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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가봉 없음

Author: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8 12:01:25

[채이]

"안 돼요."

목소리가 생각보다 컸다. 예식장 사람은 목소리를 줄이는 법부터 배운다. 오늘 그 교육이 무너졌다.

"저는 직원이에요. 신부가 아니라."

"오늘 이 층에서 누가 신부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대기실 문은 당신이 막고 있었으니까."

"그건 제 일이라서."

"그럼 이것도 일로 하세요."

그가 말했다. 면사포로 얼굴을 가리면 된다고. 입장, 서약, 퇴장. 삼십 분이면 끝난다고. 식순을 읊는 목소리가 너무 평평해서 나는 잠깐 우리 홀 사회자를 떠올렸다. 그분은 적어도 신랑 이름에서 한 번 억양을 올린다.

"그다음은요? 사진, 폐백, 기자들이 이름 물어보면요?"

"그건 식 끝나고 같이 정합니다."

"같이요?"

"지금 정할 수 있는 건 하나예요. 서느냐, 안 서느냐."

무전기에서 은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채이야, 원장님이 3층 계단에 앉아 계셔. 일어나질 못하셔."

눈을 감았다.

그 계단은 예순한 해 동안 수만 명이 밟은 계단이다. 원장님은 거기서 신부들 치맛자락을 들어 주며 늙었다. 나는 그 옆에서 치맛자락 드는 법을 배웠다. 오른손으로 들고, 왼손으로 신부 팔꿈치를 받치고, 절대 앞질러 걷지 않는다.

눈을 떴다.

"하나만 약속해 주세요."

"말하세요."

"오늘 일로 봄빛이 욕먹는 일은 없게. 무슨 일이 있어도."

그가 단추에서 손을 뗐다.

"약속합니다. 오늘 일은 전부 내가 책임집니다."

짧았다. 이상하게 그래서 믿을 만했다. 길게 약속하는 사람은 대개 식 끝나고 잔금을 미룬다.

"……알겠어요."

무전기를 들었다.

"은비야, 원장님 모시고 신부대기실. 탁 실장님께 따뜻한 물. 그리고 드레스 이모님, 지금 3층."

"뭐 하려고."

"신부 준비."

이 초의 침묵.

"……누구를?"

"나."

신부대기실은 오 분 만에 야전병원이 됐다.

드레스는 언니 치수였다. 나보다 한 치수 컸다. 입자마자 등이 헐렁하게 떴다. 이모님이 손가락 세 개를 허리에 넣어 보였다.

"이만큼 남는다."

"줄일 시간은요."

"꿰매면 이십 분."

가봉 없는 드레스. 예식장 오 년에 처음 보는 사태다. 나는 허리의 남색 파우치를 풀었다. 지퍼가 반쯤 고장 나서 손으로 벌려야 한다. 고칠 시간이 없었다. 오 년 동안.

안전핀 통을 꺼냈다.

"안에서 접어서 핀으로 가요. 겉에서 안 보이게."

"몇 개 있어?"

"열두 개요."

이모님이 등 뒤에서 드레스를 여몄다. 은비가 옆에서 소리 내 셌다.

"하나. 둘. 셋."

핀 끝이 등에 닿을 때마다 어깨가 움찔했다. 신부들이 왜 가봉 날 짜증을 내는지 이해했다. 차갑다. 그리고 남의 손이다.

"다섯. 여섯. 일곱."

"됐다. 일곱이면 버틴다. 숨 크게 쉬지 마."

"네. 숨은 식 끝나고 몰아서 쉴게요."

원장님이 물을 마시다가 웃었다. 우는 얼굴로.

화장은 은비가 했다. 신부 화장 선생님은 아침에 언니 화장을 끝내고 이미 퇴근했다. 은비는 속눈썹을 붙이며 중얼거렸다.

"나 이거 너 결혼할 때 해 주려고 연습한 거다."

"미안."

"미안은 무슨. 눈 떠. 아니, 감아."

머리는 실핀 스무 개로 올렸다. 파우치의 실핀이 그걸로 바닥났다. 오늘 나는 재고를 전부 털어 결혼한다.

부케가 남았다.

"준수야, 그랜드홀 7번 테이블 센터피스. 은방울꽃이랑 안개꽃. 통째로 들고 와."

"그거 장식인데요."

"오늘부터 부케야."

준수가 들고 온 꽃은 작고 하얬다. 작약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나는 줄기를 한 줌 모아 쥐고 흰 리본을 감았다. 손이 기억하는 대로 묶었다. 오 년 동안 남의 부케가 풀리면 다시 묶어 주던 손이다. 오늘은 내 걸 묶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남의 집 열쇠로 내 집 문을 여는 것 같았다.

은비가 마지막으로 립스틱을 발라 주며 물었다.

"너 지금 무슨 생각 해."

"야구."

"뭐?"

"야구에서는 대타가 홈런 치면 영웅이잖아. 예식장에서 대타 신부는 뭐라고 부를까."

"……사고?"

"그치."

은비가 웃다가 립스틱을 삐끗했다. 입꼬리에 산호색이 한 줄 번졌다. 은비는 욕을 삼키고 면봉으로 지웠다. 원장님은 우리 둘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오 년 전 내가 처음 왔을 때도 저 한숨을 들었다. 드레스 밑단을 밟고 신부랑 같이 넘어진 날이었다.

"너희 둘은 진짜."

"원장님, 저 오늘 밑단 안 밟을게요."

"밟아도 돼. 오늘은 네 밑단이잖아."

그 말이 이상하게 목에 걸렸다. 내 밑단. 남의 드레스인데.

거울 속에 신부가 있었다. 드레스는 컸고 부케는 작았고 얼굴은 하얬다.

"예쁘다."

원장님이 말했다.

"진짜 예뻐, 채이야."

노크.

"들어가도 됩니까."

은비가 문을 열었다. 신랑은 문턱에서 한 번 멈췄다. 아주 잠깐. 내가 알아챌 만큼만. 그런 건 예식장 사람만 안다. 신랑들은 대기실 문턱에서 반드시 한 번 멈춘다. 멈추지 않는 신랑은 대개 신부를 안 보고 있다.

[재헌]

멈췄다.

이유는 모른다. 문턱이 높았다고 해 두자.

"반지 맞춰야 합니다."

백 실장이 상자를 내밀었다. 반지 두 개. 작은 쪽을 꺼냈다.

"손."

그녀가 왼손을 내밀었다. 약지에 끼웠다. 들어가자마자 헛돌았다.

"크네요."

"언니 손가락이 저보다 굵어요."

반지를 빼서 불빛에 비췄다. 안쪽 각인. J&S. 재헌과 세라. 석 달 전 주문했다. 주문서에 서명한 기억은 있는데 고른 기억은 없다.

"각인은 어쩔 수 없고. 크기는."

"잠깐만요."

그녀가 파우치에서 반짇고리를 꺼냈다. 흰 실을 끊었다. 반지 안쪽에 감았다. 빠르게. 열 바퀴쯤. 매듭. 이로 끊었다.

"다시요."

다시 끼웠다. 멈췄다. 맞았다.

반지 낀 손을 내려다봤다. 뭔가 말하려다 그만뒀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적당한 단어가 없었다.

"이런 걸 늘 들고 다닙니까."

"예식장 사람이면 다 들고 다녀요. 드레스는 꼭 식 직전에 터지거든요."

"오늘은 안 터지길."

"안전핀 일곱 개가 버텨 줄 거예요."

눈이 먼저 웃었다. 입은 그대로 두었다. 평소보다 조금 오래.

그녀가 가슴께를 더듬었다. 명찰이 탁자 위에 굴러 있었다. 은비라는 사람 손은 꽃가루투성이였고 원장은 물컵을 들고 있었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주세요."

명찰을 받아 턱시도 안주머니에 넣었다. 왼쪽. 심장 바로 위.

"식 끝나면 돌려드리죠."

복도로 나왔다. 백 실장이 수첩을 폈다.

"세 가지 확인드립니다. 회장님 보고. 신부 측 부모님이 원장실에서 소리를 지르십니다. 그리고 셋."

그가 잠깐 멈췄다.

"정말 하실 겁니까."

대답 대신 계단참 창가로 갔다. 할머니는 신호 한 번에 받았다.

"신부가 바뀝니다. 도망간 신부 대신 예식장 매니저가 섭니다. 신부 사촌 동생입니다. 식은 제시간에."

침묵. 오 초. 할머니가 오 초 넘게 말을 안 하는 건 드물다.

"그 아이 이름이 뭐냐."

"하채이입니다."

"……하가네 한복집 둘째네 딸이로구나."

"아십니까."

"식 끝나고 데려와라."

끊겼다. 이상한 대답이었다. 화도 안 내고 말리지도 않았다.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명찰 모서리가 손끝에 걸렸다. 플라스틱이 아직 따뜻했다.

"백 실장. 신부 측 부모님께. 식 끝날 때까지만 조용히 계셔 달라고. 나머지는 내가 따로 찾아뵙는다고."

"예. 셋째 질문은요."

"이미 대답했잖아."

백 실장이 수첩에 한 줄을 적었다. 안 봐도 안다. 저 사람은 늘 한 줄이다.

하겠다고 함.

[채이]

오후 한 시 십이 분. 그랜드홀 문 앞.

면사포를 두 겹으로 내렸다. 앞이 뿌옜다. 모르는 게 약일 때가 있다. 하객 이백 명의 표정이 그렇다.

손 잡아 줄 사람이 필요했다. 원래는 큰아버지였다.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는 지금 원장실에 있었다. 큰어머니가 쓰러지는 척을 두 번 했다고 은비가 전했다. 두 번째는 방향을 잘못 잡아서 소파가 아니라 바닥으로 갔다고.

나는 휴대폰을 들었다.

"아빠. 3층 그랜드홀 문 앞. 바늘꽂이 떼고."

"응? 왜."

"와서 봐."

아빠는 삼 분 만에 왔다. 앞치마를 벗은 채. 소매 끝에 실밥. 드레스 입은 딸을 보고 그대로 굳었다.

"채이야."

"아빠, 아무것도 묻지 말고 나랑 걸어 줘. 끝나고 다 말할게."

아빠의 턱이 떨렸다. 이 사람은 드라마 재방송을 보고도 운다.

"울지 마. 울면 나도 울어. 화장 번져."

"……안 울어."

아빠는 소매의 실밥을 떼고 팔을 내밀었다.

"신부 입장이 있겠습니다."

삼, 이, 일.

문이 열렸다.

길은 길었다. 오 년 동안 이 길 끝에서 수백 명의 신부를 맞았다. 신부들이 왜 다 여기서 우는지 오늘 알았다. 감동 때문이 아니다. 다리가 떨려서다. 등 뒤의 안전핀 일곱 개가 걸음마다 조금씩 당겼다.

아빠가 팔에 힘을 줬다. 작게 속삭였다.

"천천히. 우리 딸 넘어지면 아빠가 가게 옷 다 뜯는다."

웃음이 터질 뻔해서 입술을 깨물었다. 덕분에 다리가 덜 떨렸다.

길 끝에 그가 서 있었다. 아빠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아빠가 내 손을 그의 손 위에 올렸다.

차가웠다. 아주 조금 떨렸다.

이 사람도 떨리는구나.

그걸 알자 내가 덜 떨렸다. 이상한 산수였다.

서약. 사회자가 신랑 이름에서 억양을 한 번 올렸다. 신부 이름에서는 올리지 않았다. 식순표에 적힌 이름이 내 이름이 아니었으니까. 그는 끝까지 하세라라고 읽지 않고 그냥 «신부»라고만 불렀다. 우리 홀 사회자님은 역시 프로다.

반지 교환. 흰 실 감은 반지가 약지에서 흔들리지 않았다.

"신랑은 신부의 면사포를 올려 주십시오."

두 겹의 흰 천이 천천히 올라갔다. 앞이 환해졌다.

앞줄에서 누군가 숨을 들이켰다.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번졌다.

"신부가 아닌데?"

"예식장 직원 아니야? 아까 로비에서 봤는데."

셔터가 연달아 터졌다. 나는 눈을 깜빡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사진에 눈 감은 신부로 남는 건 싫었다. 직업적 자존심이다.

[재헌]

사회자의 마이크를 받았다. 그녀의 손은 놓지 않았다.

"소개가 늦었습니다."

홀이 조용해졌다.

"제 신부, 하채이입니다."

플래시가 터졌다. 하얀 빛 속에서 앞줄 끝을 봤다.

형이 천천히 손뼉을 치고 있었다.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는 안 들렸다. 읽을 수 있었다.

재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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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헌]목요일 밤 열한 시 오 분. 식탁. 그녀가 안전핀을 한 번 여닫은 뒤로 오 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배치도만 봤다.나는 백 실장 흉내를 냈다. 수첩 대신 냅킨. 볼펜으로 적었다."뭐가 남아 있는지부터."그녀가 고개를 들었다."실내 공간. 그랜드볼룸. 밤 갈라 세팅이 금요일부터 들어갑니다. 형 쪽. 로즈룸, 백 명. 스카이라운지, 팔십 명. 로비, 서서 이백 명.""낮 잔치 하객이 몇이에요.""삼백 이십.""그럼 볼룸밖에 없어요.""볼룸은 형 겁니다. 밤 갈라. 샹들리에, 샴페인 타워, 외국 연주단. 금요일 오후부터 세팅."그녀가 배치도를 뒤집었다. 뒷면에 볼펜으로 선을 그었다. 시간표였다. 열두 시부터 세 시, 낮 잔치. 세 시부터 여섯 시, 전환. 일곱 시, 갈라."같은 방을 두 번 써요. 봄빛은 토요일마다 그랜드홀 하나로 식을 세 번 해요. 식 끝나면 사십 분 만에 꽃이랑 의자 다 바꿔요. 호텔은 세 시간이면 돼요.""형이 허락할까요.""물어봐야죠."그녀가 휴대폰을 들었다. 건물주, 라고 저장된 번호. 밤 열한 시 십 분.[채이]신호가 한 번 가고 받았다."매니저님.""전무님. 태풍이요.""봤어요. 지금 볼룸 배치도 보고 있었어요."이 사람도 안 자고 있었다. 형제가 같은 시간에 같은 배치도를 보고 있었다."낮 잔치를 볼룸으로 옮기고 싶어요. 열두 시부터 세 시까지. 세 시부터 여섯 시까지 전환하고, 일곱 시에 갈라. 갈라 세팅이 세 시간 늦어져요."전화 너머가 조용했다. 삼 초."……그래요.""그래요요?""샹들리에는 원래 늦게 켜는 거예요. 해 지고 나서. 낮에 켜면 촌스러워요."웃음이 났다. 그도 웃었다. 전화 너머로."갈라 세팅팀 금요일 출근 취소할게요. 토요일 세 시에 들어가라고 하고. 그리고 매니저님.""네.""전환 세 시간. 우리 팀 인력 다 쓰세요. 내 갈라 인력이지만 낮에도 쓰세요. 복주머니 나르게."전화를 끊었다. 그가 나를 보고 있었다. 냅킨을 든 채."……형이 뭐라

  • 대타 신부   35화. 예비일 지정

    [채이]"조건이요?"민혁이 원장님 찻잔을 내려놓았다. 두 손으로. 이 사람은 오늘 모든 걸 두 손으로 했다."토요일 연회. 식순에 제 순서 하나 넣어 주세요.""……무슨 순서요.""삼 분이요. 할머니 앞에서. 직접 말할 기회. 기자 없이, 이사 없이. 매니저님이 식순 짜시잖아요."매니저님. 제수씨가 아니었다.수첩을 폈다. 연회 식순. 낮 열두 시 개회, 할머니 인사말, 개관 연회 메뉴 소개, 봄빛 사진전, 직원 가족 소개, 복주머니 나눔. 빈칸이 없었다."식순은요, 원래 양가 합의가 필요해요. 신랑 측, 신부 측.""……농담이죠.""반은요. 반은 진짜예요. 할머니 인사말 앞에 넣을게요. 할머니가 말씀하시기 전에. 할머니가 대답하실 수 있게."민혁이 나를 봤다. 그리고 원장님을 봤다. 원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식순은 매니저 권한이다. 원장님이 오 년 전에 그렇게 정했다."삼 분이면 되겠어요?""……모르겠어요. 삼십 년 치 말이라.""그럼 사 분 드릴게요. 예비로 일 분."예식장에서는 늘 예비를 둔다. 예비일, 예비 부케, 예비 안전핀. 사람 말에도 예비 일 분이 필요하다.[재헌]수요일 오후 세 시. 할머니 전화. 이번엔 본론이 늦게 나왔다."재헌아.""네."오 초. 할머니가 오 초 넘게 말을 안 하는 건 드물다. 결혼식 날 이후 두 번째."네 작은아비가 왔다 갔다. 아침 일곱 시에. 혼자 운전해서.""……네. 형한테 들었습니다.""쉰다섯 해 만에 물었다. 어머니, 제 돌잔치를 하셨습니까."할머니 목소리가 흔들렸다. 두 번째로 듣는 흔들림."그래서 말해 줬다. 했다고. 영감 몰래 봄빛 작은 방에서. 내 혼례 치마를 뜯어 입혔다고. 한복집 새댁이 돌복 삯을 안 받았다고. 지갑에서 사진을 꺼내 줬다. 쉰다섯 해 만에 주인한테 갔다.""……작은아버지는요.""울더구나. 쉰여섯 살짜리가. 내 앞에서. 그리고 버선을 한 켤레 얻어 신고 갔다. 네 처가 두고 간 무명 버선. 발에 꼭 맞는다더라."전화 너머에서 찻잔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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