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오후, 예보대로 눈이 왔다.작업실 창밖으로 굵은 눈송이가 비스듬히 내렸다. 골목 빵집 사장이 가게 앞에 소금을 뿌렸다. 하람은 창에 코를 대고 눈 구경을 하다가 지현에게 등을 맞았다."시향지 정리한다며.""하고 있어요. 눈으로요."서린은 작업대에 앉아 있었다. 비커 세 개를 앞에 두고, 스포이트를 든 채 한참 움직이지 않았다. 지현이 두 번 불렀다. 세 번째에야 서린이 고개를 들었다."네?""베티버, 방금 두 번 넣었어요."서린은 비커를 내려다보았다. 맞았다. 한 방울 넣을 자리에 두 방울이 들어가 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그 비커를 옆으로 밀어 두었다. 10년 동안 한 번도 없던 실수였다.지현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오후 세 시에 유자차를 한 잔 타서 서린 앞에 놓았다. 말없이. 서린도 말없이 마셨다.휴대폰은 작업대 구석에 엎어져 있었다. 어제 온 문자는 아직 답장 칸이 비어 있었다.네가 괜찮을 때.괜찮다는 게 무엇인지 서린은 알 수 없었다. 화가 나지는 않았다. 슬프지도 않았다. 다만 무언가가 제자리를 잃고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오래 쓴 원료장의 병 하나가 다른 칸에 꽂혀 있는 걸 발견했을 때처럼. 그 병 하나 때문에 선반 전체를 다시 봐야 하는.* * *그날 밤 서린은 옥탑 방 붙박이장을 열었다.맨 아래 칸에 종이 상자가 하나 있었다. 결혼 전 작업실에 두고 간 것들이었다. 학생 때 쓰던 조향 노트, 그라스 공모전 참가증, 빛바랜 시향지 묶음. 펜트하우스에 들고 간 건 옷 가방 두 개뿐이었다. 나머지는 전부 여기 남아 있었다.상자 밑바닥에 얇은 스프링 노트가 있었다.표지에 매직으로 「토요일」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녀의 글씨였다. 스물다섯 살의.서린은 노트를 펼쳤다. 한 장에 한 사람씩이었다. 이름 대신 병실 번호와 성만 적었다. 그 아래 그 사람이 기억하는 냄새, 그리고 배합.「1102호 박 님 — 할머니 된장. 메주, 볏짚, 장독 뚜껑의 햇볕.」「1107호 이 님 — 첫 월급 짜장면. 볶은 춘장, 양파, 19
Zuletzt aktualisiert : 2026-10-15 Mehr le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