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한지영은 너무 화가 나서 배가 불러오른 몸이라도 금세라도 소매를 걷어붙일 기세였다.하지만 임유진이 급히 손을 뻗어 그녀를 말렸다.그리고 다시 탁윤을 향해 조용히 시선을 내렸다.“윤아, 너 정말 이 억울한 일을 그대로 참을 거야? 엄마까지 같이 욕먹게 두고 싶어?”그녀의 목소리는 단단하지만 따뜻했다.“너 아직 어리니까 네가 다 감당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이모랑 지영 이모가 도와줄게. 같이 해결하자, 응?”탁유미도 곁에서 떨리는 손으로 수화로 말을 전했다.“사실대로 말해, 윤아. 엄마 괜찮아. 이제는 숨기지 않아도 돼.”탁윤은 잠시 주저하다가 결국 손짓으로 임유진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 애가 일부러 자신을 밀쳤고 넘어졌을 때 보청기를 빼앗으려 했다는 것. 심지어 그것을 땅에 던져 밟으려 해서 막으려다 싸움이 났다는 것까지...임유진의 눈가가 서서히 붉어졌다.“그 애들이 자주 너 괴롭혔니?”탁윤은 고개를 끄덕였다.“왜? 이유가 있었어?”탁윤은 다시 작은 손을 움직였다.그 모습에 임유진은 코끝이 시큰해졌고 탁유미는 아이를 껴안은 채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윤아...”그리고 옆에서 수화를 모르는 한지영이 초조하게 물었다.“유진아, 윤이가 뭐라고 한 거야? 왜 언니가 이렇게 울어?”임유진이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낮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윤이가... 그 애들이 평소에도 자주 괴롭혔다고 해. 자기 엄마가 감옥 다녀왔다고 또 자기가 귀가 들리지 않는다며 같은 반에 있을 자격이 없다고... 그렇게 말했대.”한지영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초등학교 3학년짜리 애들이... 그런 말을?”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머리를 저었다.고작 어린아이들이 저런 악의와 편견을 배웠다니.그녀가 생각하는 순진한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유미 언니가 오심으로 감옥에 다녀온 게, 윤이가 귀가 들리지 않는 게... 이토록 잔인한 이유가 될 수 있나?’그 순간 한지영의 휴대폰이 울렸다.휴대폰 너머로 백연신의 목소
임유진이 고개를 들자 한 남자와 여자가 탁윤과 비슷한 체격의 남자아이를 데리고 교무실 안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그 아이의 겉에 드러난 상처는 탁윤보다 훨씬 가벼워 보였다.누가 봐도 탁윤이 더 크게 다쳤고 의무실에 가야 할 사람은 오히려 탁윤이었다.아까 목소리를 높였던 건 그 남자였다.그는 여전히 오만하고 비아냥거리는 표정으로 임유진 일행을 내려다봤고 옆의 여자는 팔짱을 낀 채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법으로 우리를 겁주겠다? 좋아요. 그럼 지금 바로 저희 쪽 변호사를 부를게요. 누가 옳은지 직접 보죠.”담임 선생님은 그 말에 황급히 앞으로 나서서 눈치를 보며 아부하는 말들을 늘어놓았다.그 사이 그 아이는 탁윤을 향해 혀를 내밀고 얼굴을 찡그리며 놀리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아이답지 않게 뻔뻔하고 도발적인 태도였다.그의 행동에 탁윤은 옆구리에 드리운 두 주먹을 꽉 쥐었고 붉어진 얼굴에는 분노와 억울함이 뒤섞여 있었다.이를 지켜보던 한지영이 결국 폭발했다.“좋아요, 그럼 법정에서 보죠. 우리 윤이는 보청기까지 잃어버렸어요. 저희도 이 일을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어요!”그 남자가 비웃으며 맞받았다.“뭐라고요? 보청기 잃어버린 걸 우리 탓으로 돌리겠다고요? 자기 아들 물건 잃어놓고 남한테 뒤집어씌우는 거예요?”그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우리 아들은 그 보청기를 주워서 돌려주려다 오히려 맞았어요! 사과를 받아야 할 쪽은 우리죠. 그런데 뻔뻔하게 큰소리라니! 들으니까 그쪽 애 엄마도 감옥 갔다 왔다면서요? 어쩐지 역시 피는 못 속인다더니!”그 말에 탁유미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탁윤도 소리를 들을 수 없었지만 입모양으로 그 말들을 읽어냈다.그 순간 그는 얼굴이 확 달아오르며 분노가 치밀었고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몸을 움찔거렸다.하지만 탁유미가 급히 탁윤을 끌어안으며 말렸다.“윤아, 안 돼.”임유진이 윤이 쪽으로 돌아서서 조용히 말했다.“윤아, 이모한테 사실대로 말해줘. 싸움이 어떻게 된 거야? 정말 네가 먼저 때린 거
하지만 탁윤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그때 임유진은 무심코 발견했다. 원래 탁윤의 귀에 있어야 할 보청기가 사라진 것이었다.임유진은 미간이 저절로 좁혀졌다.그녀가 다가가 탁윤의 두 뺨을 살며시 감싸며 물었다.“윤아, 보청기는 어디 갔니? 왜 없지?”임유진은 탁윤이 입 모양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 말에 탁윤의 얼굴이 창백해졌고 탁유미와 한지영도 그제야 보청기가 없어진 것을 알아차렸다.“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보청기가 왜 없어진 거야?”그때 담임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사실은 이렇습니다. 윤이가 친구들과 싸우는 과정에서 보청기가 학교 배수구로 떨어져서 찾기 어렵게 되었어요.”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임유진이 담임에게 물었다.“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왜 싸웠는지도 설명해 주세요.”담임은 사건의 경위를 설명했다.“윤이의 보청기가 바닥에 떨어졌는데 다른 친구가 주워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윤이가 화를 내며 그 친구를 때리면서 다른 몇 명까지 휘말리게 되었고 결국 보청기가 배수구로 떨어진 겁니다.”하지만 임유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탁윤은 결코 무고하게 싸우는 아이가 아니었으니까.그러니 담임 선생님의 말처럼 단순한 사고일 리 없었다.예상대로 임유진이 탁윤을 바라보자 탁윤의 얼굴에는 억울함이 가득했다.담임은 알지 못했다. 탁윤은 귀로는 듣지 못하지만 담임의 말을 눈으로 읽고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윤이가 싸운 이유, 선생님께서 조사해 보셨나요? 그리고 윤이 옆에 있던 다른 아이들은 지금 어디 있죠?”임유진이 따져 물었다.그러자 담임이 답했다.“그 아이들은 의료실에서 상처 치료 중이고 곧 돌아올 예정입니다. 부모님께도 연락했습니다. 윤이와 윤이 어머님께서는 그 아이들에게 사과와 치료비를 보상해야 합니다. 상대측도 과하지 않게 요구할 테니 그렇게 정리하면 될 것 같습니다.”하지만 임유진은 냉정하게 반박했다.“그럼 우리도 상대방에게 보청기 배상과 윤이에 대한 사과를 요구할 수 있지 않을까요?”그러
한지영과 임유진은 학교 앞에서 탁유미의 분식집으로 향했다.오후 두 시가 조금 지난 시간, 손님이 뜸해지자 탁유미는 모처럼 여유를 내어 그들을 맞았다.탁유미는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는 임유진을 바라보며 덩달아 미소를 지었다.이제야 임유진도 긴 고생 끝에 행복을 찾은 것 같았다.그리고 동시에 자신처럼 되지 않아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아이까지 태어나면 더 시끌벅적해지겠네요.”탁유미가 말했다.“이제 백연신 씨랑 다시 잘 지내게 됐다니 나도 정말 기뻐요. 참, 결혼하고 나면 어디에 정착할 생각이에요?”“아마도 계속 S 시에 있을 것 같아요.”임유진이 웃으며 대답했다.“연신 씨가 그러더라고요. 제 부모님이 심성에 오래 사셔서 갑자기 다른 도시에 가면 불편하실 거라고요. 제가 따로 떨어져 있으면 부모님이 외로워하실 테니까 나중에 S 시에 백선 그룹의 지사를 세워 본사 급으로 키워보자고 했어요.”“와, 정말 유진 씨를 많이 아끼는군요.”탁유미가 감탄하듯 말했다.“지영 씨랑 유진 씨, 둘 다 이제 잘돼서... 나까지 괜히 뿌듯해요.”“유미 언니는 늘 우리 걱정만 하잖아요.”임유진이 웃으며 말했다.“언니는 자기 일은 생각 안 해요?”“나?”탁유미는 잠시 멍해졌다.“언니는 맨날 ‘나는 그냥 이 분식집이나 하면서 지낼래’ 이러잖아요. 여기 장사는 괜찮아도 윤이가 점점 크면서 돈 들어갈 일 많아질 테고 어머님 연세도 있으시잖아요.나중에 아프시거나 하면 병원비도 만만치 않을 텐데요.”임유진의 말에 탁유미의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그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그녀 역시 그런 미래를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다만 지금의 이런 평범한 하루하루가 그녀에게는 이미 충분히 감사한 나날이었다.그때 한지영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유미 언니, 혹시 다른 일 해볼 생각은 없어요? 예를 들어 식당을 차린다든가. 나랑 유진이가 투자할 수도 있어요. 언니는 운영만 맡고 기술 투자로 이름만 올려도 돼요.장사 잘되면 프랜차이즈로 키워도 좋잖아요. 분식집
‘혹시 현이가 돌아온 걸까?’진해원은 마음속으로 조심스럽게 추측했다.하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밖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그가 기다리던 그 작은 그림자는 끝내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았다.결국 작은 가슴 한켠에 서늘한 공기가 번져갔고 진해원은 다시 이불 속으로 몸을 더 깊숙이 웅크렸다.따뜻해야 할 이불은 더 싸늘하게 느껴지기만 했다.그러다가 그의 머릿속에 문득 그 ‘아버지’라고 불러야 하는 남자의 말이 떠올랐다.‘너는 그저 이 집에 얹혀사는 아이일 뿐이야. 더구나 네 엄마는 이 집 사람들에게는 죄인이야. 지금은 현이 곁을 떠나기 싫겠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거다. 네가 진짜 원하는 걸 얻으려면 결국 녹원시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하지만 진해원이 진심으로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그저 현이 곁에 있고 싶었다.현이가 자신이 피아노를 치는 걸 좋아한다면 손끝이 다 닳아 아파도 계속 칠 수 있었다.현이가 웃는다면 그걸로 충분했으니까.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하지만 꿈속에서도 평온은 오지 않았다.계속해서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붙잡혀가던 순간, 차가운 수감실 바닥에 누워 있던 어머니.그리고 마지막으로 절망에 찬 목소리로 자신에게 남긴 말.‘너와 현이는 절대 친구가 될 수 없어.’그 말이 마치 저주처럼 그의 귓가에 맴돌았다.‘절대 친구가 될 수 없어...’‘절대... 친구가...’그 말이 계속해서 그의 마음속에서 메아리쳤다.무서웠다.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다.‘아니야, 우린 친구야. 현이가 직접 말했잖아, 우린 친구라고...’하지만 꿈속의 어둠은 점점 짙어져 갔다.그 어둠은 그를 삼켜버릴 듯이 퍼져나가며 세상에 홀로 남은 것처럼 모든 빛이 사라졌다.그리고 온통 차가운 공기만이 감돌고 있을 뿐이었다.‘이 어둠을 누가 좀... 없애 줄 수 없을까? 누가... 제발... 나 좀... 도와줘...나 혼자 있고 싶지 않아... 무서워... 제발...’그러던 그때.“해원아, 해원아!”맑고
“정말 많아요. 예를 들면 같이 게임도 하고 안아주고 뽀뽀도 하고, 폭신폭신하고 통통한 아기랑 껴안고 잠도 자고요. 아, 그리고 같이 노래도 듣고 같이 춤도 출 수 있어요. 요즘 제가 자주 보는 남성 그룹 있잖아요? 그 안무 중 일부는 아기들이 춰도 꽤 귀엽더라고요!”한지영은 행복한 상상에 얼굴이 환해졌지만 백연신은 무심코 얼굴을 찡그렸다.그리고 직감적으로 몇 년 후 가장 걱정했던 일이 현실로 닥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갔다.만약 그들의 아이가 그녀를 따라 아이돌을 쫓아다닌다면... 그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했다.하지만 한지영은 꿈과 희망 속에 여전히 들떠 있었다.“나중에 내가 아기를 데리고 그 남성 그룹을 만나러 가면 아기가 그분들한테 뽀뽀도 받겠죠... 와, 생각만 해도 난 정말 행복하겠어요! 어릴 때 우리 엄마는 날 데리고 스타를 만나러 간 적이 없거든요.”백연신은 머릿속으로 미래의 장모가 이 말을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맞다, 연신 씨. 나중에 제가 기형아 검사 다 끝나고 아무 문제 없으면 DZM이 S 시에 공연하러 올 때, 사인이나 사진 같이 찍어도 될까요?”한지영이 눈을 반짝이며 백연신을 바라보았다.그 말의 속뜻은 자연스럽게 백연신더러 방법을 찾아 달라는 요청이었다.백연신은 순간 머리가 지끈거렸다.DZM은 그녀가 요즘 빠져 있는 남성 그룹이었다.“그들이 S 시에 공연하러 온다고 임신 6개월 임산부가 배를 안고 콘서트장 가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해?”“콘서트는 안 가고 그냥 가까이서 보고 손만 잡고 올 거예요.”한지영이 급히 말했다.비록 공연을 듣고 싶긴 하지만, 지금 몸 상태로는 확실히 무리였다.아이를 낳고 나서야 겨우 콘서트도 갈 수 있을 터였다.“연신 씨, 의사가 말했잖아요. 임신부는 기분 좋게 지내야 한다고.”한지영이 들뜬 목소리로 덧붙였다.백연신은 결국 한숨을 쉬며 말했다.“알았어. 나중에 내가 데리고 가서 사인도 받고 사진도 찍고 손도 잡게 해줄게.”그에게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