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전하, 이번엔 제가 버리겠습니다: Kapitel 11 – Kapitel 20

36 Kapitel

11화. 어머니의 노리개

서의는 연고 함을 내려놓고, 안섶에 품고 온 종이를 은비녀 상자 바닥에 밀어 넣었다.폐서인 정씨.아버지에게 배운 획으로 옮겨 적은 그 글자들을 다시 펼쳐 볼 틈은 없었다.문밖에서는 등롱을 든 연이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의녀청 들어가기 전에 순덕 언니 방에 한 번 더 들러 봤거든요. 이부자리도 안 펴져 있고, 같은 방 언니들도 저녁 설거지 뒤로는 못 봤대요."서의는 더 묻지 않고 신을 꿰었다.두 사람은 밤새 궐 동쪽을 뒤졌다.자시가 넘고 축시가 지나도록, 순덕을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다."어디 숨어서 졸고 있을 거예요. 떡 찌느라 늘 잠이 모자라다고 했거든요."모퉁이를 돌 때마다 연이의 목소리가 가늘어졌다.등롱 심지가 다 타 들어가고, 동쪽 하늘이 희끄무레하게 밝아 올 무렵이었다.동쪽 소주방 뒤뜰에서 째지는 비명이 터졌다.물 길으러 나온 나인 하나가 바가지를 내던진 채 주저앉아 있었다.뒤뜰은 금세 사람들로 북적였다."물 긷다 빠졌나 봐.""밤에 혼자 나왔다던데.""저 큰 독에 사람이 어찌 빠져?""부정 타게, 입 다물어."사람 키만 한 물독 가장자리에 젖은 치맛자락이 걸쳐져 있었다.궁녀 3명이 매달려 끌어낸 몸은 이미 차갑게 굳어 있었다.연이의 손에서 등롱이 굴러떨어졌다.물에 불은 얼굴을 들여다보는 순간, 서의도 숨을 멈췄다.2년 전 중궁전 소주방에서 약과를 굽던 아이.원자가 약과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꿀을 한 숟가락씩 더 넣어 몰래 따로 싸 두던 아이였다.원자 아기씨 몫이에요, 마마.쉿, 상궁마마님께는 비밀이에요.그 아이가 지금, 물독 옆 젖은 흙바닥에 누워 있었다."제가 전했어요."연이가 시신 곁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어제 저녁에 분명히 전했어요. 아무것도 먹지 말라고. 언니가 웃으면서 알았다고, 너나 잘 먹으라고 떡을 하나 더 줬는데……."울음에 먹혀 들어간 말끝 대신, 연이가 품에서 작은 떡 보자기를 꺼내 들었다.보자기를 움켜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서의는 연이의 어깨에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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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젖은 쪽지

허리를 굽혀 서의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김 상궁의 가늘게 좁혀진 눈이, 이마에서 눈썹으로, 눈썹에서 눈동자로 내려왔다.부채 끝에 받쳐진 턱이 조금이라도 떨리면 끝이었다."송구하오나 마마, 소인이 넋을 놓고 본 것은 노리개 매듭이옵니다.""매듭?""비취 나비를 엮은 매듭이 풀려 있사옵니다. 귀한 물건이 떨어져 깨질까 저어하다가, 그만 무례를 범하였사옵니다."정화가 부채를 거두고 다급히 들어 살핀 노리개는, 정말로 매듭 하나가 느슨하게 풀려 있었다.김 상궁의 눈길도 서의의 얼굴을 떠나 정화의 손끝으로 옮겨 갔다.어머니가 엮던 오색 매듭은, 엮는 법을 아는 사람이 아니면 다시 묶을 수 없었다."……김 상궁, 이것 다시 묶거라.""예, 마마."김 상궁이 매듭을 쥐고 이리저리 돌려 보았지만, 매듭은 묶이기는커녕 점점 더 풀려 나갔다.서의는 고개를 숙인 채, 매듭 하나에 발을 구르는 정화를 곁눈으로 보았다.아버지가 소실에게서 얻은 딸.5살에 이 집 대문을 넘던 날, 낯을 가려 기둥 뒤에서 울던 아이의 손을 먼저 잡아 준 것이 그녀였다.이제 내가 네 언니야.무서운 거 있으면 언니한테 와.어머니는 그 아이를 친딸처럼 품었다.그 손을 잡아 준 값이, 이것이었다."됐다, 놔두거라!"정화가 김 상궁의 손을 뿌리쳤다."그리고 이 시체는 실족한 것이니 그리 처리하거라. 아침부터 재수 없게.""마마, 이 궁녀는 실족한 것이 아니옵니다."서의가 순덕의 손목을 들어 보였다."양 손목에 결박 자국이 있고, 입안이 찢겨 있사옵니다. 누군가 손을 묶고 억지로 독을 먹인 뒤 물에-"- "닥치거라!"정화가 내던진 부채가 서의의 이마를 맞고 흙바닥에 나뒹굴었다.부챗살 끝이 긁고 간 자리에서 피가 한 줄기 배어 나왔지만, 서의는 닦지 않았다."어전 전속이라니 눈에 뵈는 게 없느냐? 전하께서 우물가 시체 하나 보라 하신 것이지, 궐 안의 시체를 네 마음대로 주무르라 하신 줄 아느냐!""변사한 시신은 검험을 거치지 않고는 묻지 못하는 것이 국법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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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남궁도

"그날 약을, 이라."등 뒤에서 들려온 부드러운 목소리에, 서의는 쪽지를 쥔 채 돌아보았다.언제 왔는지, 짙은 남색 관복 차림의 사내 하나가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40줄에 접어든 듯한 얼굴은 희고 단정했고, 입가에는 온화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허리춤에 매단 열쇠 꾸러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짤랑거렸다.내의원 약재고의 열쇠였다.그가 다가서자 약재 냄새 사이로 희미하게 쇠붙이 냄새가 섞여 났다.녹슨 엽전을 한나절 쥐고 있던 손에서 나는 것 같은, 비릿하고 차가운 냄새였다.소주방 궁녀들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남궁 의관 나리…….""내의원 남궁도일세. 박 의관이 몸이 좋지 않다기에 내가 대신 왔네."남궁도가 서의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까딱했다."자네가 그 이름난 어전 검시 의녀로군. 수챗구멍에서 부자를 건져 혀에 댔다던.""……예, 나리.""대단하이. 내의원 의관들도 그런 배짱은 없지."소리 내어 웃는데도, 남궁도의 눈가 잔주름은 한 줄도 접히지 않았다.그 눈이 서의의 얼굴을 훑어 내려갔다.정화처럼 화상 자국에서 멈추지도, 정 대감처럼 꺼림칙하게 비켜 가지도 않았다.약재를 고르는 손처럼, 흉터 아래의 무언가를 하나하나 집어 보는 눈이었다."듣자 하니 약재고 부자 반 근 일로 전하께서 크게 노하셨다던데."남궁도가 열쇠 꾸러미를 손끝으로 툭 건드렸다.짤랑-"열쇠는 늘 내 허리에 있었는데 말일세. 쥐가 물어 간 게지. 요즘 궐에 쥐가 많으니."어젯밤 문서고에서 아버지도 똑같은 말을 했다.요즘 궐에 쥐새끼가 많다고.서의는 낯빛을 지운 채 고개를 숙였다."그 쪽지, 좀 보세."서의가 머뭇거리는 사이, 남궁도가 그녀의 손바닥에서 쪽지를 집어 갔다.의녀가 의관의 손을 뿌리칠 수는 없었다.손끝이 닿았다가 떨어졌다.차고, 미끄러운 손이었다."흐음. 그날 약을……. 무슨 날, 무슨 약인지도 없구먼."남궁도가 쪽지를 햇빛에 비춰 보다가 혀를 찼다."이런 젖은 종이 쪼가리가 증좌가 될 리 있나."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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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짐이 시체를 좋아해서

대답을 고르는 사이 들것은 회랑을 돌았고, 내의원 시신실 문은 서의의 코앞에서 닫혔다."판정이 끝날 때까지 의녀는 들일 수 없네."남궁도의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부드럽게 흘러나왔다.닫힌 문 앞에 선 채 문살 틈으로 귀를 기울이자, 붓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실족.남궁도가 그 두 글자를 쓰는 데는 한 식경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그러면 손목의 결박 자국도, 찢긴 입안도 모두 물에 빠지며 생긴 상처가 된다.순덕이 마지막까지 할퀴고 버틴 밤이, 붓끝 하나에 물에 빠진 밤으로 바뀌고 있었다."스승님, 이대로 두실 거예요?"연이가 퉁퉁 부은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아니.""그럼 어떻게요?"서의는 입을 열지 못했다.말단 의녀가 내의원 의관의 판정을 막을 길은 없었다.왕의 분부는 '살피라'였고, 남궁도는 그 틈을 정확히 파고들었다."전하 납시오-!"복도 끝에서 복내관의 목소리가 울리자, 시신실 앞을 지키던 하리들이 혼비백산해 엎드렸다."전, 전하께서 어찌 내의원 시신실에……?""여긴 상감마마께서 오실 데가 아니잖아.""엎드려, 어서!"서의도 연이의 뒷머리를 눌러 함께 엎드렸다.용포 자락이 복도를 쓸고 와 시신실 문 앞에 멈추자, 안에서 남궁도가 허둥지둥 문을 열고 나와 엎드렸다."전하, 이 누추한 곳에 어인 행차시옵니까.""지나가던 길이오.""내, 내의원 시신실을 말이옵니까?""짐이 요즘 시체를 좋아하게 되었소."엎드린 이들 사이로 정적이 흘렀다.복내관의 코끝에서 가느다란 한숨이 새어 나왔다."……전하.""왜.""아니옵니다."바닥에 이마를 댄 연이의 어깨가 들썩였다.웃음을 참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었다.이현이 엎드린 서의를 내려다보았다."어전 검시 의녀.""……예, 전하.""소주방 궁녀의 검안서는 어디 있느냐.""내의원에서 판정을 내린다 하여, 아직 올리지 못하였사옵니다.""그러하냐."이현의 시선이 남궁도에게로 옮겨 갔다."짐은 변사를 모두 저 의녀에게 살피라 했소. 그 검안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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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산사의 아이

이현의 손이 움직였다.그녀의 팔을 향해, 망설이듯.흉 진 손등이 그녀의 화상 자국 위로 그늘을 드리웠다.손가락 끝이 살갗에 닿기 한 치 앞에서, 손이 멈췄다.서의는 숨을 쉬지 못했다.시신실 안의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남궁도의 눈만이 왕의 손끝과 그녀의 팔 사이를 느릿하게 오갔다.한 호흡.두 호흡.허공에 머물던 손이 물러나, 용포 소매 안에서 주먹으로 말려 들어갔다."……어디서 다쳤느냐."낮게 갈라진 목소리였다."불이 났었사옵니다.""불.""……예.""아팠겠구나."서의는 소매를 끌어내리며 고개를 숙였다."기억나지 않사옵니다."거짓말이었다.불길이 문고리를 타고 손목을 감아 오르던 순간도, 살이 타는 냄새도, 그녀는 단 하루도 잊은 적이 없었다.연기 속에서 그녀의 등을 뒷문 밖으로 떠밀던, 물일에 터서 갈라진 투박한 여인의 손바닥까지도.한동안 말이 없던 이현이, 이윽고 등을 홱 돌렸다."검안서는 오늘 안으로 올리라. 판정은, 의녀의 검안을 따른다."남궁도가 무언가 말하려 입을 열었지만, 이현은 이미 문지방을 넘고 있었다.복내관이 허둥지둥 그 뒤를 따랐지만, 멀어지는 발소리는 뛰기 직전처럼 빨랐다.***내의원 회랑 모퉁이를 돌아 인적이 끊기자마자, 이현은 기둥을 짚고 멈춰 섰다."전하!"복내관이 놀라 달려와 부축하려 손을 내밀었지만, 이현은 그 손을 보지도 않았다.기둥을 짚은 제 손등만 내려다보는 그의 흉터 위로, 시퍼런 핏줄이 불거져 있었다."……팔꿈치까지였다.""예?""그 불이, 팔꿈치까지 그 사람을 태웠다."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복내관 앞에서, 이현이 눈을 감았다.기둥에 댄 손끝이 나뭇결을 파고들 듯 하얗게 질려 갔다.한참 뒤에야 기둥에서 손을 떼고 든 얼굴은, 다시 왕의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아까 그 견습 의녀. 벌레를 셌다던.""예, 전하.""영특한 아이다. 내일부터 그 아이에게 어선 상의 다과를 한 접시씩 내려 주라. 그 사람 곁에 붙어 있는 아이가, 굶어서야 쓰겠느냐."복내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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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중궁전의 들보

흔들리는 불꽃을 감싼 손 안에서 심지는 금세 곧게 섰지만, 손바닥이 뜨거워질 때까지 서의는 손을 거두지 못했다.그렇다면, 그 아이도.생각은 거기서 멈췄다.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2년 동안 겨우 다져 덮은 봉분을 제 손으로 파헤치게 될 터였다.믿었다가 헛소문이면, 그 아이를 한 번 더 묻어야 한다.'소문이다. 산사에 아이가 하나 있을 뿐이야.'떨어진 젓가락을 주워 등잔 곁에 가지런히 놓는 동안, 연이는 굳은 떡 보자기를 끌어안은 채 그녀의 무릎 곁에서 잠들어 있었다.창호지가 희붐해질 무렵,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견습 의녀 연이가 이 방에 있는가."문을 열자 복내관이 붉은 보자기를 덮은 소반을 받쳐 들고 서 있었다.눈을 비비며 일어나 앉던 연이가 내관 복색을 알아보고는 그대로 굳었다."저, 저요? 제가 무얼 잘못했어요?""잘못한 아이한테 어선 다과를 내리는 법도 있던가."복내관이 걷어 낸 보자기 아래, 꿀을 먹인 약과와 송홧가루 다식, 곶감 말이가 꽃잎처럼 둘러 담겨 있었다."전하께서 내리시는 걸세. 오늘부터 매일."연이가 서의의 소매를 잡아끌며 귓가에 입을 댔다."스승님, 벌레 세던 거 들켜서 이러시는 거죠? 이거 먹으면 죽는 거죠?""어선 상에 오른 것이다. 기미도 거쳤을 게다.""그러니까 더 무섭단 말이에요……."그러면서도 연이의 손은 약과 하나를 집었다 놓았다, 다시 집어 들고 있었다.꿀 냄새 앞에서 겁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복내관이 길게 숨을 내쉬더니, 품에서 손때 묻은 책자를 꺼내 무언가를 적고는 도로 넣었다."어전 검시 의녀는 진시까지 편전으로 들게. 소주방 일로 하루 미룬 입시가 오늘일세."편전에는 이미 사람들이 엎드려 있었다.좌의정 정 대감과 내의원 제조, 그 뒤로 박 의관과 남궁도.서의는 순덕의 검안서를 받쳐 들고 맨 끝자리에 이마를 댔다."약재고의 부자 반 근은, 출납을 맡은 박 의관의 허물이옵니다."정 대감의 목소리에는 거침이 없었다."30년을 내의원에 있으면서 장부 하나 지키지 못하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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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거짓 증인

정화의 어깨가 용포 자락 아래에서 들썩였다.흐느낌은 마당 끝까지 닿을 만큼 알맞게 컸고, 서의를 가리킨 손가락은 내려올 줄 몰랐다.이현의 눈이 엎드린 중전을 지나 시신 곁의 의녀에게서 멈췄다.고개를 숙인 채 옥분의 손을 쥐고 있자니, 지금 이 남자가 무슨 말을 하든 말단 의녀 하나를 두고 중전과 맞서는 말이 될 것이 뻔했다."전하!"숨을 몰아쉬며 마당으로 뛰어든 승지 뒤로, 정 대감이 느긋한 걸음으로 따라 들어왔다."북방에서 급한 장계가 올라왔사옵니다. 비변사 당상들이 모두 편전에 모여 전하를 기다리고 있사옵니다.""좌상도 비변사 당상 아니오?""신은 중궁전의 변고를 수습하고 곧 뒤따르겠사옵니다. 국경의 일이 급하니, 전하께서 먼저 드시옵소서."정 대감을 내려다보는 이현의 입만, 마당의 모든 눈이 지켜보고 있었다.국경의 장계를 두고 말단 의녀 곁에 남는다면, 그 까닭을 궁금해하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검안이 끝나기 전에는 시신에 손대지 말라."그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서기 전, 이현의 눈길이 복내관의 얼굴에 짧게 머물다 갔다.용포 자락이 문밖으로 사라지자마자 정화의 흐느낌이 뚝 그쳤다.소매로 눈가를 꼭꼭 누르며 일어선 얼굴은 분칠 하나 번지지 않은 채였다."아버님.""그래, 들었다."정 대감이 마당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이 나인을 마지막으로 본 자가 있느냐."나인들이 서로 눈치만 살피는 사이, 김 상궁이 뒤에 선 어린 나인 하나의 등을 떠밀자, 나인이 앞으로 고꾸라지듯 엎드렸다."소, 소인이 보았사옵니다. 간밤 해시 무렵에 저 의녀가 옥분이 방 앞을 서성이는 것을…….""거짓말이에요!"어느새 쫓아왔는지, 연이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뛰쳐나왔다."스승님은 어젯밤 내내 저랑 계셨어요! 처소에서 한 발짝도 안 나가셨어요!""어머, 견습 주제에 어디서 입을 여느냐."정화가 연이를 흘겨보며 웃었다."제 스승 감싸는 말을 누가 믿겠니. 그렇지?"증언한 나인은 이마를 땅에 박은 채 끝내 고개를 들지 못했다.치맛자락을 움켜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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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의금부 도사

정 대감의 눈썹이 한 번 올라갔다가 내려앉았다.의금부가 제 발로 와서 데려가겠다는데, 마다할 까닭이 없었다."그래, 데려가거라. 단단히 신문하고.""예, 대감. 아, 그리고."허진이 고개만 돌려 뒤에 선 나졸들에게 손짓했다."시신도 모셔라. 의금부 사건의 증좌니까."나졸들이 들것을 펴고 옥분을 조심스레 옮겨 싣는 동안, 정 대감의 입가가 굳어 갔다.의금부로 넘기라 명한 것은 그 자신이었으니, 시신만 두고 가라 할 명분이 없었다.정화가 부채를 펼쳐 입가를 가렸다."어머, 시체까지? 의금부는 일도 꼼꼼하구나.""꼼꼼한 것이 의금부가 녹을 받는 값이옵니다, 마마."싱긋 웃으며 허리를 숙인 허진이, 서의의 팔을 붙든 채 마당을 나섰다.팔을 감싼 그 손에는 힘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문서고에서 그녀의 팔을 뒤로 꺾던 하리들의 손과는 달리, 뿌리치면 언제든 놓아줄 것 같은 손이었다.의금부 직방은 대궐 서쪽 궐담 밑에 붙어 있었다.궐 안에서 일어난 죄를 먼저 붙드는 당직청이었다.직방 마당에 들어설 때까지, 허진은 서의를 결박하지 않았다.곁방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에서 나졸 하나가 머뭇거리자, 그는 반대쪽을 가리켰다."뒤 곳간으로.""도사 나리, 신문은…….""시신부터 보고. 산 사람은 기다릴 수 있어도, 죽은 사람은 하루가 다르게 말을 잃거든."직방 뒤편, 볕 한 줌 들지 않고 축축한 흙내가 밴 곳간 하나가 검시실로 쓰이고 있었다.돌벽에서 찬 기운이 배어 나왔고, 들기름 등잔 옆에 식초 단지와 은비녀, 검험 때 쓰는 자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나졸들이 옥분을 평상에 내려놓고 물러가자, 허진은 문을 닫고 벽에 등을 기댔다."앉으시오. 아니, 의녀는 앉으라 해도 시신 곁에 먼저 가겠구려.""……어찌 소인을 데려오셨사옵니까.""의금부도 이 일을 쫓고 있었으니."허진이 소매에서 꺼낸 접힌 종이 몇 장은, 복례와 순덕의 검안서를 옮겨 적은 사본이었다.그녀의 글씨를 베낀 서리의 글씨가 서툴게 줄지어 있었다."세답방 복례, 소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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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사발

"……도사께서 밤을 새우실 일이 없기를 바라옵니다."서의는 옥분의 손을 평상 위에 가지런히 내려놓았다."이 궐에서 소인이 밤을 새운다는 것은, 누군가 또 죽었다는 뜻이옵니다."웃음이 걷힌 얼굴로, 허진이 문설주에서 손을 떼고 옥분의 발치에 대고 짧게 고개를 숙였다.대답할 틈은 오지 않았다.마당에서 나졸의 다급한 목소리가 곳간 문턱을 넘어왔다."도사 나리! 전하께서 직방에 납시었사옵니다!"직방 마당에는 해가 기울고 있었다.비변사를 파하자마자 달려온 듯, 이현의 용포 자락에는 아직 편전의 먹 냄새가 배어 있었다.그 앞에 김 상궁과 거짓 증언을 했던 어린 나인이 끌려와 엎드렸고, 정 대감과 정화가 그 곁에 섰다."이 나인의 죽음을 판정하라."허진이 비켜서며 내어 준 앞자리에서, 서의는 엎드린 채 입을 열었다."옥분의 목에는 줄이 2개이옵니다. 들보에 걸렸던 굵은 끈 자국은 귀 뒤로 비스듬히 올라가는데, 그 줄에는 멍이 없사옵니다. 그 아래 목을 수평으로 감은 가는 줄에만 멍이 들었사옵니다.""그 뜻은.""숨이 붙어 있을 때 졸린 자리에만 피가 몰리옵니다. 옥분은 가는 끈에 먼저 졸려 죽었고, 들보에 매달린 것은 숨이 끊긴 뒤이옵니다. 넘어진 걸상은 무릎 높이라, 옥분의 키로는 딛고 서도 끈을 들보에 걸 수 없사옵니다."뜰에 웅성거림이 번졌다."교살이래.""자결이 아니라고?""그럼 그 나인은 누가…….""가는 줄 언저리에는 끈을 뜯으려고 제 손톱으로 할퀸 생채기가 엇갈리고, 양 손목 안쪽에는 엄지 자국 멍이 나란히 박혀 있사옵니다. 앞에서 한 사람이 손목을 틀어쥐고, 뒤에서 다른 한 사람이 졸랐사옵니다. 입술이 부르튼 것은 부자이옵니다. 먼저 독을 먹여 힘을 뺀 것이옵니다."서의가 고개를 들어 김 상궁을 보았다."김 상궁마마님. 그 손등의 천을 풀어 주시겠사옵니까."김 상궁의 오른손이 소매 깊숙이 숨어들었다."약탕관에 덴 것이옵니다. 손등이나 팔을 할퀸 자를 가려 올릴 적에 중궁전에서 이미 그리 아뢰었사옵니다.""복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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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꼬리

김 상궁의 몸이 뒤로 꺾였다.붙들고 있던 나졸들이 엉겁결에 손을 놓았고, 쪽빛 치마가 직방 문턱 위로 무너졌다."몸을 낮추시옵소서, 전하!"허진이 왕의 앞을 몸으로 가로막는 사이, 나졸들이 칼을 뽑아 들고 담 쪽으로 몰려갔다."담 너머다! 지붕을 살펴라!""저쪽 전각 뒤로 달아났다!""놓치지 마라!"서의는 엎드리지 않았다.치맛자락을 걷어쥐고 문턱으로 달려가, 김 상궁의 머리를 무릎에 받쳤다.화살촉은 입천장을 꿰뚫어 깊이 박혔고, 깃이 달린 화살대만 입 밖으로 비어져 나와 있었다.입가로 피거품이 한 번 부풀었다가 꺼졌다.목에 손가락을 대 보았지만, 맥은 짚이지 않았다.초점을 잃은 눈동자가 하늘을 향해 열려 있었다.중전마마께서, 그다음 말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등 뒤, 정화의 부채 아래에서 아주 작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나졸들은 해가 다 지도록 직방 담 너머 전각들을 뒤졌지만, 활을 쏜 자의 그림자도 찾지 못했다.직방 문을 마주 내려다보는 빈 행각 지붕 위에서, 기왓장 한 장이 깨져 있었을 뿐이었다.서의는 문턱에 앉은 채 그 지붕을 올려다보았다.직방 마당에서 끌려 나가려면 반드시 이 문을 지나야 했다.그 문이 내려다보이는 지붕에 미리 올라가 시위를 당기고 있었다면, 김 상궁이 오늘 해 질 녘 이 문간에 서리라는 것을 누군가 알고 있었다는 뜻이었다.김 상궁이 직방 마당에 불려 온 것은 고작 반 시진 전이었다.그 짧은 사이에 활 쏘는 자를 저 지붕에 올려 보낼 수 있는 손은, 이 궐에 많지 않았다."한 발에 입을 꿰었소. 그것도 담 너머에서. 보통 솜씨가 아니오."서의 곁에 쪼그려 앉은 허진의 얼굴에서, 웃음기는 사라지고 없었다.서의는 비어져 나온 화살대를 쥐고, 입천장을 더 찢지 않도록 비틀어 가며 조심스레 뽑아냈다.피 묻은 화살을 등불 아래로 가져가자, 이현이 그 곁으로 다가와 섰다.화살촉은 날이 3갈래로 선 쇠촉이었고, 화살대는 대나무였다.깃은 꿩 깃 3장을 실로 감아 붙였는데, 그 실이 이상했다."전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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