안쪽이 메었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일이 한 관원의 원한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외면할 수 없었다.연화가 다음 장을 보려 하자 도진은 접힌 부분을 받쳐 주었다. 두 사람은 기록을 읽는 속도를 맞췄다. 한쪽이 멈추면 다른 쪽도 기다렸다. 누구의 이름이 어디에 적혀 있는지, 독살 사건을 어떻게 뒤집었는지 확인할수록 연화의 숨이 짧아졌다."이것이었구나…… 내 아버지를 역적으로 몰아넣고, 나으리에게 환양술을 걸어 입막음하려 했던 이유가."연화는 혈판에 적힌 이름을 확인하며 오열했다. 5년 동안 어둠 속에 갇혀 있던 진실이, 마침내 도진의 손에 의해 빛을 보고 있었다."아버지는 정말로 독을 쓰지 않으셨어요."연화는 눈물을 훔칠 생각도 못 한 채 종이를 바라보았다.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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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을대문의 파괴와 기습

콰아앙-!웅장하게 솟아 있던 참판 댁 솟을대문이 거대한 통나무 충차에 의해 산산조각 나며 부서져 내렸다.부서진 문짝이 안쪽으로 넘어지며 흙먼지를 일으켰다. 대문 곁에 서 있던 하인들이 소매로 얼굴을 가렸다. 문이 있던 자리에 횃불이 먼저 들어오고, 그 뒤로 무장한 사람들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사랑채 안에서 도진은 품속을 눌렀다. 서첩과 혈판이 있는 자리였다. 조금 전까지 읽던 글줄이 떠올랐지만 다시 펼쳐 볼 틈은 없었다. 그는 사랑채 문을 나서 계단 위에 섰다."배도진은 들어라! 사가에 마물을 숨겨두고 사술을 부려 국정을 어지럽힌 죄, 사헌부의 명으로 즉시 연행하겠다!"말 위에 올라탄 좌참찬 윤자명이 사헌부 대간들과 금군, 그리고 무장한 사병 수백 명을 거느리고 안뜰까지 밀고 들어왔다.사병들의 발길에 뜰에 놓였던 물건들이 옆으로 밀려났다. 관원의 옷차림과 사병의 칼이 뒤섞여 움직였다. 도진은 그 사이에서 윤자명의 얼굴을 찾았다. 상대는 말 위에서 내려다보며 제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는 듯했다."무엇을 찾으러 왔소?"도진이 물었다."방금 듣지 못했느냐. 사술을 부리는 자를 잡으러 왔다.""그런데 수색할 물건보다 사람부터 베겠다는 기세로 들어왔소."윤자명의 입가가 굳었다. 뒤에 선 자들이 칼자루를 고쳐 잡자 도진은 더 묻지 않았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길을 확인하고, 사랑채에서 나온 식솔들이 그 길을 피하는지 살폈다.참판 댁 하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는 가운데, 도진이 사랑채 계단 위에서 목소리를 높였다."모두 뒤로 물러서거라. 마당에 남지 마라."평소 하인의 작은 실수에도 길게 훈계하던 목소리와 달랐다. 도진은 말끝을 자르고 사랑채 안쪽을 가리켰다. 누군가 떨어뜨린 신 한 짝을 주우려 하자 그만두라는 손짓이 먼저 나갔다.집사 아범이 무언가 아뢰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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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당백의 사투와 윤자명의 몰락

"저 미치광이 놈을 당장 베어라! 계집은 생포하라!"윤자명의 명령에 수십 명의 사병들이 칼을 휘두르며 계단 위로 달려들었다.연화는 약재 주머니를 가슴 가까이 붙였다. 도진은 뒤를 향해 손을 펴 보였다. 나오지 말라는 짧은 신호였다. 계단에 올라붙는 발소리를 듣고서야 그가 앞으로 움직였다.먼저 달려온 자들이 좁은 계단에 한꺼번에 발을 얹었다. 도진은 그 틈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안쪽으로 밀려들기 전에 마당으로 내려가 길목을 가로막았다. 등 뒤에 연화를 둔 채 맞서려면 싸움을 바깥으로 끌어내야 했다.도진은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파아앙-!음마의 기운이 깃든 그의 손길이 사병들의 칼등을 가볍게 치자, 강철로 된 칼날들이 맥없이 두 동강 났다. 도진은 마치 춤을 추듯 우아하면서도 잔혹한 몸놀림으로 사병들 사이를 누볐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비명이 안뜰을 가득 메웠고, 단 한 번의 타격마다 사병들은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뒤늦게 밀려든 자들도 앞선 무리와 뒤엉켰다. 도진은 한자리에 서서 힘을 쓰지 않았다. 칼을 쳐 낸 뒤에는 옆으로 움직여 다음 사람이 달려들 길을 막았다. 바닥에 떨어진 무기가 발에 걸릴 때마다 발끝으로 밀어냈다.윤자명의 고함이 등 뒤에서 터졌다. 도진은 그쪽으로 먼저 달려가지 않았다. 사랑채로 돌아들려는 자가 보이면 방향을 틀어 길을 끊었다. 잡아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 사람에게 가는 동안 연화를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연화는 계단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도진이 잠깐 고개를 돌릴 때마다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그가 다시 정면을 보는 속도가 조금씩 빨라졌다. 도진의 옷자락에는 먼지만 묻어났다.한꺼번에 달려들던 발소리가 잦아들었다. 싸움을 피해 밀려난 자와 쓰러진 자들이 뒤섞여 마당을 메웠다. 계단으로 향하던 길이 끊기자 사병들은 더는 서로를 밀고 나서지 못했다.불과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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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전의 친국과 혈판

이른 아침, 창덕궁 인정전 뜰에는 서슬 퍼런 금군들의 창검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도진은 밤새 쥐고 있던 손을 한 번 폈다. 손바닥에 남은 자국이 따끔했지만 관복 소매를 내리자 보이지 않았다. 인정전 앞에 이르니 마당의 비명 대신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와 낮은 웅성거림이 들렸다.백관의 시선이 묶인 윤자명과 자신을 번갈아 향했다. 도진은 그 눈길을 피해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옷깃부터 살폈겠지만 지금은 품속의 서첩을 놓치지 않는 일이 먼저였다.도진은 피투성이가 된 좌참찬 윤자명을 결박한 채 인정전 뜰 한복판으로 끌고 와 내동댕이쳤다.윤자명이 몸을 일으키려다 결박에 막혀 쓰러졌다. 도진은 그 앞을 벗어나 주상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들고 온 서첩을 두 손으로 받쳐 앞으로 내밀었다."배도진. 무슨 연유로 이 지경에 이르렀느냐."낮게 물은 왕의 목소리에 주변의 웅성거림이 줄어들었다. 도진은 가택을 습격당한 일부터 짧게 아뢰었다. 자신의 분노를 말할 차례가 되면 입술을 다물고, 직접 겪은 일로 다시 돌아갔다."지난밤 좌참찬이 사병을 이끌고 소신의 집에 들이닥쳤습니다. 사술을 가려 잡아간다면서 칼부터 들었습니다."윤자명이 얼굴을 들었다."전하, 저자의 몸에 마물이 깃들어 있사옵니다! 직접 보신 자들이 있습니다."도진은 그 말을 부정하려다 멈췄다. 몸을 숨겨 온 일을 이 자리에서도 숨기면 상대의 주장만 남을 터였다."소신이 사술의 피해를 입은 것은 사실이옵니다. 허나 누가 그 사술을 걸었는지도 함께 살펴 주시옵소서."주변에서 다시 소리가 일었다. 도진은 이마를 들지 않은 채 품속에서 꺼낸 기록을 앞으로 밀었다."전하! 여기 5년 전 독살 사건을 조작하고 역모를 꾀한 혈판과 비리 장부가 있사옵니다!"서첩이 펼쳐지고 혈판이 어탁 위에 놓였다. 도진은 종이가 넘어가는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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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수 의관의 복권

인정전 뜰에서 거행된 친국 현장. 연화는 아비의 피가 묻은 독초 일기를 증언대로 내놓았다.연화는 일기를 내려놓은 뒤에도 손을 거두지 못했다. 손끝으로 종이의 모서리를 누르고 나서야 한 걸음 물러섰다. 고개를 들면 주상이 있었고, 조금 옆으로 눈을 돌리면 윤자명이 보였다.궁 밖에서는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나 했지만 이곳에서 입을 열기는 달랐다. 첫마디를 꺼내려 하자 목이 잠겼다. 도진이 곁에서 움직이는 기척에 연화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대신 말해 달라는 뜻으로 함께 온 것이 아니었다."서두르지 말고 아뢰어라."왕이 말했다. 연화는 숨을 고른 뒤 아버지의 이름부터 또렷하게 불렀다."제 아버지는 독을 쓴 것이 아니라, 저들이 독을 쓰는 것을 막으려다 누명을 쓴 것이옵니다!"윤자명이 고개를 치켜들었다."죄인의 딸이니 제 아비를 두둔하는 것이옵니다."연화의 손끝이 오그라들었다. 전 같으면 그 말 한마디에 문밖으로 쫓겨났을 터였다. 그녀는 윤자명 대신 일기를 보았다."그래서 말만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읽어 주십시오. 아버지가 무엇을 보았는지 거기에 남아 있습니다."목소리는 떨렸으나 마지막 말은 흐리지 않았다. 연화는 일기와 이미 올라간 기록을 번갈아 가리켰다. 아버지를 믿어 달라는 말 대신, 그녀는 일기에 적힌 대목을 짚었다.왕 앞에서 기록이 다시 펼쳐졌다.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이어지는 동안 연화는 두 손을 모았다. 아버지가 고문을 받은 일, 두 손을 쓰지 못하게 된 일까지 말할 때는 눈물이 떨어졌다. 그녀는 눈가를 닦고 이어 말했다."지금도 아버지의 손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 벼슬을 되찾는다고 그 시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래도 독을 쓴 사람이라는 말만은 거두어 주십시오."도진이 무릎 위에서 주먹을 풀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제야 더 분명히 들렸다. 자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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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로 정화 의식

궁중 내의원 수석 어의로 돌아온 강태수는 도진을 위해 신묘한 정화 의식을 집행했다.신선로에서 오른 김이 방 안에 얇게 퍼졌다. 강태수는 예전처럼 침통을 가볍게 돌려 쥐지 못했다. 손을 움직일 때마다 손가락이 뜻대로 굽혀지지 않는 것이 보였다.연화가 아버지 곁에 앉아 기구를 받쳤다. 강태수가 눈으로 가리키면 그녀가 가까이 옮겨 놓았다. 도진은 그 모습을 보다가 두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얹었다."저를 살리시고도 고초를 겪으셨습니다. 이제야 찾아뵈어 면목이 없습니다."도진이 고개를 숙였다. 강태수는 한동안 그를 바라보았다."면목을 따지려면 치료가 끝난 뒤에 하시지요. 지금은 불편한 곳부터 말씀하십시오."연화가 작게 웃었다. 도진은 그 말투가 누구와 닮았는지 알아보고 입을 다물었다. 곧 가슴의 통증이 사라진 일과 아직 몸에 남은 변화를 차근히 설명했다.강태수는 중간에 고개만 끄덕이며 끝까지 들었다. 다 들은 뒤에는 딸이 살펴 온 경과를 물었다. 연화는 혈화살의 반점이 번졌던 자리와 사라진 때를 짚었다. 말이 잠깐 막히면 강태수는 재촉하지 않았다."급한 불은 이 아이가 껐습니다. 허나 처음 몸에 붙은 사술의 잔재까지 없어졌는지는 따로 살펴야 합니다."도진의 시선이 연화에게 갔다. 그녀는 아버지 앞에서는 농담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도진도 자세를 바로 했다. 나았다고 혼자 단정하고 싶었던 마음을 내려놓았다.천년 산삼과 희귀 약재를 달인 탕약을 들이키자, 도진의 온몸에서 푸르스름한 연기가 피어올랐다.연화는 빈 그릇을 받쳐 내려놓았다. 도진은 두 손으로 무릎을 짚고 숨을 골랐다. 예전처럼 몸 안에서 열기가 몰아치지는 않았으나 기운이 빠져 어깨를 곧추세우기 어려웠다."참으려고만 하지 마십시오. 달라지는 것이 있으면 말해 주세요."연화가 가까이서 당부했다. 도진은 짧게 숨을 들이쉰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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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의 영구 고정

모든 저주가 풀린 다음 날 아침, 도진은 거울 앞에서 비명을 질렀다.거울을 잘못 놓은 줄 알았다. 도진은 옆으로 비켜 섰다가 다시 정면에 섰다. 얼굴이 비치는 자리는 달라졌으나 그를 놀라게 한 모습은 그대로였다.어젯밤 잠들기 전에는 오랜만에 통증을 기다리지 않아도 됐다.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는 사이에도 가슴을 누르던 불길이 돌아오지 않았다. 한밤에 연화를 불러야 할까 걱정하며 잠을 미룰 까닭도 없었다.그런데 아침에 확인한 몸은 그가 기대한 모습이 아니었다. 도진은 한쪽에 벗어 놓은 옷을 끌어다가 몸을 가렸다. 보이지 않게 덮고 나서도 당황한 낯빛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분명 다 나았다 하셨거늘."그는 입술을 다물고 가슴에 손을 얹었다. 통증은 없었다. 몸을 일으킬 때마다 안쪽을 잡아 뜯던 고통도, 숨을 들이쉴 때 느끼던 뜨거운 압박도 돌아오지 않았다. 조금 전 내지른 비명조차 아파서 나온 소리가 아니었다.도진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한동안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 속 남자도 똑같이 곤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어찌하여…… 어찌하여 크기는 줄어들지 않는 것이냐!"혼잣말은 빈방에서 더 크게 들렸다. 도진은 황급히 문 쪽을 돌아보았다.하인이라도 듣고 들어오면 설명할 말이 없었다. 또 미열이 있다고 둘러대고 숨을 것인가. 그 핑계를 더는 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전날까지는 그렇게 기뻤다.그는 말을 삼키고 걸쳐 둔 옷자락을 끌어당겼다. 차림을 갖추면 마음도 가라앉을 것 같았지만, 매듭을 지을 생각도 못 한 채 한동안 옷을 쥐고만 있었다.강태수는 사술의 독기가 걷혔다고 했다. 과거의 몸으로 돌아간다고 한 적은 없었다.도진은 기억을 더듬었다. 가슴이 편안해진 것을 확인하느라 다른 것은 묻지도 않았다. 더 묻지 않아도 모두 원래대로 되리라 혼자 여겼던 것이다.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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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어들지 않는 비극과 희극

도진의 탄식이 새어 나온 참판 댁 서쪽 별채. 아침 햇살이 창호지를 환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도진은 전신 거울 앞에서 가리고 있던 옷자락을 조금 들춘 채, 제 아랫도리를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었다.명주 속곳을 발목까지 내린 남자의 두 눈동자가 경련하듯 거세게 떨렸다. 혈화살의 독기가 가신 데 이어, 환양술의 마지막 마기마저 전날 궁중 신선로 정화 의식을 통해 티끌 하나 남지 않고 완벽하게 소멸했다. 더 이상 단전이 화로처럼 펄펄 끓지도 않았고, 심장을 조여오던 저주의 고통도 깨끗이 사라졌다.헌데, 가랑이 사이에 우뚝 솟아 있는 이 무지막지한 물건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어찌하여…… 어찌하여 털끝 하나 줄어들지 않는 것이냐!"도진이 머리를 감싸 쥐며 단말마의 비명을 내질렀다. 성인 남자의 팔뚝만 한 흉폭한 굵기, 어른 주먹을 방불케 하는 묵직한 귀두, 그리고 표피 위를 성난 용처럼 꿈틀거리는 시퍼런 핏줄. 사악한 마기만 씻은 듯 사라졌을 뿐, 음마가 남기고 간 씨수말만 한 대물 규격은 도진의 온전한 살과 피로 굳어져 영구 고정되어 있었다.아니, 오히려 극음 영기와 완벽하게 융합된 덕분인지 기둥의 살결은 옥처럼 매끄러웠고 핏줄은 한층 더 생기발랄하게 펄떡이고 있었다."평생을 유학의 도리와 결벽으로 살아온 내게…… 이런 해괴망측한 쇠방망이를 영원히 달고 살라니! 조상님들 뵐 낯이 없구나!"도진이 문설주에 이마를 찧으며 피눈물을 흘릴 때였다.드르륵-!방문이 경쾌하게 열리며 아침 숭늉과 세숫물을 든 연화가 사뿐사뿐 걸어 들어왔다."나으리, 아침부터 무슨 곡소리를 그리…… 어머나 세상에!"연화의 시선이 도진의 적나라한 하반신에 꽂혔다. 여인은 들고 있던 놋대야를 내려놓더니,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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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혼급 혼례와 당상관의 결단

북촌 배 참판 댁 본채 안마당과 대청마루에 살얼음판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마당의 고목을 흔들며 스산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집안의 기둥이라 불리는 종손의 혼사 문제를 두고, 배씨 문중 전체가 발칵 뒤집혀 모여든 자리였다.대청마루 위에는 엄격한 표정의 노마님과 배씨 문중의 원로 당숙들이 서슬 퍼런 눈으로 도진을 굽어보고 있었다. 그 중심에, 종이품 당상관 배도진이 꼿꼿하게 꿇어앉아 있었다."도진아, 네가 정녕 미쳤단 말이냐! 천한 암의원 출신의 침모 계집을 명문 종가의 정실부인으로 들이겠다니!"문중 어른의 지팡이가 대청 바닥을 쾅쾅 내리찍었다."첩실이나 비첩으로 들이는 것이라면 눈감아 줄 수도 있다. 허나 종손의 배필이자 정부인의 자리에 근본 모를 계집을 앉히는 것은 조상님들을 능멸하는 짓이다!"빗발치는 비난과 호통 앞에서도 도진의 흑요석 같은 눈동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남자는 천천히 소매 속에서 어명(御命)이 적힌 황금빛 교지를 꺼내 대청마루 위에 공손히 펼쳤다."어른들께 아뢰옵니다. 연화는 근본 모를 계집이 아닙니다. 역모의 누명을 벗고 궁중 어의로 복권되신 강태수 어른의 맏딸이옵니다."대청마루 위에 서슬 퍼런 살기를 뿜어내던 문중 어른들의 숨소리가 일순간 멎었다. 강태수의 복권 소식에 문중 어른들이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았다.도진은 교지의 끝을 펴서 어른들 쪽으로 돌려 놓았다. 연화의 집안을 다시 낮추어 부르려던 말이 끊겼다. 종친 익양군의 역모를 제압하고 사직을 구원한 일등공신의 집안이 된 마당에, 천한 암의원 출신이라는 꼬투리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게다가 이번 역모를 밝혀내 사직을 수호한 공을 기려, 주상 전하께서 친히 연화에게 '정부인(貞夫人)'의 작호를 내리시고 국혼에 준하는 교지를 하사하셨습니다."도진이 고개를 번쩍 들며 서슬 퍼런 기세를 뿜어냈다.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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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밤의 재림과 맹렬한 본방

화촉을 밝힌 신방(新房) 안에는 그윽한 사향과 난초의 향기, 그리고 은은한 밀랍 촛불의 온기가 감돌고 있었다. 창호지 문 너머로는 귀뚜라미 우는 가을밤의 정취가 아늑하게 번져 들었다. 이곳은 더 이상 환양술의 고통에 쫓겨 피눈물을 흘리며 숨어들던 음습한 암의원도, 비밀스러운 서쪽 별채도 아니었다.조선 최고의 당상관 배도진과 정부인 연화가 마침내 온전한 부부로서 살을 맞대는 축복의 처소였다. 원앙이 수놓아진 붉은 비단 금침 위에, 곱디고운 활옷을 벗어 던진 연화가 얇은 명주 속적삼 차림으로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촛불을 받은 여인의 뽀얀 살결이 복숭앗빛으로 은은하게 달아올라 있었다.도진은 사모와 관복을 벗어 던지고, 속곳 차림으로 연화의 앞에 천천히 다가왔다. 남자의 단단한 가슴팍과 넓은 어깨 위로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리고 그의 가랑이 사이에는, 이미 얇은 잠방이를 뚫고 나올 듯 맹렬하게 솟구친 거대한 기둥이 맥동하고 있었다."부인……."도진이 쉰 목소리로 부르며 연화의 작은 손을 제 뺨에 가져다 대었다."예전에는 저주를 풀고 목숨을 건지기 위해 부인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매달렸으나…… 오늘은 아닙니다."남자의 서늘하던 흑요석 눈동자에 굶주린 맹수 같은 열망이 이글거렸다."오직…… 내 유일한 아내인 너를 연모하여, 내 온 영혼과 육신을 바치고자 함이다."연화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치료실의 급박함은 없었다. 촛불 아래에서는 숨길 곳도, 핑계도 없었다. 도진의 손끝이 속적삼 옷고름을 풀자 명주가 쇄골을 스치며 미끄러졌고, 가랑이 사이의 기둥이 금침을 밀어 올렸다.더 이상 울보 선비의 나약한 애원이 아니었다. 도진은 연화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대답을 기다렸다. 연화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도진의 속곳 끈을 스르륵 풀었다.풀려난 거대한 흉물이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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