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결혼식을 3 일 앞두고서야 알았다. 서이준이 예식 장소를 시골에 있는 외할머니 댁에서 소꿉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해외의 고성으로 바꿔 버렸다는 걸. 따지러 갔다가 친구에게 투덜대는 소리를 들었다. "태린이가 안목이 있어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평생 웃음거리가 될 뻔했어." 친구가 물었다. "할머니 댁에서 식 올리기로 약속했다며. 홧김에 결혼 안 하겠다고 하면 어쩌려고?" 서이준이 코웃음을 쳤다. "걔네 집안 망하기 직전이야. 나랑 결혼하는 것 말고 무슨 수가 있겠어? 파혼을 감당할 처지가 아니라고." "웨딩 업체에서 연락하라고 해 뒀어. 지금쯤 비행기 표 변경하느라 정신없을걸." 분하고 억울해서 가슴이 꽉 막혔다. 입술을 깨물다가 결국 돌아섰다. 3 일 뒤, 고성에서는 예정대로 결혼식이 열렸다. 나는 그곳으로 가는 항공편으로 바꾸지도, 식장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대신 외할머니의 오래된 마당에서 다른 남자와 반지를 나눠 꼈다. 서이준은 아직도 모른다. 내가 결혼하려 했던 건 살길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10 년 동안 그를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걸. 하지만 꿈에서 깨어났으니, 이제는 다른 선택을 해도 될 때였다.
View More"예원이만 아니었으면, 너 같은 놈이랑 친구 할 생각도 없었어."서이준이 이를 악물고 임유건을 가리키며 내게 말했다."처음부터 너한테 딴마음 품었던 놈이야. 어떻게 그런 놈이랑 결혼을 해?""내 말 좀 들어 봐. 태린이는 거기 두고 왔어. 평생 돌아오지도 못할 거야. 네 복수 내가 해 줬다고!""예원아, 아직 늦지 않았어. 이혼해. 나랑 결혼하면 돼. 할머니 앞에서 맹세했던 거 잊었어?"그 뻔뻔함에 헛웃음이 나왔다."먼저 잊은 건 너 아니야?""서이준, 내 복수를 해 줬다며. 할머니 선물도 되찾아 줬다며. 그런데 이태린 때문에 날 몇 번이고 힘들게 하고, 그 물건을 줘 버린 사람이 너잖아.""맞다, 이건 알아야겠네. 우리 집안 사업은 이미 회복됐어. 네 청혼을 받아들인 건 널 사랑했기 때문이야. 우리 집안 사정하고는 상관없어.""그 마음을 저버린 건 너야."서이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다급히 용서를 구하려 했다.나는 하품을 하며 임유건의 어깨에 기댔다."여보, 너무 졸려. 어젯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잤잖아... 좀 더 자자.""그러자, 여보."임유건이 서이준을 향해 눈썹을 까딱했다. 나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기 전, 두 마디를 더 보탰다."그래도 고맙긴 하네. 네가 청혼했다는 걸 알고 나서 거의 매일 예원이한테 연락했어. 다시 생각해 보라고.""처음에는 대꾸도 안 하더라. 네가 태린이한테만 정신이 팔린 덕분에 나한테도 기회가 온 거지. 결국 바라던 대로 됐고."서이준이 어떤 표정일지 돌아보지 않았다. 하품만 한 번 더 했다.'오늘 밤에는 또 유건이 마음대로 하게 두면 안 되는데.'결혼 휴가는 5 일뿐이었다. 밀린 일도 많았고, 집안 사업도 돌봐야 했다...게다가 임유건은 사들인 서림그룹 지분을 내게 주겠다고 고집했다. 오롯이 내 명의의 재산으로 만들겠다면서.'넘겨받으면 서이준네 사람들을 전부 내보낼까? 쓸 만한 사람 몇은 남겨 둘까... 제대로 생각해 봐야겠네.'다시 눈을 떴을 때 서이준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임유건이
이태린이 숨도 못 쉴 듯 겁에 질렸다."서이준, 미쳤어? 놔!"결국 드레스는 벗겨지지 않았다. 누군가 소식 하나를 발견하면서 주위가 술렁였기 때문이다.비서도 그걸 보고 급히 서이준에게 보여 주었다.결혼을 축하하는 공지였다.[유강그룹 경사 안내: 임유건 대표가 오랜 사랑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오늘, 10 년 동안 마음에 품어 온 최예원 씨와 부부의 연을 맺었습니다!]그 아래에는 오늘 날짜가 적힌 혼인신고 확인서가 첨부돼 있었다.임유건과 최예원. 오늘 결혼.서이준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몸이 꼿꼿한 채 뒤로 넘어갔다.악몽이든 달콤한 꿈이든, 스스로를 속이며 꾸는 꿈이든. 깨어나는 데는 한순간이면 충분했다.결혼하고 2 일이 지난 날, 임유건과 나란히 침대에서 눈을 뜨며 그런 생각을 했다.어릴 때 외할머니 댁에서 쓰던 내 방이었다.예전에는 이 침대가 참 컸다. 뒹굴며 한참을 놀다 보면, 외할머니가 웃으며 아침밥을 들고 와 일어나라고 하셨다.그런데 지난 두 밤, 임유건과 몇 번이고 몸을 겹치고 나서야 알았다. 목이 쉬어 달아나려 해도 돌아서기 무섭게 발목을 잡혀 끌려왔던 이 침대가, 실은 참 작다는 걸.나는 이미 어른이 되어 있었다.결혼을 했고 남편이 생겼다. 머지않아 아이도 생길지 모른다.변하지 않은 건 하나였다. 이곳은 언제까지나 외할머니가 남겨 주신 내 보금자리라는 것."목말라?"임유건이 머리맡 보온병의 뚜껑을 돌려 열고 내밀었다. 뻔뻔한 웃음까지 지으면서.그제야 매일 밤 자기 전에 꼭 물 한 잔을 준비해 두던 이유를 알았다.한 잔을 단숨에 비우자 타들어 가던 목에서 겨우 소리가 나왔다. 그때 임유건이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서이준한테 왜 말 안 했어? 집안 사업이 다시 살아나서 이제 파산할 일은 없다고.""일찍 말했으면 집안 때문에 결혼하려는 게 아니란 걸 알았을지도 모르잖아."목을 가다듬고 잔을 내려놓았다."말했어. 그런데 그날 태린이가 술에 취했거든. 돌봐 주러 간다고 제대로 듣지도 않고 가 버렸어."말을 마치
한편, 해외의 고성에서 서이준은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다.아무도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서정호와 박미경도 몇 번이나 달래 보려다가 험악한 기세에 물러섰다.이태린은 손가락을 꼬며 서이준만 뚫어져라 바라봤다. 수십 통이나 전화를 거는 모습을 보다가, 이를 악물고 다가갔다."이준아, 진정해. 예원이랑 알고 지낸 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그렇게 억지 부릴 사람은 아닌 것 같아. 아직도 분이 안 가셨나 봐.""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아직 1 시간이나 남았잖아."예전에는 무슨 말이든 이태린이 입만 열면 서이준은 모든 걸 멈추고 대답해 주었다.이번에는 달랐다. 못 들은 사람처럼 휴대전화만 보며, 자신과 나를 모두 아는 친구 중 연락이 닿을 만한 사람들에게 거듭 전화했다.10 분이 더 흘러도 나와 연락이 닿았다는 사람은 없었다.메신저에 뜬, 메시지 전송 실패를 알리는 빨간 느낌표. 서이준이 주먹을 꽉 쥐고 돌아서서 고함쳤다."대체 언제 뜰 수 있다는 거야? 당장 하온시로 가야 한다고!"한쪽에서 계속 전화를 돌리던 비서가 뛰어왔다. 그러다 이태린을 보자 난감한 기색을 보였다."대표님, 그게...""말해! 계속 입 다물고 있을 거면 회사에서 나가!"이태린이 경고하듯 비서를 노려봤다. 잠깐 망설이던 비서가 결국 입을 열었다."본사에 확인해 보니 이태린 씨가 비행기 두 대를 먼저 귀국시켰다고 합니다. 3 일 뒤에 다시 데리러 오라고 하셨답니다.""현재 관제 구역에 진입해 있어서 임의로 회항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서이준이 홱 돌아봤다. 마침 이태린이 비서에게 경고하는 눈빛을 고스란히 보았다.이태린이 당황했다."아니야... 이준아, 내 말 좀 들어 봐. 조종사들 묵을 데가 없을 것 같아서 그랬어. 객실 다 찼다고 했잖아. 그래서 내가, 내가..."서이준이 분노로 굳은 얼굴로 한 걸음씩 다가섰다."공항에서 대기하라고 한 건 나야. 당연히 조종사들 방도 잡아 뒀고.""네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 회사 직원들한테 지시를 해?"이태린이 허둥대며 비서를
전화는 금방 연결됐다. 서이준이 내 신원 정보를 불러 주고, 도착 시간과 공항 위치를 물었다.상대는 30 초쯤 조회한 뒤 대답했다.[대표님, 최예원 씨가 변경한 건 목적지가 아니라 출발 시간입니다.][원래 어젯밤 출발 예정이었는데 오후 편으로 앞당기셨습니다. 어젯밤 8 시에 이미 하온시에 도착하셨습니다.]서이준의 눈이 커졌다. 화를 터뜨리기도 전에 비서가 급히 달려왔다."대표님, 재무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최예원 씨가 돈을 보내셨다고 합니다.""송금 메모에 '결혼 준비금 반환, 파혼 통보'라고 적혀 있습니다!"마지막으로 외할머니 댁에 온 건 반년 전이었다.막 서이준의 청혼을 받아들였을 때였다. 우리는 서둘러 비행기를 타고 돌아와 외할머니의 영정 앞에 이마를 바닥에 대고 세 번 절했다.서이준은 두 손을 모으고 한참이나 외할머니에게 말을 건넸다."할머니, 예원이 아프지 않게 지켜 주세요. 너무 무리하지 않게 해 주시고요.""반년 뒤에 다시 올게요. 예원이 시집가는 모습 보여 드릴 테니까, 꼭 집에 돌아와 계셔야 해요."그 말을 한 지 겨우 2 달 만에 이태린이 귀국했다.서이준은 조금씩 외할머니와의 약속도, 청혼하며 했던 맹세도 잊었다. 돌아가시기 전, 외할머니가 결혼 선물을 내 손에 쥐여 주셨을 때 울며 외쳤던 말까지도."할머니, 약속할게요. 예원이가 꼭 이거 끼고 행복하게 저한테 시집오게 할게요!"결국 그 선물들은 이태린의 목걸이와 펜던트가 되었다.서이준 자신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임유건이 골라 준 웨딩드레스로 갈아입는데, 사촌 오빠의 아이가 부겐빌레아 한 송이를 들고 달려왔다."고모, 고모부가 이거 전해 주래요!"받아 보니 쪽지도 함께 있었다.[예원아, 네가 지금 할머니 댁 방에서 내 신부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거 알아.][그런데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 꼭 꿈같아서. 눈을 뜨면 다시 그때로 돌아갈 것 같아. 대학 운동장에서 너랑 이준이가 나란히 걷는 모습을 몰래 바라보던 임유건으로.]대학 시절, 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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