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내 담당 톱배우는 비밀이 많다: Chapter 11 - Chapter 20

20 Chapters

11화. 녹음기

「새벽 두 시입니다. 오늘은 남의 목소리를 엿들은 얘기예요. 엿들으려던 건 아니에요. 문이 손가락 두 마디만큼 열려 있었습니다.」오월 넷째 주 목요일, 오후 세 시였다.나는 7층 복도를 걷고 있었다. 손에는 서면 인터뷰 답변 초안 여섯 장. 드라마 첫 방송이 두 주 앞이라 요즘은 질문지가 하루에 하나씩 온다. 질문은 다 비슷하다. 서온은 어떤 사람인가요. 상대 배우와 호흡은 어떤가요. 나는 같은 질문에 다른 답을 여섯 번째 쓰는 중이었다.7층 끝 방은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두드리려고 손을 들었는데 안에서 목소리가 났다."밤. 식물원 온실 안. 서온, 물뿌리개를 내려놓는다."하진 목소리였다. 두 달 전만 해도 속으로 류하진, 하고 성까지 붙여 부르던 사람이다. 요즘은 성이 떨어져 나갔다. 매니저님은 상우 씨가, 노세하는 세하 씨가 됐고."유리문 쪽을 본다. 사이. 문이 열리고 이경이 들어온다. 젖은 우산을 접는다."대본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배우는 자기 대사를 외운다. 저 사람은 지금 대사가 아닌 데를 읽고 있었다. 누가 뭘 내려놓고, 누가 어디를 보는지. 괄호 안에 든 글자까지 전부."이경. 오늘도 문 열었네요. 서온. 밤에만 엽니다. 이경. 왜요. 서온. 낮에는 꽃들이 바빠서요."세하 씨 대사까지 혼자 다 했다. 목소리를 바꾸지도 않았다. 그냥 또박또박, 천천히. 책 읽어 주는 사람 말투였다.문틈으로 책상이 보였다. 대본 옆에 작은 기계가 놓여 있었다. 손바닥 반만 한 은색 녹음기. 빨간 불이 켜져 있었다.아, 연습이구나.녹음해서 자기 목소리를 다시 들어 보는 거다. 서래 언니도 그랬다. 새 노래를 내기 전에는 대기실에서 전화기에 대고 흥얼거리고, 그걸 이어폰으로 들으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잘하는 사람들은 다 저런 걸 한다. 나는 내 목소리 녹음한 걸 들으면 이불을 차는데.그래도 지문까지 읽는 사람은 처음 봤다. 톱배우는 연습도 꼼꼼하게 하네.나는 손을 내렸다. 빨간 불이 켜져 있는데 문을 두드리면 내 노크 소리가 같이 녹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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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배로 한 시간 십 분

「새벽 두 시 반입니다. 오늘은 창문 대신 차 문을 엽니다. 네 시간을 달리고, 배로 한 시간 십 분. 어디 가는지는 묻지 않았어요.」유월 첫날, 월요일 새벽 두 시 반. 빌라 앞 가로등 밑에 검은 차가 서 있었다."일이야."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며 내가 말했다. 다래는 작업 책상에서 고개도 안 돌렸다."누가 뭐래.""고향 질문이 자꾸 나오니까 직접 보고 쓰라는 거야. 자료 조사.""새벽 두 시 반에 톱배우 차 타고 가는 자료 조사. 응, 일이네. 뒤꿈치나 내리고 가."내리고 있었다. 아마도.지난주 비 오던 그 새벽, 그 사람은 이렇게만 말했다. 인터뷰마다 고향을 묻는데, 작가님이 안 보고 쓰는 건 싫다고. 어디냐고는 안 물었다. 안 물어도 됐다. 한 달 전에 주운 배표에 찍힌 세 글자를 나는 아직 기억한다.차 문을 열자 하진이 무릎 담요를 내밀었다."네 시간 갑니다. 주무세요.""운전하는 사람 옆에서 어떻게 자요.""저는 괜찮습니다. 월요일마다 하는 일이라서요."월요일마다. 그 사람이 먼저 꺼낸 말이었다. 상우 씨가 묻지 말라던 월요일. 나는 담요를 무릎에 펴고 아무것도 안 물었다. 대신 절대 안 자겠다고 버텼다. 톨게이트를 세 개 세고 나서 기억이 없다.눈을 뜨니 앞 유리 가득 바다였다.여섯 시 사십 분. 항구는 벌써 환했다. 갈매기가 매표소 지붕에 줄지어 앉아 있었다. 하진이 창구에서 표 두 장을 받아 한 장을 내게 줬다.[소리섬 07:00]아는 글자였다. 모르는 척 표를 반으로 접었다."배로 한 시간 십 분 걸립니다.""알아요.""압니까.""아니, 그게. 배가 딱 그 정도 걸리게 생겼잖아요."하진이 배를 한 번 보고 나를 한 번 봤다. 고개가 조금 숙여졌다. 검색해 본 거 들켰다. 백 퍼센트 들켰다.배는 작았다. 차 여섯 대가 겨우 실리는 흰 배였다. 손님은 우리 말고 할머니 네 분과 낚시 가방을 멘 아저씨 둘. 하진은 모자를 눌러썼는데 소용이 없었다."금희네 아들 또 왔네. 월요일이구먼."할머니 한 분이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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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첫 방송

「밤입니다. 오늘은 불을 끄고 기다려요. 화면이 켜지면 다 같이 숨을 참습니다. 첫 방송 날은 원래 그런 날이에요.」유월 십일, 수요일. 달무리엔터 7층은 아침부터 시끄러웠다.홍보팀 전화는 쉬지 않고 울렸고, 복도에는 꽃바구니가 줄을 섰다. 리본마다 「밤의 식물원 첫 방송 축하」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꽃 사이를 게걸음으로 지나 끝 방 문을 두드렸다.하진은 창가에 서 있었다. 손에는 대본이 아니라 내 초안이 들려 있었다. 오늘 밤 방송이 끝나면 팬카페에 올릴 첫 방송 소감이다. 내가 쓰고, 그 사람이 자기 말로 고쳐서, 손글씨로 옮겨 적는다. 사월부터 해 온 순서다."긴장되세요?""안 됩니다."왼손 엄지가 오른쪽 손목 위에 올라가 있었다. 나는 못 본 척했다. 대신 종이 가방을 내밀었다."수건요. 비 오던 날 빌린 거."진작 빨아 놓고 열흘 넘게 가방에 넣고만 다녔다. 수건 한 장 돌려주는 데 왜 용기가 필요한지 모르겠다."안 주셔도 된다고 했는데요.""드린다고 했잖아요."하진은 수건을 꺼내 접힌 모서리를 한 번 만져 보고 서랍에 넣었다. 다리미질한 건 들킨 것 같다."여기요."하진이 종이를 책상에 놓고 첫 줄을 짚었다.[~~잠 못 드는 분들께.~~][첫 회 보셨습니까. 저는 불 끈 방에서 봤습니다. 밤에만 문을 여는 식물원이 있다면, 오늘 밤은 여러분 방이 그 식물원이면 좋겠습니다. 물은 서온이 주겠습니다.]"이 줄은 왜 그었습니까.""라디오 말투라서요. 제 버릇이에요. 하진 씨 글에 제 버릇이 묻으면 안 되잖아요.""저는 그 버릇이 좋은데요."표정 없이 그런 말을 한다. 나는 필통을 뒤지는 척했다. 필통에는 연필 세 자루밖에 없어서 뒤질 것도 없었다.하진이 2B 연필을 들었다. 마지막 문장의 「서온이」에 가로줄을 긋고, 그 위에 두 글자를 작게 썼다. 제가."이건 제가 하고 싶은 말이라서요. 서온한테 안 넘기겠습니다."물은 제가 주겠습니다.두 글자가 바뀌었는데 글 전체가 다른 사람 것이 됐다. 배역이 하는 인사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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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지운 문장

「새벽 두 시입니다. 지운 문장은 어디로 갈까요. 저는 줄만 긋고 잊어버렸는데, 누가 그걸 한 줄씩 주워 가고 있었습니다.」첫 방송 이틀 뒤 금요일, 7층은 다시 조용해졌다. 꽃바구니는 반쯤 시들었고 복도에는 리본 떨어진 것만 굴러다녔다.육태규 기자의 문자에 하진은 답을 안 했다. 물어본 건 자기한테지 작가님한테가 아니라고, 그러니까 작가님은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신경이 안 쓰일 리가 없다. 그래도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반쯤은 안 쓰인다. 반쯤만.오후 네 시에 끝 방 문을 두드렸다. 다음 주에 나갈 서면 답변을 받으러 간 거였다."앉으세요. 드릴 게 있습니다."하진이 책상 서랍을 열었다. 녹음기가 들어 있던 그 서랍이다. 이번에는 종이 뭉치가 나왔다. 까만 집게로 한쪽을 집은, 손바닥만 한 종이들이었다. 메모지를 반으로 잘라 모은 것 같았다."뭐예요?""보시면 압니다."받아서 첫 장을 봤다.작고, 오른쪽으로 조금 기운 글씨. 하진의 글씨였다. 그런데 문장은 내가 쓴 문장이었다.[~~고향은 불이 꺼져도 자리가 기억나는 곳~~]가로줄까지 그대로 그어져 있었다. 밑에는 날짜가 작게 적혀 있었다. 사월 첫 주.다음 장을 넘겼다.[~~비 오는 날엔 오프닝을 안 씁니다~~][~~비 오는 날엔 우산 얘기를 씁니다~~][~~비 오는 날엔 누가 옆에 있으면 좋겠다고 씁니다~~]세 번 줄 긋고 네 번째에 겨우 쓴 답. 그 세 번이 한 장에 나란히 옮겨져 있었다. 다음 장, 또 다음 장. 조명이 하나씩 꺼질 때. 잠 못 드는 분들께. 내가 긋고 지나간 줄이 전부 거기 있었다. 인터뷰 초안에서, 팬카페 글에서, 여백에 주고받은 메모에서.스물두 번째 장에서 손이 멈췄다.[~~또 가고 싶어요~~]섬에 다녀온 다음 날 쓴 메모였다. 줄을 긋고 그 밑에 「참외 잘 먹었다고 전해 주세요」라고 고쳐 썼었다. 일로 간 사람이 또 가고 싶다고 하면 이상하니까."그건 어머니한테 전했습니다.""참외 얘기요?""줄 그은 쪽으로요. 또 오라고 하십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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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온실의 밤

「밤입니다. 유리 지붕 위로 비가 와요. 초록 잎마다 불이 하나씩 걸려 있고요. 이런 데서는 자면 안 되는데, 잤습니다.」유월 이십일 토요일. 온실 세트 밤 촬영은 해 지고 나서 시작했다.드라마는 4회까지 나갔다. 반응이 좋아서 촬영장 사람들 목소리가 반 칸씩 올라가 있었다. 간식차 아저씨는 어묵을 하나씩 더 꽂아 줬고, 하 감독님은 "한 번만 더"를 기분 좋게 외쳤다. 기분 좋게 외쳐도 횟수는 그대로였다.나는 온실 안쪽, 카메라가 안 잡는 구석 벤치에 앉아 있었다. 진짜 나무 벤치다. 옆에는 내 키만 한 고무나무 화분이 있고, 잎마다 작은 전구가 걸려 있었다. 소품팀이 전구를 사백 개 달았다고 했다. 불을 켜면 온실이 통째로 물속에 잠긴 초록색이 된다.무릎에는 종이가 있었다. 다음 주 토요일에 올릴 글의 초안이다. 유월 이십칠일이 하진의 생일이고, 팬들이 생일 축하 광고를 준비한다는 소식으로 팬카페는 벌써 시끄럽다. 나는 감사 인사를 미리 써 둬야 한다.첫 줄에서 삼십 분째 막혀 있었다.글 때문이 아니다. 지난 토요일에 돌아온 메모 때문이다. 저도 줄 그은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아직은 안 보여 줄 겁니다. 그 뒤로 일주일, 하진은 뒷장에 대해서 한마디도 안 했다. 봤다는 말도, 못 봤다는 말도. 여백 메모는 평소처럼 왔다. 점심 드셨습니까. 3번 답이 좋습니다. 비 온답니다, 우산 챙기세요.우산은 챙겼다. 그 사람 말은 잘 듣는다.촬영 들어가기 전에 하진이 벤치 쪽으로 왔다. 앞치마 주머니에 꽃삽을 꽂은 채였다. 고무나무 잎에서 전구 하나가 빠져 덜렁거리는 걸 보고는 손을 뻗어 도로 끼웠다."오늘 길어집니다. 졸리면 주무세요.""안 자요. 일하러 왔는데요.""지난번에도 그러시고 톨게이트 세 개 지나서 주무셨습니다.""……세고 계셨어요?""네 개째에 코 고는 소리가 나서요.""저 코 안 골아요!"하진은 고개를 조금 숙이고 카메라 쪽으로 갔다. 농담이다. 농담일 거다. 다래한테 물어봐야겠다.저녁 아홉 시쯤 비가 오기 시작했다. 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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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초 한 개

「밤입니다. 초는 한 개만 꽂았어요. 조각 케이크라서 자리가 없거든요. 한 개여도 불은 불이라서, 소원은 빌 수 있습니다.」유월 이십칠일 토요일 아침, 나는 지하철역 한가운데에서 걸음을 멈췄다.갈아타는 통로 벽에 하진이 있었다. 벽 한 칸을 다 차지한 광고판이었다. 흰 셔츠를 입고 고개를 조금 숙이고 웃는 얼굴. 그 옆에 글씨가 있었다.일곱 번째 여름, 생일 축하해요. 당신이 웃으면 우리 밤이 환해요. 「달무리 아래」 일동.광고판 밑에는 벌써 쪽지가 붙어 있었다. 노란 것, 분홍 것, 하트 모양으로 오린 것. 교복 입은 아이 둘이 까치발을 하고 맨 위에 하나를 더 붙였다. 붙이고 나서 둘이 손을 잡고 뛰어갔다.나는 한참 서 있었다. 바쁜 사람들이 내 어깨를 피해 갔다. 광고는 이번 주 내내 걸려 있었다. 사진으로는 벌써 봤는데, 생일 아침에 직접 보고 싶어서 일부러 한 정거장을 돌아온 거다.이상한 기분이었다. 벽에 걸린 저 사람하고, 어제 여백에 「점심 드셨습니까」라고 쓴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는 게. 저 얼굴은 하루에 몇만 명이 지나가며 보는 얼굴이고, 그 글씨는 나 혼자 보는 글씨라는 게.주머니 속에서 사탕통이 달그락거렸다. 일주일째 갖고 다닌다. 아직 한 알도 안 먹었다. 줄어드는 게 아까워서.쪽지를 몇 개 읽었다. 오빠 덕분에 고3 버텨요. 서온이 물 주는 장면 백 번 봤어요. 태어나 줘서 고마워요. 글씨가 다 달랐다. 꾹꾹 눌러 쓴 것, 날려 쓴 것, 자를 대고 쓴 것.가방에서 영수증을 꺼냈다. 뒷면에 연필로 여섯 글자를 썼다. 생일 축하해요. 이름은 안 썼다. 줄도 안 그었다. 맨 아래 구석, 아무도 안 볼 자리에 붙였다. 붙이고 나서 누가 볼까 봐 빨리 걸었다. 나도 뛰어간 아이들하고 다를 게 없었다.팬카페에는 광고 사진이 스무 장 넘게 올라와 있었다. 운영자 달빛지기가 쓴 글도 있었다. 모금은 석 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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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복도 끝

「저녁입니다. 복도 끝 창이 주황색이에요. 누가 창틀에 종이를 끼워 두고 갔습니다. 읽기 전에 주위부터 살폈어요.」칠월 첫 주 수요일 아침, 나는 비상계단에서 못 볼 걸 봤다.엘리베이터가 점검 중이라 계단으로 올라가던 길이었다. 6층과 7층 사이 계단참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세하 씨와 상우 씨였다.세하 씨가 보자기에 싼 네모난 걸 상우 씨 가슴에 밀어 넣고 있었다."받아.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싼 거야. 달걀말이 터진 건 못 본 척하고 먹어.""……회사에서는.""회사니까 주지. 오빠 어제도 김밥 한 줄로 때웠잖아. 하진이가 다 말해 줬어."상우 씨는 보자기를 두 손으로 받았다. 받는 손이 조심스러웠다. 깨지는 걸 받는 손이었다. 귀는 말할 것도 없이 빨갰다. 목까지 빨갰다.나는 숨을 죽이고 한 칸 내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운동화 밑창이 끽 소리를 냈다.둘이 동시에 돌아봤다."……안녕하세요.""아, 작가님이구나. 놀랐잖아."세하 씨가 가슴을 쓸어내리고 웃었다. 상우 씨는 보자기를 등 뒤로 숨겼다. 숨겨지는 크기가 아니었다. 양옆으로 귀퉁이가 다 나왔다."저 아무것도 못 봤어요. 계단만 봤어요.""봤어도 돼요. 작가님은 우리 편이잖아."그때 아래층에서 구두 소리가 올라왔다. 또각또각. 홍보팀 다희 씨 구두다. 이 건물에서 저렇게 빠르게 걷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세하 씨 얼굴이 굳었다. 다희 씨는 대표님한테 뭐든 말하는 사람이다. 점심 메뉴까지 보고한다는 소문이 있다.나는 계단참으로 뛰어 올라가 상우 씨 등 뒤의 보자기를 낚아챘다. 가슴에 안았다. 다희 씨가 모퉁이를 돌아 올라왔다."어, 다들 여기서 뭐 하세요?""엘리베이터가 점검이라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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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별똥별 열 통

「낮입니다. 불 꺼진 부스는 낮에 보면 더 조용해요. 편지 열 통을 한 줄로 놓았습니다. 글씨는 거짓말을 못 합니다.」복도 끝 창틀의 종이는 그다음 날 답이 와 있었다.내가 줄 그어 남긴 「손은 왜 그랬어요」 밑에, 2B 연필로.[~~복도가 좁아서요.~~][좁지 않았습니다.]그 사람도 줄을 긋는다. 밑이 보이라고 긋는다. 나는 그 종이를 지갑에 넣었다. 명함 옆 칸에. 그러고 일주일을 둘 다 아무 일 없는 얼굴로 다녔다. 복도에서는 여전히 모르는 사람이었고, 종이에서는 점심을 먹었느냐고 물었다. 새끼손가락 얘기는 누구도 다시 안 꺼냈다.그렇게 칠월 팔일 수요일이 됐다.아침에 마 피디님한테서 전화가 왔다."해온아, 오늘 시간 되냐. 자료실에 사연함 정리하는데 네가 좀 와 봐야겠다. 네 연필통도 여기 있고.""연필통요? 저 다 챙겨 나왔는데요.""아니야, 하나 있어. 그리고 보여 줄 것도 있고. 됐어, 좋아. 두 시까지 와."대답도 안 했는데 끊겼다. 피디님은 석 달 만에 통화해도 어제 본 사람 말투다.*방송국 5층은 그대로였다.복도 형광등은 다섯 개 가운데 여전히 두 개가 나가 있었다. 석 달 넘게 아무도 안 갈았다. 우리 팀 책상 자리에는 다른 프로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지원 선배의 바퀴 의자만 구석에 밀려나 있었다. 선배는 회의 가고 없다고 했다."왔냐. 살쪘네. 새 직장 밥이 좋냐.""안 쪘어요.""됐어, 좋아. 이리 와."피디님을 따라 엘리베이터로 지하 자료실까지 내려갔다. 문을 여니 냄새가 먼저 나왔다. 먼지하고 오래된 테이프 냄새. 두 해 동안 매일 맡던 냄새다. 그리고 사월 어느 월요일에 한 사람 소매에서 맡았고, 유월 첫날 섬 극장 문틈에서 또 맡은 냄새다.창 없는 방 가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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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묻지 않을게요

「새벽 두 시입니다. 걷다 보니 여기예요. 불 꺼진 방송국 옆문 앞. 오늘은 물어보러 온 게 아니라, 안 묻겠다고 말하러 왔습니다.」그 메모에 답을 쓰는 데 사흘이 걸렸다.작가님, 요즘 저한테 묻고 싶은 게 있죠. 있다. 열 개쯤 있다. 그런데 안 묻기로 한 것들이다. 그렇다고 「없어요」라고 쓰면 거짓말이다. 나는 수요일 밤에 한 줄, 목요일 밤에 한 줄을 쓰고 둘 다 줄을 그었다. 금요일 저녁에야 창틀에 종이를 끼웠다.[~~없어요~~][~~있어요~~][있는데, 종이에는 못 써요.]답은 한 시간 만에 왔다.[그럼 걸으면서 하죠. 내일 촬영 끝나고요. 운동화 신고 오세요.]그래서 칠월 십일일 토요일 밤 열한 시 반, 나는 운동화를 신고 달무리엔터 건물 뒷문에 서 있었다.하진은 까만 모자에 까만 마스크를 쓰고 나왔다. 까만 티셔츠에 까만 바지. 가로등 밑이 아니면 안 보일 차림이었다."그림자가 걸어오는 줄 알았어요.""그게 목적입니다.""저는 흰 티 입었는데요. 저만 보이잖아요.""작가님은 보여야죠. 제가 따라가야 하니까."마스크 때문에 표정이 안 보였다. 눈만 보였는데 눈이 조금 휘었다. 요즘은 눈만 봐도 안다."어디로 가요?""정한 데 없습니다. 발 가는 대로요."우리는 걷기 시작했다.토요일 밤의 큰길은 아직 시끄러웠다. 술집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택시가 줄지어 섰다. 하진이 모자를 조금 더 눌렀다. 우리는 큰길을 버리고 한 블록 안쪽 길로 들어갔다. 거기는 조용했다. 문 닫은 가게들이 유리창만 내놓고 있었다. 빵집, 안경점, 세탁소, 꽃집. 불 꺼진 유리마다 걸어가는 두 사람이 비쳤다. 흰 티 하나와 그림자 하나.한 칸 띄우고 걸었다. 벤치에서 띄우던 그 한 칸이다. 걸을 때는 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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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지운 문장이 더 좋아요

「밤 열 시입니다. 오늘은 제가 쓴 글을 남이 외워서 들려줘요. 그것도 제가 지운 줄만 골라서요. 도망갈 데가 없습니다.」일요일은 길었다. 월요일은 더 길었다."월요일 밤에 뭘 말한다는 건데."다래가 일요일 저녁에 물었다. 나는 빨래를 개고 있었다. 같은 수건을 세 번째 개는 중이었다."몰라.""새벽 두 시에 방송국 계단에서, 톱배우가, 내가 먼저 말할게요, 월요일 밤에. 이게 뭘 것 같아. 다음 주 일정?""……일정일 수도 있지.""해온아. 너 수건 뒤집어서 개고 있어."수건을 내려놨다. 다래는 한숨을 쉬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등학교 때 내가 백일장 발표 기다릴 때 해 주던 거다.월요일 새벽 두 시 반, 나는 창가 책상에 앉아 있었다. 지금쯤 검은 차가 서울을 빠져나가고 있을 거다. 네 시간을 달려 항구로, 일곱 시 첫 배로 섬으로. 그 사람은 오늘도 문 잠긴 극장에 들어갈 거고, 평상에서 아버지한테 녹음기를 건넬 거다. 그리고 네 시 마지막 배를 타고 돌아온다.종이를 폈다. 오프닝을 써 보려고 했다. 한 줄도 안 나왔다. 귀퉁이에 시각만 적었다. 02:31.월요일 오후 다섯 시 반에 문자가 왔다. 우리는 문자를 급할 때만 쓴다.[배에서 내렸습니다. 밤 열 시, 7층 회의실. 불은 켜지 말고 계세요.]급한 일이구나. 그 사람한테도.*밤 아홉 시 오십 분. 7층은 비어 있었다.월요일 밤이라 직원들은 다 퇴근했다. 복도 불은 절반만 켜져 있었다. 나는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시킨 대로 불을 안 켰다.어두운 회의실은 처음이 아니다. 첫 방송 날에도 불을 껐다. 그날은 화면 빛이 있었고 스무 명이 있었다. 오늘은 창밖 불빛뿐이고 나 혼자다.긴 탁자 맨 끝, 낮에 일하는 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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