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내 담당 톱배우는 비밀이 많다: Chapter 1 - Chapter 10

20 Chapters

1화. 마지막 생방송

「새벽 두 시입니다. 아직 안 주무셨네요. 괜찮아요, 저도요. 오늘은 창문을 닫는 날입니다.」금요일 새벽 한 시 사십 분. 나는 오프닝 원고의 마지막 줄에 가로줄을 하나 그었다.[~~그동안 감사했습니다.~~]너무 졸업식 같았다. 우리 방송은 그런 방송이 아니다. 새벽 두 시에 깨어 있는 사람들한테 「감사했습니다」 하고 고개 숙이면, 다들 이불 속에서 민망해할 거다.줄 밑에 새로 썼다.[닫는 데는 삼 초면 됩니다. 오늘은 두 시간 걸려서 닫겠습니다.]종이 오른쪽 아래 귀퉁이에 01:41이라고 적었다. 버릇이다. 언제 쓴 글인지 적어 두면, 나중에 봤을 때 그 시간의 내가 같이 떠오른다. 오늘의 나는 좀 울 것 같은 얼굴이다. 아직 안 울었다. 방송이 이십 분 남았으니까."해온아, 다 됐어?"지원 선배가 의자를 굴려서 왔다. 선배는 걸어오는 법이 없다. 라디오국 5층 바닥은 선배 의자 바퀴가 다 닦았다."네. 근데 마지막 줄 바꿨어요."선배가 원고를 들고 읽었다. 줄 그은 문장까지 읽는 눈이었다. 선배는 늘 그랬다. 처음 들어왔을 때 지우개를 쓰라고 세 번 말하고, 네 번째부터는 그냥 줄 밑까지 읽어 줬다."이게 낫네. 서래 언니 이 줄에서 목멘다. 내기할래?""선배가 먼저 울 것 같은데요.""나 안 울어. 떡볶이 사 놨어. 울면 불어."「두 시의 창문」은 열 해를 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새벽 두 시부터 네 시까지. 나는 그 가운데 두 해를 막내 작가로 있었다. 오프닝을 쓰고, 사연을 고르고, 디제이 물컵을 채웠다. 다음 주부터 이 시간에는 음악만 나온다. 사람 목소리가 없는 두 시간. 생각하면 목이 좀 막혀서, 생각을 안 하기로 했다."됐어, 좋아. 게스트 올라오신다."마 피디님이 유리문을 열고 말했다. 피디님 입버릇이다. 방송 사고가 나도 「됐어, 좋아」 하실 분이다."그런데 피디님, 진짜 그분이 오세요? 새벽 두 시에?""온다니까. 섭외도 안 했어. 그쪽에서 먼저 전화 왔어. 마지막 방송에 나가고 싶다고.""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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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월요일에 전화해도 됩니까

「월요일입니다. 전화기는 조용합니다. 조용한 전화기를 지켜보는 것도 일이라면, 저는 오늘 야근입니다.」월요일 아침 일곱 시에 눈이 떠졌다.두 해 동안 아침 일곱 시는 내가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이었다. 일어나는 시간이 아니고. 몸은 아직 그걸 모르는지 눈만 뜨고 가만히 있었다. 갈 데가 없는 월요일은 처음이었다.책상 위에 명함이 있었다. 연필꽂이에 기대 세워 놓은 지 사흘이 됐다. 앞면에는 달무리엔터테인먼트, 배우 류하진. 뒷면에는 연필 글씨.[월요일에 전화해도 됩니까.]물어보는 말인데 마침표로 끝난다. 사흘 동안 그게 마음에 걸렸다. 나는 대답을 안 했다. 됩니다, 하고 말할 틈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그런데 물음표가 아니니까 대답이 없어도 되는 건가. 그럼 하는 건가, 전화를.그리고 일요일 밤에야 떠올렸다. 그 사람은 내 번호를 모른다."해온아, 너 전화기 그렇게 보면 닳아."다래가 거실에서 말했다. 다래는 내 고등학교 친구고, 이 빌라 3층 투룸의 나머지 방 주인이고, 웹툰 보조작가다. 거실 작업 책상에 앉아서 하루 종일 남의 만화 배경에 나무를 그린다. 오늘도 나무였다."안 봤어.""봤어. 십 분에 한 번씩 뒤집어 보잖아. 고기 굽냐?""번호를 모르는데 어떻게 전화를 해. 그냥 인사말이었나 봐. 연예인들은 그런 말 잘하잖아.""명함 뒤에 연필로 써서? 인사말을?"다래가 펜을 내려놓고 의자를 돌렸다."야, 톱배우가 새벽 네 시에 막내 작가한테 손글씨를 줬어. 그게 인사말이면 나는 나무 그만 그리고 시집간다.""누구한테.""그건 차차 알아보고."전화는 오전에 안 왔다. 점심에도 안 왔다. 나는 라면을 끓이면서 전화기를 냄비 옆에 뒀고, 설거지하면서 수세미 옆에 뒀고, 화장실에도 들고 갔다. 다래가 그걸 보고 「사랑이네」 했다. 사랑이 아니고 취업이다. 나는 지금 백수다.오후 네 시 십 분에 전화기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여, 여보세요.""주해온 작가님 맞으십니까."낮은 목소리였다. 그런데 금요일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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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열일곱 번째 질문

「남의 고향을 씁니다. 가 본 적 없는 곳입니다. 가 본 적 없는 곳도 그리울 수 있을까요. 새벽 두 시에 물어봅니다.」열아홉 개는 썼다.수요일 밤부터 목요일 새벽까지 책상에 앉아서, 류하진이 일곱 해 동안 한 인터뷰를 다 찾아 읽었다. 그 사람 대답은 짧았다. 「좋았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독님 덕분입니다」. 기자들이 받아 적다가 한숨 쉬었을 대답들이다. 왜 전담 작가가 필요한지 알 것 같았다.그래도 읽다 보니 말버릇이 보였다. 이 사람은 「정말」이나 「너무」를 안 쓴다. 자랑을 시키면 남 얘기를 한다. 좋아하는 걸 물으면 한 가지만 말한다. 나는 그걸 종이 맨 위에 적어 놓고 열아홉 개를 썼다.남은 게 17번이었다.17. 당신에게 고향은.일곱 해 치 인터뷰에 고향 얘기는 거의 없었다. 어디냐고 물으면 「바닷가입니다」 하고 끝이다. 딱 한 줄, 데뷔하던 해에 한 말이 더 있었다. 「영화는 고향에서 처음 봤습니다.」 그게 다였다.솔직하게 써도 된다니. 뭘 알아야 솔직하지.연필을 쥐고 한참 있다가, 그냥 썼다. 손이 먼저 썼다.[고향은 불이 꺼져도 자리가 기억나는 곳]써 놓고 봤다. 이건 내 얘기였다. 대전 우리 집 문구점. 밤에 셔터를 내리고 불을 꺼도 나는 연필 칸이 어디고 색종이 칸이 어딘지 손으로 찾는다. 엄마는 그걸 보고 고양이냐고 했다.류하진의 고향이 아니라 주해온의 고향이다. 가로줄을 그었다.[~~고향은 불이 꺼져도 자리가 기억나는 곳~~]밑에 새로 썼다.[고향은 제가 처음 영화를 본 곳입니다]이건 그 사람이 한 말에서 나온 거니까 틀릴 일이 없다. 귀퉁이에 01:55라고 적었다."야, 사진은."다래가 방문에 기대서 말했다. 양치하다 나왔는지 입에 칫솔을 물고 있었다."못 찍었어.""손도?""손도. 계약서 쓰는데 손을 어떻게 찍어.""그럼 저녁은 네가 한 거 맞지. 오늘 김치볶음밥 짰어.""그건 사진이랑 상관없이 짰어."다래가 들어와서 내 어깨 너머로 종이를 봤다. 보지 말라고 팔로 가렸는데 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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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첫 촬영, 비

「비가 옵니다. 우산은 하나고 사람은 둘입니다. 이럴 때 라디오는 노래를 틉니다. 저는 틀 노래가 없어서 그냥 걷습니다.」토요일 아침부터 비가 왔다.「밤의 식물원」 첫 촬영 날이었다. 세트장은 서울 바깥에 있었다. 넓은 빈터 한가운데에 유리 온실을 통째로 지어 놨다. 지붕까지 유리였고, 안에는 진짜 나무와 진짜 풀이 들어차 있었다. 비가 유리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가 멀리서도 들렸다.나는 스태프 천막 맨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인터뷰 질문 14번이 「첫 촬영 날 어땠나요」라서, 그날을 봐 둬야 답을 쓸 수 있었다. 손에는 종이와 연필. 우산은 없었다. 새벽에 집에서 나올 때는 하늘만 흐렸다."어, 하진이가 뽑은 작가님이다."노세하가 천막 밑으로 뛰어 들어오면서 말했다. 머리에 수건을 쓰고 있었다.월요일에 나는 그 질문에 「하진 씨가요」라고 대답했다. 작게. 노세하는 「그럴 줄 알았어. 우리 아빠는 사람 보는 눈이 없거든요」 하고 웃었다. 아빠가 대표님이라는 건 그날 집에 가는 버스에서 검색해 보고 알았다. 대표님 딸 앞에서 대표님 눈이 없다는 말에 같이 웃어 버린 걸 버스 안에서 이십 분쯤 후회했다."안녕하세요. 저, 그 얘기는 밖에서는.""알아요, 알아. 비밀. 나 입 무거워요. 얼굴이 가벼워 보여서 그렇지."노세하는 손가락으로 입을 잠그는 시늉을 하고 분장 차로 뛰어갔다. 뛰어가다가 돌아보고 한 번 더 잠갔다. 하나도 안 무거워 보였다.비는 굵어졌다. 바람이 천막 안쪽으로 비를 밀어 넣었다. 종이 위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연필 글씨는 번지지 않는다. 그게 연필의 좋은 점이다. 하지만 종이는 운다. 젖은 자리가 쭈글쭈글해졌다. 몸으로 가려 봤는데 등이 대신 젖었다.머리 위가 어두워졌다.누가 내 종이 위에 대본을 펴서 들고 있었다. 「밤의 식물원」 1회 대본. 여백에 연필 글씨가 빽빽한."하진 씨, 대본 젖어요.""대본은 외웠습니다."류하진이었다. 정원사 옷을 입고 있었다. 풀물 든 앞치마에 소매를 걷은 셔츠. 분장을 해서 얼굴이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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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먼지와 필름 냄새

「월요일 오전, 그 사람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빈자리는 사람보다 눈에 잘 띕니다. 오후에는 냄새가 먼저 도착합니다.」월요일 아침, 나는 종이 한 장을 들고 출근했다.토요일 밤에 쓴 그 종이다. 줄 세 개에 답 하나. 일요일 내내 책상 서랍에 넣었다 뺐다 했다. 다래가 그걸 보고 「이번엔 뭘 굽냐」고 했다.줄 건지 말 건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정했다. 준다. 물어본 사람이 있으면 대답하는 게 예의다. 라디오에서 배운 거다. 사연에는 답을 한다.7층 끝 방은 문이 닫혀 있었다."매니저님, 하진 씨는요?""오전엔 안 계십니다."표상우 매니저님은 자기 책상에서 일정표를 보고 있었다."촬영이에요?""아닙니다.""그럼 어디."매니저님이 고개를 들었다. 나를 보고, 일정표를 보고, 다시 나를 봤다."오후에 오십니다. 내일 인터뷰가 있어서 오늘은 일찍 오십니다."어디 갔느냐고 물었는데 언제 오느냐를 대답했다. 오후가 왜 일찍인지도 말해 주지 않았다. 더 물으면 「네」가 나올 얼굴이었다. 나는 내가 먼저 「네」 하고 물러났다. 선수를 쳤다.회의실 탁자 끝에 앉아서 내일 인터뷰 답변을 다듬었다. 스무 개. 여백 글씨대로 3번은 반으로 줄였고, 14번에는 간식차 앞에서 들은 말을 그대로 넣었다. 처음에는 몰라서 안 무서웠습니다.일하다가 달력을 봤다. 사월 십삼 일, 월요일.두 주 전 월요일에는 매니저님이 대신 전화를 했다. 월요일에는 사정이 있다고. 그리고 오늘. 아까 본 매니저님 일정표가 떠올랐다. 다른 요일은 깨알 같은 글씨로 까만데 월요일 칸만 이번 주도, 다음 주도 하얗게 비어 있었다. 비워 둔 게 아니라 지켜 둔 칸 같았다.점심은 다희 씨가 알려 준 건물 아래 식당에서 혼자 먹었다. 제육볶음이었다. 종이는 주머니에 있었다. 밥 먹는 내내 주머니가 무거웠다.*다섯 시가 다 돼서 회의실 문이 열렸다."늦었습니다."류하진이었다. 검은 모자, 회색 긴팔. 눈 밑이 좀 어두웠다. 잠을 못 잔 얼굴이었다. 그 사람은 이번에도 의자 하나를 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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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여백

「종이에는 쓰는 자리와 비워 두는 자리가 있습니다. 요즘 저는 비워 둔 자리부터 읽습니다. 거기에 누가 다녀가서요.」인터뷰가 끝나고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고향에 극장이 있는 사람이 세상에 한 명일 리 없다. 극장 있는 동네가 한두 군데겠어.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고 「설마」를 서랍 맨 밑에 넣었다. 서랍은 잘 닫혔다. 가끔 덜컹거리긴 했다.그리고 일이 많아졌다.사월 셋째 주부터 내 하루는 봉투로 시작해서 봉투로 끝났다.아침에 7층에 올라가면 회의실 탁자 끝, 내 자리에 누런 봉투가 놓여 있다. 매니저님이 갖다 놓은 거다. 안에는 전날 내가 넘긴 원고가 들어 있다. 여백에 연필 글씨를 달고서.고칠 데를 적은 글씨가 반, 딴소리가 반이었다.[이 답은 제가 한 말보다 낫습니다. 이게 저입니까.]나는 그 밑에 썼다.[하진 씨가 할 법한 말을 쓴 거예요.]다음 날 봉투.[그럼 제가 이 답만큼은 되는 사람이어야겠네요. 큰일입니다.]큰일이라면서 글씨는 태평했다.나는 그 종이를 원고 묶음에 넣지 않고 따로 뺐다. 가방 안쪽 주머니에. 왜 뺐는지는 묻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나한테도.어떤 날은 이런 것도 있었다.[상우 형이 오늘 「네」를 몇 번 하는지 세어 봤습니다. 점심 전까지 마흔두 번입니다.]회의실에서 혼자 웃다가 지나가던 다희 씨와 눈이 마주쳤다. 원고 보고 웃는 사람이 됐다. 나는 답을 썼다.[마흔세 번째는 제가 들었어요. 봉투 받으시면서요.]매니저님은 자기가 무슨 편지를 나르는지 모른다. 봉투를 두 손으로 받고, 두 손으로 놓고, 「네」 한다. 세상에서 제일 입이 무거운 집배원이다.종이가 오가는 데는 규칙이 생겼다. 누가 정한 건 아니다. 일 얘기는 원고 옆에, 딴소리는 맨 아래 여백에. 나는 내 글씨에는 줄을 긋고, 그 사람 글씨에는 안 긋는다. 그 사람은 내가 줄 그은 데마다 꼭 한마디를 붙인다. 「이건 왜 지웠습니까」, 「이건 지울 만했습니다」, 「이건 아깝습니다」.지울 만했다는 말을 들은 날은 좀 분했다. 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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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두 시의 창문

「밤 열한 시, 유리 온실입니다. 불이 하나씩 꺼지고 있습니다. 누가 물었습니다. 왜 새벽 두 시에 깨어 있느냐고요.」답을 못 넘긴 채로 토요일이 됐다.[작가님은 왜 새벽 두 시에 깨어 있습니까.]종이는 가방 안에 있었다. 어젯밤에 다른 종이에 세 번 써 봤는데 세 번 다 반 장을 넘겼다. 옮겨 적을 수가 없었다. 여백이 너무 좁았다. 그 한 줄 밑에 남은 자리가 손가락 한 마디밖에 안 됐는데, 내 대답은 그것보다 훨씬 길었다.그리고 좀 무서웠다. 귀퉁이까지 읽는 사람한테 뭘 써서 줘야 하나. 이제 숫자 하나도 그냥 못 적겠다.사월 이십오 일. 밤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나는 저녁 여덟 시에 세트장에 도착했다. 팬카페에 올릴 촬영장 이야기를 쓰려면 밤 온실을 봐야 했다. 낮에 비 오는 온실은 봤으니까, 이번엔 맑은 밤.온실은 멀리서부터 보였다. 깜깜한 빈터 한가운데에 불 켠 유리 상자 하나. 안에 든 초록이 다 비쳐서 커다란 등불 같았다. 주위에 아무것도 없어서 더 그랬다."작가님 오셨어요? 오늘 대기 길어요. 앞 장면이 밀려서."조연출이 지나가면서 말했다. 귀에 무전기를 꽂고 뛰어다니는 분인데 내 얼굴을 외웠다. 나를 어느 팀으로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다."안에 들어가 계셔도 돼요. 저쪽 구석은 카메라에 안 걸려요."그래서 처음으로 온실 안에 들어갔다.문을 여니까 공기가 축축했다. 흙냄새, 풀 냄새. 머리 위로 큰 잎들이 겹쳐 있었고 그 사이로 조명이 내려왔다. 유리 지붕 너머는 까맸다. 촬영은 온실 저쪽 끝에서 하고 있었다. 세하 씨가 약사 가운을 입고 화분 사이를 걷는 장면이었다. 감독님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한 번만 더.구석에 나무 벤치가 있었다. 소품인지 진짜 쉬라고 둔 건지 모르겠는 벤치. 앉아서 종이를 꺼냈다. 밤 온실은 낮보다 조용합니다, 라고 썼다. 마음에 안 들어서 줄을 그었다.잎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종이 귀퉁이에 앉았다. 누가 방금 물을 준 모양이었다. 여기 식물들은 드라마에 나오느라 밤에도 못 잔다. 나랑 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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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월요일의 배표

「새벽 두 시 반, 차 한 대가 떠납니다. 어디 가느냐고 묻지 않는 것도 인사입니다. 그래도 궁금한 건 궁금합니다.」「두 번 다」가 무슨 뜻인지 나는 묻지 않았다.물을 틈이 없었다는 건 핑계다. 틈은 있었다. 온실 다음 주 내내 봉투는 오갔고, 여백은 넉넉했다. 그런데 연필이 그 말 앞에서만 섰다. 물어서 「그냥 짐작입니다」가 돌아오면 싱거울 것 같았고, 다른 대답이 돌아오면 감당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 종이에 이렇게만 썼다.[새벽 두 시 얘기는 말로 다 해서, 여기는 비워 둘게요.]그 종이는 금요일에 넘겼고 아직 안 돌아왔다.그리고 오월 사 일, 월요일 새벽 두 시. 나는 책상 앞에서 가방을 뒤집어 털고 있었다.없었다. 병원에서 보내 준 종이가.내일은 어린이날이고, 하진은 아동병원에 간다. 아이들 앞에서 할 말을 내가 써야 한다. 병원에서 아이들 이름과 나이, 좋아하는 것을 적어 보내 줬는데, 그게 회의실 탁자에 있다. 금요일에 놓고 왔다."아침에 가서 가져오면 되잖아."다래가 거실에서 말했다. 마감이라 안 자고 있었다. 오늘은 나무가 아니라 구름을 그리고 있었다."지금 써야 돼. 두 시에 써야 잘 써져.""병이다, 병.""금방 갔다 올게.""야, 택시 타. 번호판 찍어서 보내고."회사까지는 택시로 십오 분이다. 출입증은 있다. 새벽 라디오를 두 해 한 사람한테 새벽 두 시의 길은 낮보다 익숙하다. 신호등이 다 노란불로 깜빡거리는 시간.달무리엔터 건물은 불이 거의 꺼져 있었다. 유리 건물은 밤에 까만 거울이 된다. 택시에서 내려서 정문 쪽으로 걷는데, 건물 옆 주차장 입구에서 불빛이 올라왔다.차 한 대가 나오고 있었다.검은 차였다. 낯익었다. 하진이 촬영장에 타고 다니는 그 차. 그런데 운전석에 앉은 사람이 매니저님이 아니었다.가로등 밑을 지날 때 옆얼굴이 보였다. 검은 모자. 모자 밑으로 보이는 턱. 운전대를 잡은 손.하진이었다. 혼자였다.차는 나를 못 보고 큰길로 나갔다. 깜빡이가 왼쪽으로 세 번 깜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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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소리섬

「검색창에 섬 이름을 넣었습니다. 지도는 금방 나옵니다. 가는 길도 나옵니다. 가도 되는지는 안 나옵니다.」표는 그 자리에서 돌려줬다.병원 주차장에서였다. 매니저님이 차를 대고 내렸을 때 나는 두 손으로 표를 내밀었다. 매니저님이 봉투 받을 때처럼."매니저님, 이거 떨어뜨리셨어요."매니저님이 표를 봤다. 그리고 나를 봤다. 평소보다 일 초쯤 길게."보셨습니까.""글자가 커서요. 안 보려고 했는데."거짓말은 못 하겠어서 그렇게 말했다. 매니저님은 표를 받아서 안주머니에 넣었다. 이번에는 깊이. 기름값 영수증이랑 같이 받아 둔 모양이었다. 이분은 남의 표 한 장도 못 버리는 사람이다."안 물을게요. 월요일은 안 묻기로 했으니까요.""……감사합니다."「네」가 아니었다. 매니저님은 뒷문을 열어 놓다 말고 한마디를 더 했다."그리고 상우 씨라고 하셔도 됩니다. 회사에 매니저님이 열둘이라서요."이틀 사이에 이분한테서 「네」 아닌 말을 이렇게 많이 들었다. 보통 일이 아니긴 한가 보다. 그날부터 매니저님은 상우 씨가 됐다.하진은 병원 현관에서 보호자들과 인사하느라 늦게 나왔다. 차에 타면서 나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 오늘 달 노릇 잘했다는 뜻인지, 그냥 인사인지. 나는 표 얘기를 하지 않았다. 상우 씨도 하지 않았다. 차 안에서 상우 씨는 도로 「네」만 했다.*안 묻기로 한 것과 안 찾아보기로 한 것은 다르다.그건 변명이다. 나도 안다. 그런데 새벽 두 시가 되니까 손가락이 먼저 갔다. 검색창에 세 글자를 쳤다.소리섬.지도가 떴다. 서남쪽 바다. 육지에서 뚝 떨어진 작은 점. 손가락으로 벌려야 섬 모양이 보였다. 콩알만 했다.육지 항구에서 배로 한 시간 십 분. 들어가는 배는 하루에 두 번. 아침 일곱 시와 낮 한 시.일곱 시 배를 타려면 서울에서 몇 시에 나서야 하는지 길 찾기를 눌러 봤다. 항구까지 차로 네 시간.새벽 두 시 반.맞아떨어졌다. 꼬리등이 멀어지던 그 시간이.사진을 봤다. 선착장, 방파제, 빨간 등대. 낚시하러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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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영상통화 팬사인회

「화면 너머에 삼백 명이 있습니다. 다들 한마디씩 준비해 왔습니다. 저는 며칠째 한 글자를 못 썼는데요.」[오늘 뭘 봤습니까.]그 종이는 며칠째 내 책상 서랍에 있었다. 하얀 채로.일은 했다. 원고는 날마다 넘겼다. 봉투도 날마다 돌아왔다. 그런데 나는 원고 옆 여백에 일 얘기만 썼다. 맨 아래 여백, 딴소리 자리는 비워 뒀다. 그 사람도 거기에 아무것도 안 썼다. 「답은요」 한 줄이 없었다.회의실에서 마주치면 나는 연필을 깎았다. 깎을 것도 없는 연필을. 다래는 저녁마다 식탁 밑으로 내 발을 보고는 「요즘은 안 드네」 했다. 그 애는 내 발로 일기 예보를 한다.그리고 오월 십육 일, 토요일. 영상통화 팬사인회 날이 됐다.회사 건물 안 스튜디오였다. 흰 책상 하나, 그 위에 화면 하나, 사인할 종이 삼백 장. 책상 앞에 하늘색 셔츠를 입은 하진이 앉고, 화면 속에 팬이 한 명씩 뜬다. 한 사람에 일 분 남짓. 점심 먹고 시작해서 저녁까지.삼백 명은 미리 질문을 하나씩 적어 냈다. 그걸 정리한 게 나다. 대답하기 곤란한 건 다희 씨한테 넘기고, 순서대로 번호를 붙였다. 답은 안 썼다. 팬사인회 대답까지 써 주면 그건 반칙 같아서. 대신 질문 옆에 작게 실마리만 적었다. 「이분은 세 해째 생일마다 연탄 기부」, 「이분은 지난달에 군대 감」.나는 화면 뒤에 서 있었다. 화면 뒷면과 그 사람 얼굴만 보이고, 팬은 목소리만 들리는 자리. 손에는 삼백 명 치 종이 뭉치. 다음 사람 종이를 책상 귀퉁이에 한 장씩 올려놓는 게 내 일이었다."시작합니다. 1번 연결할게요."다희 씨가 말했다.첫 번째 팬은 울었다. 일 분 가운데 오십 초를 울었다. 하진은 기다렸다가 마지막 십 초에 「울지 마세요. 사인이 번집니다」 했다. 종이에 사인하는 건 이쪽인데. 팬이 울다가 웃었다."오빠, 어묵 진짜 두 개 드셨어요?"여든 번째쯤 팬이 물었다."네. 세 개째는 참았습니다.""왜요!""촬영 전이라서요. 서온이 배부르면 안 됩니다."화면 저쪽에서 웃음이 터졌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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