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임시 주방은 주방이라 부르기도 민망했다.
사형장 옆 관청 건물 뒤편에 딸린 조리실이었다. 벽에는 그을음이 두껍게 끼어 있었고, 화구는 반쯤 식은 재로 막혀 있었다. 물통에서는 쇠 냄새가 났고, 조리대는 칼자국보다 곰팡이 얼룩이 더 많았다. 엘리제는 문턱을 넘자마자 숨을 들이마셨다. 썩은 기름과 시든 채소 냄새. 오래 방치된 도마 위에는 질긴 고기가 놓여 있었다. '좋아. 최악이네.' 그래도 완전한 최악은 아니었다. 불이 있었다. 물이 있었다. 칼이 있었다. 그리고 고기가 있었다. 그 정도면 셰프는 살길을 만든다. 병사 하나가 쇠사슬을 풀어주었다. 양쪽 발목은 여전히 묶여 있었고, 손목도 한쪽 사슬은 남아 있었다. 다만 오른손만은 자유로웠다. 칼을 쥘 수 있을 만큼. 칼릭스는 주방 입구에 서 있었다. 그는 들어오지 않았다. 마치 이 더러운 공간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듯, 문가에서 엘리제의 움직임을 지켜봤다. 엘리제는 그 시선을 등 뒤로 느끼며 재료를 확인했다. 고기는 질겼다. 부위는 어깨살에 가까웠고, 핏물이 제대로 빠지지 않았다. 지방은 적고 근섬유는 거칠었다. 보통 귀족 연회라면 버려졌을 고기다. 시든 뿌리채소 몇 개, 말라비틀어진 허브, 굵은 소금, 산미가 빠진 열매 껍질. "정말 이런 걸로 만들 생각인가?" 문가에서 칼릭스가 물었다. 엘리제는 고기를 손끝으로 눌렀다. "재료가 나쁜 게 아니라, 다룰 줄 모르면 나빠지는 겁니다." "이 고기는 질기다." "알아요." "냄새도 좋지 않다." "그것도 알아요." "그런데 자신 있나." 엘리제는 고기를 들고 칼릭스를 돌아보았다. "공작님, 이 고기가 왜 질긴지 아십니까?" 칼릭스의 눈썹이 움직였다. "왜지?" "제대로 쉬지도 못했고, 손질도 엉망이고, 버려지기 직전까지 몰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살릴 겁니다. 고기도, 제 목숨도요." 칼릭스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는 고기 이야기를 하는 여자의 눈이 왜 저렇게 진지한지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엘리제는 그 표정을 보고 피식 웃었다. "사람이든 고기든, 버려지기 직전에 제일 조심해야 합니다. 잘못 다루면 끝나지만, 제대로 다루면 생각보다 오래 버티거든요." 그 말이 자신에게도 해당된다는 것을, 엘리제는 알고 있었다. 그녀도 지금 버려지기 직전이었다. *** 시간은 이십 분. 길지 않다. 엘리제는 먼저 고기를 얇게 다듬었다. 힘줄을 완전히 제거할 시간은 없었다. 대신 결을 따라 칼집을 넣었다. 깊지 않게. 고기의 구조를 무너뜨리지 않되, 열이 들어갈 길을 만들어야 했다. 옆에서 병사들이 수군거렸다. "영애가 칼질을 한다." "저 손으로?" "저러다 손가락부터 자르겠군." 엘리제는 듣지 않았다. 칼끝은 흔들리지 않았다. 전생에서 수천 번, 수만 번 반복한 동작이었다. 칼은 손의 연장이었고, 도마는 전장보다 익숙한 바닥이었다. 이 세계의 몸은 낯설었지만, 손끝의 기억은 남아 있었다. 칼릭스는 그 손을 보고 있었다. 그는 음식보다 그녀의 손을 먼저 보았다. 분명 사형 직전의 여자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단두대 앞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그런데 칼을 쥔 순간, 그녀의 주변 공기가 달라졌다. 병사들의 비웃음도, 낡은 주방도, 죽음의 냄새도 그녀에게 닿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칼릭스는 낯선 멈춤을 느꼈다. 그는 저런 집중을 본 적이 있다. 전장 위에서 죽음을 앞둔 기사들이 마지막 검을 쥘 때. 하지만 엘리제의 눈은 검사의 눈이 아니었다. 접시를 믿는 사람의 눈이었다. 엘리제는 시든 허브를 손으로 비볐다. 향이 거의 죽어 있었다. 하지만 줄기 안쪽에 희미하게 남은 향이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굵은 소금과 함께 으깼다. 산미 열매 껍질을 얇게 벗겨 물에 살짝 담갔다. "마법 화구, 온도 조절 가능해요?" 그녀가 물었다. 병사 하나가 비웃었다. "영애께서 마법 화구도 다루나?" "대답." 엘리제의 목소리가 차갑게 떨어졌다. 병사가 움찔했다. "약하게, 중간, 강하게. 세 단계다." "세 단계라." 엘리제는 혀를 찼다. '0.1도 조절은 꿈도 못 꾸겠네.' 그래도 방법은 있었다. 그녀는 물을 얕은 냄비에 붓고, 고기를 천에 싸서 넣었다. 완전한 수비드는 아니지만, 물의 열을 이용해 고기 속을 천천히 깨울 수 있다. 불 마법은 거칠었다. 대신 물과 천이 완충 역할을 했다. 화구를 약하게. 물이 끓지 않게. 표면에 작은 기포가 생기려 할 때마다 냄비를 살짝 들어 올렸다. 베른 같은 주방장이 있었다면 기겁했을 방식이지만, 지금은 이것이 최선이었다. 고기가 천천히 따뜻해졌다. 그 사이 엘리제는 시든 뿌리채소를 얇게 썰어 마른 팬에 올렸다. 기름은 거의 쓰지 않았다. 채소 속 당을 끌어내기 위해 약한 불에서 천천히 태우듯 굽는다. 가장자리가 갈색으로 변하며 고소한 향이 올라왔다. 주방에 냄새가 바뀌기 시작했다. 썩은 기름과 곰팡이 냄새 사이로, 구운 채소의 단향이 피어났다. 병사들의 수군거림이 조금 줄었다. 칼릭스는 여전히 무표정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이제 조리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엘리제는 물에서 고기를 꺼냈다. 겉은 여전히 볼품없었지만 속은 조금 부드러워졌다. 그녀는 천을 풀고 고기 표면의 물기를 닦았다. "불 강하게." "뭐?" "강하게." 화구가 거칠게 타올랐다. 엘리제는 팬을 달구었다. 기름 한 방울. 고기 표면이 팬에 닿는 순간,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치익. 그 소리가 주방을 갈랐다. 핏물 냄새가 아니라 구운 고기 냄새가 올라왔다. 수분이 날아가고, 표면이 갈색으로 변했다. 짧게. 아주 짧게. 더 오래 두면 고기는 다시 질겨진다. 엘리제는 정확한 순간에 고기를 뒤집었다. 치익. 두 번째 소리. 그 소리에 칼릭스의 손끝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엘리제는 고기를 꺼내 잠시 쉬게 두었다. 그 사이 구운 채소와 허브, 소금을 으깨 간단한 소스를 만들었다. 물을 조금 넣고, 팬 바닥에 남은 갈색 향을 긁어냈다. 엘리제는 접시에 고기를 담았다. 고기는 얇게 썰었다. 결 반대 방향으로. 한입에 씹을 수 있게. 옆에는 구운 뿌리채소와 아주 적은 양의 허브 소스. 산미 열매 껍질을 가장자리에 얹어 무거운 맛을 깨우도록 했다. "끝났습니다." 정확히 이십 분이었다. *** 칼릭스는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화려하지 않았다. 황실 연회에서 보던 금박 장식도, 값비싼 향신료도, 은으로 만든 소스 그릇도 없었다. 낡은 접시 위에 얇게 썬 고기와 갈색 소스, 구운 채소가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냄새가 달랐다. 그는 냄새를 느낀다는 사실을 먼저 자각했다. 아주 희미하게. 구운 것. 따뜻한 것. 무언가가 코끝을 스쳤다. 칼릭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 엘리제는 포크를 들었다. "먼저 제가 먹겠습니다." 그녀는 고기 한 조각을 찍었다. 병사들이 숨을 죽였다. 칼릭스도 그녀를 보았다. 엘리제는 망설이지 않고 고기를 입에 넣었다. 씹었다. 삼켰다. "먹었습니다." 그녀는 포크를 내려놓지 않았다. "안 죽었고요." 칼릭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 공작님 차례입니다." 그는 포크를 보았다. 그리고 엘리제를 보았다. "네가 먹여라." 주방이 얼어붙었다. 병사 하나가 헛기침을 했고, 다른 하나는 눈을 피했다. 엘리제의 손도 순간 멈췄다. '이 공작, 진짜로 밀어붙일 셈이네.' 하지만 그녀는 곧 포크에 고기를 찍었다. 목숨이 걸려 있었다. 이 정도 모욕감은 삼켜야 한다. 아니, 삼키는 게 아니라 이용해야 한다. 그녀는 한 걸음 다가갔다. 칼릭스는 키가 컸다. 엘리제는 포크를 들어야 했다. 손목의 사슬이 작게 울렸다. 철그럭. 그 순간 칼릭스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차가운 손이었다. 손가락이 길고 단단했다. 전장의 검을 쥐던 손. 그는 엘리제의 손목을 세게 잡지는 않았지만, 피할 수 없을 만큼 분명하게 붙잡았다. "떨리는군." 엘리제는 그의 눈을 보았다. "사형 직전이라서요." "그런데 눈은 안 떨린다." "셰프는 접시 앞에서 눈 안 떱니다." 칼릭스의 눈동자가 아주 조금 흔들렸다. 그는 포크 끝의 고기보다, 그녀의 눈을 먼저 보았다. 엘리제는 손목을 빼지 않았다. "공작님." "말해라." "드실 겁니까, 아니면 제 손목 감상만 하실 겁니까?" 병사 하나가 말을 삼켰다. 칼릭스는 느리게 포크 쪽으로 고개를 내렸다. 그는 고기를 입에 넣었다. 엘리제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고기가 그의 입안에 들어갔다. 칼릭스는 씹었다. 처음엔 아무 변화가 없었다. 그는 여전히 차가운 얼굴이었다. 눈빛도, 입술도, 호흡도 그대로였다. 그러나 두 번째 씹는 순간. 그의 손끝이 굳었다. 엘리제의 손목을 붙잡고 있던 손에 미세하게 힘이 들어갔다. 세 번째. 칼릭스의 목울대가 천천히 움직였다. 그는 삼켰다. 엘리제는 호흡을 붙들었다. 칼릭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무 오래 침묵했다. '실패?'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런데 칼릭스의 눈동자가 달라졌다. 텅 비어 있던 겨울 호수에, 아주 얇은 균열이 생긴 듯했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뜨겁다." 엘리제는 눈을 크게 떴다. "뭐가요?" "혀가." 그의 목소리는 낮고 낯설었다. 마치 스스로도 자기 말을 믿지 못하는 사람처럼. "내 혀가 뜨겁다." 주방 안의 모든 사람이 숨을 죽였다. 칼릭스는 손을 놓지 않았다. 그는 엘리제를 보았다. 아니, 처음으로 그녀를 본 것처럼 보았다. "이건…… 고기인가." 엘리제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것을 느꼈다. 성공했다. 완벽한 접시는 아니었지만, 충분했다. "네. 공작님이 알던 고기는 아니겠지만요." 칼릭스는 다시 접시를 보았다. "한 조각 더." 엘리제는 포크를 들었다. 이번에는 그의 손이 그녀의 손목을 잡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그녀의 손을 따라 움직였다. 엘리제가 두 번째 조각을 먹이자, 칼릭스는 천천히 씹었다. 그는 이번에는 눈을 감지 않았다. 계속 엘리제를 보았다. "……네가 먼저 먹었을 때보다." "네?" "내가 먹었을 때 맛이 더 선명하다." 엘리제는 바로 받아치지 못했다. "그건 기분 탓입니다." 칼릭스의 눈이 그녀에게 고정됐다. "나는 십수 년 동안 기분이라는 것을 느낀 적이 없다." 차가운 말이었다. 그런데도 엘리제의 등줄기엔 뜨거운 감각이 지나갔다. 칼릭스가 말했다. "죽이지 마라." 병사들이 고개를 들었다. 공작의 명령이었다. "엘리제 폰 라벤느의 처형을 유예한다." 엘리제의 다리에 힘이 풀릴 뻔했다. 그러나 그녀는 버텼다. 칼릭스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는 이제부터 내 성으로 간다." "공작님, 방금 저는 목숨을 건졌을 뿐인데요." "그래서 데려가는 것이다." "무슨 뜻입니까?" 칼릭스는 접시 위의 남은 고기를 보았다. 그리고 다시 엘리제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아직 다정함이 없었다. 대신 분명한 갈증이 생겨 있었다. 맛을 더 알고 싶다는 욕망. 그 맛을 깨운 사람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욕망. "내 미각을 되찾게 해라." 그가 말했다. "그럴 때까지 네 목숨은 내 것이다." 엘리제는 그를 바라보았다. 구원이라기엔 너무 위험한 말이었다. 하지만 처형장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녀는 천천히 웃었다. "좋습니다." "쉽게 받아들이는군." "살아남았으니까요." 그녀는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공작님." "말해라." "제 요리는 비쌉니다." 칼릭스의 입가가 아주 희미하게 움직였다. "목숨값보다?" "그 이상이 될 겁니다." 칼릭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그녀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엘리제는 그 시선을 느끼며 속으로 생각했다. '일단 살았다.' 하지만 곧 다른 생각이 따라왔다. '문제는…… 내가 무슨 계약을 따내기 전에, 이 남자가 나를 자기 접시처럼 보고 있다는 거지.' 그녀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손목에 남은 그의 손가락 감각이 아직 식지 않았다.제국 북부의 거대한 설산을 집어삼킬 듯 무섭게 몰아치던 동토의 새벽바람이 마침내 잔인한 비명을 거두고 흔적도 없이 사그라들었다.블레이크 공작성의 가장 높은 탑 위로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자, 수십 년간 얼어붙어 있던 성벽의 성에들이 투명한 보석처럼 부서지며 눈부신 황금빛을 사방으로 반사해 내기 시작했다. 길고 길었던 황궁의 더러운 암투도, 마차 안과 귀빈실을 거쳐 이곳 공작가의 대침실까지 이어지던 파괴적이고도 농밀한 탐닉의 밤도 마침내 잿빛 안개 속으로 완전히 녹아내린, 지독하리만치 평화로운 아침이었다.그러나 오직 두 사람만의 숨소리와 맥박으로 가득 찬 공작의 대침실 내부만큼은 여전히 시간이 완전히 정지한 듯, 낮고 진득한 열기가 고스란히 정체되어 있었다.사방으로 어지럽게 흩어진 순백의 예복 실크 조각들과 뜯겨 나간 은색 단추들, 지난밤의 격렬했던 신체적 마찰을 증명하듯 기괴하게 뒤틀린 채 젖어 있는 침대 시트, 그리고 공간을 가득 메운 짙은 샌달우드 향과 달콤한 무화과 향의 잔향이 뇌리를 묵직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방 안의 밀도는 여전히 숨이 막힐 정도로 무거웠다.“으음…….”엘리제는 눈꺼풀을 서서히 들어 올리며 가녀린 신음을 입술 사이로 흘렸다.전신을 지독하게 난도질하는 듯한 뻐근한 통증이 척추 뼈마디 하나하나를 타고 무겁게 밀려왔다. 단 한 치의 자비도, 단 한 순간의 유예도 없이 그녀의 살결을 탐닉해 들어왔던 칼릭스의 잔인한 소유욕이 남긴 흔적이었다. 전생의 강서진으로서 그 어떤 혹독한 주방의 노동과 폭군 같은 선배들의 압박도 버텨냈던 그녀였지만, 모든 감각을 회복한 북부의 괴물이 밤새도록 쏟아부은 원초적인 집착을 받아내는 것은 차원이 다른 파멸적인 피로였다.그녀가 몸을 미세하게 움직이려 하자마자, 허리를 부서질 것처럼 움켜쥐고 있던 거대하고 단단한 팔뚝에 소름 끼칠 정도로 강한 악력이 다시금 들어왔다.“깨웠나.”낮고 진득하게 잠긴, 낮의 태양마저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서늘하고도 뜨거운 목소리가 엘리제의 뒷덜미를 거칠게 긁어내렸다.칼릭
수도에서 북부의 심장으로 이어지는 길고 긴 밤의 질주가 마침내 끝을 고했다.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블레이크 공작성의 거대한 대문이 육중한 쇳소리를 내며 열렸고, 두 사람을 태운 마차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마필들의 더운 숨결을 흩날리며 안뜰 정중앙에 멈춰 섰다. 북부의 한밤동을 지배하는 동토의 차가운 바람이 마차 외벽을 사정없이 때려대며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지만, 그 서늘한 냉기조차 마차 내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던 지독하고 끈적한 열기를 식히지는 못했다.달각.마차 문이 열리자마자 칼릭스는 무릎 위에 늘어져 있던 엘리제를 단 한 순간도 바닥에 디디게 하지 않은 채, 자신의 두꺼운 모피 망토로 그녀의 전신을 빈틈없이 감싸 안았다. 아침에 드레스룸에서 그토록 정성스럽게 채웠던 미드나잇 블루 빛의 실크 예복은 이미 마차 안에서 벌어진 난폭한 탐닉으로 인해 단추가 전부 뜯겨 나가고 옷깃이 처참하게 찢어진 상태였다. 다른 하녀들이나 성 안의 기사들에게 아내의 노출된 살결과 자신이 새겨놓은 붉은 낙인들을 단 한 자락도 보이지 않겠다는 괴물의 철저한 구속이자 독점욕이었다.“공작 전하를 뵙습니…….”성 문을 지키던 호위 기사들과 하녀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으나, 칼릭스는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성큼성큼 본관의 대리석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서슬 퍼런 살기와 제압감은 전장으로 향하는 총사령관의 그것보다 훨씬 더 서슬 퍼런 위압감을 품고 있었다. 엘리제는 그의 단단한 목덜미에 두 팔을 감아쥔 채, 모피 망토 안쪽의 은밀한 어둠 속에서 가쁜 숨을 골랐다. 셔츠 자락 틈새로 느껴지는 그의 우람한 가슴팍 근육은 여전히 진정되지 않은 채 터질 것처럼 거칠게 맥박치고 있었다.복도를 지나 오직 두 사람만을 위해 허락된 성의 가장 깊숙한 안동, 공작의 대침실 문이 열렸다. 칼릭스는 발끝으로 문을 부서질 것처럼 거칠게 닫아걸었다.쿵! 철컥.육중한 참나무 문이 닫히고 묵직한 금속 걸쇠가 완전히 잠기는 순간, 엘리제는 비로소 자신들이
황제와의 숨이 막힐 듯한 공식 오찬이 마침내 마침표를 찍고, 황궁 안동의 깊숙하고 창백한 대리석 통로를 지나 마침내 블레이크 공작가의 대형 마차 문이 닫히는 순간.장내를 압박하던 화려하고 가식적인 금빛 세계는 완벽하게 차단되었고, 마차 내부에는 오직 두 사람만이 호흡할 수 있는 지독하리만치 은밀하고 거대한 어둠의 장막이 내려앉았다. 마차 바퀴가 수도의 거친 돌길을 짓이기며 움직이기 시작하는 둔탁한 소음이 정적을 흔들었으나, 그 소음마저 마차 안을 가득 채운 칼릭스의 파괴적인 살기와 소유욕 앞에서는 한 자락의 먼지처럼 흩어질 뿐이었다.철컥, 철컥.마차가 코너를 돌 때마다 육중한 차체가 크게 흔들렸지만, 칼릭스는 엘리제를 자신의 무릎 위에 앉힌 채 그녀의 허리를 부서질 것처럼 강하게 껴안고 있었다.그는 오찬이 진행되는 내내, 그리고 황제가 엘리제에게 호의 어린 손을 내밀며 “조련”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던 그 찰나의 순간부터 이성의 끈이 완전히 끊어져 있었다. 완벽하게 재단된 검은색 제복 상의 너머로 느껴지는 그의 심장 박동은 평소의 침착함을 완전히 잃은 채, 폭주하는 마법 엔진처럼 거칠고 폭력적으로 맥박치고 있었다. 그 무자비한 박동이 엘리제의 둔부를 통해 전신으로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칼릭스…… 하아, 손아귀 힘이 너무 강해요. 허리가 부러질 것 같아요.”엘리제가 그의 단단하고 넓은 어깨에 이마를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속삭였다.그녀가 입은 미드나잇 블루 빛의 실크 드레스는 목끝까지 촘촘하게 은색 단추가 채워져 있어 레이스가 턱밑까지 감싸 안고 있었지만, 남자의 거친 호흡이 깃을 타고 내려올 때마다 맨살 위로 소름 끼치는 열기가 전해졌다. 목을 죄어오는 굵은 은색 사슬과 핏빛 루비 초커가 그의 악력에 들려 올라가며 엘리제의 가느다란 목선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가죽 장갑을 벗어 던진 그의 맨손가락이 초커의 날카로운 테두리를 따라 피부를 파고들 듯 강하게 짓눌렀다.“황제의 눈빛이 네 쇄골 라인이 시작되는 그 깃 끝에 머물렀다.”칼릭스의
황궁의 정오를 알리는 거대한 청동 종소리가 제국의 심장부를 무겁게 울렸다.블레이크 공작 부부를 마중하기 위해 열린 황실 안동의 귀빈 대기실은 대연회장과는 또 다른 의미로 숨이 막힐 듯한 위압감이 감돌고 있었다. 사방의 벽면을 가득 채운 순금 문양의 휘장들과 화려한 크리스탈 샹들리에에서 쏟아지는 백색의 불빛은 지나치게 사치스러웠고, 바닥에 깔린 붉은 벨벳 카펫은 발소리 하나조차 완벽하게 집어삼키며 은밀한 정적을 자아내고 있었다.“공작부인 전하, 예복의 선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지 않았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드리겠습니다.”황실 최고위 하녀장이 조심스러운 손길로 엘리제의 드레스 자락을 매만졌다.칼릭스가 직접 골라 입힌 미드나잇 블루 빛의 실크 예복은 레이스가 목끝까지 촘촘하게 짜여 있어 단 한 치의 살결도 밖으로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히려 그 완벽한 폐쇄성이 엘리제의 가느다란 목선과 유려하게 떨어지는 골반의 곡선을 노골적으로 부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목을 옥죄듯 감싸 안은 블레이크 가문의 핏빛 루비 초커는, 그녀가 제국의 구원자이기 전에 오직 한 사내의 지독한 소유물임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사슬과 같았다.엘리제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얕은 숨을 내쉬었다.단추를 목끝까지 채운 드레스는 주방의 화구 열기를 견디던 전생의 가운보다 훨씬 더 답답하게 심장을 조여왔다. 하지만 그 답답함의 진짜 원인은 옷이 아니었다. 드레스룸에서부터 마차, 그리고 이 황궁의 복도를 걸어오는 내내 자신의 허리를 부서질 것처럼 움켜쥔 채 단 한 순간도 시선을 떼지 않던 남자의 파괴적인 독점욕 때문이었다.스윽.그때, 대기실 안쪽의 대리석 기둥 뒤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움직였다.완벽하게 재단된 검은색 황실 제복을 입은 칼릭스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제국의 검이자 북부의 지배자다운 오만한 아우라가 공간을 단숨에 압도하자, 황실 하녀들은 공작의 서슬 퍼런 기운에 질려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고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칼릭스의 투명하면서도 깊은 보랏빛 눈동자가 엘리제에게로 향했
황궁 귀빈실의 높은 창문 틈새로 아침 햇살이 가늘고 길게 조각되어 쏟아졌다.수도 위를 수놓은 창백한 새벽안개가 황금빛 태양에 녹아내리는 시간이었지만, 두꺼운 암막 벨벳 커튼이 드리워진 침실 내부만큼은 여전히 어둡고 진득한 밤의 열기가 고스란히 정체되어 있었다. 사방으로 흩어진 순백의 실크 드레스 자락, 바닥에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공작의 제복 훈장들, 그리고 벽난로 안에서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장작의 매캐한 잔향이 방 안의 밀도를 숨이 막힐 정도로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으음…….”엘리제는 얕은 신음을 삼키며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전신을 지독하게 난도질하는 듯한 뻐근한 통증이 척추 마디마디를 타고 밀려왔다. 단 한 치의 자비도 없이 그녀를 몰아붙였던 지난밤의 흔적이었다. 온전한 감각을 되찾은 괴물이 십수 년의 굶주림을 보상받겠다는 듯 탐욕스럽게 탐닉해 온 결과물은 엘리제의 하얀 피부 위로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었다.그녀가 몸을 미세하게 뒤틀자마자, 허리를 빈틈없이 옭아매고 있던 거대하고 단단한 팔뚝에 더욱 강한 힘이 들어갔다.“더 누워 있어라.”낮고 잠긴, 짐승의 르누아르 같은 목소리가 엘리제의 귓가를 긁어내렸다.칼릭스는 언제나처럼 소리도 없이 눈을 뜬 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헝클어진 칠흑 같은 머리카락이 그의 이마 위로 흘러내려 야성적인 분위기를 더했고, 실크 이불 밖으로 드러난 그의 넓고 탄탄한 어깨와 흉판에는 엘리제가 쾌감에 겨워 가늘게 긁어내린 손톱자락 자국이 붉게 선을 그리고 있었다.거울처럼 투명해진 그의 보랏빛 눈동자는 오직 엘리제 한 사람만을 담은 채 기묘한 포만감과, 여전히 가시지 않은 지독한 독점욕으로 일렁였다.“칼릭스, 날이 벌써 다 밝았어요. 황실 시종들이나 하녀들이 방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텐데…… 이 팔 좀 놓아주세요.”엘리제가 그의 가슴팍을 밀어내려 손을 올렸으나, 칼릭스는 오히려 그녀의 손가락을 하나씩 붙잡아 자신의 입술 앞으로 가져갔다.검은 장갑을 벗어 던진 그의 맨손 지문이 엘리제의 가느다란 손
황궁의 온실 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는 창백한 달빛은 두 사람의 엉킨 그림자를 은밀하게 비추고 있었다.온실 안을 가득 채운 진득한 장미 향은 엘리제의 가쁜 숨결과 뒤섞여 기묘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차가운 대리석 돌벽에 등이 밀착된 엘리제는 전면에서 저돌적으로 밀려드는 칼릭스의 거대한 신체를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었다.칼릭스는 그녀의 두 손목을 조리대 벽 위로 거칠게 잡아 내리누른 채, 마치 사냥감을 온전히 가두어둔 맹수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칼릭스…… 하아, 사람들이 언제 이곳으로 들어올지 몰라요. 제발 이 손 좀……”엘리제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다그치려 했으나, 칼릭스의 투명한 눈동자에 서린 열망은 이미 이성의 끈을 아슬아슬하게 잡아당기고 있었다.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더 깊숙이 숙여, 엘리제의 새하얀 목덜미와 핏빛 루비 초커가 닿아 있는 그 예민한 경계선을 사정없이 입술로 핥아 내렸다. 쪽, 소리와 함께 질척한 점막의 마찰음이 온실의 정적을 집요하게 깨부수었다.“흐읏……! 아, 칼릭스……!”엘리제의 입술 사이로 참지 못한 신음이 튀어 나왔다. 거칠게 살을 파고드는 남자의 맨손 악력과, 전신을 불덩이처럼 달구는 배덕감이 그녀의 척추 뼈마디를 타고 뇌수까지 일직선으로 치솟아 올랐다.모든 미각과 감각을 회복한 칼릭스에게 엘리제라는 존재는 이제 단순히 맛을 느끼게 해주는 도구가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원색을 뛰어넘어, 자신의 피와 살을 통째로 지배하는 지독한 마약이자 유일한 구원이었다.칼릭스는 엄지손가락으로 엘리제의 붉게 퉁퉁 부어오른 입술 점막을 강하게 비벼대며, 가쁜 숨을 그녀의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말했을 텐데, 엘리제. 세상이 선명해질수록 내 식욕은 너 하나만을 향해 폭주한다고. 저 연회장에 서 있는 천박한 놈들이 네 어깨와 등을 바라보는 그 짧은 순간 동안, 나는 제국 전체를 불태워버리고 싶었다.”그의 목소리는 짐승의 낮은 으르렁거림처럼 뇌리를 긁어내렸다. 칼릭스는 결코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듯, 엘리제의 허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