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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가도 괜찮습니다

作者: 유월
last update 公開日: 2026-08-13 15:05:34

“검을 드십시오.”

소년은 움직이지 않았다.

“견습생.”

엘라가 다시 불렀다.

“들리지 않습니까?”

소년은 들고 있던 목검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정확히는 검을 든 것이 아니라, 가슴 앞에 방패처럼 붙잡고 있었다.

목검 끝은 바닥을 향했고.

작은 두 손은 하얗게 질릴 만큼 손잡이를 꽉 쥐고 있었다.

엘라는 소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황궁 기사단의 보조 훈련장.

정식 기사들이 사용하는 넓은 훈련장과 달리, 이곳에는 아직 검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어린 견습생들이 모여 있었다.

누군가는 목검을 휘두르고.

누군가는 짝을 지어 발을 움직였으며.

한쪽에서는 넘어지며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 가운데.

엘라 앞에 선 소년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름이 무엇입니까?”

소년은 한참 뒤에야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노아입니다.”

“노아.”

“……네.”

“아까부터 왜 검을 들지 않습니까?”

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엘라는 그의 자세를 살폈다.

발을 잘못 디딘 것도 아니었다.

다친 곳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목검은 다른 견습생들이 쓰는 것과 같은 크기였다.

그렇다면 문제는 하나뿐이었다.

“사용법을 모르십니까?”

노아가 아주 조금 고개를 저었다.

“배웠습니다.”

“그런데 왜 안 합니까?”

“…….”

“모르면 다시 물어봐도 됩니다.”

엘라는 어제 레온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일을 떠올렸다.

자신도 처음에는 부끄러웠다.

그래도 묻고 나니 배울 수 있었다.

노아에게도 같은 방법을 알려 주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검을 어떻게 잡는지 모르겠으면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압니다.”

이번에는 대답이 조금 빨랐다.

엘라는 눈을 깜빡였다.

“알면서 하지 않는 겁니까?”

노아의 어깨가 움찔했다.

“……네.”

“왜요?”

소년은 입술을 달싹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엘라는 잠시 기다렸다.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발놀림 훈련을 하던 테오도르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오늘 엘라는 손바닥의 상처 때문에 검을 들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래서 레온은 그녀에게 어린 견습생들의 기본 훈련을 함께 지켜봐 달라고 부탁했다.

정확히는.

‘직접 가르치려 하지 말고, 옆에서 보시기만 하면 됩니다.’

라고 말했다.

하지만 엘라는 보라는 말을 돕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아가 제대로 훈련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자 곧장 다가왔다.

그리고 벌써 십 분째 같은 대화를 반복하고 있었다.

테오도르는 발을 움직이던 것을 멈추고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뭐 해?”

엘라가 노아 대신 대답했다.

“검을 들지 않습니다.”

“누가?”

“노아요.”

테오도르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노아는 황태자가 가까이 오자 더 긴장한 듯 몸을 굳혔다.

“아픈 거 아니야?”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기 싫은가 보지.”

“견습생인데 훈련을 하기 싫으면 어떻게 합니까?”

엘라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하기 싫어도 해야죠.”

테오도르는 잠시 노아를 살폈다.

고개를 숙인 얼굴.

꽉 다문 입술.

떨리는 손.

“싫은 게 아니라 무서운 거 아니야?”

노아의 손이 움찔했다.

엘라도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무섭습니까?”

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침묵이 답처럼 들렸다.

엘라는 조금 이해할 수 없었다.

“목검입니다.”

“…….”

“날이 없어서 베이지도 않습니다.”

노아의 고개가 더 아래로 내려갔다.

“그래도 맞으면 아프잖아요.”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엘라는 그제야 그의 말을 들었다.

“보호구를 입었습니다.”

노아의 가슴과 팔에는 두꺼운 천으로 만든 보호대가 감겨 있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세게 때리지도 않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무섭습니까?”

“……네.”

엘라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무섭다는 감정은 알았다.

엘라도 에드먼드 교수에게 쫓겨날까 봐 무서웠다.

황제에게 틀렸다고 말하는 일을 생각하면 무서웠고.

어제 레온을 상대할 때도 몇 번쯤은 검이 닿을까 겁이 났다.

하지만 무섭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자신은 무서워도 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났고.

잘못했으면 사과했으며.

모르면 배웠다.

“무서워도 해야 합니다.”

엘라가 말했다.

노아의 손이 더 세게 굳었다.

“맞기 싫습니다.”

“누구나 맞는 건 싫습니다.”

“저는…….”

노아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못합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공녀님은 잘하시잖아요.”

엘라는 잠시 멈칫했다.

노아가 처음으로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소년의 눈에는 두려움과 억울함이 함께 담겨 있었다.

“공녀님은 황태자 전하도 이기셨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저는 어제도 세 번 넘어졌습니다.”

“저는 열여덟 번 넘어졌습니다.”

“그래도 다시 하셨잖아요.”

“노아도 다시 하면 됩니다.”

그 말을 들은 노아의 얼굴이 더 굳었다.

엘라는 자신이 틀린 말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된다.

모르면 배우고.

무서워도 한 번은 해봐야 한다.

그것이 자신이 배운 방식이었다.

“목검을 드십시오.”

엘라가 다시 말했다.

“제가 먼저 공격하지 않겠습니다.”

노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검을 드는 것부터 하겠습니다.”

“……싫습니다.”

“노아.”

“싫습니다!”

소년이 처음으로 크게 소리쳤다.

훈련장의 소리가 잠시 끊겼다.

주변의 견습생들이 모두 이쪽을 바라보았다.

노아는 자신이 소리를 질렀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목검을 떨어뜨렸다.

툭.

“죄송합니다.”

소년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돌려 달아났다.

“노아!”

엘라가 불렀지만 소년은 멈추지 않았다.

보조 훈련장을 빠져나가 복도 너머로 사라졌다.

엘라는 바닥에 떨어진 목검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노아가 세게 쥐고 있던 손잡이에는 땀자국이 남아 있었다.

테오도르가 옆에서 말했다.

“화났나 봐.”

“제가 화낼 말을 했습니까?”

“하기 싫다는데 계속하라고 했잖아.”

“견습생은 훈련해야 합니다.”

“그래도 싫다고 했어.”

“무서워서 피하면 계속 무서울 겁니다.”

테오도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역시 어느 정도는 엘라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아의 얼굴은 단순히 하기 싫은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도망치기 직전.

소년은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왜 그렇게 무서운지 먼저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야?”

엘라는 테오도르를 바라보았다.

“물어봤습니다.”

“무섭다고만 했잖아.”

“맞으면 아프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게 전부가 아닐 수도 있지.”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잘 모르겠는데.”

테오도르는 노아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냥 그런 얼굴이었어.”

엘라는 쉽게 동의하지 못했다.

사람의 얼굴만 보고 마음을 전부 알 수는 없었다.

얼마 전 자신도 눈앞의 사실을 잘못 이어 붙여 테오도르를 의심했다.

이번에는 함부로 단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직접 물어봐야 했다.

“찾아가겠습니다.”

엘라가 말했다.

테오도르가 눈을 깜빡였다.

“지금?”

“네.”

“뭐라고 하려고?”

“다시 물어봐야죠.”

“또 훈련하라고?”

“왜 무서운지요.”

엘라는 바닥의 목검을 주웠다.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검은 두고 가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레온이었다.

그는 조금 전까지 다른 견습생들의 훈련을 지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노아가 도망간 뒤에는 이쪽을 지켜보고 있었던 듯했다.

엘라가 물었다.

“왜요?”

“겁을 내는 아이를 만나러 가면서 검을 들고 갈 필요는 없으니까요.”

엘라는 손에 든 목검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에게는 그저 나무로 만든 훈련 도구였다.

그러나 노아에게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겁이 나는 물건일 수 있었다.

그녀는 목검을 레온에게 건넸다.

“노아가 왜 무서워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레온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주변의 견습생들을 돌아보았다.

아이들은 훈련하는 척하면서 모두 이쪽을 엿보고 있었다.

레온이 손뼉을 한 번 쳤다.

“훈련을 계속한다!”

아이들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레온은 엘라와 테오도르를 훈련장 한쪽으로 데려갔다.

“노아는 세 달 전 기사단에 들어왔습니다.”

“저희보다 늦게 들어왔습니까?”

“예.”

“그런데 왜 아직 검을 들지 못합니까?”

레온은 잠시 말을 골랐다.

“노아의 아버지는 기사였습니다.”

엘라는 고개를 들었다.

“황궁 기사단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서부의 작은 영지를 지키던 기사였습니다.”

노아의 아버지는 검을 잘 다루는 사람이었다.

마을의 아이들에게도 검을 가르쳐 주었고.

아들에게도 언젠가 자신과 같은 기사가 되라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지에 마물이 나타났다.

노아의 아버지는 주민들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그리고 돌아오지 못했다.

“노아가 직접 보았습니까?”

엘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레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검을 들고 나가는 모습을 보았고.”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부서진 검이 돌아오는 것도 보았습니다.”

엘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까 노아가 목검을 끌어안고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검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었다.

검을 들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사람을 기억하는 것이었다.

“그럼 왜 기사단에 들어왔습니까?”

테오도르가 물었다.

“본인이 원했습니다.”

“검이 무서운데요?”

“그래서일 수도 있습니다.”

레온은 노아가 사라진 복도를 바라보았다.

“아버지처럼 누군가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과.”

“…….”

“아버지처럼 돌아오지 못할까 봐 두려운 마음이 함께 있는 겁니다.”

엘라는 손가락을 천천히 말아 쥐었다.

자신은 노아에게 무서워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된다고.

하지만 노아가 두려워하는 것은 넘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자신이 사랑한 사람처럼 사라지는 일이었다.

그것을 알지도 못하면서.

엘라는 자신이 아는 방식만 계속 밀어붙였다.

“저는.”

그녀가 입을 열었다.

“노아가 겁이 많아서 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레온은 엘라를 나무라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엘라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제대로 보지 않았습니다.”

“공녀님은 물어보셨습니다.”

“대답을 들으려고 기다리지는 않았습니다.”

얼마 전 테오도르에게 했던 사과가 떠올랐다.

물어보기는 했지만.

이미 자신의 답을 정해놓은 질문.

오늘도 비슷했다.

왜 무섭느냐고 물었지만.

엘라는 이미 ‘무서워도 해야 한다’는 답을 정해두고 있었다.

그래서 노아가 어떤 말을 해도 자신의 방식으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사과해야겠습니다.”

엘라가 말했다.

레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전에 한 가지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무엇을요?”

“사과한 뒤 무엇을 하실 겁니까?”

“다시 검을 들도록 도와야죠.”

레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에 엘라는 자신의 대답을 되돌아보았다.

사과하러 가면서도.

여전히 끝은 훈련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르겠습니다.”

이번에는 그 대답이 조금 씁쓸했다.

레온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면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모르는 것으로요?”

“예.”

“하지만 노아는 계속 훈련을 못 할 겁니다.”

“오늘 당장 검을 들지 않아도 됩니다.”

엘라는 눈을 깜빡였다.

“견습생인데요?”

“견습생에게 필요한 훈련은 검을 휘두르는 것만이 아닙니다.”

레온은 훈련장 안을 가리켰다.

“몸을 만드는 일.”

달리기 훈련을 하는 아이들.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는 법.”

둘씩 짝을 지어 발을 맞추는 아이들.

“자신의 두려움을 알아가는 일.”

마지막으로 노아가 사라진 길을 바라보았다.

“그 모든 것이 훈련입니다.”

엘라는 그 말을 오래 들었다.

자신은 훈련이라고 하면 검부터 떠올렸다.

할 수 없으면 반복하고.

부족하면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마다 시작해야 하는 곳이 다를 수 있었다.

누군가는 검을 쥐는 법부터 배우고.

누군가는 먼저 검을 바라볼 수 있게 되어야 했다.

“노아는 어디에 있을까요?”

테오도르가 물었다.

레온은 잠시 생각했다.

“아마 마구간일 겁니다.”

“마구간을 좋아합니까?”

“말을 돌보는 일은 아주 잘합니다.”

엘라가 고개를 들었다.

“그것도 기사에게 필요한 일입니까?”

“물론입니다.”

레온이 웃었다.

“말도 동료니까요.”

황궁 마구간은 훈련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마른 풀 냄새와 따뜻한 짐승의 체취가 섞인 공간.

칸마다 커다란 말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고.

관리인들이 바닥을 쓸거나 여물을 나르고 있었다.

엘라와 테오도르는 안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노아.”

대답은 없었다.

“여기 있습니까?”

어디선가 말이 콧김을 내뿜는 소리가 들렸다.

엘라는 칸 사이를 하나씩 살폈다.

가장 안쪽.

갈색 암말이 있는 칸 앞에서 작은 신발 한 짝이 보였다.

노아는 건초 더미에 앉아 있었다.

무릎을 세우고 얼굴을 파묻은 채였다.

갈색 말은 칸막이 너머로 머리를 내밀어 소년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건드리고 있었다.

엘라는 다가가려다 멈췄다.

노아의 어깨가 아주 조금 떨리고 있었다.

테오도르가 옆에서 조용히 물었다.

“어떻게 할 거야?”

엘라는 대답하지 못했다.

평소처럼 곧장 이름을 부르고.

잘못했다고 말하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목소리조차 노아를 놀라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천천히 건초 더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았다.

테오도르도 그 옆에 앉았다.

노아가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눈가가 붉었다.

황태자와 공녀를 발견하자 급히 일어나려 했다.

“그대로 계십시오.”

엘라가 말했다.

노아는 어정쩡한 자세로 멈췄다.

엘라는 그의 곁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노아.”

“네.”

“아까는 제가 잘못했습니다.”

소년의 눈이 조금 커졌다.

“제가 무서워하는 이유를 물어봤지만.”

엘라는 손가락에 묻은 건초를 내려다보았다.

“사실은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노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가 할 수 있으니까 노아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

“그건 아니었습니다.”

엘라는 고개를 들었다.

“미안합니다.”

노아의 입술이 조금 떨렸다.

“공녀님께서 왜 사과하십니까?”

“제가 계속 검을 들라고 했으니까요.”

“저는 견습생입니다.”

“그래도 무서운 건 무서운 겁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다 합니다.”

노아의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저만 못합니다.”

엘라는 곧바로 괜찮다고 말하려다가 멈췄다.

자신이 노아라면 ‘괜찮다’는 말이 위로가 될까.

검을 들고 싶은데 들지 못하는 사람에게.

계속 못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건 너무 쉬운 말일지도 몰랐다.

“속상합니까?”

엘라가 물었다.

노아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검을 들고 싶습니까?”

이번에는 대답이 늦었다.

노아는 옆의 갈색 말을 바라보았다.

말이 다시 그의 머리카락을 건드렸다.

“모르겠습니다.”

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공녀님도요?”

“네.”

“검도 잘하시잖아요.”

“어제는 열여덟 번 졌습니다.”

노아가 조금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말입니까?”

“네.”

“그래도 다시 하셨다면서요.”

“그랬습니다.”

엘라는 잠시 생각하다 솔직하게 말했다.

“그런데 너무 많이 해서 쓰러질 뻔했습니다.”

테오도르가 옆에서 바로 끼어들었다.

“뻔한 게 아니라 진짜 쓰러졌어.”

“쓰러지기 전에 레온 경이 잡아주셨습니다.”

“그걸 쓰러졌다고 하는 거야.”

“바닥에는 닿지 않았습니다.”

“엘라.”

“네.”

“지금 그게 중요해?”

엘라는 잠시 고민했다.

“조금요.”

노아의 입가가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엘라는 그 변화를 보았지만 모르는 척했다.

“저는 계속하는 것만 잘하는 것 같습니다.”

“…….”

“멈추는 건 잘 못하고요.”

노아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섭지 않으십니까?”

“무서울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계속합니까?”

엘라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도 정확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계속하면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노아는 자신과 달랐다.

같은 대답을 돌려줄 수는 없었다.

“저에게는 계속하는 게.”

엘라는 말을 고르다가 천천히 이어갔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 덜 무서운 것 같습니다.”

노아의 눈이 조금 커졌다.

“사람마다 다른가 봅니다.”

엘라는 노아를 바라보았다.

“노아에게는 멈추는 게 필요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멈춰도 됩니까?”

그 질문에는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엘라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은 기사단의 교관이 아니었다.

노아가 검술 훈련을 계속해야 하는지 결정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아는 척하지 않기로 했다.

“모르겠습니다.”

노아가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레온 경께 물어볼 수는 있습니다.”

“…….”

“검 말고 다른 훈련부터 해도 되는지요.”

노아는 갈색 말의 갈기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말 돌보는 일도 훈련이라고 하셨습니다.”

엘라가 덧붙였다.

“정말입니까?”

“레온 경께서 그러셨습니다.”

노아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저는 말을 잘 돌봅니다.”

“들었습니다.”

“브린은 다른 사람이 갈기를 빗으면 싫어하는데, 제가 하면 가만히 있습니다.”

노아가 옆의 갈색 말을 가리켰다.

“이 말의 이름이 브린입니까?”

“네.”

“왜 노아에게만 가만히 있습니까?”

“처음부터 만지지 않아서요.”

“그럼 어떻게 했습니까?”

“그냥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노아의 손길이 갈색 말의 목을 천천히 쓸었다.

“브린이 먼저 가까이 올 때까지요.”

엘라는 그 말을 듣고 멈칫했다.

그냥 옆에 앉아 있었다.

먼저 가까이 올 때까지.

자신은 노아가 검을 들 때까지 기다리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면 곧바로 움직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아는 이미 알고 있었다.

무서워하는 존재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엘라가 몰랐던 방법을.

“노아.”

“네.”

“저도 그것을 배워도 됩니까?”

노아가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엇을요?”

“기다리는 법이요.”

소년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엘라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테오도르 역시 조용히 앉아 있었다.

세 아이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구간 밖에서는 사람들이 오가는 소리가 들렸다.

말이 여물을 씹는 소리.

건초가 바스락거리는 소리.

따뜻한 햇빛이 나무 틈 사이로 길게 들어왔다.

엘라는 침묵이 어색할 줄 알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건 시간을 버리는 일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노아의 굳은 어깨가 조금씩 내려갔다.

숨도 편안해졌다.

브린은 아이들 쪽으로 머리를 더 내밀었다.

잠시 뒤.

노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버지는 검을 잘 쓰셨습니다.”

엘라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저 듣고 있다는 듯 작게 대답했다.

“그랬군요.”

“사람들을 지키셨습니다.”

“네.”

“저도 그렇게 되고 싶었습니다.”

노아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그런데 검을 들면.”

소년은 자신의 빈손을 내려다보았다.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았던 날이 생각납니다.”

엘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괜찮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날은 괜찮은 일이 아니었으니까.

무섭지 않을 거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앞으로도 검을 들 때마다 떠오를 수 있었다.

“많이 보고 싶습니까?”

엘라가 물었다.

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네.”

엘라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눈물을 닦아주려고 가까이 가지도 않았다.

그저 옆에 앉아 있었다.

노아가 먼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던 브린처럼.

한참 뒤.

소년이 손등으로 눈가를 닦았다.

“검을 들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안 들어도 됩니다.”

노아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공녀님께서 정하실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엘라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레온 경께 물어봐야 합니다.”

노아의 입가에 아주 작은 웃음이 떠올랐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오늘은 이미 도망오셨잖아요.”

“…….”

“다시 끌고 갈 생각은 없습니다.”

엘라는 무릎에 묻은 건초를 털며 일어났다.

“대신 같이 물어보러 가겠습니다.”

노아의 얼굴에 다시 긴장이 번졌다.

“지금요?”

“싫습니까?”

소년은 훈련장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브린의 갈기를 다시 한번 쓰다듬었다.

“조금 더 있다가 가면 안 됩니까?”

엘라는 반사적으로 ‘훈련 시간이 끝난다’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입을 다물었다.

노아는 가지 않겠다고 한 것이 아니었다.

조금 더 있다가 가고 싶다고 했다.

“얼마나요?”

“브린의 갈기를 다 빗을 때까지요.”

“오래 걸립니까?”

“십 분 정도요.”

엘라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기다리겠습니다.”

테오도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말?”

“왜요?”

“너 아까는 당장 가야 한다고 할 줄 알았어.”

“저도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엘라는 노아와 브린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천천히 갈기를 빗고 있었다.

아까 목검을 잡았을 때와는 달랐다.

손끝에 힘은 들어가 있었지만 굳어 있지 않았다.

움직임도 조심스럽고 능숙했다.

“십 분 늦게 간다고 길을 잃는 건 아니니까요.”

테오도르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그건 네가 한 말이야?”

“방금 생각했습니다.”

“괜찮은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바로 잘난 척하네.”

“칭찬하신 것 아닙니까?”

“취소할게.”

세 사람 사이로 작은 웃음이 흘렀다.

십 분 뒤.

노아는 약속대로 엘라와 테오도르를 따라 훈련장으로 돌아왔다.

레온은 훈련장 입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노아가 가까이 오자 레온은 꾸짖지 않았다.

왜 도망쳤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그저 말했다.

“돌아왔군.”

노아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무엇이?”

“훈련 중에 도망쳤습니다.”

“그건 잘못이다.”

“……네.”

“다음부터는 도망치기 전에 쉬고 싶다고 말하도록.”

노아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쉬어도 됩니까?”

“이유 없이 매번 피하겠다면 안 된다.”

레온은 아이와 눈높이를 맞췄다.

“하지만 힘들다고 말하는 것과 도망치는 것은 다르다.”

노아는 그 말을 천천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당분간은 검술 훈련을 줄이겠다.”

소년의 눈이 커졌다.

“그럼 저는 견습생이 아닌 겁니까?”

“누가 그런 말을 했지?”

“검을 못 드니까…….”

“기사는 검만 드는 사람이 아니다.”

레온이 말했다.

“말을 돌보고.”

“…….”

“동료의 장비를 확인하고.”

“…….”

“위험한 상황에서 사람을 안전한 곳으로 이끄는 법도 배워야 한다.”

노아는 아주 작게 물었다.

“그것부터 배워도 됩니까?”

“그것부터가 아니라.”

레온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배우는 거다.”

소년의 눈에 다시 눈물이 맺혔다.

그러나 이번에는 울지 않았다.

“네.”

“그리고 검은.”

레온은 바닥에 놓인 목검을 바라보았다.

“당장 들지 않아도 된다.”

“…….”

“대신 매일 한 번은 훈련장에 와서 바라보도록.”

노아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

레온은 기다렸다.

“할 수 있겠나?”

소년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늘은 여기까지다.”

노아는 깊이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가 다른 견습생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자 레온은 엘라를 바라보았다.

“잘 다녀오셨습니까?”

엘라는 솔직하게 말했다.

“처음에는 다시 훈련장으로 데려오려고 갔습니다.”

“그런데요?”

“노아에게 기다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레온의 눈빛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노아에게요?”

“네.”

엘라는 마구간에서 들은 말을 떠올렸다.

“무서워하는 사람에게는 먼저 가까이 가면 안 될 때도 있답니다.”

“좋은 스승을 만나셨군요.”

“노아는 저보다 어립니다.”

“나이는 스승을 정하지 않습니다.”

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는 기사들에게 배웠고.

오늘은 자신이 도우려 했던 견습생에게 배웠다.

누가 가르치고 누가 배우는지는 언제든 바뀔 수 있었다.

테오도르가 물었다.

“그럼 오늘 훈련은 끝이야?”

레온이 그를 바라보았다.

“전하의 발놀림 훈련은 아직 남았습니다.”

테오도르의 얼굴이 굳었다.

“나는 노아 찾으러 갔다 왔잖아.”

“좋은 일을 하셨습니다.”

“그럼 쉬어도 되지 않아?”

“좋은 일을 했다고 훈련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엘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입니다.”

테오도르가 그녀를 노려보았다.

“너도 같이해.”

“저는 손을 쓰지 않는 훈련은 이미 끝냈습니다.”

“같이 걸어가자며.”

“훈련까지 항상 같이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럴 때만 말 잘하지.”

엘라는 테오도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힘내십시오.”

“거기 서!”

테오도르의 외침과 함께.

훈련장에는 다시 웃음소리가 번졌다.

그날 오후.

엘라는 에드먼드 교수의 수업을 듣는 내내 작은 종이에 무언가를 적었다.

테오도르가 옆에서 슬쩍 들여다보았다.

종이 위에는 세 문장이 적혀 있었다.

사람마다 무서운 것이 다르다.

사람마다 시작하는 곳이 다르다.

그리고 마지막 줄.

같이 걷는다고 꼭 같은 속도로 걸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테오도르가 작게 물었다.

“그거 뭐야?”

“오늘 배운 겁니다.”

“누구한테?”

“노아요.”

“노아가 그런 말을 했어?”

“아닙니다.”

엘라는 펜을 내려놓았다.

“그냥 같이 있다 보니 알았습니다.”

에드먼드 교수가 교탁에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수업 중에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겁니까?”

테오도르가 얼른 고개를 돌렸다.

엘라는 종이를 접었다.

“오늘 배운 것을 정리했습니다.”

“내 수업은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전 수업이요.”

“무엇을 배웠습니까?”

엘라는 잠시 생각했다.

모두에게 들려줄 말인지 고민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사람마다 시작할 수 있는 곳이 다르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교수가 물었다.

“그렇다면 교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엘라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아침의 자신이라면.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시켜야 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답을 알고 있었다.

“먼저 어디에서 시작할 수 있는지 봐야 합니다.”

“그리고?”

“기다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언제까지?”

엘라는 막혔다.

기다린다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뜻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끝없이 그대로 두는 것도 아니었다.

“모르겠습니다.”

에드먼드 교수의 입가에 아주 미세한 미소가 떠올랐다.

“좋습니다.”

교수는 칠판에 글자를 적었다.

기다림과 방치는 어떻게 다른가.

“그것이 오늘의 질문입니다.”

엘라는 칠판을 바라보았다.

아침에 한 가지를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그 배움은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졌다.

기다린다는 건 무엇일까.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언제 손을 내밀고.

언제 스스로 다가올 때까지 두어야 할까.

엘라는 답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조금 기대됐다.

앞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남았으니까.

며칠 뒤.

황궁 기사단 보조 훈련장.

노아는 다른 견습생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그는 말 관리에 필요한 도구를 정리한 뒤, 목검 훈련이 진행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얼굴이 굳었다.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날 때마다 어깨도 움찔했다.

하지만 도망가지는 않았다.

엘라는 멀리 떨어진 벤치에 앉아 있었다.

노아를 재촉하지 않았다.

손을 흔들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의 책을 읽으면서 가끔 한 번씩 그가 있는 곳을 확인했다.

테오도르가 옆자리에서 물었다.

“안 가봐?”

“왜요?”

“노아가 혼자 있잖아.”

“혼자 있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도망가면?”

엘라는 책장을 넘겼다.

“그때 다시 찾아가면 됩니다.”

“안 도망갈 수도 있잖아.”

“그럼 더 좋고요.”

둘은 다시 책을 읽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훈련이 끝나고 견습생들이 목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노아도 몸을 돌려 마구간으로 향하려 했다.

그러다 바닥에 떨어진 목검 하나를 발견했다.

소년의 발이 멈췄다.

엘라의 손도 책장 위에서 멈췄다.

하지만 일어나지 않았다.

노아는 한동안 목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손이 목검의 손잡이에 닿았다.

쥐지는 못했다.

손끝이 가볍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노아는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다시 마구간으로 걸어갔다.

테오도르가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못 들었네.”

엘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손도 뗐잖아.”

“어제는 가까이 가지도 못했습니다.”

엘라는 노아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만졌습니다.”

테오도르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보다 나아졌네.”

“네.”

두 사람은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듯 다시 책을 펼쳤다.

그날 노아는 검을 들지 못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하지만 매일 조금씩 가까이 갔다.

처음에는 바라보기만 했고.

그다음에는 손끝으로 만졌으며.

며칠 뒤에는 바닥에 떨어진 검을 들어 정리함에 넣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엘라는 박수를 치지 않았다.

모두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노아가 자신을 바라보았을 때.

그저 작게 웃어 주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날 저녁.

황제는 기사단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맞은편에는 펠리시아 공작이 앉아 있었다.

“이번에는 자네 딸이 견습생을 울렸다더군.”

공작이 눈을 감았다.

“또 무슨 일을 했습니까?”

“훈련을 강요했다가 도망가게 만들었네.”

“…….”

“그러고는 따라가 사과했다는군.”

공작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황제는 보고서의 마지막 부분을 읽었다.

노아가 며칠 만에 처음으로 목검을 집어 들었다는 기록.

엘라가 아무 말 없이 그것을 지켜보았다는 내용.

“친구.”

“예.”

“자네 딸은 사람을 가르치는 재능이 있는 것 같네.”

공작이 미간을 찌푸렸다.

“방금 강요해서 도망가게 만들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래서 더 그렇게 생각하네.”

“무슨 뜻입니까?”

황제는 보고서를 내려놓았다.

“잘못된 방법을 계속 고집하지 않았으니까.”

“…….”

“가르치는 사람도 배워야 한다는 걸 아는 아이야.”

공작은 잠시 말이 없었다.

“아직 열 살입니다.”

“그래.”

황제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봄 햇살 아래에서 훈련장을 오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지켜보고 싶은 거지.”

그날 황제는 처음으로.

엘라가 단순한 황태자의 수업 동무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답을 알려 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스스로 걸을 수 있는 곳을 함께 찾아 주는 사람.

아직은 서툴고.

자주 틀리며.

때로는 자신의 속도를 남에게 강요하는 아이였지만.

틀렸다는 것을 깨달으면 다시 배우는 아이.

황제는 보고서를 접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엘라의 이름 옆에 작은 문장을 하나 적었다.

교육자로서의 가능성 있음.

그 문장이 훗날.

제국의 황태자와 수많은 아이들을 거쳐.

북부의 가장 위험한 남자에게까지 이어질 줄은.

그때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다만 그날.

한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배웠다.

함께 걷는다는 것은.

앞에서 끌고 가는 일만도.

뒤에서 밀어주는 일만도 아니라는 것을.

때로는.

그 사람이 한 걸음을 내디딜 때까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는 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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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기에 잠식된 대공   처음으로 사람이 아닌 길을 택했습니다

    실제 오염 마기를 사용하는 첫 현장 시험은 설화초가 완전히 핀 날 오전 열 시에 시작됐다.대공성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단테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리아에게 상태를 확인했고, 전날보다 잠을 조금 덜 잤다는 사실까지 먼저 알렸다. 두통과 감각 이상은 없었고 마기 유입량 역시 최근 평균 범위 안이었다. 엘라는 그 옆에서 듣기만 했다. 이제 단테가 자기 상태를 말할 때마다 의미를 붙이거나 변화라고 짚어줄 필요는 없었다. 말을 하는 것도, 필요하면 멈추는 것도 어느새 현장 준비의 일부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오늘 사용하는 오염 마기는 제9방어선에서 회수된 마력석에서 추출한 극소량이었다. 이전에 오염도 78퍼센트였던 돌을 제3감시탑의 기존 순환에 잠깐 연결해 31퍼센트까지 낮췄던 것과는 방식부터 달랐다. 그때는 이미 살아 있는 고대 흐름에 작은 돌 하나를 맡겨보는 시험이었다면, 오늘은 자신들이 새로 만든 네 개의 전달석과 두 개의 교대선을 거쳐 실제 오염 마기가 움직일 수 있는지를 처음 확인하는 자리였다.그래서 사람들은 어제보다 훨씬 말이 적었다.회백 능선 초입에는 길이 120미터의 시험 구간이 이미 준비돼 있었다. 눈을 걷어낸 암반 사이로 네 개의 전달석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매설되어 있었고, 각 전달석 사이에는 두 줄의 얇은 마력선이 번갈아 주선 역할을 맡도록 연결돼 있었다. 그 끝에는 방출 장치 대신 밀폐형 회수석이 놓였다. 오늘은 환경으로 마기를 내보내지 않는다. 전달만 확인한 뒤 마지막에 다시 회수한다. 실제 분산 방출은 그보다 훨씬 뒤의 일이다.아르센이 마지막 봉인을 확인하며 말했다.“오늘 목표는 세 개뿐입니다. 실제 오염 마기가 전달 패턴을 따라 움직이는지, 이동 과정에서 전달석에 얼마나 남는지, 한쪽 선을 중간에 끊었을 때 보조선으로 전환되는지. 그 이상은 보지 않습니다.”단테가 물었다.“끝까지 안정적이어도?”“끝냅니다.”이번에는 아르센이 먼저 분명하게 잘라 말했다.단테는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에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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