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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作者: 지리지
신호가 바뀌었음에도 차가 움직이지 않자 뒤에서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려댔다.

어쩔 수 없이 차를 갓길에 세운 심주혁은 수화기 너머 상대방의 설명을 묵묵히 들으며 이따금 짧은 대답만을 내뱉었다.

통화가 길어질수록 그의 안색은 흙빛으로 변해갔고 마침내 통화가 끝나자마자 참아왔던 분노를 터뜨리듯 휴대폰을 거칠게 내던졌다.

일그러진 미간 사이로 숨길 수 없는 초조함이 배어 나오는 그때, 침묵을 지키던 강정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커뮤니티 건강 쉼터 프로젝트 때문이야?”

심주혁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사전 준비를 다 마쳤는데 안성 측에서 갑자기 말을 바꿨나 봐. 계약을 잠정 보류하겠다네.”

“그럼 회사로 가서 처리해. 병원은 나 혼자 가도 되니까.”

강정연은 말을 마치며 차 문을 열고 내리려 했다.

하지만 심주혁은 고개를 저으며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억누른 채,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야, 일단 너부터 데려다줄게.”

그는 심호흡을 몇 번 하며 감정을 추스른 뒤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

병원 입구에 도착하자 그는 직접 내려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고 뒷좌석에 늘 두던 겉옷을 강정연의 어깨에 걸쳐주고서야 다시 차에 올라탔다. 다시 운전석에 앉은 그는 창문 너머로 미소 지으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얼른 들어가 봐, 나올 때 맞춰서 승우 보낼게. 저녁엔 네가 계속 가고 싶어 했던 그 레스토랑에서 밥 먹자.”

강정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비로소 차를 돌려 그곳을 벗어났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에서도 그는 그녀를 최우선에 두는 태도를 보였다.

지난 세월 동안 심주혁이 고수해 온 방식이었다. 허수정 때문에 그녀를 소홀히 대하더라도, 사후에는 반드시 그 이상의 보상과 다정함으로 그녀를 달랬다.

그 교묘한 다정함 때문에 강정연은 지난 1년 동안 남편이 제 형수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으리라고는 의심조차 하지 못했다.

사랑이 깊었던 만큼 배신감의 농도도 짙었다.

강정연은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띠며 휴대폰을 열어 메시지를 보냈다.

[선배, 고마워요.]

메시지가 전송되자마자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커뮤니티 건강 쉼터 프로젝트는 이미 중단시켰어.”

수화기 너머로 온화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연아, 선배한테 솔직히 말해봐. 심주혁 그 자식이 너 괴롭히는 거 아니야?”

강정연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고 순간 목이 꽉 막혀왔다.

“말하자면 길어요. 이번 일로 선배한테 폐를 끼쳤네요. 죄송해요.”

“그런 쓸데없는 소리 마. 네 체면이 아니었으면 심주혁이 낸 기획안은 검토할 가치도 없었어. 심현호 같은 천재에게 어떻게 저런 멍청한 동생이 있는지 모르겠다니까. 참, 교수님한테 들었는데 너 교수님이랑 같이 외국 나가서 조수 할 생각이라며? 타지 생활은 고생만 해. 생각 있으면 차라리 내 회사로 와. 프로젝트나 자원, 자금 전부 다 네가 원하는 대로 지원해 줄 테니까. 외국 놈들 밑에서 일하는 것보다 나을 거야.”

“네, 잘 생각해볼게요.”

안부를 몇 마디 더 나눈 뒤 강정연은 전화를 끊었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가 더욱 깊게 가라앉았다.

심현호가 위독해지자 심주혁은 결혼 후 심성 그룹의 경영권을 임시로 승계했다. 하지만 경영 경험이 전무한 데다 심현호와 같은 권위도 없었던 그는 주주들의 거센 탄압과 견제에 부딪혔고 매일 새벽 서너 시까지 이어지는 강행군 속에 극심한 피로를 견뎌야 했다.

강정연은 그간 자신을 지극정성으로 돌봐준 점과 교통사고 조사에 힘써준 점을 고려해 안성 그룹 대표인 선배에게 부탁하여 커뮤니티 스마트 건강 쉼터 프로젝트를 심주혁과 협력하도록 연결해 주었다.

이 프로젝트는 이익이 크고 장기적인 수익성이 높아 심성 그룹에 막대한 이득을 안겨줄 사업이었다. 그 덕분에 심주혁은 그룹 내에서 어느 정도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계약서 서명과 사업 실행만을 앞둔 상황에서 이 프로젝트만 성공시킨다면 심주혁은 그룹 내 입지를 완전히 굳힐 수 있었다. 설령 나중에 심현호가 깨어나더라도 이미 견고해진 그의 지위를 쉽게 흔들 수는 없을 터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심주혁은 이런 큰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었다.

프로젝트가 무산되는 순간 심주혁의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될 것이며 간신히 쌓아온 지위와 명성도 처참히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강정연은 어제저녁 이미 선배 권수빈에게 메시지를 보낸 상태였다.

그런데 의외로 권수빈은 이유조차 묻지 않고 단호하게 협력을 취소해 주었다.

다만, 이렇게 깔끔하게 끝내버리는 건 심주혁에게 너무 과분한 처사였다.

강정연은 심현호의 병실 문 앞에서 권수빈에게 몇 통의 메시지를 더 보낸 뒤, 잡생각을 떨쳐내고 무균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안으로 들어갔다.

병실 안에는 기계의 미세한 소음과 이도훈의 낮고 명료한 지시만이 감돌며 무거운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심현호는 치료 침대에 반듯하게 누워 있었고 몸과 머리에는 여러 가닥의 전극 도선이 장비와 연결되어 있었다.

“이건 신형 신경 표적 각성기야.”

이도훈은 장비를 점검 중이었고 곁에 있던 학생들도 각자 맡은 일을 처리하느라 분주했다. 강정연이 들어서자 이도훈은 그녀를 곁으로 불러 세웠다.

“환자의 상태가 예상보다 좋아서 기초적인 의식은 생각보다 빨리 회복될 거야. 다만 완전히 깨어나려면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해.”

이도훈은 말을 마친 뒤 옆으로 비켜서서 강정연이 심현호의 상태를 더 자세히 살필 수 있게 해주었다.

장비 연결 때문에 그의 상의는 이미 풀어져 있었다.

엊그제 서둘러 확인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그의 다부진 체격이 가감 없이 시야에 들어왔다.

군더더기 없이 떨어지는 어깨선과 탄탄한 복근에는 가만히 누워 있음에도 오랜 자기관리로 다져진 강인함과 탄력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왠지 모르게 강정연은 일 년 전 그날 밤이 떠올랐다. 어둠 속에서 그녀가 이성을 잃고 깊이 빠져들게 했던, 손끝에 닿고 어렴풋이 보였던 그 뜨거운 몸의 실루엣을 말이다.

찰나의 망연함이 스쳤다.

그녀는 뺨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맙소사, 엄연히 심주혁의 형님인데 대체 무슨 해괴한 생각을 하는 거야! 보지 말자, 보지 말아야 해...’

“정연아?”

귓가에 이도훈의 의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정연이 번쩍 정신을 차리자 이도훈이 전극 패치를 건넸다.

“하체 근육 쪽 전극 위치는 정교해야 하니까 네가 직접 붙여.”

반사적으로 대답했던 그녀는 뒤늦게 이 말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고 말문이 막혔다.

심현호는 아무런 방어 기제 없이 무방비한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평소 사람을 거부하던 차가운 기운이 옅어진 탓인지,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 미묘한 감정이 일렁였다.

강정연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에라 모르겠다, 바지 좀 내리는 게 대수인가. 한 번 해봤는데 두 번을 못 하겠어? 나는 지금 환자를 살리는 중이지 법에 어긋나는 짓을 하는 게 아니잖아.’

생각이 정리되자 그녀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능숙하게 손을 움직였다. 표정은 더없이 진지하고 엄숙했다.

곁에서 지켜보던 이도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학생들에게 말했다.

“저런 게 의사다운 모습이다. 아주 기본적인 단계부터 백 퍼센트 완벽을 기하는 자세 말이야.”

학생들은 깊은 생각에 잠긴 채 더욱 가까이 다가와 관찰하기 시작했다.

열 개가 넘는 눈동자가 집중되자 강정연은 어색해졌다.

‘확실히 일을 너무 오래 쉬었나 봐, 이런 게 다 적응이 안 되네.'

치료는 오후 3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이도훈 일행을 배웅하고 나서야 강정연은 승우에게 전화를 걸어 오라고 했다.

차에 올라탄 그녀는 밀려오는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그때 승우가 입을 열었다.

“사모님이 예전에 가고 싶다고 하셨던 레스토랑이라 대표님이 한 달 전부터 예약해 두셨습니다. 오는 길에 이 꽃도 사모님께 전해 달라고 당부하셨고요.”

짙은 초록색 포장지에 감싸인 열두 송이의 줄리엣 장미였다.

꽃을 건네받아 향기를 맡으니 은은하고 청량한 향 덕분에 긴장이 풀리며 찌푸렸던 미간도 조금 펴졌다.

레스토랑은 멀지 않은 시내 중심가에 있었다.

차는 레스토랑의 통유리창 바로 앞에 멈춰 섰다.

“대표님은 정말 사모님께 지극정성이세요. 누군가에게 이토록 마음을 쓰시는 건 본 적이 없는데...”

말을 하던 승우의 목소리가 갑자기 뚝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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