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11. 삼전하

Penulis: moominkiller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5-24 01:05:27

황궁이 심가를 두려워하는 까닭은 칼만이 아니었다. 대연의 북쪽에는 흑령산맥이 길게 누웠고, 그 너머 삭원의 기마 부족은 해마다 봄이면 남쪽 풀을 넘보았다.

북문관의 군량은 호부의 장부에서 나오지만, 그 군량이 얼어붙은 고갯길을 지나 병사들의 손에 닿게 하는 것은 심가의 이름이었다.

경안의 저잣거리 사람들은 겨울바람이 거칠어질 때마다 말했다. 북문이 닫혀 있으면 아이들이 잠을 잔다고.

그 민심은 조정의 붉은 인장보다 질겼다. 그러니 황궁은 심가를 꺾고 싶어 하면서도, 심가의 이름을 제 편으로 세우고 싶어 했다.

그 사이에서 한 여식의 혼인은 칼보다 조용하고 군령보다 오래가는 끈이 되었다. 월령은 그 사실을 너무 늦게 배웠다.

"약은 멈춘다."

조계가 말했다.

"심 부인이 살아 있으면 다른 문을 열어야지."

"장부 쪽입니까?"

금지가 겁먹은 듯 물었다.

조계는 대답 대신 안개 낀 연못을 보았다.

"안채 문서가 잠기면 군량 문서도 늦어진다. 북문군이 제때 먹지 못하면 병부가 심가를 탓할 수 있고, 심가가 흔들리면 경안 백성의 입도 흔들리지. 사람은 배가 비면 충성도 헐값에 논한다."

그는 가볍게 말하려 했으나, 군량과 병부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속도가 조금씩 빨라졌다. 아는 것을 다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는 체를 참지 못하는 사람의 조급함이었다.

월령은 손끝을 접었다.

약 한 사발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를 살린다 해도, 저들은 곧장 장부로, 군량으로, 북문으로 길을 옮길 것이었다.

어머니의 죽음은 시작에 불과했고, 그 시작을 막은 지금부터가 진짜 싸움이었다.

"내일 심가 연회에 삼전하께서 드신다."

조계가 다시 말했다.

"네 아가씨에게 전해라. 큰아가씨를 오래 붙잡아 두라고. 웃게 만들 수 있으면 더 좋다."

"큰아가씨를요?"

"눈으로 보겠다 하셨다. 보고 난 뒤에 고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심가 여식이면 북문군과 저잣거리의 입이 함께 오지."

조계는 물 위로 번진 달빛을 밟듯 낮게 웃었다.

웃음 끝이 얇게 갈라졌다.

"삼전하께서는 그 값을 아신다."

한 해 이른 만남.

운명이라는 이름을 달고 다가오던 그 손이, 사실은 이토록 오래전부터 길을 재고 있었다.

월령은 눈을 감지 않았다.

"은매는?"

조계가 물었다.

"살아 있습니다."

"밤 안에 입을 막아라."

금지가 잠시 말을 잃었다.

"하지만 큰아가씨가 찾으시면…"

"차, 찾아도 살아 있을 때나 새는 것이지."

첫 소리가 걸리자 조계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그는 곧 목을 눌러 다시 낮게 말했다.

"우물은 넓고 밤은 길다. 심가에서 계집종 하나 미끄러지는 일이 그리 대수냐."

월령의 손바닥 안에서 청아의 숨이 부서질 듯 흔들렸다.

은매는 그렇게 사라졌었다.

사람들은 젖은 돌을 잘못 밟았다 했다. 한 사람의 죽음이 다른 죽음의 증거였다는 것을, 월령은 너무 늦게 알았다.

이번에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금지를 향해 당장 뛰어나가지 않았다.

금지도 한 손이었다.

서윤의 손에서 궁으로 이어지는, 가늘고 떨리는 손. 잘라 내면 조용해지겠지만, 잘린 손은 더는 어디를 가리킬 수 없다.

금지는 조계에게 작은 종이 싸개를 받아 옷깃에 숨겼다. 손이 서툴러 검은 장옷 소매가 한 번 접혔다 펴졌고, 그 짧은 틈에 은빛 실 하나가 안개 속에서 번뜩였다.

서윤의 연꽃 댕기와 같은 계열의 실이었다. 금지가 먼저 사라지고, 조계는 잠시 더 연못가에 남아 주변을 살폈다.

빈틈없어 보이려 애쓰는 자의 눈이었다. 진짜 그림자들은 그렇게 자주 돌아보지 않는다.

월령은 청아의 입에서 천천히 손을 거두었다.

"청아. 은매를 서원당 뒤 창고로 옮겨라. 문은 안에서 잠그고, 열쇠는 네가 가져라."

월령이 낮게 말했다.

"걷지 못하면 부엌 뒷문의 빈 수레를 써. 짚단을 덮고 약재 자루를 두 개 올리고. 누가 묻거든 마님 약재라 해라."

"그 아이의 어미와 동생은요?"

청아가 아주 작게 물었다.

그 이름 없는 식솔들까지 생각하고 있었구나. 작은 시녀의 겁먹은 마음 안에도, 남을 걱정할 자리가 남아 있었다.

"해가 뜨면 정 호위장께 사람을 청하마."

월령의 말끝이 살구꽃잎처럼 낮게 가라앉았다.

"오늘 밤 움직이면 저들이 먼저 알아챌 수 있어. 그때까지는 — 내가 늦지 않아야 해."

Lanjutkan membaca buku ini secara gratis
Pindai kode untuk mengunduh Aplikasi

Bab terbaru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393. 어린 봄, 다시

    설련이 대문을 두드린 것은, 상이 다 물러난 뒤였다.청아가 문을 열었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엎어 둔 그릇을 바로 놓았다. 밥은 담지 않았다. 대신 더운물 한 대접을 그 자리에 놓고, 젖은 수건을 짜서 설련 쪽으로 밀어 놓았다."…늦었어. 미안."설련이 말했다."늦게 오는 사람 자리부터 놓는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언니 자리예요, 이거. 얼른 손부터 닦으세요, 땀범벅이잖아요."청아가 답했다. 설련이 대접을 두 손으로 쥐었다. 뜨거웠다. 데도 되는 온도였다. 설련은 데면서 쥐고 있었다. 담 밖에 하루 서 있던 손이었다. 소나기에 젖었다 마른 손.*"담 밖에서 뭘 봤느냐."월령이 물었다. 설련이 대접을 놓았다."아무것도요. 궁인 셋이 드나들고, 고모는 안 나오고. 사흘째 진지를 안 드신다고요.""그래서 서 있었어?""고모가 저를 자녕궁 찻상 뒤에 숨겨 줬어요. 어릴 적에요. 셈방이 무서워서 울면. 그 손이 지금 혼자 병풍 뒤에 있는 거예요."설련이 소매 안으로 손끝을 접었다."그런데 저는 그 손이 봄 아기씨 이름 적은 걸 알아요. 그래서 못 들어갔어요. 그런데… 돌아설 수도 없어서요.""그러니 서 있었구나.""…예.""다음에 또 서 있고 싶으면 서 있어라. 비는 피하고. 비는."설련이 고개를 들었다. 월령은 부채로 대접의 김을 흩고 있었다. 설련을 보지 않은 채로."마마님은 안 미우세요? 제가 고모 담 앞에 서 있는 게요.""미워할 만큼 한가하지가 않아서."설련의 입가가 아주 조금 풀렸다. 청아가 그것을 보고, 못 본 척 대접의 물을 갈아 왔다. 더 뜨거운 것으로.월령은 더 묻지 않았다. 설련의 젖은 소맷단을 보고, 제 마른 겉옷을 그 어깨에 얹었다. 청아가 그것을 보고, 부채질을 설련 쪽으로 돌렸다.*밤에, 위지헌이 궤를 다시 열었다.마른 꽃잎 봉지를 꺼냈다. 그러고는 그것을 월령의 손에 놓았다. 탁자에 놓지 않고, 손에."이건 네가 가져라.""부군 건데요, 이거.""네 손에서 온 거다."월령이 봉지를 쥐었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392. 병풍이 얇아지다

    청화각에서 자녕궁까지는 회랑 하나였다.혜귀인 류담희가 그 회랑을 지났다. 소매에서 유자 향이 옅게 났다. 자녕궁 문 앞에 궁인이 하나 서 있었다. 예전엔 여섯이 섰던 자리였다.류담희가 걸음을 늦췄다. 늦추다가, 도로 걸었다. 스물둘의 얼굴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그 얼굴만 봐서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찻잔 뚜껑을 비뚤게 놓고 제 손으로 바로잡는 버릇처럼, 그녀는 지나가며 소매를 한 번 여몄다. 향이 그 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게.*자녕궁 안은 조용했다.궁인 셋의 발소리가 낮았다. 낮아서, 이제는 그 발소리가 숙비를 대신 말하지 못했다. 말할 사람이 너무 적었다.숙비는 병풍 뒤에 있었다. 찻상은 그대로였다. 잔 둘. 왼쪽으로 놓인 뚜껑 꼭지."…마마. 진지를 좀.""두어라.""사흘째이십니다, 마마.""두라 하였다."궁인이 물러났다. 숙비는 소매 안의 찌그러진 자물쇠를 만졌다. 오래. 그러고는 손을 뺐다.*왕부에서는 밥상이 컸다.방어멈이 큰 상을 마당에 내다 놓았다. 안채 상으로는 모자랐다. 사람이 많았다.초비와 묵아가 장작을 패고 온 손으로 앉았다. 은매가 무나물을 놓았다. 서윤이 심가에서 건너와, 아란의 손을 잡고 들었다. 송란영이 그 뒤에 섰다. 처음 오는 집이었다. 유씨가 그 등을 밀었다."앉아라, 란영아. 남의 집 아니야. 뭘 서 있어."청아가 소반을 날랐다. 기윤이 그 소반을 받았다. 한 걸음 물러나지 않고. 방어멈이 그것을 보고 혀를 찼다. 혀를 차면서 웃었다.독고진겸이 상 한 귀퉁이에 앉았다. 별채 사람이 안채 마당 상에 앉은 것은 두 번째였다. 아란이 그 옆에 앉아, 직구로 물었다."아저씨는 누구야? 처음 보는데.""…셈하는 사람이오.""셈이 뭐야?""…값 매기는 거요. 얼마짜리인지.""당과도 값 매겨? 이것도?"독고진겸이 잠깐 말을 못 했다. 그러다 낮게 답했다."…당과는, 안 매기오. 그건."아란이 만족한 얼굴로 당과 하나를 그 앞에 놓았다. 독고진겸은 그것을 오래 보다가, 먹었다.허도겸이 늦게 왔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391. 아들의 답

    새벽에, 위명서는 창고 앞에 섰다.궤가 나간 창고였다. 비어 있었다. 찌그러진 매화 자물쇠가 문에 그대로 걸려 있었다. 그는 그것을 떼어 소매에 넣었다.내관이 마당 끝에서 그를 보았다. 무엇을 아뢰어야 할지 모르는 얼굴이었다."삼전하. 자녕궁에서 사람이 와 있습니다. 답을, 그, 기다리신다고요.""안다.""어찌 아뢸까요.""내가 간다. 그리 전해라."*자녕궁 병풍은 세워져 있지 않았다.숙비가 어제 그대로 앉아 있었다. 밤새 앉아 있었는지, 병자의 얼굴이 더 야위어 있었다. 위명서는 그 앞에 섰다."생각하였느냐.""예.""그래서."위명서가 소매에서 자물쇠를 꺼냈다. 찌그러진 매화. 어머니 앞에 놓았다. 탁자 위에. 손에 쥐여 주지 않고."이건 제가 부쉈습니다. 제 손으로."숙비가 그것을 보았다. 오래."어머니가 제 문양을 달아 주셨고, 저는 그 문양을 부수고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서… 봤습니다. 다 봤습니다. 보지 말라 하신 것을, 다.""그래서.""아니오."*방 안이 조용해졌다.숙비의 손끝이 탁자 위에서 멎었다. 아들이 그 말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스무 해 동안."아니오, 라 하였느냐.""예. 그 아이를 궁으로 데려오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그다음에 무엇을 하시든, 그 앞을 제가 열어 드리지 않습니다.""그 여인의 편에 서겠다는 말이냐.""아닙니다."위명서가 말했다. 낮게, 그러나 흔들리지 않게."숙부 편도 그 여인 편도 아닙니다. 어머니 편도… 아니고요. 저는 제 자리에 섭니다. 삼황자 자리에. 거기 서서 제 이름으로 치른 값이 있으면 제가 갚고, 제 이름으로 진 빚이 있으면 제가 집니다. 다만 어머니 대신 남의 아이를 지우는 것은, 제 값도 제 빚도 아닙니다. 그건 아닙니다."*숙비는 오래 답하지 않았다.그러다, 웃었다. 옅게. 야윈 얼굴에, 그 웃음이 이번에는 조금 오래 갔다."네가 셈을 배웠구나.""어머니께서 가르치셨습니다.""그래. 내가 가르쳤지."숙비가 찌그러진 자물쇠를 집었다. 손끝이 느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390. 마지막 패

    "어머니께서 부르셨다 들었습니다."위명서가 병풍 앞에 섰다. 앉지 않았다."북영에서 여기까지가 한 시진이다. 오래 걸렸구나.""말이 느렸습니다.""네 말은 느린 말이 아니지."숙비가 병풍을 접었다. 제 손으로. 궁인을 부르지 않고. 궁인이 이제 몇 남지 않았다는 것을, 위명서는 그 손에서 읽었다.*"앉아라.""서 있겠습니다.""북영에서 그리 배웠느냐.""…예."숙비가 옅게 웃었다. 야윈 얼굴에, 그 웃음이 오래 안 갔다."명서야. 네 창고에서 나간 궤 셋을 네 아비가 봉하였다. 젖줄이 끊긴 것이다. 오라비는 넘어갔고, 오상궁은 잡혔고, 노가는 무너졌다. 이 어미에게 무엇이 남았는지 아느냐.""…모릅니다.""너다."*숙비가 아들의 손을 잡았다.야윈 손이었다. 그런데 쥐는 힘이 야위지 않았다."네 이름으로 치른 값이 있다. 그 값을 네가 거두어라.""…값이라 하시면, 무슨.""섭정왕가의 여아다. 그 아이가 자라면 네 자리는 없다. 위지헌의 피와 심가의 군심을 한 몸에 가진 아이니라. 네 아비가 그 아이를 안는 날, 너는 삼황자로 늙는다."위명서의 입이 열리지 않았다."어미가 못 하는 것을 아들이 하여라. 네 이름으로 치른 값이니 네 것이다. 네가 그 아이를 궁으로 데려오너라. 어린 사촌 누이를 아끼는 오라비로. 그다음은 내가 한다."*위명서의 손이, 어머니의 손 안에서 움직이지 않았다.어릴 적부터, 이 손 안에 무엇이든 놓았다. 붓도, 매화 가지도, 처음 쓴 글씨도. 놓으면 어머니가 웃었다."…어머니.""말하여라.""그 아이를 데려오면, 어머니는 그다음에 무엇을 하십니까."숙비가 답하지 않았다. 답하지 않는 것으로 답했다. 위명서는 그 답을 창고에서 이미 보았다. 붉은 표. 값 대신."효도에도 값이 있느냐."숙비가 낮게 말했다."네 아비가 너를 북영에 보낸 것은 너를 어미에게서 떼려는 것이다. 위지헌 곁에 두는 것은 그 여인을 네게 보여 못 갖게 하려는 것이고. 모두가 셈이다. 너를 위한 셈은 이 방에만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389. 미끼

    곤원전 뒤채는 옥보다 밝았다.명부지기는 창가에 앉아 있었다. 늙은 손이 무릎 위에 포개져 있었다. 옷자락을 쥐지 않았다. 쥘 까닭이 없어진 손이었다. 손자를 끝내 못 찾았다는 기별이 어제 이 방에 닿았다. 절에서 하루 만에 도로 데려간 뒤로, 아무도 그 아이를 보지 못했다고."오실 줄 알았지요. 마마님이 오늘쯤.""왜요.""살구나무 이야기를 들으셨을 테니까요. 심 부인이 입을 열면요, 그다음은 이 늙은이지요. 순서가 그렇습니다."월령이 앉았다. 접지 않은 종이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마른 명부의 사본이었다.*"첫 장이 있다면서요. 명부의.""있습니다. 있고말고요.""어디에요."명부지기가 웃었다. 늙은 웃음이었다."그걸 말씀드리면 저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마마님. 저는 답을 하나씩 팔았습니다. 손자 하나에 답 하나. 늙은이 셈이 그랬어요. 느려도 그랬어요.""팔았다고요. 지난 말로.""어제 기별이 왔지요. 절에서 하루 만에 도로 데려갔다고. 그 뒤는 아무도 모른다고. 찾는 사람들이 산 너머까지 갔다는데, 없었답니다."명부지기가 무릎 위의 손을 내려다보았다."옥에서 '위에서'라는 말 하나 드린 건, 그때는 아직 팔 게 있는 줄 알아서였고요. 그 말 하나로 마마님이 옥까지 오셨고, 옥에서 그 향을 맡으셨지요. 아닙니까?"월령은 그 말을 받았다. 맞는 말이었다."그런데 이제 팔 것이 없어져서요. 없어지니까 입이 열립니다, 마마님. 늙은이 셈이 그렇습니다.""그럼 이번 답 값은요. 뭘 받으시려고요.""…제 목숨이지요. 그것밖에 남은 게 없어서."*"명부지기는요, 대를 잇습니다."명부지기가 낮게 말했다."앞의 손이 제게 넘겼고, 저는 다음 손에 넘겨야 하지요. 그런데 이제 넘길 손이 없습니다. 오상궁이 잡혔으니까요. 그 아이가 제 다음이었거든요.""그래서요.""그래서 제가 마지막입니다. 제가 죽으면 명부는 끊깁니다. 그러니 마마님이 저를 안 죽이셔야, 명부 끊기는 날까지 제가 답을 팔지요. 하나씩. 천천히."월령은 그 늙은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388. 그때도 있었다

    유씨는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심도윤의 갑옷 안소매였다. 해진 데를 꿰매는 손이 빨랐다. 딸이 방에 들어와 앉을 때까지, 그 손이 멎지 않았다."어머니.""말해라. 듣고 있다.""북문 진영 근처에요, 살구나무 마을이 있었어요?"바늘이 멎었다.*"…누가 그러더냐. 그런 말을.""부군이요."유씨가 바늘을 실패에 꽂았다. 그러고는 딸을 보았다. 직설로 보는 눈이었다."있었다. 네가 예닐곱 살 때. 네 아버지가 북문 지키던 해에 내가 너를 데리고 진영 근처 마을에 있었어. 살구나무가 많았지, 거기. 너는 그 밑에서 뒤뚱거리고 놀고.""그 마을에, 열다섯 살 황자가 있었어요? 그때."유씨가 잠깐 말이 없었다."…있었다. 늦둥이 황자를 네 아버지가 맡아 키웠으니까. 말이 없는 아이였어. 밥도 혼자 먹고. 네가 그 아이한테 자꾸 가더라. 왜 가느냐 물으면, 저 아저씨 혼자라서, 그러고."월령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심도윤이 문을 열고 들었다.손가락 둘이 모자란 손으로 문지방을 짚었다. 아내와 딸이 마주 앉은 것을 보고, 문가에 앉았다."…살구나무냐.""예, 아버지.""그 아이가 네 지아비다."심도윤이 짧게 말했다. 그러고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그 모자란 손이 무릎 위에서 한 번 쥐어졌다."아버지는 아셨어요? 그 아이가 그 아이라는 거.""알았다.""언제부터요.""북경군 받던 날. 열여덟에. 내 앞에 와서 절을 하는데, 소매에 꽃잎도 없는데 꽃잎 떼는 손을 하더라. 버릇처럼."심도윤이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그때 알았다. 뭘 쥐고 사는지."유씨가 남편을 흘겨보았다."당신은 그걸 알면서 나한테 한마디를 안 했소? 여태?""…안 물었지, 당신이.""이 집 남자들은 다 그 말을 하네. 안 물었지, 안 물었지."유씨가 혀를 찼다. 월령은 그 말에 잠깐, 아주 잠깐 웃었다. 웃고 나서 도로 굳었다.*"어머니. 그 봄에, 궁녀가 있었어요? 마을에."유씨의 손이 실패 위에서 멎었다."침방 궁녀 옷을 입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13. 매듭

    비가 그친 뒤의 새벽은 지나치게 맑았다.밤새 지붕을 두드리던 물소리가 멎자, 심가는 잠시 숨을 잃은 집처럼 조용해졌다. 처마 끝에는 아직 물방울이 매달려 있었고, 뜰 가운데 고인 얕은 물에는 회색 하늘이 얇게 비쳤다. 행랑채 쪽에서는 젖은 짚을 뒤집는 소리가 늦게 깨어났고, 부엌에서는 불씨를 살리려 부싯돌을 치는 소리가 두어 번 낮게 울렸다.비가 지나간 자리는 늘 사람보다 먼저 말을 했다.기와 밑에 떨어진 진흙, 담장 아래로 밀려온 풀씨, 회랑 끝에 비스듬히 남은 발자국. 맑은 날에는 누구의 것인지 묻지 않아도 될 흔적들이,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12. 틈

    비는 밤새 그치지 않았다.새벽녘에는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실을 감는 소리처럼 가늘게 이어졌다. 처음에는 한 방울씩, 곧이어 두 방울씩, 나중에는 어느 것이 먼저 떨어졌는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잦아졌다.심가의 아침은 젖은 냄새로 열렸다.행랑채 아이들은 짚신 밑창에 진흙을 묻힌 채 창고 앞을 오갔고, 부엌에서는 젖은 장작에 불을 붙이느라 연기가 낮게 깔렸다. 말린 생강은 다시 대청 안으로 들여졌고, 약방의 작은 종은 창포 묶음을 처마 아래에 걸며 연신 코를 훌쩍였다.비가 오는 날에는 집안의 틈이 먼저 보였다.기와가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10. 붓끝

    심서윤은 그 밤 잠들지 못했다.자녕궁에서 받은 작은 붓은 베개맡에 놓여 있었다. 흰 붓대는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떠 보였고, 끝에 매인 금실은 등잔불이 사라진 뒤에도 혼자 빛을 기억하는 것처럼 보였다.서윤은 옆으로 누웠다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방 안은 조용했다. 창밖에서는 밤새 젖은 살구꽃잎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고, 멀리 행랑채 쪽에서는 늦게 돌아온 하인이 물동이를 내려놓는 낮은 소리가 들렸다. 평소라면 그런 소리들이 집의 숨처럼 느껴졌을 것이다.오늘은 모든 소리가 자신을 기다리게 하는 것 같았다. 마마께서 다시 부르실까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9. 잔

    태후의 초대장은 향이 없었다.그 사실이 먼저 심가를 조용하게 만들었다.아침 부엌에서는 멥쌀 씻는 물소리가 나고, 무쇠솥 가장자리에는 지난밤 끓여 둔 닭죽의 기름이 얇게 굳어 있었다. 행랑 쪽에서는 하인들이 장작을 패며 낮은 농담을 주고받았고, 마구간에서는 젖은 짚을 갈아내는 냄새가 느리게 흘러왔다.어제와 다르지 않은 아침이었다.그런데 검은 칠을 한 죽간 하나가 대문을 넘자, 집 안의 모든 소리가 반 박자씩 늦어졌다.칼을 갈던 호위가 손을 멈췄고, 죽을 푸던 계집종은 국자의 끝을 솥 가장자리에 대고 오래 움직이지 못했다. 살

Bab Lainnya
Jelajahi dan baca novel bagus secara gratis
Akses gratis ke berbagai novel bagus di aplikasi GoodNovel. Unduh buku yang kamu suka dan baca di mana saja & kapan saja.
Baca buku gratis di Aplikasi
Pindai kode untuk membaca di Aplikasi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