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황실 초대장은 다음 날 아침 공작가 식탁 위에 공식적으로 놓였다.
전날 밤 칼릭스가 먼저 읽은 그 봉투와 같은 문장이었다. 그러나 아침에 다시 보니 더 노골적이었다. 황금 문장, 정중한 문체, 아름답게 말린 양피지. 겉으로는 초청이었지만 문장 사이사이에 명령이 숨어 있었다. 황실 미식회. 건국 기념을 앞두고 열리는 제국 최대의 요리 행사. 귀족 가문들은 자신들의 셰프를 내세워 가문의 품격을 과시하고, 황실은 그 식탁 위에서 권력의 서열을 확인한다. 우승자는 황실의 축복을 받지만, 실패한 가문은 웃음거리로 남는다. 그런 자리에 독살 누명을 쓴 악녀가 초청받았다. 블레이크 공작가 대표 셰프로. 엘리제는 초대장을 읽고 웃었다. "완전히 미끼네요. 심지어 예쁘게 포장한 미끼고요." 베른은 팔짱을 꼈다. "미끼라면 물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안 물면요?" "적어도 함정에는 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함정을 설치한 사람이 다음에는 우리 주방 문 앞에 덫을 놓겠죠." 베른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은 맞았다. 황실은 엘리제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처형장에서 살아남은 것도, 칼릭스의 미각을 깨운 것도, 공작가 주방을 장악한 것도 모두 소문이 됐다. 황실은 소문을 싫어한다. 특히 자신들이 통제하지 못한 소문을. 칼릭스는 초대장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가지 않아도 된다." 엘리제는 그를 보았다. "정말요?" "내 이름으로 거절할 수 있다." "공작님이 황실 초청을 거절하면요?" "불편해지겠지." "북부와 황실 관계가 더 험악해지고, 저에 대한 의심은 더 커지고, 공작님의 미각 회복 문제도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겠죠." 칼릭스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알고 있군." "그래서 가야죠." "위험하다." "알아요." "그런데 왜 가나." 엘리제는 초대장을 접었다. "위험한 식탁일수록 누가 뭘 먹이는지 봐야 하니까요. 피하면 독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더 안 보이게 섞일 뿐입니다." 칼릭스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그녀를 막고 싶었다. 그 감정은 선명했다. 그러나 이유가 복잡했다. 미각 때문일까. 계약 때문일까. 그녀가 사라지면 자신의 맛이 다시 사라질 것 같아서일까. 아니면 어젯밤 주방에서 들었던 말 때문일까. 무서워도 접시는 내야 하니까요. 칼릭스는 그 말을 떠올렸다. 막는다면 그녀는 멈출까. 아마 아니다. 오히려 혼자 갈 것이다. 그건 더 불쾌했다. "가라." 엘리제가 놀라 눈을 깜빡였다. "정말요?" 칼릭스는 천천히 말했다. "대신 조건이 있다." "또 계약서 쓰실 겁니까?" "필요하면." "제발 구두로 합시다." "첫째, 독이 의심되는 음식은 네가 먼저 먹지 않는다." "이미 계약서에 있습니다." "둘째, 위험하면 신호를 보낸다." "어떤 신호요?" 칼릭스는 잠시 생각했다. "손수건." 그는 자신의 검은 손수건을 꺼냈다. 블레이크 가문의 문장이 작게 수놓인 손수건이었다. "이걸 들면 내가 움직인다." 엘리제는 손수건을 받았다. 천은 부드러웠고, 아주 희미하게 차가운 향이 났다. 칼릭스에게서 나는 냄새와 같았다. 금속, 겨울,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남은 빵 향. 왜 빵 향이 남았는지 생각하자 엘리제의 얼굴이 조금 뜨거워졌다. 그가 어제 밤 주방에서 빵을 먹었기 때문이다. "이걸 들면요?" "어디에 있든 간다." "황실 미식회장 한복판이라도요?" "그렇다." "공작님, 그러면 외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네 목숨보다 중요한가." 엘리제는 말을 잃었다. 베른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칼릭스는 무표정했다. 그러나 그 무표정 아래, 전날보다 선명한 감정이 있었다. 아직 이름은 없지만, 엘리제는 그것을 조금 알 것 같았다. 걱정. 아마도. 그녀는 손수건을 조심스럽게 접어 품에 넣었다. "알겠습니다." 칼릭스는 그녀를 보았다. "셋째." "또 있습니까?" "돌아와라." 주방 안이 조용해졌다. 그 말은 명령처럼 짧았다. 하지만 엘리제는 그 안에 담긴 것을 느꼈다. 그가 아직 말할 줄 모르는 감정. 그저 돌아오라고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무언가. 엘리제는 장난스럽게 답하려 했다. '물론이죠.' '계약이 남았으니까요.' '공작님 미각 재활도 해야 하니까요.' 그런 말들이 입안에 떠올랐다. 하지만 꺼내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오겠습니다." 칼릭스의 손끝이 아주 조금 풀렸다. *** 황실 미식회 준비는 즉시 시작됐다. 베른은 재료 목록을 정리했다. 황실로 가져갈 수 있는 재료는 제한되어 있었다. 공식 대회에서는 대부분 황실이 제공한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 다만 각 가문은 상징 재료 몇 가지를 반입할 수 있었다. 베른이 말했다. "무엇을 가져가시겠습니까?" "소금." "소금은 황실에도 충분합니다." "그래서 우리 소금이 필요해요." "이유는요?" "황실 소금은 향이 있을 수 있어요. 검수용으로도 써야 합니다." 베른은 곧장 기록했다. "그다음은?" "북부산 보리. 그리고 산미 열매 껍질. 말린 깨어나는 잎 조금." "깨어나는 잎은 약초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몰래는 안 가져갑니다. 공식 반입 목록에 올려요." 베른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격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 더 좋죠. 누가 싫어하는지 알 수 있으니까." 베른은 한숨을 쉬었다. "셰프는 위험을 너무 재료처럼 다루십니다." "재료는 다루면 요리가 되지만, 방치하면 썩어요." "그 말은 맞습니다." 베른은 어쩐지 체념한 얼굴이었다. 마리는 주방 한쪽에서 작은 수첩을 정리하고 있었다. 엘리제는 그녀를 보았다. "마리." 마리가 얼른 고개를 들었다. "네, 셰프님." "너도 같이 가." 마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제가요?" "응. 기록 담당." "하지만 저는 하녀이고……." "지금은 견습 기록 담당이야." 마리의 눈이 흔들렸다. "제가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게 만들 거야." 엘리제는 작은 기록표를 건넸다. "미식회장에서 중요한 건 맛만이 아니야. 누가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어떤 향이 언제 강해지는지, 누가 손을 떨고 누가 입을 다무는지. 전부 기록해야 해." "그게 도움이 됩니까?" "엄청." "해보겠습니다." "좋아." 그때 칼릭스가 말했다. "마리." 마리는 놀라 굳었다. "예, 전하." "엘리제를 지켜라." 마리의 얼굴이 더 하얘졌다. "제가요?" "가장 가까이 있을 것이다." 마리는 말을 삼켰다. 엘리제는 어이없게 웃었다. "공작님, 제 호위를 하녀에게 맡기시는 겁니까?" 칼릭스는 담담히 답했다. "너는 기사의 말보다 마리의 말을 더 들을 것 같다." 베른이 낮게 말했다. "정확한 판단입니다." 엘리제는 배신당한 얼굴로 베른을 보았다. "주방장님까지요?" "셰프의 생존을 위한 효율적 배치입니다." 마리는 수첩을 꼭 쥐었다. "지키겠습니다." 엘리제는 마리를 보았다. 예전 같으면 겁먹어 도망쳤을 아이가, 이제는 떨면서도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 모습이 엘리제의 마음을 조금 부드럽게 했다. "좋아. 그럼 같이 살아 돌아오자." 마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칼릭스는 그 말을 들었다. 살아 돌아오자. 그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돌아온다는 말이 혼자가 아니라 둘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것만으로 조금 안심이 되었다. *** 그날 오후, 황실에서 추가 지침이 도착했다. 미식회 첫 라운드 주제는 향. 제국 각지에서 온 향신료와 약초를 활용해, 귀족 심사위원을 만족시키는 음식을 만들 것. 엘리제는 지침서를 읽고 바로 웃었다. "역시 향부터 시작하네." 베른의 얼굴이 굳었다. "불리합니다. 황실은 향신료를 통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재밌죠." "셰프." "알아요. 위험하다는 말 하시려는 거죠?" "예." "그래서 준비할 겁니다." 엘리제는 조리대 위에 향신료들을 펼쳤다. 정상 허브. 루메르 향초. 산미 열매 껍질. 깨어나는 잎. 그리고 공작가 저장고에서 찾은 낯선 말린 꽃. 그녀는 하나씩 냄새를 맡았다. "향은 사람을 가장 빨리 속여요. 맛은 입에 넣어야 알지만, 향은 숨만 쉬어도 들어오니까." 마리가 적었다. "향은 숨으로 들어온다." "맞아. 그러니까 미식회장에 들어가면 먼저 숨을 아껴. 깊게 들이마시지 말고, 짧게 나눠서 맡아." "네." 칼릭스도 듣고 있었다. 엘리제가 그를 보았다. "공작님도요." "나도?" "네. 공작님은 미각과 감정이 막 회복 중이라 더 민감할 수 있어요." 칼릭스의 눈이 그녀의 품 쪽으로 향했다. "가지고 있나." 엘리제는 품에서 검은 손수건을 조금 꺼내 보였다. "여기요." 칼릭스는 그제야 시선을 거두었다. 그 작은 확인이 이상하게 다정해서, 엘리제는 다시 손수건을 품에 넣으며 심장이 살짝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공작님." "말해라." "저 정말 돌아옵니다." 칼릭스는 그녀를 보았다. "알고 있다." "그럼 그렇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걱정." 그는 단어를 천천히 말했다. "이게 걱정인가." 엘리제는 잠시 멈췄다. 그의 얼굴은 진지했다. 그는 정말로 묻고 있었다. 엘리제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마도요." "그렇군." 칼릭스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걱정은 맛이 좋지 않다." "대부분 그렇죠." "그런데 네가 돌아온다고 말하면 조금 줄어든다." 엘리제는 입술을 다물었다. 이 남자는 감정을 맛으로 배우고 있다. 그러니 모든 말이 조금 서툴고, 조금 직설적이고, 그래서 지나치게 가까이 닿았다. "그럼 자주 말해드릴게요." "좋다." 그 대답이 너무 즉각적이라 엘리제는 결국 웃었다. *** 황실 미식회 출발은 다음 날 새벽으로 정해졌다. 그 전날 밤, 공작가 주방은 다시 분주했다. 가져갈 재료를 포장하고, 기록지를 정리하고, 향 검수용 천을 준비했다. 베른은 마지막까지 칼을 갈았다. 그가 엘리제에게 내민 칼은 전날보다 확실히 날이 살아 있었다. "약속대로입니다." 엘리제는 칼을 받아 들었다. "좋네요." "황실에서 무딘 칼을 쓰게 할 순 없습니다." "주방장님, 이제 좀 제 편 같네요." 베른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에도 걱정이 있었다. 마리는 작은 가방을 품에 안고 있었다. 그 안에는 기록 수첩, 여분 펜, 검수용 천, 맑은 물병이 들어 있었다. "마리." "네." "무서워?" 마리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지만 가겠습니다." "좋아." 엘리제는 그녀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무서운데 가는 사람이 제일 쓸모 있어." 마리의 눈이 조금 커졌다. "정말입니까?" "응. 무섭다는 걸 아니까 조심하거든." 마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문가에서 칼릭스가 말했다. "너도 그렇다." 엘리제는 돌아봤다. "제가요?" "무서운 것을 알면서 간다." "저는 셰프니까요." "그 대답도 자주 하는군." "쓸 만하니까요." 칼릭스는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는 검은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황실에 갈 준비를 마친 모습이었다. 칼릭스는 그녀를 보았다. "엘리제." "네." "내일 황실에 들어서면, 나와 떨어지는 순간이 생길 수 있다." "그렇겠죠." "그때도 손수건을 잊지 마라." "네." "그리고." 그는 아주 잠깐 멈췄다. "네가 만든 음식이 아니더라도, 위험하면 먹지 마라." 엘리제는 작게 웃었다. "이제 공작님이 제 식단 관리까지 하시는군요." "필요하다." "왜요?" 칼릭스는 그녀를 보았다. "네가 돌아와야 한다." 그 말은 낮았다. 하지만 주방의 모든 소리를 밀어낼 만큼 선명했다. 엘리제는 더 이상 농담하지 않았다. "돌아올게요." 칼릭스는 그 대답을 듣고도 한참 그녀를 보았다. 마치 그 말을 맛으로 기억하려는 사람처럼. 다음 날 새벽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황실의 식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제는 칼을 챙기고, 기록지를 접고, 검은 손수건과 은병을 품에 넣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살아 돌아온다.' 계약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쩌면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돌아간다는 말이, 조금 달게 느껴졌다.제국 북부의 거대한 설산을 집어삼킬 듯 무섭게 몰아치던 동토의 새벽바람이 마침내 잔인한 비명을 거두고 흔적도 없이 사그라들었다.블레이크 공작성의 가장 높은 탑 위로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자, 수십 년간 얼어붙어 있던 성벽의 성에들이 투명한 보석처럼 부서지며 눈부신 황금빛을 사방으로 반사해 내기 시작했다. 길고 길었던 황궁의 더러운 암투도, 마차 안과 귀빈실을 거쳐 이곳 공작가의 대침실까지 이어지던 파괴적이고도 농밀한 탐닉의 밤도 마침내 잿빛 안개 속으로 완전히 녹아내린, 지독하리만치 평화로운 아침이었다.그러나 오직 두 사람만의 숨소리와 맥박으로 가득 찬 공작의 대침실 내부만큼은 여전히 시간이 완전히 정지한 듯, 낮고 진득한 열기가 고스란히 정체되어 있었다.사방으로 어지럽게 흩어진 순백의 예복 실크 조각들과 뜯겨 나간 은색 단추들, 지난밤의 격렬했던 신체적 마찰을 증명하듯 기괴하게 뒤틀린 채 젖어 있는 침대 시트, 그리고 공간을 가득 메운 짙은 샌달우드 향과 달콤한 무화과 향의 잔향이 뇌리를 묵직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방 안의 밀도는 여전히 숨이 막힐 정도로 무거웠다.“으음…….”엘리제는 눈꺼풀을 서서히 들어 올리며 가녀린 신음을 입술 사이로 흘렸다.전신을 지독하게 난도질하는 듯한 뻐근한 통증이 척추 뼈마디 하나하나를 타고 무겁게 밀려왔다. 단 한 치의 자비도, 단 한 순간의 유예도 없이 그녀의 살결을 탐닉해 들어왔던 칼릭스의 잔인한 소유욕이 남긴 흔적이었다. 전생의 강서진으로서 그 어떤 혹독한 주방의 노동과 폭군 같은 선배들의 압박도 버텨냈던 그녀였지만, 모든 감각을 회복한 북부의 괴물이 밤새도록 쏟아부은 원초적인 집착을 받아내는 것은 차원이 다른 파멸적인 피로였다.그녀가 몸을 미세하게 움직이려 하자마자, 허리를 부서질 것처럼 움켜쥐고 있던 거대하고 단단한 팔뚝에 소름 끼칠 정도로 강한 악력이 다시금 들어왔다.“깨웠나.”낮고 진득하게 잠긴, 낮의 태양마저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서늘하고도 뜨거운 목소리가 엘리제의 뒷덜미를 거칠게 긁어내렸다.칼릭
수도에서 북부의 심장으로 이어지는 길고 긴 밤의 질주가 마침내 끝을 고했다.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블레이크 공작성의 거대한 대문이 육중한 쇳소리를 내며 열렸고, 두 사람을 태운 마차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마필들의 더운 숨결을 흩날리며 안뜰 정중앙에 멈춰 섰다. 북부의 한밤동을 지배하는 동토의 차가운 바람이 마차 외벽을 사정없이 때려대며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지만, 그 서늘한 냉기조차 마차 내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던 지독하고 끈적한 열기를 식히지는 못했다.달각.마차 문이 열리자마자 칼릭스는 무릎 위에 늘어져 있던 엘리제를 단 한 순간도 바닥에 디디게 하지 않은 채, 자신의 두꺼운 모피 망토로 그녀의 전신을 빈틈없이 감싸 안았다. 아침에 드레스룸에서 그토록 정성스럽게 채웠던 미드나잇 블루 빛의 실크 예복은 이미 마차 안에서 벌어진 난폭한 탐닉으로 인해 단추가 전부 뜯겨 나가고 옷깃이 처참하게 찢어진 상태였다. 다른 하녀들이나 성 안의 기사들에게 아내의 노출된 살결과 자신이 새겨놓은 붉은 낙인들을 단 한 자락도 보이지 않겠다는 괴물의 철저한 구속이자 독점욕이었다.“공작 전하를 뵙습니…….”성 문을 지키던 호위 기사들과 하녀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으나, 칼릭스는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성큼성큼 본관의 대리석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서슬 퍼런 살기와 제압감은 전장으로 향하는 총사령관의 그것보다 훨씬 더 서슬 퍼런 위압감을 품고 있었다. 엘리제는 그의 단단한 목덜미에 두 팔을 감아쥔 채, 모피 망토 안쪽의 은밀한 어둠 속에서 가쁜 숨을 골랐다. 셔츠 자락 틈새로 느껴지는 그의 우람한 가슴팍 근육은 여전히 진정되지 않은 채 터질 것처럼 거칠게 맥박치고 있었다.복도를 지나 오직 두 사람만을 위해 허락된 성의 가장 깊숙한 안동, 공작의 대침실 문이 열렸다. 칼릭스는 발끝으로 문을 부서질 것처럼 거칠게 닫아걸었다.쿵! 철컥.육중한 참나무 문이 닫히고 묵직한 금속 걸쇠가 완전히 잠기는 순간, 엘리제는 비로소 자신들이
황제와의 숨이 막힐 듯한 공식 오찬이 마침내 마침표를 찍고, 황궁 안동의 깊숙하고 창백한 대리석 통로를 지나 마침내 블레이크 공작가의 대형 마차 문이 닫히는 순간.장내를 압박하던 화려하고 가식적인 금빛 세계는 완벽하게 차단되었고, 마차 내부에는 오직 두 사람만이 호흡할 수 있는 지독하리만치 은밀하고 거대한 어둠의 장막이 내려앉았다. 마차 바퀴가 수도의 거친 돌길을 짓이기며 움직이기 시작하는 둔탁한 소음이 정적을 흔들었으나, 그 소음마저 마차 안을 가득 채운 칼릭스의 파괴적인 살기와 소유욕 앞에서는 한 자락의 먼지처럼 흩어질 뿐이었다.철컥, 철컥.마차가 코너를 돌 때마다 육중한 차체가 크게 흔들렸지만, 칼릭스는 엘리제를 자신의 무릎 위에 앉힌 채 그녀의 허리를 부서질 것처럼 강하게 껴안고 있었다.그는 오찬이 진행되는 내내, 그리고 황제가 엘리제에게 호의 어린 손을 내밀며 “조련”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던 그 찰나의 순간부터 이성의 끈이 완전히 끊어져 있었다. 완벽하게 재단된 검은색 제복 상의 너머로 느껴지는 그의 심장 박동은 평소의 침착함을 완전히 잃은 채, 폭주하는 마법 엔진처럼 거칠고 폭력적으로 맥박치고 있었다. 그 무자비한 박동이 엘리제의 둔부를 통해 전신으로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칼릭스…… 하아, 손아귀 힘이 너무 강해요. 허리가 부러질 것 같아요.”엘리제가 그의 단단하고 넓은 어깨에 이마를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속삭였다.그녀가 입은 미드나잇 블루 빛의 실크 드레스는 목끝까지 촘촘하게 은색 단추가 채워져 있어 레이스가 턱밑까지 감싸 안고 있었지만, 남자의 거친 호흡이 깃을 타고 내려올 때마다 맨살 위로 소름 끼치는 열기가 전해졌다. 목을 죄어오는 굵은 은색 사슬과 핏빛 루비 초커가 그의 악력에 들려 올라가며 엘리제의 가느다란 목선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가죽 장갑을 벗어 던진 그의 맨손가락이 초커의 날카로운 테두리를 따라 피부를 파고들 듯 강하게 짓눌렀다.“황제의 눈빛이 네 쇄골 라인이 시작되는 그 깃 끝에 머물렀다.”칼릭스의
황궁의 정오를 알리는 거대한 청동 종소리가 제국의 심장부를 무겁게 울렸다.블레이크 공작 부부를 마중하기 위해 열린 황실 안동의 귀빈 대기실은 대연회장과는 또 다른 의미로 숨이 막힐 듯한 위압감이 감돌고 있었다. 사방의 벽면을 가득 채운 순금 문양의 휘장들과 화려한 크리스탈 샹들리에에서 쏟아지는 백색의 불빛은 지나치게 사치스러웠고, 바닥에 깔린 붉은 벨벳 카펫은 발소리 하나조차 완벽하게 집어삼키며 은밀한 정적을 자아내고 있었다.“공작부인 전하, 예복의 선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지 않았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드리겠습니다.”황실 최고위 하녀장이 조심스러운 손길로 엘리제의 드레스 자락을 매만졌다.칼릭스가 직접 골라 입힌 미드나잇 블루 빛의 실크 예복은 레이스가 목끝까지 촘촘하게 짜여 있어 단 한 치의 살결도 밖으로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히려 그 완벽한 폐쇄성이 엘리제의 가느다란 목선과 유려하게 떨어지는 골반의 곡선을 노골적으로 부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목을 옥죄듯 감싸 안은 블레이크 가문의 핏빛 루비 초커는, 그녀가 제국의 구원자이기 전에 오직 한 사내의 지독한 소유물임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사슬과 같았다.엘리제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얕은 숨을 내쉬었다.단추를 목끝까지 채운 드레스는 주방의 화구 열기를 견디던 전생의 가운보다 훨씬 더 답답하게 심장을 조여왔다. 하지만 그 답답함의 진짜 원인은 옷이 아니었다. 드레스룸에서부터 마차, 그리고 이 황궁의 복도를 걸어오는 내내 자신의 허리를 부서질 것처럼 움켜쥔 채 단 한 순간도 시선을 떼지 않던 남자의 파괴적인 독점욕 때문이었다.스윽.그때, 대기실 안쪽의 대리석 기둥 뒤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움직였다.완벽하게 재단된 검은색 황실 제복을 입은 칼릭스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제국의 검이자 북부의 지배자다운 오만한 아우라가 공간을 단숨에 압도하자, 황실 하녀들은 공작의 서슬 퍼런 기운에 질려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고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칼릭스의 투명하면서도 깊은 보랏빛 눈동자가 엘리제에게로 향했
황궁 귀빈실의 높은 창문 틈새로 아침 햇살이 가늘고 길게 조각되어 쏟아졌다.수도 위를 수놓은 창백한 새벽안개가 황금빛 태양에 녹아내리는 시간이었지만, 두꺼운 암막 벨벳 커튼이 드리워진 침실 내부만큼은 여전히 어둡고 진득한 밤의 열기가 고스란히 정체되어 있었다. 사방으로 흩어진 순백의 실크 드레스 자락, 바닥에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공작의 제복 훈장들, 그리고 벽난로 안에서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장작의 매캐한 잔향이 방 안의 밀도를 숨이 막힐 정도로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으음…….”엘리제는 얕은 신음을 삼키며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전신을 지독하게 난도질하는 듯한 뻐근한 통증이 척추 마디마디를 타고 밀려왔다. 단 한 치의 자비도 없이 그녀를 몰아붙였던 지난밤의 흔적이었다. 온전한 감각을 되찾은 괴물이 십수 년의 굶주림을 보상받겠다는 듯 탐욕스럽게 탐닉해 온 결과물은 엘리제의 하얀 피부 위로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었다.그녀가 몸을 미세하게 뒤틀자마자, 허리를 빈틈없이 옭아매고 있던 거대하고 단단한 팔뚝에 더욱 강한 힘이 들어갔다.“더 누워 있어라.”낮고 잠긴, 짐승의 르누아르 같은 목소리가 엘리제의 귓가를 긁어내렸다.칼릭스는 언제나처럼 소리도 없이 눈을 뜬 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헝클어진 칠흑 같은 머리카락이 그의 이마 위로 흘러내려 야성적인 분위기를 더했고, 실크 이불 밖으로 드러난 그의 넓고 탄탄한 어깨와 흉판에는 엘리제가 쾌감에 겨워 가늘게 긁어내린 손톱자락 자국이 붉게 선을 그리고 있었다.거울처럼 투명해진 그의 보랏빛 눈동자는 오직 엘리제 한 사람만을 담은 채 기묘한 포만감과, 여전히 가시지 않은 지독한 독점욕으로 일렁였다.“칼릭스, 날이 벌써 다 밝았어요. 황실 시종들이나 하녀들이 방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텐데…… 이 팔 좀 놓아주세요.”엘리제가 그의 가슴팍을 밀어내려 손을 올렸으나, 칼릭스는 오히려 그녀의 손가락을 하나씩 붙잡아 자신의 입술 앞으로 가져갔다.검은 장갑을 벗어 던진 그의 맨손 지문이 엘리제의 가느다란 손
황궁의 온실 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는 창백한 달빛은 두 사람의 엉킨 그림자를 은밀하게 비추고 있었다.온실 안을 가득 채운 진득한 장미 향은 엘리제의 가쁜 숨결과 뒤섞여 기묘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차가운 대리석 돌벽에 등이 밀착된 엘리제는 전면에서 저돌적으로 밀려드는 칼릭스의 거대한 신체를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었다.칼릭스는 그녀의 두 손목을 조리대 벽 위로 거칠게 잡아 내리누른 채, 마치 사냥감을 온전히 가두어둔 맹수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칼릭스…… 하아, 사람들이 언제 이곳으로 들어올지 몰라요. 제발 이 손 좀……”엘리제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다그치려 했으나, 칼릭스의 투명한 눈동자에 서린 열망은 이미 이성의 끈을 아슬아슬하게 잡아당기고 있었다.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더 깊숙이 숙여, 엘리제의 새하얀 목덜미와 핏빛 루비 초커가 닿아 있는 그 예민한 경계선을 사정없이 입술로 핥아 내렸다. 쪽, 소리와 함께 질척한 점막의 마찰음이 온실의 정적을 집요하게 깨부수었다.“흐읏……! 아, 칼릭스……!”엘리제의 입술 사이로 참지 못한 신음이 튀어 나왔다. 거칠게 살을 파고드는 남자의 맨손 악력과, 전신을 불덩이처럼 달구는 배덕감이 그녀의 척추 뼈마디를 타고 뇌수까지 일직선으로 치솟아 올랐다.모든 미각과 감각을 회복한 칼릭스에게 엘리제라는 존재는 이제 단순히 맛을 느끼게 해주는 도구가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원색을 뛰어넘어, 자신의 피와 살을 통째로 지배하는 지독한 마약이자 유일한 구원이었다.칼릭스는 엄지손가락으로 엘리제의 붉게 퉁퉁 부어오른 입술 점막을 강하게 비벼대며, 가쁜 숨을 그녀의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말했을 텐데, 엘리제. 세상이 선명해질수록 내 식욕은 너 하나만을 향해 폭주한다고. 저 연회장에 서 있는 천박한 놈들이 네 어깨와 등을 바라보는 그 짧은 순간 동안, 나는 제국 전체를 불태워버리고 싶었다.”그의 목소리는 짐승의 낮은 으르렁거림처럼 뇌리를 긁어내렸다. 칼릭스는 결코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듯, 엘리제의 허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