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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손을 보지 마라

مؤلف: 6jay
last update تاريخ النشر: 2026-08-15 09:31:28

새벽의 공작가 주방은 전쟁터에 가까웠다.

그러나 엘리제가 아는 좋은 전쟁터는 고함이 많은 곳이 아니었다. 동선이 정리된 곳. 손이 낭비되지 않는 곳. 누구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멈춰 서지 않는 곳.

그녀는 조리대 중앙에 서서 시간을 쪼갰다.

"달걀은 물 온도 유지. 끓이지 마세요."

"빵은 양면만 살짝. 태우면 버립니다."

"고기는 지금 굽지 마요. 손님 들어오기 10분 전."

"소스는 제가 봅니다. 아무도 건드리지 마세요."

견습들은 처음엔 우왕좌왕했지만, 곧 엘리제의 리듬에 맞춰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상할 만큼 명확한 지시였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한 접시를 위해 움직였다.

베른은 주방 한쪽에서 팔짱을 낀 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의심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의심 위로 다른 감정도 생기고 있었다.

인정하기 싫은 흥미.

엘리제는 그 시선을 알고도 신경 쓰지 않았다.

중요한 건 조식이었다.

귀족과 기사, 공작가 중신까지 총 50명.

그들에게 낼 메뉴는 세 가지였다.

부드럽게 익힌 달걀과 구운 빵, 산미를 살린 노른자 소스.

짧게 구운 고기와 뿌리채소.

그리고 맑은 보리 수프.

화려하진 않지만, 아침 식사로는 충분했다. 중요한 건 이 세계 사람들이 익숙하게 먹던 퍽퍽한 빵과 소금물 같은 수프를 뒤집는 것이었다.

엘리제는 소스를 잡았다.

버터는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다만 향이 무거웠다. 그녀는 산미 열매 껍질을 아주 조금 넣어 기름진 향을 들어 올렸다. 노른자는 따뜻한 물 위에서 천천히 풀었다. 불이 조금만 강하면 갈라진다.

'홀랜다즈라고 부르기엔 부족하지만.'

엘리제는 손목을 낮게 움직였다.

'그래도 이 세계 기준으로는 혁명이지.'

소스가 점점 윤기를 얻었다. 너무 되직하지 않게, 흐르지만 물 같지 않게. 숟가락을 들어 올리자 노란 소스가 얇은 리본처럼 떨어졌다.

마침내 향이 완성됐다.

버터의 고소함과 노른자의 부드러움, 산미의 선명한 끝이 한 번에 잡혔다.

엘리제는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주방은 역시 좋았다.

죽음의 냄새보다, 익어가는 냄새가 더 좋다.

***

식당 안의 귀족들은 별 기대가 없었다.

공작가 조식은 늘 단조로웠다. 단단한 빵, 지나치게 익힌 달걀, 짠 고기, 묽은 수프. 맛을 논하는 자리는 아니었다. 북부의 공작가답게 그저 힘을 채우는 식사였다.

그런데 오늘 접시가 달랐다.

하얀 접시 중앙에는 구운 빵 위에 부드럽게 익힌 달걀이 올라가 있었다. 그 위로 노란 소스가 흘러내렸다. 옆에는 얇게 구운 고기와 뿌리채소가 놓였고, 작은 그릇에는 맑은 보리 수프가 담겼다.

한 귀족이 미간을 찌푸렸다.

"달걀 요리가 이렇게…… 흐물거려도 되는 건가?"

다른 이가 포크로 달걀을 눌렀다.

노른자가 터졌다.

노란 액체가 소스와 섞이며 빵 위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식당이 조용해졌다.

처음 한입을 먹은 이는 젊은 기사였다.

그는 별생각 없이 빵을 입에 넣었다가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달걀입니까?"

그 말이 이상한 신호가 되었다.

사람들이 하나둘 포크를 들었다.

빵은 겉은 바삭하고 안은 부드러웠다. 노른자와 소스가 스며들며 입안에서 풀렸다. 달걀 특유의 단조로운 맛을 산미가 깨웠고, 버터 향은 목을 덮지 않았다.

"부드럽군."

"아침에 먹기엔 지나치게 사치스럽지 않나?"

"그런데 속은 편합니다."

고기는 더 반응이 빨랐다.

평소처럼 완전히 말라붙은 고기가 아니었다. 겉은 구워졌지만 속에는 육즙이 남아 있었다. 뿌리채소는 오래 삶아 물러진 것이 아니라, 겉이 살짝 그을려 단맛이 살아 있었다.

그리고 보리 수프는 깨끗했다.

짠맛으로 덮지 않고, 곡물의 고소함이 낮게 올라왔다.

식당의 소리가 바뀌었다.

처음에는 포크와 접시가 부딪히는 소리.

그다음엔 낮은 감탄.

그리고 잠시 후, 모두가 먹느라 말을 줄였다.

엘리제는 식당 입구에 서서 그 광경을 지켜봤다.

'좋아.'

아침 식사는 대성공이었다.

하지만 진짜 심사는 아직이었다.

칼릭스가 자신의 접시 앞에 앉아 있었다.

그는 식당 중앙의 높은 자리에 있었다. 오늘도 표정은 차가웠다. 하지만 엘리제는 그의 손을 보았다. 포크를 잡은 손끝이 접시 위에서 잠시 멈춰 있었다.

그는 먼저 달걀을 눌렀다.

노른자가 터졌다.

칼릭스의 눈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그가 한입 먹었다.

엘리제는 숨을 죽였다.

칼릭스는 천천히 씹었다.

이번에도 그의 반응은 격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제는 보았다. 그의 목울대가 움직이는 속도가 어제보다 자연스러웠다. 그는 억지로 삼킨 것이 아니라, 맛이 끝나는 지점을 기다린 뒤 삼켰다.

칼릭스가 말했다.

"노란 맛."

식당이 조용해졌다.

엘리제는 눈을 깜빡였다.

"노란 맛이요?"

"달걀이 노랗다. 그런데 맛도 노랗군."

누군가는 그 말을 이상하게 여겼겠지만, 엘리제는 웃음이 나올 뻔했다.

미각 재활의 첫 표현으로 나쁘지 않았다.

"좋은 표현입니다."

칼릭스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그런가."

"네. 아주."

그는 다시 한입 먹었다.

이번에는 빵과 소스를 함께.

"불쾌하지 않다."

"맛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그것과 같은가?"

"지금은요."

칼릭스는 잠시 생각했다.

"그럼 맛있다."

식당 안의 사람들이 말을 삼켰다.

블레이크 공작이 음식에 대해 맛있다고 말했다.

오래 이 성에 있던 이들은 그 말의 무게를 알았다.

베른도 알았다.

그의 얼굴에서 완고함이 조금씩 무너졌다.

***

조식이 끝난 뒤, 공작가 주방은 조용했다.

견습들은 아직도 흥분한 얼굴이었다. 자신들이 만든 음식이 식당에서 비워져 돌아오는 것을 본 탓이었다. 남은 음식이 거의 없었다. 그릇은 비었고, 접시에는 소스 자국만 남았다.

베른은 말없이 엘리제 앞에 섰다.

엘리제는 팔짱을 꼈다.

"칼은 준비되었습니까?"

베른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인정하겠습니다."

주방 안이 조용해졌다.

"영애의 방식은 낯설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장난이라 생각했습니다."

"지금은요?"

"결과가 말했습니다."

베른은 엘리제의 손을 보았다.

어제 칼릭스가 감아준 천이 아직 손끝에 있었다.

"좋은 손입니다. 칼을 오래 잡은 손이군요. 적어도 흉내는 아닙니다."

순간 공기가 미묘하게 변했다.

엘리제는 베른의 말에 대답하려 했다.

그런데 문가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 손은 접시로 평가해라."

모두가 돌아보았다.

칼릭스가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평소처럼 무표정했다. 하지만 엘리제는 이제 알았다. 저건 그냥 무표정이 아니라 심기가 뒤틀린 얼굴이었다.

베른은 당황했다.

"전하?"

칼릭스는 베른을 보았다.

"사람 보는 눈보다 접시 보는 눈부터 세워라."

베른의 눈이 흔들렸다.

엘리제도 당황했다.

"공작님?"

칼릭스는 자신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물러서지도 않았다.

"틀린 말인가."

"아니요. 틀린 말은 아닌데……."

엘리제는 베른과 칼릭스를 번갈아 보았다.

'저거 뭐야. 설마 질투야?'

하지만 입 밖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지금 말했다간 공작가 주방이 다른 의미로 폭발할 것 같았다.

베른은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전하. 접시로 평가하겠습니다."

그는 엘리제에게 돌아섰다.

"엘리제 셰프."

처음이었다.

베른이 그녀를 영애가 아니라 셰프라고 부른 것은.

엘리제는 그 호칭을 들으며 미소 지었다.

"말씀하세요, 주방장님."

"약속대로 칼을 갈겠습니다."

"좋아요. 제일 무딘 것부터."

베른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방 안 견습들이 작게 웃었다.

칼릭스는 그 웃음까지 보고 있었다. 그가 무엇을 느끼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는 엘리제가 웃는 것을 보자, 방금 느낀 불쾌함이 조금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 감정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저 기억했다.

엘리제가 웃으면, 자신 안의 쓴맛이 조금 줄어든다.

***

오후가 되자 엘리제는 공작가 주방 한쪽에 작은 기록대를 만들었다.

칼릭스의 미각 회복을 위해서는 식사 때마다 반응을 기록해야 했다. 단맛, 짠맛, 산미, 쓴맛. 그리고 향, 질감, 온도 반응까지.

베른은 처음엔 그 기록표를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요리사가 의관처럼 기록을 남깁니까?"

"좋은 셰프는 손님 몸 상태도 봅니다."

"공작 전하를 손님이라 부르실 겁니까?"

"그럼 환자요?"

뒤에서 칼릭스가 말했다.

"나는 환자인가."

엘리제는 돌아보지 않고 답했다.

"미각 재활 대상자입니다."

"그건 환자보다 나은 말인가?"

"조금요."

칼릭스는 조리대 가까이 다가왔다.

베른은 자연스럽게 한 걸음 물러났다. 엘리제는 그걸 보고 속으로 웃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을 시험하던 주방장도 공작 앞에서는 북부 사람답게 얌전했다.

칼릭스는 기록표를 내려다보았다.

"오늘 밤부터 시작하나."

"네. 첫 수업은 단맛입니다."

"단맛."

그는 낯선 단어처럼 말했다.

"달다는 것은 알고 있다."

"알고 있는 것과 느끼는 건 다릅니다."

엘리제는 작은 꿀병을 집었다.

"공작님은 그 차이를 배워야 해요."

칼릭스의 시선이 꿀병이 아니라 그녀에게 머물렀다.

"네가 가르치나."

"계약서에 쓰셨잖아요."

"그랬지."

"후회하십니까?"

칼릭스는 바로 답했다.

"아니."

그 대답이 너무 빠르자 엘리제가 잠시 멈칫했다.

칼릭스는 덧붙였다.

"오늘 아침 맛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럼 다행이네요."

"그런데 네가 없으면 다시 멀어질 것 같다."

엘리제는 꿀병을 내려놓았다.

주방의 열기가 갑자기 높아진 것 같았다.

"그건 아직 재활 초기라서 그렇습니다."

"그런가."

"네. 의학적으로…… 아니, 요리적으로 그렇습니다."

칼릭스는 그녀를 보았다.

"그럼 오늘 밤 확인한다."

"무엇을요?"

"네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

엘리제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공작님, 그런 말은 좀 이상하게 들립니다."

"어떻게."

"그걸 설명하긴 어렵네요."

칼릭스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에 설명해라."

엘리제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 남자는 무심한 듯하면서도 사람을 계속 끌어당겼다.

무엇보다 문제는, 그가 조금도 장난스럽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날 밤.

공작가 주방의 작은 시식대 위에 꿀물과 과일, 얇게 구운 빵이 준비되었다.

엘리제는 기록지를 펼쳤다.

칼릭스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첫 수업입니다."

엘리제가 말했다.

"단맛부터 시작하죠."

칼릭스는 그녀의 손에 들린 작은 숟가락을 보았다.

"네가 먼저 먹나."

엘리제는 계약서를 떠올리고 미간을 눌렀다.

"네. 제가 먼저 먹습니다."

"좋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런데 그의 눈은 너무 진지했다.

엘리제는 꿀물을 한 모금 마셨다.

"독 없습니다."

"그건 이제 안다."

"그럼 왜 보세요?"

"네가 먹을 때, 맛이 시작되는 것 같아서."

엘리제의 손이 멈췄다.

첫 미각 수업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아주 위험한 맛이 입안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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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궁의 정오를 알리는 거대한 청동 종소리가 제국의 심장부를 무겁게 울렸다.블레이크 공작 부부를 마중하기 위해 열린 황실 안동의 귀빈 대기실은 대연회장과는 또 다른 의미로 숨이 막힐 듯한 위압감이 감돌고 있었다. 사방의 벽면을 가득 채운 순금 문양의 휘장들과 화려한 크리스탈 샹들리에에서 쏟아지는 백색의 불빛은 지나치게 사치스러웠고, 바닥에 깔린 붉은 벨벳 카펫은 발소리 하나조차 완벽하게 집어삼키며 은밀한 정적을 자아내고 있었다.“공작부인 전하, 예복의 선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지 않았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드리겠습니다.”황실 최고위 하녀장이 조심스러운 손길로 엘리제의 드레스 자락을 매만졌다.칼릭스가 직접 골라 입힌 미드나잇 블루 빛의 실크 예복은 레이스가 목끝까지 촘촘하게 짜여 있어 단 한 치의 살결도 밖으로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히려 그 완벽한 폐쇄성이 엘리제의 가느다란 목선과 유려하게 떨어지는 골반의 곡선을 노골적으로 부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목을 옥죄듯 감싸 안은 블레이크 가문의 핏빛 루비 초커는, 그녀가 제국의 구원자이기 전에 오직 한 사내의 지독한 소유물임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사슬과 같았다.엘리제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얕은 숨을 내쉬었다.단추를 목끝까지 채운 드레스는 주방의 화구 열기를 견디던 전생의 가운보다 훨씬 더 답답하게 심장을 조여왔다. 하지만 그 답답함의 진짜 원인은 옷이 아니었다. 드레스룸에서부터 마차, 그리고 이 황궁의 복도를 걸어오는 내내 자신의 허리를 부서질 것처럼 움켜쥔 채 단 한 순간도 시선을 떼지 않던 남자의 파괴적인 독점욕 때문이었다.스윽.그때, 대기실 안쪽의 대리석 기둥 뒤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움직였다.완벽하게 재단된 검은색 황실 제복을 입은 칼릭스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제국의 검이자 북부의 지배자다운 오만한 아우라가 공간을 단숨에 압도하자, 황실 하녀들은 공작의 서슬 퍼런 기운에 질려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고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칼릭스의 투명하면서도 깊은 보랏빛 눈동자가 엘리제에게로 향했

  • 단두대 위의 미슐랭   [외전-4] 오만의 마침표, 탐닉의 시작

    황궁 귀빈실의 높은 창문 틈새로 아침 햇살이 가늘고 길게 조각되어 쏟아졌다.수도 위를 수놓은 창백한 새벽안개가 황금빛 태양에 녹아내리는 시간이었지만, 두꺼운 암막 벨벳 커튼이 드리워진 침실 내부만큼은 여전히 어둡고 진득한 밤의 열기가 고스란히 정체되어 있었다. 사방으로 흩어진 순백의 실크 드레스 자락, 바닥에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공작의 제복 훈장들, 그리고 벽난로 안에서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장작의 매캐한 잔향이 방 안의 밀도를 숨이 막힐 정도로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으음…….”엘리제는 얕은 신음을 삼키며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전신을 지독하게 난도질하는 듯한 뻐근한 통증이 척추 마디마디를 타고 밀려왔다. 단 한 치의 자비도 없이 그녀를 몰아붙였던 지난밤의 흔적이었다. 온전한 감각을 되찾은 괴물이 십수 년의 굶주림을 보상받겠다는 듯 탐욕스럽게 탐닉해 온 결과물은 엘리제의 하얀 피부 위로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었다.그녀가 몸을 미세하게 뒤틀자마자, 허리를 빈틈없이 옭아매고 있던 거대하고 단단한 팔뚝에 더욱 강한 힘이 들어갔다.“더 누워 있어라.”낮고 잠긴, 짐승의 르누아르 같은 목소리가 엘리제의 귓가를 긁어내렸다.칼릭스는 언제나처럼 소리도 없이 눈을 뜬 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헝클어진 칠흑 같은 머리카락이 그의 이마 위로 흘러내려 야성적인 분위기를 더했고, 실크 이불 밖으로 드러난 그의 넓고 탄탄한 어깨와 흉판에는 엘리제가 쾌감에 겨워 가늘게 긁어내린 손톱자락 자국이 붉게 선을 그리고 있었다.거울처럼 투명해진 그의 보랏빛 눈동자는 오직 엘리제 한 사람만을 담은 채 기묘한 포만감과, 여전히 가시지 않은 지독한 독점욕으로 일렁였다.“칼릭스, 날이 벌써 다 밝았어요. 황실 시종들이나 하녀들이 방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텐데…… 이 팔 좀 놓아주세요.”엘리제가 그의 가슴팍을 밀어내려 손을 올렸으나, 칼릭스는 오히려 그녀의 손가락을 하나씩 붙잡아 자신의 입술 앞으로 가져갔다.검은 장갑을 벗어 던진 그의 맨손 지문이 엘리제의 가느다란 손

  • 단두대 위의 미슐랭   [외전-3] 밤의 장막과 귀빈실의 지배자

    황궁의 온실 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는 창백한 달빛은 두 사람의 엉킨 그림자를 은밀하게 비추고 있었다.온실 안을 가득 채운 진득한 장미 향은 엘리제의 가쁜 숨결과 뒤섞여 기묘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차가운 대리석 돌벽에 등이 밀착된 엘리제는 전면에서 저돌적으로 밀려드는 칼릭스의 거대한 신체를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었다.칼릭스는 그녀의 두 손목을 조리대 벽 위로 거칠게 잡아 내리누른 채, 마치 사냥감을 온전히 가두어둔 맹수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칼릭스…… 하아, 사람들이 언제 이곳으로 들어올지 몰라요. 제발 이 손 좀……”엘리제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다그치려 했으나, 칼릭스의 투명한 눈동자에 서린 열망은 이미 이성의 끈을 아슬아슬하게 잡아당기고 있었다.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더 깊숙이 숙여, 엘리제의 새하얀 목덜미와 핏빛 루비 초커가 닿아 있는 그 예민한 경계선을 사정없이 입술로 핥아 내렸다. 쪽, 소리와 함께 질척한 점막의 마찰음이 온실의 정적을 집요하게 깨부수었다.“흐읏……! 아, 칼릭스……!”엘리제의 입술 사이로 참지 못한 신음이 튀어 나왔다. 거칠게 살을 파고드는 남자의 맨손 악력과, 전신을 불덩이처럼 달구는 배덕감이 그녀의 척추 뼈마디를 타고 뇌수까지 일직선으로 치솟아 올랐다.모든 미각과 감각을 회복한 칼릭스에게 엘리제라는 존재는 이제 단순히 맛을 느끼게 해주는 도구가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원색을 뛰어넘어, 자신의 피와 살을 통째로 지배하는 지독한 마약이자 유일한 구원이었다.칼릭스는 엄지손가락으로 엘리제의 붉게 퉁퉁 부어오른 입술 점막을 강하게 비벼대며, 가쁜 숨을 그녀의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말했을 텐데, 엘리제. 세상이 선명해질수록 내 식욕은 너 하나만을 향해 폭주한다고. 저 연회장에 서 있는 천박한 놈들이 네 어깨와 등을 바라보는 그 짧은 순간 동안, 나는 제국 전체를 불태워버리고 싶었다.”그의 목소리는 짐승의 낮은 으르렁거림처럼 뇌리를 긁어내렸다. 칼릭스는 결코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듯, 엘리제의 허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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