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7화

Author: 적매화
사실 김단도 이 집에서 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가진 돈이 한 푼도 없었고 알고 있는 친구도 없었기에 떠날래야 떠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조모님은 아직 여기에 계셨다. 조모님을 홀로 남겨두고 맘 편히 떠날 순 없었다.

그렇기에 진산군과 임학이 아무리 듣기 싫은 소리를 해도 묵묵히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시선이 그릇에 닿았다.

이 사달이 난 원인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그릇에 있는 고기를 한 점 집어 입에 넣었다.

임학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먹을 마음이 생긴 것이냐? 진산군댁 첫째 아씨 성정 한 번 맞추기 어렵구나.”

김단은 임학을 한 번 쳐다본 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진산군에게 예바르게 말했다.

“노여워 마십시오. 의도적으로 도련님께서 집어주신 음식을 피한 것이 아닙니다. 몇 해 전에 몸이 상하면서 비린내가 나는 음식을 먹으면 발진과 아양으로 견딜 수 없었사옵니다. 하여 금일도 음식을 먹지 못한 것입니다. 다른 해산물에도 손을 대지 않았사옵니다.”

김단의 말에 진산군 일가는 깜짝 놀라 그녀의 앞에 놓인 접시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말대로 그녀는 어떤 해산물도 먹지 않았다.

임학은 믿기 어렵다는 듯 말했다.

“위병이 나 먹지 못한다면 믿었을 것이다. 한데 네가 제일 좋아하는 생선을 먹고 발진이 났다는 것을 나더러 믿으라는 것이냐? 내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다!”

김단은 조용히 옷소매를 거둬 자신의 팔을 보여주었다.

매질에 상처가 가득한 팔에는 발진 증세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어서 의원을 부르거라!”

부인이 다급히 외쳤다.

바로 이때, 임원의 기침 소리가 거세졌다.

목에 무엇이 걸리기라도 했는지 숨이 가쁘게 기침하는 임원의 모습에 부인은 김단은 뒷전에 두고 임원부터 살펴보았다.

그러나 임학의 시선은 여전히 김단의 팔에 향해 있었다.

이런 꼴을 보려고 한 말이 아니었다.

그저 가족들에게 체면을 주지 않는 그녀가 얄미워 모질게 말했던 것이다.

생선을 좋아했던 누이의 얼굴에 어느새 발진 증세가 일어나기 시작하자 그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진산군은 부인을 통해 그녀의 몸에 난 상처들을 들은 적 있었기에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물고기 한 점 먹은 것 때문에 이런 증세가 일어날 줄은 몰랐다.

가슴이 메는 듯한 고통에 진산군은 그녀를 마주 볼 수 없었다.

임원의 기침 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진산군이 노여움에 차서 외쳤다.

“대체 무슨 음식을 만든 것이냐! 당장 원이를 방에 데려가거라!”

그는 몸종들과 함께 임원을 데리고 갔다. 임씨 부인도 그 뒤를 쫓았다.

서둘러 달려온 의원은 진산군의 뒤를 황급히 따라갔다.

김단과 임학만 그 자리에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너…”

임학은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몰라 망설였다.

김단도 그에게 어떤 반응을 보이면 좋을지 몰라 먼저 입을 열었다.

“시간이 늦었습니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녀는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임학은 한동안 자리에 멍하게 앉아 있었다.

그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 그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매번 오해할 상황을 만든 뒤에야 해명을 하는 그녀 때문에 마치 누이를 괴롭히는 오라비로 느껴졌다.

미리 언질을 줄 수 있는 말이었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성대하게 차려진 음식을 당장에라도 엎어버리고 싶었지만 차마 엎을 수 없었고 결국 한숨을 내쉬며 자리를 떴다.

한편, 별당으로 돌아간 김단은 숙희에게 냉수를 받아오라고 명했다.

숙희는 그녀의 분부에 따라 냉수를 떠 왔고 김단은 그것을 곧장 자신의 몸에 들이부었다.

“왜 이러시는 겁니까!”

깜짝 놀란 숙희는 얼른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어제 물에 빠지셨습니다. 한데 어찌 또 이러시는 겁니까!”

숙희의 손을 잡은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이래야 발진 증세가 가라앉는다.”

이것도 자신을 괴롭히는 세답방 나인들 때문에 우연히 알게 된 방도였다. 온몸에 발진이 난 그녀를 나인들이 물에 빠뜨린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물에서 나와 보니 발진 증세가 좋아졌다.

깨끗한 옷을 준비해 온 숙희는 김단의 옷을 갈아입힌 뒤 따뜻한 차를 준비해 왔다.

두터운 옷을 걸친 뒤 창가에 앉아 차를 들이키며 진산군과 임학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비록 남의 집에 얹혀살 준비로 들어오긴 했으나 그들의 입으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가슴이 먹먹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진산군댁에서 먹고 자는 처지였다. 이 집을 떠나 혼자 살 수 있을지 막막했다. 자기 때문에 조모님의 병세가 더 악화할까 봐 두려웠다.

한편, 취향각.

소한이 미리 잡아둔 방에는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임학이 있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소한의 술 냄새가 콧잔등을 스쳐 지났다.

그의 시야로 흔들의자에서 술병을 들고 들이키는 임학의 모습이 들어왔다.

미간을 살짝 찌푸린 소한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했다.

인기척을 느낀 임학이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만 찾으시오. 나 혼자 왔으니.”

그의 말에 소한의 미간이 더욱 깊어졌다.

낮에 알겠다 답했던 김단이 오지 않자 심기가 불편했다.

“한데 누구를 찾았던 것이오?”

취기가 잔뜩 오른 임학이 조롱 어린 어투로 물었다.

“원이를 찾은 게요, 김단을 찾은 게요?”

‘김단?’

딱딱하게 누이를 칭하는 임학의 모습에 소한이 알겠다는 듯 물었다.

“또 누이와 말다툼을 한 것이오?”

“하!”

코웃음을 터트린 임학은 다시 한번 술병의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어찌 감히 말다툼을 할 수 있겠소! 그리 대단한 분한테!”

자리에 털썩 앉은 소한은 자기 술잔에 술을 따랐다.

흔들의자에서 일어선 임학이 천천히 소한에게 다가가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

“내 누이들과 전부 혼인하는 것은 어떻소?”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Comments (1)
goodnovel comment avatar
허재연
배역이름좀...글쓰면서 확인은 안하시오? 소한이 잡은방에 임학이 잔뜩술에취해있고? 방에들어서자마자 소한의술냄새...아..날시험하시오?
VIEW ALL COMMENTS

Latest chapter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1402화

    목몽설도 소식을 듣고 찾아와 마침 곁에 있었다.김단이 두 사람을 서로 소개하였다.고지운이 돌궐의 공주라는 말을 듣자, 목몽설의 눈이 순식간에 빛나며 호기심과 숨기지 않은 찬탄이 어렸다.“그대가 돌궐의 공주 전하였군요! 어찌 그리 눈매와 콧날이 곱고 또렷한지. 천생의 미인이니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합니다.”칭찬을 들은 고지운은 다소 쑥스러운 듯 볼이 붉어져 진심을 담아 말했다.“고마워. 그대도 아주 곱다.”성정이 호쾌한 목몽설은 히히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이 보잘것없는 상이 그저 반듯한 편이면 다행이지요!”“말도 안 되오.”김단이 다정히 목몽설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고지운의 말이 옳소. 그대도 아주 예쁘오.”그러고는 사람들을 이끌어 방 안의 둥근 상에 둘러앉혔다.최지습은 이미 말없이 상가에 앉아 있었다. 방 안 가득 여인네들의 기운이 감돌자 그는 조금은 몸을 곧추세우고 시선을 상 위에 떨군 채 조심스레 거리를 두었다.세심한 숙희가 가장 먼저 그의 기색을 눈치챘다. 평소보다 창백해 보이는 안색과 어딘가 어색한 앉은새를 살피다가 걱정스레 물었다.“대군자,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어디 불편하신 데가 있사옵니까?”이 말에 김단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거의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최지습의 팔을 잡아 상처를 확인하려 했다.“어찌 된 거예요? 상처가 또 터졌나요? 어서 보게 해요!”그의 마음에는 긴장과 자책이 가득했다.최지습이 재빨리 그녀의 손을 눌러 막고는 고개를 살며시 저었다. 달래듯 온기가 어린 미소를 띠었다.“걱정 마시오. 나는 괜찮소.”그러나 고지운이 최지습의 팔에 감긴 붕대를 보자마자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대군자께서 상처를 입으셨습니까? 이는 어찌된 일입니까?”“사소한 상처요. 대수롭지 않소.” 최지습은 담담히 받아넘겼다.김단은 고운 미간을 살짝 모았다. 눈빛엔 지울 수 없는 근심이 어렸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어젯밤 목씨 가문의 금역에서 겪은 위난과 소한이 중상을 입어 위태하니 자옥정초가 급히 필요하다는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1401화

    익숙한 음성에 옷깃을 매만지던 두 사람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김단을 보자 숙희와 고지운이 동시에 짧은 흐느낌을 터뜨리며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와 안겼다.“아씨!”“단이!”셋이 그대로 껴안겼고, 두 작은 울보의 눈물은 순식간에 쏟아졌다.“단이, 드디어 찾았소, 흐흐…”“아씨, 너무 보고 싶었어요, 흐흐…”"단이, 어찌 혼자 황도에 와서도 우리에겐 말 한마디 없었소? 걱정이 살을 깎는 줄 알았소, 흐흐흐…"“아씨가 혹여 숙희를 버리신 건가요, 흐흐흐…”김단의 가슴은 시고도 따뜻해졌다. 두 팔로 그들을 꽉 껴안고 한 손은 숙희의 등을 다독이며, 다른 손은 고지운의 상투를 어루만졌다. 목이 메인 다정한 음성이 흘렀다.“저도 두 분이 무척 그리웠습니다. 그런데 두 분은 어찌 갑자기 황도로 오셨습니까. 차림새는 또 왜 이 모양이십니까?”그녀는 팔을 조금 풀고, 남루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남장 차림을 꼼꼼히 훑어보았다. 반가움보다 근심이 먼저 치밀어 올라 눈매가 날카로워지더니 고지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소하는 어디 있습니까. 어찌 그대가 이렇게 달려오도록 그냥 두었단 말입니까?”조선 한양에서 황도까지는 천산만리요, 노정이 험하다. 소하가 어찌 돌궐 공주인 고지운과, 무예가 서툰 어린 숙희 둘만 길에 오르게 내버려둘 수 있단 말인가.이 말을 듣자마자 고지운의 얼굴에 곧바로 주눅 든 기색이 스치고 눈빛이 흔들렸다. 김단과 눈을 맞추지 못했다.김단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문득 모든 사정을 알아챈 듯 눈이 커지고 목소리도 높아졌다.“그대… 설마 몰래 빠져나오신 것입니까?”고지운은 곧장 답하지 않고 마치 심지에 불이 붙은 듯 김단을 홱 놓아주더니 손등으로 눈물을 거칠게 훔치고 크게 선포하였다.“나는 그와 화리하겠소!”“뭐라 하셨습니까?”김단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귀를 의심할 지경이었다.사연을 묻기도 전에 곁의 숙희가 급히 말을 가로막고 발을 동동 굴렀다.“아이고, 공주 전하! 소인이 벌써 수없이 아뢰었지요. 전하와 예종원군의 혼사는 두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1400화

    “그를 믿으라 하오?” 냉눈질로 지켜보던 목설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손에 든 금장 접부채로 손바닥을 가만히 두드리니 딱딱한 울림이 번졌다. 평소 웃음 머금은 도화빛 눈매가 가느다랗게 실처럼 좁혀지며, 표면의 장난스러움과 이면의 예리한 심문의 기색이 동시에 번뜩였다.“단이는 우리 집안사람임은 틀림없소. 평양원군의 신분 또한 천근만근처럼 무거운 법. 그러나 사람속은 격막 하나를 사이한 듯 가장 헤아리기 어려운 것. 하늘을 뒤엎을 만한 천금이 눈앞에 쏟아지면 백성의 목숨은 개미와도 같아지오. 우리더러 어찌 그이를 믿으라 하오.”김단의 낯빛이 문득 굳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분노와 실망이 가슴 밑바닥에서 치밀었다. 그녀는 줄곧 목설원이 겉으로 보이는 한량이 아님을 알았으나, 이토록 냉혹하여 인명을 하잘것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말이 그의 입에서 나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그녀가 막 준엄히 반박하려는 찰나, 의논당 문밖에서 전장의 쇳내를 실은 낮고도 꿰뚫는 음성이 들려왔다. “나 최지습은 수년 전장을 떠돌며 시체의 산과 피의 바다, 통곡으로 뒤덮인 들판을 숱하게 보아 왔다. 목씨 가문 둘째 도령 또한 그와 같은 지옥을 몸소 겪어, 부모가 어린 자식을 잃고 아내가 남편을 잃으며 아이가 기댈 울타리를 잃는 참상을 보았다면, 어찌 ‘백성의 목숨이 개미와 같다’는 따위의 말을 내뱉을 수 있겠는가.”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최지습이 벌써 발걸음을 옮겨 들어왔다. 하룻밤 가다듬은 탓에 과다출혈로 창백하던 기색에 약간의 생기가 돌았고, 걸음은 묵직하였으며 목소리에는 기운이 넘쳤다. 보기로는 상처가 큰 탈은 없는 듯했다.김단의 덜컥 올려 있던 마음이 순식간에 제자리를 찾았다. 따스함이 먼저 솟구쳤으나 곧 더 깊은 미안함이 밀려와 그것을 덮었다. 그녀 때문이 아니었다면 그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 리 없었다.최지습은 곧장 김단 곁으로 다가섰다. 시선을 떨구어 그녀의 얼굴에 닿는 순간, 눈서리가 스르르 녹아 부드러운 온천이 된 듯, 그에게서 위무의 옅은 미소가 번졌다.그러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1399화

    김단의 말은 얼음에 담가 둔 송곳처럼 서늘하고 날카로워, 이 의논당에 모인 목씨 가문의 안일한 자들 가슴을 정곡으로 찔렀다.그 한마디 한마디가 날카로운 갈고리처럼 머릿속을 파고들어, 피비린내 나는 끔찍한 장면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듯 소름이 치밀었다.의논당의 공기는 문득 얼어붙었다. 보이지 않는 한기와 서릿발이 자리를 뒤덮었다.목씨 사람들의 낯빛엔 곧장 잿빛 그늘이 드리웠다.목진강의 얼굴빛이 퍼렇게 질리며 굳어졌다. 보이지 않는 바늘에 찔린 듯 몸을 곧추세우더니, 억지로 허세를 섞은 소리를 내뱉었다.“흥, 우리 목씨가 은전이 모자라더냐. 영웅첩을 널리 돌려 강호의 일류 고수들을 모아 길잡이로 세우면 그만일 터. 우리를 위하여 뛰는 강호의 호걸이야 수두룩하다. 이 세상 길은 은전으로 닦아낼 수만 있다면, 우리 목씨에겐 결코 천애절벽이 아니니라.”그 말 끝에, 김단은 비웃음을 얕게 흘렸다.“일류 고수라니. 셋째님, 그대가 이 황금 새장에 너무 오래 갇혀 있었던 모양이오. 바깥의 이리와 범이 사람을 어떻게 갈기갈기 찢어 삼키는지 잊은 것이오?”그녀의 목소리는 한층 높아졌다.“세상에서 살의를 부추기고 양심을 휘씻는 데 가장 능한 것이 바로 은전이오. 누가 흔들리지 않았다면, 다만 그 은전의 무게가 아직 모자라 사람의 마지막 금선을 짓누르지 못했을 뿐.”독을 머금은 한칼 같은 그녀의 눈길이 창백해진 얼굴들을 천천히 훑고 지나갔다. 눈길이 닿을 때마다 등줄기를 타고 냉기가 도두 섰다.“누가 장담하오. 금역 깊숙한 천문 같은 재물이, 그 이른바 고수들을 남을 뜯어먹는 흉수로 바꾸지 않으리라.”김단의 목소리는 낮아졌으되, 서늘함은 더욱 짙어졌다.“그들이 십세를 탕진하고도 남을 보화를 눈앞에서 보게 되면, ‘남의 돈을 받았으면 화를 막는다’는 말이 그들 눈에 과연 몇 닢짜리 동전 값이나 되겠소?”그녀는 잠깐 말을 멈추어 그 상상이 스스로 부풀어 오르게 하더니, 다시 또박또박 말했다.“그때가 되면, 목씨 가문 위아래가 모조리 도륙당해 닭과 개 한 마리도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1398화

    외인이라는 두 글자는 차디찬 독침처럼 김단의 귓속을 또렷이 찔렀다.참으로 모진 풍자였다.처음에는 오직 그녀의 피만이 열쇠라 여겼을 때, 그들은 다투어 그녀를 목씨 혈맥으로 인정했다.하지만 진상이 드러나 돈혈 같은 짐승의 피만 있으면 된다고 하자, 그녀는 순식간에 경계의 선 밖으로 밀려난 외인이 되어 버렸다.이익에는 눈 밝고 화에는 등을 돌리는 목씨 가문의 몰정한 낯빛이 이 순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목몽설은 분노에 얼굴이 창백해지며 주먹을 굳게 움켜쥐었다. 고운 눈동자에는 숨길 수 없는 혐오가 서려 있었다.목설하의 얼굴에는 깊은 난처함이 드리워졌다. 그가 김단을 외면하려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 순간만큼은 가주로서 종문의 이익을 앞세워야 했다.그는 잠시 깊이 생각하더니 마침내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무거운 체념이 묻어나는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삼숙의 근심도… 일리가 있도다.”“목 가주!”김단이 참지 못하고 낮게 부르짖었다. 가슴속 마지막 희망의 불씨가 꺼져 가고 있었다.바로 그때, 줄곧 침묵하던 목설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접부채 끝으로 탁상을 가볍게 두드려 맑은 소리를 내고는 김단을 바라보았다. 복사꽃 같은 눈매에 통찰의 빛이 번뜩였다.“단이는 어찌하여 금역의 보장에 그토록 마음을 두오? 몸을 아끼지 않고 스스로 화를 무릅쓰고, 심지어…”목설원의 눈길이 뜻있게 김단의 붕대 감긴 손목을 스쳤다.“어찌하여 이토록 모든 것을 내던지오?”그녀는 몸을 약간 앞으로 기울이며, 달래듯 탐문하는 낮은 음성으로 이었다.“혹… 그 보장의 심연에, 그대가 기어이 얻어야 하는 무엇이 있는 것이오?”한마디에 의논당의 목씨 사람들 모두가 일제히 경계심을 일으켰다.그러하다. 어찌하여 외인인 김단이 금역의 보장에 이리도 집착하는가.최지습은 그녀의 연인이다. 분명 어제 막 중상을 입었거늘, 어찌하여 지금 그녀는 금역의 일만을 걱정하는가.목몽설을 제외한 모든 이의 시선에 크고 작은 의심과 적의가 어리자, 김단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끝내 실상을 밝히기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1397화

    희생이라는 말마디를 그는 끝내 입에 올리지 못했으나, 다 하지 못한 뜻은 납덩이처럼 무겁게 각자의 가슴을 짓눌렀다.목설하는 팔걸이에 올린 손을 알아채기 어려울 만큼 힘주어 움켜쥐었다. 곧 눈을 들어 목진강의 분노 어린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그리고는 또렷하게, 마치 한 글자 한 글자 새기듯 말을 내리꽂았다.“나는 물론 알고 있다. 알기에 더욱 밝혀야 한다. 우리 모두가… 그 빌어먹을 조훈에… 속아 온 것이다.”그 음성에는 기만당한 분노와, 해방에 가까운 고통이 뒤섞여 있었다.목진강은 큰 망치에 얻어맞은 듯 두 눈을 크게 부릅뜨더니 비틀거리며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떨리는 입술 끝에서 더는 한 마디 말도 이어지지 않았다.목씨 가문의 여인들의 피가 필요치 않다니.그렇다면 그의 딸, 손녀, 금역으로 보내졌던 그 살아 있던 생명들… 그들이 흘린 피와 목숨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이 시각 의논당에 모인 모든 목씨 사람들의 얼굴에도, 목진강과 다르지 않은 표정이 떠올랐다. 신념이 무너져 내린 뒤의 허망과 고통, 그리고 믿기 어려운 경악이었다.늘 세상을 가볍게 대하던 목설원조차 미간을 깊게 찌푸리고 손에 든 접부채를 무의식중에 움켜쥐었다. 언제나 웃음기를 머금던 그 눈길에, 처음으로 깊고도 아린 통증과, 결코 만나지 못한 어느 이를 향한 그리움이 스쳤다.김단은 허리가 꺾인 듯 넋이 빠져 버린 목씨 일족을 바라보며, 마음에 한 줄기 쾌감조차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가슴에 남은 것은 오직 묵직하게 가라앉는 비애뿐이었다.그녀는 깊이 숨을 들이쉬고 등을 곧추세워 담담히 입을 열었다.“목 가주, 여러 장로님들… 아뢰옵고 싶은 일이 한 가지 더 있사옵니다.”잠시 숨을 고른 뒤, 그녀의 목소리에는 영혼 밑바닥에서 솟아난 자비와 분노가 엷게 떨렸다.“금역의 첫 번째 밀실에는… 수많은 영아의 유골이 쌓여 있었사옵니다.”그리고 마침내 힘주어 덧붙였다.“그 불쌍한 아이들… 부디 사람을 보내어 정히 거두어 주시어, 땅에 모셔 편히 쉬게 하여 주옵소서.”공기는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