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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일으키는 남자
기적을 일으키는 남자
Author: 호안난어

제1화

Author: 호안난어
윤태호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욕실 안에서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동안 참느라 진짜 곤욕이었어.”

“나 아직 샤워 중인데 뭐가 그렇게 급해요...”

쿵!

윤태호는 날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안색이 창백해졌다.

장여울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장여울은 윤태호의 여자 친구였는데 두 사람은 의대 동기였고 사귄 지 2년 정도 되었다. 졸업하고 나서는 함께 미주 병원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둘 다 인턴이었다.

윤태호는 장여울이 자신을 배신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욕실 안에서 신음이 들려오자 윤태호는 서서히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주먹을 꽉 쥔 채 욕실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는 안에 있는 남자가 대체 누구인지 보고 싶었다.

그러나 욕실 문 앞에 섰을 때 그는 우뚝 멈춰 섰다.

그 남자가 누군지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겨우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지만 윤태호는 장여울과 아주 많이 멀어진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한때는 서로를 사랑했으니 마지막으로 체면을 지켜주고 싶었다.

윤태호는 심호흡을 한 뒤 그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몸을 돌렸다. 그런데 이때 마침 욕실 안에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끝내요. 태호 이제 곧 퇴근해서 돌아올 거예요. 태호한테 들키면 끝장이에요.”

“들켜도 상관없어. 내가 윤태호를 무서워할 것 같아?”

윤태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남자의 목소리가 귀에 익은 탓이었다.

장여울이 말했다.

“정말 못됐네요... 참, 나 정직원 시켜준다던 건 어떻게 됐어요?”

“걱정하지 마. 우리 아버지가 부원장이잖아. 우리 아버지가 알아서 하실 거야.”

‘이 자식!’

윤태호는 욕실 안에 있는 남자가 곽진우임을 확신했다.

곽진우는 미주 병원의 외과의였는데 아버지가 미주 병원의 부원장이라는 이유로 평소 건방을 떨기로 유명했다.

외과에서 일하기 시작한 날부터 윤태호는 곽진우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을 많이 들었었다. 예를 들면 임신한 여자 친구를 협박해서 낙태하게 한다든가, 유부녀에게 집적거린다거나, 예쁜 간호사를 핍박한다거나...

한마디로 곽진우는 인간 말종이었다.

‘정직원이 되고 싶어서 곽진우 같은 쓰레기랑 관계를 맺다니, 그럴 가치가 있나?’

윤태호는 가슴이 아렸다.

욕실 안, 장여울이 물었다.

“그러면 윤태호는요?”

“윤태호는 가망이 없지.”

곽진우가 말했다.

“아버지한테 여쭤봤는데 이번에 정직원이 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라고 해. 다른 사람들은 다음 해까지 기다려야 해.”

장여울이 말했다.

“윤태호는 시험에서 만점을 받았고 인턴으로 일하는 동안에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게다가 백 교수님이 굉장히 아끼신다고요.”

“백 교수님이 아끼시면 뭐 해? 결정권은 우리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데 말이야.”

곽진우가 말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러더라. 백 교수님이 찾아와서 윤태호를 정직원으로 삼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고 말이야. 나는 백 교수님이 윤태호에게 왜 그렇게 잘해주는 건지 모르겠어. 설마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인가?”

“뭔 헛소리예요? 백 교수님처럼 예쁜 분이 왜 윤태호를 만나겠어요?”

“하긴. 백 교수님은 매일 무표정한 얼굴로 은근히 사람들을 멀리하지. 딱 봐도 냉미녀 스타일이야.”

“그래서 아버지한테 누구를 정직원으로 만들지 물어보긴 했어요?”

“당연히 너지. 윤태호 걔도 참 안 됐다. 정직원도 못 되고 여자 친구가 바람까지 피웠으니 말이야.”

“왜요? 윤태호가 불쌍해요?”

장여울이 물었다.

“불쌍하긴.”

곽진우는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면 윤태호도 참 멍청해. 둘이 2년 동안 사귀었다면서 한 번도 안 잔 거야? 뭐 혼전순결주의, 그런 건가?”

“됐어요. 그만 얘기해요!”

“내가 윤태호 뭐라고 했다고 그러는 거야? 그럴 만도 하지. 2년 동안 만났으니까...”

“헛소리 좀 하지 마요. 내가 걔 같은 사생아를 왜 감싸겠어요?”

장여울은 같잖다는 듯이 말했다.

문밖에 있던 윤태호는 그 말을 듣고 호흡이 가빠지면서 얼굴이 벌게졌고 눈에서는 불이 뿜어져 나올 듯했다.

사생아...

아주 모욕적인 말이었지만 사실이었다. 윤태호는 사생아가 맞았다.

그가 사생아라는 이유로 그의 어머니는 집안에서 쫓겨났다. 그것은 윤태호가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비밀이었다.

그는 오직 장여울에게만 그 사실을 얘기했었다.

“윤태호가 사생아라고? 어떻게 된 거야? 빨리 말해 봐.”

곽진우가 묻자 장여울이 말했다.

“윤태호는 지금까지도 자기 친아버지가 누군지 몰라요.”

“세상에, 자기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다고? 진짜야?”

“네. 진짜 몰라요.”

“그러면 걔 어머니는 누구랑 자서 걔를 낳았대?”

곽진우가 말을 이어갔다.

“설령 개랑 잤다고 해도 그 개의 이름은 알아야 할 거 아니야...”

윤태호의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왔다. 윤태호는 어머니를 모욕하는 사람을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결국 분노한 그는 욕실 문을 박찼다.

쾅!

욕실 문이 벌컥 열리자 안에 있던 두 사람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꺅!”

장여울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빠르게 타월로 몸을 가렸고, 곽진우도 깜짝 놀라 황급히 욕조 안에서 벌떡 일어났다. 문밖에 서 있던 사람이 윤태호였다는 걸 알게 된 그는 긴장이 풀려서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여울아, 누가 왔는지 봐봐.”

장여울은 문가를 보고 흠칫했다.

“윤태호, 언제 돌아온 거야?”

“꽤 됐어. 내가 두 사람을 방해했나 보네.”

안색이 어두워진 윤태호는 애써 분노를 억눌렀다.

장여울이 해명했다.

“태호야, 네가 오해한 거야. 사실은 말이야...”

“내가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설마 내가 본 게 전부 가짜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지? 장여울, 네가 이런 사람일 줄은 몰랐다.”

윤태호가 따져 묻자 장여울은 수치심과 함께 분노를 느꼈다.

그녀는 해명하는 것을 포기하고 차갑게 말했다.

“내가 눈이 삐었었나 봐. 너처럼 무능력하고 아무짝에도 없는 놈을 만났던 걸 보면 말이야. 너랑 2년 동안 만났는데 나한테 이딴 싸구려 팔찌나 줬잖아. 집안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보물은 무슨.”

장여울은 자기가 끼고 있던 옥팔찌를 빼서 윤태호에게 던지며 말했다.

“앞으로 난 내 갈 길 갈게. 너도 네 갈 길 가. 너랑 난 이제 아무 사이 아니야.”

윤태호는 멍한 얼굴로 장여울을 바라보았다. 마음이 차게 식는 기분이 들었다.

그가 사랑하던 여자가 어쩌다 저렇게 변한 걸까?

곽진우는 장여울의 허리를 감싸더니 미소 띤 얼굴로 윤태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현장에서 라이브로 보고 싶어서 그래? 나랑 여울이가 보여줄게.”

“개소리하지 마.”

윤태호가 곽진우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퍽!

곽진우는 주먹을 맞고 코피를 흘렸다.

“감히 날 때려? 죽여버리겠어!”

곽진우가 윤태호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곽진우는 190cm의 거구로 윤태호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게다가 평소 꾸준히 헬스를 해서 아주 건장했기에 윤태호는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윤태호는 곧 곽진우에게 맞아 바닥에 쓰러졌다.

“사생아 따위가 감히 날 때려? 목숨 아까운 줄 모르네.”

곽진우는 윤태호를 계속 때리다가 힘에 부쳤는지 발로 윤태호의 손을 밟아 그의 손가락 두 개를 부러뜨렸다.

“으악...”

윤태호는 크게 비명을 지른 뒤 기절해 버렸다.

“맷집도 안 좋으면서 나한테 주먹을 휘둘러? 멍청한 놈.”

곽진우는 윤태호를 향해 침을 뱉었다. 이때 그는 윤태호의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피가 옥팔찌를 빨갛게 물들이는 걸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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