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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연회 총괄

Author: Jino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10-18 12:05:35

[재헌]

목요일 아침. 형한테 문자를 보냈다.

[1207호. 오늘 저녁. 스테이크 얘기.]

답장은 한 시간 뒤에 왔다. 형은 늘 오 분 안에 답한다. 한 시간은 처음이었다.

[월요일 이사회에서 보자.]

그게 다였다. 도망 안 간다던 형이 이사회 뒤로 갔다. 1207호를 본 다음 날이었다. 여덟 살의 방. 크레파스 동그라미. 형아꺼.

형은 그 방을 보고 무서워졌을 것이다. 무서우면 사람은 제일 익숙한 곳으로 숨는다. 형한테 제일 익숙한 곳은 숫자였다. 이사회, 안건, 표결.

백 실장이 수첩을 폈다.

"월요일 이사회 표 계산입니다. 작은아버님, 전무님. 두 표. 사외이사 넷 중 윤 이사님은 부사장님 쪽. 두 분은 전무님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준비 부실이 이유입니다. 총주방장 이탈, 주방 인력 절반, 하우스키핑이 서빙."

"하우스키핑 서빙이 왜 부실이지."

"아마추어 잔치라는 말이 돌았습니다. 전무님 쪽에서."

단추를 돌렸다. 아마추어. 여섯 명이 이십 년 동안 한 번도 박자를 안 놓친 노래를 불렀다. 그 사람들이 아마추어라면 이 호텔에 프로는 없다.

"나머지 한 분은."

"아버님이십니다."

"……아버지가 이사입니까."

"해외 리조트 사장 자격으로 이사 명단에 계속 계셨습니다. 열두 해 동안 한 번도 안 나오셨고요. 월요일엔 나오신답니다."

[채이]

목요일 오후. 봄빛 원장실. 동네 법무사 할아버지가 왔다. 원장님 시어머니 때부터 봄빛 서류를 봐 준 분이라고 했다. 여든이 넘었다. 돋보기가 두 개였다. 하나는 쓰고 하나는 목에 걸고.

시아버지 말을 전했다. 건물은 팔려도 이름은 안 팔린다. 등기부 볼 줄 아는 사람한테 물어보라.

할아버지가 서류 뭉치를 넘겼다. 오래.

"건물은 도원개발 거 맞네. 땅이랑 건물. 잔금도 다 치렀고."

원장님 어깨가 내려갔다.

"근데 이거."

할아버지가 누런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목에 건 돋보기로 바꿔 썼다.

"봄빛웨딩홀. 이 이름. 삼십칠 년 전에 원장님 시어머님이 상호로 등록해 놓으셨네. 이건 건물이랑 따로야. 건물 산 사람이 이름까지 산 건 아니지."

"……그럼요?"

"건물 새 주인이 여기서 예식장을 하려면 봄빛이라는 이름은 못 써. 원장님 허락 없이는. 그리고 원장님이 딴 데 가서 예식장을 차리면 봄빛이라는 이름은 들고 갈 수 있지."

원장님이 입을 막았다.

"우리 시어머니가 그걸 왜."

"그 양반이 그랬어. 건물은 쌀집 영감 거지만 봄빛은 내 거라고. 그 말 듣고 내가 등록해 드렸지. 삼십칠 년 전에. 자네는 그때 여기 직원이었지. 시집오기도 전이고."

할아버지가 돋보기를 벗었다.

"이름은 사람이 적어야 남는 거라서."

원장님 시어머니 말이 또 일을 했다. 사람은 우리가 적어야 한다. 이름도.

건물은 못 지킨다. 그런데 봄빛은 건물이 아니었다. 이름이었다. 사람이었다. 머릿속에서 딸깍 소리가 났다. 이번엔 아주 크게.

[재헌]

금요일 밤. 식탁. 그녀가 법무사 할아버지 얘기를 했다. 상호 등록. 삼십칠 년 전. 원장님 시어머니.

"건물 산 사람이 이름까지 산 건 아니래요."

"……형이 그걸 모를 리가 없습니다. 형은 등기부를 외우는 사람입니다."

"알았으면 뭐 해요. 이름이 원장님 거인데."

그녀가 웃었다. 오랜만에 크게. 나도 웃었다. 우리 둘이 식탁에서 동시에 소리 내 웃는 건 이제 드문 일이 아니다. 식탁이 적응했다.

"그럼 봄빛은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겁니까. 이름만 들고."

"건물 있으면요. 예식장 할 만한."

"……건물이라."

그녀가 내 눈을 봤다. 손가락 하나를 들었다.

"당신 돈 말고요."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단추가 세 바퀴 돌았어요. 돈 생각할 때 세 바퀴 돌아요."

백 실장보다 빠르다. 칠 년짜리 통역을 다섯 달 만에 따라잡았다.

[채이]

토요일 저녁. 할머니 전화. 이번에도 본론부터.

"월요일 이사회 전에 들러라. 내일."

일요일 오후. 본가 안방. 할머니가 복사본이 든 봉투를 가리켰다. 내가 들고 온 것. 늘 파우치 안쪽에 넣어 다니는 것. 안전핀 일곱 개, 대추 한 줌, 그리고 이 봉투.

"그 애가 요즘 1207호 앞을 서성인다더구나."

"……반장님이요?"

"그래.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퇴근길에 12층에 내려서 그 방 앞에 서 있다가 간단다. 문도 안 두드리고."

민혁이 그 방 앞에. 크레파스 동그라미. 형아꺼.

"그 애가 물을 때가 됐다."

할머니가 찻잔을 들었다. 기다렸다. 나도 기다렸다. 오래.

"네가 보기에 그 아이가 물을 때가 됐거든, 보여 줘라."

"……제가요? 할머니가 하셔야죠."

"내가 먼저 말하면 또 명령이 된다. 쉰다섯 해 동안 내가 그 애한테 한 말은 다 명령이었다. 공부해라, 들어와라, 전무 해라. 이건 명령이 되면 안 된다."

찻잔이 내려놓였다.

"네가 보여 주면 그건 편지가 된다. 한복집 새댁 글씨로 된 편지."

봉투를 파우치 안쪽에 도로 넣었다. 안전핀 일곱 개 옆에. 무거웠다. 종이 한 장이 이렇게 무거운 건 처음이었다.

[채이]

일요일 밤 아홉 시. 호텔 12층. 반장님이 알려 준 시간.

엘리베이터 옆 비상구 문틈에 섰다. 복도 끝 1207호. 불 꺼진 문. 아버님은 이틀 전에 스위트로 옮기셨다. 방은 원상 복구 상태 그대로 비어 있었다. 반장님이 그대로 두라고 총지배인한테 부탁했다고.

아홉 시 사 분.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민혁이었다. 혼자. 커피도 없이.

1207호 앞에 섰다. 손을 들었다. 노크하려는 손. 문에 닿기 전에 멈췄다. 한참. 그리고 손을 내렸다. 주머니에 넣었다.

문 앞에 서 있기만 했다. 오 분. 십 분. 이 사람은 이 방에서 스테이크를 시켰다. 크레파스를 줬다. 그리고 스물네 해 뒤 이 방 앞에서 노크를 못 한다.

파우치 안쪽을 만졌다. 봉투. 할머니 말. 물을 때가 됐거든.

아직이었다. 이 사람은 아직 묻지 않았다. 문 앞에 서 있는 건 묻는 게 아니다. 묻기 직전이다. 식장에서도 그렇다. 신부가 문 앞에 서 있다고 입장하는 게 아니다. 삼, 이, 일이 필요하다.

민혁이 돌아섰다. 엘리베이터를 눌렀다. 나는 비상구 문 뒤에서 숨을 참았다. 엘리베이터가 닫혔다.

한 번 더. 그다음이다. 속으로 셌다.

[재헌]

월요일 오전 열 시. 22층 대회의실.

아버지가 왔다. 열두 해 만의 이사회. 할머니 오른쪽 자리. 아무도 그 자리에 앉지 않았었다. 열두 해 동안 비어 있던 자리.

형이 발표했다. 화면에 숫자들. 총주방장 이탈, 주방 인력 절반, 레시피 파일 반출. 서빙 인력 대체 방안 부재, 하우스키핑 투입.

"낮 행사는 사실상 동네 잔치 수준입니다. 도원호텔 사십 주년에 자투리 비단 복주머니와 갈비찜과 하우스키핑 서빙. 밤 갈라는 투자자와 외신이 옵니다. 낮의 아마추어 행사가 밤 갈라의 격을 떨어뜨립니다. 전체 총괄을 제게 넘겨 주십시오. 낮 행사는 축소하겠습니다."

일어섰다. 그녀는 이 자리에 없었다. 봄빛에 예식이 있었다. 그녀 없이 서는 건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녀 말이 전부 머리에 있었다. 뭐가 남아 있는지부터.

"남아 있는 걸 말씀드리겠습니다."

화면을 바꿨다. 사진 세 장.

엄하늘 셰프. 탁 실장님. 허 막내 어르신의 기름때 묻은 공책.

"총주방장은 나갔습니다. 대신 개관 연회 주방 막내의 레시피가 돌아왔습니다. 사십 년 만에. 할머니가 시식하셨습니다."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사들이 할머니를 봤다.

"서빙 인력. 하우스키핑 여섯 명, 그중 한 분은 이십 년 전 연회팀. 벨 데스크 지호 씨. 그리고 봄빛웨딩홀 직원 전원이 무급으로 옵니다. 답례 복주머니는 개관 때 복주머니 삼백 개를 지어 준 하가네가 짓습니다. 개관 때처럼."

형이 웃었다. 오늘은 확실히 끝이 갈라져 있었다.

"감동이네. 그게 투자자한테 통해?"

"투자자는 모르겠습니다. 이 호텔 사십 년을 버틴 사람들한테는 통합니다."

아버지가 손을 들었다. 열두 해 만의 발언.

"리조트 일 하면서 본 건데. 손님은 샹들리에를 기억 못 해. 누가 자기 이름을 불러 줬는지를 기억하지."

할머니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공동 총괄이다. 낮은 재헌이, 밤은 민혁이. 둘 다 잘해라."

형이 고개를 숙였다. 너무 빨리. 이긴 것도 진 것도 아닌 결과를 너무 쉽게 받았다. 뭔가 따로 준비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회의실을 나서는데 복도에서 아버지가 형을 불러 세웠다.

"민혁아."

형이 멈췄다. 돌아봤다. 열두 해 만에 큰아버지를 보는 얼굴.

"컸구나."

나한테 한 말과 같았다. 로비에서. 재헌이, 컸구나. 아버지는 두 조카를, 아니 아들과 조카를 같은 말로 불렀다.

형이 흠칫했다. 뭔가 말하려다 삼켰다. 고개를 숙이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갔다. 빠르게. 도망가는 걸음이었다. 도망 안 간다던 형이.

[채이]

월요일 저녁 여섯 시. 봄빛 뒷문. 쓰레기통 옆.

그가 아니었다. 회색 양복. 흰 이어폰. 이어폰은 목에 걸려 있었다. 귀에 꽂지 않고.

방준기 과장.

"사모님."

처음이었다. 이 사람이 나한테 말을 건 건. 다섯 달 동안 휴대폰을 가로로 들고 서 있던 사람.

"드릴 게 있습니다."

봉투를 내밀었다. 받지 않았다.

"왜 저한테요."

방 과장이 쓰레기통을 봤다. 부사장님 지정석을.

"창고에서. 전무님이 그거 내놓으라고 하셨을 때. 사모님이 안 주셨습니다. 그리고 쓰지도 않으셨습니다. 저는 그 뒤로 한 달 동안 기다렸습니다. 사모님이 그걸 기자한테 주실 줄 알고. 안 주셨습니다."

방 과장이 이어폰 줄을 만지작거렸다.

"저는 칠 년 동안 전무님 옆에서 휴대폰을 가로로 들었습니다. 결혼식 날 비상계단 문도 제가 열었습니다. 전무님이 시키신 대로. 그게 제 일이었습니다."

봉투를 다시 내밀었다. 이번엔 받았다.

"전무님은 모르십니다. 제가 이걸 드리는 거."

열어 봤다. 종이 한 장. 일정표. 10월 11일 토요일. 오후 네 시. 도원호텔 삼층 소회의실. 기자간담회.

안건명을 읽었다. 두 번. 세 번.

도원호텔 매각 검토에 관한 설명회. 주최, 강태준 부회장.

연회 날이었다. 낮 잔치와 밤 갈라 사이. 같은 건물 삼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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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헌]목요일 밤 열한 시 오 분. 식탁. 그녀가 안전핀을 한 번 여닫은 뒤로 오 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배치도만 봤다.나는 백 실장 흉내를 냈다. 수첩 대신 냅킨. 볼펜으로 적었다."뭐가 남아 있는지부터."그녀가 고개를 들었다."실내 공간. 그랜드볼룸. 밤 갈라 세팅이 금요일부터 들어갑니다. 형 쪽. 로즈룸, 백 명. 스카이라운지, 팔십 명. 로비, 서서 이백 명.""낮 잔치 하객이 몇이에요.""삼백 이십.""그럼 볼룸밖에 없어요.""볼룸은 형 겁니다. 밤 갈라. 샹들리에, 샴페인 타워, 외국 연주단. 금요일 오후부터 세팅."그녀가 배치도를 뒤집었다. 뒷면에 볼펜으로 선을 그었다. 시간표였다. 열두 시부터 세 시, 낮 잔치. 세 시부터 여섯 시, 전환. 일곱 시, 갈라."같은 방을 두 번 써요. 봄빛은 토요일마다 그랜드홀 하나로 식을 세 번 해요. 식 끝나면 사십 분 만에 꽃이랑 의자 다 바꿔요. 호텔은 세 시간이면 돼요.""형이 허락할까요.""물어봐야죠."그녀가 휴대폰을 들었다. 건물주, 라고 저장된 번호. 밤 열한 시 십 분.[채이]신호가 한 번 가고 받았다."매니저님.""전무님. 태풍이요.""봤어요. 지금 볼룸 배치도 보고 있었어요."이 사람도 안 자고 있었다. 형제가 같은 시간에 같은 배치도를 보고 있었다."낮 잔치를 볼룸으로 옮기고 싶어요. 열두 시부터 세 시까지. 세 시부터 여섯 시까지 전환하고, 일곱 시에 갈라. 갈라 세팅이 세 시간 늦어져요."전화 너머가 조용했다. 삼 초."……그래요.""그래요요?""샹들리에는 원래 늦게 켜는 거예요. 해 지고 나서. 낮에 켜면 촌스러워요."웃음이 났다. 그도 웃었다. 전화 너머로."갈라 세팅팀 금요일 출근 취소할게요. 토요일 세 시에 들어가라고 하고. 그리고 매니저님.""네.""전환 세 시간. 우리 팀 인력 다 쓰세요. 내 갈라 인력이지만 낮에도 쓰세요. 복주머니 나르게."전화를 끊었다. 그가 나를 보고 있었다. 냅킨을 든 채."……형이 뭐라

  • 대타 신부   35화. 예비일 지정

    [채이]"조건이요?"민혁이 원장님 찻잔을 내려놓았다. 두 손으로. 이 사람은 오늘 모든 걸 두 손으로 했다."토요일 연회. 식순에 제 순서 하나 넣어 주세요.""……무슨 순서요.""삼 분이요. 할머니 앞에서. 직접 말할 기회. 기자 없이, 이사 없이. 매니저님이 식순 짜시잖아요."매니저님. 제수씨가 아니었다.수첩을 폈다. 연회 식순. 낮 열두 시 개회, 할머니 인사말, 개관 연회 메뉴 소개, 봄빛 사진전, 직원 가족 소개, 복주머니 나눔. 빈칸이 없었다."식순은요, 원래 양가 합의가 필요해요. 신랑 측, 신부 측.""……농담이죠.""반은요. 반은 진짜예요. 할머니 인사말 앞에 넣을게요. 할머니가 말씀하시기 전에. 할머니가 대답하실 수 있게."민혁이 나를 봤다. 그리고 원장님을 봤다. 원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식순은 매니저 권한이다. 원장님이 오 년 전에 그렇게 정했다."삼 분이면 되겠어요?""……모르겠어요. 삼십 년 치 말이라.""그럼 사 분 드릴게요. 예비로 일 분."예식장에서는 늘 예비를 둔다. 예비일, 예비 부케, 예비 안전핀. 사람 말에도 예비 일 분이 필요하다.[재헌]수요일 오후 세 시. 할머니 전화. 이번엔 본론이 늦게 나왔다."재헌아.""네."오 초. 할머니가 오 초 넘게 말을 안 하는 건 드물다. 결혼식 날 이후 두 번째."네 작은아비가 왔다 갔다. 아침 일곱 시에. 혼자 운전해서.""……네. 형한테 들었습니다.""쉰다섯 해 만에 물었다. 어머니, 제 돌잔치를 하셨습니까."할머니 목소리가 흔들렸다. 두 번째로 듣는 흔들림."그래서 말해 줬다. 했다고. 영감 몰래 봄빛 작은 방에서. 내 혼례 치마를 뜯어 입혔다고. 한복집 새댁이 돌복 삯을 안 받았다고. 지갑에서 사진을 꺼내 줬다. 쉰다섯 해 만에 주인한테 갔다.""……작은아버지는요.""울더구나. 쉰여섯 살짜리가. 내 앞에서. 그리고 버선을 한 켤레 얻어 신고 갔다. 네 처가 두고 간 무명 버선. 발에 꼭 맞는다더라."전화 너머에서 찻잔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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