تسجيل الدخول띠링―.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길고 적막한 복도가 나타났다. 최진태는 비틀거리는 이주연의 팔을 붙든 채 복도 끝으로 걸어갔다. 주연은 몇 번이나 멈춰 서려 했지만, 술기운이 오른 몸에는 좀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저… 집에 가야 해요.” “알았어. 잠깐 쉬었다가 보내줄게.” “싫어요. 친구한테 돌아갈 거예요.” 주연은 분명하게 거절했지만, 진태는 듣지 못한 사람처럼 계속 걸었다. 복도 끝에 도착한 그가 카드키를 가져다 대자 짧은 전자음이 울렸다. 삑―. 문이 열리는 순간, 주연은 남은 힘을 모아 그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 쿵, 육중한 문이 닫히자 복도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던 클럽 음악마저 완전히 끊겼다. 방 안은 숨 막힐 만큼 고요했다. 낮게 깔린 조명 아래로 고급스러운 가죽 소파와 유리 테이블, 술병이 가득한 장식장이 보였다. 그러나 주연의 눈에는 그 모든 것이 흐릿하게 흔들렸다. 진태는 그녀를 소파에 앉혔다. 주연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살폈다. 머릿속은 여전히 어지러웠지만, 한 가지 사실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눈앞의 남자는 위험하다. “물… 물 좀 주세요.”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진태는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그러나 물을 건네는 대신 주연의 바로 옆에 앉았다.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였다. 그는 소파 등받이에 팔을 올려 주연의 퇴로를 막았다. 주연은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물렸다. “물보다는 이게 낫지 않을까." 진태는 테이블 위에 놓인 위스키병을 들어 보였다. 주연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발을 디디는 순간 바닥이 기울어지는 듯한 어지러움이 몰려왔다. 그녀는 간신히 소파 끝을 붙잡아 넘어지지 않았다. 진태가 낮게 웃었다. “이 상태로 어떻게 집에 가겠다는 거야?” “친구들이 기다려요.” 주연은 흔들리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 믿음만큼은 확고했다. 진태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전에 조금 쉬면 되잖아.” 그가 손을 뻗어 주연의 얼굴 가까이 다가오자 그녀는 즉시 고개를 피했다. “다가오지 마세요." 그러나 진태는 멈추지 않았다. “날 그렇게까지 싫어할 이유가 있나?” 주연은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싫어요.” 짧은 정적이 흘렀다. 진태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는 주연의 거절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의 자존심이 상했다는 듯 얼굴을 굳혔다. “사람을 너무 무시하는군.” 그가 주연의 팔을 붙잡았다. 주연은 화들짝 놀라며 몸을 뒤로 뺐다. “놓으세요!” “잠깐 이야기만 하자는 거야.” “놔 주세요” 주연은 그의 손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힘의 차이는 컸다. 술기운까지 겹쳐 팔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두려움이 목을 조여 왔다. 하지만 주연은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진태는 그녀를 바라보며 낮게 비웃었다. “이렇게까지 튕길 필요는 없잖아.” 주연은 다시 한번 온몸을 비틀었다. “도와주세요!” 그러나 두꺼운 벽과 문이 목소리를 삼켰다. 진태는 주연의 팔을 더욱 단단히 붙잡았다. “소리쳐도 아무도 못 들어.” 그 말에 주연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살아남아야 한다.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주연은 흐릿한 시야를 억지로 집중하며 주변을 살폈다. 유리 테이블. 술병. “주연아.” 진태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다시 가까이 다가왔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주연은 남아 있던 힘을 모두 끌어모아 한 손으로 탁자 위의 크리스털 장식품을 움켜쥐었다. 차갑고 묵직한 감촉이 손바닥에 닿았다. “놓으라고 했잖아!” 주연은 눈을 질끈 감은 채 팔을 힘껏 휘둘렀다. 퍽! 둔탁한 충격음이 방 안에 울렸다. "윽!" 최진태는 이마를 감싸며 뒤로 비틀거렸다. 균형을 잃은 그는 유리 테이블 모서리에 부딪힌 뒤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이마를 타고 붉은 피가 천천히 흘러내렸다. 그는 일어나려 했지만 충격 때문인지 다시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그의 손에서 벗어난 주연은 소파 끝으로 기어가듯 몸을 옮겼다. 진태는 충격을 받은 듯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무릎을 짚었다. 손에 들려 있던 크리스털 장식품이 카펫 위로 떨어졌다. 툭. 방 안에 다시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주연은 자신이 벌인 일을 믿지 못한 채 떨리는 손을 내려다봤다. “어….” 진태는 바닥을 짚고 있었지만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이마 부근에 상처에서는 피가 흘려 나오고 있었다. “어떡해….” 그를 해치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벗어나고 싶었다. 살기 위해 휘두른 것뿐이었다. 그러나 술기운과 충격, 극심한 공포가 한꺼번에 몰려오자 주연은 더 이상 몸을 지탱할 수 없었다. 그녀는 소파 아래로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손끝은 차갑게 식었고, 온몸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 “지혜야….” 간신히 친구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이었다. 쾅! 굳게 닫혀 있던 방문이 거칠게 열렸다. “주연아!” 익숙한 목소리가 방 안을 가르며 울렸다. 김지혜가 호텔 직원과 함께 뛰어 들어왔다. 방 안의 광경을 본 두 사람의 얼굴이 동시에 굳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진태. 소파 옆에 주저앉아 몸을 떨고 있는 주연.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크리스털 장식품. “주연아!” 지혜는 곧장 친구에게 달려갔다. “괜찮아? 다친 데 없어? 나 좀 봐봐.” 주연은 지혜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간신히 붙들고 있던 긴장을 놓아버렸다. “지혜야….” 그녀는 친구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지혜는 떨고 있는 주연을 품에 단단히 끌어안았다. “괜찮아. 내가 왔어.” “이제 괜찮아. 절대 혼자 두지 않을게.” 그 말을 듣자 주연은 지혜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렸다. 함께 들어온 직원은 잠시 얼어붙어 있다가 황급히 휴대전화를 꺼냈다. 주연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바닥에 쓰러진 최진태를 바라봤다. 그 순간까지도 그녀는 알지 못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휘두른 단 한 번의 반격이, 곧 세상에 전혀 다른 이야기로 퍼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날 밤의 진실이 감춰진 채, 그녀가 하루아침에 재벌가의 사고뭉치 딸로 낙인찍히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복도 끝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스물세 번째 생일 그날 밤, 이주연은 아직 알지 못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휘두른 단 한 번의 반격이,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꿀 거대한 폭풍의 시작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깊은 밤.주연의 아파트 거실은 불이 꺼진 채 고요했다.하지만 지혜의 방에서는 좀처럼 잠이 찾아오지 않았다.침대에 누운 지혜는 벌써 몇 번째 몸을 뒤척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눈을 감으면 낮의 일이 떠올랐다.차 안에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던 민성.그리고 목적지를 알아차린 순간 느꼈던 당혹감과 분노.무엇보다도 그가 자신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사실이 가장 아팠다.이불속에서 지혜는 복잡하게 얽히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스스로를 원망했다.그동안 민성과 보낸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주연과 함께 넷이서 만났던 시간들 외에도, 민성은 불쑥불쑥 보육원 앞이나 센터로 찾아와 짓궂은 농담을 건네곤 했다. 겉으로는 늘 건들거리고 진지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바람둥이처럼 보였지만, 지혜의 눈에는 그 거친 태도 밑에 깊이 묻어 있는 외로움이 훤히 보였다.재혁이 가진 단단하고 반듯한 품격과는 또 다른, 세상의 모진풍파를 맨몸으로 맞으며 깎여나간 다듬어지지 않은 보석 같은 위태로움.이상하게도 민성을 볼 때마다 지혜의 마음속 깊은 곳에 꽁꽁 숨겨두었던 어떤 감정들이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평생을 보육원 이라는 울타리와 세상의 차가운 시선 속에서 꾹꾹 눌러 담아야 했던 욕망과 외로움이, 그의 삐딱한 눈빛 앞에서 유독 속수무책으로 흔들리곤 했다.‘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식으로 다가올 줄이야.’슬픔을 넘어 가슴이 저릿해질 정도로 아팠다. 자신을 진정으로 아끼고 존중해 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한 하룻밤의 유흥 상대로 여겼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상처로 남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그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누워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지혜의 가슴 한구석은 덜컥 내려앉았고, 당장이라도
늦은 밤.병실의 조명은 대부분 꺼져 있었다.복도에서 흘러들어오는 희미한 불빛만이 어둑한 병실 한쪽을 비추고 있었다.재혁은 민성이 몇 번이나 괜찮다고 말하고 나서야 병원을 떠났다."내일 다시 올 테니까 얌전히 있어."마지막까지 잔소리를 남기고 병실을 나서는 재혁에게 민성은 귀찮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하지만 문이 닫히는 순간,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민성은 천장을 바라보았다.고정된 팔은 조금만 움직여도 욱신거렸고, 머리는 여전히 무겁고 아팠다.그런데 이상했다.정작 견디기 힘든 것은 몸의 통증이 아니었다.눈을 감기만 하면 떠오르는 한 사람.김지혜.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빛이었다.분노와 실망이 뒤섞여 있던 그 눈.민성은 멀쩡한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미친놈."잠시 후 더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진짜 바보 같은 짓을 했어."기억은 몇 시간 전으로 돌아갔다.행복나무 보육원에서 나오기 전이었다.민성은 주연과 재혁이 함께 있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지혜에게 말했다."지혜 씨.""저랑 먼저 가시죠."지혜가 의아하게 바라보았다."벌써요?"민성은 능청스럽게 재혁과 주연 쪽을 턱짓했다."저 두 사람.""오늘은 좀 내버려 둡시다."지혜가 그의 시선을 따라가더니 피식 웃었다."민성 씨도 눈치는 있네요?""제가 원래 눈치 하나는 빠릅니다."그렇게 두 사람은 먼저 보육원을 나왔다.처음에는 정말 아무 생각도 없었다.바로 서울로 돌아가기 아쉬워 근교를 조금 달렸고, 조용한 카페를 발견해 차를 세웠다.통유리 너머로 겨울 끝자락의 풍경이 펼쳐져 있는 카페였다.두 사람은 커피와 디저
병원 응급실의 자동문이 열렸다.재혁은 숨을 고를 틈도 없이 안으로 들어섰다.평소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흐트러지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접수대로 곧장 다가간 그가 다급하게 물었다."조금 전에 교통사고로 들어온 김민성 환자 어디 있습니까?"간호사가 모니터를 확인했다."김민성 환자분 보호자세요?"재혁은 잠시 멈칫했다.가족은 아니었다.하지만 민성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연락을 받을 사람은 자신이었다."...가족이나 다름없는 친구입니다.""병원에서도 제게 연락을 주셨고요."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응급 처치는 끝났고 지금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간호사를 따라가는 재혁의 발걸음이 빨라졌다.커튼으로 나뉜 응급실 침대들이 차례로 지나갔다.그리고 마침내,침대에 누워 있는 민성이 보였다."...민성아."민성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팔에는 고정 장치가 되어 있었고 머리에는 치료받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그 모습을 확인한 순간 재혁의 얼굴이 굳어졌다."야."민성이 힘없이 웃었다."왔냐?"재혁은 대답하지 않았다.친구의 모습을 위아래로 살펴본 뒤에야 굳어 있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사람 놀라게 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전화 받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민성이 피식 웃었다."안 죽었잖아."재혁의 눈빛이 차가워졌다."지금 농담이 나오냐?"그때 담당 의료진이 다가왔다.재혁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상태가 어떻습니까?""팔에 골절이 있고 머리 쪽도 치료가 필요한 상처가 있습니다. 다행히 현재 검사상 크게 걱정되는 소견은 없지만 가벼운 뇌진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섰을 때, 서울의 밤공기는 이미 차갑게 내려앉아 있었다.극장 앞은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고, 연인들은 서로의 손을 잡은 채 웃으며 지나가고 있었다.주연은 아직도 재혁의 손끝에 남아 있던 따뜻한 온기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조금 전 영화관에서 처음으로 그의 손을 잡았던 순간.재혁은 놀랐지만 끝내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그 짧은 시간이 주연에게는 오래도록 기억될 행복이었다."배고프시죠?"주연이 밝게 웃으며 물었다.재혁도 미소를 지었다."영화를 보니까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갔네요.""근처에 괜찮은 한식집이 있는데...""같이 가실래요?""좋습니다."두 사람은 조용한 골목 안쪽에 자리한 작은 한식당으로 들어갔다.은은한 조명이 비추는 실내에는 잔잔한 국악 선율이 흐르고 있었고, 창가 자리에 앉은 두 사람 앞에는 따뜻한 차가 먼저 놓였다.잠시 후 정갈한 한정식이 차려졌다.주연은 한동안 말없이 음식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오늘...""아이들이 정말 행복해 보였어요."재혁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민우가 웃는 모습을 보니까 저도 기분이 좋더군요."주연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그건...""재혁 씨 덕분이에요."재혁은 작게 웃었다."저 혼자 한 일이 아닙니다.""주연 씨와 지혜 씨가 더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보내고 계시잖아요."주연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건물을 새로 고쳐 주시고.""책도 사 주시고.""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 주시고.""재혁 씨가 오신 뒤부터...""행복나무가 정말 많이 달라졌어요."잠시 말을 멈춘 그
지혜가 민성과 함께 약속이 있다며 먼저 보육원의 문을 나서자, 남겨진 재혁과 주연은 아이들과 조금 더 시간을 보낸 뒤 오후 늦은 시각에야 비로소 보육원을 나섰다.겨울의 끝자락에 부는 차가운 공기가 두 사람의 뺨을 스쳤다. 주차장으로 걸어가던 중, 주연은 문득 며칠 전 재혁이 지나치듯 던졌던 말이 떠올랐다.‘일하느라 극장에서 영화 한 편 제대로 본 적이 없네요.’주연은 걸음을 멈추고 문득 고개를 돌려 재혁을 바라보았다."재혁 씨." "네~?" "오늘 영화 보러 가요."재혁은 잠시 당황한 듯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는 이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농담을 던졌다....영화관이요?""네.""영화관이 어떻게 생겼을까요!...""기억도 안 납니다."주연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설마.""정말요?"재혁은 어깨를 으쓱했다."회사 시작하고 나서는.""극장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잊어버렸습니다."주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그럼...""오늘 제가 알려 드릴게요.""극장이 어떤 곳인지."재혁도 따라 웃었다."좋습니다.""오늘은 선생님 말씀 잘 듣겠습니다."두 사람은 함께 차에 올랐다.종로.오래된 대형 영화관.주말이라 그런지 극장 로비는 사람들로 가득했다.팝콘을 들고 있는 연인.사진을 찍는 커플.팔짱을 끼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사람들.그 사이를 함께 걷는 재혁과 주연도 누가 보아도 연인처럼 보였다.주연은 매표소 앞에서 환하게 웃었다."오늘 영화는...""'왕의 그림자'래요.""조선 왕실을 배경으로 한 사극인데.""요즘 정말 인기 많대요."재혁은 티켓을 받아 들며 말했
행복나무 보육원.따뜻한 봄기운이 조금씩 겨울을 밀어내고 있었다.창문을 활짝 열어 놓은 보육원 안으로 부드러운 바람이 스며들었다.주연과 지혜는 김미숙 원장을 도와 사무실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낡은 서류철을 새 파일에 옮겨 담고, 후원 물품 목록을 다시 정리하는 일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다."지혜야.""이건 2월 후원 내역 맞지?""응. 그건 새 파일에 넣으면 돼."두 사람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일을 이어 갔다.잠시 후에는 아이들 방으로 올라가 이불을 개고 책장을 정리했다.주연은 바닥에 흩어져 있던 장난감을 하나씩 제자리에 올려놓으며 미소를 지었다."이 방도 많이 달라졌네.""공사하기 전보다 훨씬 밝아졌어."지혜도 창가의 커튼을 정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아이들도 요즘 표정이 훨씬 좋아."두 사람의 얼굴에는 자연스러운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김미숙 원장은 조용히 웃었다.'참 예쁜 아이들이다.'그 시각.보육원 운동장에서는 아이들의 환호성이 끊이지 않았다."재혁 아저씨!""패스!"재혁은 편안한 니트와 운동화를 신고 아이들과 함께 공을 몰고 있었다.회사에서의 냉철한 대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아이들과 함께 뛰고, 넘어지고, 크게 웃는 그의 얼굴에는 순수한 즐거움만 가득했다.그때였다.빨간 스포츠카 한 대가 운동장 앞에 멈춰 섰다.차에서 내린 사람은 민성이었다.오늘의 그는 평소와 달랐다.몸에 꼭 맞는 정장 대신 활동하기 편한 캐주얼 셔츠와 면바지, 흰 운동화를 신은 모습이었다.재혁은 멀리서 손을 흔들었다."왔냐!"민성이 웃으며 다가왔다."늦었지?"재혁은 공을 발끝으로 툭 건드리며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