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진은 냄새로 시간을 잴 수 있었다.새벽 네 시의 주방에는 식은 금속 냄새가 났다. 오븐이 예열되기 전의 차가운 철판, 전날 밤 마지막으로 닦아낸 조리대, 아직 칼집에 잠든 셰프 나이프. 다섯 시가 되면 버터가 녹고, 여섯 시가 되면 커피와 빵 껍질 냄새가 섞였다.그녀는 그런 식으로 살아왔다.시간을 시계보다 냄새로 먼저 읽었다.그러나 지금 코끝을 친 건 곰팡이와 피비린내였다.'……내 주방 냄새가 아닌데.'서진은 눈을 떴다.차가운 돌바닥이 뺨에 닿아 있었다. 손목에는 쇠사슬이 채워져 있었고, 발목은 얼어붙은 듯 무거웠다. 천장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돌 위에 부딪혔다.똑.똑.감옥이었다.그것도 누군가를 살려두기 위한 감옥이 아니라, 죽이기 전까지 보관하는 감옥.서진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 했다. 순간 머리가 깨질 듯 아팠고, 시야가 흔들렸다. 손끝을 보자 낯선 손이 보였다. 길고 흰 손가락, 귀족 영애처럼 관리된 손톱, 하지만 손바닥에는 희미한 상처가 있었다.'내 손이 아니야.'그녀는 짧게 숨을 들이켰다.곰팡이와 피 냄새 아래로, 낯선 향수가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서진은 천천히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손가락 사이로 은빛 금발이 흘러내렸다."말도 안 돼."목소리도 낯설었다.가늘고, 조금 쉬었고, 어딘가 귀족적인 억양이 남아 있었다.그때 감옥 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철컥.간수가 문을 열었다. 그의 손에는 양피지 두루마리가 있었다. 그는 엘리제를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깨어났군, 엘리제 폰 라벤느."그 이름을 듣는 순간, 서진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끊어지듯 떠올랐다.엘리제 폰 라벤느.로맨스 판타지 소설 속 악녀.주인공을 질투하고, 남주인공 칼릭스 블레이크 공작의 만찬에 독을 탔다가 1화도 넘기지 못하고 처형당하는 조연 악녀.서진은 입술을 굳혔다.'나, 소설 속으로 들어온 거야?'간수는 두루마리를 펼쳤다."엘리제 폰 라벤느. 그대는 블레이크 공작 전하의 만찬에 독을 섞어 제국 중신을 살해하려 한 죄로, 한 시
Last Updated : 2026-08-15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