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 수칙: 착한 척하지 않는다.12월 20일. 죽기에는 날씨가 너무 맑았다.광장 바닥에 쌓인 눈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구경 나온 사람들은 목도리에 코를 묻고, 장갑 낀 손을 비볐다. 누군가는 발이 시린지 제자리에서 발을 굴렀다.나는 맨손이었다.손가락을 접었다 펴 보았다. 잘 움직이지 않았다. 추워서인지, 이제 움직일 일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는 몰랐다.“악녀!”군중 속에서 외침이 터졌다.“성녀님께 사죄해라!”성녀를 독살하려 했다는 죄. 내가 하지 않은 일을 적은 판결문은 이미 낭독이 끝났다. 내 이름만큼은 정확했다.비올레타 에버린. 스무 살.다들 내 이름보다 악녀라는 말을 좋아했다.고개를 들자 광장 한쪽의 재판관석이 보였다. 은회색 머리, 회색 눈. 북부 대공 레녹스 발트하임은 그곳에 앉아 있었다.내 말을 거짓이라고 판결한 사람.성녀의 말은 참이라고 판결한 사람.눈이 마주쳤다. 레녹스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나도 피하지 않았다. 이미 더 잃을 체면도 없었다.“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나.”나는 입술을 벌렸다. 찬 공기가 목 안으로 들어왔다.살려 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찾지도, 나를 외면한 약혼자를 부르지도 않았다.그런 말은 충분히 해 봤다. 재판이 끝나기 전까지.“나는 거짓말한 적 없어요.”크게 말하지 않았는데도 가까운 사람들이 조용해졌다.레녹스의 손이 왼쪽 귀로 올라갔다.은 귀걸이를 짚은 손가락이 멈췄다.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밀리는 소리가 났다.나는 그 얼굴을 보았다.늘 굳어 있던 입술이 벌어졌다. 눈썹이 일그러지고, 턱이 작게 떨렸다. 내 판결문을 읽을 때조차 변하지 않았던 얼굴이었다.이제 와서 왜.레녹스가 재판관석을 벗어나 한 걸음 내려왔다.이름을 부르려는 듯 입술이 움직였다. 무슨 말인지는 듣지 못했다. 바람이 불었고, 내 머리카락이 뺨을 덮었다.나는 눈을 감았다.끝까지 아무도 믿어 주지 않았다.그런데 마지막에 본 얼굴은, 어째서 그런 얼굴이었을까.◐“아가씨. 아
Last Updated : 2026-10-17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