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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Auteur: 한엘리
last update Date de publication: 2026-07-11 20:39:33

14층의 마당발 총괄기획부 임 주임은 들고 있던 물병을 놓치고 말았다. 

열린 엘리베이터 안에 어제 잠시 보았던 현에단 본부장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와 잠깐 눈이 마주친 순간, 

그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가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갔다.

높은 콧대와 잘생긴 턱 그리고 굵고 남자다운 목선을 보고 순간 숨을 삼켰다.

현역 모델처럼 보이는 저 남자가 본부장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가 앞에서 물병을 떨어뜨린 여자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걸어 나갔다.

‘현에단 본부장님이네. 보통 괜찮냐고 할 텐데.’

고개를 돌려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와이셔츠 양쪽을 허리에 맞게 접어 넣은 깔끔한 옷매무새와 붉은 갈색 슬랙스까지 멋있게 소화하고 있었다.

길고 건강해 보이는 다리를 보고 임 주임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와, 미쳤다.”

임 주임은 들리지 않게 입만 달싹였다.

곧 그녀답게 물을 들고 미소를 장착했다.

‘나보다 어린데 뭐. 쫄 것까지야.’

임 주임이 현에단 뒤를 바라보았다. 천천히 그를 따라가며 말을 걸어 볼 심산이었다.

복도의 직원들도 얼굴을 돌려 누구인지 살피고 있었다.

“신임 본부장님이시지요?”

“아. 네. 아직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고 사무실 좀 보러 왔습니다.”

“제가 안내해 드릴까요.”

“일에 방해가 되고 싶지는 않은데요.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총괄기획부 임은영  주임입니다.”

“네, 전 현에단입니다.”

그의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히며 울렸다.

빈 사무실 문을 연 현에단은  임 주임을 보내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무표정한 그는 미소를 지을 때는 친절해 보이려 애쓰는 것 같았다.

짙은 눈썹 아래 검은 눈빛이 깊었지만 차가웠다.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눈빛이었다. 하지만 아름다웠다.

그리고 오른쪽 눈썹과 이마 사이에 손가락 두마디 길이의 흉터가 보였다.

‘흉터마저도 일부러 그린 것 같네.’

오랜만에 보는 깊고 촉촉한 눈매가 연상인 임 주임의 보호 본능을 일으켰다. 

임 주임은 마른침을 삼키며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인사할 준비를 했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돌아가려는 순간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고리를 쥐고 서 있는 현에단의 눈에 익숙한 여자가 긴 복도 끝에서 보였다. 

그 순간 비상계단의 문을 열고 나온 여자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임 주임님.”

“네.”

“지금 사무실로 들어간 긴 머리 사원 이름이 뭡니까?”

임 주임은 뒤로 돌아보았다.

이미 여자는 뒤쪽 문을 열고 사무실로 들어갔지만, 유리창 너머로 누군가와 서서 대화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 패턴실 다녀오나 보네요. 신다니 씨이고 디자이너예요.”

 임 주임이 다시 현에단의 얼굴을 살피려 고개를 돌렸을 때,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사무실로 들어갔다.

….

다니는 태라 디자이너 사무실에서도 디자이너였다. 

하지만 기본 형태와 아이디어를 잡으면 강태라의 지시대로 수정을 했다. 

강태라의 정신과 심미안이 기준이었다. 하이패션의 감각을 익히기에 더없이 좋은 경험이었다. 

그것이 경력직 인턴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였을 것이다. 

강태라의 아들  강 전무만 아니었다면 오래 다닐 수도 있었는데, 대영어패럴에 다니게 되다니 오히려 잘 됐다.

다만 아주 조금 아쉬운 것은 대영의 업무는 디자이너라기보다는 원단에 대한 관리가 컸다.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관련이 없는 것이 어디 있겠나. 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것이겠지.’

다니는 겨울 시즌 유행색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 중이었다. 패션 경향을 분석하기 위해 주요 패션쇼는 거의 다 보았다. 

패션쇼와 트렌드 분석을 어느 정도 끝내고 유행하는 색, 원단 그리고 문양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해외의 색상과 실제 판매되는 국내의 트렌드는 차이가 있다.

미묘한 차이를 알아내는 것은 재능과 감각이 모두 필요했다.

이태하 팀장이 다니를 불렀다.

“분석은 다 끝났나요?”

“네, 아직 보고서는 조금 더 정리를 해야 합니다.”

“팀장님. 제가 보고서에 올린 색들과 원단들을 비교해 보고 싶은데요. 샘플 북도 봐야 하고요.”

“인수 안 받았어요?”

“전임자가 없어요.”

“아, 따라와요.”

이 태하는 은테 안경을 쓰고 날카로워 보였지만 직원들은 그를 신뢰하는 것 같았다. 

다니는 사람들이 그를 신뢰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일단 말을 하면 차가운 외모와 달리 친절하고 상대에게 편하게 말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었다.

서쪽 디자인부 사무실에서 나와 동쪽 총괄 기획부 옆의 공간까지 이 태하 팀장은 앞서서 걸었다.

다니는 그 뒤를 총총걸음으로 따라갔다.

총괄기획부 옆의 빈 사무실은 새 단장을 마친 상태였다. 

창고는 그 옆에 있었다.

“누가 새로 부임할 것 같아서. 기존 이사 세 명 사임했어요.”

“팀장님, 제 계약은 어떻게 돼요?”

“내 생각인데 사실 올해 디자이너는 빈자리에 경력직만 하나 뽑은 거예요. 

안 뽑으려다 꼭 필요한 인력이라 뽑은 거니 미리 걱정하지 말아요.”

“네.”

“다니 씨. 여기예요.”

자재 창고는 총괄기획부 가까운 동쪽에 있었다.

복도 왼편으로 총괄기획부,임원의 사무실이 있고 정면으로 창고가 보이는 구조였다. 

중요한 물건은 아니더라도 열쇠나 출입을 확인할 출입 카드 리더기라도 있어야 하는데 전혀 보이지 않았다. 

디자인 부서와 거리가 있어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 같았다.

‘탕비실하고 위치가 바뀌었어야 맞는 것 같은데.’

창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샘플과 원단이 얼마 없었다. 이미 절판된, 오래된 원단들도 많았다. 

먼지도 쌓여서 활용도가 점점 더 없어지는 공간이 되어 있었다.

‘어떻게 태라보다 관리가 안 되는 것 같지.’

청소 용역 직원들은 바닥 청소를 하고, 쓰레기통만 비운다고 했다. 

‘정리와 청소라면 뭐 식은 죽 먹기지.’

‘보고서는 내일까지 달라고 하셨으니’ 

다니는 물품 파악을 시작했다. 

아이 장난감으로 가득 찬 11평 오피스텔만 제외하고 정리라면 어디든 자신이 있었다.

전임에게 인계받지 못하고 일을 하려니 죽을 맛이었지만 그래도 실무를 많이 배운 느낌이었다.

이태하 팀장이 옛날 기억을 더듬으며 일을 지시해 주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샘플을 받으러 안산 공장에 직접 한 번 더 가야 하는데 멀어서 엄두가 안 나기는 했다. 

집 앞에는 오히려 안산행 버스가 있는데 회사 앞에서는 없었다.

장롱면허는 있지만 운전은 기회가 없었다. 차도 없었고 운전이 서툰 것이 처음으로 아쉬웠다.

며칠 뒤 1박2일 체육대회가 열린다. 새로운 본부장님들과 인사하는 날이라고 했다. 

다니는 어떻게든 잘 보여서 정규직도 되고,

현민호의 소식을 알기 위해러사도, 새 본부장과 친해져 보리라 마음먹었다.

“참, 다니 씨가 노래하기로 했다면서요?”

창고 상태가 답답한지 둘러보던 이태하 팀장이 화제를 돌렸다.

“우리 팀 디자이너들이 운동으로 이기긴 어렵고 다니 씨가 힘 좀 내봐요. 

우리 팀 체면 좀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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