เข้าสู่ระบบ레녹이 한 걸음 더 다가왔다.선을 넘지 않던 그가, 어느새 블랑의 숨결이 닿을 만큼 지척까지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얇은 레이스 실내복 위로, 그의 나른하면서도 짙은 시선이 적나라하게 내려앉았다.“질투는 가장 확실한 정치적 도구입니다.”레녹이 긴 손가락을 뻗어, 블랑의 쇄골에 남은 카시안의 붉은 잇자국을 허공에서 스치듯 가리켰다. 직접 닿지는 않았으나, 소름이 돋을 만큼 농밀하고 아찔한 간격이었다.“그 미친 황제께서, 당신을 다른 사내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끼게 만드는 겁니다. 그 순간 아이린 공녀도, 페온가도, 그 어떤 귀족도 감히 당신에게 이빨을 드러내지 못할 테니까.”“……질투라.”블랑이 헛웃음을 삼키며 되물었다.“그래서 폐하의 마음을 쥐고 흔들어라… 후작님의 입지를 위해서? 하지만 제가 얻는 건 뭐죠?”그녀는 팔짱을 끼며 레녹을 똑바로 응시했다.“폐하의 총애는 뜬구름 같은 겁니다. 제가 후작님을 위해 춤을 추다가, 폐하가 질려서 저를 버리시면요? 그때는 후작님도 저를 버리시겠죠.”“바로 그 지점입니다.”레녹이 기다렸다는 듯 한 걸음 더 다가왔습니다.안경 너머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총애는 짧고, 권력은 깁니다. 백작님은 지금 뿌리 없는 꽃입니다. 황제의 변덕이 끝나면 시들어 죽을 운명이죠.”
서쪽 별궁.황제가 블랑에게 하사한 거처는 지나치게 화려해서 오히려 서늘했다.높은 천장에는 화려한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었고, 바닥은 걸을 때마다 차가운 냉기가 올라오는 최고급 대리석이었다.역대 황비들이 별채로 썼던, 그러나 지금은 주인을 잃고 비어있던 거대한 새장.그 적막을 깨는 것은 옷감이 스치락거리는 소리뿐이었다.“……저기, 백작님.”에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그녀는 카시안이 보낸 시녀들이 가져온 짐을 정리하다 말고, 힐끗 블랑의 눈치를 살폈다.“찻물을 좀… 올릴까요? 안색이 창백하셔서….”그것은 단순한 시중이 아니었다.어떻게든 말을 붙여보려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담은 물음이었다.목소리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제발 나를 알아봐 달라고. 우리가 아르센에서 나눴던 그 온기를 기억해 달라고.하지만 블랑은 창밖을 향해 있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필요 없어.”돌아온 대답은 칼로 자른 듯 차가웠다.“짐 정리가 끝났으면 나가 봐. 피곤하니까.”블랑은 에다 쪽으로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냉정함.그것은 블랑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배려였다.‘단 한 명, 아니 쥐새끼라도 눈치채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야.’계획대로 움직이려면 철저히 남이 되어야 했다.“아…… 네…….”에다의 어깨가 힘없이 축 늘어졌다.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짐을 정리했다.짐짓 분주하게 손을 놀렸지만, 시선은 자꾸만 창가에 선 블랑의 옆모습에 머물렀다.‘정말…… 너무 닮으셨어.’아르센의 붉은 장미 같았던 나의 황후님.자신을 살리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드라켄으로 빼돌려 주셨던 그 고귀한 분.하지만.에다의 시선이 블랑의 옷차림에 닿았다.속살이 훤히 비치는 얇은 레이스 실내복, 목덜미와 쇄골에 붉게 남은 정사의 흔적들.그리고 무엇보다 저 서릿발 같은 눈빛.‘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에다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스스로를 타일렀다.‘황후 폐하께서는 저런… 천박한 옷을 입으실 분이 아니야.’고귀하고 긍지 높던 나의 주인님이다.황제
새벽 회의가 끝나고, 레녹은 서류를 정리하며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황궁은 아직 차갑고 고요했다. 새벽 안개가 걷히기도 전에 들리는 하녀들의 분주한 속삭임만이 이른 아침을 채우고 있었다.그는 늘 그렇듯 나른하게 벽에 기대어 귀를 기울였다. 이 하찮은 소음 속엔 언제나 금이 될 만한 정보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들었어? 뒷방 아니, 그 백작님 말이야….”“어젯밤에 황제 폐하의 침실에서… 쫓겨났대.”“진짜? 작위까지 받았는데 무슨 일이지?”“아무튼, 아침도 밝기 전에 시녀 둘이 데리고 나가는 걸 봤다더라. 폐하께서 엄청나게 화를 내셨나 봐.”‘쫓겨났다?’레녹의 창백한 얼굴 위로, 서늘한 눈동자가 느리게 가라앉았다.웃지도 않았고, 놀라지도 않았다.그저 완벽해야 할 수학 공식에서 치명적인 오류를 발견한 학자처럼 미묘한 표정일 뿐이었다.“하루 만에?”그가 긴 손가락으로 은테 안경을 천천히 밀어 올리며 낮게 중얼거렸다.백작위 서임, 북부의 노른자위 로트 영지 하사.전례 없는 파격으로 권력을 쥐여주고는, 다음 날 새벽에 안지도 않고 내쫓았다?논리가 맞지 않았다.그가 아는 황제 카시안은 감정에 휘둘리거나 변덕을 부리는 인간이 아니다. 전리품을 취하는 데 거칠 것이 없는 짐승이다.입력값은 최고의 대우인데, 결과값은 축출이다.이 방정식에는 명백한 모순이 있다.‘단순한 변심이 아니야.’레녹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그의 비상한 머릿속에서 수많은 경우의 수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갔다.황제가 사냥감을 눈앞에 두고 물어뜯지 않은 이유.과거, 카시안의 이성이 흔들렸던 유일한 예외는 딱 한 번 있었다.지금은 국경 너머로 사라져버린, 그의 첫사랑.“……그 폭군이, 스스로 이성을 쥐어짜 내서 참았다는 소리군.”레녹의 얇은 입술이 매끄러운 호선을 그리며 휘어졌다.소문처럼 블랑이 황제에게 버림받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황제가 제 욕정조차 통제하지 못할까 봐 스스로를 격리한 것이다.“과연.”레녹은 창밖, 블랑이 머물고 있을 서쪽
[서연합 국경 외곽, 전쟁 노예를 실은 수송 수레]덜컹거리는 진동과 함께 육중한 쇠사슬이 부딪쳤다.축축한 천막 틈새로 스며드는 한겨울의 냉기와 썩어가는 피 냄새가 진동했다.수레 안에 짐짝처럼 구겨진 노예들의 눈에는 생기가 없었다. 목숨값보다 사슬값이 더 비싼 고기방패들.그중 구석에 처박힌 한 남자, 레온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웅크리고 있었지만, 어둠 속에서 들썩이는 흉통만큼은 짐승처럼 기괴하고 묵직한 숨을 뱉어내고 있었다.‘……조금만 기다려.’죽어 있던 그의 심장이, 오직 한 여자의 흔적을 쫓아 미친 듯이 박동하기 시작했다.아르센.그의 모든 것이자, 모든 걸 잃은 곳. 그리고 잃어버린 아내가 있는 곳.천막 바깥에서 병사들의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이 노예들은 아르센 국경에 넘기면 된다지?”“그래. 서연합이 고용한 전선 보조라고… 뭐, 그냥 죽이기엔 아깝다나?”“아깝다고? 이런 고깃덩어리들이?”비웃음 섞인 발걸음이 멀어져 갔다.그 순간, 레온의 입꼬리가 어둠 속에서 기괴하게 찢어지며 비틀렸다. 그것은 비웃음이 아니라, 먹잇감의 목을 물어뜯기 직전인 맹수의 환희였다.아르센 국경. 드디어 도착했다.이 냄새나는 수송 수레에 얌전히 짐짝처럼 타준 것은, 오직 이곳에 빠르고 조용하게 도달하기 위함이었을 뿐.[쩌적- 투둑!]돌조각으로 갉아낼 필요조차 없었다.레온이 전완근에 핏줄이 터질 듯 힘을 주자, 그를 구속하던 두꺼운 강철 사슬이 종잇장처럼 허무하게 뜯겨 나갔다.“어이, 쥐새끼들. 조용히들 하…….”순찰을 돌던 경비병이 인원 점검을 위해 천막을 걷어 올린 순간,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어둠 속에서 세로로 찢어진 금안(金眼)이 섬뜩하게 번뜩였고, 레온의 거대한 손아귀가 병사의 안면을 통째로 짓눌렀다.[우드득-!]끔찍한 파열음과 함께 병사의 목이 기괴하게 꺾였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즉사였다.두 번째 병사가 기겁하며 검을 뽑으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투기장의 지옥에서 살아남은 괴물을
[서연합 국경 외곽, 전쟁 노예를 실은 수송 수레]덜컹거리는 진동과 함께 육중한 쇠사슬이 부딪쳤다.축축한 천막 틈새로 스며드는 한겨울의 냉기와 썩어가는 피 냄새가 진동했다.수레 안에 짐짝처럼 구겨진 노예들의 눈에는 생기가 없었다. 목숨값보다 사슬값이 더 비싼 고기방패들.그중 구석에 처박힌 한 남자, 레온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웅크리고 있었지만, 어둠 속에서 들썩이는 흉통만큼은 짐승처럼 기괴하고 묵직한 숨을 뱉어내고 있었다.‘……조금만 기다려.’죽어 있던 그의 심장이, 오직 한 여자의 흔적을 쫓아 미친 듯이 박동하기 시작했다.아르센.그의 모든 것이자, 모든 걸 잃은 곳. 그리고 잃어버린 아내가 있는 곳.천막 바깥에서 병사들의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이 노예들은 아르센 국경에 넘기면 된다지?”“그래. 서연합이 고용한 전선 보조라고… 뭐, 그냥 죽이기엔 아깝다나?”“아깝다고? 이런 고깃덩어리들이?”비웃음 섞인 발걸음이 멀어져 갔다.그 순간, 레온의 입꼬리가 어둠 속에서 기괴하게 찢어지며 비틀렸다. 그것은 비웃음이 아니라, 먹잇감의 목을 물어뜯기 직전인 맹수의 환희였다.아르센 국경. 드디어 도착했다.이 냄새나는 수송 수레에 얌전히 짐짝처럼 타준 것은, 오직 이곳에 빠르고 조용하게 도달하기 위함이었을 뿐.[쩌적- 투둑!]돌조각으로 갉아낼 필요조차 없었다.레온이 전완근에 핏줄이 터질 듯 힘을 주자, 그를 구속하던 두꺼운 강철 사슬이 종잇장처럼 허무하게 뜯겨 나갔다.“어이, 쥐새끼들. 조용히들 하…….”순찰을 돌던 경비병이 인원 점검을 위해 천막을 걷어 올린 순간,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어둠 속에서 세로로 찢어진 금안(金眼)이 섬뜩하게 번뜩였고, 레온의 거대한 손아귀가 병사의 안면을 통째로 짓눌렀다.[우드득-!]끔찍한 파열음과 함께 병사의 목이 기괴하게 꺾였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즉사였다.두 번째 병사가 기겁하며 검을 뽑으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투기장의 지옥에서 살아남은 괴물을
명령은 짧았고, 공기는 무거웠다.블랑은 잠시 굳어 있었지만, 이내 천천히 손을 들어 드레스의 매듭에 손을 올렸다. ‘수치심 따위는 개나 줘버려.’여기서 울먹이거나 망설이면, 방금 전 연회장에서 보여준 당당한 파트너의 가면이 깨진다.그녀는 턱을 꼿꼿이 치켜들고, 카시안의 붉은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매듭을 풀었다.[스르륵.]값비싼 실크 드레스가 허물처럼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곧이어 얇은 속옷조차 걸치지 않은, 완벽한 나신이 드러났다.한기 때문인지, 아니면 전신을 핥아 내리는 듯한 남자의 시선 때문인지 하얀 피부 위로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카시안은 의자에 삐딱하게 앉아 그 모습을 감상했다. 블랑의 나신이 드러나자 그의 눈빛이 먹물을 푼 듯 짙게 가라앉았다.“생각보다 망설임이 없군.”손끝으로 확인했던 몸, 그러나 아직 온전히 파헤치지 못한 금단의 성역.볼 때마다 타오르는 지독한 갈증을 그는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폐하께서 살려준 몸이니까요. 마음대로 쥐고 흔드시는 것도 폐하의 권리죠.”블랑은 짐짓 요염하게 웃으며 한 걸음 다가갔다. 하지만 등줄기는 식은땀으로 축축했다.그때, 카시안이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 다가왔다.“항상 말은 잘해.”그는 다가온 블랑의 허리를 단숨에 낚아채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그녀의 얇은 몸이 그의 단단한 허벅지 사이에 속절없이 갇혔다.“그런데 표정은 왜 그 모양이지?”그 질문에는 장난기가 없었다. 온전히 제 것이라 여긴 먹잇감에게서 다른 사내의 흔적을 발견한 것처럼, 붉은 눈동자가 살벌하게 좁혀졌다.블랑은 떨리는 숨을 삼키며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어떻게든 이 압도적인 공기를 환기해야 했다. “그런데 폐하께… 여쭤볼 게 있습니다. 오늘 연회에서 본 사람들 중에… 레녹 후작가에 대해서…….”말을 꺼내자마자 공기가 얼어붙었다. 순식간이었다.“…그래? 그 안경잡이 새끼에게 발정이라도 났나?”낮게 깔린 목소리에 담긴 흉폭한 질투는 명백했다.블랑이 변명할 틈도 없이, 그의 크고 거친 손이 그녀의 뒷목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