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판 / 단두대 위의 미슐랭 / 1화. 사형 전 한입

공유

단두대 위의 미슐랭
단두대 위의 미슐랭
작가: 6jay

1화. 사형 전 한입

작가: 6jay
last update 게시일: 2026-08-15 09:28:44

강서진은 냄새로 시간을 잴 수 있었다.

새벽 네 시의 주방에는 식은 금속 냄새가 났다. 오븐이 예열되기 전의 차가운 철판, 전날 밤 마지막으로 닦아낸 조리대, 아직 칼집에 잠든 셰프 나이프. 다섯 시가 되면 버터가 녹고, 여섯 시가 되면 커피와 빵 껍질 냄새가 섞였다.

그녀는 그런 식으로 살아왔다.

시간을 시계보다 냄새로 먼저 읽었다.

그러나 지금 코끝을 친 건 곰팡이와 피비린내였다.

'……내 주방 냄새가 아닌데.'

서진은 눈을 떴다.

차가운 돌바닥이 뺨에 닿아 있었다. 손목에는 쇠사슬이 채워져 있었고, 발목은 얼어붙은 듯 무거웠다. 천장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돌 위에 부딪혔다.

똑.

똑.

감옥이었다.

그것도 누군가를 살려두기 위한 감옥이 아니라, 죽이기 전까지 보관하는 감옥.

서진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 했다. 순간 머리가 깨질 듯 아팠고, 시야가 흔들렸다. 손끝을 보자 낯선 손이 보였다. 길고 흰 손가락, 귀족 영애처럼 관리된 손톱, 하지만 손바닥에는 희미한 상처가 있었다.

'내 손이 아니야.'

그녀는 짧게 숨을 들이켰다.

곰팡이와 피 냄새 아래로, 낯선 향수가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

서진은 천천히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손가락 사이로 은빛 금발이 흘러내렸다.

"말도 안 돼."

목소리도 낯설었다.

가늘고, 조금 쉬었고, 어딘가 귀족적인 억양이 남아 있었다.

그때 감옥 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철컥.

간수가 문을 열었다. 그의 손에는 양피지 두루마리가 있었다. 그는 엘리제를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깨어났군, 엘리제 폰 라벤느."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서진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끊어지듯 떠올랐다.

엘리제 폰 라벤느.

로맨스 판타지 소설 속 악녀.

주인공을 질투하고, 남주인공 칼릭스 블레이크 공작의 만찬에 독을 탔다가 1화도 넘기지 못하고 처형당하는 조연 악녀.

서진은 입술을 굳혔다.

'나, 소설 속으로 들어온 거야?'

간수는 두루마리를 펼쳤다.

"엘리제 폰 라벤느. 그대는 블레이크 공작 전하의 만찬에 독을 섞어 제국 중신을 살해하려 한 죄로, 한 시간 뒤 참수형에 처한다."

한 시간.

서진은 반사적으로 주변을 보았다.

창살. 쇠사슬. 물그릇. 밀짚. 벽에 박힌 녹슨 못 하나.

요리 도구는 없었다.

칼도, 불도, 냄비도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공포보다 먼저 치밀어 오른 것은 분노였다.

"독?"

간수가 눈썹을 찌푸렸다.

"뭐라 했지?"

서진은, 아니 엘리제는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입가가 말라 찢어질 듯 아팠지만 웃음이 나왔다.

"내가 음식에 독을 탔다고?"

"이제 와 부정해도 소용없다."

"그 독, 무슨 맛이었어?"

간수가 멈칫했다.

"뭐?"

"무슨 맛이었냐고. 썼어? 떫었어? 금속 맛이 났어? 혀끝이 마비됐어? 목 안쪽이 막혔어?"

간수의 얼굴이 이상해졌다.

엘리제는 쇠사슬이 허용하는 만큼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독초를 썼다면 쓴맛이 났겠지. 달그늘꽃 계열이면 끝향이 차갑고, 흑회향을 섞었다면 목 안쪽이 둔해졌을 거야. 그런데 내가 만든 요리가 그런 맛을 품을 메뉴였어?"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

"그러니까 모르는 사람이 왜 내 요리에 독이 들었다고 떠들어?"

간수의 눈에 당혹감이 스쳤다.

엘리제는 숨을 몰아쉬었다.

목숨이 한 시간 남았다는 사실보다, 음식으로 누명을 씌웠다는 사실이 더 불쾌했다.

미슐랭 3스타를 따기 위해 그녀가 버린 것들이 있었다. 잠, 연애, 휴일, 건강. 그래도 음식에 장난친 적은 없었다. 먹는 사람의 몸에 들어가는 것에 거짓을 섞는 짓은, 셰프에게 가장 저열한 배신이었다.

'이건 살기 위해서만이 아니야.'

엘리제는 손목에 찬 쇠사슬을 움켜쥐었다.

'내 접시에 누명을 씌운 대가, 반드시 받아낸다.'

간수가 코웃음을 쳤다.

"미친 건가. 곧 죽을 여자가 음식 타령이라니."

"곧 죽을 여자라서 하는 말이야."

"뭐?"

"공작에게 전해. 마지막으로 한 끼만 만들게 해달라고."

간수는 웃었다.

"사형수가 마지막 식사를 요구하는 건 들어봤어도, 마지막 요리를 만들겠다는 건 처음이군."

"나도 처음이야. 그러니까 기억에 남겠네."

"공작 전하께서 네 말을 들어줄 것 같나?"

엘리제는 잠시 눈을 감았다.

칼릭스 블레이크.

제국 북부를 지키는 냉혈 공작. 소설 속 남주인공. 미각과 감정을 잃은 남자. 원작에서 그는 엘리제의 독살 사건 이후 더욱 차가워지고, 여주인공에게만 천천히 마음을 열었다.

그런데 지금 엘리제는 원작 여주가 아니라 처형당할 악녀였다.

'그래도 살 길은 있어.'

공작은 미각을 잃었다.

맛을 모르는 남자.

그런데 만약 그 남자가 단 한입이라도 맛을 느낀다면?

엘리제는 눈을 떴다.

"들어줄 거야."

"왜?"

"그 사람은 지금 배가 고픈 게 아니거든."

간수의 얼굴이 굳었다.

"무슨 뜻이지?"

엘리제는 낮게 말했다.

"맛을 잃은 사람은 허기보다 더 심한 걸 잃은 거야."

***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길은 길지 않았다.

엘리제의 손목에는 여전히 쇠사슬이 채워져 있었고, 발걸음은 비틀거렸다. 감옥 복도의 습한 냄새가 점점 옅어지고, 대신 찬 바람과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가까워졌다.

'진정해. 강서진.'

그녀는 속으로 자신을 불렀다.

'아니, 이제 엘리제인가.'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죽으면 끝이다.

살아남으려면 접시를 만들어야 했다.

광장 중앙에는 단두대가 세워져 있었다. 검은 나무판 위에 떨어질 칼날은 차가운 햇빛을 받아 번뜩였다. 귀족들은 거리를 두고 서 있었고, 병사들은 무표정하게 줄을 지었다.

그리고 그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칼릭스 블레이크 공작.

검은 머리, 창백한 피부, 겨울 호수처럼 색이 옅은 눈. 그는 잘생겼다는 말보다 먼저 차갑다는 말이 떠오르는 남자였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했다. 엘리제도 본능적으로 알았다.

저 사람은 자신의 목숨을 쥔 사람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엘리제는 그의 눈을 보자, 두려움보다 다른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저 눈…… 배고픈 사람 눈이 아니야.'

비어 있었다.

식탁 앞에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의 눈. 오래 굶은 사람은 음식을 보면 탐욕을 보인다. 그러나 칼릭스의 눈에는 탐욕도, 혐오도, 기대도 없었다.

'맛을 잃은 사람 눈이다.'

칼릭스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고 들었다."

목소리는 낮고 매끄러웠다.

얼음 위를 칼끝으로 긁는 듯한 소리였다.

엘리제는 마른 입술을 적셨다.

칼날이 등 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공작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공작님."

"말해라."

"당신, 내 요리 먹고 맛없다고 한 적 있습니까?"

광장이 조용해졌다.

칼릭스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뭐?"

"독살 누명보다 그게 더 궁금해서요."

주변 귀족들이 말을 삼켰다.

엘리제는 멈추지 않았다.

"내가 정말 독을 넣었다면, 그건 요리가 아니에요. 독살 도구죠. 그런데 나는 셰프입니다. 적어도 내 접시에 오른 건, 죽이는 게 아니라 먹이는 것이어야 해요."

칼릭스가 그녀를 응시했다.

그 눈에는 아직 감정이 없었다.

그러나 아주 작은 변화가 있었다.

흥미.

아니, 흥미라고 부르기엔 너무 희미했지만, 무언가가 잠깐 멈춘 듯한 느낌.

"너는 자신이 요리사라고 주장하는 건가."

"주장하는 게 아니라 사실입니다."

"라벤느 가문의 영애가?"

"영애는 모르겠고."

엘리제는 쇠사슬에 묶인 손을 들어 보였다.

"이 손은 칼을 압니다."

칼릭스의 시선이 그녀의 손으로 내려갔다.

그 순간 엘리제는 이상하게 손끝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죽기 직전이라 그런지, 아니면 저 남자의 시선이 너무 차가워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칼릭스가 말했다.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너는 독살범이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렇다."

"그럼 확인하세요."

엘리제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려 했지만 병사가 막았다. 쇠사슬이 철컥 소리를 냈다.

"내 요리에 독이 없었다는 걸 증명할 기회를 주세요. 딱 한 접시. 딱 한 입이면 됩니다."

칼릭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엘리제는 그의 침묵을 붙잡았다.

"공작님은 맛을 잃었죠."

이번에는 정말로 광장이 얼어붙었다.

칼릭스의 시선이 낮게 가라앉았다.

병사 하나가 검 손잡이에 손을 댔다.

엘리제는 심장이 세차게 뛰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맛을 잃은 사람에게 독은 쉽습니다. 어차피 못 느끼니까. 하지만 맛을 깨우는 요리는 어렵죠."

"네가 그것을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근거는."

엘리제는 웃었다.

"셰프의 근거는 접시 위에 있습니다."

칼릭스는 한참 그녀를 보았다.

그의 시선은 목을 베는 칼보다 더 차가웠다. 그런데 그 차가움 너머, 엘리제는 아주 미세한 균열을 보았다.

그는 알고 있다.

자신이 비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그 빈 곳을 누군가 건드리길 기다려왔다는 것도.

칼릭스가 입을 열었다.

"얼마나 필요하지."

엘리제의 숨이 멎을 뻔했다.

"삼십 분."

"십오 분."

"그건 데우기도 힘듭니다."

"그럼 죽어라."

"이십오 분."

"이십 분."

엘리제는 이를 악물었다.

"좋아요. 대신 주방과 불, 칼, 물, 그리고 고기가 필요합니다."

"재료를 고를 여유는 없다."

"쓰레기 같은 재료라도 됩니다."

칼릭스의 입가가 아주 희미하게 올라간 듯했다.

웃음이라기보다는, 얼음이 금 가는 소리에 가까웠다.

"네 목숨은 이십 분짜리 접시 위에 걸렸다."

엘리제는 고개를 들었다.

"충분합니다."

"실패하면."

"목이 날아가겠죠."

"그리고 성공하면?"

엘리제는 그의 눈을 보았다.

"공작님은 처음으로 내 요리를 맛보게 될 겁니다."

그 말에 칼릭스의 시선이 잠시 멈췄다.

엘리제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단두대 앞에서 살아남을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동시에 느꼈다.

이 남자와의 식사는, 단순히 목숨을 구하는 한 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칼릭스가 병사에게 명령했다.

"주방으로 데려가라."

그는 잠시 멈춘 뒤 덧붙였다.

"쇠사슬은 풀지 마라. 칼을 쥐는 손만 자유롭게 해."

엘리제는 헛웃음을 삼켰다.

'좋아. 이 정도면 최악은 아니야.'

그러나 칼릭스의 다음 말에 그녀의 걸음이 멈췄다.

"엘리제 폰 라벤느."

"네."

"네가 말한 한 입."

그의 눈이 그녀의 손끝을 스쳤다.

"내가 직접 들지는 않겠다."

"……예?"

"네가 먹여라."

광장 전체가 다시 조용해졌다.

엘리제는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칼릭스의 얼굴은 더없이 진지했다.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공작, 사형장 앞에서 사람 정신을 흔들 작정인가?'

칼릭스는 담담하게 말했다.

"독살범의 손이 얼마나 떨리는지 보고 싶다."

엘리제는 천천히 웃었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하지만 눈은 떨리지 않았다.

"좋습니다."

그녀는 대답했다.

"대신 공작님, 한입 드신 뒤엔 제 목부터 치우는 일은 잠시 미뤄주셔야 할 겁니다."

칼릭스의 눈동자가 아주 조금 깊어졌다.

"자신 있군."

"셰프는 접시 앞에서 허세도 양념으로 씁니다."

그렇게 엘리제는 처형장 대신 주방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칼릭스 블레이크는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이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었다.

왜 죽일 여자의 눈을 조금 더 보고 싶어졌는지.

왜 그녀의 떨리는 손보다, 흔들리지 않는 눈이 더 오래 남았는지.

그에게는 아직 그 감정의 이름이 없었다.

하지만 아주 오랜만에.

그는 다음 한입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작품을 무료로 읽으실 수 있습니다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최신 챕터

  • 단두대 위의 미슐랭   [외전-8] 영원한 만찬, 사슬의 종장 (完)

    제국 북부의 거대한 설산을 집어삼킬 듯 무섭게 몰아치던 동토의 새벽바람이 마침내 잔인한 비명을 거두고 흔적도 없이 사그라들었다.블레이크 공작성의 가장 높은 탑 위로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자, 수십 년간 얼어붙어 있던 성벽의 성에들이 투명한 보석처럼 부서지며 눈부신 황금빛을 사방으로 반사해 내기 시작했다. 길고 길었던 황궁의 더러운 암투도, 마차 안과 귀빈실을 거쳐 이곳 공작가의 대침실까지 이어지던 파괴적이고도 농밀한 탐닉의 밤도 마침내 잿빛 안개 속으로 완전히 녹아내린, 지독하리만치 평화로운 아침이었다.그러나 오직 두 사람만의 숨소리와 맥박으로 가득 찬 공작의 대침실 내부만큼은 여전히 시간이 완전히 정지한 듯, 낮고 진득한 열기가 고스란히 정체되어 있었다.사방으로 어지럽게 흩어진 순백의 예복 실크 조각들과 뜯겨 나간 은색 단추들, 지난밤의 격렬했던 신체적 마찰을 증명하듯 기괴하게 뒤틀린 채 젖어 있는 침대 시트, 그리고 공간을 가득 메운 짙은 샌달우드 향과 달콤한 무화과 향의 잔향이 뇌리를 묵직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방 안의 밀도는 여전히 숨이 막힐 정도로 무거웠다.“으음…….”엘리제는 눈꺼풀을 서서히 들어 올리며 가녀린 신음을 입술 사이로 흘렸다.전신을 지독하게 난도질하는 듯한 뻐근한 통증이 척추 뼈마디 하나하나를 타고 무겁게 밀려왔다. 단 한 치의 자비도, 단 한 순간의 유예도 없이 그녀의 살결을 탐닉해 들어왔던 칼릭스의 잔인한 소유욕이 남긴 흔적이었다. 전생의 강서진으로서 그 어떤 혹독한 주방의 노동과 폭군 같은 선배들의 압박도 버텨냈던 그녀였지만, 모든 감각을 회복한 북부의 괴물이 밤새도록 쏟아부은 원초적인 집착을 받아내는 것은 차원이 다른 파멸적인 피로였다.그녀가 몸을 미세하게 움직이려 하자마자, 허리를 부서질 것처럼 움켜쥐고 있던 거대하고 단단한 팔뚝에 소름 끼칠 정도로 강한 악력이 다시금 들어왔다.“깨웠나.”낮고 진득하게 잠긴, 낮의 태양마저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서늘하고도 뜨거운 목소리가 엘리제의 뒷덜미를 거칠게 긁어내렸다.칼릭

  • 단두대 위의 미슐랭   [외전-7] 침실의 봉인, 사슬을 쥔 여왕

    수도에서 북부의 심장으로 이어지는 길고 긴 밤의 질주가 마침내 끝을 고했다.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블레이크 공작성의 거대한 대문이 육중한 쇳소리를 내며 열렸고, 두 사람을 태운 마차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마필들의 더운 숨결을 흩날리며 안뜰 정중앙에 멈춰 섰다. 북부의 한밤동을 지배하는 동토의 차가운 바람이 마차 외벽을 사정없이 때려대며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지만, 그 서늘한 냉기조차 마차 내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던 지독하고 끈적한 열기를 식히지는 못했다.달각.마차 문이 열리자마자 칼릭스는 무릎 위에 늘어져 있던 엘리제를 단 한 순간도 바닥에 디디게 하지 않은 채, 자신의 두꺼운 모피 망토로 그녀의 전신을 빈틈없이 감싸 안았다. 아침에 드레스룸에서 그토록 정성스럽게 채웠던 미드나잇 블루 빛의 실크 예복은 이미 마차 안에서 벌어진 난폭한 탐닉으로 인해 단추가 전부 뜯겨 나가고 옷깃이 처참하게 찢어진 상태였다. 다른 하녀들이나 성 안의 기사들에게 아내의 노출된 살결과 자신이 새겨놓은 붉은 낙인들을 단 한 자락도 보이지 않겠다는 괴물의 철저한 구속이자 독점욕이었다.“공작 전하를 뵙습니…….”성 문을 지키던 호위 기사들과 하녀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으나, 칼릭스는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성큼성큼 본관의 대리석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서슬 퍼런 살기와 제압감은 전장으로 향하는 총사령관의 그것보다 훨씬 더 서슬 퍼런 위압감을 품고 있었다. 엘리제는 그의 단단한 목덜미에 두 팔을 감아쥔 채, 모피 망토 안쪽의 은밀한 어둠 속에서 가쁜 숨을 골랐다. 셔츠 자락 틈새로 느껴지는 그의 우람한 가슴팍 근육은 여전히 진정되지 않은 채 터질 것처럼 거칠게 맥박치고 있었다.복도를 지나 오직 두 사람만을 위해 허락된 성의 가장 깊숙한 안동, 공작의 대침실 문이 열렸다. 칼릭스는 발끝으로 문을 부서질 것처럼 거칠게 닫아걸었다.쿵! 철컥.육중한 참나무 문이 닫히고 묵직한 금속 걸쇠가 완전히 잠기는 순간, 엘리제는 비로소 자신들이

  • 단두대 위의 미슐랭   [외전-6] 구속의 비단, 폭주하는 포식자

    황제와의 숨이 막힐 듯한 공식 오찬이 마침내 마침표를 찍고, 황궁 안동의 깊숙하고 창백한 대리석 통로를 지나 마침내 블레이크 공작가의 대형 마차 문이 닫히는 순간.장내를 압박하던 화려하고 가식적인 금빛 세계는 완벽하게 차단되었고, 마차 내부에는 오직 두 사람만이 호흡할 수 있는 지독하리만치 은밀하고 거대한 어둠의 장막이 내려앉았다. 마차 바퀴가 수도의 거친 돌길을 짓이기며 움직이기 시작하는 둔탁한 소음이 정적을 흔들었으나, 그 소음마저 마차 안을 가득 채운 칼릭스의 파괴적인 살기와 소유욕 앞에서는 한 자락의 먼지처럼 흩어질 뿐이었다.철컥, 철컥.마차가 코너를 돌 때마다 육중한 차체가 크게 흔들렸지만, 칼릭스는 엘리제를 자신의 무릎 위에 앉힌 채 그녀의 허리를 부서질 것처럼 강하게 껴안고 있었다.그는 오찬이 진행되는 내내, 그리고 황제가 엘리제에게 호의 어린 손을 내밀며 “조련”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던 그 찰나의 순간부터 이성의 끈이 완전히 끊어져 있었다. 완벽하게 재단된 검은색 제복 상의 너머로 느껴지는 그의 심장 박동은 평소의 침착함을 완전히 잃은 채, 폭주하는 마법 엔진처럼 거칠고 폭력적으로 맥박치고 있었다. 그 무자비한 박동이 엘리제의 둔부를 통해 전신으로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칼릭스…… 하아, 손아귀 힘이 너무 강해요. 허리가 부러질 것 같아요.”엘리제가 그의 단단하고 넓은 어깨에 이마를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속삭였다.그녀가 입은 미드나잇 블루 빛의 실크 드레스는 목끝까지 촘촘하게 은색 단추가 채워져 있어 레이스가 턱밑까지 감싸 안고 있었지만, 남자의 거친 호흡이 깃을 타고 내려올 때마다 맨살 위로 소름 끼치는 열기가 전해졌다. 목을 죄어오는 굵은 은색 사슬과 핏빛 루비 초커가 그의 악력에 들려 올라가며 엘리제의 가느다란 목선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가죽 장갑을 벗어 던진 그의 맨손가락이 초커의 날카로운 테두리를 따라 피부를 파고들 듯 강하게 짓눌렀다.“황제의 눈빛이 네 쇄골 라인이 시작되는 그 깃 끝에 머물렀다.”칼릭스의

  • 단두대 위의 미슐랭   [외전-5] 금빛 장막 뒤의 탐식

    황궁의 정오를 알리는 거대한 청동 종소리가 제국의 심장부를 무겁게 울렸다.블레이크 공작 부부를 마중하기 위해 열린 황실 안동의 귀빈 대기실은 대연회장과는 또 다른 의미로 숨이 막힐 듯한 위압감이 감돌고 있었다. 사방의 벽면을 가득 채운 순금 문양의 휘장들과 화려한 크리스탈 샹들리에에서 쏟아지는 백색의 불빛은 지나치게 사치스러웠고, 바닥에 깔린 붉은 벨벳 카펫은 발소리 하나조차 완벽하게 집어삼키며 은밀한 정적을 자아내고 있었다.“공작부인 전하, 예복의 선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지 않았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드리겠습니다.”황실 최고위 하녀장이 조심스러운 손길로 엘리제의 드레스 자락을 매만졌다.칼릭스가 직접 골라 입힌 미드나잇 블루 빛의 실크 예복은 레이스가 목끝까지 촘촘하게 짜여 있어 단 한 치의 살결도 밖으로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히려 그 완벽한 폐쇄성이 엘리제의 가느다란 목선과 유려하게 떨어지는 골반의 곡선을 노골적으로 부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목을 옥죄듯 감싸 안은 블레이크 가문의 핏빛 루비 초커는, 그녀가 제국의 구원자이기 전에 오직 한 사내의 지독한 소유물임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사슬과 같았다.엘리제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얕은 숨을 내쉬었다.단추를 목끝까지 채운 드레스는 주방의 화구 열기를 견디던 전생의 가운보다 훨씬 더 답답하게 심장을 조여왔다. 하지만 그 답답함의 진짜 원인은 옷이 아니었다. 드레스룸에서부터 마차, 그리고 이 황궁의 복도를 걸어오는 내내 자신의 허리를 부서질 것처럼 움켜쥔 채 단 한 순간도 시선을 떼지 않던 남자의 파괴적인 독점욕 때문이었다.스윽.그때, 대기실 안쪽의 대리석 기둥 뒤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움직였다.완벽하게 재단된 검은색 황실 제복을 입은 칼릭스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제국의 검이자 북부의 지배자다운 오만한 아우라가 공간을 단숨에 압도하자, 황실 하녀들은 공작의 서슬 퍼런 기운에 질려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고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칼릭스의 투명하면서도 깊은 보랏빛 눈동자가 엘리제에게로 향했

  • 단두대 위의 미슐랭   [외전-4] 오만의 마침표, 탐닉의 시작

    황궁 귀빈실의 높은 창문 틈새로 아침 햇살이 가늘고 길게 조각되어 쏟아졌다.수도 위를 수놓은 창백한 새벽안개가 황금빛 태양에 녹아내리는 시간이었지만, 두꺼운 암막 벨벳 커튼이 드리워진 침실 내부만큼은 여전히 어둡고 진득한 밤의 열기가 고스란히 정체되어 있었다. 사방으로 흩어진 순백의 실크 드레스 자락, 바닥에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공작의 제복 훈장들, 그리고 벽난로 안에서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장작의 매캐한 잔향이 방 안의 밀도를 숨이 막힐 정도로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으음…….”엘리제는 얕은 신음을 삼키며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전신을 지독하게 난도질하는 듯한 뻐근한 통증이 척추 마디마디를 타고 밀려왔다. 단 한 치의 자비도 없이 그녀를 몰아붙였던 지난밤의 흔적이었다. 온전한 감각을 되찾은 괴물이 십수 년의 굶주림을 보상받겠다는 듯 탐욕스럽게 탐닉해 온 결과물은 엘리제의 하얀 피부 위로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었다.그녀가 몸을 미세하게 뒤틀자마자, 허리를 빈틈없이 옭아매고 있던 거대하고 단단한 팔뚝에 더욱 강한 힘이 들어갔다.“더 누워 있어라.”낮고 잠긴, 짐승의 르누아르 같은 목소리가 엘리제의 귓가를 긁어내렸다.칼릭스는 언제나처럼 소리도 없이 눈을 뜬 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헝클어진 칠흑 같은 머리카락이 그의 이마 위로 흘러내려 야성적인 분위기를 더했고, 실크 이불 밖으로 드러난 그의 넓고 탄탄한 어깨와 흉판에는 엘리제가 쾌감에 겨워 가늘게 긁어내린 손톱자락 자국이 붉게 선을 그리고 있었다.거울처럼 투명해진 그의 보랏빛 눈동자는 오직 엘리제 한 사람만을 담은 채 기묘한 포만감과, 여전히 가시지 않은 지독한 독점욕으로 일렁였다.“칼릭스, 날이 벌써 다 밝았어요. 황실 시종들이나 하녀들이 방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텐데…… 이 팔 좀 놓아주세요.”엘리제가 그의 가슴팍을 밀어내려 손을 올렸으나, 칼릭스는 오히려 그녀의 손가락을 하나씩 붙잡아 자신의 입술 앞으로 가져갔다.검은 장갑을 벗어 던진 그의 맨손 지문이 엘리제의 가느다란 손

  • 단두대 위의 미슐랭   [외전-3] 밤의 장막과 귀빈실의 지배자

    황궁의 온실 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는 창백한 달빛은 두 사람의 엉킨 그림자를 은밀하게 비추고 있었다.온실 안을 가득 채운 진득한 장미 향은 엘리제의 가쁜 숨결과 뒤섞여 기묘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차가운 대리석 돌벽에 등이 밀착된 엘리제는 전면에서 저돌적으로 밀려드는 칼릭스의 거대한 신체를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었다.칼릭스는 그녀의 두 손목을 조리대 벽 위로 거칠게 잡아 내리누른 채, 마치 사냥감을 온전히 가두어둔 맹수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칼릭스…… 하아, 사람들이 언제 이곳으로 들어올지 몰라요. 제발 이 손 좀……”엘리제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다그치려 했으나, 칼릭스의 투명한 눈동자에 서린 열망은 이미 이성의 끈을 아슬아슬하게 잡아당기고 있었다.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더 깊숙이 숙여, 엘리제의 새하얀 목덜미와 핏빛 루비 초커가 닿아 있는 그 예민한 경계선을 사정없이 입술로 핥아 내렸다. 쪽, 소리와 함께 질척한 점막의 마찰음이 온실의 정적을 집요하게 깨부수었다.“흐읏……! 아, 칼릭스……!”엘리제의 입술 사이로 참지 못한 신음이 튀어 나왔다. 거칠게 살을 파고드는 남자의 맨손 악력과, 전신을 불덩이처럼 달구는 배덕감이 그녀의 척추 뼈마디를 타고 뇌수까지 일직선으로 치솟아 올랐다.모든 미각과 감각을 회복한 칼릭스에게 엘리제라는 존재는 이제 단순히 맛을 느끼게 해주는 도구가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원색을 뛰어넘어, 자신의 피와 살을 통째로 지배하는 지독한 마약이자 유일한 구원이었다.칼릭스는 엄지손가락으로 엘리제의 붉게 퉁퉁 부어오른 입술 점막을 강하게 비벼대며, 가쁜 숨을 그녀의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말했을 텐데, 엘리제. 세상이 선명해질수록 내 식욕은 너 하나만을 향해 폭주한다고. 저 연회장에 서 있는 천박한 놈들이 네 어깨와 등을 바라보는 그 짧은 순간 동안, 나는 제국 전체를 불태워버리고 싶었다.”그의 목소리는 짐승의 낮은 으르렁거림처럼 뇌리를 긁어내렸다. 칼릭스는 결코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듯, 엘리제의 허리를

더보기
좋은 소설을 무료로 찾아 읽어보세요
GoodNovel 앱에서 수많은 인기 소설을 무료로 즐기세요! 마음에 드는 작품을 다운로드하고,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앱에서 작품을 무료로 읽어보세요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