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오후가 되자 강태풍은 다시 해안가 방파제 근처의 배수 펌프장 점검을 위해현장으로 나갔고, 서나래는 군청 본부에 남아 밀려드는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있었다.통신은 겨우 단거리 비상 VHF(초단파) 무전만 간헐적으로 연결되는 불안정한 상태였다."지지직-. 치익-. 본부 나와라. 여기는 펌프장 구조대원 강태풍."치료실 스피커에서 강태풍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서나래는 환자의 상처를 꿰매다 말고 얼른 무전기 마이크를 잡았다."강 탐장님, 거기는 어때요? 아직도 비가 많이 오나요?""여기는 바람이 초속 40미터 정도로 다소 잦아들었지만, 아직 파도가 높습니다. 펌프장 가동 상태 확인 중입니다. 이상."강태풍의 공적인 보고 뒤로, 무전기 너머의 거친 파도 소리가 흘러나왔다.서나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목소리를 낮추었다."강 팀장님, 조심하세요. 아까 질투하던 그 기운으로 파도 때려 부수려 하지 말고.. 안전하게 돌아와요, 알았죠?"잠시 무전기 너머에서 침묵이 흐르더니,이내 지직 거리는 잡음 사이로 강태풍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원래 비상 무전은 전 대원이 듣는 공용 채널이었지만, 강태풍은 개의치 않는 듯했다."강 선생님.""네, 말해요.""나 아까 질투한 거 맞습니다. 그러니까.......... 딴 놈들 한테 함부로 막 웃어주지 말고, 치료실에서 나 올 때까지 딱 기다리고 있으십시오. 내 눈에는 강 선생밖에 안 보입니다. 그리고,,,,,,,,,, 거기 다 듣고 있는거 아니까 딴 놈들, 강 선생님한테 함부로 눈길 주지 않습니다! 이상!!""어머어머, 대박!! "옆에서 무전을 같이 듣고 있던 간호사들과 환자들까지 웃으며 비명을 질러댔다.서나래의 얼굴은 순식간에 터질 것처럼 붉게 물들었다.전 대원과 민간인들까지 모두 듣는 채널에서이렇게 돌직구 고백을 날릴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이...이... 인간이 미첬나 봐, 정말!! 이거 공용 채널이잖아요.. 무슨 소리하는 거예요?!?"서나래가 급하게 무전기를 꺼버렸지만 , 심장은 이
오전 대피소로 전원 복귀한 구조조에게 허락된 것은 군청 식당 구석에서 끓인양은 냄비 속의 라면 세 봉지였다.정전과 단수로 인해 간신히 비상 생수로 끓인 귀한 라면이었다."와.... 저, 의사 생활 하면서 먹은 그 어떤 호텔 스테이크보다 이 라면이 더 맛있어 보여요."서나래가 나무젓가락을 들고 눈빛을 반짝였다.강태풍의 자연스럽게 라면 냄비에서 가장 잘 익은 면발과하나밖에 없는 계란 노른자를 숟가락으로 정성스럽게 떠서서나래의 플라스틱 접시에 올려 주었다."많이 드십시오. 아까 보니까 살이 더 빠진 것 같습니다.불도저가 엔진 오일이 부족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어머, 강 팀장님. 감동이에요. 계란 노른자를 양보하시다니, 이건 거의 프로포즈급 아닌가?"서나래가 면발을 흡입하며 감탄하자,옆에서 찬밥을 말아 먹던 차도훈이 혀를 찼다."어우, 눈꼴 시려라.. 저기 민 순경님. 순경님도 계란 먹을래요? 소방관이 계란 반쪽 정도는 양보할 의향이 있습니다."도훈이 짐짓 수아의 접시에 라면 속 파 조각을 얹어주며 장난을 쳤다.시아는 툴툴거리면서도 도훈이 준 면발을 조용히 받아 먹었다."차 소방관님이나 많이 드세요. 다친 어깨로 밥은 아주 잘 퍼서 드시네..""저는 왼손잡이라 오른손 다친건 밥 먹는데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만... 민 순경님이 먹여주면 더 잘 먹을 수 있을 것 같긴 합니다...""하! 꿈도 야무지셔라!!" 수아가 도훈의 정강이를 가볍게 걷어찼다.도훈은 "아야!" 하며 엄살을 부렸지만,두 사람의 입가에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임시 의료소 한구석, 매캐한 연기와 빗물 냄새가 가득한 곳이었지만네 사람이 나누는 라면 한 그릇의 온기는 그 어떤 축제보다 따뜻했다.재난 속에서 그들이 나누는 소박한 식사는 서로에 대한 마음을 더 단단하게 묶어주는 매개체였다.
다음 날 새벽,요양원 옥상으로 소방 2차 지원조와 함께다른 지역에서 파견된 젊은 해경 구조대원들이 진입했다.통신이 아주 미세하게 복구되면서 합동 작전이 활발해진 덕분이었다."강태풍 선배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저기 계신 분이 그 유명한 군청 불도저 강서나래 의사 선생님이십니까?"새로 합류한 해경 유 대원이 서나래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훤칠한 키에 아이돌 같은 외모에 성격까지 싹싹하고 시원시원한 유 대원은,서나래에게 다가가 싹싹하고 씩씩하게 인사를 건넸다."강 선생님, 아까 다리 건너시는 영상 본부에서 다 봤습니다! 진짜 너무 멋지십니다. 다치신 곳은 없으세요? 제가 보온 부목이라도 대 드릴까요?"서나래는 젊고 잘생긴 해경 대원이 살갑게 굴자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아유, 고마워요, 젊고 잘생긴 대원님. 이거 쑥스럽네요. 안 그래도 온몸이 쑤셨는데, 젊은 대원분이 이렇게 신경 써 주시니까 피로가 다 풀리는 것 같네요."그 모습을 저 멀리서 장비를 정리하며 지켜보던 강태풍의 미간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구명 로프를 정리하던 그의 손에 과도하게 힘이 들어가 로프가 "끼이익"소리를 냈다.옆에서 그 모습을 보던 도훈이 킥킥거리며 강태풍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어라? 대한민국 해경 대장님, 지금 눈에서 레이저 나옵니다. 질투하시는 겁니까?""질투 아닙니다. 현장에서 사담을 나누는 대원의 군기를 잡으려는 것뿐입니다."강태풍이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며 서나래와 유 대원이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소리를 내며 걸어갔다.그의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에 유 대원이 본능적으로 차렷 자세를 취했다."유 대원.""필승! 해경 구조대, 유. 민. 우!""상황 아직 종료된거 아닙니다. 사담은 그만. 지금 3구역 잔해 정리하러 갑니다.""예...? 하지만... 방금 도착해서..........""두 번 말하게 하지 않습니다. 당장 이동해!!"강태풍의 서슬 퍼런 명령에 유 대원은 침을 삼키며 빛의 속도로 사라졌
"에휴, 진짜 추워 죽겠네.연실군 군수님은 왜 이런 곳의 보일러 시설을 노후화되게 방치하셨대요?"서나래가 보온포를 둘렀음에도 불구하고 손을 호호 불며 몸을 떨었다.밤이 깊어갈수록 폭픙우가 몰고 온 한기가 창문 틈새로 사정없이 밀려들어오고 있었다.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강태풍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서나래는 그가 어디 가나 싶어서 올려다 보았는데. 강태풍은 아무런 말없이 서나래의 바로 옆자리로 아예 바짝 자리를 옮겨 앉았다.두 사람의 허벅지와 어깨가 틈새 없이 완벽하게 밀착되었다."어...... 강 팀장님?"서나래가 당황해서 눈을 동그랗게 크게 뜨자,강태풍은 두꺼운 자신의 오른손으로 서나래의 작고 차가운 두 손을 통째로 감싸 안았다.그의 손바닥은 고된 훈련과 구조 작업으로 인해 굳은 살이 박혀 거칠었지만,그 어떤 온열 기구보다 뜨거운 열기를 품고 있었다."체온 나누기 하는 겁니다. 해상 저체온증 환자에게 쓰는 가장 기본적이고 의학적인 처치입니다. 의사 선생님이시지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강태풍이 짐짓 덤덤한 표정으로 핑계를 댔다.하지만 그의 귀 끝이 붉게 물들어 있는 것을 서나래는 놓치지 않고 보았다."의학적 처치치고는 너무 사심이 들어간 것 같은데요? 해경들은 환자 손을 이렇게 꽉 잡고 손가락 사이사이를 조물조물 마사지 해 주나요?"서나래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강태풍의 손가락을 오히려 역으로 꽞 맞잡았다.손가락과 손가락이 얽히며 완벽한 손깍지가 껴졌다.강태풍의 몸이 순간 굳어졌다.그는 침을 꿀꺽 삼키며 서나래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랜턴의 푸르스름한 광원 속에서, 서나래의 촉촉한 입술과 별처럼 빛나는 눈동자가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였다."강 선생님...""네. 강 대원님.""나 지금.. 사심 부리는 거 맞습니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이러고 있습시다."강태풍의 낮고 진중한 목소리가 세탁실의 공기를 완전히 장악했다.서나래는 더 이상 장난을 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강
요양원 2층 세탁실의 열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기왕 고립된 김에 대원들은 휴식을 취하라는 본부의 지시에 따라,강태풍과 서나래는 완전하게 고립된 데이트(?)을 즐기는 중이었다."자, 내가 대한민국 해경 특수구조대, 기적의 비상식량을 보여드리죠."강태풍이 자신의 방수 배낭에서 주섬주섬 꺼낸 것은은박지에 싸인 초코바 세 개와 일회용 믹스커피 두 봉지, 그리고 작은 보온병이었다."원래 한강이나 바다에서 조난당했을 때 칼로리 보충용으로 쓰는 건데, 오늘은 강 선생에게 특별히 제공하도록 하겠습지다."서나래는 초코바를 받아 들며 감동적인 표정을 지어 보였다."와, 강태풍 대원님. 겉만 무뚝뚝한 로봇인 줄 알았더니, 은근히 생존 본능이랑 센스가 넘치시네요. 근데 믹스커피는 어떻게 마셔요? 종이컵도 없는데..?"강태풍은 잠시 고민하더니, 세탁실 구석에 깨끗하게 세탁되어 건조되어 있던 플라스틱 약품 계량컵 두 개를 가져왔다.그리고 보온병의 뜨거운 물을 부어 익숙한 솜씨로 믹스커피를 탔다."컵이 좀 아날로그틱 하지만, 위생상으로는 완벽합니다. 드십시오."서나래는 계량컵에 담긴 믹스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달콤하고 따뜻한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피로가 사르르 녹아 내리는 기분이었다."음~! 대박! 인생 커피예요. 폭풍우 치는 요양원 세탁실에서 마시는 믹스커피라니... 이거 완전 로맨틱 한데요? 그쵸?"서나래가 농담조로 던진 이라는 단어에 강태풍이커피를 마시다 컥- 하고 사레가 들렸다.거구의 사내가 얼굴을 붉히며 기침을 연신 하는 모습이 서나래의 눈에는 큰 대형견 같아 마냥 귀엽게만 보였다."왜 그래요? 대한민군 해경은 로맨틱이라는 단어에 면역이 없고, 알러지만 있는 건나요?""...... 재난 현장에서 그런 단어를 쓰니까 적응이 안돼서 그렇습니다."강태풍이 겨우 기침을 진정시키며 컵을 만지작 거렸다."하지만..... 강 선생이랑 같이 있으니까, 이 지독한 태풍소리도 나쁘지 않게 들리는 건 사실입니다."강태풍의 나직
한편, 요양원 2층 면회실과 연결된 임시 대기실에서는 소방관 차도훈과 순경 민수아의 또 다른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아아악! 민 순경! 아파요! 아까보다 손길이 더 세진 것 같은 건 제 기분 탓입니까? 저 지금 국가공무원으로서 현장 뛰다 다친 건데...!"봉합했던 왼쪽 어깨 상처가 살짝 벌어져 수아가 다시 압박 붕대를 감아주는 중이었다.수아는 기가 찬다는 듯 붕대를 꽉 잡아당기며 도훈을 내려다 보았다."차 반장님, 지금 엄살 부릴 때예요? 소방관이 되어서 자기 몸 하나 관리 못하고, 아픈 어깨로 그 거구의 할아버지를 업고 내려와요? 진짜 대책없는 영웅주의네요!!"수아의 목소리는 화가 나 있었지만, 그녀의 손가락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차도훈의 하얀 티셔츠 위로 번진 붉은 혈흔을 볼 때마다가슴이 저릿하게 아파왔기 때문이다."영웅주의라니요. 그럼 저기 어른신이 비 맞고 계시는데 소방관이 합니까? 그리고......... 나 민 순경 앞이라서 좀 멋있어 보이고 싶었던 것도 있습니다."도훈이 슬쩍 고개를 돌려 수아의 눈을 마주 보며 능글맞게 웃었다."뭐.... 뭐라고요?!?"수아의 얼굴이 정전된 대피소의 붉은 비상등보다 더 빨갛게 달아 올랐다."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농담이 나와요? 정말 못말려...""농담 아닌데.. 나 진짜 민 순경이 나 멋있게 봐줬으면 좋겠어서 힘 좀 썼습니다. 근데 결과가 이 모양이라 좀 창피하긴 하네요..." 도훈이 머리를 긁적였다.수아는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헤,도훈의 가슴팍에 압박 붕대를 확 밀어 넣으며 매듭을 지었다."창피한 줄 알면 가만히 계새요! 앞으로 내 눈앞에서 또 다치기만 해 봐요. 그땐 소방청에 민원 넣을 테니까!!"민수아가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도훈이 번개처럼 오른손을 뻗어 수아의 가녀린 손목을 잡았다.잡힌 손목을 통해 도훈의 뜨거운 체온이 그대로 전해졌다.도훈은 장난기를 싹 지운 진지한 눈빛으로 수아를 올려다 보았다."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