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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내가 한 일

last update Veröffentlichungsdatum: 01.11.2026 23:11:27

촬영이 끝난 뒤, 서하는 제작진이 정리한 인터뷰 초안을 먼저 읽었다. 첫 문장은 ‘남편의 리콜 대응을 도왔던 윤서하 씨’로 시작했다.

서하는 그 문장을 읽고 화면을 위로 올렸다가 다시 내려왔다. 방금 설명한 것은 누군가를 도운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이 맡은 역할을 수행한 일이었다.

“이 표현은 바꿔야겠어요.”

편집 담당자가 모니터를 돌려 보았다.

“어느 부분이요?”

“남편을 도왔다고 되어 있는 부분이요. 제가 한 일을 설명했는데, 다시 남편의 일을 거든 사람으로 정리됐어요.”

“일반 시청자에게는 그게 더 이해하기 쉬울 수 있습니다. 부부가 함께 일한 것처럼 보이니까요.”

“그럼 사실과 달라져요. 저는 남편 옆에서 보조한 게 아니라, 위기 커뮤니케이션 계약에 따라 브리핑 원고와 대외 일정, 각 부서의 설명 순서를 정리했습니다. 기술 판단이나 규제 승인은 제 일이 아니었고요. 그 구분은 그대로 두되, 제가 실제로 맡은 업무를 ‘도왔다’는 말로 줄이지 말아 주세요.”

서하는 목소리를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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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이혼을 생중계합니다   31화. 거래를 끊는 대가

    채미래는 자료를 건네기 전까지 세 번이나 파일을 열었다 닫았다. 부속합의서에는 자신의 서명과 준혁의 서명이 함께 남아 있었다.계약 갱신 관련 문서에는 캠페인 종료 후 미갱신을 권고한다는 문구가 있었고, 혼인 지원은 승인 전제로 보류돼 있었다. 이 자료를 내놓으면 자신이 어떤 약속을 믿었는지뿐 아니라, 그 약속을 믿는 동안 어떤 일을 했는지도 질문받게 될 것이다.서하에게 다시 연락하기에 앞서, 미래는 변호사에게 확인받은 사본부터 준비했다. 원본 전체를 넘기는 대신 공개 범위와 무관한 계좌 정보, 다른 직원의 이름과 내부 연락처를 제외한 자료였다.다만 문서의 의미를 확인하는 데 필요한 제목과 날짜, 조건 문구, 승인 상태는 남겼다. 어떤 내용을 가렸는지와 왜 가렸는지도 목록으로 정리했다.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골라 보여 주었다는 의심을 받지 않으려면, 무엇을 제외했는지까지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서하는 자료를 받기 전에 가연과 변호사에게 확인 절차를 요청했다. 미래가 직접 전달한 자료라고 해서 곧바로 방송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문서의 진위와 보유 경위, 공개 가능한 범위는 따로 검토해야 했다. 서하는 미래에게도 그 사실을 알렸다.“자료를 보내 주셔도 바로 방송에 나가지는 않아요. 먼저 확인하고, 사용하려는 부분을 다시 보여 드릴게요. 동의하지 않으시면 공개하지 않겠습니다.”미래는 짧게 답했다.“그 절차를 지켜 주시면 자료를 보내겠습니다. 다만 제 이름과 얼굴은 공개하지 말아 주세요. 인터뷰도 하지 않겠습니다.”“알겠습니다. 익명 처리만으로 충분하

  • 내 이혼을 생중계합니다   30화. 버려질 약속

    채미래는 자신의 계약 폴더를 처음부터 다시 열었다. 준혁과 서명한 부속합의서만으로는 지원이 확정됐는지 알 수 없었다.양도 승인서도 없었고, 실제 집행을 확인할 기록도 없었다. 그렇다면 약속이 왜 확정된 것처럼 설명됐는지, 자신이 맡은 PR 업무와 그 약속이 어떤 관계였는지도 확인해야 했다.그녀는 한성 계열 캠페인을 맡을 때 받은 계약서와 업무 범위표, 갱신 안내 메일을 한꺼번에 펼쳤다. 계약서에는 캠페인 종료 후 연장 여부를 별도로 협의한다고 적혀 있었다.처음에는 당연한 문구라고 생각했다. 성과가 좋으면 연장하고, 다음 캠페인을 맡으면 되는 일이라고 여겼다. 준혁은 자신에게 장기 계약을 약속했고, 혼인 후에는 한성의 대외 홍보를 더 크게 맡게 될 거라고 말했다.하지만 메일의 날짜를 다시 맞춰 보니 이상한 점이 있었다. 캠페인이 아직 진행 중일 때 작성된 내부 검토 문서에 ‘종료 후 미갱신 권고’라는 표현이 있었다.그 아래에는 후계 관련 혼인 합의가 완료되기 전까지 지원 집행을 보류하고, 캠페인 종료 후 외부 PR 계약을 정리한다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미래는 문서를 읽고도 한동안 다음 페이지로 넘기지 못했다.이 문서만으로 누가 최종 결정을 내렸는지 알 수는 없었다. 권고가 실제로 승인됐는지, 그 내용이 부속합의의 효력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별도 확인이 필요했다.준혁이 말해 준 장래를 떠올리며 계약 계획을 읽을수록, 미래에게는 문서 속 길이 다른 데로 향한다는 점만 선명해졌다. 같은 회사에서 나온 약속인데도 그 차이는 사라지지 않았다.미래는 문서를 인쇄하지 않았다. 먼저 파일의 원본 위치와 수신 경위를 확인하고, 자신이 정당

  • 내 이혼을 생중계합니다   29화. 방송에서 말하지 않을 것

    작업실을 다녀온 뒤로 서하는 노트북 앞에 앉는 시간이 길어졌다. 준혁이 보낸 메시지는 변호사에게 전달했고, 작업실에 남아 있던 개인 원고도 챙겼다. 당장 해결된 일은 없었지만, 적어도 무엇을 잃을 수 있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는 전보다 분명해졌다.다음 날 오전, 제작진은 정규 4회 편집 회의를 열었다. 채미래와 준혁 사이의 관계가 방송에 들어갈 수 있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다.미래가 공개에 동의하지 않은 부속합의는 구성안에서 제외돼 있었지만, 제작진은 공개된 장면만으로도 관계의 균열을 보여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서하가 준혁의 거짓을 어떻게 확인했고, 자신이 어떤 일을 맡았는지 설명하는 장면이 중심이었다.마케팅 담당자가 편집본을 띄웠다. 서하가 준혁의 개인 해명 영상을 바라보는 장면 뒤로, 준혁과 미래가 행사장에서 나란히 걷는 과거 영상이 붙어 있었다.자막은 ‘아내가 몰랐던 남편의 두 얼굴’이라고 적혀 있었다. 서하는 화면을 끝까지 본 뒤 손을 들었다.“이 장면은 빼 주세요.”“어떤 부분이요?” 담당자가 물었다.“행사장에서 같이 걷는 영상이요. 저 영상만으로는 두 사람의 관계를 알 수 없어요. 제가 그때 몰랐다는 사실을 설명할 자료도 아니고요.”“시청자는 두 사람이 가까웠다는 걸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가까웠다는 건 누구와 누구 사이를 말하는 거죠? 준혁 씨와 미래 씨가 같이 걷는 장면이라면 그 사실만 보여 주면 돼요. 제가 그걸 언제 알았는지는 별도로 확인해야 하고요. 화면에

  • 내 이혼을 생중계합니다   28화. 작업실을 내놓겠다는 남자

    준혁이 보낸 메시지는 짧았다. ‘그 작업실, 계속 비워 둘 생각은 없어.’ 설명도 이유도 없었다. 서하는 그 문장을 캡처해 변호사에게 전달하고, 작업실에 남아 있는 자신의 물건부터 확인했다.당장 돌려받을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다. 등기는 준혁의 이름으로 돼 있었고, 두 사람이 나눌 정산도 아직 합의에 이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곳에 남겨 둔 원고까지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었다.그녀는 오래된 메모장을 꺼냈다. 작업실을 마련해 주던 날 준혁이 했던 말이 안쪽 표지에 적혀 있었다.‘이제 여기서 네 글을 써.’ 당시 서하는 그 말을 믿었다. 결혼하고 나서 회사의 원고와 남편의 말을 대신 쓰느라 자기 문장을 뒤로 미뤘지만, 언젠가 다시 쓰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작업실은 그 약속이 실제로 이루어질 장소처럼 보였다.그런데 그곳에서 보낸 시간은 생각과 달랐다. 책상 위에는 회사 브리핑 초안이 쌓였고, 벽면에는 일정표와 행사 동선이 붙었다.서하가 개인적으로 쓰던 노트는 서랍 안으로 들어갔다. 준혁은 급한 일이 생길 때마다 그 공간을 회의실처럼 썼고, 서하는 그가 원하는 문장을 정리했다. ‘네 글을 써’라는 약속은 조금씩 ‘내 일을 도와줘’라는 말에 밀려났다.서하는 노트북을 열어 작업실 관리 메시지를 확인했다. 준혁은 다음 주에 중개인을 불러 내부를 확인하겠다고 했다.그동안 남겨 둔 개인 물품은 날짜를 정해 가져가라는 말도 붙어 있었다. 마치 그 공간이 처음부터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는 듯한 문장이었다.그녀는 변호사에게 연락했다.&ldqu

  • 내 이혼을 생중계합니다   27화. 돈과 침묵의 조건

    한준혁의 연락은 서하의 변호사를 통해 왔다. 공식적인 조정 일정이나 서면 제안이 아니라, 짧은 문장 하나였다.직접 만나 정리할 일이 있으니 시간을 내 달라는 요청이었다. 변호사는 응할 의무는 없지만, 상대가 어떤 조건을 내놓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대리인과 함께 만나면 된다고 했다.서하는 메시지를 한 번 더 읽었다. 준혁은 업무 기록이 공개된 방송 이후 개인 계정에 입장문을 올렸고, 그 뒤로는 서하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는 일을 줄였다.그렇다고 물러선 것은 아니었다. 그의 말은 이제 ‘내가 직접 했다’에서 ‘최종 승인권은 내게 있었다’로 좁아졌다. 기록이 확인한 순서를 되돌릴 수 없으니, 다른 방식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결론을 만들려는 듯했다.“만나야 할까요?” 서하가 물었다.“만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상대가 정산과 관련된 제안을 하려는 것이라면, 조건을 확인한 뒤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구두로 합의하지 말고, 어떤 제안이든 문서로 받는 편이 안전합니다.”“방송을 그만두라는 얘기를 할 수도 있겠네요.”“그럴 가능성은 있겠죠. 그 부분은 정산과 분리해서 판단하시면 됩니다.”서하는 잠시 생각한 뒤 만남을 받아들였다. 준혁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서만은 아니었다.무엇을 바라는지 직접 듣고,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은 자기 말로 거절하고 싶었다. 준혁이 정해 놓은 이야기 안에서 답만 고르기보다, 어디서 멈출지를 먼저 확인하려는 만남이었다.외부 사무실의 작

  • 내 이혼을 생중계합니다   26화. 아직 내보내지 마세요

    채미래의 메시지는 다음 날 오전에 도착했다. ‘잠깐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방송과 무관한 자리였으면 합니다. 문서를 보여 드리겠다는 뜻은 아니고, 제가 확인한 사실을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지부터 정하고 싶어요.’서하는 문장을 천천히 읽었다. 미래는 여전히 공개에 동의하지 않았고, 문서도 제공하지 않겠다고 했다.그래도 먼저 대화를 청해 온 점은 전날과 달랐다. 서하는 이 개인적인 만남이 방송 자료 수집으로 바뀌지 않도록, 답장을 쓰기에 앞서 메시지를 가연에게 전달했다.가연은 짧게 답했다.“만나실 수는 있습니다. 다만 촬영이나 녹음은 하지 않는다고 먼저 분명히 하세요. 대화 중 들은 내용을 나중에 방송에 쓰려면 별도 동의와 검토가 필요합니다. 지금은 당사자가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으니까요.”서하는 그 문장을 그대로 미래에게 보냈다. 잠시 뒤 미래가 답했다.‘그 조건이면 괜찮아요. 장소는 제가 정해도 될까요?’ 서하가 동의하자 방송국과 떨어진 작은 카페로 약속이 잡혔다. 창가 대신 출입문이 보이는 안쪽 자리라, 지나는 사람에게 얼굴이 잘 드러나지 않을 곳이었다.약속 시간보다 10분 먼저 도착한 서하는 물 한 잔을 주문했다. 카페에는 점심을 앞둔 손님이 몇 명뿐이었다. 그녀는 휴대전화 녹음 기능이 꺼져 있는지 확인하고, 화면을 아래로 뒤집어 놓았다.미래를 만나러 온 이유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상대가 직접 말하고 싶은 범위를 듣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정해 놓고도, 혹시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기다리게 되지는 않을지 걱정됐다.미래는 약속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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