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민우는 상의 교복을 벗어 던지고 흰 반팔티 차림으로 고무장갑을 꼈다. 그리고 락스와 수세미를 들고 변기 앞으로 돌진했다. 같이 청소 조가 된 아이들이 구석에서 빗자루로 장난을 치고 있을 때, 민우는 홀로 변기 안쪽의 묵은 때를 빡빡 문질렀다.
"야, 강민우. 너 대충 해. 어차피 검사도 대충 하셔."
아이들이 말렸지만 민우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민우의 손길이 지나간 자리는 눈이 부시도록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바닥의 타일 틈새까지 칫솔로 문지르는 민우의 모습은 흡사 전문 청소 업체의 직원을 연상케 했다.
결국 화장실은 호텔 화장실 못지않게 번쩍번쩍해졌고, 검사를 하러 온 담임선생님은 화장실 문을 열자마자 풍기는 향기로운 락스 냄새와 광이 나는 변기들을 보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어, 우리 학교의 보배, 민우 오는구나! 오늘도 파이팅이다!""예! 선생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민우는 각 잡힌 90도 인사를 올리고 교실로 향했다. 교실 문을 열자, 아이들이 일제히 민우를 주목했다. 단 일주일 만에 불량 청소년에서 전교생이 아는 '아오지급 모범생'으로 떡상한 아이콘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자리에 앉자마자 단짝인 민석이 의자를 바짝 끌어당기며 다가왔다."야, 강민우. 너 어제 자전거 배달하다가 우리 엄마 만났다며?""어? 지훈이네 어머님 말고 너희 어머님도 만났나?""어! 우리 엄마가 너 치킨 배달하는 거 보고 감동 받아서, 어제 나 집에 오자마자 등짝 스매싱을 날리시더라니까? 왜 너는 민우 반의반도 못 따라가냐고! 덕분에 내 용돈 깎이게 생겼어. 책임져, 자식아!"민석이 억울하다는 듯 투덜댔지만 민우는 그저 훈훈하게 웃으며 민석의 어깨를 툭 쳤다."민석아, 어머니가 널 사랑하셔서 그러는 거야. 등짝을 맞을 수 있는 어머니가 곁에 계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행복인지 넌 아직 몰라.""아, 또 시작이다, 선비 고딩. 너 진짜 무슨 종교라도 믿는 거냐?"민석은 질색하며 고개를 저었지만, 속으로는 매일 짜증만 부리던 민우가 이렇게 밝고 긍정적으로 변한 모습이 싫지만은 않았다.이윽고 1교시 시작 종이 울리고 담임선생님이 들어왔다. 선생님은 조례를 시작하기 전, 교단에 서서 지그시 민우를 바
한편, 민우의 대변신은 학교를 넘어 동네 아주머니들 사이에서도 뜨거운 화제였다.그날 오후, 정숙은 아파트 단지 내 벤치에서 동네 주부 모임에 참석했다. 평소 같으면 자식 자랑 바쁜 이웃들 사이에서 늘 고개를 숙이고 있던 정숙이었다. 기껏해야 "우리 애는 공부는 못해도 착해요"라는 상투적인 말밖에 할 수 없었던 그녀였다.하지만 오늘은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옆집 지훈 엄마가 먼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아니, 민우 엄마! 대체 민우한테 무슨 교육을 시킨 거야? 우리 지훈이가 그러는데, 민우가 학교에서 완전 모범생이 됐다며? 수업 시간마다 눈을 부릅뜨고 공부하고, 화장실 청소도 혼자 다 한다고 난리야!""어머, 그것뿐인 줄 알아? 어제 내 남편이 퇴근길에 치킨 사 오다가 봤는데, 민우가 배달 상자 들고 동네를 날아다니더라고! 인사성도 어찌나 바른지 나를 보더니 배꼽인사를 하더라니까?"앞집 아주머니까지 가세하자 정숙은 으쓱해지는 어깨를 감추지 못했다. 늘 자식 때문에 속을 썩던 정숙에게 이런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아이구, 별 거 아니에요. 그냥 애가 철이 들었는지 주말에 알바 해서 번 돈이라고 용돈까지 주더라니까요. 내가 안 받으려고 했는데, 부모님 맛있는 거 사 드시라고 굳이 쥐여 주대요."정숙이 은근슬쩍 자랑을 늘어놓자, 주변 아주머니들의 눈에서 부러움의 불꽃이 튀었다."아니, 고등학생이 알바 해서 부모한테 용돈을 줘? 세상에, 그런 효자가 어디 있어! 우리 집 놈은 맨날 돈만 달라고 소리를 지르는데!""민우 엄마,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봐. 어떻게 그런 아들을
수용소에서 하루 종일 돌을 날라도 주어지던 것은 썩은 옥수수 국물 한 그릇이 전부였는데, 현실에서는 노력한 만큼 정당한 대가가 주어졌다. 이 사회가, 이 대한민국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민우는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다.민우는 돈을 소중하게 지갑에 넣고 집으로 달렸다. 밤공기는 차가웠지만 민우의 마음은 불타오르고 있었다.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자, 부모님은 거실에서 TV를 보고 계셨다. 민우는 거실 탁자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지갑에서 오늘 번 일당 중 일부를 꺼내 정성스럽게 올려놓았다."엄마, 아빠. 이거 얼마 안 되지만 제가 번 돈이에요. 부모님 맛있는 거 사 드세요."성진과 정숙은 탁자 위의 지폐들을 바라보았다. 액수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그 돈에 담긴 아들의 땀방울과 진심의 무게는 그 어떤 황금보다 무거웠다."민우야……."정숙은 결국 참지 못하고 아들을 꼭 껴안았다. 무뚝뚝한 아버지 성진 역시 고개를 돌려 베란다 창밖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거실의 낡은 조명 아래, 세 가족의 그림자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하게 겹쳐지고 있었다. 철부지 고딩 강민우의 눈물겨운 효도극은 이제 집안을 넘어 온 동네로 퍼져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월요일 아침이 밝아왔다. 주말 내내 치킨집에서 몸을 불사르며 일한 탓에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지만, 민우는 가뿐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말 알바로 번 돈의 일부를 부모님께 드렸을 때의 그 짜릿한 성취감이 여전히 온몸의 세포를 지배하고 있었다."민우야, 오늘은 엄마가 북어국 끓였어.
성진도 진지한 얼굴로 거들었다."맞아, 임마. 사내자석이 갑자기 안 하던 짓을 이렇게 골라서 하면 부모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법이야. 청소에 설거지에 알바까지, 네가 무슨 죄지은 사람처럼 왜 이래?"부모님의 극단적인 의심에 민우는 억울한 듯 가슴을 탕탕 쳤다."엄마, 아빠! 진짜 아니라니까요? 저 협박당하는 것도 없고, 아주 건강해요! 그냥…… 철이 좀 든 것뿐이에요. 그동안 제가 너무 불효 자식이었잖아요. 맨날 반찬 투정만 하고, 집안일은 손도 안 대고.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인데, 저도 밥값은 해야죠!"민우의 대범하고도 당찬 발언에 성진과 정숙은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철이 들어도 이렇게 하룻밤 사이에 군대 말년 병장처럼 빠릿하게 든다고?'도무지 믿기지 않는 현실이었지만, 깨끗해진 집안과 아들의 진심 어린 눈빛을 보니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정숙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글썽이며 민우의 손을 잡았다."그래, 우리 아들이 철이 들었다니 엄마는 너무 고맙고 대견해.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는 마. 엄마는 네가 공부 열심히 하고 건강하게만 자라줘도 바랄 게 없어.""공부는 기본이죠! 걱정 마세요, 엄마."민우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수용소의 규율을 생각하면, 현실에서 모범생이 되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었다.그날 오후, 민우는 다시 치킨집으로 출근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평일보다 주문이 배로 밀려들었다. 사장님은 튀김기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고,
"알바라니? 네가 왜 알바를 해? 공부해야 할 나이에!"성진이 엄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민우는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그동안 부모님이 벌어오신 돈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어요. 제 용돈은 제가 벌어서 쓸게요. 그리고 두 분 매일 고생하시는데, 제가 맛있는 거 많이 사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그러니까 걱정 마시고 맛있게 드세요!"민우는 치킨 상자를 열고 닭다리 두 개를 각각 아버지와 어머니의 앞접시에 놓아주었다.정숙은 닭다리를 내려다보다가 결국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무뚝뚝한 아버지 성진 역시 목이 메었는지 헛기침을 크게 해댔다. 어제까지만 해도 집안의 골칫덩어리였던 아들이 하루 만에 이렇게 철이 들어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우리 아들이... 다 컸네."정숙이 눈물을 닦으며 치킨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 감동적인 야식 시간이었다. 민우는 그 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앞으로 어떤 힘든 일도 다 이겨낼 수 있다고.어스름한 새벽녘, 민우는 알람 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번쩍 눈을 떴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몸짓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보위부 놈들의 기상 나팔 소리에 비하면 스마트폰의 부드러운 클래식 음악은 그저 천상의 멜로디지.'민우는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 뒤 방 문을 열고 거실로 나섰다. 시계는 이제 막 오전 5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부모님의 안방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거실은 고요한 정적에 잠겨 있었다.
민우는 상의 교복을 벗어 던지고 흰 반팔티 차림으로 고무장갑을 꼈다. 그리고 락스와 수세미를 들고 변기 앞으로 돌진했다. 같이 청소 조가 된 아이들이 구석에서 빗자루로 장난을 치고 있을 때, 민우는 홀로 변기 안쪽의 묵은 때를 빡빡 문질렀다."야, 강민우. 너 대충 해. 어차피 검사도 대충 하셔."아이들이 말렸지만 민우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민우의 손길이 지나간 자리는 눈이 부시도록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바닥의 타일 틈새까지 칫솔로 문지르는 민우의 모습은 흡사 전문 청소 업체의 직원을 연상케 했다.결국 화장실은 호텔 화장실 못지않게 번쩍번쩍해졌고, 검사를 하러 온 담임선생님은 화장실 문을 열자마자 풍기는 향기로운 락스 냄새와 광이 나는 변기들을 보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이... 이게 정말 너희가 청소한 게 맞냐?""강민우가 혼자 다 했습니다, 선생님!"동료들이 민우를 가리켰다. 민우는 땀을 닦으며 담임선생님께 경례를 붙이듯 인사했다."깨끗한 환경이 정신을 맑게 합니다! 청소 끝났습니다!""그, 그래... 수고했다. 어서 하교해라."선생님은 귀신을 본 듯한 표정으로 퇴근을 허락했다.학교를 나선 민우는 곧장 집으로 향하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켜서 동네 구인 광고를 뒤적였다.'부모님께 매달 용돈을 타 쓰는 건 불효다. 내 차비와 간식비는 내가 벌어야 해. 그리고 부모님께 멋진 선물도 해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