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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화

작가: 양순이
last update 게시일: 2026-06-23 16:05:57
에다는 무거운 향유병과 수건이 담긴 바구니를 든 채, 백합관을 담당하는 시녀장 앞에 비굴할 정도로 허리를 굽혔다.

“부탁드립니다, 시녀장님. 목욕물 시중만이라도 제가 들게 해주십시오.”

“안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폐하께서 개미 새끼 한 마리 들이지 말라 엄명하신 성역이다.”

시녀장이 싸늘하게 쳐다보자, 에다는 은화가 두둑하게 든 주머니를 그녀의 앞치마 주머니에 슬쩍 찔러 넣었다. 그리고 주위를 살피며 간절하고 속물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도 동아줄 하나는 제대로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블랑 부인은 어제 폐하를 모시긴 했으나, 날이 밝자마자 폐하께서 이곳 별궁에 새로운 분을 모셔 오셨잖습니까. 언제 버림받을지 모르는 허울뿐인 백작 밑에서 제 청춘을 다 썩힐 순 없습니다.”

“…….”

“제 얼굴 도장이라도 찍게 해주십시오.”

에다의 두 눈이 얄팍한 야심으로 번들거렸다.

철저하게 속물적인 하녀의 표본.

그 완벽한 연기에 시녀장은 혀를 차면서도 슬그머니 은화 주머니를 챙겼다.

“하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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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편은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116화

    서쪽 별궁으로 돌아왔을 때, 블랑은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처소의 문을 밀고 들어섰지만, 으레 다가와 숄을 받아 들던 부산스러운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불 꺼진 난로와 차갑게 식은 찻주전자. 넓은 거실에는 사람의 온기라곤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에다?”어깨에 두른 케이프를 벗어 소파에 던졌지만, 황급히 다가와 옷가지를 챙기는 익숙한 손길은 없었다.침실과 드레스룸까지 슬쩍 훑어보았으나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하기만 했다. 아이린을 만나고 온 터라 예민해진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섰다.미간을 좁힌 블랑이 몸을 돌려 다시 복도로 나섰다.마침 종종걸음으로 지나가는 하급 시종 하나가 눈에 띄었다.“거기.”“예, 예? 부르셨습니까요, 마님!”“에다가 보이지 않군. 주인이 비운 처소를 내팽개치고 어딜 간 거지?”서릿발 같은 음성에 시종이 어깨를 잔뜩 움츠리며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그, 그것이……. 아까 별궁을 빠져나가 동쪽 별궁 부근을 기웃거리는 것을 보았습니다.”“동쪽 별궁?”시종의 입에서 흘러나온 대답은 블랑의 심기를 차갑게 얼어붙게 만들었다.“예, 예. 어찌나 발걸음이 바쁘던지……. 품에는 백합 오일이랑 고급 목욕 소품들을 바구니에 한가득 챙겨 들고서요.”블랑의 입매가 싸늘하게 굳었다.‘설마, 주인의 물건까지 바리바리 싸 들고 알랑거리러 간 것일까?’전생의 참혹한 운명에서 자결하려던 에다를 거두어, 어떻게든 살려보겠다고 드라켄의 포로로 위장시켜 빼돌려 주었다.그런데 또다시 제 욕망을 채우려고 그 동쪽 별궁의 여자에게 줄을 대러 갔다?‘두 발 달린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더니. 내 목숨을 빚지고도 또다시 그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겠다는 건가.’배신감과 서늘한 분노가 가라앉기도 전, 굳게 닫혀 있던 처소의 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에다가 주변을 기민하게 살피며 은밀히 스며들어왔다.소파에 기대어 앉은 블랑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어딜 쏘다니다 온 거지?”“마, 마님. 다녀오셨습니까.”“주인이 자리를 비운

  • 남편은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115화

    방패막이.그 단어가 날 선 손찌검처럼 블랑의 뺨을 후려쳤다.‘우습기도 하지. 카시안이 다른 여자를 품든 말든 나완 상관없는 일인데, 고작 아명 하나, 첫사랑이라는 말 따위에 이렇게 속이 뒤틀리다니. 그가 대체 뭐라고 질투를 한단 말인가.’가슴 한구석에서 기어오르는 낯선 감정을 직면한 순간, 오히려 블랑의 이성이 차갑게 날을 세웠다.‘착각하지 마. 내 목적은 그 사내의 애정을 구걸하는 게 아니야.’심장을 헤집는 듯한 통증을 억누르며, 블랑은 속으로 비릿한 조소를 삼켰다.‘그래, 내가 그 고결한 진짜 사랑을 지키기 위한 방패라면…… 기꺼이 완벽한 미끼가 되어줄게. 카시안, 당신이 내 쓸모에 철저히 의지하고 목을 매달 수밖에 없도록.’블랑은 제 안에서 요동치는 치욕과 상처를 억지로 지워내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이 비참하게 난도질당한 감정이야말로, 눈앞의 아이린을 완벽하게 속여 넘길 훌륭한 연기의 재료였다.“…….”블랑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온실 안에 차가운 정적이 내려앉았다.꼿꼿했던 그녀의 어깨가 미세하게 굳어졌고, 찻잔을 쥔 손끝은 핏기가 가신 채 하얗게 질려 있었다.그 완벽한 침묵과 흔들리는 눈동자.아이린은 자신이 마침내 블랑의 숨통을 완벽하게 끊어놓았다고 확신했다. 그녀의 입가에 찢어질 듯한 소리 없는 환희와 우월감이 피어올랐다.“주제 파악이 좀 되셨나요, 부인? 그러니 앞으로는 감히…….”“아가씨.”그때였다. 멀찍이 물러나 있던 전속 시녀가 다급한 발걸음으로 다가왔다.“무슨 짓이지? 부르기 전까지 방해하지 말라고 했는데.”“송, 송구합니다. 허나 ‘그 상단’에서 급한 전령이 와, 지금 당장 영애의 가부를 확인받아 오라며…….”시녀의 떨리는 손에는 두툼한 양피지 봉투 하나가 쥐여 있었다.승리를 만끽하던 아이린의 미간이 신경질적으로 일그러졌다. 하지만 봉투를 확인한 순간, 그녀의 눈빛에 찰나의 당혹감이 스쳤다.‘미련한 것. 하필 이 계집이 있을 때 이것을 들고 오면 어떡해.’아이린은 반사적으로 맞은편의 블랑

  • 남편은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114화

    황제의 집무실을 빠져나온 블랑은 자신의 서쪽 별궁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회랑을 걷는 그녀의 발걸음은 우아하고 흐트러짐이 없었지만,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기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카시안에게 역겹다는 폭언을 내뱉고 도도하게 돌아섰을 때,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하지만 이겼다고 자만할 때가 아니었다.‘그를 벼랑 끝으로 밀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대로 방치하면 끊어질 수도 있어. 다음 수가 필요해.’그의 시선을 완전히 내 쪽으로 돌려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블랑은 걸음을 내디디며 차분히 경우의 수를 헤아렸다.다른 사내를 이용한 질투?레녹을 통해 이미 써먹은 수법이다. 약효는 강했지만 남발하면 싸구려 치정극으로 전락할 뿐이다.닿을 수 없는 도도함?조금 전 집무실에서 한계치까지 끌어다 쓴 카드다.여기서 계속 튕겨내기만 한다면, 지배자의 본능을 지닌 황제는 되려 짜증을 낼 테고 제 입맛에 맞는 다른 여인에게 눈을 돌릴 위험이 컸다.그렇다고 불안함에 못 이겨 고개를 숙인다?‘멍청한 짓이지. 이미 제 품에 안아봤다고 생각하는 여자가 비굴하게 매달리는 것만큼, 수컷의 식욕을 빠르게 떨어뜨리는 짓도 없으니까.’육체적인 매력이나 얄팍한 감정 줄다리기로는 한계가 명확했다. 저 잔혹한 사내를 완벽하게 틀어쥐기 위해서는 더 확실하고 대체 불가능한 족쇄가 필요했다.짧은 사색 끝에, 블랑의 붉은 입술이 매끄러운 호선을 그렸다.‘결국 답은 하나뿐이야. 압도적인 쓸모.’침대 위에서만 필요한 노리개가 아니라, 황제의 정치판에서 절대 버릴 수 없는 가장 날카로운 칼.그가 동쪽 별궁의 여자로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든 간에, 나 블랑을 옆에 두는 것이 황제에게 절대적으로 이득이라는 정치적인 가치를 증명해야만 했다.‘내가 당신의 가장 완벽한 파트너가 되어주지. 당신이 나를 버리려야 버릴 수 없도록.’결심을 굳히며 서쪽 별궁의 초입에 다다랐을 때였다.하지만 그녀가 처소에 도착하기도 전, 현관 앞에는 뜻밖의 불청객이 꼿꼿하게 서서 그녀를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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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다는 무거운 향유병과 수건이 담긴 바구니를 든 채, 백합관을 담당하는 시녀장 앞에 비굴할 정도로 허리를 굽혔다.“부탁드립니다, 시녀장님. 목욕물 시중만이라도 제가 들게 해주십시오.”“안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폐하께서 개미 새끼 한 마리 들이지 말라 엄명하신 성역이다.”시녀장이 싸늘하게 쳐다보자, 에다는 은화가 두둑하게 든 주머니를 그녀의 앞치마 주머니에 슬쩍 찔러 넣었다. 그리고 주위를 살피며 간절하고 속물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저도 동아줄 하나는 제대로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블랑 부인은 어제 폐하를 모시긴 했으나, 날이 밝자마자 폐하께서 이곳 별궁에 새로운 분을 모셔 오셨잖습니까. 언제 버림받을지 모르는 허울뿐인 백작 밑에서 제 청춘을 다 썩힐 순 없습니다.”“…….”“제 얼굴 도장이라도 찍게 해주십시오.”에다의 두 눈이 얄팍한 야심으로 번들거렸다.철저하게 속물적인 하녀의 표본.그 완벽한 연기에 시녀장은 혀를 차면서도 슬그머니 은화 주머니를 챙겼다.“하긴, 어차피 나 혼자 그 큰 별궁은 관리할 수도 없고 사람을 들이긴 해야지.”“저, 정말로 잘할 수 있어요. 시녀장님께서 아무것도 안 하셔도 될 정도로요.”시녀장은 에다의 손과 허리, 엉덩이를 차례로 살폈다.‘아르센의 포로 출신인데 살아남아 여기에 있는 걸 보면 눈치는 빠르겠어. 몸도 가벼워 보이고 손끝도 야무져 보이네.’이윽고 고개를 끄덕인 시녀장은 조용히 말을 덧붙였다.“명심해. 고개는 절대 들지 말고, 오늘은 물만 데워놓고 쥐도 새도 모르게 빠져나와야 해. 안에 계신 분이 네가 마음에 든다고 하면 폐하께 정식으로 허락을 구해보마.”“예, 예! 명심하겠습니다!”에다는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백합관의 은밀한 문턱을 넘었다.그러나 시녀장의 시야에서 벗어나 복도 모퉁이를 도는 순간, 비굴했던 에다의 눈빛은 순식간에 날카로운 짐승처럼 돌변했다.‘우선 어떤 여자인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해. 진짜 카시안 폐하께서 성역에 모셔둘 만큼 대단한 가치가 있는 분이신지 말이야. 소

  • 남편은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112화

    벌컥. 노크도, 허락도 없었다.문이 열리자마자 블랑은 기사들을 뒤로하고 집무실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섰다.“폐하!”“송, 송구하옵니다, 폐하! 부인께서 막무가내로…….”“나가 있어.”허둥지둥 따라 들어오려는 시종장과 기사들을 향해 카시안이 손짓했다.닫히는 문틈 사이로 시종들이 물러나자, 적막한 방 안에는 두 사람만이 남았다.카시안은 펜을 내려놓고 블랑을 올려다보았다.순간, 그의 미간이 좁혀졌다.살구빛 피부 위를 아슬아슬하게 덮고 있는 검은 레이스 드레스.대낮의 밝은 햇살 아래서 그녀의 자태는, 밤새 자신이 남겨놓은 은밀한 흔적들을 기만적으로 가린 채 시각적인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다.‘나를… 도발하는 건가.’카시안은 애써 하복부로 쏠리는 열기를 억누르며 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댔다.“예의를 잊었군, 블랑.”“예의는 지켜줄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나 차리는 거죠.”블랑은 책상 앞으로 다가가 양손으로 상판을 짚었다.그녀의 상체가 숙여지자, 레이스 사이로 하얀 가슴골과 붉은 잇자국이 언뜻 비쳤다. 카시안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그곳에 머물렀다.하지만 블랑의 눈동자는 얼음장처럼 카시안을 직시하고 있었다. 빙빙 돌릴 생각 따위는 없었다.“묻고 싶은 게 있어서 왔어요.”“뭐지? 동쪽 별궁의 여자 이야기라면…….”“아뇨, 우리 이야기예요.”블랑이 싸늘하게 말을 끊었다.“어젯밤에는 잘도 제 몸에 욕정을 배설하셨죠.”“……말을 천박하게 하는군.”“천박하게 군 건 폐하십니다.”블랑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저를 안고 있는 그 시간에, 사람을 시켜서 동쪽 별궁에 다른 여자를 애지중지 들이셨으니까요.”탁!그녀가 쥐고 있던 부채를 책상에 내리쳤다.“말해보세요. 그 여자가 대체 누구길래. 저를 안은 그 몸을 씻기도 전에 데려와서 성역처럼 감싸고 계신 거죠?”블랑의 날 선 외침에 카시안의 표정이 굳어졌다.외통수였다.하나하나 따져보면 블랑의 말에 틀린 부분은 단 한 곳도 없었다.하지만‘내가 엘런의 전처를 잡아 와 미끼로 던져둔 거다.’

  • 남편은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111화

    레녹 후작 저택의 응접실.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밀실의 문이 열리고 여의사가 걸어 나왔다. 그녀는 블랑과 레녹을 번갈아 보며, 낮고 건조한 목소리로 결과를 통보했다.“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요구하신 처방은 모두 끝났습니다. 폐하께서 남기신 거친 흔적들은 약을 발라 통증을 가라앉혔고, 사후 피임약 역시 황궁의 의원들이 쓰는 것보다 배는 독하고 확실한 것으로 달여 올렸습니다.”블랑의 어깨에서 미세하게 힘이 풀렸다.안도감. 하지만 그것은 지켜졌다는 낭만적인 안도가 아니었다. 자신의 배 속에 카시안의 핏줄이 들어서기 전에, 최악의 변수를 내 손으로 도려냈다는 철저히 계산적인 안도였다.“다만…….”의사가 안경을 추어올리며 조심스럽게 덧붙였다.“약 기운이 돌면 며칠간은 속이 울렁거리거나, 고열이 날 수 있으니 절대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수고했네. 나가 봐.”레녹이 손짓했다.의사가 물러가자, 그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들으셨습니까. 동쪽 별궁에 귀하신 여자를 가둬두고, 부인에게 와서는 이성을 잃고 짐승처럼 굴었다라.”그의 검은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났다.“단순한 욕정의 배설이라기엔 너무 집요하고 흉포하지 않습니까. 마치 부인에게 화풀이를 하거나, 아니면 부인의 입술에서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갈구하기라도 한 것처럼.”“…….”블랑은 짐짓 태연하게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밤새 카시안이 짐승처럼 제 몸을 파고들며 뱉어냈던 이름, 로제.‘어쩌면 내가 기억을 잃은 척 연기하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이 우스운 연극에 장단을 맞춰주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어.’하지만 간밤에는 그 가증스러운 여유조차 내던졌다.‘다른 사내와 사라졌다는 사실이 그의 소유욕과 질투심을 자극했겠지.’그러면서도 동쪽 별궁에 새로운 여자를 애지중지 가둬두었다?앞뒤가 안 맞는 역겨운 위선.수치심보다 서늘한 조소가 먼저 입가에 맴돌았다.‘당신이 별궁에 여자를 숨겨두고 대체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내가 직접 바닥까지 까발려 주지.’그때

  • 남편은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110화

    ‘자, 어떻게 반응하실까.’거짓말이었다.간밤 폐하는 결코 밖에서 들릴 만큼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짖은 적이 없었다.앞치마를 쥔 에다의 손에 서늘한 땀이 배었다. 정말 기억을 잃은 가여운 정부라면, 다른 여자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을 안은 황제에게 투기와 비참함을 보여야 마땅하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저 껍데기 속에 웅크린 것이 다른 존재라면…….‘알아야겠어. 당신이 이름 그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백치 블랑인지, 아니면 내가 영원히 충성해야 할 주인님인지.’‘로제를 불렀다고? 나를 안으면서?’블랑은 실소하며 제 옆자리를 쓸었

  • 남편은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109화

    다음날 아침,지독한 숙취가 머리를 반으로 쪼개는 것 같았다.“으음…….”블랑은 미간을 깊게 찌푸리며 눈을 떴다. 익숙한 서쪽 별궁의 천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다행히 레녹의 마차를 타고 들키지 않은 채 침대까지는 무사히 돌아온 모양이었다.“부인……! 일어나셨어요?”침대 곁에서 초조하게 발을 동동 구르던 에다가 울상을 지으며 다가왔다. 들고 있는 트레이에는 해장용 꿀물이 놓여 있었지만, 에다의 안색은 나라를 잃은 사람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에다…… 물 좀 줘. 목이 타네.”블랑은 상체를 일으키려 매트리스 짚었다. 바로

  • 남편은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2화

    아르센의 수도 칼텐부르크.나른한 봄볕 아래 평화롭던 도시의 공기는, 일순간 비릿한 피 냄새와 뜨거운 무쇠의 열기에 짓눌려 굳어버렸다.먼저 들린 것은 말발굽 소리가 아니었다.규칙적인 철제의 파동, 대지를 가르는 짐승의 박동이었다.“……왔다.”군중 속 누군가의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성문 너머로 검붉은 그림자가 폭포수처럼 들이닥쳤다.북방의 포식자, 드라켄 제국의 황실 근위대.태양 빛을 집어삼킬 듯 번쩍이는 흑철색 갑옷들은 흙먼지 하나 없이 오만했다.300명의 기사들이 내뿜는 살기는 도시를 순식간에 질식시킬 듯 무거웠다.

  • 남편은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1화. 프롤로그

    패전국의 황후가 맞이한 결말은 비참했다.적국 황제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리는 것조차, 그녀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사치였다.“정말 이 여자를 두고 갈 텐가, 아르센의 황제여?”로제는 고개를 들어 카시안을 보았다.피 묻은 검을 쥔 북방의 포식자.그는 흥미롭다는 눈으로, 그러나 지독히도 오만한 시선으로 로제의 남편을 조롱하고 있었다.“……제국을 위한, 어쩔 수 없는 결단이오.”레온은 차마 로제 쪽을 보지 못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로제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밤마다 자신의 생명력과 마력을 쥐어짜 내어 그 핏줄에 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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