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웅장한 오케스트라 선율이 예식장 전체에 낮게 깔리며 장내 조명이 아늑하게 낮아졌다. 수백 명의 하객으로 가득 찬 예식장은 숨 막히는 긴장감과 기대감으로 정적에 휩싸였다. 사회자의 떨리는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흐르며 장내를 울렸다. "이제, 오늘의 주인공인 신부 입장이 있겠습니다. 오늘 신부 입장은 특별히, 신부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눈물과 사랑으로 양육해 주신 네 분의 아버님께서 차례로 신부와 함께 버진로드를 걸어주시겠습니다." 하객들 사이에서 나지막한 탄성과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버진로드 입구, 환하게 빛나는 꽃길 앞에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여름이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정갈하게 턱시도를 차려입은 네 남자가 비장하면서도 감격 어린 표정으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1구간: 지혜의 길 (태준과 여름) 쿵- 쿵- 종소리와 함께 첫 번째 음악이 울려 퍼졌다. 가장 먼저 여름이의 손을 잡은 것은 첫 번째 아빠, 태준이었다. 어릴 적 밤새워 OMR 카드 쓰는 법을 가르쳐주고, 세상의 이치와 바른 길을 안내해 주던 집안의 기둥. 태준은 안경 너머로 왈칵 차오르는 눈물을 겨우 삼키며 여름이의 손을 지그시 쥐었다. "아빠..." 여름이가 소곤거렸다. "여름아. 삶이란 논리와 계산으로 풀어낼 수 없는 순간이 더 많단다." 태준이 떨리는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어떤 길을 걸어가든, 네가 걸어가는 그 길이 곧 정답이다. 아빠는 언제나 네 지혜의 등대가 되어줄게." 태준은 여름이와 함께 버진로드의 첫 번째 구간을 단정하고 차분한 걸음으로 걸어 나갔다. 2구간: 울타리의 길 (강태와 여름) 첫 번째 거점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190cm 거구의 강태였다. 태준이 강태에게 여름이의 손을 넘겨주자, 강태는 손을 받기도 전에 이미 꺼이꺼이 눈물을 터뜨리고 있었다. "어흐흡... 우리 여름이..." 강태는 어릴 적 여름이를 등에 업고 온 동네를 누비던 그 단단한 팔로 여름이의 손을 꼭 감싸쥐
결혼식 당일 아침. 10년간 소란스러웠던 셰어하우스의 아침이 평소와는 전혀 다른 거룩함과 묘한 긴장감 속에 시작되었다. 이른 새벽부터 출장 헤어·메이크업 팀이 도착해 거실을 가득 채웠고, 마침내 수줍은 피팅룸 커튼이 스르륵 열렸다.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24살의 여름이가 수줍게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레이스 장식이 은은하게 빛나는 드레스, 단정하게 올려 묶은 머리 위로 포근한 베일이 내리쬐는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아빠들... 나 어때? 괜찮아?" 거실 소파에 앉아 턱시도를 차려입고 기다리던 네 남자의 시간이 그대로 멈춰버렸다. "어... 버..." 강태가 190cm의 거구를 일으키려다 다리에 힘이 풀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강태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지더니, 급기야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커다란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우리 여름이가... 내 딸이... 진짜 신부가 됐어... 미치겠다, 진짜 너무 예뻐서 눈물이 안 멈춰..." 태준은 넥타이를 매만지던 손을 놓치고 안경을 서둘러 벗어 던졌다. 평소 냉정함과 논리를 무기로 삼던 브레인 태준이었지만, 솟구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통계적으로... 신부의 아름다움은 예측 불가능한 변수라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예쁠 줄은... 오차 범위를 넘어섰구나, 여름아." 이수는 직접 다려둔 여름이의 겉옷을 들고 다가가다 멈춰 섰다. "우리 딸, 추울라... 차에 탈 때 이거 꼭 둘러라." 이수는 눈물을 꾹 참으며 여름이의 베일을 다정하게 정돈해 주었지만, 이미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유준은 4K 카메라를 들고 연신 셔터를 눌렀지만, 렌즈 너머로 자꾸만 시야가 흐려져 렌즈를 연신 닦아내야 했다. "셔터 누르는 순간마다 내 가슴이 울컥거려서... 오늘 촬영은 완벽한 실패입니다..." 네 아빠의 각양각색 오열 소동 속에 출발한 웨딩카. 셰어하우스 대문을 나서며 여름이는 10년간 자신을 따뜻하게 품어
결혼식을 불과 하루 앞둔 밤. 오랜만에 셰어하우스 거실의 모든 불이 환하게 켜졌다. 거실 식탁 위에는 이수가 정성껏 마련한 바삭한 먹태 구이와 과일 안주, 그리고 김이 서린 맥주 캔들이 가득 놓여 있었다. 내일이면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이 집을 떠날 24살의 신부 여름이와, 그 곁을 지켜온 네 아빠. 다섯 사람의 얼굴에는 설렘과 아쉬움, 그리고 마주하기 아까운 애틋함이 교차하고 있었다. "자, 다 같이 잔 들어라. 우리 여름이의 마지막 셰어하우스 밤을 위하여!" 강태가 호탕하게 맥주 잔을 부딪쳤지만, 짠 소리가 나자마자 목이 메는지 급히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강태 아빠, 벌써 울면 어떡해. 내일 눈 부어서 결혼식장 들어갈 거야?" 여름이가 피식 웃으며 강태의 팔을 툭 쳤지만, 여름이의 눈가도 이미 조금씩 붉어져 있었다. 그때 유준이 거실 한쪽에 커다란 빔프로젝트 화면을 내렸다. "형님들, 그리고 여름아. 내가 그동안 셰어하우스 서버에 모아둔 10년 치 영상 복원 작업을 오늘 드디어 마쳤습니다." 화면이 켜지고, 첫 번째 영상이 재생되었다. 10년 전, 초등학교 3학년의 작은 여름이가 노란 책가방을 메고 머뭇거리며 셰어하우스 대문 안으로 들어서던 첫날의 모습이었다. 어색함과 두려움에 아빠들의 눈치를 살피던 작디작은 꼬마 아이. "아, 저때 진짜 작았는데..." 이수가 따뜻하게 웃으며 영상 속 어린 여름이의 얼굴을 다정하게 쓸어내렸다. "저 조그만 애가 밥투정 안 하고 맛있게 먹어줄 때마다 아빠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했다." 화면은 이어서 우당탕탕 지나간 세월들을 차례로 비추었다. 중학교 입학식 날, 190cm 강태 아빠에게 안겨 쑥스러운 듯 꺄르르 웃던 모습. 방문을 잠그고 사춘기 진통을 겪다 어버이날 편지를 수줍게 건네던 중2 시절. 고등학교 입학 후 남사친과 영화 보러 갔을 때, 5열 뒤에서 팝콘 통을 노려보던 네 아빠의 스파이 캠 화면. 대학 축제 날, 무대 위에서 트라이앵글을 폭풍 연주하던 강
대문이 열리고, 여름이의 뒤를 따라 단정한 정장 차림의 청년이 거실로 들어섰다. 훈훈한 인상에 선한 눈매를 가진 청년 '한지호'는 거실에 일렬로 서서 압도적인 아우라를 풍기는 네 남자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아버님들. 박여름 양과 진지하게 교제하고 있는 한지호라고 합니다." 시작부터 "아버님들"이라는 단어에 강태의 미간이 일그러졌지만, 태준이 슬그머니 손을 들어 기선제압의 포문을 열었다. "앉게, 한지호 군." 거실 중앙 식탁은 순식간에 국회 청문회장을 방불케 하는 긴장감으로 채워졌다. 여름이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지호의 옆에 앉아 아빠들의 눈치를 살폈다. 1장. 태준의 '백문백답'과 유준의 '팩트 체크' 가장 먼저 나선 것은 거실 중앙에 노트북과 두꺼운 서류 봉투를 펼쳐 둔 태준이었다. "좋다. 긴말할 것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지호 군, 자네의 인생관과 경제적 관념, 그리고 여름이와의 미래 계획에 대해 100가지 질문을 준비했다." 태준의 칼 같은 질문이 폭풍처럼 쏟아졌다. "5년 뒤의 재무 계획은 어떻게 세우고 있는가?" "여름이가 일을 계속하고 싶어 할 때 가사 분담 비율은 정확히 몇 대 몇인가?" "만약 여름이와 의견 충돌이 생겼을 때 자네의 자아 존중감과 타협점의 한계선은 어디인가?" 지호는 당황하는 기색 없이 태준의 눈을 직시하며 차분하게 대답해 나갔다. 태준의 송곳 같은 질문에도 완벽하고 논리적인 답변이 돌아오자, 옆에서 스마트폰으로 지호의 SNS, 대학 시절 논문, 심지어 제출했던 과제 파일까지 라이브로 검색하던 유준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형님... 지호 씨 학창 시절 봉사활동 시간이 300시간이 넘습니다. 대학 시절 도서관 대출 목록의 70%가 자기계발 및 인문학 서적이고, SNS에는 술 사진 한 장 없이 오직 열렬한 봉사 활동과 스터디 사진뿐입니다." 유준의 실시간 팩트 체크 보고에 태준이 안경을 고쳐 쓰며 흠흠, 헛기침을 했다. 첫 번째 관문인 지
첫 월급 선물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 사회인 2년 차에 접어든 23살의 여름이는 어느덧 회사에서도 제 몫을 다하는 어엿한 커리어 우먼이 되어 있었다. 셰어하우스 거실 벽 기둥에 그려진 키 측정 선은 이제 태준과 이수의 어깨를 한참 넘어서 있었고, 주말이면 아빠들과 약주 한 잔을 기울이며 회사 생활의 희로애락을 나눌 만큼 훌륭한 대화 상대가 되었다. 네 아빠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눈가에 주름이 은은하게 잡히기 시작했지만, 여름이를 바라보는 눈빛만큼은 언제나 세상에서 가장 그윽하고 따뜻했다. 그러던 어느 가을날 주말 저녁, 평화롭던 셰어하우스 식탁 위로 메가톤급 폭탄이 떨어졌다. "아빠들... 나 오늘 진지하게 할 말이 있어." 이수가 끓여낸 보글보글한 차돌박이 된장찌개를 떠먹던 여름이가 조심스럽게 수저를 내려놓았다. "응? 무슨 일 있니, 여름아? 회사에서 힘들게 하는 사람 있어?" 태준이 즉시 안경을 고쳐 쓰며 노트북을 펼칠 기세를 보였다. "아니, 그게 아니라..." 여름이가 수줍게 볼을 붉히며 머뭇거리더니, 숨을 후 내쉬었다. "나... 진지하게 만나는 사람이 있어. 대학원 다닐 때 알게 된 선배인데, 아빠들한테 인사드리고 싶다고 해서... 이번 주 토요일에 집으로 데려와도 될까?" 탁-. 이수의 손에서 뚝배기 집게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태준은 찻잔을 들던 손을 공중에 그대로 멈췄고, 강태는 씹던 갈비를 통째로 삼킬 뻔하며 쿨럭거렸다. 유준은 들고 있던 스마트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툭 놓쳐버렸다. "만... 만나는 사람...?" 강태가 190cm의 거구를 부르르 떨며 소리쳤다. "남자?! 남자를 이 집으로 데려온다고?! 그놈이 감히 우리 딸을 만난다고?!" "강태야, 정숙해라." 태준이 서둘러 제지하려 했으나, 태준 본인의 목소리도 상당히 떨리고 있었다. "여름이도 23살 성인이다. 이성 교제는 자연스러운... 아니, 그런데 그 녀석 이름이 뭐냐? 직업은? 집안은? 여름이한테 태도가 불손하진 않고
치열했던 대학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여름이는 마침내 원하던 기업에 당당히 합격했다. 학생 신분을 벗어나 진짜 '사회인'으로 거듭나는 대망의 첫 출근 날 아침. 셰어하우스 거실은 새벽부터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여름아! 정장 카라는 바르게 펴졌고? 구두는 어제 내가 굽 상태까지 완벽하게 점검해 뒀다!" 태준이 안경을 고쳐 쓰며 출근용 서류 가방을 여름이의 손에 쥐여 주었다. 식탁 위에는 보기만 해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이수의 특급 사랑 수제 도시락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첫날부터 회사 구내식당 가느라 긴장하지 말고, 점심시간에 이거 열어서 따뜻하게 먹어. 소화 잘되는 단호박 스프랑 부드러운 안심 스테이크 샌드위치야." 이수가 정성스럽게 보온 도시락 가방을 지퍼로 채워주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강태는 현관문 앞에서 거의 울기 직전의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니, 지하철 2호선 출근길 지옥철인데 우리 연약한 여름이가 어떻게 사람들에 치여서 가냐고! 내가 기사 자격증이라도 따서 태워다 줘야 하는 거 아니야?!" "강태 형, 제발 진정해. 지하철 프리미엄 지정석 패스를 끊어줬으니까 걱정 붙들어 매." 유준이 스마트폰 화면을 슥 보여주며 안심시켰지만, 유준 역시 여름이의 사원증 목걸이를 직접 목에 걸어주며 손을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아빠들, 나 진짜 잘 다녀올게! 회사 근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여름이가 씩씩하게 목례를 하고 현관문을 나서자, 네 남자는 거실 창문에 찰싹 달라붙어 여름이가 탄 버스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정신없는 신입사원으로서의 첫 달이 지나고, 마침내 운명의 날이 찾아왔다. 바로 사회인이 되어 처음으로 통장에 찍히는 '첫 월급'의 날이었다. 퇴근 시간, 셰어하우스 거실에는 네 아빠가 긴장한 표정으로 둥글게 모여 앉아 있었다. 여름이가 첫 월급을 타면 감격의 눈물을 흘릴 준비를 하느라, 강태는 아예 거실 한쪽에 대형 티슈 박스를 통째로 가져다 두었다. 띠
"왔다. 등기 우편."외출복 차림의 유준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며 하얀 서류 봉투를 흔들었다. 봉투 겉면에는 붉은색 도장으로 **[유전자 검사 결과서 재중]**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순간, 거실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러그 위에서 여름이와 놀아주며 딸랑이를 흔들던 이수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고, 팔굽혀펴기를 하던 강태는 그대로 바닥에 엎드린 채 숨을 죽였다. 서류가방을 들고 출근하려던 태준은 침을 꼴깍 삼키며 유준에게 다가갔다."이리 줘."태준이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받아 들었다. 이혼 소송에서 승소 판결문
"형… 애 몸이 왜 이렇게 뜨겁지?"퇴근 후 셰어하우스 거실. 하루 종일 체육관에서 육아 전투를 치르고 온 강태가 울상이 된 얼굴로 여름이를 안고 있었다."뭐? 비켜봐."서류가방을 내려놓기 무섭게 태준이 달려와 여름이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불덩이였다. 평소라면 방긋방긋 웃어야 할 아이가 힘없이 축 처져서 끙끙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야, 체온계! 누가 체온계 좀 가져와!""우리 집에 그런 게 어딨어! 강태 형 단백질 보충제 스푼은 있는데!" 이수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쳤다."비켜봐요! 제가 아까 사 왔어요!"막
아침 8시. 폭풍 같았던 '모닝 기저귀 사투'가 끝나고, 거실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말끔하게 네이비 수트로 갈아입은 태준이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조여 매며 입을 열었다."자, 현실적인 문제를 얘기해 보자. 다들 오늘 일정 어떻게 되지? 나는 오전 10시에 중요한 이혼 소송 재판이 있어서 무조건 나가봐야 해."태준의 시선이 소파에 늘어져 있는 세 사람을 향했다."나도 오늘은 안 돼!"이수가 물감이 덕지덕지 묻은 앞치마를 벗어 던지며 손을 저었다. "다음 주 갤러리 전시 기획 미팅 있어서 큐레이터 만나야 한다고. 애
"스톱. 다들 멈춰."주말 아침, 거실 한가운데 선 이태준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각자의 일과를 준비하던 세 남자가 걸음을 멈췄다. 태준은 두통이 온다는 듯 관자놀이를 짚으며 집안 곳곳을 가리켰다."어제 우리가 여름이를 당분간 보호하기로 합의했지? 그럼 환경부터 바꿔야 해. 여긴 지금 집이 아니라 신생아용 지뢰밭이라고."태준의 지적은 정확했다.거실 구석에는 서이수가 용접하다 만 날카로운 철제 조형물이 흉기처럼 솟아 있었고, 반대편에는 최강태가 굴려둔 20kg짜리 쇳덩이 덤벨들이 발가락 골절을 유도하듯 널려 있었다. 심지어 막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