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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봄

مؤلف: moominkiller
last update تاريخ النشر: 2026-05-23 23:23:05

"숙부."

위명서가 차갑게 불렀다.

일부러 그렇게 불렀다.

피를 나눈 어른이 황명을 거역했다는 사실을, 군중과 관리들 앞에 더 또렷이 세우려는 목소리였다.

"그 여인은 역적이다."

폐후 심씨도, 황후도 아니었다.

그 여인.

위명서는 월령에게서 마지막 이름마저 벗겨 내듯 말했다. 위지헌은 피 묻은 검끝을 내리지 않았다.

월령을 돌아보지 않은 채 낮게 받았다.

"황후께서는 역적이 아니시다."

폐후라 적힌 죄패가 월령의 목에서 빗물에 젖어 흔들렸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호칭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증좌는 모두 나왔다."

위지헌이 마침내 황제를 보았다. 그 눈빛에 군중이 한 걸음 물러났다.

신하가 군주를 보는 눈도, 숙부가 조카를 꾸짖는 눈도 아니었다. 오래 칼집 안에서 잠들지 못한 칼의 눈이었다.

"네가 내놓은 증좌겠지."

그의 목소리는 낮고 정확했다.

"찾았다. 네가 황후를 죽이려 덮어 둔 것들. 옥새의 붉은 자국도, 북문을 더럽힌 명부도, 심 장군의 이름을 훔친 글씨도."

월령의 손끝이 얼어붙었다.

그가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누명을 썼다는 것을. 심가가 배신하지 않았다는 것을.

자신이 황제에게 버려졌다는 것을.

그런데 왜 이제야.

왜 하필 모든 것이 끝난 뒤에야.

"거짓이다!"

위명서가 소리쳤다.

목소리가 높아지는 순간, 황제가 아니라 궁지에 몰린 사내가 먼저 드러났다.

"섭정왕이 역적의 딸에게 미혹되어 황명을 거역한다! 금군은 들으라, 당장 저자를—"

그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북경군의 화살이 일제히 금군을 겨눴다.

활시위가 빗속에서 낮게 울었다. 금군은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다.

위지헌은 그 소란 속에서 월령 앞에 무릎을 꿇었다. 대연에서 황제 다음으로 높은 남자가, 진흙탕 형장 위에서 죄패를 건 여인 앞에.

"월령."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황후도, 폐후도, 심씨도 아니었다.

그 두 글자는 빗속에서도 이상하게 젖지 않았다.

"늦었습니다."

그의 손이 그녀의 뺨 가까이에서 멈췄다. 닿기 전 한순간, 허락을 구하듯 숨을 멈추었다가, 아주 조심스럽게 피와 빗물을 닦아 냈다.

차가울 줄 알았던 손은 뜨거웠다.

"조금만 버티십시오. 제가 데리고 나가겠습니다."

월령은 묻고 싶었다.

어디로요.

왜요.

왜 이제야 왔어요.

그러나 입에서 나온 것은 말이 아니라 피였다. 위지헌의 얼굴에서 피가 가셨다.

그제야 월령도 느꼈다.

칼날은 아직 목에 닿지 않았으나, 형장으로 끌려오기 전 삼킨 탕약이 이미 속을 태우고 있었다. 황제는 혹시 모를 손길마저 계산해 두었다.

죽음은 칼끝에만 있지 않았다. 이미 몸 안 깊은 곳에서 조용히 문을 닫고 있었다.

"령아."

그가 그녀의 이름을 다시 불렀다. 처음으로, 아무 예도 남기지 않은 목소리였다.

"눈 감지 마. 나를 봐."

이상했다.

그가 그렇게 말하니, 정말 눈을 감고 싶지 않았다. 월령은 힘겹게 손을 들어 그의 젖은 옷자락을 붙잡았다.

검은 옷감 아래에서 낮은 약재 향이 희미하게 스몄다.

살구꽃은 아니었다.

달콤한 기억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향 아래에서는 숨이 조금 덜 흩어졌다. 위지헌은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

형장의 진흙도, 황제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팔 안에 든 몸이 너무 가벼운 듯, 그의 숨이 한 번 멎었다.

"나는 너를 택했어."

빗소리 사이로 그의 목소리가 떨어졌다. 짧고 낮았으나, 그 말은 황궁의 붉은 담보다 무거웠다.

"늦은 게 아니야. 내가 되돌릴 거야. 이 비도, 이 칼도, 네가 혼자 견뎌야 했던 모든 날도."

그는 그녀가 아직 들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처럼, 한 글자씩 귀에 심었다.

"다시 봄이 오게 할게. 네가 그 꽃그늘 앞에서, 이번에는 다른 길을 고를 수 있게."

월령은 웃으려 했다.

다정하다 믿은 목소리는 그녀를 죽였고, 차갑다 여긴 침묵은 그녀를 살리려 황명을 거역했다.

어리석었다, 심월령.

너는 참으로 어리석었다.

흐려지는 시야 너머로 위명서가 보였다. 검은 우산을 잃은 용포 위로 빗물이 흘렀다.

화려한 금실 문양 아래, 그의 얼굴만 이상하게 빈약해 보였다. 그 얼굴을 보자, 마지막 남은 체념이 천천히 식었다.

식은 자리에는 분노가 남았다.

만약.

만약 살구꽃이 한 번 더 피어난다면. 그 꽃그늘 아래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황후의 자리에 앉지 않으리라.

그의 손을 잡지 않으리라.

심가의 이름을 진흙에 묻은 자들을 — 소연화 뒤의 독고연화를, 자녕태후를, 심서윤을, 위명서를 — 하나도 잊지 않으리라.

그리고 이 남자.

제 마지막을 품에 안고도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는 위지헌을. 이번에는 외면하지 않으리라.

"만약…"

월령이 피 섞인 숨으로 속삭였다. 위지헌이 그녀의 입가에 귀를 기울였다.

"봄이… 한 번만 더 온다면…"

"온다."

위지헌의 팔이 떨렸다.

"내가 오게 할게."

월령은 마지막 힘을 다해 그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저는, 황후가 되지 않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 빗소리가 멀어졌다. 형장의 비명도, 말발굽도, 황제의 외침도 물속에 잠기듯 흐려졌다.

세상은 멀어지는 등불처럼 하나씩 꺼졌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위지헌의 목소리였다.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어둠의 문턱에 손을 걸고 끝내 닫히지 못하게 버티는 사람처럼.

그리고 침묵이 내렸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월령은 문득 살구꽃 향을 맡았다.

너무 먼 봄의 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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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265. 왕부의 밤

    미끼를 놓은 지 나흘째 밤, 왕부의 담을 넘는 자가 있었다.달이 얇은 밤이었다. 왕부의 등불은, 안채 서쪽의 한 방에만 오래 밝혀져 있었다. 지킬 것이 그 방에 있는 것처럼.담을 넘은 자는, 그 불빛을 향해 움직였다.왕부의 밤은 고요했다. 지난 여러 밤 그러했듯, 안채 서쪽의 방 하나만 불이 켜져 있었다. 나머지 창은 다 어두웠다.그 어둠은, 강무진이 만든 어둠이었다. 호위를 물린 어둠이었다. 넘어온 자에게는, 지키는 자가 없는 밤으로 보였을 것이었다.*강무진은 그 밤을 기다리고 있었다.미끼를 문 손이 어디로 드는지를 보려면, 막지 말고 들여야 했다. 그는 왕부의 호위를 안 보이는 자리로 물리고, 담과 그 방 사이의 어둠에 몸을 낮췄다.넘어온 자는 둘이었다.하나는 담 위에 남아 밖을 살폈고, 하나는 마당을 가로질렀다. 걸음이 익숙했다. 왕부의 마당 구석구석을 아는 걸음이었다.바늘로 눌린 밤을 그려 보낸 사람이 아니면, 그렇게 익숙할 수 없는 걸음이었다.마 어멈이 그려 보낸 왕부의 밤이, 이 걸음을 여기까지 데려왔다.가짜 밤을 사 간 자들이, 그 가짜 밤을 믿고 진짜 담을 넘었다. 왕부가 그려 판 어둠 속으로, 저들이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 숨었다고 여긴 자리가, 실은 다 보이는 자리였다.*마당을 가로지른 자가, 밝혀진 방의 문 앞에 섰다.그리고, 갓을 벗었다.강무진은 그 얼굴을 어둠 속에서 보았다.석중이었다.석중이 방문에 손을 대는 순간, 강무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밀서를 찾는 손을 잡는 것으로는, 실의 한 점만 끊길 뿐이었다.그가 기다린 것은, 석중이 아니었다.석중을 잡는 것은, 실의 한 점을 끊는 일이었다. 강무진이 기다린 것은, 석중이 그 방 안에서 무엇을 하는가였다. 빈 함을 열고 무엇을 찾는지, 아니면 그 자리에서 다른 누구에게 무엇을 남기는지. 한 점을 잡기보다, 그 점이 어느 점과 이어지는지를 보는 것이 먼저였다.*석중이 방 안으로 들었다.방 안에는, 밀서 대신 빈 함 하나가 촛불 아래 놓여 있었다. 붉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264. 고른 미끼

    북에서 온 봉함을, 월령은 그날 밤 홀로 폈다.흰 바둑돌 자국이 눌린 봉함이었다. 안에는 서신 한 줄과, 향 먹인 종잇조각, 붉은 실 물표가 들어 있었다.'북의 그늘과 남의 그늘이, 한 실이다.'월령은 그 물표를 오래 보았다.독고가 상단. 자녕궁의 그늘이 기대어 선 상단이자, 왕부의 기름통 안으로 실을 뻗은 손. 그 실이, 북의 흑령에게까지 닿아 있었다.멀리 떨어진 북과 남이, 한 손 안에서 세어지고 있었다.*이제 월령은, 실의 전부를 보았다.성 밖 역참, 남쪽 절터, 궁성의 문, 동쪽 처소, 그리고 북의 흑령. 그 모든 점을 꿴 실의 한 끝에, 얼굴 없는 '연'이 있었다.실이 이렇게 길면, 어디를 끊어도 나머지가 다시 이어졌다. 석중을 잡으면 새 심부름꾼이 왔고, 채운 상궁을 내치면 새 상궁이 앉았다.끊어서 될 일이 아니었다.한 자리에서, 그 실이 스스로 엉키게 해야 했다.엉키게 하려면, 저들이 탐낼 것을 한 자리에 놓아야 했다. 실을 쥔 자가 반드시 가지러 올 것을. 그것을 가지러 오는 걸음이, 흩어진 점들을 한 자리로 불러 모을 것이었다.미끼는 걸음으로는 부족했다. 걸음은 사람 하나를 부를 뿐이었다. 물건이라야, 그 물건에 목이 매인 여럿을 한꺼번에 불렀다.*월령은 마 어멈을 통해, '연'에게 미끼 하나를 흘렸다.이번에는, 걸음이 아니라 물건이었다.'왕부의 안주인이, 지난겨울 섭정왕이 북에서 보낸 밀서 한 통을 가지고 있다. 그 밀서에, 독고가 상단의 이름이 적혀 있다.'지어낸 밀서였다. 그런 밀서는 없었다. 그러나 '연'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밀서였다.제 이름이 적힌 종이가 왕부에 있다면, '연'은 그것을 가만두지 못했다. 사람을 보내 확인하거나, 없애려 할 것이었다.미끼를 문 자리에서, 실이 엉킬 것이었다.*"위험하지 않겠습니까."강무진이 낮게 물었다.밀서를 노린 손이 왕부로 들면, 그 손이 안주인에게 닿을 수도 있었다."위험해."월령이 말했다."그러나 위험하지 않은 미끼는, 아무도 물지 않아. 저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263. 북에서 잡은 것

    북의 봄은, 골짜기를 하나씩 되찾을 때마다 조금씩 가까워졌다.위지헌은 세 번째 골짜기를 되찾던 날, 흑령의 진막에서 사람 하나를 산 채로 잡았다.흑령의 병사가 아니었다. 흑령의 옷을 입었으나, 창을 쥔 자의 몸이 아니었다. 붓을 오래 쥔 자였다.저들에게 이 땅의 셈을 가르친 자였다.위지헌은 그자를 오래 보았다. 흑령의 갑주는 몸에 맞지 않았고, 손등은 볕에 그을리지 않아 희었다. 창을 든 적 없는 손이, 창을 든 자들 틈에 섞여 있었다.전장을 오래 오간 눈은, 그런 자 하나를 대오 속에서 골라냈다. 창은 창을 알아보고, 붓은 붓을 알아보았다.*그자는 흑령의 말을 몰랐다.흑령의 진막 한가운데에서, 흑령의 말을 못 하는 자가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도성의 말을 쓰는 자였다.위지헌은 그자를 심문하지 않았다. 심문은 말을 짜냈으나, 말은 거짓도 함께 실려 나왔다. 대신, 그자의 몸에서 나온 것을 보았다.품에서, 향을 먹인 종잇조각 하나가 나왔다. 도성 남쪽에서 나는 향이었다. 그리고 소맷단 안쪽에, 붉은 실로 짠 작은 물표가 있었다.독고가 상단의 물표였다.위지헌은 그 물표를 손끝으로 만졌다. 붉은 실의 매듭이 낯익었다. 지난가을, 심가의 소금값을 흔들던 자가 쓰던 것과 같은 매듭이었다. 도성 저잣거리에서 곡식값을 흔들던 실이, 북의 국경에서 흑령의 셈을 흔들고 있었다.같은 실이, 곡식과 창을 함께 흔들었다.*심도윤이 그 물표를 보고 낮게 말했다."북의 흑령과, 남의 상단이 한 실로 묶여 있습니다.""오래된 실입니다."위지헌이 말했다."흑령에게 이 땅의 셈을 가르쳐 저들을 오래 국경에 매어 두면, 도성의 어느 손은 그 틈에 자랍니다. 북이 시끄러울수록, 남의 그늘이 넓어집니다."심도윤의 눈이 서늘해졌다.딸이 도성에서 쫓는 그림자와, 이 북의 진막에서 나온 물표가, 같은 붉은 실이었다.두 장수는 그 물표를 오래 보았다. 북의 국경을 여러 겨울 지킨 노장도, 도성의 판을 여러 봄 읽은 섭정왕도, 그 실 하나 앞에서는 같은 자리에 섰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262. 밤 가마의 처소

    세 번째 다회는, 황후가 아니라 봄꽃 구경을 핑계로 열렸다.내명부의 여인들이 어원의 살구와 복사꽃 아래를 거닐었다. 걷는 자리에서는, 앉은 자리보다 말이 헐거워졌다. 월령은 그 헐거워진 틈을 기다렸다.어원의 봄은 궁 밖의 봄보다 반 박자 늦었다. 담이 높아 볕이 늦게 들고, 늦게 든 볕이 오래 머물렀다. 살구와 복사가 한꺼번에 피어, 걷는 여인들의 소맷자락에 꽃잎이 얹혔다.꽃 아래에서도, 누구도 크게 웃지 않았다. 궁의 웃음은 늘 반쯤 접혀 있었다. 접히지 않은 웃음은, 류담희 하나뿐이었다.류담희가 곁에 붙어, 여전히 재잘거렸다."왕비마마, 저 복사꽃 아래가 청화각 뒤뜰이에요. 제가 밤에 앉아 있는 자리요.""밤에도 그 자리에 앉느냐.""잠이 없어서요. 달이 밝으면, 꽃 그림자가 담에 지는 게 예뻐서."월령은 그 자리에 서서, 담 너머를 보았다.청화각 뒤뜰에서는, 궁의 여러 처소 뒷문이 한눈에 들어왔다. 낮에는 다 같아 보이는 뒷문이었다. 그러나 밤에 어느 문이 열리는지는, 밤에 그 자리에 앉는 사람만 알았다.*"그 밤 가마 말이다."월령이 낮게 물었다."어느 문에서 나오더냐."류담희가 손가락으로 담 너머를 가리켰다. 여러 뒷문 가운데, 동쪽 끝의 하나였다."저 문이요. 늘 저 문에서만 나와요. 다른 처소는 밤에 문을 안 여는데, 저 문만."월령은 그 문을 눈에 담았다.동쪽 끝의 처소. 내명부의 위계에서,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은 자리였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자리이기도 했다.눈여겨보지 않는 자리가, 눈을 감추기에는 가장 좋은 자리였다.높은 처소는 늘 눈이 많았다. 눈이 많은 자리에서는, 밤에 가마 하나도 몰래 낼 수 없었다. 그늘을 감추려는 손은 높은 자리가 아니라, 눈에 띄지 않는 중간 자리를 골랐다. 아무도 오르내리려 다투지 않는 자리. 그래서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자리.*돌아오는 회랑에서, 월령은 설련과 다시 스쳤다.이번에는, 설련이 먼저 걸음을 멈췄다."섭정왕비마마.""무슨 일이냐."설련은 잠깐 말을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261. 붉은 꽃을 받은 뒤

    적련초를 받은 이튿날, 월령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심가에 사람을 두는 것이었다.위지헌의 명이 아니었다. 왕부의 군사를 심가 앞에 세우면, 순검 없는 왕부가 사가를 지킨다는 새 흠이 되었다. 그래서 월령은 군사 대신, 강무진 하나를 장사꾼의 걸음으로 심가 담 밖에 두었다.보이지 않게 지키는 것. 지난겨울 위지헌이 그녀에게 해 주던 것을, 이번에는 그녀가 어머니에게 했다.강무진은 소금 자루를 진 장사꾼 차림으로, 심가 담 모퉁이 국숫집 평상에 앉았다. 하루에도 몇 번, 국수 한 그릇을 시켜 놓고 오래 앉아 있는 장사꾼이었다. 심가 대문으로 드는 자와 나는 자가, 그 평상 앞을 지났다.지키는 사람이 보이면, 노리는 자가 몸을 사렸다. 보이지 않으면, 노리는 자가 제 발로 걸어 들었다. 강무진은 보이지 않는 쪽을 골랐다. 걸어 드는 발을 잡는 편이, 담 밖에서 겁을 주어 돌려보내는 것보다 나았다.*낮에, 월령은 친정에 들렀다.혼인한 딸이 친정을 찾는 것은 흉이 아니었다. 손에는, 지난번 유씨가 가져온 약과 함의 답례로 봄나물 한 소쿠리가 들려 있었다.유씨는 딸을 반겼다. 병색이 옅어진 얼굴에, 봄볕이 앉아 있었다.월령은 어머니에게, 적련초를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어머니는 전생을 모르는 채로도 무서워할 것이었다.대신, 다른 말을 했다."어머니, 요즘 대문을 낯선 사람에게 함부로 열지 마세요.""…무슨 일이 있느냐.""봄이 되면 도성에 뜨내기가 많아서요. 방어멈에게도 일러 두세요. 약도 음식도, 아는 손에서 온 것만 드시고요."유씨는 딸의 얼굴을 잠깐 보았다.무언가를 감추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 감춤이 딸을 위한 감춤임을, 어미는 알았다."…알았다."유씨는 더 캐지 않았다. 다만 딸이 돌아간 뒤, 부엌의 약단지를 모두 새로 봉하게 했다.유씨는 딸의 말끝에서, 오래전 심가에 붉은 예함이 들던 겨울을 떠올렸다. 그때도 딸은 무섭다는 말 대신, 대문을 조심하라는 말로 집을 지켰다. 무엇을 아는지는 말하지 않고, 무엇을 하라는 것만 일렀다.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260. 두 개의 봄

    북에서 세 번째 서신이 온 날, 남에서도 한 가지가 왔다.두 가지가, 같은 저녁에 왕부에 닿았다.*북의 서신은, 여전히 한 줄이었다.'골짜기 둘을 되찾았다. 봄이, 조금 가까워졌다.'월령은 그 한 줄에 잠깐 웃었다. 봄이 가까워졌다는 말은, 그가 무사하다는 말이기도 했다. 다친 데를 적지 않는 사람이라, 그녀는 그 짧은 안부에서 무사만을 읽어 냈다.그러나 그 웃음은, 함께 온 군보 앞에서 곧 걷혔다.그 아래, 군보 한 장이 함께 있었다.되찾은 마을에서 흑령의 진막을 뒤지다, 낯선 물건 하나가 나왔다는 것이었다. 이 땅의 눈과 길을 그린 지도였다. 흑령의 거친 글씨가 아니었다. 도성의 손이 그린 지도였다.그 지도의 귀퉁이에, 향을 먹인 자국이 있었다.향을 먹인 종이는 오래 두어도 좀이 슬지 않았다. 귀한 문서에나 쓰는 손질이었다. 국경 밖으로 나가는 지도에 그 손질을 한 자는, 그 지도를 오래 쓰려 한 자였다. 한 철의 노략이 아니라, 여러 해의 셈을 그린 자였다.월령은 그 군보를 읽고, 남쪽 절터의 향을 떠올렸다.북의 능선 뒤에 선 그림자와, 남의 절터에서 향을 대는 그림자가, 한 그림자일지도 몰랐다. 두 개의 봄이, 하나의 그늘 아래 있었다.*같은 저녁, 마 어멈이 통에서 새것 하나를 꺼내 왔다.이번에는, 종이가 아니었다.마른 꽃 한 송이였다.여러 번 접힌 종이 대신, 마른 붉은 꽃 한 송이가 통 바닥에 놓여 있었다.월령은 그 꽃을 보았다.그리고, 숨이 한 박자 멎었다.적련초였다.*붉은 다섯 잎이, 마른 채로도 그 빛을 잃지 않았다. 여느 꽃이라면 마르며 빛이 죽었다. 적련초는 독을 품은 채로 말라, 붉은빛만 남았다.월령은 그 꽃을 전생에 딱 한 번 보았다. 어머니의 약사발 곁에, 마른 잎 몇이 떨어져 있던 날. 그날 그녀는 그것이 무슨 꽃인지 몰랐다. 알았을 때는, 어머니가 이미 없었다.전생에, 그 꽃이 어머니를 죽였다.유씨는 그 붉은 꽃의 독을 먹고, 딸보다 먼저 갔다. 이번 생에, 월령은 그 꽃이 피기 전에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13. 매듭

    비가 그친 뒤의 새벽은 지나치게 맑았다.밤새 지붕을 두드리던 물소리가 멎자, 심가는 잠시 숨을 잃은 집처럼 조용해졌다. 처마 끝에는 아직 물방울이 매달려 있었고, 뜰 가운데 고인 얕은 물에는 회색 하늘이 얇게 비쳤다. 행랑채 쪽에서는 젖은 짚을 뒤집는 소리가 늦게 깨어났고, 부엌에서는 불씨를 살리려 부싯돌을 치는 소리가 두어 번 낮게 울렸다.비가 지나간 자리는 늘 사람보다 먼저 말을 했다.기와 밑에 떨어진 진흙, 담장 아래로 밀려온 풀씨, 회랑 끝에 비스듬히 남은 발자국. 맑은 날에는 누구의 것인지 묻지 않아도 될 흔적들이,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12. 틈

    비는 밤새 그치지 않았다.새벽녘에는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실을 감는 소리처럼 가늘게 이어졌다. 처음에는 한 방울씩, 곧이어 두 방울씩, 나중에는 어느 것이 먼저 떨어졌는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잦아졌다.심가의 아침은 젖은 냄새로 열렸다.행랑채 아이들은 짚신 밑창에 진흙을 묻힌 채 창고 앞을 오갔고, 부엌에서는 젖은 장작에 불을 붙이느라 연기가 낮게 깔렸다. 말린 생강은 다시 대청 안으로 들여졌고, 약방의 작은 종은 창포 묶음을 처마 아래에 걸며 연신 코를 훌쩍였다.비가 오는 날에는 집안의 틈이 먼저 보였다.기와가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11. 실

    자녕궁에서는 아무 말도 오지 않았다.칭찬도 없었고, 꾸짖음도 없었다.완성본을 거두어 간 뒤 사흘이 지났으나 문상궁의 먹빛 소매는 다시 심가 문턱을 넘지 않았다. 동쪽 대문을 드나드는 것은 장작을 실은 수레와 포목점 심부름꾼, 약방의 어린 종뿐이었다.그런데도 심서윤은 매번 대문 쪽 소리가 날 때마다 고개를 들었다.처음에는 아주 작게였다.찻잔을 내려놓다가, 바느질하던 바늘끝을 멈추다가, 어머니 한씨가 부르는 말에 대답하려다 말고. 시간이 갈수록 그 작은 움직임은 몸에 남은 버릇처럼 굳어 갔다.기다림은 소리가 없었다.그러나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10. 붓끝

    심서윤은 그 밤 잠들지 못했다.자녕궁에서 받은 작은 붓은 베개맡에 놓여 있었다. 흰 붓대는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떠 보였고, 끝에 매인 금실은 등잔불이 사라진 뒤에도 혼자 빛을 기억하는 것처럼 보였다.서윤은 옆으로 누웠다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방 안은 조용했다. 창밖에서는 밤새 젖은 살구꽃잎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고, 멀리 행랑채 쪽에서는 늦게 돌아온 하인이 물동이를 내려놓는 낮은 소리가 들렸다. 평소라면 그런 소리들이 집의 숨처럼 느껴졌을 것이다.오늘은 모든 소리가 자신을 기다리게 하는 것 같았다. 마마께서 다시 부르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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