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감정적인 면에서 다른 사람의 결정에 간섭하기도 싫었다.두 사람의 얘기가 거의 끝나갈 때쯤, 구승훈 쪽도 거의 마무리가 되었다.조시욱은 얼굴에 먹구름이 잔뜩 낀 채 구승훈에게 걸어왔다.그가 오늘 여기에 온 목적도 구승훈의 보증인 자격으로 대변하기 위해서였다.현장에서 누군가가 총을 쏜 일은 이제 숨길 수 없게 되었다. 비록 구승훈이 들고 있던 총은 누군가가 승인을 받아 합법적으로 소지가 가능한 총이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반드시 보증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하여 제일 마땅한 사람이라고는 조시욱 밖에 생각나지 않아 그를 부르게 된 것이다.조시욱은 눈에 불을 켜고 살벌한 얼굴로 구승훈에게 다가와 말했다.“이제부터 이런 일로 절 부르지 말아요!”그러자 구승훈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아, 혹시 임명우 씨의 자백도 필요 없다는 뜻일까요?”순간 조시욱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씨X, 오늘 보증인으로 사인까지 해줬으면 됐잖아요!”“그러니까 앞으로 그런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라는 겁니다. 어차피 말싸움으로는 저를 못 이기니까.”“당신!”조시욱은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 같았다.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다고 저런 빌어먹을 놈한테 걸린 걸까?이때, 금방에라도 눈앞에서 두 사람이 싸울 것 같아 강하리가 재빨리 구승훈을 불렀다.“승훈 씨!”그러자 구승훈은 활짝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자기야, 나 불렀어?”그러나 강하리는 그를 보는 체도 하지 않고 뒤에 서 있는 조시욱을 바라보며 말했다.“잘 부탁해요.”조시욱은 지금 화가 잔뜩 나 있는 상태지만 그렇다고 그 화살을 강하리한테까지 쏠 필요는 없었다.하여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답하려다가 문득 거즈를 감은 그녀의 손에서 피가 많이 묻어있는 모습을 보고 다시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다친 건 좀 어때?”그날 밤 원래 강하리를 보고 가려 했지만 결국에는 또다시 구승훈의 계략에 속아 넘어가게 되면서 나중에는 그녀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까지 싹 사라지게 했다.“많이 나았어요.”조시
임명우의 일을 모두 처리하고 나니 벌써 오후가 되었다.강하리와 구승훈이 경찰서에 도착해보니 심준호와 조시욱도 이미 와 있었다.조시욱은 강하리와 가볍게 인사한 뒤 서둘러 취조실로 들어갔다.그러나 심준호는 강하리에게 다가와 한껏 차갑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간도 커.”그리고 어두운 얼굴로 거즈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회복되는 데 지장이 없도록 이따 병원에 다시 가봐.”강하리는 눈치껏 고분고분 답했다.“네, 삼촌.”역시나 심준호는 그녀의 생각을 이미 알아챘는지 강하리의 이마를 톡 건드렸다.“괜히 말 잘 듣는 척하지 마. 네 성격을 내가 모를까 봐?”그러자 강하리는 재빨리 심준호의 팔짱을 끼며 애교를 부렸다.“저 원래 착하잖아요.”심준호가 어이없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착해서 총을 막 쏘고 다니고 병원에서 구승훈이랑 그런 짓까지 했던 거야?”그의 말에 강하리는 순간 온몸이 굳어버렸다.총을 쏜 일에 대해 말하는 건 사실 괜찮았다.어쨌든 긴급한 상황이었고 만약 제때 총을 쏘지 않았다면 구승훈이 죽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병원에서 그 짓을 한 건 도무지 뭐라고 변명해야 할지 막막했고 심준호가 이렇게 대놓고 물어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러다가 문득 그가 지금 삼촌으로서 조카한테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려는 의도를 알아채게 되었다.사실 심씨 가문에서는 여전히 구승훈을 마음에 들지 않아 한다는 사실을 강하리도 잘 알고 있었다.아무리 구승훈이 심미현의 납치 사건에 대해 많은 도움을 줬더라도 그에 대한 보상도 칼같이 계산해 주면서 단 한 번도 그를 살갑게 가족처럼 대해주지 않았다.그리고 이 모든 행동으로 그들의 태도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강하리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 그저 입만 달싹거리다가 빠르게 대화의 주제를 돌렸다.“삼촌은 오늘 임명우 씨 때문에 여기에 온 거에요?”그러자 심준호가 그녀를 힐끔 째려보며 되물었다.“민망하긴 한가 봐?”그리고 한숨을 내쉬며 다시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을 이었
강하리는 순간 멍해졌다가 그대로 그의 입술을 베어 물고 깊게 입맞춤했다.그녀의 반응에 구승훈은 점점 숨이 막혀 질식할 것 같았지만 더욱 세게 그녀의 뒤통수를 움켜쥐더니 단번에 차 벽에 밀어붙였다.그리고 그의 힘이 버거웠던 강하리가 뒤로 밀려 나가자 구승훈은 불만스러운 듯 얼굴을 찡그리기까지 했다.이때, 옆에서 가벼운 기침 소리가 들려서야 두 사람은 하던 행동을 멈췄다.그제야 두 사람의 행동이 지금 상황과 부적절하다고 느낀 강하리는 구승훈을 있는 힘껏 밀쳐내고는 빠르게 자기 차 안으로 숨었다.황급히 뛰어가는 모습이 그저 사랑스럽기만 한 구승훈은 싱긋 미소를 짓다가 다시 발아래의 임명우를 내려다보았다.“임 대표님, 이 각도에서 저를 올려다보니 기분이 어떠세요?”그러자 임명우도 입꼬리를 씩 올리며 답했다.“구승훈 씨, 이번에는 제가 방심했는데 게임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 어디 한번 두고 봅시다.”경찰이 빠르게 도착한 뒤 바닥에 눌려있는 임명우를 데려갔다.구승훈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옆에 있던 사람이 그에게 담배 한 대를 건넸다.그러자 그는 담배를 빤히 바라보다가 다시 차 안쪽을 보며 말했다.“서장님, 이러면 제가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거라서요.”오경준은 비록 50대 초반이었지만 눈치가 빨라서 그런지 구승훈의 말을 단번에 알아듣고 껄껄거리며 웃었다.“그래. 이제 널 감시하는 아내도 생기고, 대단한걸?”구승훈도 같이 미소를 짓다가 다시 차분하게 물었다.“임명우 씨를 심문할 때... 저한테도 한 번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오경준이 곧바로 OK 사인을 하더니 다시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일단 가서 상처나 치료해.”그러자 구승훈은 두 눈을 반짝거리며 답했다.“네, 걱정하지 마세요.”말을 마치자마자 차에 올라타 보니 강하리가 한창 미간을 찌푸린 채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는데 인기척이 들려도 구승훈 쪽으로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그 모습을 본 구승훈이 입으로 약간 신음을 내자 강하리는 곧바로 얼굴을 찡그리며 다가와 그의 상처를
칼을 한 번씩 휘저을 때마다 임명우는 점점 흥분되었다.특히 구승훈의 말을 듣자마자 얼굴에 번진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그 주제에 지금 하리 씨를 위해 복수하겠다는 거예요?”그러면서 구승훈의 손을 막다 보니 칼이 눈앞까지 왔다가 멈췄는데 구승훈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시 손목을 돌려 칼끝으로 또 한 번 그의 얼굴을 향해 찌르려 했다.임명우는 구승훈에게 눌려 있다가 그 칼이 금방에라도 자기 얼굴에 떨어질 것 같아 빠르게 몸을 굴려 피하면서 두 사람은 또다시 차 안에서 몸싸움하기 시작했다.두 차는 여전히 부딪히면서 심하게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바로 이때, 강하리가 총을 내려놓고 앞에 앉은 준봉에게 말했다.“속도 좀 높여서 저 차를 추월해요.”그러나 준봉은 눈살을 잔뜩 구기며 약간 망설이는 눈치였다.“왜요, 자신 없어요?”강하리는 창백한 얼굴로 살기가 가득 돋친 말을 내뱉었다.마치 준봉이 못 할 것 같으면 자신이 하겠다는 듯이 말이다.이런 것쯤이야 준봉한테는 식은 죽 먹기였으나 만약 진짜로 추월하면 두 차가 충돌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그는 어차피 몸도 튼튼하고 차가 부딪치는 타이밍에 문을 열고 뛰어내리면 그만인데 하필이면 지금 뒷좌석에 강하리가 앉아 있어서 그럴 엄두가 전혀 나지 않았다.“사모님, 너무 위험합니다.”그러자 강하리가 이를 악물고 되물었다.“내 말은 안 듣겠다는 건가요?”그녀의 말에 준봉은 어쩔 수 없이 핸들을 꽉 잡고 속도를 맥스로 올렸다.그러나 옆에 차도 마치 준봉의 의도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갑자기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그렇게 두 차는 또다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차 안에서의 육탄전도 더욱 치열해졌다.그러나 강하리는 마치 이런 상황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차분했다.원래는 저쪽 운전 기사한테 총을 쏘려 했는데 그렇게 되면 차가 완전히 방향을 잃을 것 같았다.그렇게 계속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어느 한 다리에 들어섰고 강하리는 한참 동안 고민 끝에 준봉에게 다시 말했다.“아예 다리 아
강하리는 총을 보고 손을 벌벌 떨다가 막 뭐라고 하려는데 갑자기 구승훈이 안고 있던 그녀를 밀어내더니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뛰었다.순간 강하리는 머리가 하얘졌다.그러다가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구승훈이 옆 차의 창문에 매달리고 있었는데 언제 차 두 대가 나란히 달리게 되었는지도 몰랐다.그러나 다른 한 차의 유리창은 이미 깨져 있었는데도 구승훈은 이를 악물고 매달렸다. 임명우도 구승훈이 창문을 깨고 들어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지 살짝 당황한 얼굴이었다가 곧바로 강하리를 한번 힐끔 바라보았다.그리고 갑자기 싱긋 미소를 짓더니 차 창밖으로 총만 꺼내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순간 강하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머리가 하얘졌다.앞에서 준봉이 뭐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강하리는 그저 바람 소리만 들릴 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손에 쥐고 있던 물건을 들더니 지금 반대편에 똑같이 총을 들고 있는 남자를 향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두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고 어깨를 맞은 임명우는 피를 흘리며 몸을 뒤로 젖혔다.동시에 원래 양손으로 차창을 붙잡고 있던 구승훈이 갑자기 한 손을 놓더니 임명우가 균형을 잃고 쓰러진 틈을 타 재빨리 한 바퀴 돌았다.그렇게 임명우가 쏜 총이 마침 그의 어깨를 스쳐 지나가게 되었다.순간 약이 바짝 오른 임명우가 구승훈을 향해 물었다.“여자가 구해주다니. 구승훈 씨,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어요?”그러나 구승훈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다른 한 손으로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그대로 임명우의 얼굴을 그어버렸다.금세 피가 줄줄 흘러내렸지만 임명우는 당황하지도 않고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흐르는 피를 혀로 핥았다.“시시하게 칼이 뭐예요? 하리 씨, 당장 총으로 절 쏴봐요!”비록 총에 맞은 상태지만 임명우는 구승훈의 공격을 피하면서 또 강하리를 자극했다.그러나 강하리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손을 계속 덜덜 떨고 있었다.총은 그녀가 여태껏 만져본 적이 없는 물건이다.그리고 아까 임명우가 금방
준봉이 빠르게 핸들을 돌려 곧바로 그 차를 쫓아갔고 구승훈은 강하리의 안전벨트를 다시 고쳐 매주며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조심해.”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차 한 대만 잡아 줘.”그는 수화기에 대고 지금 위치와 차 번호를 알려줬다.“그리고 이 차가 요 며칠 어디서 뭘 하고 다녔는지도 알아봐.”구승훈이 전화를 끊자마자 강하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진짜 임명우 씨야?”가볍게 고개만 끄덕이는 구승훈의 눈빛에는 이미 살기가 가득했다.사실 그 일이 있은 뒤로 경찰 쪽에서 지금 바짝 수사하고 있었기에 임명우의 성격상 굳이 이런 위험한 시기에 저렇게 활개 치고 돌아다닐 리 없었다.혹은 이러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던지.구승훈은 순간 임명우가 한 마디를 남기고 사라졌던 그날이 생각이 또다시 생각났다.‘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 건가?’비록 지금 시간대에는 도로에 차가 많지 않지만 앞차를 추월하는 게 그리 쉽지 않았다.구승훈은 혹시나 강하리가 다칠까 봐 노심초사 알뜰히 살폈다.준봉의 운전 실력은 워낙 훌륭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었지만 앞차 운전 기술도 꽤 괜찮아 보였다.그렇게 두 차는 도로에서 앞서거니 뒤서기니 하면서 교외로 질주했다.“대표님, 아니면 사모님을 먼저 내려드릴까요?”준봉의 물음에 구승훈은 강하리를 바라보았다.그리고 두 사람의 눈빛이 서로 마주치자마자 구승훈은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다시 준봉에게 말했다.“아니야. 그냥 이대로 차에 있는 게 나을 것 같다.”혹시나 나중에 이보다 더 위험해진다고 해도 그녀랑 떨어지기 싫었다.그리고 강하리를 혼자 남겨뒀다가 더 큰 위험이 기다리고 있을지 누가 안단 말인가?하여 위험해도 그가 보호해 줄 수 있으니 차라리 자기 옆에서 있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무서워하지 마.”구승훈이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자 강하리는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승훈 씨가 옆에 있는데 내가 무서울 게 뭐 있어?”그녀의 말에 그제야 구승훈도 안심되는지 다시 강하리의 손을 꼭 잡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