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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지리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심주혁이 구급함을 들고 돌아와 다정하게 약을 갈아주었다.

처치가 끝나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스스럼없이 옷을 벗으며 말했다.

“늦었네. 이제 자자.”

강정연이 쳐다보니 심주혁은 마침 마지막 셔츠 단추를 풀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을 느낀 심주혁은 미소 지으며 다가와 그녀의 손을 끌어당겨 자신의 복부에 갖다 댔다.

“왜, 넋이라도 나갔어?”

노골적인 유혹이었지만 강정연은 훑어보듯 시선을 던지더니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전에는 몸이 꽤 좋았던 것 같은데, 몇 달 사이에 관리를 안 한 거야?”

심주혁의 얼굴이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어졌다.

“전이라니?”

강정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아주버님 생일날 말이야. 호텔에서 내가 만졌을 땐 분명 빨래판 복근에 허리도 훨씬 탄탄했거든. 형님 수발드느라 운동할 시간이 아예 없었나 봐?”

예전 심주혁이 그녀를 쫓아다니던 시절, 복근 있는 남자가 좋다는 그녀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 그는 죽어라 운동에 매달렸었다.

그날 밤, 어둠 속에서 그 노력의 결실을 맛보았을 때만 해도 강정연은 생각했었다. 단지 여자를 유혹하기 위해 이 정도 정성을 들이는 남자라면 참 괜찮은 선택일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지금 눈앞의 몸뚱이는 그때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쯧, 자기관리조차 못 하는 남자는 어디 하나 쓸모가 없는 법이지.’

심주혁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그가 무어라 입을 열려던 순간, 날카로운 노크 소리가 무거운 정적을 갈랐다.

“주혁 씨, 자요?”

문밖에서 허수정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심주혁은 대꾸도 없이 여전히 묘한 눈으로 강정연을 응시할 뿐이었다.

강정연은 그런 그가 가소로우면서도, 그와 더 이상의 스킨십은 피하고 싶었다.

썩은 오이 같은 놈, 더러워서 싫었다.

“형님, 무슨 일이세요?”

강정연이 일부러 소리 높여 물으며 소파에서 내려와 거침없는 손길로 방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문밖에는 헐렁한 하얀 잠옷 차림에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허수정이 처연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문을 연 사람이 강정연인 것을 확인한 그녀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흔들리더니 당황한 듯 뒤로 물러났다.

“정연 씨, 미안해요. 난...”

“미안할 게 뭐 있어요. 형님, 잠이 안 오나 보죠? 주혁 씨 방금 옷 다 벗고 쉬려던 참인데, 다시 챙겨 입고 나갈 테니 잠시만 기다리세요.”

강정연은 할 말만 마친 뒤 차갑게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그 말을 들은 허수정의 얼굴은 질투와 분노로 흉하게 일그러졌다.

방 안에서 심주혁은 옷을 다시 챙겨 입으며 말했다.

“형수님이 낯선 환경이라 예민해서 그래. 잠깐 가서 상태만 보고 금방 올게.”

강정연의 대답은 기다리지도 않은 채 그는 성큼성큼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자 강정연은 침대맡에 기대앉아 휴대폰 앱 하나를 실행했다. 짧은 로딩 뒤, 화면 위로 심주혁과 허수정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심주혁은 허수정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준 뒤 자리를 뜨려 했지만 그 순간, 허수정이 간절하게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전에는 늘 주혁 씨가 곁에 있어 줬잖아요. 가지 마요, 나 무서워요.”

심주혁은 잠시 망설이다 결국 침대 곁에 앉았고 허수정은 그의 옆에 기댄 채 평온하게 잠이 들었다.

고화질 화면 속의 영상은 소리까지 선명했다.

강정연은 입가에 서늘한 미소를 띄운 채 몇 군데 메시지를 보낸 뒤, 다시 앱으로 돌아가 실시간 화면이 자동 저장되도록 설정을 변경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화면에 조작할 수 없는 ‘타임스탬프'가 선명하게 찍히도록 하는 것이었다.

1년 전 결혼 직후, 심주혁은 우울해하는 그녀를 위해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왔었다.

귀엽지만 워낙 장난이 심해 밤에는 고양이를 손님방에 두곤 했는데, 그때 고양이를 지켜보려고 설치한 것이 바로 이 고성능 야간 투시용 CCTV였다.

이후 고양이가 병으로 죽고 나서 몇 번이나 철거하려다 잊었는데, 뜻밖에도 오늘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은 몰랐다.

강정연은 심현호가 허수정에게 품은 감정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단지 아이의 존재만으로 그가 제 아내를 단칼에 내칠 수 있을지, 혹은 여자 하나 때문에 하나뿐인 동생과 등을 돌릴지는 더더욱 단정 지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강정연은 심주혁과 허수정의 추잡한 불륜 증거를 최대한 많이 확보해야만 했다.

증거가 쌓일수록 그녀의 패는 더욱 강력해질 테니까.

설령 심현호가 제 아내를 비호하며 협조하지 않더라도, 오로지 제힘만으로 두 사람을 사회적으로 완벽히 매장할 수 있도록 말이다.

할 일을 끝낸 강정연은 침실 문을 안에서 단단히 걸어 잠근 뒤, 평온하게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방문을 열고 나오던 강정연은 손님방에서 초췌한 몰골로 나오는 심주혁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어제까지만 해도 반듯했던 그의 셔츠는 여기저기 구겨지고 엉망이 되어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심주혁의 눈에 일순 당혹감이 서렸다.

“정연아, 그게...”

구구절절 이어지려는 변명을 가볍게 무시한 채 강정연은 태연히 아래층으로 내려가 김미선이 차려준 아침 식사에만 오롯이 집중했다.

“정연아, 화났어?”

심주혁은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서야 급히 내려와 그녀의 옆자리에 앉으며 속삭였다.

“어제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어. 앞으론 계속 네 곁에만 있을게, 응?”

강정연은 건성으로 대답하며 식사를 마치고는 가방을 챙겨 나설 채비를 했다.

“어디 가?”

계속되는 무시에 심주혁의 목소리가 불쾌한 듯 낮게 깔렸다.

그는 현관으로 향하는 강정연의 앞을 거칠게 가로막으며 쏘아붙였다.

“형수님이 집에 들어온 게 불편해서 이러는 거 알아. 서운한 게 있으면 말로 해. 내가 어떻게든 달래줄 테니까.”

강정연은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빤히 쳐다봤다.

“심주혁, 나 애 아니야. 누군가의 달램 따위 필요 없다고. 병원 가야 하니까 당장 비켜.”

심주혁의 시선이 그녀의 하얀 붕대가 감긴 오른손에 머물렀다.

“재검받으러 가는 거야? 내가 데려다줄게.”

그의 태도는 완강했고 말이 끝나자마자 차를 준비시켰다.

강정연은 구태여 거절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가 가는 목적은 이도훈과 함께 심현호를 치료하기 위함이었지만, 그 사실을 그에게 알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심주혁이 오해하고 있다면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나중에 따로 변명할 수고도 덜 수 있으니까.

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심주혁은 그녀의 반응에도 상관없이 쉼 없이 말을 내뱉었다.

온갖 약속과 걱정 어린 말들이 쏟아졌으나 강정연은 그저 짜증이 치밀 뿐이었다.

예전엔 왜 몰랐을까, 그의 달콤한 말들이 이토록 위선적이고 역겨울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아버렸다.

그때, 공기를 가르고 심주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참, 그 뺑소니범 말이야, 용의자 윤곽이 잡혔어.”

강정연은 감았던 눈을 번쩍 뜨며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

그녀는 심주혁이 사랑하는 형수를 범인으로 내세울 만큼 정직한 인간이라 믿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저급한 거짓말로 이 상황을 모면하려 드는 것인지 그저 지켜볼 참이었다.

마침 신호 대기에 걸려 차가 멈춰 서자 심주혁이 그녀를 돌아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음주운전을 한 남자가 죄책감을 못 이겨 자수했어. 지금 구속된 상태야. 정연아, 이제 걱정하지 마. 우리 회사 법무팀이 전담해서 가장 무거운 형벌을 받게 할 테니까. 일이 마무리되면 할머니 산소에 같이 가자. 그래야 할머니께서도 편히 눈을 감으시지.”

강정연은 그 말을 들으며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2년 전, 심주혁과 연애를 시작했을 무렵 그는 그녀를 구하려다 차에 치여 골절상을 입었었다.

당시 심주혁은 제 배경을 숨긴 채 돈 한 푼 없는 가난한 학생인 척 연기했고 할머니는 그를 안쓰러워하며 집으로 데려와 친손주보다 더 정성껏 돌봐주셨다.

반년 동안 이어진 할머니의 지극정성 덕분에 그는 아무런 후유증 없이 회복할 수 있었다.

길짐승도 이 정도로 보살펴줬으면 은혜를 알 텐데 심주혁은 정말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었다.

“그것참 잘됐네.”

강정연은 눈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조소 섞인 미소를 지었다.

“그토록 공들여 조사하더니 드디어 결과가 나왔다니, 정말 고생 많았어.”

그녀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덧붙였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우연이네. 그저께 내가 범인 얘길 꺼내자마자, 뺑소니범이 기다렸다는 듯 오늘 자수를 다 하고.”

날카롭게 파고드는 비아냥에 심주혁은 헛기침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운이 좋았어.”

그가 무언가 더 말하려던 찰나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는 심주혁의 평온하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갑자기 계약을 취소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회사가 1년 넘게 공들인 프로젝트고 이제 서명만 남은 시점인데! 파트너를 바꾼다니, 대체 이유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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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편의 형과 불륜하겠습니다   제30화

    1년 넘게 감겨 있던 그 눈이 냉정하고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움직이지도 않았지만, 강한 압박감이 밀려왔다.강정연은 심장이 크게 흔들리며 손끝이 떨렸다.그 순간, 그녀의 손은 공교롭게도 그의 아랫배 아래의 부드러운 부위를 움켜쥐고 있었다.자신이 무엇을 잡고 있는지 깨닫는 순간, 그녀는 완전히 당황했다.강정연은 얼굴은 순식간에 홍당무처럼 달아올랐고, 마치 뜨거운 불덩이라도 만진 듯 급히 손을 떼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하지만 높은 의학적 소양 덕분에 금세 진정했다.그녀는 미친 듯이 뛰는 가슴을 짚으며 중얼거렸다.“식물인간은 무의식적인 신체 반응이 있을 수 있어... 눈 깜빡임, 손 움직임 등...”‘아니, 갑자기 눈을 뜨면 어떡해! 사람 놀라게 하네!’강정연은 심현호를 한 번 노려봤다.예상대로 그는 다시 눈을 감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고요하게 누워 있었다. 호흡도 안정적이었다.그녀는 마음을 가다듬고 남은 마사지를 서둘러 끝낸 뒤 그의 옷을 대충 입혀주고는 휴대폰을 꺼냈다.진경훈이 조금 전 전화를 했던 것이 보였다. 그녀는 병실을 나서며 다시 전화를 걸었다.그녀가 떠난 바로 그 순간, 침대 위의 남자가 다시 눈을 떴다.그는 그녀가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빛에 복잡한 감정을 담았다.강정연이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장을 입고 차분한 모습의 또 다른 남자가 병실 앞에 나타났다.간호사가 다가와 농담하듯 말을 걸었다. 두 사람은 꽤 친해 보였다.“고유성 씨 또 왔어요? 비서라는 사람이 가족보다 더 자주 오네요.”고유성은 예의 있게 미소 지었다.“직속 상사니까요. 안 깨어나시면 저 기본급만 받게 돼요. 빨리 일어나셔야죠.”간호사는 몇 번이나 감탄하다가 바쁘게 자기 일을 하러 떠났다.고유성은 평소처럼 병실에 들어가 업무 기록 수첩을 꺼내더니, 차분하게 하나하나 대표님에게 보고하기 시작했다.어제 심성 그룹 각 부서의 업무 정리, 그리고 심주혁 부대표가 새로 체결한 계약과 파기된 협력 건들까지...이 일은 이

  • 남편의 형과 불륜하겠습니다   제29화

    말이 끝나자 심재열이 짜증스럽게 끼어들었다.“됐어. 이렇게 오래됐는데 무슨 치료를 안 해봤겠어? 효과 있었으면 진작 깨어났지.”“어르신도 현호 상태가 이러니까 미리 지분을 준이에게 넘겨준 거야. 우리 심씨 가문 사람들도 가만히 있는데 외부인인 네가 왜 난리야? 괜히 나서지 말고 배당금이나 잘 받아서 애 키우면 돼.”심재열은 원래 직설적인 성격이라 거침없이 말하고, 주주들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됐습니다. 오늘은 그냥 현호 얼굴 보고 간 거로 합시다. 지분은 어르신 뜻이니 아무도 건드리지 마세요. 다들 속셈 뻔하니까 그만들 하시죠.”말을 마친 그가 먼저 떠나자, 다른 주주들도 하나둘 흩어졌다.심주혁은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사람들이 다 떠난 뒤 허수정을 안아 조용히 달랬다.허수정은 눈물을 훔치며 일어나 그를 한 번 노려보고, 아이를 안고 병실로 들어갔다.심주혁도 뒤따라 들어갔다.강정연은 들킬까 봐 옆으로 몸을 숨겼다. 잠시 후 다시 나타나 유리창 너머로 안을 들여다보니 두 사람은 또다시 거리낌 없이 서로에게 빠져 있었다.허수정이 잠시 밀어내는 척했지만, 결국 심주혁은 그녀의 머리를 잡고 입술을 강제로 맞췄다.아이도 그 사이에서 울음을 내며 방해했지만 둘은 멈추지 않았다.강정연은 이제야 모든 걸 이해했다.심주혁의 목적은 이것이었다.심종수는 심성 그룹 지분 20%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넘겼다. 그것이 바로 심주혁과 허수정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아이를 낳은 이유였다.준이가 무사히 자라면 그 지분은 결국 심주혁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하지만 아이가 일찍 죽는다면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강정연의 마음속에서 다시 분노가 치밀었다.‘심주혁... 내가 당신을 너무 얕봤네.’그에게는 사람도, 일도 모두 자신의 계획을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그런 위선적인 사람을 사랑했다니.그녀는 주먹을 꽉 쥐고 감정을 겨우 억눌렀다.두 사람은 오래 머무르지 않고, 키스를 끝내고 서로를 끌어안은 채 나갔다.그들이 멀어지자, 강정연은 천천

  • 남편의 형과 불륜하겠습니다   제28화

    쾅.문을 세게 닫는 소리가 객실까지 들려왔다. 강정연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어폰을 끼고 밖의 소란을 차단했다.말다툼이라고 하기엔, 사실상 허수정이 일방적으로 떼를 쓰고 심주혁이 계속 달래는 형국이었다.책 한 권을 절반쯤 읽었을 때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강정연이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김미선이 완성된 요리를 들고나오며 단호하게 말했다.“큰 사모님이 꽤 심하게 다쳤어요. 방금 대표님이 모시고 병원에 가셨어요. 사모님은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 일은 제가 다 봤으니까 어르신께도 말씀드릴게요. 대표님이 사모님께 저렇게 하는 건 정말 아니에요.”조금 전까지 어질러져 있던 바닥은 이미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허수정이 끓인 국은 버려졌고, 식탁 위의 국은 김미선이 강정연의 입맛에 맞게 새로 끓인 것이었다. 반찬들도 전부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강정연은 식욕이 돌아, 식탁에 앉으면서 김미선을 불렀다.“주혁 씨 오늘 밤 안 들어올 거예요. 우리 같이 먹어요. 어르신 혈압도 높으신데 이런 일로 괜히 속 끓이게 할 필요 없어요. 형님도 산후우울증이라 그런 거니까 좀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김미선은 한숨을 쉬었지만 더 말하지 않고 손을 닦고 앉았다. 그러나 강정연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짙은 안타까움이 담겼다.그녀는 반평생을 살며 심씨 가문에서 30년 넘게 일했다. 큰 사모님과 대표님 사이의 예전 일도 알고 있었지만 정작 강정연만 그 사실을 모른 채 속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안 되겠어. 사모님이 말리셔도 이건 반드시 어르신께 보고해야 해!’강정연은 식사를 마치고 다시 방으로 올라가 책을 읽었다.예상대로, 심주혁은 새벽이 되어서야 메시지를 보냈다. 허수정을 병원에서 간호하느라 함께 있다며, 먼저 자라고 했다.강정연은 답장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졸음이 몰려올 때쯤에야 침대에 들어 잠들었다.다음 날 아침, 그녀는 평소처럼 일찍 병원에 가서 담당 의사와 심현호의 상태를 잠시 이야기한 뒤, 병실로 가서 마사지 치료를 하려 했다.오랜 기간

  • 남편의 형과 불륜하겠습니다   제27화

    그녀는 곧바로 알아차렸다. 허수정이 또 연기하며 심주혁의 동정심을 끌어내고, 결국 자신과 다투게 만들려는 거라는 걸.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심주혁의 생각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이 연극에 맞춰 줄 생각도 없었다.강정연은 아무 말 없이 몸을 틀어 허수정을 피해 지나갔다.허수정은 그녀가 이렇게까지 무시할 줄은 몰랐는지 잠시 멍해졌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억지로 국그릇을 내밀었다.급하게 내민 그릇은 교묘한 각도로 살짝 들려 있었다.허수정은 몇 걸음 더 다가오다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그릇 속 뜨거운 국이 강정연의 왼손을 향해 쏟아졌다.하지만 강정연은 이미 대비하고 있었기에 옆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그 바람에 허수정은 원래 의도했던 대로 국을 그녀의 상처에 쏟지 못했고, 그릇을 놓쳐버려 자신의 발 위로 떨어뜨렸다.“아악, 아파...”이번에는 진짜로 쓰러졌다. 이미 삔 발목 위에 그릇이 떨어지고, 뜨거운 국까지 쏟아져 상처가 더 악화했다.“형수님!”현관에서 이 모든 걸 본 심주혁은 더는 가만있지 못하고 달려와 허수정을 안아 소파에 앉혔다.허수정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너무 아파 숨을 몰아쉬었다.강정연은 옷자락만 조금 더러워졌을 뿐, 뜨거운 국은 전혀 튀지 않았다.심주혁은 강정연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정연아, 형수님이 이렇게까지 마음 써 주는데 어떻게 그렇게 행동할 수 있어?”그의 눈에는 허수정이 계속 좋게 말하며 권했는데, 강정연이 무례하게 굴며 심지어 그릇까지 쳐낸 것처럼 보였다.허수정은 그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고개를 저었다.“됐어요. 저 괜찮아요. 동서가 그냥 기분이 안 좋았나 봐요. 너무 뭐라고 하지 말아요. 그리고 저도 계속 준이가 걱정돼서... 동서가 조승안 교수님을 불러오겠다고 마음을 바꿀 수 있다면 전 뭐든 할 수 있어요. 전 그저 준이가 괜찮아지기만 바랄 뿐이에요.”심주혁의 눈에 연민이 더욱 짙어졌다.“형수님은 너무 착해요.”옆에 있던 김미선은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말을 꺼냈다.“큰 사모님, 그건

  • 남편의 형과 불륜하겠습니다   제26화

    전화는 곧 연결되었다. 1년 전 허수정의 사고 이후 차량을 수리했던 차량 서비스센터였다.“안녕하세요. 제 남편이 예전에 여기에 차량 수리를 맡겼었어요. 네, 맞아요. 그 차량의 최종 점검 결과를 좀 확인하고 싶어서요.”강정연은 심주혁의 이름을 말했고, 상대방은 간단히 확인한 뒤 결과를 곧바로 그녀의 휴대폰으로 보내왔다.그 차량이 심주혁이 보낸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건, 허수정이 한때 그 차를 자신에게 자랑하며 신혼 선물이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보고서를 꼼꼼히 살펴보던 강정연은 곧 한 항목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브레이크.]보고서에 따르면 이 차량은 사고 반 달 전 이미 브레이크 수리 기록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간단한 수리만 진행됐고 부품 교체는 하지 않았다.그리고 그 수리 의뢰인은 허수정도, 심주혁도 아니었다.이 기록은 사고 판정서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이번 사고는 가해자가 전적인 책임을 지는 것으로 처리되었지만, 만약 브레이크에 문제가 있었다면 심주혁은 충분히 이를 근거로 사고를 ‘우발적 사고’로 돌릴 수 있었다.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 사실을 숨겼다.게다가 그 사고에서 심현호는 식물인간 상태가 되었는데, 운전석에 있던 허수정은 경상에 그쳤다. 생각해 볼수록 이상한 점이 많았다.강정연은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지금까지 그녀는 그 사고가 단순한 우연이라고 믿어 왔다.하지만 우연은 맞았을지 몰라도, 그 우연을 만든 원인은 인위적이었다.‘그렇다면 이 사고를 설계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리고 그로 인해 무엇을 얻으려 했던 걸까?’최근 며칠간의 모든 의문이 한꺼번에 떠올라 얽히고설키며 머리가 지끈거렸다.처음에는 모든 게 심주혁의 계획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다른 사람의 개입도 있는 듯했다.그녀는 깊게 몇 번 숨을 들이쉬며 감정을 가라앉히고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나와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지금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이것만이 아니었다.그녀는 한때 뛰어난 신경외과 의사였지만 이미 1년 넘게 일을

  • 남편의 형과 불륜하겠습니다   제25화

    심주혁은 더 말하지 않고 몇 마디 당부만 한 뒤 차를 몰고 떠났다.하지만 방향은 회사가 아니었다.그가 어디로 가는지에는 관심이 없었던 강정연은 돌아서서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 잠시 멈춰 서 있다가 시선이 한쪽 구석에 닿았다.그곳에는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고 금테 안경을 쓴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그녀는 다가가 가방을 내려놓고 곧장 말했다.“진 변호사님, 오래 기다리셨죠.”어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심종수가 준 명함을 보고 진 변호사에게 연락했다.현재까지 확보한 자료를 모두 보내자, 그는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해야 사건을 맡을지 결정할 수 있다고 했다.다행히 심주혁이 크게 붙잡지 않아 약속 시각을 놓칠 뻔한 상황은 피했다.진경훈은 이미 한참 기다렸지만 전혀 불쾌한 기색이 없었다.그녀가 앉자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공적인 태도로 말했다.“강 여사님, 어제 보내주신 사건과 증거는 모두 검토했어요. 사건이 1년이나 지난 만큼 상황은 잘 알고 계실 테니 길게 설명하지는 않을게요.”그는 테이블 위의 검은 파일을 열어 서류 한 장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현재 증거로는 가해자가 잡혀도, 할머님의 사망과 교통사고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려워요. 최대 형량은 5년 정도일 텐데 이 결과를 원하시는 건 아니겠죠?”강정연은 서류를 보지 않고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저는 진 변호사님이 만족스러운 결과를 주실 거라고 믿어요.”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리며 짙은 증오를 드러냈다.그런데도 얼굴에는 여전히 단정한 미소가 유지되고 있었다.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진경훈이 물었다.“남편과 형님을 고소하려는 건데, 제가 그 사실을 어르신께 알릴까 봐 걱정되진 않으신가요?”강정연은 미소 지으며 답했다.“어르신이 저에게 진 변호사님을 추천해 주셨다면, 최소한의 직업윤리는 갖추셨다는 뜻이겠죠. 의뢰인의 정보나 사건 자료를 함부로 누설하실 분은 아니라고 믿어요.”진경훈은 몇 초간 그녀를 바라보다가 안경을 살짝 고쳐 쓰며 물었다.

  • 남편의 형과 불륜하겠습니다   제21화

    차창이 닫혀 있어 강정연은 허수정이 무슨 말을 했는지 듣지 못했다.더는 참을 수 없었던 심주혁은 성큼성큼 허수정에게 다가가더니,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를 안아 올리려 했다.허수정은 몇 번이나 밀어냈지만 결국 심주혁을 이기지 못하고 그가 안아 들도록 내버려 두었다.심주혁은 마치 세상에 하나뿐인 보물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허수정은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눈물이 그의 연회색 셔츠를 적셔 놓았다.강정연은 더는 보지 않고 차 문을 열고 내렸다. 그녀는 막 다가오는 심주혁을 지나쳐 곧장 길

  • 남편의 형과 불륜하겠습니다   제17화

    심종수는 올해로 팔순을 바라보지만 정정하고 기운이 넘쳐 목소리에 늘 힘이 실려 있었다.지난 1년간 심주혁이 허수정을 유독 편애하며 도를 넘는 행동을 할 때마다, 그를 따끔하게 혼내고 강정연을 감싸준 건 늘 심종수였다.강정연의 마음 한구석에 훈훈한 온기가 번졌다.허수정이 뺑소니 사고의 진범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감싸기만 하던 심주혁이 심지어 그녀와 아이까지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강정연은 심장을 도려내는 고통을 누르며 복수를 다짐했었다. 그러나 자신을 걱정해 주는 할아버지의 따뜻한 온기가 닿는 순간, 억눌러

  • 남편의 형과 불륜하겠습니다   제12화

    “정연아, 난 널 정말 사랑해. 네가 다른 놈의 자식을 가졌어도 난 다 상관없었어. 우리 제발 잘 지내자...”심주혁은 그녀를 끌어당겨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취기에 젖어 웅얼거렸다.‘다른 놈의 자식?’그 단어는 거대한 망치가 되어 그녀의 머리를 사정없이 강타했다.전신이 마비되는 듯한 감각 속에서 잊고 있던 기억 하나가 선명하게 뇌리를 스쳤다. 유산 소식을 들었을 때, 왜 그랬냐고 오열하던 자신을 그저 복잡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던 심주혁의 침묵을 말이다.강정연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날 밤 이후로 다른 누구와도 관계를

  • 남편의 형과 불륜하겠습니다   제1화

    산후조리원에서 몸을 풀고 있는 형님 허수정의 병문안을 간 강정연은 방문 앞에서 한 달째 출장 중이라던 남편 심주혁을 발견했다.방 안에서 심주혁은 침대 옆에 앉아 가녀린 여인에게 조심스레 국을 떠먹여 주고 있었다.여인이 국을 몇 모금 마시더니 서글픈 목소리로 말했다.“주혁 씨, 요 며칠 주혁 씨가 아니었으면 나 혼자 아이를 데리고 정말 막막했을 거예요. 그런데 자꾸 마음이 무거워요. 그 사고는 어쨌든... 내가 그 사람한테 죽을죄를 지은 거니까. 얼른 돌아가서 달래줘요.”그 말에 강정연의 발걸음이 굳어졌다.“형수님, 너무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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