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의 문제를 해결한 후, 시후는 윤우선과 헤어졌다. 시후가 집으로 간 사이, 크리스마스 선물 꾸러미를 받은 아이처럼 행복한 표정으로 가방을 껴안은 장모 윤우선은 돈을 입금하러 은행으로 향했다.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유나의 구두가 있는 걸 보고 곧장 방으로 갔다. 방에 들어가자 놀라움과 기쁨에 흥분한 아내가 전화를 끊는 것이 보였다."유나 씨, 누구 전화였어요?"유나는 방방 뛰며 소리 질렀다. "베프 여빈이! 권여빈 기억해요?""아~ 기억나요." 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같은 중고등학교 다니고 제일 친했죠. 제 기억이 맞다면... 네오플램 그룹 외동딸이었죠, 아마?""맞아요!"시후는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한국에는 여행 차 돌아오는 건가요?""아뇨! 한국에 취직해서 돌아오는 거래요!""여빈 씨가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고 들었는데, 외국에서 취직하지 않고..."유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자세한 건 저도 잘 모르는데, 엠그란드 그룹에서 일하게 됐다고 했어요.""부모님 회사에 안 들어가고요?"시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의 머릿속에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네오플램 그룹은 LCS 그룹만큼은 아니지만 세계적인 대기업 중 하나다. 네오플램이 아니라 굳이 엠그란드 그룹에 일하러 한국에 돌아올 이유가 없어 보였다.'흠...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 건가?'그녀의 갑작스런 귀국 소식에 의심을 지울 수 없었던 시후는, 권여빈이 엠그란드 그룹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이태리 부회장을 시켜 그녀의 배경과 입사 동기를 조사하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그때 유나가 목을 매만지며 우물쭈물 말했다. "저… 시후 씨, 내일 엠그란드 그룹이랑 미팅이 있어서 여빈이 마중을 못 갈 것 같은데… 혹시 시후 씨가 저 대신 여빈이 마중 가서, 점심 좀 사 줄 수 있을까요?"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럼 제가 내일 공항에 나가 볼게요.""돈은 신경 쓰지 말고 좋은 곳에 데려가 주세요! 이 카드로..."그녀가 지갑을 꺼내
시후는 이태리 부회장에게 권여빈의 동향에 주시하고 수상한 움직임이 있으면 즉시 보고하도록 지시했다.이 부회장과 이야기를 나눈 뒤, 시후는 여빈을 마중하러 택시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에 도착한 시후는 택시에서 내려 입국장으로 가려는데 벤츠 S클래스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그의 앞에서 멈춰 섰다.멈춰선 차를 쳐다보자 차의 조수석 쪽 창문이 내려갔다. “네가 왜 여기 있는데?"라며 유나의 사촌오빠인 김혜준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전 유나 씨의 친구를 데리러 왔는데, 혜준 씨야말로 왜 여기 있는 거죠?"시후도 차 안에 있는 낯익은 얼굴들을 보니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김혜준 말고도 임현우와 김혜빈도 있었다."설마 여빈 씨를 말하는 거야? 여빈 씨를 만나기로 한 건 우리라고, 넌 꺼져.""댁이나 꺼지세요." 시후는 코웃음 치며 말했다.시후는 그들을 무시하고 바로 공항 도착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혜준은 얼굴이 시뻘개져서는 소리 지르려는 걸 여동생 혜빈이 말렸다. "여빈이가 곧 나올 거니까 오빠가 참아. 할머니께서 여빈이한테 좋은 인상 남기라고 신신당부했잖아. 둘이 잘 돼서 결혼하면 집안에서 오빠의 주가가 단번에 오를 거라고! 저런 루저는 그냥 내버려둬."혜빈이 만류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여기에 온 이유를 완전히 잊을 뻔했다.사실 권여빈을 마중 나온 건 둘째고, 그가 오늘 공항까지 나온 이유는 그녀에게 이성으로서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었다.권여빈의 부친이 경영 중인 네오플램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기업 중 하나이다. 만약 혜준이 그녀와 결혼한다면 WS 그룹은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그래서 일단 그는 시후에게 욕을 퍼붓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서둘러 주차한 뒤 입국장으로 달려갔다.그 때 입국장 문이 열렸다. 입국장을 나서는 사람들 사이로 모델처럼 키가 크고 늘씬한 젊은 여성 한 명이 눈에 띄었다. 찰랑거리는 긴 검정 생머리에 스키니 진을 입어 늘씬한 각선미와 얇은 허
혜준도 헤븐 스프링스에 VIP룸으로 예약해 뒀다는 말에 시후는 조금 놀랐다.이런 우연이 다 있나. 이화룡이 분명 헤븐 스프링스를 자기가 소유하고 있다고 했지? 당연히 제일 좋은 자리로 준비해 두었다고 했었지?한편 임현우가 놀라며 말했다. "이야~ 김혜준, 요즘 거기 인기가 많아서 몇 달치 예약이 꽉 차 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예약한 거야?""솔직히 VVIP룸 예약하는 건 힘들지만 VIP룸 정도는 간단하지." 혜준이 의기양양하게 웃었다.사실 신옥희 회장도 VIP룸으로 예약하기 위해서 지인들에게 부탁해야 했다. 여빈은 미국에 있을 때도 헤븐 스프링스에 대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에 당황하며 말했다. "우리 사이에 그렇게 비싼 데 갈 필요 없어!" 혜준은 수줍어하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여빈이, 네가 온다는데 어떻게 아무 데나 갈 수 있겠어?"그러고 나서 그는 시후를 향해 돌아서서 물었다. "은시후, 그래서 네가 예약한 레스토랑이 어디야?"시후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것참 우연이네요. 저도 헤븐 스프링스에 예약해 뒀는데.""하하핫!" 혜준이 소리 내서 크게 웃었다. "은시후, 그렇게 생각 없이 떠벌리면 나중에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그래? 헤븐 스프링스 홀 테이블에도 예약을 못 할 것 같구먼 헛소리 작작해!"시후는 싱긋 웃었다. "내가 어디 레스토랑을 예약하든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 있지? 혜준 씨는 저녁 식사에 초대하지 않았으니까 신경 꺼요."혜준은 "칫! 너 같은 건 평생 헤븐 스프링스 구경도 못 해볼 거니까!"라고 말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여빈은 시후가 무시당하는 걸 차마 더는 듣고만 있을 수 없었다.여빈은 시후가 유나네 가족들한테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시후의 가정사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그가 이런 고급 레스토랑을 예약했다는 건 비현실적이었다.그녀는 시후가 자존심 때문에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해, 나중에 시후가 망신을 당하지 않길 바랐기에 두 사
여빈은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시후 씨도 여기에 예약했다고 하지 않았나요? 우리 자리는 어디죠?""사실 어떤 자리로 예약되었는지 몰라요. 조금 전에 레스토랑 오너한테 문자로 우리 자리가 어디인지 알려 달라고 물어봤어요. 답장이 왔는지 지금 확인해볼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줘요."혜준이 벌레라도 본듯한 표정으로 "거짓말 좀 작작해. 여기 사장이 누군지 알아? 서울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유성파 보스라고! 그런데 그 사람 가게 앞에서 그런 헛소리를 해? 그 사람이 방금 말을 들었으면 넌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서 죽을 걸?"시후는 혜준이 떠드는 말은 무시하고 메시지를 확인해보았다. "VVIP룸으로 예약되어 있다네요."그의 말을 듣고 혜준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VVIP룸? 진짜 웃기네! 헤븐 스프링스에서 VVIP룸 쓸 수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 그런 사람이 한국에서 10명도 안 돼요! 그런데 너 같은 게 가당하기나 해?"여빈은 묵묵히 침묵을 지켰지만, 속으로는 시후가 변변한 직장도 없으면서 자신이 뭔가 대단한 사람인 걸로 착각하는 그런 한심한 인간이 되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며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그녀는 시후가 능력도 돈도 없어서 답이 없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했지만, 그가 이렇게 허영에 찬 인간일 줄은 몰랐다. 완전히 실망했어. 내가 사람을 잘못 봤구나!시후는 그들의 비난에도 그저 미소 지었다. 그의 눈에는 그들이 속물스러운 바보들이었고, 그들의 수준에 맞춰 자신을 낮출 필요가 없었다.임현우도 혜준의 뒤를 이어 "우리 부모님도 VVIP룸 예약을 못하는 데 무슨 개소리야?""이런 인간은 우리랑 같이 VIP실에서 같이 먹을 자격 없어! 저녁은 혼자 많이 드세요." 뒤이어 혜빈이 말했다. 시후는 임현우를 보곤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겨우 참았다. '등신 새끼, 너네 사촌을 두드려 팬 사람이 누군 줄 알고 여기까지 잘도 기어왔네?'그런 생각이 들면서 슬쩍 물어봤다. "현우 씨, 어제 사촌 분한테 무슨 안
여빈도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의 등장에 적잖게 놀랐다.그녀는 혜준이 조직과도 연줄이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옆에 있는 시후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믿음직스러웠다. 그녀는 혜준과 친분을 쌓아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일행들을 VVIP 룸으로 안내했다. 그는 계산서를 꺼내 시후에게 건네며 사인을 부탁했다. "선생님, 여기에 사인 부탁드립니다."VVIP는 시후를 위해 특별히 예약되어 있었기에 확인을 위해 그의 서명이 필요했다.시후가 흔쾌히 펜과 계산서를 집어 들었지만, 그가 사인을 하기 전에 혜준이 소리쳤다. "펜 내놔!"그는 시후의 손에 들린 펜과 종이를 빼앗아 들어 재빨리 자신의 이름을 적고는 시후에게 큰소리쳤다. "방을 예약한 게 누군데 네가 사인하고 앉아있어?!"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혜준의 무례한 행동에 당황했다. 그는 혹시 도움이 필요한 건지 시후를 바라보며 눈짓을 보냈다.시후는 그의 의중을 읽고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저렇게 사인하고 싶어 하는데 그가 사인하게 놔두세요."시후는 아내의 가장 친한 친구인 여빈이 있는 자리에서 불편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사인을 마친 종이를 건네고 나서 모두 방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혜준은 여빈에게 테이블 상석에 앉도록 하고, 시후는 혼자 떨어져 앉게 해 여빈이랑만 이따금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곧, 웨이터들이 와인과 코스 요리를 하나씩 선보였다.모든 요리들은 최고급 재료들을 엄선해서 사용해서, 캐나다산 랍스터와 캐비어가 애피타이저로 나왔다.심지어 와인은 한 병에 몇 천만 원은 나가는 빈티지 와인이었다.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여빈도 사치스럽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요리들을 보고 놀랐다.임현우가 한숨을 내쉬며 "혜준아, 이거 다 얼마야?""500!" 혜준은 거만하게 대답했다."확실해? 이거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은데? 와인만 해도 500이 훌쩍 넘는다고..."혜준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미소
오늘 VVIP 룸에는 다른 예약이 없었기에 한 팀만을 위한 코스 요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미 VVIP를 위한 음식이 나가 버려서 그는 바짝 긴장했다. 진짜 VVIP 손님이 오면 어떻게 하지?!혜준은 당황해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내가 여기 룸으로 예약했는데 우르르 몰려와서 무슨 행패야?"박복만은 혜준을 가리키며 물었다. "네가 김혜준이야?"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 있게 말했다. "그래, 내가 김혜준이다!"박복만은 차가운 목소리로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저 새끼 끌고 나와."두 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즉시 혜준을 자리에서 끌어내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뭐 하는 짓이야! 이거 놔!""시발 닥치고 따라와!"한 남자가 혜준의 무릎을 걷어차자 그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고, 박복만 앞에 무릎 꿇는 모양새가 되었다.박복만은 차가운 눈빛으로 혜준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탁!'그는 사인이 된 계산서를 혜준에게 집어 던졌다."누가 저 룸을 써도 된다고 했지?"혜준은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목을 가다듬고는 입을 열었다. "뭔가 오해가 있나 본데, 우리는 미리 VIP룸으로 예약하고 왔다고!" "당신들 뭐 하는 거야? 혜준이가 미리 예약했는데 VIP 손님을 이런 식으로 대접하는 게 어디 있어?"라며 임현우도 옹호하고 나섰다."저기요, VIP 룸이라고? VIP 룸? 너 같은 병신새끼가 쓰라고 있는 VVIP 룸이 아니라고!" 박복만은 혜준의 뺨을 때리며 윽박질렀다.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방 전체로 울려 퍼졌고, 모두가 우두커니 자리에 앉아 있었다.뭐라고...? VVIP 룸?어쩐지 방이 너무 넓고 요리와 와인이 고급스러웠다! 알고 보니 모두가 들어간 룸은 VIP룸이 아니었던 것이다! 임현우의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오빠, 오빠가 유성파 보스랑 아는 사이라고 했잖아! 빨리 그 사람한테 연락 좀 해봐!"혜준은 숨을 가쁘게 내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
임현우는 너무 무서워서 몸이 덜덜 떨리고 당장이라도 지릴 것 같았다. "나...나는.... 로이...드 그룹의...."그는 더듬더듬 겨우 말을 했다."로이드 그룹이라고?" 박복만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게 뭐 어쨌는데!" 그는 침을 뱉고는 현우를 넘어트리며 말했다. "보스가 어제 로이드 그룹에서 나온 멍청이 한 명을 제대로 교육시켜서 돌려보냈건만, 아직도 로이드 그룹 운운하는 멍청이가 있을 줄이야!""뭐라고?" 현우는 충격에 뒷걸음질 쳤다.그는 지금껏 강도상해 사건이라고 생각했는데, 범인이 유성파 두목이었다니...!그가 충격과 공포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는 사이, 박복만이 또 한 번 팔을 휘둘렀다.'퍽'현우는 눈앞이 핑글핑글 도는 것 같았다. 귀에는 계속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입과 코에선 피가 흘러나왔다. 결국 그는 의식을 잃고 고꾸라졌다. "꺄아아아아악! 현우 씨!!"혜빈이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현우는 그녀의 약혼자였다. 로이드 그룹과 결혼할 수 있는 유일한 찬스였다.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끝장이었다!"119! 빨리 119에 전화해!! 빨리!!!!"혜빈은 패닉 상태에 빠져서 소리 질렀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겨우 휴대폰을 꺼냈지만, 너무 떨려서 아무것도 누르지 못하고 비명만 지르고 있었다.박복만은 눈살을 찌푸리며 "아 시발 미친 년이 시끄럽게! 저 년 좀 어떻게 좀 조용히 시켜!""네, 형님!"남자들은 뭐가 웃긴지 실실 웃으며, 혜빈에게 다가갔다.이런 조폭들은 예쁜 여자, 특히 혜빈처럼 기가 세 보이는 여자를 괴롭히는 걸 좋아했다.그녀는 미친 듯이 뒷걸음질 쳐 도망가려고 했지만, 곧 벽에 부딪혔다."이리 와, 이 쌍년아!"대머리를 한 남자가 혜빈의 머리카락을 낚아채더니 그녀 입에 천 조각을 쑤셔 넣고는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조직에 있는 사람들은 여자라고 봐주는 것도 없이 무자비하게 폭행을 이어갔다.혜빈의 뺨이 시뻘겋게 부어 오르고 찢어진 입술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이화룡이, 보스가 왔다!이분이라니? 누굴 말하는 거지?룸으로 성큼성큼 들어온 이화룡은 박복만의 가슴팍을 걷어차 날려 버렸다. "이 병신아, 사람을 몰라봐도 유분수지! 시발 너 이 새끼 죽었어!"이화룡은 미친 듯이 박복만을 걷어차면서 욕을 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서 기세등등하던 박복만이 바닥에 웅크리고 얻어맞고 있다.여빈은 갑자기 전세가 역전된 상황에 황당했다.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이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당황했다. 우리가 사람을 잘못 건드려도, 제대로 잘못 건드렸다. 제 무덤을 판 건 다름 아닌 자기들이었다.!이화룡은 부하들에게 호통쳤다. "이 병신새끼들이 뭘 멀뚱히 서서 보고 있어! 당장 사과 드리지 않고!""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가 보스의 지인이신 것도 몰라보고, 용서해 주십시오!"남자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고 사과를 했다.박복만도 스스로 자신의 뺨을 때리며 사과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 무례함을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제 불찰로 선생님과 친구분들에게 이런 일을 겪게 해서 정말 면목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이화룡이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시후는 여빈을 힐끗 보더니 "그냥 아내의 친구한테 식사 대접하고 싶어서 왔어."라며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그러고 나서 혜준과 현우, 혜빈을 가리키며 "그리고 저 사람들은 내 친구가 아니고."라고 냉랭하게 말했다. 여빈은 완전히 충격을 받았다.결국 시후는 허세를 부린 게 아니었다. 그는 몇 달 동안이나 예약이 불가능한 헤븐 스프링스에 무려 VVIP 룸으로 예약을 해두었다.무엇보다도 예약을 한 사람이 유성파 두목인 이화룡이라는 사실이 쇼크였다!한때 자신도 시후를 깔봤던 것을 떠오르자, 그런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다.한편 정신을 차린 혜준이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진짜로 은시후 저 루저 새끼가 유성파 보스랑 아는 사이라고? 그게 말이 돼?혜빈도 오빠 못지않게 충격을 받았다. 진짜로 은시후가 이화룡을 알고 있었다니
시후의 외할머니가 시후를 직접 만나고 싶다고 말하자, 배유현은 급히 말했다. “죄송합니다, 사모님... 여러분들을 살려주신 은인께서는 행방이 일정하지 않으셔요. 이번에도 저에게 약을 전달해주신 후, 아직 해야 할 중요한 일이 많다며 바로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배유현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시후는 정말 자주 이동했기 때문에 행방이 일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캐나다, 미국, 홍콩, 멕시코를 오가는 터라 시후의 구체적인 계획은 배유현도 알지 못했다. 게다가, 시후는 이미 페이셔스 그룹의 냉동 센터를 떠난 상태였다. 그는 지금 버킹엄 호텔로 돌아가, 이토 그룹과 하영수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시후의 외할머니는 배유현의 말을 듣고 매우 아쉬운 듯 말했다. “그분께서는 우리 집안 구성원들을 모두 구해주셨고, 이번엔 제이크 한 경감까지 살려주셨어요. 이처럼 큰 은혜는 우리 자손 대대로 다 갚지 못할 만큼 대단한 것인데, 그분은 단 한 번도 우리에게 보답할 기회를 주지 않으셔서...”배유현은 위로하듯 말했다. “사모님, 그건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은인께 큰 은혜를 입었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보답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저 그분을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며 곁에서 도울 수 밖에요.”이때 안충주가 말을 이었다. “배유현 회장, 예전에 한국의 경매장에서 당신의 할아버지인 전 회장님께서 갑작스레 몸져 누우셨고, 그 틈을 타서 당신의 큰아버지가 권력을 빼앗았죠. 그런데 전 회장님께서는 다시 건강을 회복하셨고, 당신과 함께 뉴욕으로 돌아오셔서 결국 페이셔스 그룹을 다시 맡으셨는데... 내가 짐작하는 게 맞다면, 그 당시 우리의 목숨을 살려준 은인이 당신 역시 도와주신 겁니까?”“네 맞습니다.” 배유현은 숨김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제 할아버지는 한국에서 목숨을 부지하셨다 해도, 저와 함께 큰아버지의 추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겁니다.”안충주는 눈빛이 번뜩이며 말
안산과 안충주는 재빨리 두 사람을 AB 빌딩 안으로 데리고 갔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층으로 올라갔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안산은 제이크 한을 이끌고 회의실로 향했다.현재 Samson 그룹의 구성원들은 안산의 뜻에 따라, 모두가 배유현에게 직접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응접실에 모여 있었다. 안산이 응접실의 문을 열자, 그 안에 앉아 있던 Samson 그룹 구성원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그들은 문 너머로 들어오는 사람이 배유현이 아니라, Samson 그룹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던 제이크 한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제이크 한을 본 순간, Samson 그룹 식구들은 엄청난 충격에 빠졌고, 어느 누구도 이 상황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그들은 모두 제이크 한이 이미 세상을 떠났으며, 그것도 Samson 그룹과 관련된 일에 휘말려 그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제이크 한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을 때, 현장에 있던 모든 Samson 그룹 사람들은 마치 사고 기능이 정지된 것처럼 얼어붙고 말았다.시후의 외할머니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앞으로 다가가 안산에게 물었다. “여보... 이... 이 사람이 정말 제이크 한 그 친구가 맞아요? 아니면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요? 혹시 내 정신이 이상해진 건가요?”“맞아. 제이크 한 그 친구가 맞다고!” 안산은 흥분하여 말했다. “정말로 제이크 한이 맞아! 이 친구가 살아 있었어! 배유현 회장이 데려온 거요!”그제야 가족들은 뒤따라 들어온 배유현을 발견했다.시후의 외할머니는 놀람과 기쁨이 교차된 표정으로 배유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배유현 회장...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해줄 수 있을까요? 그날 사건이 벌어졌을 때, 우리를 살려준 분께서는 제이크 한은 이미 살릴 수 없는 상태라고 하지 않으셨나요?”배유현은 사실대로 말했다. “그때 그 분은 제이크 한 경감의 뇌가 아직 완전히 죽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셨어요. 하지만 신체의
배유현은 안산이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며, 곧바로 공손하게 말했다. "회장님, 요즘 건강은 괜찮으시지요?"안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배유현 회장 덕분에 요즘 꽤 잘 지내고 있습니다."배유현은 재빨리 말했다. "안 회장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나이도 많이 어리고, 그런 말씀을 들을 자격이 없습니다!"그러자 안산의 곁에 있던 안충주도 이때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배유현 회장님, 안녕하십니까."배유현 역시 공손히 인사했다. "안충주 선생님, 안녕하세요."안충주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배유현 회장님, 실례가 안 된다면... 제 친구 제이크 한은 지금 어디에 묻혀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가능하시다면 주소를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조만간 찾아가 조의를 표하고 싶어서요.”배유현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그녀의 옆에서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쓰고 있던 한 남자가 갑자기 소리쳤다. "충주! 나 제이크 한은 아직 안 죽었어!"그 말이 떨어지자, 안충주와 그 곁에 있던 안산은 모두 깜짝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들은 그 목소리가 분명 제이크 한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리기는 했지만, 눈앞에 서 있는 이가 제이크 한이 맞을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듯했다.왜냐하면 그날 체육관에서 Samson 그룹 최정예 경호원들이 암살자들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했을 때, 그들은 직접 시체를 보지는 못했지만 가장 먼저 총알에 맞은 제이크 한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을 구해준 시후도 분명히 제이크 한이 이미 죽었으며, 신 조차도 그를 살릴 수 없을 거라고 말했었다. 그렇기에 그들이 어떻게 제이크 한이 죽은 뒤 살아 돌아왔다는 걸 믿을 수 있겠는가?제이크 한은 Samson 그룹의 두 사람이 눈을 크게 뜨고 아무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고만 있자, 참지 못하고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확 벗으며 외쳤다. "나야! 나! 아직 안 죽었다고!""이런 젠장!" 안충주는 너
안충주는 서둘러 휴대폰으로 인터넷에서 배유현의 사진 몇 장을 검색해 안산에게 보여주었다.안산은 몇 번 사진을 훑어본 후 휴대폰을 돌려주었지만, 순간적으로 멍하니 한 사람의 모습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듯하더니 갑자기 물었다. “충주야... 제이크 한, 그 친구를 배유현 회장이 데려간 거 아니었나?”안충주는 놀라며 되물었다. “아버지, 제이크 한을 기억하신 거예요?”안산은 멍하니 말했다. “조금 전 머릿속에 뭔가 스치듯 지나갔어. 그날 우리를 구해준 은인이 ‘제이크 한은 이미 죽었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그러면서 재빨리 물었다. “충주야, 그날 그 은인이 그러지 않았니? 제이크 한의 시신은 자신이 사람을 보내 정중히 장례 치르겠다고?”안충주는 아버지가 그날의 일부를 기억해낸 것에 놀라면서도,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네... 그 은인은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마 그 일을 배유현 회장에게 맡긴 것 같아요.”그러자 안산은 눈가가 붉어지며 자책했다. “나는 제이크 한 그 친구에게 정말 면목이 없다... 그 친구의 부친에게도, 그 친구의 아내와 딸에게도... 나는 그들에게 모두 죄인이나 마찬가지야...”안충주는 서둘러 위로했다. “아버지, 이건 아버지 혼자만의 잘못이 아니에요. 우리 집안 전체가 큰 빚을 진 거니까요.”안산은 다시 물었다. “그럼 제이크 한의 아내와 딸은 어떻게 됐냐?”안충주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쪽은 제가 손을 쓸 수가 없었어요... 그날 은인이 분명히 당부했었으니까요. 제이크 한의 죽음을 누구에게도 알려선 안 된다고... 심지어 그의 아내에게도요. 그래서 제이크 한의 아내가 저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남편의 행방을 묻고 있는데, 저도 어쩔 수 없이 그 부분은 모른다고 둘러댈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아마도 이미 경찰에 실종 신고까지 한 걸로 알고 있는데, 뉴욕 경찰은 아직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한 것 같습니다...”“하아...” 안산은 깊게 한숨을 쉬며 당부했다. “방법을 좀 찾아서, 그의
안산의 갑작스러운 분노 섞인 외침에 Samson 그룹 삼형제는 일제히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비록 모두가 이미 같은 결론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아버지인 안산이 직접 그렇게 말하자, 그들은 등골이 오싹해졌다.안태풍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도무지 이해가 안 돼요... 저 자들이 우리와 도대체 무슨 원한이 있기에, 20년 동안이나 집요하게 우리를 노린 거죠?”안재남도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우리 집안이 자산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특별히 큰 잘못을 저지른 일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은데요...! 그동안 우리 집안의 자산 대부분은 당시 엔젤투자에서 비롯됐고, 게다가 누나는 실리콘밸리의 절반을 떠받치고 있던 인물이었어요. 그런데 누가 우리와 그렇게 원한 관계에 있다는 거죠?”안충주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에게서 뭔가를 얻어내고자 하는 걸 수도 있지.”안재남이 물었다. “형 말은... 돈을 노린 다는 거야?”“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안충주가 말했다. “하지만 저들이 이토록 정교하고 집요하게 움직이는 걸 보면, 단순한 증오심이나 원한 때문은 아닌 것 같아 보이는데.”그러자 안산 역시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만약 돈이 목적이라면, 굳이 우리 전부를 죽일 필요는 없지 않겠니? 요즘은 대부분 자산을 디지털 형식으로 가지고 있기에 은행 계좌나 증권 계좌, 신탁 계좌에 숫자로만 남아 있다. 그러니 우리를 죽인다고 해도 그 자산이 그들 손에 들어가는 건 아닐 것 아니냐!”안충주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게 바로 저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입니다...”네 사람은 곧 깊은 침묵에 빠졌다.그때, 막내딸 안유진이 문을 두드리며 밖에서 말했다. “아버지, 배유현 회장이 조금 뒤에 찾아 뵙고 싶다고 전화가 왔는데요.”“배유현...?” 안산은 인상을 찌푸리며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배유현 회장이 누구냐?”안충주가 얼른 말했다. “아버지, 또 잊으신 거 아니죠? 아침에 말씀드렸잖아요. 우리가 사건을
그 순간, 안태풍, 안충주, 그리고 안산 모두의 얼굴이 일제히 굳어졌다.안태풍은 반사적으로 외쳤다. “큰 누나가 세상을 떠난 지 2년 후, 너는 권아현을 만났고... 권아현은 이번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네 곁에서 무려 19년 동안 숨어 지냈어... 우리를 죽이려 한 자들과 누나가 그 해에 죽었던 일은 분명 관련이 있는 거야!”안산은 경악하며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 놈들은 예선이와 은 서방을 죽이고도 모자라, 재남이 곁에 무려 19년이나 묵혀 놓은 시한폭탄을 이번에 터뜨린 셈이군... 대체 이 놈들은 뭘 노리고 있는 거지?! 만약 우리 집안을 없애는 게 목적이라면, 왜 지금까지 이렇게 오랫동안 기다린 거냐고?”“그러게 말입니다...” 장남 안충주 역시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조직이라면, 뭔가 깊은 원한을 품고 있을 때 진작에 손을 썼겠죠. 굳이 지금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을 텐데...”안산이 말했다.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이 자들이 우리에게 대체 얼마나 큰 복수심을 품고 있길래, 이렇게까지 큰 판을 벌이는 건지 말이야...”안재남은 참다 못해 말했다. “아버지, 형님들... 꼭 제 아내를 19년 전에 그 조직에서 일부러 저에게 심어놓은 인물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잖아요? 중간에 회유되었거나, 협박을 받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그럴 리 없어.” 안충주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만약 네 아내가 중간에 회유된 것이라면, 그 집안 가족들 역시 그때 함께 배신했겠지. 그런데 그 집안의 일련의 행동들은 그런 식으로는 설명이 안 되잖아. 그러니 나는 오히려 권아현과 그 일가 전체가 애초부터 철저하게 설계된 함정이라고 판단한다.”안태풍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고, 이어서 안재남을 바라보며 물었다. “재남아, 너와 권아현이 처음 만났을 때 구체적인 상황을 떠올릴 수 있겠어?”안재남은 말했다. “그 당시 내가 석사 2학년이 막 시작되었을 때였는데, 아내는 막 석사에 입학했었지. 신입
유럽과 미국에서는 가족 신탁 상품이 매우 신뢰할 수 있는 자산 보호 방식으로 여겨진다.한국에는 ‘부자는 삼대를 넘지 못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부모 세대가 어렵게 일군 부를 자손 세대가 사치스러워 함부로 낭비하고, 눈은 높지만 능력은 부족하여 유산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상황은 쉽게 가족의 파산으로 이어지고, 하룻밤에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만든다. 이것은 자손 세대의 능력과 인품이 통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일단 능력이나 인격 중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가문의 몰락은 피할 수 없는데, 하물며 인재 외에도 천재지변 같은 변수도 존재한다.그러나 가족 신탁은 이러한 인재와 천재지변의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차단한다. 먼저 자신의 자산을 신탁에 넣는 순간, 겉으로 보기에는 본인조차 해당 자산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권을 포기하게 된다. 이후 자산은 특정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에만 자녀나 지정된 상속인이 받을 수 있다. 따라서 훗날 중대한 문제가 생겨 가문이 빚더미에 앉게 되거나 파산을 하게 되더라도, 이 가족 신탁은 정부나 채권자에 의해 임의로 처분될 수 없다. 이것은 바로 유럽과 미국에 있는 유서 깊은 가문들이 여러 세대, 심지어는 수십 세대에 걸쳐 부를 유지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라고 할 것이다.비록 권아현 집안 식구들은 현재 모두 자취를 감췄지만, 그들의 자산은 이미 모두 가족 신탁으로 옮겨졌다. 이는 더없이 안전한 보관 방식으로, 권아현의 집안 식구들이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기업 운영에는 전혀 문제가 생기지 않으며, 자산의 가치가 떨어지거나 예기치 않은 상황이 생길 걱정도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돈은 신탁에 들어가 있는 이상 줄어들기는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불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방 정부조차 이 자산에는 손을 대지 못할 것이다.이런 행동은 곧 권아현 집안 식구들, 혹은 그들 뒤에 있는 그 미스터리한 조직의 입장을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그들의 입장은 바로 잠적하는 것은 단지 일시적인 전략적 후
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날 밤 외가 식구들은 나를 만났고, 내가 부른 사람들이 당신을 데려갔다는 건 알고 있을 겁니다. 다만 당신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겠죠. 그러니 당신과 외가 식구들이 다시 만났을 때, 어떤 정체불명의 인물이 알약 하나를 먹인 뒤 당신을 구했다고만 알려주고, 이후 배유현 양에게 당신을 그들에게 데려다 주라고 했다고 말하세요. 그리고 정체불명의 인물이 누구인지는 모른다고 하시고요. 그러면 그들은 당신을 살린 사람과 자신들을 살린 사람을 연결 지으려 할 거고, 그 뒤는 외가 식구들이 스스로 추측하게 내버려 두면 됩니다.”“알겠습니다, 도련님!” 제이크 한은 진지하게 말했다. “기억해 두겠습니다.”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고 배유현을 불러들였다. “배유현 씨, 헬기를 좀 준비해주시고, 제이크 한 경감을 맨해튼의 AB 빌딩까지 모셔다 드리세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먼저 내 외삼촌께 연락을 드려 방문 의사를 전해주시고요. 그 날 그들을 구한 후 현장을 수습한 사람은 배유현 씨이기 때문에, 그들은 당신에 대해서는 크게 경계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배유현은 공손히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은 선생님. 바로 Samson 그룹 측에 연락하겠습니다.”......같은 시각, 맨해튼 AB 빌딩.Samson 그룹은 함께 모여 회의를 열고는 최근 각종 정세를 종합하여 토론하고 있었다. 안산은 최근 알츠하이머 증상이 계속 악화되고 있었기에, 아침에 눈을 뜨면 아내와 자식들은 그에게 현재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오랫동안 설명해주곤 했다. 다행히도 안산은 수많은 풍파를 겪어온 인물이라, 그날 어떤 사건들이 일어났는지 직접적으로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식들의 설명을 들으면 곧바로 현재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그 날 암살 사건이 발생한 이후, Samson 그룹 사람들은 줄곧 뉴욕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가족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다시 손을 대기 시작했지만,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안산은 당분간 가족
이야기를 들은 제이크 한은 매우 놀라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는 이전의 경력 때문에 블랙 드래곤에 대해서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블랙 드래곤이 시리아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여 영구 거점을 건설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용병 조직에게 있어 영구 거점을 보유한다는 것은, 단번에 다른 용병 조직들에 비해 훨씬 앞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용병이라는 존재는, 이화룡이 거느리는 조폭들에 비해 각국 사법기관이 훨씬 더 경계하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용병 조직은 세계 각국에서 길거리의 쥐와 같은 존재로 비밀리에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오직 정부와 깊이 협력하는 조직이 아니라면 절대로 대놓고 간판을 걸고 활동하지 못한다.물론 미국에도 용병 조직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백악관과 협력하며 그들의 총알받이 노릇을 하는 일부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대부분 은밀히 활동할 수밖에 없다. 용병 조직의 대다수는 미국 퇴역 군인 출신으로, 본국 경찰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개개인으로 위장 생활을 하다가 해외에서 임무를 수행하곤 한다. 예를 들어, 한 용병 조직은 100명 남짓한 구성원들에 불과한데 그들은 평소 각자 합법적인 직업과 신분으로 위장하여 일반 시민처럼 지내다가 임무가 떨어지면 관광객을 가장해 출국을 한다. 비록 이들이 본국에서 불법적인 일을 저지른 것은 아니지만, 무장 전투 요원이기 때문에 정부의 감시를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조용히 움직여야 한다는 제약이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대부분의 용병 조직의 성장이 제한되는 것이다.하지만 용병 조직이 대놓고 합법적인 영구 거점을 보유하게 된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블랙 드래곤이 시리아와 협력했을 당시 미국 CIA는 그 이유를 조사했는데, 조직이 시리아에서 너무 빨리 성장하는 걸 우려해 개입까지 시도했었다. 하지만 시리아는 블랙 드래곤과의 협력을 고수했고, 그 뒤에는 시리아 내 영향력 있는 반정부 인사 하미드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