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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틈

Author: moominkiller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24 00:50:12

쨍그랑.

백자 그릇이 바닥에 부딪혀 산산조각났다. 검은 탕약이 흰 융단 위로 번졌다.

"아!"

서윤이 비명을 질렀고, 한씨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런. 손이 미끄러졌구나."

월령은 놀란 척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바닥에 쏟아진 탕약이 아니라, 서윤의 치맛자락에 닿아 있었다.

탕약 몇 방울이 연분홍 치마 끝에 튀었다. 그곳에서 아주 희미한 변화가 일어났다.

물방울이 닿은 자리가 검게 번지는 듯하다가 곧 사라졌다. 보통 약재라면 그런 흔적이 남지 않는다.

그 탕약에는 독이 없었다.

다만 적련초의 냄새를 흉내 내려 넣은 약재가 있었고, 그 약재는 진짜 적련초 가루와 닿으면 비단 위에서 검게 변했다. 붉은 담 안에서 너무 늦게 배운 작은 반응이었다.

그리고 그 반응은, 서윤의 치맛자락에 이미 적련초 가루가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서윤아."

월령이 천천히 몸을 숙였다.

"네 치마가 더러워졌구나. 가까이 와 봐. 내가 닦아 줄게."

"괜찮아요. 갈아입으면…"

서윤이 황급히 물러났다.

"서윤아."

침상 위에서 유씨가 낮게 불렀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월령이가 닦아 준다지 않니."

서윤은 더 물러날 수 없었다. 월령은 손수건을 꺼내 치맛자락을 잡았다.

손수건에 묻은 약물이 검게 변했다.

아주 옅었지만, 분명했다.

한씨의 얼굴에서 피가 빠졌다.

서윤은 입술을 깨물었다.

월령은 손수건을 접어 소매 안에 넣었다.

아직은 공개하지 않는다.

지금 여기서 몰아붙이면 한씨는 꼬리를 자를 것이다. 서윤은 울며 모른다 할 것이고, 은매는 죽는다.

적련초를 보낸 더 큰 손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서윤은, 처음으로 돌아올 틈마저 잃는다.

월령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죄를 덮어 주겠다는 뜻이 아니라, 아직 붙잡을 수 있는 손이라면 먼저 붙잡아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얼룩이 깊지는 않네."

월령은 고개를 들었다.

"언니…"

서윤의 눈에 혼란이 스쳤다.

"청아, 약방에 따로 내려 둔 탕약을 가져오너라. 내가 어머니께 드릴 거다."

청아가 빠르게 움직였다.

"오늘 월령이가 이상하구나. 많이 놀랐나 보다."

한씨가 억지로 웃었다.

"그런가 봅니다."

월령도 웃었다.

"좋지 않은 것을 보았거든요."

그 말은 장난처럼 들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월령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청아가 따로 내려 둔 약을 가져오자, 월령은 직접 숟가락으로 식혀 어머니에게 먹였다.

유씨는 의심 없이 마셨다.

한 숟가락, 또 한 숟가락. 어머니의 목울대가 천천히 움직일 때마다, 월령은 서원당 문에 걸리던 흰 천이 조금씩 멀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약그릇이 비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유씨의 기침은 오히려 조금 가라앉았다.

한씨는 어색한 말 몇 마디를 남기고 일어났고, 서윤은 끝까지 월령의 눈을 피했다. 그들이 떠난 뒤에야 유씨가 물었다.

"무슨 일이니."

어머니에게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었다. 설명할 수 없는 일을 꺼내면 믿기 어려울 것이고, 믿는다 해도 더 큰 위험에 빠뜨릴 수 있었다.

"어머니. 당분간 둘째 숙모가 보내는 약과 음식은 드시지 마세요."

월령은 소매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검게 변한 얼룩은 희미해지고 있었지만, 아직 남아 있었다.

"이유는 곧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이것만 믿어 주세요."

유씨는 오래도록 그 손수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 한마디에 월령은 숨을 내쉬었다.

이전과 달랐다.

어머니가 살아 있었다.

오늘 밤 우물가로 끌려갈 은매도 살아 있었다. 그리고 서윤은, 처음으로 두려움을 배웠다.

아직 작은 변화였다.

그러나 월령은 그 작은 틈에서 시작할 참이었다. 서원당을 나서자 해가 기울고 있었다.

살구꽃잎이 바람에 날려 돌계단 위에 흩어졌다. 그 꽃잎을 밟으며 청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가씨. 아까 은매가 몰래 전해 달라며 이것을 주었습니다."

청아가 작은 종이 조각을 내밀었다.

월령은 그것을 펼쳤다.

삐뚤삐뚤한 글씨로 몇 글자가 적혀 있었다.

남쪽 연못가.

해시.

그리고 그 아래, 급히 덧붙인 듯한 한 줄. 서윤 아가씨의 처소에서 온 사람.

심서윤.

독향 끝에 남은 이름은 역시 너였구나. 그러나 월령은 웃지 않았다.

어린 사촌의 질투와 욕망만으로는 황실의 역모 조작까지 닿지 못한다. 그녀 뒤에는 반드시 누군가가 있었다.

월령은 남쪽 연못 너머를 바라보았다.

해시.

그곳에 가면 알게 될 것이다. 서윤의 손에 처음 칼을 쥐여 준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 칼을 빼앗기 전에, 이 아이를 어디까지 붙잡을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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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18. 장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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