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의 얼굴이 노트북 화면에 떴을 때, 파리는 아침 일곱 시였다.그는 셔츠 단추를 끝까지 채우고 있었다. 머리는 막 감은 듯 젖어 있었다. 뒤로 보이는 창밖이 흐렸다. 화면 너머로 냄새가 올 리 없는데도 서린은 비 냄새를 맡은 것 같았다. 파리의 돌바닥에 떨어지는 5월의 비."좋은 아침…… 아니, 좋은 오후이시옵니다."작업실 구석에서 상자를 접던 하람이 고개를 들었다."대표님, 오후 두 시에는 그냥 안녕하세요, 하시면 돼요. 이시옵니다 말고요.""아, 하람 씨. 거기 계셨습니까. 다행입니다. 제 한국어 선생님이 돌아오셨습니다."하람이 웃음을 참으며 다시 상자를 접었다. 지현은 옆에서 노트를 펴고 받아 적을 준비를 했다. 서린은 화면 앞에 앉아 있었다. 작업대 위에 리안 쪽에서 밤새 보낸 서류가 출력되어 있었다. 스무 장이 넘었다."초안 보셨습니까.""네. 세 번 읽었어요.""궁금하신 점부터 말씀해 주십시오.""이름이요."서린이 서류 한 장을 들었다."무향이라는 이름, 계약서 어디에도 리안 거라고 안 쓰여 있네요.""당연합니다. 이름은 N의 것입니다. 저희는 문만 엽니다. 파리, 밀라노, 런던. 그리고 한국은 저희와 오래 일한 수입사가 맡습니다. 해밀과 손잡은 유통사만큼 크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향을 아는 곳입니다.""수수료가 라벨티보다 높아요.""작은 문이라 그렇습니다. 사람이 적게 드나드는 대신 다들 오래 머뭅니다."이안은 서류를 넘기는 소리를 들으며 기다렸다. 서두르지 않았다. 10년 동안 답장 없는 편지를 보낸 사람다운 기다림이었다."한 가지 여쭙겠습니다.""네.""이 계약서에 서명하시면 태강은 어떻게 됩니까."서린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에서 인쇄소 기계가 덜컹거렸다."서명 안 해요. 아직은."이안이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대안이에요, 이안 씨. 쓰려고 만드는 게 아니라, 안 써도 되게 만드는 거요. 태강 계약이 날아가도 무향이 산다는 걸 보여 줄 수 있으면, 그 계약이 날아갈 이유가 사라져요.""……그
Zuletzt aktualisiert : 2026-10-15 Mehr le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