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공작가 주방 한쪽에 작은 시식대가 마련되었다.
원래는 향신료를 분류하던 낮은 탁자였다. 엘리제는 그 위를 깨끗이 닦고, 흰 천을 깔고, 작은 그릇들을 일렬로 놓았다. 꿀물, 구운 빵 조각, 말린 과일, 소금 한 알을 넣은 따뜻한 물, 산미 열매를 아주 약하게 우린 차. 첫 번째 미각 재활 수업. 주제는 단맛이었다. 칼릭스는 시식대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그는 전쟁 회의에 참석하듯 자세가 단정했다. 문제는 눈빛도 전쟁 회의 같다는 점이었다. 엘리제는 기록지를 펼치며 말했다. "공작님. 이건 전투가 아닙니다."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적진 들어가기 전 기사처럼 앉아 계십니까?" "처음 하는 일이라서." 그 대답이 너무 솔직해 엘리제는 잠시 말을 멈췄다. 처음 하는 일. 칼릭스에게 맛을 배우는 일은 정말 처음일지도 모른다. 어린아이도 아는 단맛을, 이 남자는 이제야 다시 배운다. 엘리제는 조금 부드럽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오늘은 어려운 거 안 해요." "단맛이 쉬운가." "대부분 사람에게는요." "나에게는 아닐 수도 있다." "그럼 더 천천히 하면 됩니다." 칼릭스의 시선이 그녀에게 닿았다. "너는 이상하군." "갑자기요?" "모두 내게 빠른 결과를 원했다. 의관도, 황실도, 전장의 지휘관도." "저는 셰프니까요." 엘리제는 꿀물 그릇을 들어 올렸다. "맛은 밀어붙인다고 빨리 열리는 게 아닙니다. 센 불이 항상 답은 아니니까요." "약한 불로도 고기를 익힌다고 했지." "네. 사람도 비슷합니다." 칼릭스는 그 말을 오래 들었다. 사람도 약한 불로 익힌다. 이상한 표현인데, 이상하게 불쾌하지 않았다. *** 계약 조항대로 엘리제가 먼저 먹었다. 그녀는 꿀물을 한 모금 마시고, 혀끝으로 맛을 확인했다. 꿀은 품질이 좋았다. 다만 향이 조금 거칠었다. 북부 산꿀 특유의 묵직한 꽃향이 있었다. "독 없습니다." "그건 이제 안다." "그럼 왜 계속 보십니까?" "네가 먹을 때, 맛이 시작되는 것 같아서." 엘리제의 손이 멈췄다. 이 남자는 이런 말을 왜 늘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걸까. 문제는 그의 얼굴이 정말 아무렇지 않다는 점이었다. 칼릭스는 자신이 방금 한 말이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모르는 듯했다. 엘리제는 애써 기록지로 시선을 내렸다. "그건 재활 초기의 착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착각도 기록하나?" "필요하면요." "그럼 기록해라." "뭘요?" "엘리제가 먹을 때 맛이 시작되는 느낌." 엘리제는 펜 끝을 멈췄다. "그 문장을 그대로요?" "그렇다." "나중에 의관이 보면 공작님 상태를 걱정할 겁니다." "걱정하게 두지." 엘리제는 결국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기록지 한쪽에 아주 작게 적었다. 엘리제가 먼저 시식할 때 반응 기대감 증가. 칼릭스가 물었다. "기록했나." "네. 아주 의학적으로 순화해서요." "마음에 들지 않는다." "기록 담당은 저입니다." 칼릭스는 잠시 그녀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한다." 엘리제는 숟가락을 내밀었다. "이제 드세요." 칼릭스는 꿀물을 한 모금 마셨다. 아무 반응도 없는 듯했다. 그러나 엘리제는 그의 손끝을 보았다. 손가락이 그릇 가장자리를 아주 살짝 눌렀다. 눈동자는 고정되어 있었지만, 호흡이 한 박자 늦게 나왔다. "어때요?" "따뜻하다." "온도 말고 맛." 칼릭스는 잠시 침묵했다. "부드럽다." "좋아요. 더 구체적으로." "목을 누르지 않는다." "그럼 불쾌하지 않습니까?" "불쾌하지 않다." 엘리제는 기록했다. 단맛 반응. 따뜻함, 부드러움, 불쾌감 없음. "단맛은 보통 안도감과 연결되기도 합니다." "안도." "긴장한 몸이 조금 풀리는 느낌이요." 칼릭스는 다시 꿀물을 보았다. "이 감각이 안도인가."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천천히 말했다. "너와 있을 때도 가끔 이렇다." 엘리제의 펜이 종이 위에서 멈췄다. 조용했다. 너무 조용했다. 화구 위의 물 끓는 소리마저 멀어지는 것 같았다. "……그건 단맛이 아니라 착각입니다." "그럼 착각도 맛이 있나?" 엘리제는 그를 쳐다봤다. 칼릭스는 정말로 알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다. 농담도 아니고, 유혹도 아니고, 계산도 아니다. 감정을 잃은 남자가 세상에서 처음 맛보는 감각을 하나씩 묻고 있을 뿐. 그런데 왜 대답하는 쪽의 심장이 이렇게 흔들리는지 알 수 없었다. "있을지도요." 엘리제는 겨우 답했다. "좋은 착각이라면요." 칼릭스는 그 말을 기억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다음은 말린 과일이었다. 이 세계의 말린 과일은 엘리제 기준으로 지나치게 거칠었다. 당도 조절이 되지 않아 어떤 것은 지나치게 달고, 어떤 것은 떫었다. 그녀는 그중 가장 균형이 좋은 조각을 골라 먼저 먹었다. "이건 단맛이 좀 더 직접적입니다. 씹으면 천천히 올라와요." 칼릭스는 그녀의 손을 보고 있었다. 엘리제는 포크를 멈췄다. "직접 드실 수 있습니다." "계약서에는 네가 먼저 시식한다고 되어 있다." "제가 먼저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는 공작님이 드시는 거죠." 칼릭스는 아주 잠깐 침묵했다. "첫날에는 네가 먹여줬다." 엘리제는 사형장 옆 주방을 떠올렸다. 포크 끝의 고기. 손목을 붙잡던 차가운 손. "그건 특별한 상황이었습니다." "오늘도 처음 하는 일이다." "공작님." "말해라." "혹시 먹여주는 것과 맛이 관련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확인 중이다." 엘리제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미각 재활이라는 명목이 이렇게 위험한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그녀는 결국 과일 조각을 작은 포크에 찍었다. "이번만입니다." 칼릭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아주 조용히 그녀의 손을 보았다. 엘리제가 포크를 내밀자, 그는 고개를 조금 숙였다. 거리는 가까워졌다. 촛불이 그의 속눈썹 아래 그림자를 만들었다. 무표정한 얼굴인데도 이상하게 숨이 막혔다. 칼릭스가 과일을 먹었다. 엘리제는 얼른 손을 거두었다. 그런데 칼릭스가 말했다. "이쪽이 더 선명하다." "무엇이요?" "단맛." 엘리제는 기록지에 펜을 가져갔다가 멈췄다. "그건……." "기록해라." "싫습니다." "왜." "그걸 기록하면 재활 기록이 아니라 이상한 관찰 일지가 됩니다." "그럼 네 방식대로 남겨두지." "그것도 하지 마세요." 칼릭스는 잠시 생각했다. "어렵군." "뭐가요?" "네가 허락하는 것과 허락하지 않는 것의 기준." 엘리제는 바로 받아치지 못했다. 그의 말투가 너무 진지해서 웃을 수도 없었다. "그건 사람마다 배워야 합니다." "그럼 가르쳐라." "미각 수업에 예절 수업까지요?" "필요하다면." 엘리제는 결국 웃었다. "공작님, 저는 셰프입니다."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자꾸 다른 수업까지 추가하십니까?" 칼릭스는 말없이 그녀를 보았다. "네가 아니면 배울 사람이 없다." 그 한마디에 엘리제의 웃음이 멈췄다. 이 남자는 정말 모른다. 자신이 어떤 말을 하는지. 아니, 어쩌면 모르기 때문에 더 위험했다. 계산된 다정함이 아니라, 배운 적 없는 감정이 그대로 나온 말이니까. 엘리제는 펜으로 기록지 모서리를 눌렀다. "단맛 반응, 증가." 그녀는 그렇게만 적었다. 그 이상은 지금 기록할 수 없었다. *** 수업이 끝날 무렵, 칼릭스는 네 가지 단맛을 구분했다. 따뜻한 단맛. 씹히는 단맛. 목을 덮는 단맛. 그리고 불쾌하지 않은 단맛. 완벽하진 않았지만, 충분한 첫걸음이었다. 엘리제는 기록지를 정리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칼릭스가 물었다. "내일은." "짠맛." "짠맛은 무엇과 연결되지?" "분노, 생존, 체액, 기억…… 여러 가지요." "분노." 칼릭스는 그 단어를 천천히 말했다. "그건 조금 안다." 엘리제는 고개를 들었다. "정말요?" "전장에서 느꼈다고 배웠다." "배웠다?" "그때 느끼는 열을 사람들이 분노라 불렀다." 엘리제는 잠시 침묵했다. 그는 감정을 직접 느낀 것이 아니라, 남들이 붙인 이름으로 배워왔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 마음을 무겁게 했다. "공작님." "말해라." "앞으로는 직접 느끼는 걸로 이름 붙이면 됩니다." "네가 붙여주나." "제가 힌트는 드리죠." "좋다." 칼릭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 엘리제의 손끝을 보았다. 어제 감아준 천이 조금 풀려 있었다. 그가 다가와 말없이 매듭을 다시 묶었다. 엘리제는 굳었다. "공작님, 이제 손수건 매듭도 배우십니까?" "네 손이 다치면 곤란하다고 했다." "여기엔 아무도 없는데요." "그래서 더 문제인가?" 엘리제는 대답하지 못했다. 칼릭스의 손끝은 차가웠다. 하지만 천을 묶는 동작은 조심스러웠다. 서툴지만, 조심스러웠다. 엘리제는 문득 자신이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손을 맡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전생의 주방에서 그녀의 손은 도구였다. 칼을 쥐고, 팬을 들고, 접시를 완성하는 도구. 누군가가 그 손을 멈추게 하거나, 치료하거나, 아프지 않냐고 묻는 일은 드물었다. 그런데 이 남자는 말했다. 네 손이 다치면 곤란하다고. 이기적인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기심 안에 아주 작은 걱정이 섞여 있다면. 엘리제는 그걸 모른 척하기 어려웠다. 칼릭스가 매듭을 끝냈다. "됐다." "감사합니다." 그 말이 나오자 칼릭스가 그녀를 보았다. "그 말은 좋군." "감사하다는 말이요?" "그래." "공작님은 정말 이상한 걸 좋아하시네요." "네가 말하면 더 좋다." 엘리제는 급히 기록지를 품에 안았다. "수업 끝났습니다." "도망치는군." "전략적 후퇴입니다." 칼릭스의 입가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그가 웃은 건지, 엘리제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주방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기사 하나가 문을 두드렸다. "전하." 칼릭스의 표정이 다시 차가워졌다. "무슨 일이지." "황실에서 전갈이 왔습니다." 엘리제의 손이 멈췄다. 기사는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에는 황실의 금문장이 찍혀 있었다. 칼릭스가 열어 읽었다. 그의 눈빛이 조금 더 깊어졌다. "황실 미식회." 엘리제가 고개를 들었다. "벌써요?" 칼릭스는 봉투를 그녀에게 건넸다. "블레이크 공작가 대표 셰프로 엘리제 폰 라벤느를 초청한다." 초청장이라고 쓰였지만, 명령이었다. 엘리제는 황금 문장을 내려다보았다. 단맛 수업의 온기는 순식간에 식었다. 황실. 그곳에서 진짜 식탁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칼릭스가 낮게 말했다. "위험하다." 엘리제는 초청장을 접었다. "알아요." "그런데 눈이 흔들리지 않는군." "셰프는 접시 앞에서 눈 안 떤다고 했잖아요." "이건 접시가 아니다." 엘리제는 웃었다. "아니요." 그녀의 눈빛이 선명하게 빛났다. "황실 전체가 아주 큰 접시죠." 칼릭스는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 여자를 보내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 감정의 이름도, 아직 그는 알지 못했다.제국 북부의 거대한 설산을 집어삼킬 듯 무섭게 몰아치던 동토의 새벽바람이 마침내 잔인한 비명을 거두고 흔적도 없이 사그라들었다.블레이크 공작성의 가장 높은 탑 위로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자, 수십 년간 얼어붙어 있던 성벽의 성에들이 투명한 보석처럼 부서지며 눈부신 황금빛을 사방으로 반사해 내기 시작했다. 길고 길었던 황궁의 더러운 암투도, 마차 안과 귀빈실을 거쳐 이곳 공작가의 대침실까지 이어지던 파괴적이고도 농밀한 탐닉의 밤도 마침내 잿빛 안개 속으로 완전히 녹아내린, 지독하리만치 평화로운 아침이었다.그러나 오직 두 사람만의 숨소리와 맥박으로 가득 찬 공작의 대침실 내부만큼은 여전히 시간이 완전히 정지한 듯, 낮고 진득한 열기가 고스란히 정체되어 있었다.사방으로 어지럽게 흩어진 순백의 예복 실크 조각들과 뜯겨 나간 은색 단추들, 지난밤의 격렬했던 신체적 마찰을 증명하듯 기괴하게 뒤틀린 채 젖어 있는 침대 시트, 그리고 공간을 가득 메운 짙은 샌달우드 향과 달콤한 무화과 향의 잔향이 뇌리를 묵직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방 안의 밀도는 여전히 숨이 막힐 정도로 무거웠다.“으음…….”엘리제는 눈꺼풀을 서서히 들어 올리며 가녀린 신음을 입술 사이로 흘렸다.전신을 지독하게 난도질하는 듯한 뻐근한 통증이 척추 뼈마디 하나하나를 타고 무겁게 밀려왔다. 단 한 치의 자비도, 단 한 순간의 유예도 없이 그녀의 살결을 탐닉해 들어왔던 칼릭스의 잔인한 소유욕이 남긴 흔적이었다. 전생의 강서진으로서 그 어떤 혹독한 주방의 노동과 폭군 같은 선배들의 압박도 버텨냈던 그녀였지만, 모든 감각을 회복한 북부의 괴물이 밤새도록 쏟아부은 원초적인 집착을 받아내는 것은 차원이 다른 파멸적인 피로였다.그녀가 몸을 미세하게 움직이려 하자마자, 허리를 부서질 것처럼 움켜쥐고 있던 거대하고 단단한 팔뚝에 소름 끼칠 정도로 강한 악력이 다시금 들어왔다.“깨웠나.”낮고 진득하게 잠긴, 낮의 태양마저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서늘하고도 뜨거운 목소리가 엘리제의 뒷덜미를 거칠게 긁어내렸다.칼릭
수도에서 북부의 심장으로 이어지는 길고 긴 밤의 질주가 마침내 끝을 고했다.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블레이크 공작성의 거대한 대문이 육중한 쇳소리를 내며 열렸고, 두 사람을 태운 마차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마필들의 더운 숨결을 흩날리며 안뜰 정중앙에 멈춰 섰다. 북부의 한밤동을 지배하는 동토의 차가운 바람이 마차 외벽을 사정없이 때려대며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지만, 그 서늘한 냉기조차 마차 내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던 지독하고 끈적한 열기를 식히지는 못했다.달각.마차 문이 열리자마자 칼릭스는 무릎 위에 늘어져 있던 엘리제를 단 한 순간도 바닥에 디디게 하지 않은 채, 자신의 두꺼운 모피 망토로 그녀의 전신을 빈틈없이 감싸 안았다. 아침에 드레스룸에서 그토록 정성스럽게 채웠던 미드나잇 블루 빛의 실크 예복은 이미 마차 안에서 벌어진 난폭한 탐닉으로 인해 단추가 전부 뜯겨 나가고 옷깃이 처참하게 찢어진 상태였다. 다른 하녀들이나 성 안의 기사들에게 아내의 노출된 살결과 자신이 새겨놓은 붉은 낙인들을 단 한 자락도 보이지 않겠다는 괴물의 철저한 구속이자 독점욕이었다.“공작 전하를 뵙습니…….”성 문을 지키던 호위 기사들과 하녀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으나, 칼릭스는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성큼성큼 본관의 대리석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서슬 퍼런 살기와 제압감은 전장으로 향하는 총사령관의 그것보다 훨씬 더 서슬 퍼런 위압감을 품고 있었다. 엘리제는 그의 단단한 목덜미에 두 팔을 감아쥔 채, 모피 망토 안쪽의 은밀한 어둠 속에서 가쁜 숨을 골랐다. 셔츠 자락 틈새로 느껴지는 그의 우람한 가슴팍 근육은 여전히 진정되지 않은 채 터질 것처럼 거칠게 맥박치고 있었다.복도를 지나 오직 두 사람만을 위해 허락된 성의 가장 깊숙한 안동, 공작의 대침실 문이 열렸다. 칼릭스는 발끝으로 문을 부서질 것처럼 거칠게 닫아걸었다.쿵! 철컥.육중한 참나무 문이 닫히고 묵직한 금속 걸쇠가 완전히 잠기는 순간, 엘리제는 비로소 자신들이
황제와의 숨이 막힐 듯한 공식 오찬이 마침내 마침표를 찍고, 황궁 안동의 깊숙하고 창백한 대리석 통로를 지나 마침내 블레이크 공작가의 대형 마차 문이 닫히는 순간.장내를 압박하던 화려하고 가식적인 금빛 세계는 완벽하게 차단되었고, 마차 내부에는 오직 두 사람만이 호흡할 수 있는 지독하리만치 은밀하고 거대한 어둠의 장막이 내려앉았다. 마차 바퀴가 수도의 거친 돌길을 짓이기며 움직이기 시작하는 둔탁한 소음이 정적을 흔들었으나, 그 소음마저 마차 안을 가득 채운 칼릭스의 파괴적인 살기와 소유욕 앞에서는 한 자락의 먼지처럼 흩어질 뿐이었다.철컥, 철컥.마차가 코너를 돌 때마다 육중한 차체가 크게 흔들렸지만, 칼릭스는 엘리제를 자신의 무릎 위에 앉힌 채 그녀의 허리를 부서질 것처럼 강하게 껴안고 있었다.그는 오찬이 진행되는 내내, 그리고 황제가 엘리제에게 호의 어린 손을 내밀며 “조련”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던 그 찰나의 순간부터 이성의 끈이 완전히 끊어져 있었다. 완벽하게 재단된 검은색 제복 상의 너머로 느껴지는 그의 심장 박동은 평소의 침착함을 완전히 잃은 채, 폭주하는 마법 엔진처럼 거칠고 폭력적으로 맥박치고 있었다. 그 무자비한 박동이 엘리제의 둔부를 통해 전신으로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칼릭스…… 하아, 손아귀 힘이 너무 강해요. 허리가 부러질 것 같아요.”엘리제가 그의 단단하고 넓은 어깨에 이마를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속삭였다.그녀가 입은 미드나잇 블루 빛의 실크 드레스는 목끝까지 촘촘하게 은색 단추가 채워져 있어 레이스가 턱밑까지 감싸 안고 있었지만, 남자의 거친 호흡이 깃을 타고 내려올 때마다 맨살 위로 소름 끼치는 열기가 전해졌다. 목을 죄어오는 굵은 은색 사슬과 핏빛 루비 초커가 그의 악력에 들려 올라가며 엘리제의 가느다란 목선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가죽 장갑을 벗어 던진 그의 맨손가락이 초커의 날카로운 테두리를 따라 피부를 파고들 듯 강하게 짓눌렀다.“황제의 눈빛이 네 쇄골 라인이 시작되는 그 깃 끝에 머물렀다.”칼릭스의
황궁의 정오를 알리는 거대한 청동 종소리가 제국의 심장부를 무겁게 울렸다.블레이크 공작 부부를 마중하기 위해 열린 황실 안동의 귀빈 대기실은 대연회장과는 또 다른 의미로 숨이 막힐 듯한 위압감이 감돌고 있었다. 사방의 벽면을 가득 채운 순금 문양의 휘장들과 화려한 크리스탈 샹들리에에서 쏟아지는 백색의 불빛은 지나치게 사치스러웠고, 바닥에 깔린 붉은 벨벳 카펫은 발소리 하나조차 완벽하게 집어삼키며 은밀한 정적을 자아내고 있었다.“공작부인 전하, 예복의 선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지 않았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드리겠습니다.”황실 최고위 하녀장이 조심스러운 손길로 엘리제의 드레스 자락을 매만졌다.칼릭스가 직접 골라 입힌 미드나잇 블루 빛의 실크 예복은 레이스가 목끝까지 촘촘하게 짜여 있어 단 한 치의 살결도 밖으로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히려 그 완벽한 폐쇄성이 엘리제의 가느다란 목선과 유려하게 떨어지는 골반의 곡선을 노골적으로 부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목을 옥죄듯 감싸 안은 블레이크 가문의 핏빛 루비 초커는, 그녀가 제국의 구원자이기 전에 오직 한 사내의 지독한 소유물임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사슬과 같았다.엘리제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얕은 숨을 내쉬었다.단추를 목끝까지 채운 드레스는 주방의 화구 열기를 견디던 전생의 가운보다 훨씬 더 답답하게 심장을 조여왔다. 하지만 그 답답함의 진짜 원인은 옷이 아니었다. 드레스룸에서부터 마차, 그리고 이 황궁의 복도를 걸어오는 내내 자신의 허리를 부서질 것처럼 움켜쥔 채 단 한 순간도 시선을 떼지 않던 남자의 파괴적인 독점욕 때문이었다.스윽.그때, 대기실 안쪽의 대리석 기둥 뒤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움직였다.완벽하게 재단된 검은색 황실 제복을 입은 칼릭스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제국의 검이자 북부의 지배자다운 오만한 아우라가 공간을 단숨에 압도하자, 황실 하녀들은 공작의 서슬 퍼런 기운에 질려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고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칼릭스의 투명하면서도 깊은 보랏빛 눈동자가 엘리제에게로 향했
황궁 귀빈실의 높은 창문 틈새로 아침 햇살이 가늘고 길게 조각되어 쏟아졌다.수도 위를 수놓은 창백한 새벽안개가 황금빛 태양에 녹아내리는 시간이었지만, 두꺼운 암막 벨벳 커튼이 드리워진 침실 내부만큼은 여전히 어둡고 진득한 밤의 열기가 고스란히 정체되어 있었다. 사방으로 흩어진 순백의 실크 드레스 자락, 바닥에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공작의 제복 훈장들, 그리고 벽난로 안에서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장작의 매캐한 잔향이 방 안의 밀도를 숨이 막힐 정도로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으음…….”엘리제는 얕은 신음을 삼키며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전신을 지독하게 난도질하는 듯한 뻐근한 통증이 척추 마디마디를 타고 밀려왔다. 단 한 치의 자비도 없이 그녀를 몰아붙였던 지난밤의 흔적이었다. 온전한 감각을 되찾은 괴물이 십수 년의 굶주림을 보상받겠다는 듯 탐욕스럽게 탐닉해 온 결과물은 엘리제의 하얀 피부 위로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었다.그녀가 몸을 미세하게 뒤틀자마자, 허리를 빈틈없이 옭아매고 있던 거대하고 단단한 팔뚝에 더욱 강한 힘이 들어갔다.“더 누워 있어라.”낮고 잠긴, 짐승의 르누아르 같은 목소리가 엘리제의 귓가를 긁어내렸다.칼릭스는 언제나처럼 소리도 없이 눈을 뜬 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헝클어진 칠흑 같은 머리카락이 그의 이마 위로 흘러내려 야성적인 분위기를 더했고, 실크 이불 밖으로 드러난 그의 넓고 탄탄한 어깨와 흉판에는 엘리제가 쾌감에 겨워 가늘게 긁어내린 손톱자락 자국이 붉게 선을 그리고 있었다.거울처럼 투명해진 그의 보랏빛 눈동자는 오직 엘리제 한 사람만을 담은 채 기묘한 포만감과, 여전히 가시지 않은 지독한 독점욕으로 일렁였다.“칼릭스, 날이 벌써 다 밝았어요. 황실 시종들이나 하녀들이 방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텐데…… 이 팔 좀 놓아주세요.”엘리제가 그의 가슴팍을 밀어내려 손을 올렸으나, 칼릭스는 오히려 그녀의 손가락을 하나씩 붙잡아 자신의 입술 앞으로 가져갔다.검은 장갑을 벗어 던진 그의 맨손 지문이 엘리제의 가느다란 손
황궁의 온실 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는 창백한 달빛은 두 사람의 엉킨 그림자를 은밀하게 비추고 있었다.온실 안을 가득 채운 진득한 장미 향은 엘리제의 가쁜 숨결과 뒤섞여 기묘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차가운 대리석 돌벽에 등이 밀착된 엘리제는 전면에서 저돌적으로 밀려드는 칼릭스의 거대한 신체를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었다.칼릭스는 그녀의 두 손목을 조리대 벽 위로 거칠게 잡아 내리누른 채, 마치 사냥감을 온전히 가두어둔 맹수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칼릭스…… 하아, 사람들이 언제 이곳으로 들어올지 몰라요. 제발 이 손 좀……”엘리제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다그치려 했으나, 칼릭스의 투명한 눈동자에 서린 열망은 이미 이성의 끈을 아슬아슬하게 잡아당기고 있었다.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더 깊숙이 숙여, 엘리제의 새하얀 목덜미와 핏빛 루비 초커가 닿아 있는 그 예민한 경계선을 사정없이 입술로 핥아 내렸다. 쪽, 소리와 함께 질척한 점막의 마찰음이 온실의 정적을 집요하게 깨부수었다.“흐읏……! 아, 칼릭스……!”엘리제의 입술 사이로 참지 못한 신음이 튀어 나왔다. 거칠게 살을 파고드는 남자의 맨손 악력과, 전신을 불덩이처럼 달구는 배덕감이 그녀의 척추 뼈마디를 타고 뇌수까지 일직선으로 치솟아 올랐다.모든 미각과 감각을 회복한 칼릭스에게 엘리제라는 존재는 이제 단순히 맛을 느끼게 해주는 도구가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원색을 뛰어넘어, 자신의 피와 살을 통째로 지배하는 지독한 마약이자 유일한 구원이었다.칼릭스는 엄지손가락으로 엘리제의 붉게 퉁퉁 부어오른 입술 점막을 강하게 비벼대며, 가쁜 숨을 그녀의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말했을 텐데, 엘리제. 세상이 선명해질수록 내 식욕은 너 하나만을 향해 폭주한다고. 저 연회장에 서 있는 천박한 놈들이 네 어깨와 등을 바라보는 그 짧은 순간 동안, 나는 제국 전체를 불태워버리고 싶었다.”그의 목소리는 짐승의 낮은 으르렁거림처럼 뇌리를 긁어내렸다. 칼릭스는 결코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듯, 엘리제의 허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