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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갤러리 대관

Autor: Jino
last update Data de publicação: 2026-10-18 12:05:28

[채이]

시아버지가 커피를 다 마셨다. 빈 잔을 창가 책상에 내려놓았다. 메뉴판 옆. 스테이크 동그라미 두 개 옆.

"하나 부탁하겠소."

"네."

"네 시어머니를 만나고 가겠소. 열두 해 만에."

나는 수첩을 꺼냈다. 버릇이다. 누가 누구를 만난다고 하면 수첩부터 나온다.

"자리를 좀 만들어 주겠소? 상견례를 이백 번 넘게 했다며. 반장이 그러더군."

실 라인은 해외에서 온 사람한테도 닿는다.

"이백열세 번이요. 이번이 이백열네 번째예요."

"상견례는 아니오. 이미 결혼한 두 사람이니까. 열두 해 동안 따로 살았을 뿐."

"그럼 더 어려운 자리네요."

시아버지가 처음으로 웃었다. 소리 없이. 눈만. 그 웃음을 알았다. 넉 달 동안 매일 봤으니까. 아들이 아버지를 닮았다. 아버지는 그걸 모를 것이다.

[채이]

그날 오후. 갤러리 서경에 전화했다. 관장님이 직접 받았다.

"어머님. 채이예요."

"알아. 무슨 일이니."

"아버님이 오셨어요. 1207호에 계세요. 어머님을 뵙고 가시겠대요."

전화 너머가 조용했다. 붓 씻는 소리도 없었다. 아주 오래.

"……그 사람이 그러더냐."

"네.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하셨어요. 제가요."

"너는 왜 한다고 했니."

대답은 짧게. 이 분한테는 정확하게.

"재헌 씨가 서른두 해 동안 어머님이 자기를 두고 가신 줄 알았대요. 어제 아버님한테 처음 들었어요. 어머님이 데려가려고 하셨다는 거. 갤러리 이층에 방까지 만드셨다는 거."

숨소리가 멈췄다. 전화 너머에서.

"그래서 자리를 만들고 싶어요. 어머님이 그 방을 재헌 씨한테 보여 주실 수 있게요."

긴 침묵. 그리고 관장님 목소리가 들렸다. 평소보다 반 박자 늦게.

"……수요일 저녁. 일곱 시. 이층에서."

"음식은 제가 준비할게요. 아버님 좋아하시는 거 있으면 알려 주세요."

"……그 사람은 겨울마다 발이 찼다. 삼십삼 년 전엔."

"버선 있니."

"하가네요."

"그래. 그럼 됐다."

끊겼다. 할머니 방식이었다. 이 집 여자들은 결론을 먼저 말하고 끊는다.

[재헌]

화요일 오후. 아버지를 모시고 할머니 댁에 갔다. 아버지가 운전하겠다고 했다. 열두 해 만의 서울 길을 헤맸다. 내비게이션을 안 켰다. 할머니 아들이다.

대청마루. 할머니가 아버지를 봤다. 오래. 찻잔을 들지 않았다.

"왔구나."

"영상 보내셔서요."

"그래. 반대하러 오라고 보냈다."

아버지가 멈췄다. 나도 멈췄다.

"네가 반대하러 올 줄 알았다. 칭찬하러는 안 올 애니까. 반대라도 하러 와야 얼굴을 보지."

할머니가 그제야 찻잔을 들었다.

"열두 해 동안 나한테 전화 한 통 안 하던 애가, 손자 결혼 영상 하나에 비행기를 타더구나. 영상이 전화보다 세다."

아버지가 대청마루 끝에 앉았다. 신발도 안 벗고. 한참 있다가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 할머니 앞에 무릎을 꿇었다. 큰절이었다.

할머니는 말없이 받았다. 찻잔을 내려놓았다. 결론.

돌아오는 차에서 아버지가 말했다. 이번엔 내비게이션을 켰다.

"네 할머니는 사람을 부르는 법을 안다."

"네. 식장도 그렇게 정하셨습니다."

"……그 얘기도 들었다. 복주머니 삼백 개."

아버지가 신호에 멈췄다. 창밖을 봤다.

"나는 우리 집 호텔 첫 잔치 바느질삯을 사십 년 동안 몰랐다. 청구서가 없었으니까."

[재헌]

화요일 밤. 그녀가 말했다. 수요일 저녁, 갤러리, 이층.

"……이층."

"네."

"저는 거기 한 번도 안 올라가 봤습니다. 어머니가 늘 잠가 두셨습니다. 창고라고 하셨어요."

그녀가 식탁 너머로 내 손을 잡았다. 요즘 그녀가 먼저 잡는 일이 늘었다. 안전핀을 여닫는 횟수는 줄었다.

"창고 아니래요."

"압니다. 이제."

단추를 돌리려는데 그녀 손이 내 손목을 덮고 있어서 못 돌렸다. 대신 그녀 손등을 엄지로 쓸었다. 한복집에서 배운 게 아니다. 식탁 밑에서 처음 그녀 손목을 잡았던 날, 그날부터 배운 것이다.

[채이]

수요일 오후 세 시. 한복집. 버선을 받으러 갔다.

아빠가 무명 버선을 한지에 싸다가 물었다.

"시아버지는 발이 몇 문이시냐."

"몰라. 열두 해 해외에 계셨어."

"해외 오래 있으면 발이 시리지. 거기 사람들은 방바닥을 안 데우니까."

아빠가 선반에서 한 켤레를 더 꺼냈다. 한 치수 큰 것. 두 켤레. 엄마가 옆에서 쪽빛 자투리 명주를 접어 손수건 한 장을 따로 쌌다. 가장자리 감침질이 아직 따뜻했다. 방금 인두로 누른 것이었다.

"이건 시어머니 거. 갤러리 하시는 분은 쪽빛 좋아하셔. 색이 예쁘잖아."

엄마 논리는 늘 이상하고 늘 맞는다.

"엄마. 우리 시부모님 열두 해 만에 만나시는 거야."

"그러니까 버선이 두 켤레지. 열두 해 치 언 발 녹이려면."

[채이]

수요일 오후 다섯 시. 갤러리 서경. 삼층짜리 붉은 벽돌 건물. 일층 전시실, 이층 잠긴 문, 삼층 관장님 작업실.

관장님이 이층 문을 열어 줬다. 열쇠가 녹슬어 한 번에 안 돌았다.

안은 작은 방이었다. 창 하나. 어린이 침대 하나. 책상 하나. 벽지는 하늘색에 작은 은색 네모 무늬. 그 네모를 한참 봤다. 커프스 단추 모양이었다. 아니, 커프스 단추가 이 벽지 모양이었다. 순서가 반대였다.

먼지는 없었다. 누가 자주 닦은 방이었다.

"삼십 년 됐다. 매주 닦았어. 한 번도 안 쓴 방인데."

관장님이 창가에 섰다. 나를 보지 않고.

"재헌이가 대학 졸업할 때 준 커프스 단추. 이 벽지 보고 골랐다. 은색 네모. 그 애는 몰랐겠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대신 파우치를 열었다. 흰 실을 만지작거렸다. 이 분은 모를 것이다. 그 단추 뒤에 흰 실이 감겨 있다는 걸. 아니, 알 것이다. 재헌 씨가 전화로 말했다고 했으니까. 그 사람이요, 라고.

다섯 시 반부터 상을 차렸다. 방 가운데 접이식 탁자. 탁 실장님 갈비찜, 엄 셰프 탕평채, 잡채. 그리고 녹두전. 탁자 끝에는 한지에 싼 하가네 버선 두 켤레. 개관 연회 메뉴에서 네 가지.

관장님이 탁자를 보고 물었다.

"이건 무슨 메뉴니."

"도원호텔 개관 연회 메뉴요. 할머니가 기억하신 거."

관장님이 잠깐 멈췄다.

"……우리 결혼 피로연도 이 메뉴였다. 도원에서 했거든. 삼십삼 년 전."

몰랐다. 우연이었다. 우연은 가끔 예식장 매니저보다 좌석 배치를 잘한다.

의자를 놓았다. 네 개. 탁자 한쪽에 두 개, 창을 향해 나란히. 반대쪽에 두 개.

관장님이 그걸 봤다.

"왜 나란히 놓니. 마주 보게 해야지."

"마주 앉으면 서로 얼굴만 보여요. 나란히 앉으면 같은 쪽을 보게 돼요. 창밖이요."

관장님이 나를 한참 봤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의자를 옮기지도 않았다.

[재헌]

저녁 일곱 시. 갤러리 계단. 아버지가 먼저 올라갔다. 나는 뒤따랐다. 이층 문이 열려 있었다.

아버지가 문턱에서 멈췄다. 어제 1207호에서처럼.

하늘색 벽지. 은색 네모. 어린이 침대. 창가 책상.

나도 멈췄다. 문턱에서. 두 사람이 연달아 문턱에서 멈추는 걸 그녀가 방 안에서 보고 있었다.

어머니가 창가에 서 있었다. 회색 실크 블라우스.

"……당신 방이다, 재헌아. 한 번도 못 써 봤지만."

어머니 목소리가 떨렸다. 처음 들었다. 어머니가 떠는 소리를.

들어갔다. 벽지를 만졌다. 은색 네모. 손끝에 닿는 감촉. 소매의 단추를 봤다. 같은 모양이었다. 삼십이 년 동안 몰랐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란히 앉았다. 창을 향해. 그녀가 정한 자리.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창밖을 봤다. 같은 쪽.

아버지가 먼저 말했다.

"당신이 데려가겠다고 했을 때. 내가 반대했지."

"……그랬죠."

"틀렸소."

어머니가 창밖을 본 채로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젓가락을 들었다. 갈비찜 한 점. 아버지 접시에 올렸다. 열두 해 만이었을 것이다. 누가 누구 접시에 뭘 올린 건.

아버지가 그걸 먹었다. 천천히.

"……피로연 때 맛이군."

"기억해요?"

"당신이 세 점 먹고 나한테 눈치 줬잖소. 체면 차리라고."

어머니가 웃었다. 소리 내서. 나는 그 소리를 서른두 해 만에 처음 들었다.

맞은편에 앉은 그녀가 식탁 밑에서 내 손을 잡았다. 이번엔 그녀가.

식사가 끝나 갈 즈음 아버지가 그녀를 봤다.

"봄빛 얘기 들었소. 12월 31일."

"……네."

"리조트 일 하면서 배운 게 하나 있소. 건물은 팔려도 이름은 안 팔린다. 사람들이 그 이름으로 기억하는 동안은."

그녀가 수첩을 꺼냈다. 이 자리에서도. 아버지가 그걸 보고 눈으로만 웃었다.

"적어 두시오. 그리고 등기부 볼 줄 아는 사람한테 물어보시오. 누가 무엇을 샀는지. 이름까지 샀는지."

[채이]

밤 아홉 시 반. 갤러리 계단. 관장님이 나를 배웅하러 내려왔다. 두 남자는 아직 이층에 있었다. 아버님이 재헌 씨한테 그 방 창문 너머 가로수 얘기를 하고 있었다. 삼십 년 전 저 나무가 이만했다고.

관장님이 계단참에서 멈췄다.

"옆자리에 앉힌 거. 네 짓이지."

"좌석 배치요. 예식장에서 배웠어요."

관장님이 나를 봤다. 위에서 아래로. 옷으로 한 번. 그리고 처음으로 말로 한 번.

"……고맙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 파우치. 앞으로도 빼지 마라. 옷보다 쓸모 있으니까."

관장님이 한지 꾸러미를 들어 보였다. 엄마가 싼 것.

"이건 네 어머니가 싼 거니."

"네. 갤러리 하시는 분은 쪽빛 좋아하신대요. 색이 예쁘다고."

관장님이 꾸러미를 열어 손수건을 꺼냈다. 창밖 가로등 불빛에 비춰 봤다. 짙은 남색. 가장자리 감침질이 한 땀도 삐뚤지 않았다.

"……맞는 말이구나. 이 색은 물감으로 안 나온다."

계단참에서 관장님이 손수건을 목에 둘렀다. 갤러리 관장님이 계단에 서서 자투리 명주를 목에 두르는 걸 본 사람은 나뿐이다. 실 라인에도 안 올릴 것이다. 이건 내 거다.

[재헌]

밤 열 시. 갤러리 앞. 차에 타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백 실장.

"부사장님.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말해."

"전무님이 방금 긴급 이사회 안건을 올리셨습니다. 월요일 오전."

그녀가 차 문을 열다 멈췄다. 내 얼굴을 봤다. 오늘 하루 중 제일 좋은 얼굴이었던 내 얼굴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안건명은. 사십 주년 기념 연회 총괄 권한 이관의 건."

백 실장이 숨을 한 번 골랐다.

"부사장님에게서, 전무님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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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헌]목요일 밤 열한 시 오 분. 식탁. 그녀가 안전핀을 한 번 여닫은 뒤로 오 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배치도만 봤다.나는 백 실장 흉내를 냈다. 수첩 대신 냅킨. 볼펜으로 적었다."뭐가 남아 있는지부터."그녀가 고개를 들었다."실내 공간. 그랜드볼룸. 밤 갈라 세팅이 금요일부터 들어갑니다. 형 쪽. 로즈룸, 백 명. 스카이라운지, 팔십 명. 로비, 서서 이백 명.""낮 잔치 하객이 몇이에요.""삼백 이십.""그럼 볼룸밖에 없어요.""볼룸은 형 겁니다. 밤 갈라. 샹들리에, 샴페인 타워, 외국 연주단. 금요일 오후부터 세팅."그녀가 배치도를 뒤집었다. 뒷면에 볼펜으로 선을 그었다. 시간표였다. 열두 시부터 세 시, 낮 잔치. 세 시부터 여섯 시, 전환. 일곱 시, 갈라."같은 방을 두 번 써요. 봄빛은 토요일마다 그랜드홀 하나로 식을 세 번 해요. 식 끝나면 사십 분 만에 꽃이랑 의자 다 바꿔요. 호텔은 세 시간이면 돼요.""형이 허락할까요.""물어봐야죠."그녀가 휴대폰을 들었다. 건물주, 라고 저장된 번호. 밤 열한 시 십 분.[채이]신호가 한 번 가고 받았다."매니저님.""전무님. 태풍이요.""봤어요. 지금 볼룸 배치도 보고 있었어요."이 사람도 안 자고 있었다. 형제가 같은 시간에 같은 배치도를 보고 있었다."낮 잔치를 볼룸으로 옮기고 싶어요. 열두 시부터 세 시까지. 세 시부터 여섯 시까지 전환하고, 일곱 시에 갈라. 갈라 세팅이 세 시간 늦어져요."전화 너머가 조용했다. 삼 초."……그래요.""그래요요?""샹들리에는 원래 늦게 켜는 거예요. 해 지고 나서. 낮에 켜면 촌스러워요."웃음이 났다. 그도 웃었다. 전화 너머로."갈라 세팅팀 금요일 출근 취소할게요. 토요일 세 시에 들어가라고 하고. 그리고 매니저님.""네.""전환 세 시간. 우리 팀 인력 다 쓰세요. 내 갈라 인력이지만 낮에도 쓰세요. 복주머니 나르게."전화를 끊었다. 그가 나를 보고 있었다. 냅킨을 든 채."……형이 뭐라

  • 대타 신부   35화. 예비일 지정

    [채이]"조건이요?"민혁이 원장님 찻잔을 내려놓았다. 두 손으로. 이 사람은 오늘 모든 걸 두 손으로 했다."토요일 연회. 식순에 제 순서 하나 넣어 주세요.""……무슨 순서요.""삼 분이요. 할머니 앞에서. 직접 말할 기회. 기자 없이, 이사 없이. 매니저님이 식순 짜시잖아요."매니저님. 제수씨가 아니었다.수첩을 폈다. 연회 식순. 낮 열두 시 개회, 할머니 인사말, 개관 연회 메뉴 소개, 봄빛 사진전, 직원 가족 소개, 복주머니 나눔. 빈칸이 없었다."식순은요, 원래 양가 합의가 필요해요. 신랑 측, 신부 측.""……농담이죠.""반은요. 반은 진짜예요. 할머니 인사말 앞에 넣을게요. 할머니가 말씀하시기 전에. 할머니가 대답하실 수 있게."민혁이 나를 봤다. 그리고 원장님을 봤다. 원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식순은 매니저 권한이다. 원장님이 오 년 전에 그렇게 정했다."삼 분이면 되겠어요?""……모르겠어요. 삼십 년 치 말이라.""그럼 사 분 드릴게요. 예비로 일 분."예식장에서는 늘 예비를 둔다. 예비일, 예비 부케, 예비 안전핀. 사람 말에도 예비 일 분이 필요하다.[재헌]수요일 오후 세 시. 할머니 전화. 이번엔 본론이 늦게 나왔다."재헌아.""네."오 초. 할머니가 오 초 넘게 말을 안 하는 건 드물다. 결혼식 날 이후 두 번째."네 작은아비가 왔다 갔다. 아침 일곱 시에. 혼자 운전해서.""……네. 형한테 들었습니다.""쉰다섯 해 만에 물었다. 어머니, 제 돌잔치를 하셨습니까."할머니 목소리가 흔들렸다. 두 번째로 듣는 흔들림."그래서 말해 줬다. 했다고. 영감 몰래 봄빛 작은 방에서. 내 혼례 치마를 뜯어 입혔다고. 한복집 새댁이 돌복 삯을 안 받았다고. 지갑에서 사진을 꺼내 줬다. 쉰다섯 해 만에 주인한테 갔다.""……작은아버지는요.""울더구나. 쉰여섯 살짜리가. 내 앞에서. 그리고 버선을 한 켤레 얻어 신고 갔다. 네 처가 두고 간 무명 버선. 발에 꼭 맞는다더라."전화 너머에서 찻잔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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