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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그대로, 당신만 빼고

결혼은 그대로, 당신만 빼고

By:  캐슬Completed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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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을 3 일 앞두고서야 알았다. 서이준이 예식 장소를 시골에 있는 외할머니 댁에서 소꿉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해외의 고성으로 바꿔 버렸다는 걸. 따지러 갔다가 친구에게 투덜대는 소리를 들었다. "태린이가 안목이 있어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평생 웃음거리가 될 뻔했어." 친구가 물었다. "할머니 댁에서 식 올리기로 약속했다며. 홧김에 결혼 안 하겠다고 하면 어쩌려고?" 서이준이 코웃음을 쳤다. "걔네 집안 망하기 직전이야. 나랑 결혼하는 것 말고 무슨 수가 있겠어? 파혼을 감당할 처지가 아니라고." "웨딩 업체에서 연락하라고 해 뒀어. 지금쯤 비행기 표 변경하느라 정신없을걸." 분하고 억울해서 가슴이 꽉 막혔다. 입술을 깨물다가 결국 돌아섰다. 3 일 뒤, 고성에서는 예정대로 결혼식이 열렸다. 나는 그곳으로 가는 항공편으로 바꾸지도, 식장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대신 외할머니의 오래된 마당에서 다른 남자와 반지를 나눠 꼈다. 서이준은 아직도 모른다. 내가 결혼하려 했던 건 살길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10 년 동안 그를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걸. 하지만 꿈에서 깨어났으니, 이제는 다른 선택을 해도 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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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1화

서림그룹을 나선 지 얼마 안 돼 서이준에게서 해외 고성의 주소와 사진 한 장이 왔다.

미색 석회암 벽에 붉은 금빛 돔을 얹은 고성의 정면. 더없이 호화로웠다.

그런데 사진 한가운데에는 붉은 드레스를 입고 풍성한 웨이브 머리를 늘어뜨린 이태린이 있었다.

환하게 웃는 얼굴 위로 손가락이 잠깐, 2 초쯤 멈췄다. 문득 어이가 없었다.

신부는 나였다. 서이준이 우리 결혼식 장소로 고른 곳이었다.

그런데 보내온 사진의 주인공은, 늘 그냥 친구라며 신경 쓰지 말라던 소꿉친구였다.

그 뒤로는 다시 감감무소식이었다.

나는 그를 잘 알았다. 웨딩 업체에서 이미 내게 연락했을 테니, 당연히 그리로 올 거라 생각하고 주소를 보낸 거였다. 표를 변경하면서 목적지를 모를까 봐.

가슴이 꽉 막힌 듯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외할머니 댁에서 식을 올리기로 약속해 놓고, 이태린이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어떻게 망설임도 없이 바꿀 수 있을까?'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어두워진 뒤였다.

마침 서이준이 가사도우미에게 짜증을 내고 있었다.

"최예원이 애도 아니고, 좀 늦게 들어온다고 나까지 귀찮게 해야겠어?"

"그래도 최예원 씨가 낮에 웨딩 업체에서 전화 받고 나가셨잖아요. 혹시 홧김에..."

서이준이 비웃었다.

"비행기 표 변경하러 간 거야. 그 집 식구들 다 변경하는 게 어디 간단한 일이겠어?"

"걱정 마. 최예원은 나랑 결혼하는 게 소원이야. 나 없으면 못 살아."

"남극에서 결혼하자고 해도 기어서라도 올 애라고. 하물며 태린이가 고르고 고른 해외 고성인데."

가사도우미가 입을 다물자 서이준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태린이가 5 분째 답이 없네... 가 봐야겠어."

서이준이 뛰어나왔을 때, 나는 이미 그곳을 떠난 뒤였다.

애초에 서이준의 저택이지, 내 집은 아니었다.

결혼 준비하기 편하겠다며 함께 지내자고 한 사람은 서이준이었다. 처음에는 우리도 여느 예비부부처럼 다정했다.

그러다 어느 날 이태린이 실연하고 귀국하자, 서이준은 위로해 주러 가야겠다고 했다.

그렇게 4 개월이 흘렀다.

이태린이 힘들다고만 하면, 서이준은 망설이지도 않고 나를 두고 달려갔다.

예복도 내가 골랐고 외할머니 댁 마당도 내가 꾸몄다. 서이준은 어느 것 하나 함께하지 않았다.

서운하다고 항의할 때마다 이태린과 이야기하던 중에 못마땅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너도 집안 사업 살리려고 나랑 결혼하려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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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서림그룹을 나선 지 얼마 안 돼 서이준에게서 해외 고성의 주소와 사진 한 장이 왔다.미색 석회암 벽에 붉은 금빛 돔을 얹은 고성의 정면. 더없이 호화로웠다.그런데 사진 한가운데에는 붉은 드레스를 입고 풍성한 웨이브 머리를 늘어뜨린 이태린이 있었다.환하게 웃는 얼굴 위로 손가락이 잠깐, 2 초쯤 멈췄다. 문득 어이가 없었다.신부는 나였다. 서이준이 우리 결혼식 장소로 고른 곳이었다.그런데 보내온 사진의 주인공은, 늘 그냥 친구라며 신경 쓰지 말라던 소꿉친구였다.그 뒤로는 다시 감감무소식이었다.나는 그를 잘 알았다. 웨딩 업체에서 이미 내게 연락했을 테니, 당연히 그리로 올 거라 생각하고 주소를 보낸 거였다. 표를 변경하면서 목적지를 모를까 봐.가슴이 꽉 막힌 듯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외할머니 댁에서 식을 올리기로 약속해 놓고, 이태린이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어떻게 망설임도 없이 바꿀 수 있을까?'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어두워진 뒤였다.마침 서이준이 가사도우미에게 짜증을 내고 있었다."최예원이 애도 아니고, 좀 늦게 들어온다고 나까지 귀찮게 해야겠어?""그래도 최예원 씨가 낮에 웨딩 업체에서 전화 받고 나가셨잖아요. 혹시 홧김에..."서이준이 비웃었다."비행기 표 변경하러 간 거야. 그 집 식구들 다 변경하는 게 어디 간단한 일이겠어?""걱정 마. 최예원은 나랑 결혼하는 게 소원이야. 나 없으면 못 살아.""남극에서 결혼하자고 해도 기어서라도 올 애라고. 하물며 태린이가 고르고 고른 해외 고성인데."가사도우미가 입을 다물자 서이준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태린이가 5 분째 답이 없네... 가 봐야겠어."서이준이 뛰어나왔을 때, 나는 이미 그곳을 떠난 뒤였다.애초에 서이준의 저택이지, 내 집은 아니었다.결혼 준비하기 편하겠다며 함께 지내자고 한 사람은 서이준이었다. 처음에는 우리도 여느 예비부부처럼 다정했다.그러다 어느 날 이태린이 실연하고 귀국하자, 서이준은 위로해 주러 가야겠다고 했다.그렇게 4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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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결혼해 주겠다고 했으면 됐지, 뭘 그렇게 따져?"이태린에게 전화가 오자 서이준은 곧장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내 말만 허공에 흩어졌다."먼저 청혼한 건 너였잖아.""난 널 사랑해서 받아들인 건데..."결혼을 앞두고 들떠 있던 나는 어느새 빈방에 홀로 남았다. 내 결혼식인데도 구경꾼이 된 기분이었다.이제는 어디서 식을 올릴지조차 내가 정할 수 없었다.그날 밤은 친구 집에서 잤다. 서이준에게서는 끝내 연락이 없었다.다음 날, 업무 인계를 마치고 집에 들어서자 이태린의 웃음소리가 들렸다."서약할 때 양쪽에서 꽃잎이 날려야 해. 그래야 로맨틱하잖아."서이준은 옆에 앉아 웃음 어린 눈으로 이태린만 좇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해."내게는 한 번도 보여 준 적 없는 눈빛이었다.이태린이 나를 보더니 손을 흔들었다."예원아, 이리 와 봐. 결혼식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시야 한쪽에 잡힌 서이준의 표정은 못마땅해 보였다."왜 이제 와? 태린이는 네 결혼식 때문에 4 개월을 고생했는데, 넌 손 하나 까딱 안 하네.""차라리 잘됐지. 너보다 태린이가 훨씬 안목이 좋으니까. 네 말대로 촌스럽게 했다간 아는 사람들한테 얼마나 비웃음을 샀겠어?"또다시 나만 구경꾼이 된 기분이었다."피곤해. 먼저 좀 쉴게."잔뜩 찌푸려진 서이준의 얼굴을 뒤로하고 곧장 손님방으로 들어갔다.문을 닫는데, 몇 번이나 거절했던 그 메시지가 또 떴다.[너만 동의하면 난 가진 걸 다 잃더라도 결혼식에 가서 널 뺏어 올 거야.]문밖에서는 이태린이 꿈꾸던 고성의 꽃 장식 결혼식을 설명하고 있었다. 사이사이 서이준이 몇 번이고 원하는 대로 하라며 맞장구쳤다.씁쓸하게 웃으며 답장을 썼다.[뺏을 필요 없어. 내 신랑은 너니까.]'서이준, 네가 그 고성으로 가야 한다면, 난 고향으로 돌아갈 거야. 이제 널 놓아줄게. 나 자신도 그만 놓아주고.'밤새 뒤척였다.눈을 감을 때마다 서이준과 사랑했던 지난 10 년이 떠올랐다.내게만큼은 한없이 다정했던 사람. 누가 나더러 서이준에게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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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이태린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목소리도 떨렸다."이준아, 내가 잘못한 거야? 예원이가 불같이 화를 내서..."설명할 틈도 없이 서이준이 굳은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태린이가 네 웨딩드레스 때문에 4 개월을 준비했어. 밤새 디자이너랑 얘기한 게 몇 번인 줄 알아? 그런데 고맙다는 말 대신 이러는 거야?""태린이 아니었으면 넌 결혼식에 입을 드레스도 없었어.""사과해!"나를 보는 눈에는 혐오가 서려 있었다. 그 눈을 마주하니 더 기가 막혔다.전에 내가 예복을 의논하려 했을 때, 서이준은 이태린을 데리고 발리로 바람 쐬러 가야 하니 귀찮게 하지 말라고 했었다.하긴, 이태린이 얼마나 소중한데.이태린이 실연해서 힘들다고 하자, 서이준은 밤새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내 생일에는 이태린과 로맨스 영화를 보겠다고 영화관을 통째로 빌렸다.내가 쉬지 못하고 일하다 고열에 시달릴 때, 서이준은 물이나 마시라고 했다. 그러고는 조금 긁힌 이태린을 사립 병원으로 데려가 상처를 처치받게 했다.내 결혼식이었고, 내가 할 일은 다 했다.그런데 이태린이 끼어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걸 그쪽에서 도와준 일이 되어 버렸다.서이준의 친척들까지 내가 아무것도 안 한다며 못마땅해했다.지금도 내 드레스와 서이준의 예복은 손님방 옷장 안에 있었다. 한 번 들여다보지도 않은 사람이 나더러 이태린에게 사과하라고 했다.생각할수록 실망스러워 표정이 굳었다.서이준이 냉소했다."사과 안 하겠다고? 그럼 결혼도 없어. 태린이한테 사과하기 전까진 식 못 올릴 줄 알아."문득 꽉 쥐었던 손이 풀렸다. 서이준을 똑바로 바라봤다."좋아."그 말을 끝으로 방에 돌아가 짐을 쌌다.임유건이 외할머니 댁에 부겐빌레아가 피었다고 했다. 어서 돌아가 보고 싶었다.부모님을 따라 도시로 오기 전, 외할머니와 함께 심은 꽃이었다.거실에서 이태린을 달래던 서이준은 어쩐지 짜증이 났다.손님방을 한번 흘끗 보더니, 이태린 몰래 비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곧 답이 왔다.[대표님, 최예원 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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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역시 우리 이준이한테는 태린이가 더 잘 어울리는데."나는 내가 입은 푸른빛 드레스를 내려다봤다.내가 대단한 미인은 아니어도, 예전의 서이준은 곧잘 예쁘다고 했다. 그러고는 귀 옆 잔머리를 다정하게 정리해 주곤 했다.이태린이 어리광 섞인 목소리로 서정호를 나무랐다."아저씨, 예원이 앞에서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예원이가 속상해하잖아요."서정호와 서이준의 어머니 박미경이 코웃음을 쳤다.그제야 서이준이 나를 봤다.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로."우리 부모님은 태린이 어릴 때부터 보셨잖아. 그런 말 한마디까지 따져야겠어? 속 좁게 굴지 좀 마.""엄마가 왜 가정교육이 중요하다고 하셨는지 알겠다. 할머니 손에서 크다가 18 살에야 도시로 왔다더니, 배운 게 하나도 없네."미간이 좁아졌다. 서이준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서이준, 할머니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 주셨는지 알잖아. 그런 말 들으시면 얼마나 마음 아파하실지 생각 안 해?"서이준은 잠깐 찔리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식구들이 지켜보고 있자 도로 얼굴을 굳혔다."어쨌든 태린이랑은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친구일 뿐이야. 여자들끼리 질투한다고 애꿎은 사람 상처 주지 마."결국 이태린 편을 들며 나를 몰아붙이려는 거였다.갑자기 지쳤다. 지난 일들이 한꺼번에 짓눌러 와 숨이 막혔다.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오늘 온 건, 사실 할 말이 있어서..."이태린이 큰 소리로 말을 끊었다."이준아, 내 제일 친한 친구도 거기 가 보고 싶대. 비행기에 자리 더 있어?"서이준이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있어. 내가 알아서 할게."비서가 머뭇거렸다."대표님, 마지막 자리는 최예원 씨 몫으로 남겨 두라고...""그럼 됐어. 나 때문에 예원이가 속상해하는 건 싫어..."서이준은 이태린이 서운해하는 걸 못 견뎠다. 바로 결정을 내렸다."최예원은 다른 비행기 타면 돼. 태린이 친구는 거기 낯설잖아. 우리랑 같이 가야지."이태린이 금세 활짝 웃으며 서이준의 팔을 끌어안고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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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서이준, 그게 나한테 어떤 물건인지 네가 누구보다 잘 알잖아!"그 오래된 마당을 빼면, 외할머니를 추억할 마지막 물건이었다.서이준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 하지만 곧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잘못 봤어. 네 할머니 다이아몬드 아니야.""내가 못 알아볼 리 없어. 할머니 거 맞아. 늘 금팔찌랑 같이 보관했단 말이야!""우리 가족들 다 있는 자리야. 망신시키지 말고 일단 돌아가!"믿을 수 없어 서이준을 바라봤다. 내 눈물이 흘러내리자 서이준이 당황했다.이태린 때문에 마음을 짓밟힌 게 몇 번인데도 나는 울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 눈물을 보니 서이준은 가슴이 철렁했다.막 나를 향해 손을 뻗으려던 순간, 이태린이 울음을 터뜨렸다."예원아, 내가 예쁘다고 달라고 졸랐어. 이준이한테 그러지 마..."서이준이 미간을 찌푸렸다."태린아, 내가 주고 싶어서 준 거야. 왜 네 잘못이라고 해?"서이준은 몸을 굽혀 이태린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온몸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서이준, 할머니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무슨 권리로 할머니 물건을 줘 버려?"이태린이 한 걸음 다가와 내 손목을 잡고 큰 소리로 울었다."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금목걸이가 예쁘다는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랬으면 이준이도 팔찌를 녹여서 목걸이를 만들어 주지는 않았을 거야.""예원아, 때리려면 나를 때려. 너희 내일 결혼하잖아. 싸우면 안 돼..."숨을 크게 들이마셔도 치미는 분이 가라앉지 않았다.외할머니가 내 결혼 선물로 남겨 주신 금팔찌를 녹여 이태린의 목걸이로 만들었다니.짝!온 힘을 다해 이태린의 뺨을 때렸다."내놔!"이태린의 뺨에 붉은 자국이 번졌다. 서이준은 곧바로 발끈해 내 뺨을 후려쳤다."그깟 팔찌랑 다이아몬드 때문에 태린이를 때려? 이렇게 막돼먹은 여자랑 어떻게 결혼을 해?""태린이한테 사과해. 안 그러면 파혼이야!"맞은 충격에 몇 걸음 비틀거리다 겨우 멈춰 섰다. 모두가 나를 보고 있었다.이태린을 달래는 서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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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결혼식 당일 오후, 해외 고성이 있는 곳은 조금 후텁지근했다.그래도 고성에 도착한 사람들은 들떠서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서정호와 박미경까지 기분 좋게 이태린을 끌어당겨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서이준만 텅 빈 메시지 창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며칠 전 고성 주소와, 이태린이 여행 때 고성 앞에서 찍은 셀카를 보냈을 때도 나는 답이 없었다. 어제 오전에 이태린에게 사과하라며 가족 모임에는 이태린을 먼저 데려가겠다고 했을 때도. 어제 이태린이 용서했다는 메시지를 세 개나 보냈는데도 마찬가지였다.서이준은 볼수록 짜증이 나 대화창을 위로 쓸어 올렸다. 그러다 멈칫했다. 예전 메시지는 온통 내가 보낸 것들이었다.[이 드레스 세 개 중에 뭐가 제일 마음에 들어?][결혼식 답례용 사탕 종류가 너무 많아.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어. 언제 집에 와? 같이 고르자.][이준아, 오늘도 집에 안 와? 안 들어온 지 한참 됐잖아.][우리 부모님은 할머니 댁 옆에 자리 잡으셨어. 어떤 말린 과일 좋아하냐고 물으시더라. 말려 놨다가 너 오면 주신대.]...서이준은 어느 것에도 답하지 않았다.더 위로 올라가 보니, 마지막으로 답한 게 무려 4 개월 전이었다.[태린이는 좀 괜찮아? 내가 얘기해 볼까? 같은 여자끼리는 말이 통할 수도 있잖아.]그때 서이준은 이태린의 귀국을 축하할 삼 단짜리 큰 케이크를 직접 준비하느라 바빴다. 1 주일이 지나서야 답했다.[태린이는 너랑 달라. 너랑은 말 안 통해.]가슴을 얻어맞은 듯했다. 서이준은 멍하니 스스로에게 물었다.'뭐가 다르다는 거지? 왜 말이 안 통한다는 건데?'서이준은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었다. 내가 혼자 보내 온 메시지를 몇 번이고 읽었다.내 메시지는 결혼 준비 이야기 아니면 언제 집에 오느냐는 물음이었다.반면 서이준이 드문드문 보낸 답에는 온통 이태린 이야기만 있었다.'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됐지?'"이준아! 사진 좀 찍어 줘!"이태린이 불쑥 달려 나왔다. 흐린 날씨 속에서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는데, 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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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전화는 금방 연결됐다. 서이준이 내 신원 정보를 불러 주고, 도착 시간과 공항 위치를 물었다.상대는 30 초쯤 조회한 뒤 대답했다.[대표님, 최예원 씨가 변경한 건 목적지가 아니라 출발 시간입니다.][원래 어젯밤 출발 예정이었는데 오후 편으로 앞당기셨습니다. 어젯밤 8 시에 이미 하온시에 도착하셨습니다.]서이준의 눈이 커졌다. 화를 터뜨리기도 전에 비서가 급히 달려왔다."대표님, 재무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최예원 씨가 돈을 보내셨다고 합니다.""송금 메모에 '결혼 준비금 반환, 파혼 통보'라고 적혀 있습니다!"마지막으로 외할머니 댁에 온 건 반년 전이었다.막 서이준의 청혼을 받아들였을 때였다. 우리는 서둘러 비행기를 타고 돌아와 외할머니의 영정 앞에 이마를 바닥에 대고 세 번 절했다.서이준은 두 손을 모으고 한참이나 외할머니에게 말을 건넸다."할머니, 예원이 아프지 않게 지켜 주세요. 너무 무리하지 않게 해 주시고요.""반년 뒤에 다시 올게요. 예원이 시집가는 모습 보여 드릴 테니까, 꼭 집에 돌아와 계셔야 해요."그 말을 한 지 겨우 2 달 만에 이태린이 귀국했다.서이준은 조금씩 외할머니와의 약속도, 청혼하며 했던 맹세도 잊었다. 돌아가시기 전, 외할머니가 결혼 선물을 내 손에 쥐여 주셨을 때 울며 외쳤던 말까지도."할머니, 약속할게요. 예원이가 꼭 이거 끼고 행복하게 저한테 시집오게 할게요!"결국 그 선물들은 이태린의 목걸이와 펜던트가 되었다.서이준 자신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임유건이 골라 준 웨딩드레스로 갈아입는데, 사촌 오빠의 아이가 부겐빌레아 한 송이를 들고 달려왔다."고모, 고모부가 이거 전해 주래요!"받아 보니 쪽지도 함께 있었다.[예원아, 네가 지금 할머니 댁 방에서 내 신부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거 알아.][그런데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 꼭 꿈같아서. 눈을 뜨면 다시 그때로 돌아갈 것 같아. 대학 운동장에서 너랑 이준이가 나란히 걷는 모습을 몰래 바라보던 임유건으로.]대학 시절, 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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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한편, 해외의 고성에서 서이준은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다.아무도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서정호와 박미경도 몇 번이나 달래 보려다가 험악한 기세에 물러섰다.이태린은 손가락을 꼬며 서이준만 뚫어져라 바라봤다. 수십 통이나 전화를 거는 모습을 보다가, 이를 악물고 다가갔다."이준아, 진정해. 예원이랑 알고 지낸 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그렇게 억지 부릴 사람은 아닌 것 같아. 아직도 분이 안 가셨나 봐.""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아직 1 시간이나 남았잖아."예전에는 무슨 말이든 이태린이 입만 열면 서이준은 모든 걸 멈추고 대답해 주었다.이번에는 달랐다. 못 들은 사람처럼 휴대전화만 보며, 자신과 나를 모두 아는 친구 중 연락이 닿을 만한 사람들에게 거듭 전화했다.10 분이 더 흘러도 나와 연락이 닿았다는 사람은 없었다.메신저에 뜬, 메시지 전송 실패를 알리는 빨간 느낌표. 서이준이 주먹을 꽉 쥐고 돌아서서 고함쳤다."대체 언제 뜰 수 있다는 거야? 당장 하온시로 가야 한다고!"한쪽에서 계속 전화를 돌리던 비서가 뛰어왔다. 그러다 이태린을 보자 난감한 기색을 보였다."대표님, 그게...""말해! 계속 입 다물고 있을 거면 회사에서 나가!"이태린이 경고하듯 비서를 노려봤다. 잠깐 망설이던 비서가 결국 입을 열었다."본사에 확인해 보니 이태린 씨가 비행기 두 대를 먼저 귀국시켰다고 합니다. 3 일 뒤에 다시 데리러 오라고 하셨답니다.""현재 관제 구역에 진입해 있어서 임의로 회항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서이준이 홱 돌아봤다. 마침 이태린이 비서에게 경고하는 눈빛을 고스란히 보았다.이태린이 당황했다."아니야... 이준아, 내 말 좀 들어 봐. 조종사들 묵을 데가 없을 것 같아서 그랬어. 객실 다 찼다고 했잖아. 그래서 내가, 내가..."서이준이 분노로 굳은 얼굴로 한 걸음씩 다가섰다."공항에서 대기하라고 한 건 나야. 당연히 조종사들 방도 잡아 뒀고.""네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 회사 직원들한테 지시를 해?"이태린이 허둥대며 비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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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이태린이 숨도 못 쉴 듯 겁에 질렸다."서이준, 미쳤어? 놔!"결국 드레스는 벗겨지지 않았다. 누군가 소식 하나를 발견하면서 주위가 술렁였기 때문이다.비서도 그걸 보고 급히 서이준에게 보여 주었다.결혼을 축하하는 공지였다.[유강그룹 경사 안내: 임유건 대표가 오랜 사랑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오늘, 10 년 동안 마음에 품어 온 최예원 씨와 부부의 연을 맺었습니다!]그 아래에는 오늘 날짜가 적힌 혼인신고 확인서가 첨부돼 있었다.임유건과 최예원. 오늘 결혼.서이준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몸이 꼿꼿한 채 뒤로 넘어갔다.악몽이든 달콤한 꿈이든, 스스로를 속이며 꾸는 꿈이든. 깨어나는 데는 한순간이면 충분했다.결혼하고 2 일이 지난 날, 임유건과 나란히 침대에서 눈을 뜨며 그런 생각을 했다.어릴 때 외할머니 댁에서 쓰던 내 방이었다.예전에는 이 침대가 참 컸다. 뒹굴며 한참을 놀다 보면, 외할머니가 웃으며 아침밥을 들고 와 일어나라고 하셨다.그런데 지난 두 밤, 임유건과 몇 번이고 몸을 겹치고 나서야 알았다. 목이 쉬어 달아나려 해도 돌아서기 무섭게 발목을 잡혀 끌려왔던 이 침대가, 실은 참 작다는 걸.나는 이미 어른이 되어 있었다.결혼을 했고 남편이 생겼다. 머지않아 아이도 생길지 모른다.변하지 않은 건 하나였다. 이곳은 언제까지나 외할머니가 남겨 주신 내 보금자리라는 것."목말라?"임유건이 머리맡 보온병의 뚜껑을 돌려 열고 내밀었다. 뻔뻔한 웃음까지 지으면서.그제야 매일 밤 자기 전에 꼭 물 한 잔을 준비해 두던 이유를 알았다.한 잔을 단숨에 비우자 타들어 가던 목에서 겨우 소리가 나왔다. 그때 임유건이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서이준한테 왜 말 안 했어? 집안 사업이 다시 살아나서 이제 파산할 일은 없다고.""일찍 말했으면 집안 때문에 결혼하려는 게 아니란 걸 알았을지도 모르잖아."목을 가다듬고 잔을 내려놓았다."말했어. 그런데 그날 태린이가 술에 취했거든. 돌봐 주러 간다고 제대로 듣지도 않고 가 버렸어."말을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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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예원이만 아니었으면, 너 같은 놈이랑 친구 할 생각도 없었어."서이준이 이를 악물고 임유건을 가리키며 내게 말했다."처음부터 너한테 딴마음 품었던 놈이야. 어떻게 그런 놈이랑 결혼을 해?""내 말 좀 들어 봐. 태린이는 거기 두고 왔어. 평생 돌아오지도 못할 거야. 네 복수 내가 해 줬다고!""예원아, 아직 늦지 않았어. 이혼해. 나랑 결혼하면 돼. 할머니 앞에서 맹세했던 거 잊었어?"그 뻔뻔함에 헛웃음이 나왔다."먼저 잊은 건 너 아니야?""서이준, 내 복수를 해 줬다며. 할머니 선물도 되찾아 줬다며. 그런데 이태린 때문에 날 몇 번이고 힘들게 하고, 그 물건을 줘 버린 사람이 너잖아.""맞다, 이건 알아야겠네. 우리 집안 사업은 이미 회복됐어. 네 청혼을 받아들인 건 널 사랑했기 때문이야. 우리 집안 사정하고는 상관없어.""그 마음을 저버린 건 너야."서이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다급히 용서를 구하려 했다.나는 하품을 하며 임유건의 어깨에 기댔다."여보, 너무 졸려. 어젯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잤잖아... 좀 더 자자.""그러자, 여보."임유건이 서이준을 향해 눈썹을 까딱했다. 나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기 전, 두 마디를 더 보탰다."그래도 고맙긴 하네. 네가 청혼했다는 걸 알고 나서 거의 매일 예원이한테 연락했어. 다시 생각해 보라고.""처음에는 대꾸도 안 하더라. 네가 태린이한테만 정신이 팔린 덕분에 나한테도 기회가 온 거지. 결국 바라던 대로 됐고."서이준이 어떤 표정일지 돌아보지 않았다. 하품만 한 번 더 했다.'오늘 밤에는 또 유건이 마음대로 하게 두면 안 되는데.'결혼 휴가는 5 일뿐이었다. 밀린 일도 많았고, 집안 사업도 돌봐야 했다...게다가 임유건은 사들인 서림그룹 지분을 내게 주겠다고 고집했다. 오롯이 내 명의의 재산으로 만들겠다면서.'넘겨받으면 서이준네 사람들을 전부 내보낼까? 쓸 만한 사람 몇은 남겨 둘까... 제대로 생각해 봐야겠네.'다시 눈을 떴을 때 서이준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임유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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