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새벽의 공작가 주방에는 작은 불 하나만 켜져 있었다.
엘리제는 그 앞에 서서 칼릭스의 아침 재활식을 준비했다. 황실 미식회로 떠나기 전 마지막 식사였다. 거창한 음식은 아니었다. 맑은 보리죽, 약하게 구운 빵, 꿀을 아주 조금 탄 따뜻한 차. 맛은 낮게. 향은 선명하게. 몸에 부담은 없게. 엘리제는 보리죽을 저으며 생각했다. '이상하네.' 황실 미식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독초 영애라는 조롱, 황실의 감시, 르시앙이라는 이름, 아직 밝혀지지 않은 독살 누명. 걱정해야 할 것은 많았다. 그런데 지금 그녀가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칼릭스가 자신이 없는 동안 무엇을 먹을지였다. "베른이 해주겠지." 그녀는 작게 중얼거렸다. "베른이면 충분해. 공작가 주방장이고, 칼도 잘 갈고, 조식도 이제 꽤 이해했고." 그런데도 마음이 찝찝했다. 칼릭스의 단맛 반응은 아직 불안정했다. 산미는 조금씩 열리고 있었지만, 향이 강한 음식에는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다. 황실에 동행한다고 해도 미식회 중에는 떨어질 때가 있을 것이다. 그가 낯선 향에 노출되면 어떻게 할까. 식사를 거르면? 다시 무감각해지면? 엘리제는 손을 멈췄다. '내가 왜 이렇게 신경 쓰지?' 계약 때문. 미각 재활 때문. 공작이 무너지면 자신의 보호도 약해지기 때문. 그렇게 이유를 붙이면 설명은 가능했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그때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혼잣말이 많군." 엘리제는 돌아보았다. 칼릭스가 주방 문가에 서 있었다. "일어나셨습니까?" "네가 주방에 있으면 냄새가 다르다." "그건 좋은 뜻인가요?" "그렇다." 그는 조리대 쪽으로 걸어왔다. 오늘 그는 황궁에 갈 준비를 마친 차림이었다. 검은 예복은 장식이 거의 없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위압적이었다. 은색 단추와 가문의 문장이 낮은 새벽빛을 받았다. 엘리제는 보리죽을 그릇에 담았다. "드세요. 떠나기 전에 속을 비워두면 안 됩니다." 칼릭스는 자리에 앉았다. "네가 없으면 내 식사는 누가 하지?" "베른이 합니다. 제가 조리표도 남겨둘 거고요." "맛이 다를 것이다." "그럼 공작님이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좋아졌다는 뜻이네요." "싫다." 엘리제는 숟가락을 들다 멈췄다. "공작님, 어린애입니까?" 칼릭스는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네가 만든 맛에 익숙해졌다." 엘리제는 순간 그릇의 온도가 손끝으로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건 재활 대상자가 특정 조리자에게 의존하는 초기 현상일 수 있습니다." "그 설명은 맛이 없다." "그래도 정확합니다." "내게는 네 설명보다 네가 만든 보리죽이 더 정확하다." 그는 숟가락을 들었다. 엘리제는 계약대로 먼저 한입 먹었다. 따뜻한 보리의 고소함, 낮은 소금, 아주 약한 단맛. 괜찮았다. 그녀는 그릇을 밀었다. "독 없습니다." "그건 안다." "그 말 이제 그만하셔도 됩니다." "네가 먼저 먹는 것이 싫지는 않다." 엘리제는 그를 보았다. "계약 조항 때문입니까?" "처음엔 그랬다." "지금은요?" 칼릭스는 보리죽을 한입 먹었다. 천천히 삼킨 뒤, 그는 말했다. "네가 먼저 먹으면, 그 음식이 이쪽으로 건너오는 것 같다." "이쪽?" "내 쪽." 엘리제는 바로 받아치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감정을 맛과 거리로 설명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직접적이었다. 다정하다고 말할 줄 몰라, 음식이 건너온다고 말하는 남자. 엘리제는 괜히 찻잔을 정리했다. "공작님, 그런 말은 황실에서는 하지 마세요." "왜." "사람들이 오해합니다." "무엇을." "……됐습니다." 칼릭스는 그녀를 계속 보았다. 엘리제는 시선을 피했다. "차도 드세요." 그는 차를 마셨다. 꿀의 단맛이 아주 낮게 깔린 차였다. 칼릭스는 눈을 아주 조금 가늘게 떴다. "따뜻하다." "좋아요." "불쾌하지 않다." "좋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네가 돌아온다는 말을 들으면 이 맛과 비슷하다." 엘리제는 이번에는 정말 숟가락을 떨어뜨릴 뻔했다. "공작님." "말해라." "오늘 아침부터 너무……." "너무?" 엘리제는 말을 찾지 못했다. 너무 솔직하다. 너무 가까이 온다. 너무 위험하다. 결국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너무 재활 효과가 빠르신 것 같습니다." 칼릭스는 잠시 생각했다. "좋은가." "대체로요." "그럼 계속한다." "아니, 그런 뜻은……." 그때 주방 문이 열리고 베른이 들어왔다. 그는 상황을 보자마자 잠시 멈췄다. "제가 방해했습니까?" 엘리제는 즉시 말했다. "아니요." 칼릭스는 거의 동시에 말했다. "조금." 주방이 조용해졌다. 엘리제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공작님!" 베른은 못 들은 척했다. "출발 준비가 끝났습니다. 마리도 대기 중입니다." "좋습니다. 곧 나가죠." 엘리제는 서둘러 식기를 정리했다. 칼릭스는 마지막으로 보리죽을 한 숟가락 더 먹었다. "이 맛은 다시 확인하겠다." 엘리제는 고개를 들었다. "보리죽 맛을요?" "네가 떠나기 전 만든 맛." 그 말이 또 조용히 내려앉았다. 엘리제는 더 이상 가볍게 넘기지 못했다. *** 성문 앞에는 마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마리는 작은 가방을 품에 안고 서 있었다. 얼굴은 긴장으로 창백했지만, 눈은 단단했다. 베른은 출발 전 마지막으로 재료 상자를 확인했다. 소금, 보리, 산미 열매 껍질, 깨어나는 잎, 검수용 천, 기록지. "셰프님." 마리가 작게 불렀다. "응?" "정말 제가 같이 가도 됩니까?" "너 없으면 누가 기록해?" "하지만 실수하면……." "실수하면 고치면 돼. 기록은 완벽한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본 걸 끝까지 적는 사람이 하는 거야." 마리는 숨을 들이마셨다. "알겠습니다." 베른은 엘리제에게 칼집을 건넸다. "황실에서 제공한 칼만 쓰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것은 챙기십시오." 엘리제는 칼집을 받았다. "주방장님, 정말 제 칼 잘 갈아주셨네요." "돌아오시면 더 갈겠습니다." "다들 왜 자꾸 돌아오라는 말만 해요?" 베른은 무뚝뚝하게 답했다. "공작가 주방은 아직 셰프에게 배울 것이 많습니다." 그 말은 베른식 걱정이었다. 엘리제는 웃었다. "알겠습니다. 돌아와서 더 괴롭혀드리죠." "기대하겠습니다." 칼릭스가 마차 옆에 섰다. 그는 엘리제를 바라보았다. "엘리제." "네." "위험하면 도망쳐도 된다." 엘리제는 조금 놀랐다. "의외네요." "살아야 다시 요리할 수 있다." "공작님을 위해서요?" 칼릭스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 짧은 침묵이 이상하게 길었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아니." 엘리제의 심장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그럼요?" "나에게 돌아오기 위해서." 성문 앞의 공기가 조용해졌다. 마리는 시선을 내렸고, 베른은 재료 상자를 다시 확인하는 척했다. 기사들조차 잠시 숨을 죽였다. 엘리제는 칼릭스를 바라보았다. "공작님." "말해라." "그런 말은……." "상황인가." 엘리제는 작게 웃었다. "아주 많이요." "그럼 나중에 다시 하겠다." "나중에 꼭 안 하셔도 됩니다." "싫다." 이제는 거절까지 배운 남자였다. 엘리제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올게요." 칼릭스는 그 말을 듣고도 한참 그녀를 보았다. 마치 그 한 문장을 혀끝에 올려 기억하려는 사람처럼. 그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엘리제는 조금 긴장했다. 그러나 칼릭스가 한 것은 단순했다. 그는 그녀의 망토 깃을 바로잡았다. "황실은 향이 많다." "네." "숨을 깊게 쉬지 마라." "네." "손수건." "품에 있습니다." "은병." "가방에 있고요." "마리." 마리가 얼른 고개를 들었다. "예, 전하." "엘리제가 괜찮다고 말하면 한 번 더 확인해라." 마리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엘리제는 어이없게 웃었다. "공작님, 제 주변에 감시망을 깔고 계십니까?" "그렇다." "당당하시네요." "필요하다." 칼릭스는 그녀의 손을 보았다. "혼자 삼키지 마라." 엘리제의 웃음이 조금 잦아들었다. 그 말은 아직 너무 이른 약속처럼 들렸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이미 그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다. 혼자 먹고, 혼자 증명하고, 혼자 버티다 죽지 말라는 말. 그녀는 천천히 답했다. "노력하겠습니다." "약속이 아니다." "아직은요." 칼릭스의 눈이 깊어졌다. "그럼 돌아와서 약속해라." 엘리제는 말을 삼켰다. "네." *** 황궁으로 가는 길은 길었다. 마차 안에서 마리는 기록 수첩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 엘리제는 창밖을 보며 마음을 정리했다. 수도의 거리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깨어나고 있었다. 상점들이 문을 열고, 수레가 움직이고, 빵 굽는 냄새가 골목 사이로 흘렀다. 마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셰프님." "응." "공작 전하께서 많이 걱정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엘리제는 창밖을 보며 답했다. "본인은 그게 걱정인지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지만." "그럼 셰프님은요?" "뭐가?" "공작 전하를…… 걱정하십니까?" 엘리제는 대답하지 못했다. 마차 바퀴 소리가 이어졌다. 걱정. 그 단어를 칼릭스에게 알려준 건 자신이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이 그를 걱정하는지 묻자 입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미각 재활 대상자니까." 마리는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그것뿐입니까?" 엘리제는 마리를 보았다. 예전의 마리라면 이런 질문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록 담당이 되더니 관찰력만 늘어난 게 아니라, 질문도 날카로워졌다. "마리." "네." "가끔 너무 잘 배워도 문제야." 마리는 눈을 깜빡이다가 살짝 웃었다. "기록하겠습니다." "그건 기록하지 마." 둘은 잠시 웃었다. 그러나 황궁이 보이자 웃음은 잦아들었다. 하얀 성벽, 금빛 지붕, 높게 솟은 탑. 황실의 중심. 그리고 오늘의 거대한 식탁. 마차가 황궁 정문을 통과했다. 향이 바로 달라졌다. 꽃향. 향수. 오래된 돌.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달고 차가운 약초 냄새. 엘리제는 눈을 가늘게 떴다. '벌써 깔려 있네.' 황실은 미식회를 시작하기도 전에 공간을 조리하고 있었다. 마리는 숨을 얕게 들이마시며 기록했다. "입구부터 단 향. 끝이 차갑습니다." "좋아. 계속 적어." 황궁 하인이 안내했다. "블레이크 공작가 대표 셰프, 엘리제 폰 라벤느 영애. 대기실로 모시겠습니다." 엘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기실로 향하는 복도에는 다른 가문의 셰프들이 모여 있었다. 대부분 중년 남자였다. 화려한 조리복, 가문의 문장, 자신감 넘치는 표정. 그들의 시선이 엘리제에게 꽂혔다. "저 여자가?" "독초 영애라던데." "공작가에서 셰프로 세웠다고?" "미식회가 장난인가." 엘리제는 그 시선을 전부 무시했다. 그때 복도 끝에서 한 남자가 나타났다. 흰 조리복. 금색 단추. 깔끔하게 묶은 짙은 머리. 그리고 어딘가 전생의 악몽처럼 익숙한 얼굴. 엘리제의 걸음이 멈췄다. '윤민재?' 아니었다. 이 세계의 인물이다. 황실 수석 요리사, 르시앙. 하지만 얼굴, 눈매, 입가의 오만함까지 너무 닮았다. 르시앙은 엘리제를 보며 천천히 웃었다. "네가 그 독초 영애인가." 마리의 손이 기록판 위에서 굳었다. 엘리제는 숨을 가다듬었다. 전생의 기억이 순간 날카롭게 스쳤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르시앙이 말했다. "주방은 귀족 영애가 명예 회복하려고 노는 곳이 아니다." 엘리제는 그를 똑바로 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주방은 놀이터가 아니죠."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선명했다. "전쟁터입니다." 르시앙의 눈이 가늘어졌다. 엘리제는 한 걸음 다가갔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제일 먼저 죽는 건, 상대를 얕보는 사람입니다." 복도 전체가 조용해졌다. 르시앙의 미소가 조금 굳었다. 엘리제는 품 안의 검은 손수건을 손끝으로 느꼈다. 돌아오라는 말. 그 말이 이상하게 힘이 됐다. 황실 미식회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첫 번째 적은, 전생의 그림자를 가진 남자였다.제국 북부의 거대한 설산을 집어삼킬 듯 무섭게 몰아치던 동토의 새벽바람이 마침내 잔인한 비명을 거두고 흔적도 없이 사그라들었다.블레이크 공작성의 가장 높은 탑 위로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자, 수십 년간 얼어붙어 있던 성벽의 성에들이 투명한 보석처럼 부서지며 눈부신 황금빛을 사방으로 반사해 내기 시작했다. 길고 길었던 황궁의 더러운 암투도, 마차 안과 귀빈실을 거쳐 이곳 공작가의 대침실까지 이어지던 파괴적이고도 농밀한 탐닉의 밤도 마침내 잿빛 안개 속으로 완전히 녹아내린, 지독하리만치 평화로운 아침이었다.그러나 오직 두 사람만의 숨소리와 맥박으로 가득 찬 공작의 대침실 내부만큼은 여전히 시간이 완전히 정지한 듯, 낮고 진득한 열기가 고스란히 정체되어 있었다.사방으로 어지럽게 흩어진 순백의 예복 실크 조각들과 뜯겨 나간 은색 단추들, 지난밤의 격렬했던 신체적 마찰을 증명하듯 기괴하게 뒤틀린 채 젖어 있는 침대 시트, 그리고 공간을 가득 메운 짙은 샌달우드 향과 달콤한 무화과 향의 잔향이 뇌리를 묵직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방 안의 밀도는 여전히 숨이 막힐 정도로 무거웠다.“으음…….”엘리제는 눈꺼풀을 서서히 들어 올리며 가녀린 신음을 입술 사이로 흘렸다.전신을 지독하게 난도질하는 듯한 뻐근한 통증이 척추 뼈마디 하나하나를 타고 무겁게 밀려왔다. 단 한 치의 자비도, 단 한 순간의 유예도 없이 그녀의 살결을 탐닉해 들어왔던 칼릭스의 잔인한 소유욕이 남긴 흔적이었다. 전생의 강서진으로서 그 어떤 혹독한 주방의 노동과 폭군 같은 선배들의 압박도 버텨냈던 그녀였지만, 모든 감각을 회복한 북부의 괴물이 밤새도록 쏟아부은 원초적인 집착을 받아내는 것은 차원이 다른 파멸적인 피로였다.그녀가 몸을 미세하게 움직이려 하자마자, 허리를 부서질 것처럼 움켜쥐고 있던 거대하고 단단한 팔뚝에 소름 끼칠 정도로 강한 악력이 다시금 들어왔다.“깨웠나.”낮고 진득하게 잠긴, 낮의 태양마저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서늘하고도 뜨거운 목소리가 엘리제의 뒷덜미를 거칠게 긁어내렸다.칼릭
수도에서 북부의 심장으로 이어지는 길고 긴 밤의 질주가 마침내 끝을 고했다.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블레이크 공작성의 거대한 대문이 육중한 쇳소리를 내며 열렸고, 두 사람을 태운 마차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마필들의 더운 숨결을 흩날리며 안뜰 정중앙에 멈춰 섰다. 북부의 한밤동을 지배하는 동토의 차가운 바람이 마차 외벽을 사정없이 때려대며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지만, 그 서늘한 냉기조차 마차 내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던 지독하고 끈적한 열기를 식히지는 못했다.달각.마차 문이 열리자마자 칼릭스는 무릎 위에 늘어져 있던 엘리제를 단 한 순간도 바닥에 디디게 하지 않은 채, 자신의 두꺼운 모피 망토로 그녀의 전신을 빈틈없이 감싸 안았다. 아침에 드레스룸에서 그토록 정성스럽게 채웠던 미드나잇 블루 빛의 실크 예복은 이미 마차 안에서 벌어진 난폭한 탐닉으로 인해 단추가 전부 뜯겨 나가고 옷깃이 처참하게 찢어진 상태였다. 다른 하녀들이나 성 안의 기사들에게 아내의 노출된 살결과 자신이 새겨놓은 붉은 낙인들을 단 한 자락도 보이지 않겠다는 괴물의 철저한 구속이자 독점욕이었다.“공작 전하를 뵙습니…….”성 문을 지키던 호위 기사들과 하녀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으나, 칼릭스는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성큼성큼 본관의 대리석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서슬 퍼런 살기와 제압감은 전장으로 향하는 총사령관의 그것보다 훨씬 더 서슬 퍼런 위압감을 품고 있었다. 엘리제는 그의 단단한 목덜미에 두 팔을 감아쥔 채, 모피 망토 안쪽의 은밀한 어둠 속에서 가쁜 숨을 골랐다. 셔츠 자락 틈새로 느껴지는 그의 우람한 가슴팍 근육은 여전히 진정되지 않은 채 터질 것처럼 거칠게 맥박치고 있었다.복도를 지나 오직 두 사람만을 위해 허락된 성의 가장 깊숙한 안동, 공작의 대침실 문이 열렸다. 칼릭스는 발끝으로 문을 부서질 것처럼 거칠게 닫아걸었다.쿵! 철컥.육중한 참나무 문이 닫히고 묵직한 금속 걸쇠가 완전히 잠기는 순간, 엘리제는 비로소 자신들이
황제와의 숨이 막힐 듯한 공식 오찬이 마침내 마침표를 찍고, 황궁 안동의 깊숙하고 창백한 대리석 통로를 지나 마침내 블레이크 공작가의 대형 마차 문이 닫히는 순간.장내를 압박하던 화려하고 가식적인 금빛 세계는 완벽하게 차단되었고, 마차 내부에는 오직 두 사람만이 호흡할 수 있는 지독하리만치 은밀하고 거대한 어둠의 장막이 내려앉았다. 마차 바퀴가 수도의 거친 돌길을 짓이기며 움직이기 시작하는 둔탁한 소음이 정적을 흔들었으나, 그 소음마저 마차 안을 가득 채운 칼릭스의 파괴적인 살기와 소유욕 앞에서는 한 자락의 먼지처럼 흩어질 뿐이었다.철컥, 철컥.마차가 코너를 돌 때마다 육중한 차체가 크게 흔들렸지만, 칼릭스는 엘리제를 자신의 무릎 위에 앉힌 채 그녀의 허리를 부서질 것처럼 강하게 껴안고 있었다.그는 오찬이 진행되는 내내, 그리고 황제가 엘리제에게 호의 어린 손을 내밀며 “조련”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던 그 찰나의 순간부터 이성의 끈이 완전히 끊어져 있었다. 완벽하게 재단된 검은색 제복 상의 너머로 느껴지는 그의 심장 박동은 평소의 침착함을 완전히 잃은 채, 폭주하는 마법 엔진처럼 거칠고 폭력적으로 맥박치고 있었다. 그 무자비한 박동이 엘리제의 둔부를 통해 전신으로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칼릭스…… 하아, 손아귀 힘이 너무 강해요. 허리가 부러질 것 같아요.”엘리제가 그의 단단하고 넓은 어깨에 이마를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속삭였다.그녀가 입은 미드나잇 블루 빛의 실크 드레스는 목끝까지 촘촘하게 은색 단추가 채워져 있어 레이스가 턱밑까지 감싸 안고 있었지만, 남자의 거친 호흡이 깃을 타고 내려올 때마다 맨살 위로 소름 끼치는 열기가 전해졌다. 목을 죄어오는 굵은 은색 사슬과 핏빛 루비 초커가 그의 악력에 들려 올라가며 엘리제의 가느다란 목선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가죽 장갑을 벗어 던진 그의 맨손가락이 초커의 날카로운 테두리를 따라 피부를 파고들 듯 강하게 짓눌렀다.“황제의 눈빛이 네 쇄골 라인이 시작되는 그 깃 끝에 머물렀다.”칼릭스의
황궁의 정오를 알리는 거대한 청동 종소리가 제국의 심장부를 무겁게 울렸다.블레이크 공작 부부를 마중하기 위해 열린 황실 안동의 귀빈 대기실은 대연회장과는 또 다른 의미로 숨이 막힐 듯한 위압감이 감돌고 있었다. 사방의 벽면을 가득 채운 순금 문양의 휘장들과 화려한 크리스탈 샹들리에에서 쏟아지는 백색의 불빛은 지나치게 사치스러웠고, 바닥에 깔린 붉은 벨벳 카펫은 발소리 하나조차 완벽하게 집어삼키며 은밀한 정적을 자아내고 있었다.“공작부인 전하, 예복의 선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지 않았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드리겠습니다.”황실 최고위 하녀장이 조심스러운 손길로 엘리제의 드레스 자락을 매만졌다.칼릭스가 직접 골라 입힌 미드나잇 블루 빛의 실크 예복은 레이스가 목끝까지 촘촘하게 짜여 있어 단 한 치의 살결도 밖으로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히려 그 완벽한 폐쇄성이 엘리제의 가느다란 목선과 유려하게 떨어지는 골반의 곡선을 노골적으로 부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목을 옥죄듯 감싸 안은 블레이크 가문의 핏빛 루비 초커는, 그녀가 제국의 구원자이기 전에 오직 한 사내의 지독한 소유물임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사슬과 같았다.엘리제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얕은 숨을 내쉬었다.단추를 목끝까지 채운 드레스는 주방의 화구 열기를 견디던 전생의 가운보다 훨씬 더 답답하게 심장을 조여왔다. 하지만 그 답답함의 진짜 원인은 옷이 아니었다. 드레스룸에서부터 마차, 그리고 이 황궁의 복도를 걸어오는 내내 자신의 허리를 부서질 것처럼 움켜쥔 채 단 한 순간도 시선을 떼지 않던 남자의 파괴적인 독점욕 때문이었다.스윽.그때, 대기실 안쪽의 대리석 기둥 뒤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움직였다.완벽하게 재단된 검은색 황실 제복을 입은 칼릭스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제국의 검이자 북부의 지배자다운 오만한 아우라가 공간을 단숨에 압도하자, 황실 하녀들은 공작의 서슬 퍼런 기운에 질려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고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칼릭스의 투명하면서도 깊은 보랏빛 눈동자가 엘리제에게로 향했
황궁 귀빈실의 높은 창문 틈새로 아침 햇살이 가늘고 길게 조각되어 쏟아졌다.수도 위를 수놓은 창백한 새벽안개가 황금빛 태양에 녹아내리는 시간이었지만, 두꺼운 암막 벨벳 커튼이 드리워진 침실 내부만큼은 여전히 어둡고 진득한 밤의 열기가 고스란히 정체되어 있었다. 사방으로 흩어진 순백의 실크 드레스 자락, 바닥에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공작의 제복 훈장들, 그리고 벽난로 안에서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장작의 매캐한 잔향이 방 안의 밀도를 숨이 막힐 정도로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으음…….”엘리제는 얕은 신음을 삼키며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전신을 지독하게 난도질하는 듯한 뻐근한 통증이 척추 마디마디를 타고 밀려왔다. 단 한 치의 자비도 없이 그녀를 몰아붙였던 지난밤의 흔적이었다. 온전한 감각을 되찾은 괴물이 십수 년의 굶주림을 보상받겠다는 듯 탐욕스럽게 탐닉해 온 결과물은 엘리제의 하얀 피부 위로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었다.그녀가 몸을 미세하게 뒤틀자마자, 허리를 빈틈없이 옭아매고 있던 거대하고 단단한 팔뚝에 더욱 강한 힘이 들어갔다.“더 누워 있어라.”낮고 잠긴, 짐승의 르누아르 같은 목소리가 엘리제의 귓가를 긁어내렸다.칼릭스는 언제나처럼 소리도 없이 눈을 뜬 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헝클어진 칠흑 같은 머리카락이 그의 이마 위로 흘러내려 야성적인 분위기를 더했고, 실크 이불 밖으로 드러난 그의 넓고 탄탄한 어깨와 흉판에는 엘리제가 쾌감에 겨워 가늘게 긁어내린 손톱자락 자국이 붉게 선을 그리고 있었다.거울처럼 투명해진 그의 보랏빛 눈동자는 오직 엘리제 한 사람만을 담은 채 기묘한 포만감과, 여전히 가시지 않은 지독한 독점욕으로 일렁였다.“칼릭스, 날이 벌써 다 밝았어요. 황실 시종들이나 하녀들이 방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텐데…… 이 팔 좀 놓아주세요.”엘리제가 그의 가슴팍을 밀어내려 손을 올렸으나, 칼릭스는 오히려 그녀의 손가락을 하나씩 붙잡아 자신의 입술 앞으로 가져갔다.검은 장갑을 벗어 던진 그의 맨손 지문이 엘리제의 가느다란 손
황궁의 온실 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는 창백한 달빛은 두 사람의 엉킨 그림자를 은밀하게 비추고 있었다.온실 안을 가득 채운 진득한 장미 향은 엘리제의 가쁜 숨결과 뒤섞여 기묘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차가운 대리석 돌벽에 등이 밀착된 엘리제는 전면에서 저돌적으로 밀려드는 칼릭스의 거대한 신체를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었다.칼릭스는 그녀의 두 손목을 조리대 벽 위로 거칠게 잡아 내리누른 채, 마치 사냥감을 온전히 가두어둔 맹수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칼릭스…… 하아, 사람들이 언제 이곳으로 들어올지 몰라요. 제발 이 손 좀……”엘리제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다그치려 했으나, 칼릭스의 투명한 눈동자에 서린 열망은 이미 이성의 끈을 아슬아슬하게 잡아당기고 있었다.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더 깊숙이 숙여, 엘리제의 새하얀 목덜미와 핏빛 루비 초커가 닿아 있는 그 예민한 경계선을 사정없이 입술로 핥아 내렸다. 쪽, 소리와 함께 질척한 점막의 마찰음이 온실의 정적을 집요하게 깨부수었다.“흐읏……! 아, 칼릭스……!”엘리제의 입술 사이로 참지 못한 신음이 튀어 나왔다. 거칠게 살을 파고드는 남자의 맨손 악력과, 전신을 불덩이처럼 달구는 배덕감이 그녀의 척추 뼈마디를 타고 뇌수까지 일직선으로 치솟아 올랐다.모든 미각과 감각을 회복한 칼릭스에게 엘리제라는 존재는 이제 단순히 맛을 느끼게 해주는 도구가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원색을 뛰어넘어, 자신의 피와 살을 통째로 지배하는 지독한 마약이자 유일한 구원이었다.칼릭스는 엄지손가락으로 엘리제의 붉게 퉁퉁 부어오른 입술 점막을 강하게 비벼대며, 가쁜 숨을 그녀의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말했을 텐데, 엘리제. 세상이 선명해질수록 내 식욕은 너 하나만을 향해 폭주한다고. 저 연회장에 서 있는 천박한 놈들이 네 어깨와 등을 바라보는 그 짧은 순간 동안, 나는 제국 전체를 불태워버리고 싶었다.”그의 목소리는 짐승의 낮은 으르렁거림처럼 뇌리를 긁어내렸다. 칼릭스는 결코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듯, 엘리제의 허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