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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말해 주지 않겠습니다

ผู้เขียน: 유월
last update วันที่เผยแพร่: 2026-08-13 15:06:32

“겁쟁이가 어떻게 기사가 돼?”

훈련장에 웃음소리가 번졌다.

크지 않은 웃음이었다.

몇몇 아이가 입을 가린 채 킥킥거렸고, 누군가는 못 들은 척 목검만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노아에게는 충분히 큰 소리였다.

바닥에 놓인 목검을 향해 뻗던 손이 그대로 멈췄다.

손끝과 손잡이 사이.

손가락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큼의 거리를 남겨둔 채였다.

“검도 못 잡잖아.”

말한 아이의 이름은 세드릭이었다.

황궁 근위대 부단장의 조카.

노아보다 한 살 많았고, 견습 기사들 사이에서는 검을 제법 잘 다루는 편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노아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노아가 훈련장 한쪽에서 검을 바라보는 일이 많아지자, 그 모습이 답답했던 모양이었다.

“매일 와서 구경만 하고.”

세드릭은 손에 든 목검을 빙글 돌렸다.

“말이나 돌보려면 마구간지기가 되면 되잖아.”

노아의 손이 천천히 거두어졌다.

소년은 아무 말 없이 몸을 일으켰다.

얼굴은 창백했고, 굳게 다문 입술만 조금 떨렸다.

훈련장 가장자리에서 책을 읽던 엘라가 고개를 들었다.

바로 옆에 앉아 있던 테오도르도 책장을 넘기던 손을 멈췄다.

“방금 뭐라고 했어?”

테오도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태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아이들의 웃음이 순식간에 멎었다.

세드릭의 얼굴도 굳었다.

“저, 전하.”

테오도르가 앞으로 걸어갔다.

“다시 말해 봐.”

“그게…….”

“노아한테 뭐라고 했냐고.”

세드릭은 입술을 달싹였다.

조금 전까지의 기세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황태자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아이에게는 충분한 압박이었다.

“겁쟁이라고 했습니다.”

테오도르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사과해.”

“하지만 전하.”

“지금.”

세드릭은 곧바로 노아를 향해 몸을 돌렸다.

“미안해.”

빠른 사과였다.

그러나 노아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신발 끝만 바라보았다.

테오도르가 미간을 찌푸렸다.

“제대로 해.”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게 사과야?”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드릭의 목소리에도 억울함이 섞였다.

자신은 시키는 대로 말했다.

그런데 황태자는 여전히 화가 난 얼굴이었다.

테오도르가 다시 입을 열려는 순간.

엘라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전하.”

“왜?”

“잠깐만요.”

엘라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그녀에게 모였다.

최근 황궁 기사단 안에서 엘라를 모르는 아이는 거의 없었다.

황태자를 열세 번 이긴 공녀.

레온 경에게는 열여덟 번 진 공녀.

도망친 노아를 다시 데려온 아이.

사람들은 각자 기억하고 싶은 부분만 골라 엘라를 이야기했다.

엘라는 세드릭 앞에 멈춰 섰다.

“왜 그렇게 말했습니까?”

세드릭은 긴장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실이니까요.”

“무엇이 사실입니까?”

“노아는 검을 못 잡습니다.”

“그건 맞습니다.”

노아의 어깨가 움찔했다.

테오도르도 놀란 얼굴로 엘라를 바라보았다.

세드릭은 자신이 맞다는 말을 들은 것이 반가운 듯 곧바로 덧붙였다.

“그러니까 기사가 될 수 없습니다.”

“그건 누가 정했습니까?”

“누가 정하는 게 아니라 당연한 거잖아요.”

세드릭은 목검을 들어 보였다.

“기사는 검을 쓰는 사람입니다.”

엘라는 지난 며칠 동안 배운 것을 떠올렸다.

레온은 말했다.

기사는 검만 드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을 돌보고.

동료의 장비를 살피고.

위험한 곳에서 사람을 이끄는 것도 기사의 일이라고.

엘라는 그것을 그대로 세드릭에게 말하려 했다.

하지만 입을 열기 직전 멈췄다.

자신이 대신 노아를 설명해도 될까.

노아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그것은 엘라가 알고 있는 노아의 일부였다.

노아가 직접 말하지 않은 것까지 자신이 모두 꺼내놓을 수는 없었다.

“세드릭.”

엘라가 물었다.

“노아가 검을 못 드는 이유를 압니까?”

“겁이 많아서 아닙니까?”

“직접 물어봤습니까?”

“아니요.”

“그럼 모르는군요.”

세드릭의 입술이 굳었다.

“그래도 검을 못 드는 건 맞습니다.”

“네.”

엘라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요.”

“지금이든 나중이든 똑같습니다.”

“왜요?”

“한 번 무서워한 사람은 계속 무서워하니까요.”

그 말이 떨어진 순간.

노아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소년의 눈에 처음으로 다른 감정이 떠올랐다.

슬픔보다 화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하지만 입은 열리지 않았다.

엘라는 노아를 바라보았다.

‘제가 대신 말해도 됩니까?’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조차 노아에게 부담이 될 수 있었다.

모두가 보고 있었다.

황태자도.

공녀도.

자신을 놀린 아이도.

다른 견습생들도.

이 많은 시선 앞에서 무언가를 말하는 일은 검을 잡는 것만큼 무서울지도 몰랐다.

엘라는 세드릭에게 다시 물었다.

“세드릭은 무서운 것이 없습니까?”

“없습니다.”

대답은 빨랐다.

엘라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훈련장 벽 위로 작은 벌 한 마리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녀가 벌을 가리켰다.

“저것도요?”

세드릭의 얼굴이 아주 조금 굳었다.

“벌은…….”

“무섭습니까?”

“안 무섭습니다.”

그 순간 벌이 세드릭 쪽으로 날아왔다.

세드릭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아이들 사이에서 작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세드릭의 얼굴이 붉어졌다.

“벌은 쏘잖아요!”

“검도 맞으면 아픕니다.”

“그것과 이건 다릅니다.”

“사람마다 무서운 것이 다르니까요.”

세드릭은 입을 다물었다.

엘라는 놀리려는 생각이 없었다.

그저 자신이 배운 것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주변의 웃음이 계속되자 세드릭의 눈가가 붉어졌다.

“그만 웃어!”

그가 아이들을 향해 소리쳤다.

아이들이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엘라는 그 모습을 보며 조금 전 노아를 떠올렸다.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며 웃는 순간.

얼마나 도망치고 싶었을까.

“웃지 마십시오.”

엘라가 말했다.

아이들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세드릭이 벌을 무서워한다고 해서 웃을 이유는 없습니다.”

세드릭도 뜻밖이라는 듯 엘라를 보았다.

“공녀님께서 저를 놀리신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일부러 벌을 가리키셨잖아요.”

“세드릭도 무서운 것이 있다는 걸 말하려고 했습니다.”

“그래도 모두가 웃었습니다.”

“그건 제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엘라는 잠시 멈췄다가 말했다.

“미안합니다.”

세드릭의 얼굴에서 화가 조금 빠졌다.

엘라는 다시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누군가가 무서워하는 것을 보고 웃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세드릭이 먼저 노아를 놀렸습니다.”

한 견습생이 작게 말했다.

“그러면 똑같이 놀려도 됩니까?”

“……아닙니다.”

“세드릭이 잘못한 것과 우리가 세드릭을 웃는 건 다른 일입니다.”

아이들은 조용해졌다.

테오도르는 엘라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당장 세드릭을 혼내고 싶었다.

황태자의 명령으로 사과하게 만들면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엘라는 세드릭이 한 행동을 잘못이라고 말하면서도, 세드릭이 놀림받는 것은 막았다.

사람과 행동을 나누어 본다는 게 이런 뜻일지도 몰랐다.

그때 노아가 입을 열었다.

“저는…….”

작은 목소리였다.

모두의 시선이 다시 노아에게 향했다.

소년은 움찔했다.

금방이라도 말을 삼킬 것 같았다.

엘라는 곧바로 노아를 보지 않았다.

대신 다른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모두 훈련하던 곳으로 돌아가십시오.”

세드릭이 당황했다.

“아직 이야기가 안 끝났습니다.”

“노아가 모두 앞에서 말하고 싶은지는 모릅니다.”

엘라는 노아를 바라보지 않은 채 물었다.

“노아.”

“……네.”

“여기서 말하고 싶습니까?”

긴 침묵이 흘렀다.

노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을 궁금한 얼굴로 바라보는 아이들.

세드릭.

테오도르.

그리고 엘라.

엘라는 대신 답하지 않았다.

기다렸다.

노아가 입술을 달싹였다.

“말하고 싶습니다.”

엘라가 그제야 노아를 바라보았다.

“알겠습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한 걸음 옆으로 물러났다.

앞을 가로막지도.

등 뒤에 숨기지도 않았다.

그저 노아와 나란히 섰다.

테오도르도 엘라의 반대편으로 조용히 이동했다.

노아는 두 사람 사이에서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저는 검이 무섭습니다.”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검을 보면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세드릭의 얼굴에서 남아 있던 억울함이 조금 사라졌다.

“아버지는 기사였습니다.”

“…….”

“마물과 싸우러 가셨고.”

노아의 손이 주먹처럼 말렸다.

“돌아오지 못하셨습니다.”

훈련장 안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목검을 휘두르던 아이들도.

멀리 있던 기사들도.

모두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래서 검을 잡으면.”

노아는 몇 번이나 숨을 고르며 말했다.

“저도 돌아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세드릭은 손에 들고 있던 목검을 내려다보았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자랑스럽게 휘두르던 검이었다.

그에게 검은 강해지는 도구였다.

기사가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물건.

하지만 노아에게는 누군가가 돌아오지 못했던 기억이었다.

“그래도.”

노아가 바닥에 놓인 목검을 바라보았다.

“언젠가는 잡고 싶습니다.”

엘라의 눈이 조금 커졌다.

노아는 지금까지 검을 들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은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말했다.

“아버지처럼 되고 싶은 건 아닙니다.”

“…….”

“아버지가 지키려고 했던 사람들을.”

소년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렸지만 조금씩 분명해졌다.

“저도 지키고 싶습니다.”

노아는 세드릭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직은 못합니다.”

“…….”

“그래서 저도 속상합니다.”

세드릭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노아가 자신보다 더 아픈 말을 이미 스스로에게 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겁쟁이.

검도 못 잡는 견습생.

기사가 될 수 없는 아이.

세드릭이 던진 말은 노아가 매일 자신에게 하던 말과 같았다.

“미안해.”

이번에는 세드릭이 먼저 말했다.

황태자의 명령도 없었다.

누구도 재촉하지 않았다.

그는 목검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네가 그냥 하기 싫어서 안 하는 줄 알았어.”

노아는 세드릭을 바라보았다.

“하기 싫을 때도 있습니다.”

“…….”

“무서우니까.”

세드릭의 어깨가 내려갔다.

“그래도 그렇게 말하면 안 됐어.”

잠시 망설이던 세드릭이 덧붙였다.

“미안해.”

이번의 사과는 조금 전과 달랐다.

고개도 숙였고.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고 있었다.

노아는 곧장 괜찮다고 말하지 않았다.

엘라는 그 점이 좋았다.

사과를 받았다고 해서 상처가 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노아는 자신의 마음을 살핀 뒤 천천히 말했다.

“다시는 그렇게 말하지 마.”

세드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할게.”

“다른 사람한테도.”

“응.”

노아는 그제야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어.”

완전히 용서했다는 말도.

이제 아무렇지 않다는 말도 아니었다.

하지만 노아가 직접 정한 끝이었다.

엘라는 그 사이에 끼어들지 않았다.

“이제 됐지?”

테오도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노아가 그를 바라보았다.

“네.”

세드릭도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전하.”

테오도르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말했다.

“나한테 사과할 일은 아니야.”

“하지만 전하 앞에서…….”

“노아한테 잘못했잖아.”

세드릭의 눈이 조금 커졌다.

테오도르는 팔짱을 낀 채 덧붙였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내 앞이 아니어도 하지 마.”

“네.”

이번에는 대답이 또렷했다.

소동이 끝난 뒤.

훈련은 다시 시작되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이전과 조금 달랐다.

아이들은 노아를 대놓고 바라보지 않으려 애썼다.

그 배려가 지나쳐 모두 고개를 이상한 방향으로 돌리고 있었다.

노아가 훈련장 한쪽으로 걸어가자, 아이들의 목이 일제히 반대쪽으로 꺾였다.

테오도르가 그 모습을 보고 중얼거렸다.

“더 이상해.”

엘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요.”

노아 역시 그 시선을 알아차린 듯 멈춰 섰다.

“그냥 보셔도 됩니다.”

아이들이 화들짝 놀랐다.

“안 봤어!”

“우리 훈련하고 있었어.”

“저쪽에 새가 있어서!”

노아는 훈련장 벽을 바라보았다.

새는 없었다.

“……그렇구나.”

그의 대답에 아이들의 얼굴이 더 어색해졌다.

엘라는 한숨을 삼켰다.

사람들이 서로를 대하는 일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

놀리면 안 되고.

불쌍하다는 듯 쳐다봐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완전히 모르는 척해도 이상했다.

어떤 것이 맞는지는 상황마다 달랐다.

정답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레온이 다가왔다.

그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처음부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공녀님.”

“네.”

“잠시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엘라는 레온을 따라 훈련장 가장자리로 이동했다.

테오도르도 자연스럽게 따라오려 했다.

레온이 말했다.

“전하께서는 발놀림 훈련이 남았습니다.”

“또?”

“오늘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테오도르가 엘라를 바라보았다.

“빨리 끝내고 와.”

“제가 기다리겠습니다.”

“어디 가지 마.”

“갈 곳도 없습니다.”

테오도르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훈련장으로 끌려갔다.

엘라는 그 모습을 보다가 레온에게 시선을 돌렸다.

“제가 또 잘못했습니까?”

레온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따로 부르셨잖아요.”

“잘못을 찾는 일에 조금 익숙해지신 것 같습니다.”

“좋지 않은 겁니까?”

“잘못을 돌아보는 것은 좋습니다.”

레온은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모든 일이 끝날 때마다 자신의 잘못부터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엘라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제가 잘못한 게 있을 수도 있잖아요.”

“있을 수도 있지요.”

“그럼 찾아야 합니다.”

“공녀님.”

레온은 잠시 말을 고르다가 물었다.

“오늘 세드릭이 노아에게 상처를 준 것이 공녀님의 잘못입니까?”

“아닙니다.”

“노아가 검을 무서워하는 것이 공녀님의 잘못입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아이들이 웃은 것은요?”

엘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러면 공녀님이 책임져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엘라는 잠시 생각했다.

벌을 가리켜 세드릭까지 웃음거리가 되게 만든 일.

그건 자신의 행동이었다.

“세드릭이 놀림받을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 부분은 이미 사과하셨습니다.”

“네.”

“그러면 다른 사람의 선택까지 공녀님의 잘못으로 가져오지 마십시오.”

엘라는 입을 다물었다.

다른 사람의 선택.

세드릭은 노아를 놀리기로 선택했다.

아이들은 따라 웃기로 선택했다.

노아는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하기로 선택했다.

그것은 모두 그들의 몫이었다.

엘라는 그들을 도울 수 있었지만.

그 선택까지 대신 질 수는 없었다.

“저는 세드릭에게 당장 사과하라고 하려 했습니다.”

엘라가 말했다.

“그런데 황태자 전하께서 먼저 명령하셨지요.”

“네.”

“그때 어떻게 생각하셨습니까?”

“세드릭이 무서워서 사과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맞습니다.”

레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령으로 사과하게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로 미안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요.”

엘라는 조금 전의 사과를 떠올렸다.

첫 번째 사과.

황태자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나온 말.

두 번째 사과.

노아의 이야기를 들은 뒤 스스로 한 말.

같은 ‘미안해’였지만 전혀 달랐다.

“그럼 전하께서 잘못하신 겁니까?”

엘라가 물었다.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왜요?”

“전하는 노아를 지키고 싶으셨습니다.”

레온은 훈련 중인 테오도르를 바라보았다.

발을 옮기면서도 자꾸 이쪽을 살피다 교관에게 혼나고 있었다.

“당장 상처를 멈추게 하는 데는 황태자의 명령이 효과적이기도 합니다.”

“그런데요?”

“그것만으로 끝났다면 세드릭은 왜 잘못했는지 몰랐을 겁니다.”

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호에는 여러 방법이 있었다.

당장 앞을 막아서는 것.

상대가 직접 말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

필요할 때는 대신 목소리를 내고.

필요할 때는 물러서는 것.

언제 어떤 방법을 써야 하는지는 아직 알기 어려웠다.

“노아가 말을 못 했다면요?”

엘라가 물었다.

“계속 기다려야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제가 대신 말했어야 합니까?”

“그것도 노아에게 물어봤어야겠지요.”

레온이 말했다.

“‘네가 말할래, 아니면 내가 도와줄까?’라고.”

엘라의 눈이 조금 커졌다.

선택지를 주는 것.

대신 결정하지 않고.

그렇다고 혼자 두지도 않는 방법.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공녀님은 오늘 노아에게 말할 것인지 물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도울 수 있다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음에는 하면 됩니다.”

레온의 대답은 간단했다.

엘라는 그 말을 듣고 조금 웃었다.

“다음에는 다르게 하면 되니까요?”

“공녀님이 자주 하시는 말이라고 들었습니다.”

“제가 한 말이지만 아직 잘 못합니다.”

“그래서 연습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때 훈련장 쪽에서 테오도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엘라! 언제 끝나?”

교관이 곧장 외쳤다.

“전하, 앞을 보십시오!”

“보고 있어!”

“공녀님을 보고 계십니다!”

“옆으로도 볼 수 있잖아!”

테오도르가 발을 헛디뎌 그대로 풀밭에 넘어졌다.

견습생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이번에는 테오도르도 화내지 않았다.

그는 누운 채로 소리쳤다.

“웃지 마!”

세드릭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하께서 넘어지신 건 웃어도 됩니까?”

테오도르가 몸을 일으키며 대답했다.

“안 돼!”

노아의 입가에도 작은 웃음이 떠올랐다.

엘라는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의 일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노아는 내일부터 당장 검을 들지 않을 것이다.

세드릭과 바로 친해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두 아이 사이에는 이전과 다른 것이 생겼다.

말해야 할 것을 말했고.

들어야 할 것을 들었다.

그것으로 충분한 시작일지도 몰랐다.

오후 제왕학 수업.

에드먼드 교수는 두 아이 앞에 두 장의 종이를 내려놓았다.

“오늘은 재판에 대해 배우겠습니다.”

테오도르가 종이를 펼쳤다.

첫 번째 기록에는 한 농부가 이웃의 빵을 훔친 사건이 적혀 있었다.

“빵을 훔쳤으니 벌을 줘야 합니다.”

테오도르가 말했다.

교수가 물었다.

“어떤 벌을 주겠습니까?”

“훔친 것보다 더 많은 빵을 돌려주게 합니다.”

“돌려줄 빵이 없다면?”

“돈으로 갚게 합니다.”

“돈도 없다면?”

테오도르는 막혔다.

엘라는 기록의 다음 줄을 읽었다.

농부에게는 굶고 있는 세 아이가 있었다.

그는 며칠 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고.

막내아이가 쓰러진 날 이웃집 창가에 놓인 빵을 훔쳤다.

“불쌍하다고 벌을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엘라가 말했다.

교수의 눈이 그녀에게 향했다.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빵을 도둑맞은 사람도 속상하니까요.”

“그렇다면 농부를 감옥에 보내겠습니까?”

엘라는 잠시 생각했다.

감옥에 가면 세 아이는 더 굶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내면 빵을 잃은 사람은 억울하다.

“모르겠습니다.”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판은 사람의 사정을 듣는 일입니다.”

칠판에 글자가 적혔다.

행동과 이유.

“이유가 있다고 잘못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두 번째 문장.

이해와 책임.

“그러나 이유를 듣지 않고 행동만 본다면 올바른 책임을 정할 수도 없습니다.”

엘라는 오전의 세드릭을 떠올렸다.

노아가 검을 들지 못한다는 사실만 본 아이.

그 이유는 듣지 않았다.

하지만 이유를 들었다고 해서 노아에게 상처 준 행동이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세드릭은 사과해야 했다.

“교수님.”

엘라가 손을 들었다.

“말하십시오.”

“사람이 잘못한 이유를 듣는 것과 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다릅니까?”

“다릅니다.”

교수는 즉시 대답했다.

“이해는 사실을 더 넓게 보는 일입니다.”

“용서는요?”

“상처받은 사람이 선택하는 일이지요.”

“다른 사람이 용서하라고 명령할 수는 없습니까?”

“할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진짜 용서는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테오도르는 조용히 그 말을 들었다.

자신이 세드릭에게 사과하라고 명령했던 일이 떠올랐다.

수업이 끝난 뒤.

그는 교실을 나가지 않고 자리에 남았다.

엘라가 가방을 챙기다 물었다.

“안 가십니까?”

“엘라.”

“네.”

“아까 내가 잘못했어?”

엘라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테오도르의 표정은 진지했다.

노아를 지키려 했던 행동까지 잘못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세드릭을 멈추게 한 것은 잘하셨습니다.”

“그런데?”

“사과를 명령하신 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충분하지 않은 것과 잘못한 건 달라?”

엘라는 잠시 생각했다.

“조금은 잘못하셨습니다.”

테오도르의 얼굴이 굳었다.

엘라는 곧바로 덧붙였다.

“하지만 저도 그랬을 겁니다.”

“그럼 왜 나한테만 말해?”

“전하께서 물어보셨잖아요.”

“…….”

“저는 물어보지 않았고요.”

테오도르는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너 정말 이상해.”

“많이 들었습니다.”

테오도르는 책상 위에 팔을 올렸다.

“나는 노아가 계속 그런 말을 듣는 게 싫었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빨리 끝내고 싶었어.”

“네.”

“그게 나쁜 거야?”

“아닙니다.”

엘라는 테오도르 맞은편에 다시 앉았다.

“그런데 전하께서 끝내고 싶은 것과 노아에게 필요한 끝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테오도르는 그 말을 천천히 곱씹었다.

자신은 세드릭이 사과하면 노아의 상처도 끝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노아는 첫 번째 사과를 받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을 한 뒤에야 고개를 들었다.

“그럼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해?”

테오도르가 물었다.

엘라는 레온에게 배운 말을 떠올렸다.

“물어보면 됩니다.”

“뭘?”

“제가 대신 말해도 되는지.”

“노아가 대답 못 하면?”

“기다리거나.”

엘라는 잠시 생각했다.

“말할 수 있게 도와주거나요.”

“어떻게 도와?”

“그건 아직 모르겠습니다.”

테오도르가 한숨을 내쉬었다.

“너는 요즘 모르는 게 많아.”

“원래 많았습니다.”

“전에는 다 아는 것처럼 말했잖아.”

“그때는 제가 모르는 줄 몰랐습니다.”

테오도르는 잠시 멈췄다가 웃었다.

“그게 더 이상한 말인 거 알아?”

“하지만 사실입니다.”

두 아이는 잠시 마주 보며 웃었다.

테오도르가 손을 내밀었다.

“그럼 같이 알아보자.”

엘라는 내민 손을 바라보았다.

“무엇을요?”

“사람을 지키는 방법.”

“전하께서는 황제가 되실 테니 꼭 배우셔야겠습니다.”

“너도.”

“저는 왜요?”

“너는 자꾸 사람들 일에 끼어들잖아.”

엘라의 눈썹이 올라갔다.

“돕는 겁니다.”

“가끔은 끼어드는 거야.”

“전하도 오늘 끼어드셨습니다.”

“그러니까 같이 배우자고.”

엘라는 잠시 고민하다 그의 손을 잡았다.

“알겠습니다.”

테오도르가 손을 흔들었다.

“약속한 거야.”

“무엇을요?”

“모르면 같이 물어보기.”

“그것만입니까?”

“그리고 혼자 결정하지 않기.”

엘라는 손을 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력하겠습니다.”

“약속은?”

“그건 조금 어렵습니다.”

“왜?”

“상황에 따라 혼자 결정해야 할 때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테오도르는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그럼 내가 뭐라고 해야 해?”

“같이 생각해 보자고 하십시오.”

“그걸 생각하는 데도 같이해야 해?”

“함께 배우기로 하셨잖아요.”

테오도르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친구가 생기면 수업이 덜 힘들 줄 알았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더 힘들어졌어.”

“대신 덜 졸리시잖아요.”

“그건 맞아.”

두 아이는 나란히 교실을 나섰다.

며칠 뒤.

보조 훈련장에는 작은 변화가 생겼다.

노아가 한쪽에 서서 다른 견습생들의 보호구를 확인하고 있었다.

끈이 느슨한 곳은 없는지.

손목 보호대가 제대로 묶였는지.

말을 타는 훈련이 있는 날에는 안장도 직접 살폈다.

그날 세드릭의 팔 보호대 끈이 풀려 있었다.

노아가 앞에 멈춰 섰다.

세드릭은 조금 어색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왜?”

노아가 느슨한 끈을 가리켰다.

“이대로 하면 다칠 수 있어.”

세드릭이 팔을 내려다보았다.

“네가 묶어줄래?”

노아는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는 세드릭의 손목에 보호대를 단단히 묶어 주었다.

세드릭은 조용히 기다렸다.

“다 됐어.”

노아가 말했다.

“고마워.”

“응.”

짧은 대화였다.

둘은 아직 친구가 아니었다.

하지만 세드릭은 더 이상 노아를 겁쟁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노아도 그를 피하지 않았다.

엘라는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다가가지 않았다.

칭찬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가운데 서지 않아도 두 사람은 스스로 다음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테오도르가 옆에서 물었다.

“뿌듯해?”

“조금요.”

“네가 한 것도 아닌데?”

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더 좋습니다.”

테오도르는 잠시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그러다 두 아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알 것 같아.”

그날 오후.

황제에게 새로운 보고서가 올라갔다.

세드릭의 발언.

노아의 대답.

황태자가 명령한 사과.

그리고 아이들이 스스로 다시 대화한 일까지.

황제는 보고서를 끝까지 읽은 뒤 펠리시아 공작을 바라보았다.

“친구.”

“이번에는 또 무슨 일입니까?”

“내 아들이 권력을 함부로 썼다는군.”

공작의 눈썹이 올라갔다.

“큰일입니까?”

“열 살짜리가 친구를 놀린 아이에게 사과하라고 명령했네.”

“그 정도라면…….”

“하지만 스스로 부족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군.”

황제는 보고서 한 부분을 가리켰다.

테오도르가 엘라에게 자신이 잘못했는지 물었다는 기록.

공작은 그것을 읽고 잠시 말이 없었다.

“황태자가 먼저 물었습니까?”

“그래.”

황제는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테오도르는 자신이 옳다는 말을 듣는 데 익숙하지.”

“황태자이시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틀렸는지를 묻기 시작했네.”

공작의 시선이 보고서 마지막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에드먼드 교수의 짧은 평가가 적혀 있었다.

황태자 전하께서 명령과 설득의 차이를 질문하심.

황제는 창밖의 훈련장을 바라보았다.

“엘라가 테오도르에게 답을 주는 건 아닌 것 같네.”

“그 아이는 답을 많이 모릅니다.”

“알고 있네.”

황제가 웃었다.

“대신 질문을 남기지.”

“귀찮은 질문을 많이 합니다.”

“그 질문 때문에 테오도르가 생각하게 되는 모양이야.”

공작은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두 아이는 훈련장 한쪽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 앞에서는 노아와 세드릭이 보호구를 정리하고 있었다.

황제의 눈빛이 깊어졌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대신 말하기 쉽다.

대신 결정하고.

대신 벌하며.

그것을 보호라고 착각하기도 쉽다.

테오도르는 앞으로 누구보다 강한 권력을 갖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배워야 했다.

목소리가 없는 사람을 위해 말하는 것과.

그 사람의 목소리를 빼앗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황제는 손가락으로 보고서 위 엘라의 이름을 두드렸다.

어린아이는 아직 그것을 완전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 한 가지를 배웠다.

누군가를 지킨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말까지 대신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아주 먼 훗날.

북부의 모든 사람이 한 남자를 두고 말했다.

위험하다고.

미쳤다고.

마기에 잠식되어 더는 자신의 판단을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그때 엘라는 오늘을 떠올리게 될 것이었다.

사람들이 내린 결론을 대신 전해 듣는 것이 아니라.

그 남자의 앞에 직접 서서 묻게 될 것이었다.

“대공 전하.”

“제가 대신 결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전하께서 직접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그때의 엘라는.

대답을 재촉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자신의 목소리를 찾을 때까지.

그저 옆에서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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