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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작가: 김미미
last update 게시일: 2026-06-28 20:01:05

“야 진짜 괜찮은 애라니까. 한 번만 만나봐.”

“글쎄 관심 없다니까.”

점심 식사 후 몸풀기용으로 함께 농구 중이던 도원이 윗옷 끝단으로 땀을 닦는 해이에게, 끈질기게 제안했다. 줄곧 거절하는 친구가 이해되지 않았다.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예쁘장한 외모에 교육학과인 데다 성격 또한 매우 좋은 학생이었다. 대체 무엇이 부족해서 거절한다는 말인가.

“자, 얼굴 봐봐. 예쁘지?”

액정에 띄운 여러 개의 사진을 친히 넘겨주며 열성을 다하는 도원의 적극적인 태도가 점점 부담스러워지던 해이는 농구공을 튕기며 제 눈앞까지 드밀어진 핸드폰을 밀어냈다.

“그만해라. 관심 없다고 하잖아. 야, 너 농구 안 할 거면 그만 가.”

“아니, 얘가 진짜 이럴 애가 아닌데, 계속 나한테 부탁한단 말이야. 내 얼굴을 봐서라도 한 번만 만나주라 응?”

이번엔 대꾸조차 하지 않고 끈덕지게 달라붙는 친구를 내버려둔 채 그가 홀로 농구대를 향해 나아갔다. 큼지막한 걸음으로 다가선 골대 쪽으로 줄곧 들고 있던 공을 던졌다. 넓게 호선을 그리며 날아가던 공은 깔끔하게 그물망을 통과했다.

바닥을 튕기며 떨어진 공을 다시 드리블하며 갖고 온 그가 다시 한번 공을 집어넣었다. 몇 차례 이어지는 그 모습을 망연자실하게 지켜보던 도원은 제 친구가 뜻을 굽힐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곤 터덜터덜 그에게로 다가갔다.

“나쁜 새끼. 그게 뭐 어려운 부탁이라고. 같이 해, 자식아!”

도원이 포기한 모양이라 그가 좀 편안해진 기분으로 친구에게 공을 패스했다. 두 사람은 그 뒤로 사소한 실랑이를 잊고 농구 게임에만 매진했다.

...

빠르게 원룸 계단에 올라서는 사내의 옷은 온통 땀으로 젖어있었다. 실기수업이 있었던 탓에 신체활동이 많았지만, 지친 기색 없이 팔팔했다. 현관문을 열기 전 남자가 무의식적으로 옆집을 응시했다. 미세하게 소음이 울렸다. 텔레비전 소리 같기도 대화 소리 같기도 한, 일상적인 소리였다.

몇 달간 쥐 죽은 듯 고요했던 곳에서 소리가 나니 그건 그것대로 이상하게 여겨졌다. 웬일인가 싶었다.

해이는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젖은 옷을 벗어 던지고 샤워를 했다. 욕실에서 한창 씻고 있을 무렵, 출처가 옆집인 것이 분명한 소음이 더욱 명확하게 들려왔다.

마치 악몽이라도 꾸는듯한 신음이 연이어 이어졌다. 모른 척을 하기엔 상황이 위험해 보여서 그는 대강 샤워를 마무리 짓고 옷을 걸쳐 입었다. 빠른 동작으로 옆집 현관 앞에 멈춰 선 사내는 망설임 없이 초인종을 눌렀다.

“계세요?”

남자의 굵직한 손마디가 두드러진 주먹이 이내 현관을 두드렸다. 안에서 반응이 없으니, 혹여나 옆집 사람이 기절이라도 했을까 봐 그의 힘이 실린 노크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괜찮으세요? 저기요!”

신고할 생각으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려는 찰나, 끽, 괴이한 소리를 내며 옆집 현관문이 열렸다. 이번에도 문을 열다 말기에 그가 빠르게 손을 집어넣어 문을 열어젖혔다. 다행스럽게도 문손잡이를 붙잡고 있지 않았던 옆집은 맨 발로 바닥을 밟는 일은 모면했다.

“...어디 아파요?”

이번엔 모자를 쓰고 나올 여력이 없었던 모양인지 대신, 긴 앞머리를 푹 내린 채 서 있었다. 얼굴의 반절은 가리고 있는 앞머리는 땀에 젖어있었다.

“일부러 엿들은 건 아닌데, 그쪽이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려서.”

사내는 문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서 슬쩍 옆집의 집 안을 들여다봤다. 불이 꺼진 방 안은 어두웠지만, 텔레비전을 켜놓은 모양인지 불빛이 새어 나왔다. 집 안의 구조상 해이의 화장실과 옆집의 거실이 붙어있는 듯했다.

“아프신 것 같은데, 혼자 괜찮겠어요?”

옆집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그저 고개만 끄덕거렸다. 해이는 그 모습을 보며 못마땅한 듯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사람이 말이 하면 기본적으로 얼굴은 쳐다봐야지. 무슨 놈의 예의가 이따위야.

“저기요. 고개 들어봐요.”

다소 무례함이 느껴지는 말이라는 건 그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옆집인 만큼 앞으로 마주칠 일이 잦을 텐데, 서로 얼굴 정도는 익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데다 첫 만남부터 음산한 기운을 내뿜었던 이 사람이 은근히 저를 경계하고 피하고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무언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계속 이렇게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 풀 생각이었다.

근처 원룸은 대부분이 학교가 같은 학생이 살고 있으니까 어쩌면 옆집도 저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줄도 모른다. 해이는 되도록 부드러운 억양으로 다시 한번 이야기했다.

“제가 덩치가 있어서 처음엔 겁을 먹는 사람들도 많은데, 저 그렇게 무서운 사람 아니에요. 고개 들어봐요. 바닥에 뭐 돈이라도 떨어졌어요?”

그가 친해질 요량으로 애써 가볍게 말하며 옆집의 어깨를 잡았다. 오랜 운동으로 굳은살이 박인 투박한 손이 움찔 떨렸다. 해이는 저의 손끝에서 느껴지는 가냘픔에 좀 더 상대에게 몸을 기울였다.

땀에 젖은 앞머리 사이로 살짝 상대의 눈이 보였다. 흔들리는 검은 눈동자가 해이를 탐색하듯 바라보다가 다시 떨어졌다.

“...괜찮으니까 돌아가세요.”

뭐라고 말을 걸기도 전에 작은 사내는 제 집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마치 외부 사람과는 눈길도 닿으면 안 되는 사람처럼 질겁을 하고 도망간 옆집은 다시 고요했다.

해이는 집으로 돌아와서도 옆집 사람의 어깨에 닿았던 제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굳은살이 박인 손은 잘게 떨리고 있었다.

고개를 갸웃하며 명확하지 않은 이상함을 느끼던 남자는 이내 고민을 그만두었다.

...

302호는 옆집 남자가 제집으로 돌아간 것을 도어락의 작동 소리를 듣고 알아챘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입술 새로 비집고 흘러나왔다. 얼굴을 내보이면 안 되는 강박관념이라도 있는 것처럼 제 앞머리를 정돈하는 손길이 매우 다급하고 불안했다.

‘괜찮아, 괜찮아.’

저를 그나마 안정되게 하는 단어를 속으로 수없이 되뇌며 이불 속으로 좀 더 제 몸을 깊숙하게 숨겼다.

-

다음 날, 거실 바닥에서 일어난 302호는 미처 끝까지 내리지 못한 창문 블라인드를 마저 잡아 내렸다. 그러자 온전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밤인지 낮인지 알 수 없게 돼버리니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거실 테이블 위의 작은 조명을 켜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며칠 전 새벽에 사다 둔 음식들이 밑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외출을 더는 미룰 수가 없는 지경이라 째깍거리는 벽시계로 시선을 돌렸다.

2시 10분을 이제 막 넘어가고 있었다. 지금이 새벽인지 낮인지는 알 수 없었다. 302호는 잠시 고민하다가 일단 몸을 씻기로 했다. 화장실 거울을 통해 보이는 제 모습이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본인이 대강 듬성하게 자른 짧은 머리와 음울한 얼굴색. 푹 꺼진 눈 밑. 새하얗게 껍질이 일어난 입술까지. 마치 죽을 날을 받아 놓은 사람 같아 보였다.

어쩌면 저의 처지와 매우 잘 어울리는 몰골이라 편안하게 느껴지긴 했다. 화장실 선반을 열자마자 보이는 종이봉투 안에서 현금을 한 움큼 꺼내 들고 곧장 거실로 나왔다. 날씨와는 상관없이 겉옷을 걸쳐 입으니 순간 깨질듯한 두통이 몰려왔다.

“절대 맨살을 보이시면 안 됩니다. 자매님.”

“정신이 타락하니 육체도 타락하시는 겁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번 한 번만 신께 기도드리겠습니다.”

“더러운 육체와 정신을 성수로 씻겨드리겠습니다. 제 앞으로 서시지요.”

“자, 벗으세요.”

“벗고 기도합시다.”

머리를 부수며 들어오는 사내의 목소리에 구역질이 났다. 제 머리를 터뜨릴 듯이 양손으로 꽉 움켜잡은 손이 파르르 떨려왔다. 몸이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무르팍이 바닥에 처박혔으나 그런 자잘한 아픔은 두통에 가려 느껴지지도 않았다. 마치 어제의 일처럼 적나라하고 끔찍하게 되풀이되는 환영에 무릎을 꿇고 몸을 움츠렸다.

저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곤 이것밖에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302호는 그렇게 한동안 온 힘을 다해 몸을 구기며 숨을 골랐다.

머릿속을 집요하게 맴돌던 목소리가 점차 잠잠해졌다. 한껏 말려있던 작은 몸이 천천히 풀렸다. 입었던 겉옷을 벗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모자를 쓰고, 바깥으로 나왔다. 어두웠던 시야가 갑자기 밝아졌다.

...

“안녕하세요!”

“......”

웬일로 한낮에, 마트에서 옆집 사람을 발견한 해이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얼굴을 알아봤다기보단 그 사람의 모자를 알아챘다. 시커먼 모자를 푹 눌러쓴 모양새가 딱 제 옆집 사람이라 계산하려다 말고 말을 걸었다.

“엄청 덥네요. 오늘.”

저가 산 물건들을 봉투에 담아 넣으면서도 그가 옆집의 옷차림을 살폈다. 거무튀튀한 겉옷을 늘 입고 다니더니 오늘은 그나마 반팔 티를 입고 있었다. 손목엔 여전히 어울리지 않은 투박한 시계가 채워진 채였다.

젊은 사내가 줄곧 아는 척을 해오자, 상황을 불편해하며 옆집 사람이 모자를 더욱 깊게 눌러썼다. 이미 보이는 얼굴이라곤 없는데도 더 가리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급히 음식 재료들을 현금으로 계산하고 봉투 안에 짐을 챙겨 넣던 사람은 제 몸통만 한 짐을 양쪽 손에 하나씩 들고 급히 자리를 빠져나왔다.

“주세요. 들어드릴게요.”

버겁게 들려있던 짐이 순식간에 해이의 손으로 옮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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