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MELDEN222화. 데이트“저는 지금 구경만 하고 싶어요. 그리고 제 심장도 좀 쉬게 해 주시고요. 오늘 단 씨 때문에 몇 번이나 놀랐는지 아세요?”“그럼 앞으로는 가끔만 놀라게 해야겠군.”“가끔은 괜찮다는 말이 아니거든요?”“하지만 효과가 좋다고 하지 않았어?”서연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한 말을 이렇게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단 씨, 천 년 동안 말싸움에서 져 본 적 없으시죠?”“많지는 않았던 것 같군.”“역시.”서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입가에 걸린 웃음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오늘은 정말 구경만 할게요. 이십억짜리 데이트면 충분하거든요.”“데이트였어?”단이 그녀를 돌아봤다.“그럼요. 같이 외출해서 손도 잡고, 쇼핑도 했잖아요. 조금 비싼 쇼핑이긴 했지만요.”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서연은 그가 무슨 말을 할지 기다렸다. 혹시 경매에 참석한 것이 어떻게 데이트가 될 수 있느냐고 진지하게 반문하는 건 아닐까 싶었는데, 예상과는 전혀 다른 대답이 돌아왔다.“그럼 저녁도 먹어야겠군.”“네?”“데이트라며. 저녁 식사까지 해야 제대로 된 데이트 아닌가?”서연은 잠깐 말을 잊었다.이 남자는 자신이 던진 농담을 종종 이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언제나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좋아요. 그럼 저녁은 제가 살게요.”"좋아. 네가 사준다니 기대하지."단은 대답 대신 그녀의 손을 들어 올렸다.손등에 부드러운 입맞춤이 내려앉자 서연은 잠시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다른 참석자들은 무대 위의 청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아까는 장소를 가리라고 하시더니.”“이 정도는 괜찮지 않나?”“정말 기준을 모르겠네요.”“알려 줄까?”서연은 단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왠지 들으면 제가 더 불리해질 것 같아요.”단은 그녀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다시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서연도 그를 따라 청자를 바라보았다.경매장을 나설 무렵에는 이미 해가 저물어 있었다.금동 용머리를 낙찰받고 수아의
221화. 효과가 있어?평소 같았으면 이런 말을 꺼내는 것도 쑥스러워했을 녀석이 진심을 전하니, 서연은 그 한마디에 괜히 코끝이 시큰해졌다.“알았어. 수아 씨나 잘 챙겨 줘. 그리고 너도 무리하지 말고.”- 응. 나중에 연락할게.통신이 끊기자 서연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수아가 안동에 무사히 도착하기 전까지는 마음을 완전히 놓을 수 없겠지만, 적어도 가장 큰 고비는 넘겼다.단은 그런 서연을 잠시 바라보다 무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이제 마음 편히 감상해도 되겠군.”“네. 다른 물건에도 최민준의 손길이 닿아 있는지 살펴보고요.”“그것도 좋고, 네가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추가로 구매하는 것도 좋고.”서연은 그를 돌아봤다.“정말요? 이번에는 얼마까지 가능한데요?”“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능하지.”너무도 태연한 대답이었다.서연은 잠시 단의 얼굴을 살폈다. 농담을 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문제는 그가 마음만 먹으면 정말로 무슨 물건이든 사 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단 씨, 지금 일부러 이러는 거예요? 저 기분 좋으라고?”단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효과가 있어?”“……그걸 꼭 확인하셔야겠어요?”“결과가 몹시 궁금하군.”서연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천 년을 살아온 도공이 연애 앞에서는 가끔 이렇게 진지한 연구자처럼 굴었다.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을 알아내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자신이 한 말에 서연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유심히 살피는 모습이 어쩐지 사랑스러웠다.“효과 아주 좋으니까 더 연구하지 마세요. 지금도 충분히 위험하거든요.”“위험하다고?”“네. 자꾸 이러시면 제가 경매장에서 단 씨한테 입 맞출지도 몰라요.”단의 시선이 잠시 그녀의 입술에 머물렀다.서연은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어머. 지금 기대하셨어요?”“연, 그런 말은 장소를 가려서 해. 아직 네가 어디까지 진심인지 구분하는 게 쉽지 않으니까.”서연은 장난스럽게 대답하려다가 잠시 멈췄다.단의 시선이 여전히 자신의 입술 근처에 머물러 있
220화. 고마워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수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한 걸음 내딛는 것조차 두려워하던 수아가 웃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행이었다.“거봐. 웃으니까 훨씬 낫잖아. 자, 이제 가자. 여기서 오래 머물러 봐야 좋은 일 없으니까.”수아는 마지막으로 사무실을 돌아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미련은 없었다.“걱정하지 마. 적어도 여기서 나갈 때까지는 내가 책임질 테니까.”“……네. 가요.”수아는 은랑의 팔을 붙잡고 문밖으로 걸음을 옮겼다.경매장에서는 다음 출품작의 낙찰이 진행되고 있었다.금동 용머리의 낙찰이 끝난 뒤에도 경매장은 여전히 활기를 띠었다. 경매사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곳곳에서 번호표가 올라갔고, 참석자들은 저마다 관심 있는 유물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서연은 무대 위에 놓인 유물을 바라보다가 옆에 앉은 단에게 고개를 돌렸다.“단 씨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으세요?”“뭐가?”“이십억짜리 유물을 낙찰받으셨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태연하세요? 저는 옆에서 입찰가 올라가는 것만 봐도 심장이 두근거리던데요.”단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았다.“낙찰받은 게 마음에 걸려?”“아니요. 필요한 일이었으니까요. 그걸 후회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이십억이라는 금액이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오가는 게 신기해서요. 마지막에 경매사가 낙찰을 선언할 때는 저도 모르게 손에 땀까지 났거든요.”“그랬어?”단의 시선이 두 사람이 맞잡고 있던 손으로 향했다.서연은 그제야 자신의 손이 여전히 그의 손안에 있다는 사실을 의식했다.“지금 확인하시는 거예요?”“손에 땀이 났다며.”“아까 그랬다는 거죠. 지금은 괜찮아요.”“다행이군.”서연은 그를 바라보다가 어이없다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이십억 원을 쓴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옆에서 구경한 자신만 돈의 무게를 실감하고 있었다.아무리 돈이 많아도 이 정도면 조금쯤 긴장할 법하지 않은가.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어폰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
219화. 나가자“저…… 나가고 싶어요.”수아는 그 말을 꺼내 놓고도 한동안 입술을 다물지 못했다.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믿기지 않았다.나가고 싶다.루나는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따라 바라보다가 손을 내밀었다.“좋아. 그럼 나가자.”“……네?”“나가고 싶다면서요. 우리도 그 말 들으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설마 이제 와서 못 들은 척하겠어요?”수아는 얼떨떨한 얼굴로 루나를 바라보았다.눈앞의 여자는 마치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사람에게 이제 집에 가자고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대답했다.“정말…… 이렇게 해도 되는 거예요?”“그럼. 다만 몸에 걸린 주술 때문에 조금 조심해야 해.”루나는 수아의 손목을 가볍게 잡았다.“우선 감시하는 부분부터 끊을 거야. 나머지는 안전한 곳으로 이동한 뒤에 풀어야 하고.”“그럼 최민준이 제가 도망친 걸 모를까요?”“영원히 모르게 할 수는 없어. 하지만 적어도 어디로 갔는지 곧바로 찾아내지는 못하게 할 수 있지.”수아의 얼굴에 잠시 안도감이 스쳤다가 다시 굳어졌다.“제가 명령을 어기면…….”그녀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루나는 그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지 알고 있었다.수아에게 걸린 주술은 단순히 사람을 감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명령을 거스르는 순간 생명력을 갉아먹도록 만들어진 속박이었다.오래전부터 수많은 주술을 보아 온 루나였지만,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붙잡아 두는 자들을 볼 때마다 혐오감을 감추기 어려웠다.“수아 씨,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어.”루나는 그녀와 눈높이를 맞췄다.“감시 주술은 여기서 끊을 수 있어. 하지만 속박은 함부로 건드리면 안 돼. 최민준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어 놨는지 확인해야 하거든. 그러니까 이동하는 동안은 무리하지 말고, 몸이 아프면 바로 말해 줘.”“그럼 제가 도망쳤다는 사실을 알면…….”“그 사람이 뭘 하든 우리가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거야.”루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그리고 수아 씨. 지금부터는 그 사람이 아니라 우리 말을
218화. 나가고 싶어요“알아. 하지만 연까지 움직이면 최민준이 눈치챌 가능성이 커져. 금동 용머리를 낙찰받은 직후에 우리가 함께 사라지면 의심하지 않겠어?”서연은 물잔을 내려다봤다.경매장에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최민준의 시선을 붙잡아 둘 수 있다면.“그래도 여기서 기다리기만 하려니까 마음이 놓이지 않아요.”“루나와 은랑이 있잖아. 둘 다 쉽게 당할 상대는 아니야.”단은 서연의 손을 감싸 쥐었다.정화를 마친 뒤부터 차가워진 손끝이 아직 따뜻해지지 않았다. 물잔을 가까이 밀어 주었지만 서연은 마실 생각조차 없는 듯했다.수아를 구하지 못할까 봐 두려운 것도 있겠지만,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어려운 것이리라."그들을 믿어.”서연은 그를 올려다봤다.단은 더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가 잡고 있던 손을 놓지 않은 채 기다렸다.“알겠어요. 우리 은랑씨랑 루나언니를 걱정하다니, 제가 참 많이 컸네요.”“우리 은랑아니고, 그냥 은랑. 그리고 우리는 지금 가만히 있는게 아니고, 그들의 시선을 잡고 있는거야.”연이 그와중에 단어를 짚어내는 단을 보고 피식 웃었다.단은 통신을 연결했다.“서단, 김 실장에게 연락해. 수아를 데리고 나오면 곧바로 안동 안가로 이동한다.”“네 알겠습니다.”“루나가 감시 주술부터 끊을 거야.”서연은 단을 돌아봤다.“안동에 안가가 있었어요?”“오래전에 마련해 둔 곳이야. 주술을 해제하는 동안 방해받을 일도 없을 거야.”“그럼 김 실장님이 수아 씨를 데려가고, 루나 언니랑 은랑이 거기서 나머지 주술을 푸는 거네요.”“그래.”“저희는 여기 남아서 최민준의 관심을 끌고요.”단이 고개를 끄덕이자 서연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평범한 연애를 꿈꿨던 자신에게 누군가 이런 미래를 알려 줬다면 절대로 믿지 않았을 것이다.‘정말 평범하게 연애하기는 글렀네.’서연은 무심코 단의 손을 다시 잡았다.“단 씨.”“응?”“그냥 손 좀 잡고 있을게요.”단은 대답 대신 서류를 보던 손을 바꿨다. 서연이 잡은 손은 그대로 둔
217화. 낙찰“이십억 원에 낙찰되었습니다!”경매사의 선언과 함께 낙찰봉이 울리자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서연은 무대 위의 금동 용머리를 바라보다 옆자리의 단에게 고개를 돌렸다.신선의 파편을 되찾고 주술까지 정화했으니 이제 안심해도 될 일이었지만, 낙찰가를 떠올리자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다.이십억이라니.유물의 가치를 인정한 건 자신이었지만, 실제로 그 금액을 지불하는 사람이 바로 옆에 앉아 있다는 사실은 좀처럼 실감 나지 않았다.“단 씨, 정말 이십억 원에 사신 거예요?”“그렇지.”“어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저는 제 돈도 아닌데 손이 떨리는데.”단은 서연의 손을 내려다봤다.정말로 조금 떨리고 있었다. 경매가 끝나기 직전까지 신력을 사용한 탓인지 손끝도 차가웠다.그는 자연스럽게 서연의 손을 잡아 자신의 손바닥 안에 감쌌다.“많이 힘들었나?”“네? 아니요. 돈 때문에 놀란 거라니까요.”“……그런가.”단은 손끝을 가볍게 문질러 주었다.서연은 그 손을 내려다보다 그의 손가락 사이로 제 손가락을 끼워 넣었다.“그래도 단 씨 손이 따뜻해서 좋네요.”단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그는 공연히 무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그럼 계속 잡고 있지.”서연은 그의 옆얼굴을 바라보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천 년을 살아온 사람이 이런 순간에는 참 서툴렀다.그게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물론 단에게 그런 말을 했다가는 괜히 무뚝뚝한 표정으로 돌아앉을지도 몰랐다.서연은 모르는 척 그의 어깨에 살짝 기대었다.단은 그녀가 편히 기댈 수 있도록 자세를 조금 고쳐 앉았다. 그러고는 서연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무대 위에서 진행되는 다음 순서를 바라봤다.그때 이어폰에서 서단의 목소리가 들렸다.“누나, 형. 수아가 최민준한테 불려 갔어.”서연은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어디로?”“보관동 안쪽 사무실. 은랑 형이 확인했어. 그런데 최민준이 금동 용머리 낙찰 직후부터 움직임이 좀 이상해. 주술이 풀린 걸 알아챈 것 같아.”단은 무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