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한소희는 이건을 황위에 올리기 위해 힘을 보태다가 북삭(北朔)에 끌려갔다. 그렇게 삼 년. 마침내 살아 돌아왔지만, 예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한때는 채찍을 휘두르며 도성의 망나니 귀공자들을 죄다 혼내 주고 다니던 후부의 아가씨였다. 하고 싶은 말은 거리낌 없이 내뱉고, 누구 앞에서도 기죽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누가 목소리만 조금 높여도 겁에 질려 온몸을 떨었다. 심지어 황후로 책봉되는 날조차 마찬가지였다. 의식 도중, 의례를 주관하던 태감이 돌연 곁의 사람을 향해 매섭게 꾸짖었다. “똑바로 못 하겠느냐!” 순간 한소희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그대로 몸을 낮춰 바닥에 엎드렸다.
Lihat lebih banyak창령산에는 유난히 일찍 봄이 찾아왔다.쌓였던 눈이 채 녹기도 전에 산허리의 늙은 복숭아나무에는 연분홍빛 꽃이 가지마다 앞다투어 피어났다.약초밭 가에 쪼그려 앉은 한소희는 고승훈을 따라 새로 돋은 약초 싹을 한 포기씩 옮겨 심느라 손톱 밑까지 온통 흙투성이였다.곁에 쪼그려 앉은 고승훈은 능숙한 손길로 모종을 옮기면서도 잔소리를 잊지 않았다.“그 줄은 모종 사이가 너무 좁소. 더 자라면 뿌리끼리 엉킬 것이오.”한소희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꾸했다.“잘못되면 고 의원님 책임입니다.”“내 책임이라니?”고승훈은 코웃음을 쳤다.“여기에 있는 약초들은 하나같이 귀한 것들이라네.”말은 그렇게 하나, 손으로는 이미 한소희가 삐뚤빼뚤 심어 놓은 모종의 자리를 하나씩 바로잡고 있었다.그렇게 지낸 지도 어느덧 이 년이 가까워졌다.한소희의 몸에 남아 있던 옛 상처는 모두 나았고, 칼솜씨도 금란이 이제야 봐 줄 만하다고 할 정도로 늘었다.이듬해 춘분(春分), 산 아래 장터에 다녀온 금란이 도성에서 온 서신 한 통을 가져왔다도성에 남아 있던 옛 부하들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보낸 서신에는 짤막한 글 몇 줄만 적혀 있었다.서신을 다 읽은 한소희는 종이를 반듯하게 접어 뜰 한쪽의 돌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마침 부엌에서 약재를 넣은 국을 끓이던 고승훈이 고개를 내밀어 한소희의 안색을 살폈다.“무슨 일이오?”“이건이 황실 종친 가운데 다섯 살짜리 아이를 양자로 들여 태자로 세웠습니다. 며칠 전에는 황위를 물려주고 출가하겠다고 천하에 알렸고요.”국자를 든 고승훈의 손이 잠시 멈췄다가 이내 다시 솥 안의 국물을 저었다.“그렇구려.”무심히 대꾸했던 그는 잠시 뒤 한마디를 덧붙였다.“그러다 속세로 돌아오거든 나를 찾아오라 하시오. 대머리에 쓰는 약이 있으니.”한소희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허리를 숙일 만큼 소리 내어 웃었다.고승훈은 웃음을 터뜨린 한소희를 말없이 바라보다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고는, 몸을 돌려 약재를 넣고 끓이던 냄비를 화덕에서 들어 내렸다.
이건은 떠났다.빗속으로 멀어지는 말발굽 소리가 이내 거센 빗소리에 삼켜졌고, 산문 밖에 선 한소희는 일행이 어두운 빗속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마당으로 돌아오자 금란이 생강차 한 사발을 들고 처마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갔습니까?”“갔다.”생강차를 모두 마신 한소희는 빈 사발을 처마 아래 돌 탁자에 내려놓았다.“금란아, 도성에 남아 있는 사람들과 아직 연락이 닿느냐?”금란의 표정이 단번에 굳어졌다.“연락할 수 있습니다.”“그쪽 움직임을 철저히 살피라고 해라. 한홍난은 결코 만만한 자가 아니다. 감히 역모를 일으켰다면, 아버지가 쥔 병권만 믿고 나선 것은 아닐 테니, 배후에 반드시 누군가 더 있을 것이다.”금란은 망설이다 결국 입을 열었다.“아씨, 혹시... 폐하가 걱정되시는 겁니까?”“나는 누구도 걱정하지 않는다.”한소희는 흐트러진 겉옷을 여몄다.“그저 그 부녀가 뜻을 이루게 두고 싶지 않을 뿐이다.”금란은 한동안 한소희를 바라보았으나 더는 묻지 않고, 곧장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홀로 돌아가던 한소희는 비가 그친 뒤의 맑고 서늘한 산 공기를 들이마시며 몇 걸음 옮기다가, 갑자기 가슴을 짓누르는 통증에 길가의 나무를 짚고 허리를 숙여 두어 번 기침했다.“비를 맞지 말라 했건만, 말은 도통 듣지 않는군.”산길 모퉁이에는 바람막이 등불을 든 고승훈이 서 있었다.그는 곧장 다가와 다짜고짜 두 손가락으로 한소희의 손목을 짚더니, 이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냉기가 또 한 겹 깊이 스며들었소.”고승훈은 맥을 짚던 손을 거두며 못마땅한 어조로 말했다.“지난 석 달 동안 치료한 보람이 하나도 없구려.”한소희가 허리를 곧게 폈다.“그렇게 심하지는 않습니다.”“심한지 아닌지는 그대가 정할 일이 아니오.”고승훈은 잠시 한소희를 바라보다가 문득 시선을 돌렸다.“함께 내 처소로 가시게. 오늘 밤은 약을 한 첩 더 써야겠소.”“고 의원님.”한소희가 부르자 그는 걸음을 멈췄지만 돌아보지는 않았다.“감
한소희는 목검의 손잡이를 힘껏 움켜쥐었다.식혀 둔 차를 주전자에 담아 오던 금란은 그 말을 듣자 미간을 찌푸리며 한소희를 돌아보았다.“아씨, 제가 가서 돌려보내겠습니다.”“그럴 필요 없다.”한소희는 목검을 칼걸이에 내려놓으며 담담히 말했다.“무릎을 꿇고 싶다면 그대로 두어라.”한소희는 금란이 건넨 질그릇 사발을 받아, 식혀 둔 차를 천천히 한 모금씩 마셨다.“계속한다.”곧 목검이 나무 말뚝을 내리치는 소리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고, 아까보다 묵직해진 타격음이 끊임없이 이어졌다.두 차례의 베기 수련을 마칠 무렵,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다.동쪽에서 밀려온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낮은 천둥이 산등성이를 울리는 가운데, 흙냄새를 머금은 바람이 수련장으로 거세게 들이쳤다.콩알만 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을 때, 한소희는 마침 마지막 일격을 끝낸 참이었다.한소희는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처마 아래에 선 채, 수건으로 목검에 맺힌 빗물을 닦았다.그때 오늘 밤 보초를 맡은 젊은이가 산 입구 쪽에서 다급히 달려오더니, 얼굴을 타고 흐르는 빗물을 훔치며 입을 열었다.“아씨, 그자가 아직도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빗줄기는 갈수록 굵어졌고, 기왓장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요란한 소리를 냈다.금란은 한소희의 곁으로 다가가 목소리를 낮췄다.“아씨, 비가 너무 많이 내립니다. 산길에 고인 물이 벌써 발목을 넘었으니, 반 시진만 더 내리면 계곡물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날 겁니다.”한소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때 뒤에서 고승훈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대로 폭우가 쏟아지면 언제 계곡물이 들이닥칠지 모르오. 하필 그자가 무릎을 꿇은 곳이 물길이 지나는 자리요.”금란의 안색이 달라졌다.“아씨, 제가 가서 당장 떠나라고 하겠습니다.”“네 말은 듣지 않을 것이다.”한소희는 목검을 칼걸이에 돌려놓았다.“한번 마음먹은 일은 누가 말려도 듣지 않는 자다.”빗줄기는 더욱 거세졌고, 그 순간 하늘을 가른 번개가 수련장 전체를 섬뜩하리만큼 하얗게 밝
“아씨.”한소희가 좀처럼 입을 열지 않자 금란이 다시 불렀다.“떠나지 않겠다.”한소희가 말을 끊자 금란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아씨...”“금란아.”한소희는 산비탈 아래에 자리한 푸른 기와와 흰 담의 집들을 바라보았다.“이 사람들은 창령산에서 얼마나 오래 살았지?”금란은 잠시 생각한 뒤 대답했다.“마님 때부터 함께해 온 이들도 있고, 가장 늦게 들어온 이들조차 이곳에 터를 잡은 지 십여 년은 되었습니다.” “십수 년을 살아온 터전인데, 어찌 나 하나 때문에 하루아침에 떠나라고 할 수 있겠느냐?”가벼운 목소리로 물었지만 금란은 선뜻 답하지 못했다.“산 남쪽의 약초밭은 고 의원의 스승님이 일구신 곳이다. 거의 이십 년 동안 약초를 심고 가꾸어 이제야 제대로 된 밭이 되었지.”“네 수련장도 삼 년 동안 흙을 거듭 다진 끝에야 이토록 단단해졌다. 오복이를 비롯한 몇몇에게는 이 산이 조상 대대로 묘를 써 온 곳이기도 하고.”한소희는 한 곳씩 손으로 가리키다가 마지막으로 산허리의 울창한 숲을 가리켰다.“내 어머니의 의관총(衣冠塚)도 이곳에 있다.”금란은 한동안 한소희를 바라보다 나직이 웃었다.“방금 하신 말씀은 마님께서 예전에 하셨던 말씀과 꼭 같으십니다.”금란은 고개를 젓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떠나지 않으시려면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수련장 주변의 초소를 삼 리 밖까지 넓히고, 밤에는 보초를 두 배로 세우겠습니다. 앞으로 다시 그자를 마주치시더라도 절대 혼자 만나셔서는 안 됩니다.”한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다.”금란이 무언가 더 말하려던 찰나, 등 뒤에서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야기는 다 끝났소?”돌아보니 고승훈이 약초 광주리 곁에 서서, 그 안에서 골라낸 약재 몇 가지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몇 번 뒤집어 보던 그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팼다.“지어 둔 약을 팔아 오라고 했더니 약은 그대로 가져오고, 골칫거리만 한 무더기 달고 왔구려. 읍내 약방에서는 이 약들을 한 할이나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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