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놀이기구에서 내린 세 여자는 다리가 풀려 비틀거리면서도 끝까지 내 곁을 사수하기 위해 기싸움을 멈추지 않았다."어우, 속 쓰려... 태수야, 우리 저기 벤치에서 좀 쉬자."미혜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벤치 쪽으로 나를 이끌었다.그때 하루가 테마파크의 안내 지도를 펼쳐 들며 눈을 반짝였다."오빠, 저기 귀신의 집 있어요! 요즘 저게 이 놀이공원에서 제일 인기 많대요. 시원하게 땀 식히러 저기 들어가요."귀신의 집.여자들이 무서워하며 남자 품에 안기기 딱 좋은, 로맨스 텐션의 고전 중의 고전 코스.미혜의 눈동자에도 순간적으로 불이 번쩍 튀었다."그래, 귀신의 집 좋네! 우리 태수가 이 누나 든든하게 지켜주겠지?""저도 오빠만 믿고 따라갈게요."나는 귀찮은 듯 뒷목을 긁적이며 두 여자의 등쌀에 떠밀려 시커먼 박쥐 문양이 그려진 흉가 컨셉의 어트랙션 입구로 들어섰다.그리고 이 선택이 오늘 하루 중 가장 기막힌 대환장 촌극의 도화선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끼이이익- 쿵!귀신의 집 내부는 냉방이 과하게 틀어져 있어 으스스한 한기가 감돌았다.핏빛 조명과 기괴한 신음 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며 공포 분위기를 꽤나 그럴싸하게 조성하고 있었다."꺄아아악!"코너를 돌자마자 천장에서 피투성이 마네킹이 뚝 떨어지자 미혜와 하루가 비명을 지르며 내 허리를 양쪽에서 꽉 끌어안았다.나는 두 여자의 무게를 고스란히 버텨내며 무표정하게 앞으로 전진했다."놀라지 마세요. 저거 다 플라스틱 쪼가리에 빨간 물감 칠해놓은 겁니다."그렇게 어두운 복도를 절반쯤 통과했을 무렵.갑자기 벽면의 비밀문이 덜컹 열리며 좀비 분장을 리얼하게 한 아르바이트생 두 명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크롸롸롸롸-!!!!""꺄아아아아-!!!!"미혜와 하루가 내 등 뒤로 완전히 숨어버린 순간.지금까지 묵묵히 우리 뒤를 따라오던 소피아 아르젠토가 갑자기 눈을 번뜩이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이런 불경한 악귀 놈들! 감히 구원자님의 성스러운 행차를 가로막다니!"
"한국 정부에 특별 거처를 요청해서 오늘부터 이 하숙집 근처에 방을 잡았습니다. 오늘 하루는 저와 함께 부산의 성당들을 순례하며 성스러운 기도의 시간을...""아휴, 진짜 하나도 아니고 셋이나 들러붙어서 뭐 하는 짓이야."미혜가 기가 막히다는 듯 이마를 짚었고, 하루 역시 입술을 삐죽거리며 소피아를 경계하는 눈빛을 쏘아 보냈다."저기요. 성녀면 성녀답게 성당에 가서 기도를 하세요. 왜 남의 집 거실에 쳐들어와서 질척거리는 건데요.""맞아요. 태수 오빠는 오늘 저랑 소풍 가기로 선약이 되어 있다고요.""이 무슨 불경한 소리입니까! 구원자님은 온 인류의 빛이자 저의 유일한 성소입니다! 감히 당신들 같은 세속적인 여자들이 독차지할 분이 아니란 말입니다!"세 여자가 나를 중앙에 두고 맹렬하게 으르렁거리며 캣파이트를 벌이기 시작했다.나는 양팔과 허리를 결박당한 채 거실 천장을 올려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조용하게 평상에 누워 만화책이나 보려던 나의 완벽한 휴일 계획은 이미 산산조각이 나버린 지 오래였다."아, 시끄러워. 진짜 귀청 떨어지겠네. 그냥 다 같이 가. 다 같이 가면 되잖아."결국 내가 백기를 들고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이 끔찍한 아침의 눈치싸움은 어설픈 휴전 협정으로 마무리되었다.[2026년 7월 초. 오후. 대한민국 부산, 해운대 인근 대형 테마파크]뜨거운 태양이 아스팔트를 녹일 듯이 이글거리는 주말의 놀이공원.곳곳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경쾌한 퍼레이드 음악 소리가 테마파크의 열기를 한층 고조시키고 있었다.나는 챙이 넓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낀 채 한 손에는 츄러스를, 다른 한 손에는 얼음이 가득 든 콜라를 들고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내 양옆으로는 미혜와 하루가 서로의 눈치를 보며 바짝 붙어 걸었고, 등 뒤에서는 소피아가 혹시 모를 악의 무리(?)로부터 나를 보호하겠다며 십자가를 쥐고 주위를 맹렬하게 두리번거리고 있었다."우와. 태수야. 저거 롤러코스터 진짜 재밌겠다. 우리 저거부터 타러 가자."
[2026년 7월 초. 주말 아침. 대한민국 부산 남포동, 하숙집 거실]기지에 비상이 걸렸다며 빽빽거려야 할 부대의 호출 경보가 울리지 않았다. 그 누구의 방해도 없는, 말 그대로 기적 같은 아침.나는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내 방 침대 위에서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쩍 해댔다.며칠 전 아크 부대 지하 랩실에서 신수지 소장과 윤철수가 주도하는 전용기 개조 프로젝트, '황좌'가 본격적으로 닻을 올렸다.황제의 마석을 깎아 중력핵을 만들고 기체의 프레임을 뼈대부터 완전히 갈아엎는 그 미친 오버테크놀로지 작업에 두 천재 메카닉은 말 그대로 영혼을 갈아 넣고 있었다.작업의 보안과 완벽한 집중을 위해 랩실의 출입문은 두꺼운 티타늄 셔터로 완전히 봉쇄되어 버렸다.파일럿인 나조차도 근처에 얼씬거리지 말라는 수지의 엄명이 떨어졌으니, 나는 강제로 기약 없는 꿀 같은 장기 휴가를 얻게 된 셈이었다."아유, 좋아라. 이게 사람 사는 인생이지."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반바지에 편한 티셔츠 차림으로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섰다.모처럼 평상에서 늘어지게 낮잠이나 자고 만화책이나 빌려다 볼 생각에 입꼬리가 실룩거렸다.하지만 거실의 공기는 내가 기대했던 그 나른하고 평화로운 휴일의 텐션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어머, 태수야. 일어났어? 오늘 부대 안 간다면서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주미혜가 긴 머리를 우아하게 넘기며 나를 향해 화사한 미소를 던졌다.평소 별다방에서 입던 편안한 앞치마 차림이 아니라, 몸매가 드러나는 하늘하늘한 쉬폰 원피스에 립스틱까지 완벽하게 세팅한 완벽한 외출 복장이었다."미혜 누나? 아침부터 웬 풀메이크업입니까. 어디 선 보러 가요?""선은 무슨. 우리 태수가 모처럼 백수 신세가 됐는데 이 누나가 밥도 사주고 바람도 쐬게 해줘야지."미혜가 자리에서 일어나 자연스럽게 내 팔짱을 끼며 특유의 능글맞고 과감한 스킨십을 시도했다.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은온한 향수 냄새가 훅 끼쳐오는 찰나."태수 오빠
심연의 몬스터들과 은밀히 결탁하여 부산 방벽을 해제하려 했던 화이트 타이거 길드의 이사 최무진과 그 더러운 배후에 동조하여 국가의 안보를 팔아먹었던 해운대 길드의 만행이 만천하에 까발려진 것이다.반역죄와 여적죄.사실상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피할 수 없는 무거운 죄목이었다.국내 1위와 2위를 다투던 두 거대 길드는 하루아침에 공중분해 되었고 그 막대한 자산과 권력은 고스란히 아크 부대 산하로 강제 편입되는 절차를 밟고 있었다.그리고 그 뉴스 화면 속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윤대호 회장, 철수의 아버지는..."......"랩실의 기계음만이 공허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철수의 타이핑 속도가 점차 느려지더니 이내 완전히 멈추고 말았다.철수는 모니터의 불빛에 반사된 자신의 창백한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그의 눈빛에는 설명하기 힘든 복잡하고 씁쓸한 감정이 짙게 깔려 있었다.F급 각성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친자식을 가문의 수치라 여기며 버리다시피 했던 매정한 부모.부모의 그늘을 벗어나 자신의 힘으로 당당히 일어서겠다며 부모를 증오하고 독기를 품었던 철수였다.하지만 막상 그토록 밉고 원망스러웠던 거대한 산 같던 아버지가, 반역자라는 비참한 꼬리표를 달고 수갑을 찬 채 세상의 지탄을 받는 늙고 초라한 노인네로 전락한 모습을 보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었을 터다.통쾌함이나 사이다 같은 가벼운 감정으로 갈무리될 수 없는 핏줄의 기막힌 족쇄.탁-!나는 비닐봉지 안에서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힌 차가운 레쓰비 캔커피 하나를 꺼냈다.그리고 아무런 예고도 없이 철수의 창백한 오른쪽 뺨을 향해 그 차가운 캔을 가볍게 툭 던져 맞혔다."아얏! 야! 하태수 미친놈아, 차갑잖아!"철수가 화들짝 놀라며 뺨을 문지르고는 바닥에 떨어진 캔커피를 주워 들고 나를 쏘아보았다.나는 책상 모서리에 삐딱하게 걸터앉아 음소거 된 뉴스 화면을 턱짓으로 가리켰다."뭐 하냐. 비련의 남주인공처럼 아련하게 옛날 생각이라도 나냐."내 툭 내뱉는 무심한 말에 철수는 입술
"이 황제의 마석 파편을 극한으로 세공해서 차원 도약 엔진의 자리에 '중력핵(Gravity Core)'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으로 이식하는 거죠.""중력핵이요? 그거 달면 기체가 뚱뚱해져서 날지도 못하는 거 아닙니까.""아유, 무식한 소리 좀 하지 마요! 이건 질량을 늘리는 게 아니라 공간의 왜곡을 조율하는 궁극의 모터란 말입니다!"수지가 허공에 홀로그램 시뮬레이션을 띄우며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플렉소 일렉트릭 시스템은 빙정이 에너지를 가두고 뇌전이 폭발적으로 에너지를 뿜어내는 방식이죠.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 엄청난 위력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낭비가 심했어요."시뮬레이션 속 흑기사의 등 뒤에 장착된 붉은 중력핵이 맹렬하게 회전하는 모습이 연출되었다."하지만 이 중력핵이 가동하는 '블랙홀 모드(Singularity Engine)'가 켜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기체 주변의 공간을 강제로 왜곡해서, 빙정과 뇌전의 에너지가 밖으로 단 1퍼센트도 분산되지 않게 꽉 붙잡아버리는 거예요.""에너지를 한 점으로 압축한다 이 말입니까.""정답! 공간을 잠가버리는 겁니다. 적이 도망치려 해도 중력장이 블랙홀처럼 적을 끌어당겨 꼼짝 못 하게 만들어버리는 광역 군중 제어(CC) 기믹이 완성되는 거죠."수지의 설명에 내 머릿속에서 아주 기가 막히고도 폭력적인 전투의 청사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수지는 내친김에 신살창 브류나크가 투영된 도면을 띄우며 한껏 목소리를 높였다."가장 미친 건 무기에 부여되는 파괴력이에요. 창끝에 중력핵의 압축을 집중시키면 단순히 적을 물리적으로 베는 차원을 넘어섭니다.""공간 자체를 찢어버린다는 소리군요.""맞아요! 이름하여 '특이점 참격'! 뇌전과 빙정의 파괴력이 바늘구멍만 한 한 점에 완벽하게 응축되어 방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우주적 데미지를 꽂아 넣는 겁니다."시뮬레이션 화면 속 레비아탄의 기체 주변으로 빛이 휘어지고 적들이 빨려 들어가는 끔찍한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 이펙트가 소름 끼치게 묘사되었
코끝을 찌르는 진한 윤활유 냄새와 공기를 태우는 듯한 매캐한 오존의 향기.아크 부대의 가장 깊숙하고 은밀한 지하 7층에 위치한 삼천 그룹 산하 특별 연구소, 이른바 랩(Lab)실의 문이 요란한 기계음을 내며 열렸다."아주 지독하게들 논다, 놀아."나는 양손이 미어터져라 가득 든 차가운 캔커피 비닐봉지를 흔들며 혀를 쯧쯧 찼다.밤 11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지만 지하 랩실은 대낮처럼 환한 백색 조명 아래서 미친 듯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사방을 둘러싼 홀로그램 모니터에는 일반인의 눈에는 그저 기하학적인 어지러운 선으로만 보이는 수만 장의 설계 도면과 마력 파형 데이터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그리고 그 어지러운 데이터의 바다 한가운데.특수 강화 유리로 제작된 거대한 격리 챔버 안에서 맹렬한 붉은빛을 뿜어내고 있는 거대한 광물 덩어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내가 며칠 전 판탈라사 제국의 본성에서 악착같이 주워 왔던 전리품의 핵심, 바로 '황제의 마석 파편' 중 하나였다."크히히히릿! 미쳤어! 이건 진짜 과학의 상식을 찢어발기는 우주적 사기 템이라고!"하얀 연구원 가운을 뒤집어쓴 신수지 소장이 격리 챔버의 유리에 코를 박은 채 기괴한 웃음소리를 흘리고 있었다.그녀의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턱 밑까지 깊게 파여 있었지만, 핏발이 선 두 눈동자만큼은 도파민에 절여진 미친 과학자의 광기로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하 준위님! 오셨어요! 이리 와서 이것 좀 봐요!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죠?!"내 발소리를 들은 수지가 뒤를 돌아보며 양손을 미친 듯이 허우적거렸다.나는 캔커피 하나를 따서 들이켜며 그녀가 가리키는 메인 콘솔의 계기판 앞으로 느릿하게 다가갔다."뭐가 그렇게 호들갑입니까. 어차피 마력 덩어리 돌멩이인 건 이거나 저거나 똑같... 켁!""돌멩이라뇨! 감히 이 위대한 오버테크놀로지의 결정체를 그딴 불경한 단어로 부르지 마요!"수지가 내 가슴팍을 팍 치며 계기판의 수치를 가리켰다."저 마석 파편 하나가 지금 뿜어내고 있는 잉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