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MELDEN신명호는 말문이 막혔다.여윤재는 신명호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것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겠죠.”강정숙은 말없이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진환식은 헛기침만 한번 하고 끼어들지 않았다.신명호의 표정은 서서히 차가워졌지만 말투까지 날카로워지지는 않았다. “소문으로만 듣던 것과 직접 뵙는 건 확실히 다르군요. 여 회장님께서 이렇게 직설적인 분일 줄은 몰랐습니다.”“돌려 말하는 것보다 낫지 않습니까.” 여윤재는 상대의 빈정거림을 못 알아들은 척했다. “할 말을 제대로 못 하고 빙빙 돌리는 게 더 피곤합니다.”“신동이 저를 거스르는 데 제 책임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제가 엄격하게 키워서 저를 원망하는 부분도 있겠죠.” 신명호는 현장에서 화를 터뜨리지 않을 정도의 자제력은 있었다. “그래도 서로 아는 사이니 말씀드리는데, 그 녀석이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믿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강정숙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신 회장님은 저희가 사람 보는 눈이 없다고 생각하세요?”신명호가 담담하게 답했다. “사람을 잘 보셨다면 두 분도 예전에 그렇게 헤어지지는 않으셨겠죠.”강정숙과 여윤재는 신명호가 그렇게 말할 줄 몰랐다. 신명호는 너무도 평온한 목소리로 가장 아픈 곳을 찔렀다. “두 분이 지나치게 선량한 편이긴 하십니다. 조금만 더 계산적이셨다면 여 회장님도 예전에 거짓말로 강정숙 여사님을 밀어내지 않았을 테고, 지금까지 혼자 지내면서 따님에게도 외면받는 처지는 되지 않으셨겠죠.”그 말이 나오자, 거실 분위기가 단숨에 싸늘하게 가라앉았다.강정숙을 비롯한 사람들의 시선이 신명호에게 모였다. 누구도 큰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압박감은 분명했다.신명호는 겉으로는 태연했으나 속으로는 조금 당황했다. 고작 몇 마디 주고받았다고 마음속 생각이 그대로 튀어나올 줄은 본인도 예상하지 못했다.여윤재 역시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저희 일을 꽤 자세히 아시는군요.”“두 분은 당시 재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강솔이 물었다. “신동 씨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안 갑니다.” 신동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집안에 큰일이 생긴 게 아니라면 그 사람이 저를 찾아올 이유도, 돌아오라고 할 이유도 없습니다.”부대에 있던 동안 신동은 자기 능력으로 충분히 진급할 수 있었다.하지만 친부가 개입해서 여러 번 길을 막았다. 결국 진급을 포기하고 대장 한비 쪽으로 옮겨 함께 일하게 됐다.한비는 가끔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 정도로 제멋대로였지만, 자기 사람을 지키는 데는 누구보다 확실했다.누구도 한비의 부하를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다.신동의 가족조차 예외가 아니었다.“신동 씨가 어떤 선택을 해도 난 지원해 줄 수 있어.” 강솔은 더 캐묻지 않았다. 신동은 성인이었고 자기 인생을 어떻게 살지 선택하고 판단할 수 있었다. “내가 맞춰 줘야 할 일이 있으면 말해.”신동이 답했다. “알겠습니다.”신동은 친부의 성격을 떠올리고 미리 강솔에게 말했다. “집에 도착해서 대화가 잘 안 풀리면 언성이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강솔은 차분하게 말했다. “아마 그럴 일 없을 거야.”신동이 의아하게 물었다. “왜요?”강솔은 집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진지하게 말했다. “신동 씨가 H시 출신이라는 건 사실이지?”신동과 홍일의 신상 정보에는 사실과 가짜가 섞여 있었다.그래서 강솔도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신동은 운전대를 안정적으로 잡은 채 답했다. “그건 진짜입니다.”“그럼 신동 씨의 말대로라면 아버지도 H시에서 이름 좀 알려진 사람이잖아.” 강솔이 정리했다. “그 정도면 우리 엄마나 외할아버지, 여윤재 회장님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커.”신동은 잠깐 생각해 봤다.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둘만 있으면 화를 낼 수도 있겠지.” 강솔은 사람의 성향을 분석해 말했다. “근데 우리가 다 있는 앞에서는 함부로 못 할 거야.”신동도 납득했다. “그러네요.”...실제로 상황은 강솔이 예상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신동의 아버지이자 신씨 집안
“말로만 고맙다고 하면 성의가 없지.” 홍일은 역시 홍일이었다. 돈 이야기가 가장 먼저 나왔다. “이번 달 네 월급 절반만 나한테 주면 돼.”신동이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그래.”홍일의 눈이 눈에 띄게 반짝였다. “진짜 주는 거야?”신동이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홍일은 곧바로 몸을 돌려 강솔에게 말했다. “아가씨, 신동이 직접 말했습니다. 월급 주실 때 절반은 제 계좌로 보내 주십시오.”“너희끼리 알아서 송금해.” 강솔이 태연하게 잘라 말했다. “나 끌어들이지 마.”홍일은 바로 수첩과 펜을 꺼내 몇 줄을 빠르게 적었다. 마지막에 자기 이름까지 서명한 뒤 신동에게 내밀었다. “말 바꾸지 못하게 서면으로 남기고. 집에 가서 딴소리하면 안 돼.”신동은 신호등 앞에서 차를 세웠다. 초록불로 바뀌기까지 아직 백 초 넘게 남아 있는 걸 확인한 뒤 홍일이 쓴 종이를 받아 읽었다.내용은 쓸데없이 빈틈이 없었다.다만... 신동은 종이를 뜯어 구겨 차 안 쓰레기통에 던졌다. 평소처럼 홍일을 놀리며 말했다. “고작 그 몇 줄 썼다고 내 월급 절반을 가져가려고? 꿈 깨.”홍일의 표정에 화가 묻어났다.신동이 운전 중이지만 않았으면 주먹부터 날렸을지도 몰랐다.“너 돈에 너무 진심이다.” 신동은 대놓고 홍일을 놀린 뒤 강솔에게도 말했다. “아가씨, 집사 일은 홍일한테 맡기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돈 좀 쥐여 주면 적한테 넘어갈지도 모릅니다.”홍일이 정색했다. “제가 돈을 좋아한다고는 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제 인격을 의심하시면 안 됩니다.”신동은 대꾸하지 않았다.신호가 바뀌었다.신동이 차를 다시 출발시켰다.차가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신동은 자기 이야기도 꺼냈다. “아가씨, 제 친부가 아가씨 댁에 와 있습니다. 만나면 아마 말다툼이 좀 생길 겁니다.”강솔이 바로 물었다. “도와줄까?”신동이 룸미러로 강솔을 봤다. “무슨 일 때문에 싸울지는 안 물으십니까?”강솔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신동 씨가 지
메시지를 확인한 신동의 눈동자가 작게 흔들렸다. 핸드폰을 쥔 손에도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처음으로 답장을 쓰려고 입력창을 열었다.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지만 몇 글자 쓰다 보니 문자로 주고받는 건 너무 답답했다. 번호를 띄우고 바로 통화 버튼을 누르려 했다.손끝이 닿기 전,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신동이 옆을 보니 조수석 창밖에 홍일이 서 있었다.신동이 문을 열어 주자 홍일과 강솔이 차에 올라탔다. 뒷좌석에 앉은 강솔은 하루 종일 일해 지쳐 보였지만 표정은 평소처럼 차분했다. 그런 강솔을 보자 신동은 처음으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조수석의 홍일이 물었다. “왜 출발 안 합니까?”신동은 운전대에 손을 올린 채 잠시 고민하다가 몸을 돌려 강솔을 바라봤다. “아가씨, 말씀드릴 게 하나 있습니다.”“나도 알아.” 강솔은 신동이 곤란해한다는 걸 알아챘다.신동이 잠깐 멈췄다.강솔은 평소와 똑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가자. 집에 가서 밥 먹어.”신동은 뭔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고 차를 출발시켰다.가는 내내 머릿속에는 여러 생각이 오갔다.신동은 원래 감정에 오래 매달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혼자 겪는 일이었다면 금방 마음을 정리하고 대응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 사람들이 강솔의 집까지 찾아왔다.자기 일 때문에 강솔의 가족을 귀찮게 만들었다.경호원이라면 응당 강솔에게 생기는 골칫거리를 해결해야 하는데, 오히려 자신이 문제를 가져온 셈이었다.“오늘은 둘이 번갈아 기분이 안 좋네?” 강솔이 드물게 먼저 분위기를 풀려고 했다. “아침에는 홍일, 오후에는 신동?”홍일이 답했다. “저는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 겁니다.”강솔이 물었다. “신동은?”신동은 좀처럼 대답하지 않았다.강솔이 일부러 긴장을 풀어주려고 농담을 던지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아가씨가 물으십니다.” 홍일이 직설적으로 끼어들었다. “점심을 너무 짜게 먹어서 말문이 막혔습니까?”
통화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전화를 끊기 직전까지도 단아는 태휘를 만나면 꼭 자기 말을 전해 달라고 강솔에게 거듭 부탁했다. 그래서 강솔은 태휘 대표실로 돌아와 사업계획서를 다시 펼치고도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다.말하자니 너무 갑작스러운 이야기 같았다.그렇다고 말하지 않자니 단아가 직접 부탁한 일이라 곤란했다.“할 말 있어?” 태휘가 자꾸 자신을 바라보는 강솔의 시선을 알아차렸다.강솔은 사업계획서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쓸었다. “조금요.”태휘는 사업계획서에 관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말해.”강솔이 입을 열었다. “점심에 단아 씨랑 연락했어요.”태휘의 움직임이 굳었다.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입술이 가늘게 다물렸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다. “너희 둘이 연락한 건 네 일이야. 나한테 일부러 말할 필요 없어.”“단아 씨가 오빠한테 전해 달라는 말이 있어요.” 강솔은 태휘를 바라봤다.태휘가 시선을 들었다. 서류를 넘기던 손에 힘이 들어갔고, 강솔을 보는 눈에는 여러 감정이 얽혔다. 한참 뒤에야 물었다. “무슨 말?”강솔은 단아가 했던 말을 그대로 전했다. 의미를 보태지도, 빼지도 않았다.말투도 최대한 평온하고 담백하게 유지했다.말을 마친 뒤 강솔은 조용히 앉아 태휘의 반응을 살폈다.“알았어.” 태휘가 짧게 답했다.강솔은 전과 달라진 점이 있는지 보려 했지만, 단아의 말은 태휘에게 아무 영향도 주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태휘는 평소처럼 서류를 넘기고 업무를 처리했다. 마치 방금 들은 이야기가 대수롭지 않은 몇 마디에 불과한 듯했다.시간이 조용히 흘렀다.강솔이 시선을 거두고 다시 사업계획서에 집중하려던 때, 태휘가 손에 든 서류를 내려놓았다. 손가락으로 미간을 눌러 문지르더니 깊게 숨을 두어 번 내쉬었다.“미안.”태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내가 직접 사업들 설명해 주기로 했는데 급하게 처리할 일이 생겼어. 이해 안 되는 부분은 표시해 둬. 나중에 돌아와서 자세히 설명해 줄게.”강솔은 조금 놀랐지만 곧 고개
강솔은 잠시 말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중현과 자기 일이 떠올랐다.그렇게 애를 써도 이혼을 끝내지 못했고, 결국 예전에 했던 약속을 근거로 내세운 뒤에야 겨우 자유를 얻었다.도현은 중현보다 더 집요한 사람이었다. 단아가 정말 도현과 혼인신고를 한다면 앞으로 단아를 기다리는 미래는 결혼이라는 허울을 쓴 감금과, 다시는 자유를 되찾지 못할 삶일 가능성이 컸다.[강솔 씨.] 단아가 망설이며 불렀다.강솔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어렴풋이 짐작했다. “말씀하세요.”단아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한참 뒤에야 조심스럽게 말했다.[나중에 정말 갈 데도 없고 더 물러날 곳도 없어지면... 제가 J시를 떠날 수 있게 도와주실 수 있어요?]“네.” 강솔은 고민하지 않고 바로 답했다.[고마워요.]단아가 진심으로 말했다.“지금 당장 떠나고 싶으시면 제가 데리러 갈 수도 있어요.” 강솔은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아직은 하도현이 저지른 일의 증거를 찾을 수 있는지 해 보고 싶어요.]단아도 자기 힘으로 끝까지 시도해 보고 싶었다. [나중에 하도현이 제 일을 빌미로 협박하면, 저도 하도현을 붙잡을 카드 하나쯤은 있어야 하니까요.]강솔이 입술을 달싹였다.그런 증거를 찾기 쉽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도현은 중현과 마찬가지로 일을 처리할 때 빈틈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그런 사람의 약점을 찾아내는 것 자체가 어려웠고, 어렵게 찾아낸다 해도 상대는 그 증거를 무력화할 방법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것이다.강솔이 물었다. “하 대표가 아직 잡고 있는 단아 씨 약점이 또 있어요?”[제가 순순히 따르는 척하면서 비위 맞추던 모습이 찍힌 영상, 침실에서 찍힌 영상이랑 사진도 있어요.]단아는 이제 그런 말을 비교적 담담하게 꺼낼 수 있었다. [그중 하나만 골라서 사람들 시켜 퍼뜨려도 제 이미지는 끝장날 거예요.]연예 가십 계정이나 익명 폭로 채널은 그런 소재를 가장 빠르게 물어뜯었다.단아에게는 온갖 자극적인 꼬리표가 붙을 것이다.한번 공개되면 이틀도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