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이혼 서류는 내가 먼저 냈다: Kapitel 71 – Kapitel 80

100 Kapitel

71화. 편지

침묵은 길었다.작업실 창가 테이블 위에서 보리차가 식어 갔다. 도혁은 서린이 무슨 말이든 하기를 기다렸다. 따지든, 화를 내든, 고맙다고 하든. 서린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컵을 두 손으로 감싼 채 창밖 골목만 보고 있었다.골목 끝으로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갔다. 밤 아홉 시였다."……들어가세요, 전무님."그게 전부였다. 도혁은 더 묻지 않았다. 일어나 코트를 들었다. 문을 나서기 전에 한 번 돌아보았지만, 서린은 여전히 창밖을 보고 있었다. 컵 속의 보리차는 한 모금도 줄지 않았다.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도혁은 그 침묵을 여러 번 되짚었다. 3년 동안 그녀가 가장 많이 한 것이 침묵이었다. 그런데 오늘 것은 달랐다. 그 안에 무언가 들어 있었다.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 *도혁이 나간 뒤에도 서린은 한참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식은 보리차를 개수대에 부었다. 컵을 씻었다. 행주로 물기를 닦고 선반에 엎어 두었다. 손이 할 일을 다 하고 나서야 그녀는 가방에서 수첩을 꺼냈다.지난가을 적어 둔 메모가 거기 있었다. 「아빠 — 결혼 전에 받은 돈. 누구한테서, 얼마, 왜.」 그 옆에 조금 작은 글씨로 「그 양반 = 누구?」.그녀는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으려다 펜을 멈췄다.말일마다 전무님이 직접 누르셨습니다. 강민재가 한 말이었다. 이체 기록은 보여 주지 않았다. 그 한 문장만 남기고 갔다.그녀는 그 문장을 수첩에 옮겨 적지 않았다. 적으면 그 사람이 3년 동안 한 일이 한 줄로 줄어들 것 같았다. 서른여섯 번의 말일이 한 줄에 다 들어가지 않았다.대신 그녀는 수첩 뒤쪽 빈 장을 펼쳤다. 거기 적힌 건 향의 배합뿐이었다. 원료 이름과 숫자. 그녀는 연필 끝으로 종이를 몇 번 두드렸다. 무언가를 섞어야 할 때 그녀가 늘 하는 버릇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섞을 것이 원료가 아니었다. 고마움과 억울함, 그리고 이름을 모르는 무언가. 그 셋의 비율을 그녀는 알 수 없었다.서린은 결국 아무것도 적지 않고 수첩을 덮었다. 적을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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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화. 괜찮을 때

다음 날 오후, 예보대로 눈이 왔다.작업실 창밖으로 굵은 눈송이가 비스듬히 내렸다. 골목 빵집 사장이 가게 앞에 소금을 뿌렸다. 하람은 창에 코를 대고 눈 구경을 하다가 지현에게 등을 맞았다."시향지 정리한다며.""하고 있어요. 눈으로요."서린은 작업대에 앉아 있었다. 비커 세 개를 앞에 두고, 스포이트를 든 채 한참 움직이지 않았다. 지현이 두 번 불렀다. 세 번째에야 서린이 고개를 들었다."네?""베티버, 방금 두 번 넣었어요."서린은 비커를 내려다보았다. 맞았다. 한 방울 넣을 자리에 두 방울이 들어가 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그 비커를 옆으로 밀어 두었다. 10년 동안 한 번도 없던 실수였다.지현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오후 세 시에 유자차를 한 잔 타서 서린 앞에 놓았다. 말없이. 서린도 말없이 마셨다.휴대폰은 작업대 구석에 엎어져 있었다. 어제 온 문자는 아직 답장 칸이 비어 있었다.네가 괜찮을 때.괜찮다는 게 무엇인지 서린은 알 수 없었다. 화가 나지는 않았다. 슬프지도 않았다. 다만 무언가가 제자리를 잃고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오래 쓴 원료장의 병 하나가 다른 칸에 꽂혀 있는 걸 발견했을 때처럼. 그 병 하나 때문에 선반 전체를 다시 봐야 하는.* * *그날 밤 서린은 옥탑 방 붙박이장을 열었다.맨 아래 칸에 종이 상자가 하나 있었다. 결혼 전 작업실에 두고 간 것들이었다. 학생 때 쓰던 조향 노트, 그라스 공모전 참가증, 빛바랜 시향지 묶음. 펜트하우스에 들고 간 건 옷 가방 두 개뿐이었다. 나머지는 전부 여기 남아 있었다.상자 밑바닥에 얇은 스프링 노트가 있었다.표지에 매직으로 「토요일」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녀의 글씨였다. 스물다섯 살의.서린은 노트를 펼쳤다. 한 장에 한 사람씩이었다. 이름 대신 병실 번호와 성만 적었다. 그 아래 그 사람이 기억하는 냄새, 그리고 배합.「1102호 박 님 — 할머니 된장. 메주, 볏짚, 장독 뚜껑의 햇볕.」「1107호 이 님 — 첫 월급 짜장면. 볶은 춘장, 양파,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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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화. 다시 첫 만남

일주일 동안 두 사람은 편지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았다.하루 하나는 계속되었다. 아침 일곱 시에 도혁의 문자가 오면 서린은 저녁에 답했다. 질문은 작아졌다. 요즘 무슨 원료를 제일 많이 쓰는지. 옥탑은 춥지 않은지. 골목 빵집에서 뭐가 제일 맛있는지.「소금빵이요. 두 시에 나오는 거.」그다음 날 오후 두 시 십 분, 작업실 문 앞에 소금빵 봉투가 놓여 있었다. 쪽지도 없었다. 봉투에서 버터 냄새와 함께 아주 옅은 첫눈이 났다. 지현이 봉투를 들고 들어오며 눈썹을 올렸다."배달 왔어요. 발신인 불명.""알아요.""알아요? 어떻게요?"서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람이 소금빵을 하나 집어 들고 코를 대 보더니 말했다."아, 이 냄새. 저도 알 것 같아요.""하람 씨.""네, 조용히 먹을게요."세 사람은 창가 테이블에서 소금빵을 나눠 먹었다. 아직 따뜻했다. 두 시에 나온 빵을 받아 곧장 들고 왔다는 뜻이었다. 서린은 그 온도를 손바닥으로 느꼈다. 누군가 빵집 앞에서 두 시를 기다렸다.다음 날 아침 일곱 시, 질문은 조금 달랐다.「오늘 질문. 내일 저녁에 골목 좀 같이 걸을 수 있어?」서린은 한참 화면을 보았다. 그러다 답했다. 저녁까지 기다리지 않고.「여섯 시요. 빵집 앞에서.」* * *다음 날 오후 다섯 시, 승아에게서 전화가 왔다."야. 너 오늘 걔랑 걷는다며.""누가 그래.""지현 언니가. 점심때 문자 왔어. 서린 씨 오늘 여섯 시에 약속 있대요, 그 사람이랑요, 라고. 느낌표 세 개 붙여서."서린은 작업실 저편을 보았다. 지현이 원료장 앞에서 등을 돌린 채 아주 바쁜 척을 하고 있었다."그냥 걷는 거야.""알아. 그냥 걷는 거. 근데 서린아."승아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편지 얘기 들었어. 나 그거 듣고 혼자 소주 한 병 깠다. 너 3년 동안 헛값 치른 거잖아. 그 집에서. 씨……. 난 아직 화가 안 풀려.""나도 아직 안 풀렸어.""근데 걷는다고?""화나는 거랑 걷는 건 다른 거야."수화기 너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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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화. 출시 준비

4월까지는 한 달 남짓 남아 있었다.작업실 벽에 달력이 새로 붙었다. 지현이 빨간 펜으로 날짜마다 동그라미를 쳤다. 배합 확정, 원액 숙성, 병 샘플, 라벨 시안, 라벨티 품질 검사, 첫 생산. 동그라미는 4월 초까지 빈틈없이 이어졌다."숙성만 4주예요. 배합은 늦어도 이번 주 안에 끝나야 돼요."지현이 달력을 톡톡 두드렸다. 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번 주가 벌써 목요일이었다.옥탑의 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리넨은 맞았다. 햇볕에 마른 나무 계단도 맞았다. 창문을 연 아침의 차가운 공기도 맞았다. 그런데 그 셋만으로는 향이 너무 가벼웠다. 아무도 살지 않는 방 같았다. 깨끗한데, 들어가 앉고 싶지는 않은 방.지난가을부터 서린의 노트에는 같은 말이 적혀 있었다. 「아직 자리를 못 찾은 무언가.」그녀는 스무 번 넘게 그 자리를 채워 보았다. 앰버를 넣으면 너무 달았다. 샌달우드를 넣으면 너무 무거웠다. 바닐라는 처음부터 빼 두었다. 이 향은 달콤한 향이 아니었다.* * *금요일 새벽, 서린은 옥탑 방에서 눈을 떴다.창밖이 아직 파랬다. 난로는 꺼져 있었다. 그녀는 이불 밖으로 손을 내밀다가 멈췄다. 의자 등받이에 회색 코트가 걸려 있었다. 어제 골목을 걷고 들어와 벗어 둔 것이었다. 밤새 방 온기를 머금은 코트에서 냄새가 났다.젖었다 마른 양털. 바깥 공기가 조금. 그리고 사람의 체온이 남긴 아주 희미한 따뜻함.누군가 밖에서 막 들어와 벗어 둔 겨울옷의 냄새였다.서린은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 맨발로 책상 앞에 앉았다. 노트를 펼쳤다.빈방이 아니었다. 이 향은 처음부터 누군가 돌아오는 방이어야 했다. 창문을 열어 둔 아침, 마른 리넨, 오래된 계단. 그리고 그 계단을 올라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 그 사람이 벗어 둔 코트의 온기.그녀는 캐시미어란이라는 원료 이름을 적었다. 젖은 양털과 따뜻한 나무 사이의 냄새가 나는 원료였다. 아주 조금. 0.3퍼센트. 그리고 그 옆에 살냄새 같은 머스크를 한 방울 더.비커를 들고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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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화. 재검토

소식은 도혁보다 표상진에게서 먼저 왔다.화요일 아침 여덟 시 반, 작업실 문이 열리기도 전에 표상진이 골목에 서 있었다. 한 손에 태블릿, 다른 손에 빵집 봉투. 봉투는 지현에게 건네고 태블릿은 서린에게 내밀었다. 숫자만 보는 사람이 빵을 사 왔다는 건 할 말이 무겁다는 뜻이었다."N 선생님.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화면에 태강그룹 3월 정기 이사회 안건지가 떠 있었다. 서린은 맨 아래 줄을 읽었다.「안건 7. N 브랜드(무향) 유통 계약 재검토의 건.」"발의한 분이 세 분입니다. 노경식 이사가 앞장섰고요. 라벨티 이사회에도 한 분 걸쳐 계신 분입니다."표상진이 태블릿 화면을 넘겼다. 이번에는 표였다. 쇼케이스 준비비, 철회된 향의 원액 폐기 비용, 광고 위약금, 유통 매장 진열비. 맨 아래 합계에 빨간 줄이 그어져 있었다."작년 연말에 라벨티가 잡은 손실입니다. 세아 씨 향 철회로 생긴 거죠. 이분들은 이 손실을 N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제 탓이요?"지현이 빵 봉투를 든 채로 끼어들었다. 목소리가 높아졌다."그 향 훔쳐 간 게 누군데요. 쇼케이스 밀어붙인 게 누군데요. 우리가 막아 준 거잖아요. 출시했으면 손실이 그 열 배였을걸요.""압니다. 저도 압니다, 실장님."표상진이 손을 들었다. 넉 달 전 이 사람은 N을 감수 자리에만 두자고 했었다. 지금은 N 대신 변명을 하고 있었다. 서린은 그 변화를 조용히 보았다."논리는 이렇습니다. N 선생님이 세아 씨와 원래 얽혀 있던 분쟁을 라벨티 한복판에서 터뜨렸다. 그 바람에 라벨티 첫 향수가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했다. 그러니 분쟁 당사자와 계속 거래하는 건 평판 위험이다.""계약서에 그런 조항이 있어요?""있습니다. 12조 2항. 상대방의 평판이 회사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을 때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표상진이 태블릿을 내려놓았다."원래는 그냥 들어가는 문장입니다. 어느 계약서에나 있는. 그런데 그걸 누가 꺼내 드느냐에 따라 칼이 되죠."* * *표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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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화. 서린이 한다

이사회까지 열하루가 남아 있었다.서린은 첫날 아침 작업실 벽에 종이 한 장을 붙였다. 지현의 출시 달력 옆이었다. 날짜는 없었다. 줄 세 개만 그어져 있었다.「1. 12조 4항 — 의견 진술 요청.」「2. 손실 — 누구 때문인가.」「3. 태강이 없어도 무향은 산다.」지현이 그 종이 앞에서 팔짱을 끼고 한참 서 있었다."3번은 무슨 뜻이에요? 태강이랑 끝내겠다는 거예요?""아니요. 끝낼 수도 있다는 걸 보여 주는 거예요.""그게 달라요?""달라요. 끝낼 수 없는 사람은 협상을 못 해요. 3년 동안 제가 그랬거든요."지현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빨간 펜을 들어 3번 옆에 작게 별을 그렸다.* * *1번은 승아가 맡았다.이틀 뒤 태강 법무팀에 공문이 들어갔다. 계약 12조 4항에 따라 해지 여부를 다루는 이사회에서 계약 상대방 N이 직접 의견을 진술하겠다는 요청이었다. 승아가 쓴 공문은 짧았다. 서린이 두 문장을 더 지웠다. 더 짧아졌다.답은 사흘 만에 왔다. 이사회 당일 오전 열 시, 안건 7 논의 시작 전 15분."15분이래."승아가 전화로 말했다.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노경식 쪽은 5분 주자고 했대. 법무팀장이 조항 원문 들고 가서 15분 받아 냈대. 그 팀장, 작년에 세아 건 입장문 쓴 사람이야. 너한테 빚진 기분인가 봐.""15분이면 충분하고도 남아.""넌 5분도 충분하다고 했을 거잖아.""응. 근데 15분이면 숫자를 보여 줄 수 있어."2번은 도혁이 가져왔다.막지 말라는 말을 들은 다음 날 밤, 그는 작업실 문 앞에 서류 봉투 하나를 두고 갔다. 노크는 했지만 들어오지는 않았다. 봉투 안에는 쪽지가 한 장 붙어 있었다.「막는 거 아님. 자료만. TF 책임자가 계약 상대방한테 줄 수 있는 것만 골랐어. 쓸지 말지는 네가 정해.」라벨티 쇼케이스 준비 과정의 결재 기록이었다. 누가 일정을 앞당겼는지, 누가 블라인드 평가회 전날로 날짜를 잡았는지, 누가 N의 반대를 무시하고 언론 발표를 밀어붙였는지. 결재란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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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화. 이사회

이사회 날 아침, 서린은 여섯 시에 일어났다.옥탑 창문을 열었다. 3월 넷째 주의 공기는 아직 찼다. 그래도 겨울 냄새는 아니었다. 골목 화단의 흙이 녹으면서 올라오는 비릿한 냄새가 섞여 있었다. 봄이 땅 밑에서 먼저 오는 냄새였다.그녀는 옷장을 열었다. 3년 동안 본가 행사 때 입던 옷들은 펜트하우스에 두고 나왔다. 옷장에는 작업복과 청바지, 회색 코트, 그리고 남색 원피스 한 벌뿐이었다. 지난 11월 태강 22층 회의실에 처음 들어갈 때 입었던 옷이었다.서린은 원피스를 꺼냈다가 도로 걸었다. 흰 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었다. 작업실에서 원료 무게를 달 때 입는 옷이었다. 오늘은 N으로서 들어가는 날이 아니었다. 조향사로서 들어가는 날이었다.손목에는 아무것도 뿌리지 않았다. 오늘 그 방의 냄새는 그녀가 가지고 들어갈 열한 개의 병이 정할 것이다.* * *태강그룹 본사 로비에서 김 반장이 그녀를 알아보았다."N 선생님, 오셨습니까."김 반장은 방문증을 내밀며 목소리를 낮췄다."오늘 위층 분위기가 안 좋습니다. 아침부터 이사님들이 따로따로 엘리베이터를 타셨어요. 같은 엘리베이터를 안 타시더라고요. 20년 동안 이런 날이 몇 번 있었는데, 다 큰일 나는 날이었습니다.""고마워요, 반장님.""아닙니다. 그냥…… 잘되셨으면 해서요."서린은 방문증을 목에 걸었다. 사진 칸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들고 온 나무 상자를 한 번 더 확인했다. 병 열한 개. 번호표. 시향지 한 묶음.32층 이사회실 앞 복도에서 강민재가 기다리고 있었다."진술은 열 시 정각입니다. 진술이 끝나면 계약 상대방은 퇴장하셔야 합니다. 표결은 비공개입니다.""네.""그리고……."강민재가 잠깐 망설였다."전무님이 노경식 이사 수정안을 받으셨습니다. 오늘 아침에요. 원안을 유지하되, 앞으로 이 계약에서 생기는 손실은 TF 책임자가 진다. 그 조건으로 표결에 부칩니다."서린의 손이 나무 상자 모서리에서 멈췄다."막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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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화. 봄비

비는 오후 세 시부터 내렸다.겨울비처럼 날카롭지 않았다. 굵지도 않았다. 골목 지붕들을 오래 두드리며 천천히 스며드는 비였다. 작업실 창문에 물방울이 맺혔다가 한참 뒤에야 흘러내렸다.서린은 창문을 조금 열어 두었다. 비 냄새가 들어왔다. 젖은 아스팔트, 빵집 환풍기에서 나오는 버터 냄새, 그리고 골목 화단에서 올라오는 흙냄새. 겨우내 얼어 있던 흙이 처음 물을 먹고 내는 냄새였다. 조금 비리고, 조금 달았다."창문 닫아요, 서린 씨. 라벨 젖어요."지현이 소리쳤다. 작업대 위에는 종이 라벨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손으로 쓴 것처럼 보이게 인쇄한 라벨이었다. 「옥탑」 두 글자와 N, 그리고 무향."조금만요. 이 냄새 맡고 싶어서요.""맡는 건 내일 해요. 오늘은 붙여야 돼요."내일 아침 라벨티 공장으로 첫 시향 키트 삼천 개가 넘어가야 했다. 작은 유리 바이알에 원액을 담고, 라벨을 붙이고, 종이 상자에 넣는 일이었다. 공장에서 할 수도 있었다. 서린이 첫 삼천 개만은 작업실에서 하겠다고 했다.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지현도 묻지 않았다. 그냥 밤을 새우기로 했다.* * *여섯 시에 다온이 왔다.교복 위에 노란 우비를 입고 있었다. 우비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한 손에 편의점 봉투를 들고 있었다. 삼각김밥 네 개와 바나나 우유 네 개."엄마가 오늘 밤샘이라고 해서요. 저도 도와드릴게요.""다온아, 너 내일 학교 가야지.""내일 개교기념일이에요."지현이 딸을 한참 노려보았다. 다온은 지지 않고 엄마를 마주 보았다. 둘의 얼굴이 똑같았다. 하람이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서린도 따라 웃었다. 지현이 결국 한숨을 쉬며 우비를 받아 걸었다."열두 시에는 자. 소파에서.""네에."다온은 라벨 붙이는 일을 금방 배웠다. 손이 빨랐다. 하람보다 빨랐다. 하람이 억울한 얼굴로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다온은 라벨을 붙이며 쉬지 않고 떠들었다. 학교 급식, 담임 선생님의 넥타이, 반에서 요즘 제일 인기 있는 향수. 서린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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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화. 한 번 더

기사는 월요일 새벽 여섯 시에 올라왔다.「[단독] 태강 차도혁 전무, 첼리스트 유세아 재판 증인 설까… "전처 N과 첫사랑 사이"」서린은 그 기사를 옥탑 방에서 읽었다. 제목 아래 사진이 세 장 붙어 있었다. 지난가을 인천공항에서 찍힌 도혁과 세아. 블라인드 평가회 날 가림막이 걷힌 뒤의 서린. 그리고 법원 앞에 선 세아의 옆얼굴. 세 장이 나란히 놓이니 그럴듯한 이야기가 되었다.기사 본문은 길지 않았다. 세아 재판의 1심 선고를 앞두고 검찰과 변호인 양쪽이 차도혁 전무를 증인으로 부를 가능성이 있다는 것. 세아가 빈으로 떠나던 해의 결별과 지난가을의 귀국, 그리고 표절 사건의 발단이 된 향이 도혁의 코트에서 처음 발견되었다는 것. 익명의 태강 관계자 말이 한 줄 붙어 있었다.「그룹 내부에서도 차 전무의 사생활이 계약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서린은 그 한 줄을 두 번 읽었다. 익명이었지만 냄새가 났다. 헤어 토닉과 식은 파이프 담배.댓글은 이미 수백 개였다. 삼각관계, 막장 드라마, 재벌가 치정극. 그녀의 이름이 N과 나란히 오르내렸다. 석 달 전에 가라앉은 것들이 다시 떠올랐다. 잔잔해진 물에 누군가 돌을 던진 것처럼.서린은 휴대폰을 엎었다. 창문을 열었다. 봄비가 그친 뒤의 아침 공기가 들어왔다. 젖은 흙과 어린 풀. 그녀는 그 냄새를 오래 들이마셨다. 그러고 나서 작업실로 내려갔다. 출시까지 두 주 남짓. 할 일은 기사와 상관없이 그대로였다.작업실은 이미 시끄러웠다.지현이 휴대폰을 들고 원료장 앞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화면을 볼 때마다 목소리가 한 칸씩 올라갔다."치정극이래요, 치정극. 우리 서린 씨가 무슨 치정을 했다고. 향 훔쳐 간 사람 잡은 게 치정이에요? 이 사람들은 사진 세 장 붙여 놓으면 아무 얘기나 되는 줄 알아요."하람은 작업대 구석에서 말없이 라벨을 정리하고 있었다. 손이 평소보다 느렸다. 서린은 그 손을 보았다. 석 달 전, 캡처 한 장에 제 얼굴이 박혀 온 골목에 퍼졌던 사람의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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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화. 증언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4층, 형사 법정.도혁은 열 시 십 분 전에 도착했다. 복도는 이미 붐볐다. 기자들이 법정 문 옆에 줄지어 서 있었다. 카메라는 들어갈 수 없었다. 대신 노트북과 수첩이 있었다. 그가 복도 끝에 나타나자 수첩 넘기는 소리가 한꺼번에 났다.강민재가 반 걸음 뒤에서 따라왔다. 오늘은 서류를 들고 있지 않았다. 도혁이 들고 오지 말라고 했다. 증언은 서류로 하는 게 아니었다."전무님, 한 말씀만 해 주시죠. 오늘 누구를 위해 증언하십니까?"기자 한 명이 앞을 막았다. 도혁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있었던 일을 위해서요."그 한마디만 남기고 법정 문을 밀었다.* * *그 시각 성수동 작업실은 평소와 똑같이 문을 열었다.서린은 아홉 시에 내려와 원료장 유리문을 열었다. 작업대에 시향지를 늘어놓고, 2차 생산분 배합표를 폈다. 시계는 보지 않았다. 벽시계가 열 시를 칠 때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하람이 참다못해 물었다."대표님, 진짜 안 가세요?""안 가요.""가서 뒷줄에만 앉아 있어도…….""제가 뒷줄에 앉으면 기자들이 앞줄 말고 뒷줄을 봐요."서린은 스포이트 끝의 방울을 비커에 떨어뜨렸다. 한 방울. 이번에는 두 방울이 되지 않았다."그리고 그 사람이 하는 말, 제가 옆에서 들으면 달라질 수도 있어요. 그러면 안 돼요."지현이 하람의 옆구리를 꾹 찔렀다. 하람은 입을 다물었다. 대신 오전 내내 휴대폰 화면을 엎어 두지 않았다. 서린은 그걸 보고도 모른 척했다.* * *법정 안은 생각보다 작았다. 나무 벽, 높은 재판석, 그 아래 증인석. 방청석은 반쯤 차 있었다. 맨 앞줄에 승아가 앉아 있었다. 고소인 측 대리인이었다. 도혁과 눈이 마주치자 승아는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였다. 격려인지 경고인지 알 수 없었다.피고인석에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민수진은 단발머리를 더 짧게 잘랐다. 고개를 숙인 채 손톱만 보고 있었다.유세아는 고개를 들고 있었다. 검은 재킷에 머리를 하나로 묶었다. 화장은 거의 하지 않았다.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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