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숙부."
위명서가 차갑게 불렀다.
일부러 그렇게 불렀다.
피를 나눈 어른이 황명을 거역했다는 사실을, 군중과 관리들 앞에 더 또렷이 세우려는 목소리였다.
"그 여인은 역적이다."
폐후 심씨도, 황후도 아니었다.
그 여인.
위명서는 월령에게서 마지막 이름마저 벗겨 내듯 말했다. 위지헌은 피 묻은 검끝을 내리지 않았다.
월령을 돌아보지 않은 채 낮게 받았다.
"황후께서는 역적이 아니시다."
폐후라 적힌 죄패가 월령의 목에서 빗물에 젖어 흔들렸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호칭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증좌는 모두 나왔다."
위지헌이 마침내 황제를 보았다. 그 눈빛에 군중이 한 걸음 물러났다.
신하가 군주를 보는 눈도, 숙부가 조카를 꾸짖는 눈도 아니었다. 오래 칼집 안에서 잠들지 못한 칼의 눈이었다.
"네가 내놓은 증좌겠지."
그의 목소리는 낮고 정확했다.
"찾았다. 네가 황후를 죽이려 덮어 둔 것들. 옥새의 붉은 자국도, 북문을 더럽힌 명부도, 심 장군의 이름을 훔친 글씨도."
월령의 손끝이 얼어붙었다.
그가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누명을 썼다는 것을. 심가가 배신하지 않았다는 것을.
자신이 황제에게 버려졌다는 것을.
그런데 왜 이제야.
왜 하필 모든 것이 끝난 뒤에야.
"거짓이다!"
위명서가 소리쳤다.
목소리가 높아지는 순간, 황제가 아니라 궁지에 몰린 사내가 먼저 드러났다.
"섭정왕이 역적의 딸에게 미혹되어 황명을 거역한다! 금군은 들으라, 당장 저자를—"
그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북경군의 화살이 일제히 금군을 겨눴다.
활시위가 빗속에서 낮게 울었다. 금군은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다.
위지헌은 그 소란 속에서 월령 앞에 무릎을 꿇었다. 대연에서 황제 다음으로 높은 남자가, 진흙탕 형장 위에서 죄패를 건 여인 앞에.
"월령."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황후도, 폐후도, 심씨도 아니었다.
그 두 글자는 빗속에서도 이상하게 젖지 않았다.
"늦었습니다."
그의 손이 그녀의 뺨 가까이에서 멈췄다. 닿기 전 한순간, 허락을 구하듯 숨을 멈추었다가, 아주 조심스럽게 피와 빗물을 닦아 냈다.
차가울 줄 알았던 손은 뜨거웠다.
"조금만 버티십시오. 제가 데리고 나가겠습니다."
월령은 묻고 싶었다.
어디로요.
왜요.
왜 이제야 왔어요.
그러나 입에서 나온 것은 말이 아니라 피였다. 위지헌의 얼굴에서 피가 가셨다.
그제야 월령도 느꼈다.
칼날은 아직 목에 닿지 않았으나, 형장으로 끌려오기 전 삼킨 탕약이 이미 속을 태우고 있었다. 황제는 혹시 모를 손길마저 계산해 두었다.
죽음은 칼끝에만 있지 않았다. 이미 몸 안 깊은 곳에서 조용히 문을 닫고 있었다.
"령아."
그가 그녀의 이름을 다시 불렀다. 처음으로, 아무 예도 남기지 않은 목소리였다.
"눈 감지 마. 나를 봐."
이상했다.
그가 그렇게 말하니, 정말 눈을 감고 싶지 않았다. 월령은 힘겹게 손을 들어 그의 젖은 옷자락을 붙잡았다.
검은 옷감 아래에서 낮은 약재 향이 희미하게 스몄다.
살구꽃은 아니었다.
달콤한 기억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향 아래에서는 숨이 조금 덜 흩어졌다. 위지헌은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
형장의 진흙도, 황제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팔 안에 든 몸이 너무 가벼운 듯, 그의 숨이 한 번 멎었다.
"나는 너를 택했어."
빗소리 사이로 그의 목소리가 떨어졌다. 짧고 낮았으나, 그 말은 황궁의 붉은 담보다 무거웠다.
"늦은 게 아니야. 내가 되돌릴 거야. 이 비도, 이 칼도, 네가 혼자 견뎌야 했던 모든 날도."
그는 그녀가 아직 들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처럼, 한 글자씩 귀에 심었다.
"다시 봄이 오게 할게. 네가 그 꽃그늘 앞에서, 이번에는 다른 길을 고를 수 있게."
월령은 웃으려 했다.
다정하다 믿은 목소리는 그녀를 죽였고, 차갑다 여긴 침묵은 그녀를 살리려 황명을 거역했다.
어리석었다, 심월령.
너는 참으로 어리석었다.
흐려지는 시야 너머로 위명서가 보였다. 검은 우산을 잃은 용포 위로 빗물이 흘렀다.
화려한 금실 문양 아래, 그의 얼굴만 이상하게 빈약해 보였다. 그 얼굴을 보자, 마지막 남은 체념이 천천히 식었다.
식은 자리에는 분노가 남았다.
만약.
만약 살구꽃이 한 번 더 피어난다면. 그 꽃그늘 아래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황후의 자리에 앉지 않으리라.
그의 손을 잡지 않으리라.
심가의 이름을 진흙에 묻은 자들을 — 소연화 뒤의 독고연화를, 자녕태후를, 심서윤을, 위명서를 — 하나도 잊지 않으리라.
그리고 이 남자.
제 마지막을 품에 안고도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는 위지헌을. 이번에는 외면하지 않으리라.
"만약…"
월령이 피 섞인 숨으로 속삭였다. 위지헌이 그녀의 입가에 귀를 기울였다.
"봄이… 한 번만 더 온다면…"
"온다."
위지헌의 팔이 떨렸다.
"내가 오게 할게."
월령은 마지막 힘을 다해 그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저는, 황후가 되지 않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 빗소리가 멀어졌다. 형장의 비명도, 말발굽도, 황제의 외침도 물속에 잠기듯 흐려졌다.
세상은 멀어지는 등불처럼 하나씩 꺼졌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위지헌의 목소리였다.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어둠의 문턱에 손을 걸고 끝내 닫히지 못하게 버티는 사람처럼.
그리고 침묵이 내렸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월령은 문득 살구꽃 향을 맡았다.
너무 먼 봄의 향이었다.
방울이 울렸다.늙은 태의가 아이의 오른쪽에서 방울을 흔들자 봄이 돌아보며 잡으려 했다. 태의가 방울을 뒤로 빼고 왼쪽으로 돌아가서, 아이 귀 한 뼘 옆에서 울렸다.아이는 앞에 있는 월령을 보고 웃었다.태의가 방울을 놓고 왼쪽에서 크게 손뼉을 쳤다. 방어멈이 놀라고 청아가 놀랐는데 아이는 놀라지 않았다."열이 귀 안으로 들었사옵니다. 왼쪽이옵니다. 돌 전 아이가 열병을 앓고 나면 더러 있사옵니다. 열 아이에 하나꼴이옵니다. 오른쪽은 멀쩡하옵니다.""왼쪽은요. 약을 쓰면요.""쓸 약이 없사옵니다. 안 돌아오옵니다.""평생요.""예, 마마님. 평생이옵니다."월령이 오른쪽 귀가 제 가슴에 오게 아이를 안았다. 아이가 그쪽 귀로 어미 숨소리를 듣고, 이 하나 난 잇몸으로 웃었다.*위지헌이 흰 옷에 왼 어깨에 붕대를 감은 채 마루 기둥 옆에 서서 태의 말을 들었다. 왼쪽이 안 돌아온다는 말이었다.그가 소리를 냈다.말이 아니었다. 목 안에서 숨이 꺾이는 짧은 소리였다. 열 해 전장에서도 내지 않았고 형장에서 늦었을 때도 내지 않은 소리를, 아내 앞에서 처음 냈다.오른손이 옥대로 가서 매듭을 잡고는 놓지 못했다.월령이 아이를 안은 채 그것을 보았다. 무너지지 않았다. 아이가 품에서 오른쪽 귀로 어미 숨소리를 듣고 있어서, 무너질 자리가 없었다."부군."그가 아내를 보지 않고 기둥을 보았다."부군. 이리 오세요. 오른쪽으로요. 이 애 오른쪽은 다 들어요."그가 아이의 오른쪽으로 왔다. 아이가 아비를 돌아보며 손을 뻗었는데 옥관이 없어서 붕대를 잡았다. 그는 앉은 것이 아니라 무릎을 꿇었고, 아이 손이 잡은 붕대를 빼지 않았다."내 왼쪽하고, 네 왼쪽하고. 둘이면—"말이 거기서 끊겨 다 맺지 못했다. 그가 말을 다 맺지 못하는 것을 월령은 여태 손에 꼽을 만큼만 보았다. 오늘 하나가 더 늘었다."둘이면 오른쪽이 둘이에요. 그거면 돼요."*"오른쪽에서 부르면 됩니다."방어멈이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마루 끝에서 말했다."애가 고개 돌
흰 천이 문마다 걸렸다.곤원전 문과 회랑 기둥과 궁문에, 늙은 상궁이 제 손으로 그것을 걸었다. 어제 문지방에서 무릎이 꺾였던 사람이 일어나서 걸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빈전이 곤원전 안에 차려지고 황후가 마신 찻상은 치워졌다. 잔 하나만 꼭지를 오른쪽으로 둔 채 고 내관의 손에 들려 편전으로 갔다.*경화제가 병상에서 일어났다.태의가 말리고 고 내관이 말렸으나 듣지 않았다. 다리가 서지 않는 사람이 서자 위명서가 그 팔을 잡았고, 아비가 아들에게 실어 본 적 없는 무게를 실었다."아바마마, 가마를 부르겠습니다.""가마는 안 탄다. 황후한테 가는 길이다. 걸어서 간다.""그럼 제 팔을 잡으십시오. 놓지 마시고요."편전에서 곤원전까지 회랑 하나와 돌길 하나를 걷는 데 반 시진 가까이 걸렸다. 위명서는 아비가 서면 서고 걸으면 걸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매화 소맷단의 마른 것 위에 아비의 손이 닿아 있었다.빈전 앞에서 경화제가 아들 팔을 놓았다."여기서부터는 혼자 간다."혼자 세 걸음을 걸어 흰 천 앞에 섰다. 꿇지 못하는 다리라 선 채로, 임금이 아니라 늙은 남편의 눈으로 보았다. 그러고는 고 내관 손의 잔을, 오른쪽인 꼭지를 보았다."그 잔은 짐 머리맡에 둬라. 꼭지는 그대로 두고. 짐이 누운 동안 짐 대신 볼 것이다.""예, 폐하. 머리맡에 두겠사옵니다."*위지헌이 국청 마당에 섰다.태의가 손가락 셋이 제 방향이 아닌 채로 밤을 넘기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황후를 독살하고 폐하께 향을 먹인 손이다. 지금 참한다.""전하, 국상 중에 피는 법도에—""국상 중이라 벤다. 상주가 없는 국상이다. 벨 것이라도 있어야지."옥리가 마당에서 벴다. 월령은 그 자리에 없었다. 봐야 할 것은 어제 다 봤다. 위지헌은 칼을 닦지 않았다. 벤 것은 옥리의 칼이었다.*자녕궁 담 밖에서 초비가 들었다.담 안에서 나는 곡소리는 숙비의 것이었다. 법도대로 세 번 길게 하고 끊고, 다시 세 번 하고 끊는, 황
월령은 국청 마당을 뛰쳐나왔다.궁 안에서는 아무도 뛰지 않는다. 여인이 치맛자락을 쥐고 달리면 그것만으로 흠이 되고, 섭정왕비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 것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태의가 국청 바닥에 엎드린 채 뱉은 말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곤원전 찻잔은 오늘 아침에 바뀌었소.기윤이 뒤에서 따라붙다가 앞질러 나갔다. 회랑을 두 개 지나고 돌길을 건너는 동안 월령은 한 번도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곤원전 문 앞에 늘 서 있던 늙은 상궁이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그 틈으로 국화 우린 물 냄새가 흘러나왔다. 황후가 좋아하는 차였다.*황후는 찻상 앞에 앉아 있었다.병상에서 일어나 곤원전으로 돌아온 지 사흘 만에 처음 옷을 갈아입고 앉은 자리였다. 찻상 위에는 잔 하나가 뚜껑을 벗은 채 놓여 있었고, 벗겨 둔 뚜껑의 꼭지는 오른쪽을 향해 있었다. 상궁이 직접 우린 것만 오른쪽으로 놓기로 한, 월령이 만든 규칙 그대로였다.잔은 비어 있었다."마마."황후가 고개를 돌렸다. 얼굴빛이 희다기보다 잿빛이었고, 입가에서 국화 냄새가 났다."섭정왕비가 궁 안에서 뛰다니. 무슨 일이냐.""마마, 그 잔을 누가 올렸습니까.""상궁이 우렸다. 내 눈으로 봤다."황후는 이상할 것 없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우려 놓고 나니 편전에서 부른다기에 갔다. 폐하께서 찾으신다고 하더구나. 가 보니 찾으신 적이 없다 하시고. 돌아와 보니 잔이 그대로 있기에 마셨다. 꼭지가 오른쪽이었으니까."월령은 찻상으로 다가가 잔을 집어 들었다.빈 잔 바닥에 국화 잎 하나가 붙어 있었다. 잔을 뒤집자 굽에 난 흠이 손끝에 걸렸다. 곤원전의 잔은 굽에 흠이 없다. 이것은 곤원전의 잔이 아니었다. 곤원전의 것과 똑같이 생기고, 똑같은 국화 냄새까지 입힌 다른 잔이었다. 상궁이 우린 진짜 잔은 이 방에 없었다. 누군가 그 자리에 이 잔을 놓고 갔다. 뚜껑 꼭지를 오른쪽으로 돌려놓을 줄 아는 손이었다."기윤 나리, 태의원에 가 주세요. 원로 말고 아무나,
목패가 먼저 떨어졌다.궁문 밖 돌길에서 기윤이 태의의 뒷덜미가 아니라 허리띠를 잡았다. 돌아선 태의는 회색 옷에 마흔 남짓이었다. 맥 짚던 손이 허리로 갔다가 멎었다. 강무진이 붕대 감은 왼팔이 아니라 오른손으로 그 손목을 잡았다."무슨 일이오. 나는 태의원 사람이오. 폐하의 맥을 짚고 나오는 길인데—""압니다. 하가 태의시지요. 소매만 보겠습니다."강무진이 소매 안에 손을 넣자 작은 향낭이 나왔다. 비단이 아니라 무명으로 지어 오래돼 색이 바랜 것이었다. 단내가 났고, 단내 밑에 쓴 것이 있었다.다른 태의 둘은 그냥 보냈다. 고 내관이 그들을 돌려세워, 아무것도 못 본 얼굴로 집에 가라고 일렀다.*왕부 별채에서 독고진겸이 그 향낭을 늙은 손으로 받았다.코에 대지 않았다. 댈 것도 없이 아는 냄새라, 손바닥에 놓고 무명 주머니와 실 매듭만 보았다."자녕궁 것이 아니오.""향방 것이 아니에요? 자녕궁 향방에서 짓던 냄새예요.""향방이 이것을 물려받은 거요. 아버지가 서른 해 전에 셈방 문 앞에 이 향을 피웠소. 셈이 틀린 사람이 문을 열면 이 냄새부터 맡았지. 맡고 나서, 아, 내 셈이 틀렸구나 하고 알았소. 누이가 입궁할 때 이것을 가져갔소. 그걸로 향방을 차렸고."독고진겸이 매듭을 보았다. 셈방 매듭이라 푸는 법이 따로 있었다. 그가 그것을 풀자 안에 향 가루가 있었고, 가루 밑에 숫자 하나가 적힌 종이 조각이 있었다."아버지 사람이오."독고진겸이 종이 조각을 들어 보였다."나도 몰랐던 사람이오. 셈방 문패에 이 번호가 있었소. 아버지가 사람을 살 때 이 번호를 줬지. 내가 셈방을 물려받을 때 이 번호 사람은 없었소. 죽었다고 들었소.""살아 있었네요.""살아 있었소. 하가 옷을 입고 서른 해를 살았소."월령이 향낭을 도로 받았으나 매듭을 묶지 못했다. 독고진겸이 대신 묶어 주었다. 딸에게 이름 첫 자를 굵게 쓰는 법을 가르치지 못한 손이었다.*자녕궁 담 위에서 초비가 내려왔다."담 안은요, 마마님, 조용해요. 설련 언
숨소리가 문밖까지 났다.편전 안쪽 침방에는 발이 내려져 있었고, 그 안에서 숨이 들고 났다. 드는 숨은 짧고 나는 숨은 길었으며, 나는 숨 끝에는 기침이 붙었다. 고 내관은 그 기침을 세지 않았다. 셋을 넘긴 뒤로는 셀 수가 없었다.월령이 발 밖에 서고 위지헌이 먼저 들어갔다. 왼 어깨에는 방어멈이 다시 감은 붕대가 대창포 안에 있었다. 발이 들렸다가 내렸다."지헌아. 왔느냐.""예, 형님. 왔습니다.""어깨는 어떠냐.""화살이옵니다. 뼈는 비켰습니다.""뼈만 비키는 애다, 너는. 어릴 때부터 그랬어."경화제가 웃으려 했으나 웃음이 기침이 됐다. 위지헌은 무릎을 꿇은 채 그것을 보면서도 손을 뻗지 않았다. 뻗을 손이 오른쪽 하나뿐이라, 그 하나를 무릎 위에 두었다."형님, 언제부터 이러셨습니까.""어제부터 못 일어났다. 기침은 그 전부터고. 고 내관이 세더구나. 짐이 모를 줄 알고."*태의가 셋이었다.회색 옷에 허리에 목패를 찬 셋이 번갈아 맥을 짚었다. 하나가 짚고 물러나면 다른 하나가 앞으로 나왔고, 짚고 나서는 서로 눈을 맞추지 않았다. 눈을 맞추면 셋이 같은 것을 안다는 것이 얼굴에 드러나기 때문이었다.황후가 병상 머리맡에 앉아 있었다. 예복이 아니라 사흘째 갈아입지 않은 옷이었다. 위명서는 그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북문에서 곧장 온 옷 그대로, 매화 소맷단의 마른 것을 털지 않은 채였다."명서.""예, 아바마마.""북에서 곧장 왔느냐. 어미한테는 갔다 왔고.""아직 안 갔습니다. 여기 먼저 왔습니다.""그럼 거기 앉아 있어라. 짐이 자다 깨면 네 얼굴이 있게.""예. 여기 있겠습니다."경화제가 눈을 감았고, 위명서는 그 자리에 남았다. 어미에게 가지 않고 아비 곁에 있었다. 월령이 발 밖에서 그것을 보았다. 전생에 이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고, 어미 곁에 있었다.*가운데 태의가 물러나며 월령 곁을 지났다.소매가 스치자 향이 왔다.월령이 굳었다.단내가 나고, 단내 밑에 쓴 것이 있었다. 자녕궁 향방에서
도성 북문 돌계단에 첫서리가 앉아 있었다.아침 해에 반은 녹고 반은 남은 서리 위에 월령이 봄을 안고 서 있었다. 아이는 열이 내린 지 나흘이라 뺨이 도로 희었고, 품 안에서 제 손으로 어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힘이 돌아온 손이었다.청아가 뒤에, 기윤이 그 뒤에 섰다. 방어멈은 대문을 지킨다고 오지 않았고, 초비와 묵아는 길 끝이 보이는 성루 위에 있었다.길 끝에서 먼지가 올랐다.*북문로에서 검은 줄이 왔다.앞에 말 하나, 검은 대창포에 옥관이었다. 대창포 안에 붕대가 있어서 어깨 한쪽이 다른 쪽보다 높았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이 월령에게는 보였다.그 뒤에 붉은 것과 검은 것이 다 마른 매화 소맷단, 붕대 감은 팔 둘인 강무진과 정무, 들것, 북경군이 차례로 왔다.말이 돌계단 앞에 섰다.위지헌이 오른손으로 안장을 짚고 내렸다. 시간이 걸리는데도 아무도 돕지 않았다. 도움을 받을 사람이 아니었다.월령 앞에 섰다."왔다.""예. 오셨어요."위지헌이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모르는 얼굴을 보는 눈으로 그를 보다가 옥관 쪽으로 손을 뻗었다. 닿지 않았다."앉는다더니.""앉아요. 기울지만요.""열은 내렸느냐.""내렸어요. 나흘 전에요. 이제 밤에도 안 깨요."위지헌이 오른손을 들어 희어진 아이 뺨에 손등을 댔다. 그러고는 그 손을 아이를 안은 월령의 손 위에 놓았다. 북경군이 뒤에 서 있는 채로, 서리 위에서, 그가 아내에게 건넨 것은 그 손 하나였다.월령이 그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어깨는요. 뼈는요.""비켰다. 살만 뚫렸다.""고름 냄새가 나요. 여기서도요.""방어멈이 감으면 낫는다."*"첫 장이다."위지헌이 오른쪽 소매에서 반, 또 반 접힌 종이를 꺼내 아이를 안은 월령의 팔 위에 놓았다.월령이 한 손으로 펴려는데 아이가 그것을 잡으려 했다."아기씨, 저한테 오세요. 마마님이 종이를 보셔야 해요."청아가 아이를 받았고, 월령이 두 손으로 폈다.'심월령.' '위지헌.'여섯 살 이름과 열다섯 이름이 가는
조서는 얇았다.얇은 종이가 사람을 가장 깊게 베는 날이 있다.심가 대문에 걸린 등불은 밤새 꺼지지 않았다. 내관이 돌아간 뒤에도 하인들은 감히 소리를 높이지 못했고, 부엌의 솥뚜껑은 평소보다 조용히 닫혔다. 종이 한 장이 집 안의 숨을 바꾸었다. 누가 지나가도 발끝이 먼저 조심스러워졌고, 아이들은 웃다가도 어른들의 눈치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월령은 조서를 다시 펼쳤다.궁중 내지 유출.호부 군량 장부 조작.심가 여식.그 말은 일부러 넓었다.월령일 수도 있고, 서윤일 수도 있었다. 혹은 둘 다일 수도 있었다. 넓은 말은
자녕궁에 가는 날, 경성의 거리에는 낮부터 등틀이 세워지고 있었다.상원절은 이미 지났지만, 대연의 봄에는 작은 등놀이가 자주 열렸다. 남쪽 수해지에서 올라온 장인들이 생계를 잇기 위해 종이등을 만들었고, 궁은 그것을 사들여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는 모양을 갖췄다. 거리의 아이들은 등불을 좋아했고, 어른들은 쌀값을 생각하며 그 빛을 보았다.빛은 늘 아름다웠다.그러나 빛을 밝히는 기름값은 누군가의 장부에 적혔다.마차 안에서 서윤은 말이 없었다.오늘의 서윤은 옅은 연두빛 치마를 입었다. 한씨가 골라 준 옷이었다. 너무 화려하지 않
허도겸은 약속한 시각보다 이른 때에 왔다.아침 안개가 아직 대문 밖 버드나무 잎에 걸려 있을 때였다. 심가의 하인들은 물을 뿌린 마당을 쓸고 있었고, 부엌에서는 찹쌀을 씻는 소리가 낮게 났다. 심 부인의 약을 달이는 냄새가 서원당 쪽에서 천천히 흘러나왔다. 집은 깨어나고 있었으나, 아직 하루의 얼굴을 완전히 갖추지는 못했다.그 틈에 온 사람은 늘 급한 일을 품고 있다.허도겸은 정청이 아니라 서고 앞 작은 툇마루에서 월령을 보겠다고 했다. 둘째 숙부는 불쾌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으나, 호부 낭중의 말은 예법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아이의 이름은 은호였다.은매가 처음 그 이름을 부를 때, 목소리는 거의 소리라기보다 숨에 가까웠다. 은호야. 그 두 글자가 입술 밖으로 나오자마자 은매는 다시 울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렸으나, 울지는 않았다. 동생이 깰까 봐 참는 울음이었다.은호는 작았다.일곱 살이라 들었지만, 마른 몸은 그보다 더 어려 보였다. 손목에는 회색 실이 묶여 있던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고, 기침을 참을 때마다 혀끝으로 이를 쳤다. 딱, 딱. 작은 소리는 방 안 사람들의 숨을 매번 붙잡았다.왕부 의원은 은호의 맥을 짚고 오래 말이 없었다.청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