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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5화

Autor: 눈빛 속의 약속
유 낭자가 말한 물건이란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

지금은 초봄이니 여름옷을 내다 팔면 당연히 손해를 보겠지만, 오뉴월이 되면 이야기가 달랐다.

식량도 마찬가지였다. 초봄은 아직 보릿고개가 아니었다.

사오월이 되어 햅쌀은 아직 자라지 않고 묵은쌀이 다 떨어져 갈 때쯤이면 쌀값은 오르기 마련이었다.

유 낭자는 물건의 정체는 교묘하게 감춘 채 손실 규모만 부풀렸다.

강유영은 그토록 손해 볼 물건을 애초에 왜 사들였는지 내심 의아했는데, 이제야 앞뒤가 맞았다.

"당연히 묘안이 있지요. 내게 몇 달만 시간을 주면 절대 밑지지 않고 이윤을 남겨드리죠."

하 낭자는 가슴을 두드리며 자신만만하게 장담했다.

"유 낭자, 들으셨지요?"

강유영은 유 낭자를 바라보며 담담히 물었다.

"그 물건들은 하 낭자께서 알아서 처리하실 테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더 다른 문제가 없다면 장부를 가져오시지요."

찰나의 순간 유낭자의 얼굴이 일그러졌으나, 이내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가서 가져오너라. 서재 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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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006화

    "내 전당포는 능력 있는 자만 거둘 뿐, 쓸모없는 자는 먹여 살리지 않는다."강유영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매달 주던 품삯은 그대로 주겠다. 그 외에 물건을 사들일 때마다 건수당 열 문을 떼어주고, 물건을 팔 때는 건수당 삼십 문을 떼어주겠다. 매달 창고를 가장 성실히 지킨 자에게는 추가로 백 문을, 밖으로 가장 많이 뛰어다닌 자에게도 백 문을 얹어 주겠다. 잡역부와 찬모도 제 몫을 다한다면 오십 문을 상으로 주겠다. 명절이나 절기에는 따로 챙겨줄 것이다. 내가 약속하건대, 전당포가 이윤을 남기는 만큼 너희들에게도 몫이 돌아갈 것이다. 나 강유영은 내게 진심을 다하는 사람을 절대 박대하지 않는다."이 모든 것은 그녀가 일찌감치 속으로 계산을 마친 내용이었다.물건을 하나 사들이고 팔 때마다 이윤이 떨어지면 일꾼들의 의욕은 눈에 띄게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예전에는 그저 주인을 위해 일했다면, 이제부터는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게 되는 셈이었다.속으로 계산해 보니, 이렇게 성과에 따른 보상을 떼어준다 해도 그녀에게는 전혀 타격이 없었다. 오히려 일꾼들이 발 벗고 나서서 전당포의 전체 수익을 끌어올릴 테니 밑질 게 전혀 없는 장사였다.그 말을 들은 일꾼들의 눈빛이 일제히 반짝였다. 다들 당장이라도 일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난 표정이었다.누군가 먼저 나서서 강유영을 향해 허리를 깊이 숙였다."기꺼이 아씨를 위해 일하겠습니다!""아씨를 위해 일하겠습니다!"다른 일꾼들도 뒤처질세라 앞다투어 인사를 올리며 충성을 맹세했다.경성 전체를 통틀어 일꾼들에게 이윤을 떼어주는 전당포 주인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발로 뛴 만큼 보상을 주겠다지 않는가.이런 횡재를 마다할 바보는 없었다.오직 유 낭자만이 멍하니 선 채 웃지 못했다.그녀는 평소 한씨를 대신해 전당포를 지키기만 할 뿐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가장 많은 품삯을 받아 챙겼다.그런데 방금 강유영이 쓸모없는 자는 먹여 살리지 않는다고 했으니, 자신을 내쫓겠다는 뜻처럼 들렸다.하지만 방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005화

    유 낭자가 말한 물건이란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지금은 초봄이니 여름옷을 내다 팔면 당연히 손해를 보겠지만, 오뉴월이 되면 이야기가 달랐다.식량도 마찬가지였다. 초봄은 아직 보릿고개가 아니었다. 사오월이 되어 햅쌀은 아직 자라지 않고 묵은쌀이 다 떨어져 갈 때쯤이면 쌀값은 오르기 마련이었다.유 낭자는 물건의 정체는 교묘하게 감춘 채 손실 규모만 부풀렸다.강유영은 그토록 손해 볼 물건을 애초에 왜 사들였는지 내심 의아했는데, 이제야 앞뒤가 맞았다."당연히 묘안이 있지요. 내게 몇 달만 시간을 주면 절대 밑지지 않고 이윤을 남겨드리죠."하 낭자는 가슴을 두드리며 자신만만하게 장담했다."유 낭자, 들으셨지요?"강유영은 유 낭자를 바라보며 담담히 물었다."그 물건들은 하 낭자께서 알아서 처리하실 테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더 다른 문제가 없다면 장부를 가져오시지요."찰나의 순간 유낭자의 얼굴이 일그러졌으나, 이내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왔다."가서 가져오너라. 서재 책상 위에 다 정리해 두었다."유 낭자는 고개를 돌려 일꾼에게 지시했다.잠시 후, 일꾼이 장부를 받쳐 들고 돌아왔다."장부는 내가 다 확인했으니, 나중에 틈날 때 훑어보기만 하세요."곁에 섰던 하 낭자가 거들었다.강유영은 무심하게 장부 한 권을 집어 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땅문서와 집문서 명의도 다 넘어왔고 관아의 도장도 찍혔으니, 이제 이 전당포 일은 내 뜻대로 움직입니다. 유 낭자는 이 전당포에서 오랫동안 일하셨으니 그 노고는 인정합니다만, 설마 장부에 장난을 치지는 않으셨겠지요."얼핏 들으면 유 낭자를 신뢰하는 듯했지만, 얕은수를 쓰지 말라는 경고였다. 너의 속내쯤은 훤히 꿰뚫어 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유 낭자는 그 말에 낯빛이 붉으락푸르락 변하더니, 결국 고개를 숙이고 꼬리를 내렸다."당연한 말씀이십니다. 아씨께서 점포를 물려받으셨으니 이제 전당포의 진짜 주인이십니다. 저희는 아씨의 명에 따를 뿐입니다.""좋다."강유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004화

    하 낭자는 턱을 치켜들며 따지듯 말했다.강유영은 가만히 하 낭자를 바라보았다.그녀를 대할 때는 늘 부드럽고 상냥했던 하 낭자였는데 이렇게 단호하고 위압적인 모습은 처음 보았다.하지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금수 상회가 오늘날처럼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하 낭자에게 그만한 수완이 있었기 때문일 터."감히 그럴 리가요."유 낭자는 그 말을 듣고 즉시 고개를 숙이며 한결 공손한 태도를 취했다."유영 아씨께서 언제 혼례를 올리셨는지요? 부군은 누구십니까?"한씨에게 듣기로는, 강유영은 혼인한 뒤에야 전당포의 경영권을 넘겨받을 수 있다고 했다.물론 혼례를 치른 뒤 강유영이 죽는다면, 이 전당포는 자연스럽게 한씨의 차지가 될 것이다.그런데 유 낭자는 그녀가 혼인했다는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다. 금수 상회가 왜 벌써 전당포를 넘겨준다는 건지 의구심이 들었다."그건 그쪽이 확인할 일이 아닌 듯한데요."강유영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유 낭자를 주시했다.유 낭자는 내심 뜨끔했지만, 겉으로는 애써 표정을 감췄다.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겉으로는 순종적인 척해도, 지금의 침묵은 속으로 몹시 반발하고 있다는 뜻이었다."유 낭자는 지금 우리 금수 상회의 신용을 의심하는 겁니까?"하 낭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그럴 리가요."유 낭자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여전히 공손한 기색으로 강유영을 향해 말했다."금수 상회에서 이미 확인하셨다니, 한낱 심부름꾼에 불과한 제가 어찌 이의를 제기하겠습니까. 다만, 얼마 전 전당포에서 물건을 대량으로 사들이느라 은자가 꽤 많이 묶여 있습니다. 족히 삼만 냥은 됩니다. 지금 당장 인수인계를 하시면 장부상 금액이 맞지 않을 테니, 이 물건들을 다 처분한 뒤에 넘겨받으시는 게 어떠실는지요?"제법 그럴싸한 핑계였다.전당포를 넘겨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시기가 맞지 않아서이니, 자신을 탓할 수 없을 거라는 속셈이었다."그 물건들은 지금 당장 처분할 수는 없나요?"강유영은 유 낭자를 보며 담담하게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003화

    강유영은 시선을 들어 무리를 훑어보며 속으로 조용히 인원을 세었다. 남녀를 합쳐 총 스무 명이었다.유 낭자까지 더하면 스물한 명이었다.강유영은 손끝을 만지작거렸다. 이렇게 큰 전당포와 많은 일꾼을 거느려 본 적은 없었다. 자신이 이 점포를 제대로 감당해 낼 수 있을지 내심 걱정스러웠다."사람들은 다 모였습니까?"하 낭자는 고개를 돌려 점주에게 물었다."유 낭자만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점주가 대답했다."이자들이 각자 어떤 일을 맡고 있는지 유영 아씨에게 설명해 주시지요."하 낭자가 눈짓했다.강유영도 고개를 들어 점주를 바라봤다. 점주는 멈칫하더니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제가 말주변이 부족하여 제대로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유 낭자가 오면 그때 유영 아씨께 설명드리도록 하는 편이 낫겠습니다."강유영은 시선을 돌렸다.점주는 겉으로만 굽신거릴 뿐, 속으로는 그녀를 윗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 듯했다.한씨가 수년이나 점포를 틀어쥐고 있었고 유 낭자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곳이었다.일꾼들이 하루아침에 들이닥친 그녀를 곧이곧대로 따르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하 낭자, 오신다고 미리 언질라도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문 앞까지 마중을 나갔을 텐데요."유 낭자는 영락없는 장사꾼의 얼굴이었다. 눈매에는 영악함이 서려 있었고, 미소는 퍽 서글서글했다."인사는 됐습니다. 이 전당포의 진짜 주인을 모시고 왔으니."하 낭자는 강유영을 향해 가볍게 손을 뻗어 보였다.강유영은 눈을 들어 유 낭자를 똑바로 주시했다. 그녀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조원철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을 최대한 흉내 냈다.유 낭자 같은 부류에게는 확실하게 위압감을 주어야 했다."유영 아씨께서 오셨군요. 미처 보지 못했습니다. 부디 언짢게 생각하지 마십시오."유 낭자는 그제야 강유영을 발견한 척 황급히 인사를 올렸다.정말 강유영을 못알아본 건 아니었다.예전에 강유영이 아들을 납치했을 때 간담이 서늘해진 기억이 있으니, 그녀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002화

    그렇지 않다면 진국공 부인이 은자를 꺼내 쓸 때마다 금수 상회의 감시 아래 굳이 강유영을 불러 지장을 찍게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점주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 하 낭자를 발견한 그는 굳었던 표정이 순식간에 풀리며, 아부 섞인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하 낭자, 그리고 유영 아씨 오셨군요. 마중을 나가지 못해 죄송합니다……."점주는 서둘러 관리인에게 접수대 앞의 손님을 응대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그러고는 접수대 문을 열어젖혔다.강유영을 알아본 순간부터 그는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서두를 것 없습니다. 점주님은 하던 일부터 마저 끝내시지요."강유영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으나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을 풍겼다.당연하다는 듯이 지시를 내리는 주인의 태도였다.점주는 강유영이 자신에게 그런 식으로 지시하자 저도 모르게 그녀를 유심히 쳐다보았다.하지만 점주는 이 전당포에서 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수많은 사람을 겪어본 만큼 당연히 쉽게 동요하지 않고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거기 두 사람은, 전당포 문을 닫거라. 점주님과 따로 할 얘기가 있으니."강유영은 곁에 있던 일꾼들에게 지시했다.지시를 받은 두 사람은 본능적으로 점주를 쳐다보았다. 점주가 고개를 끄덕이지 않으면 감히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아씨의 말대로 하거라. 이제부터 이 전당포는 아씨의 뜻대로 움직일 테니까."하 낭자가 미소를 지으며 거들었다.두 점원이 서로 눈치만 보고 있자, 점주는 손을 들어 지시에 따르라는 눈짓을 보냈다."하 낭자, 이쪽으로 와서 앉으시지요."강유영은 한쪽에 놓인 접객용 탁자와 의자를 발견하고는 망설임 없이 하 낭자를 이끌어 자리를 권했다.이 전당포는 이제 강유영의 것이었다. 주인이 된 이상 손님인 하 낭자를 대접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그러지요."하 낭자는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강유영은 직접 하 낭자에게 차를 따랐다.일꾼 두 명이 다가가 문을 걸어잠갔다. 점주와 관리인 역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001화

    정오 무렵, 번화한 거리는 쉴 새 없이 오가는 마차와 인파로 북적였다.마차에서 내린 하 낭자는 웃으며 강유영을 불렀다."아씨, 다 왔습니다."뒤따르던 마차에서 내린 강유영은 가볍게 미소 지었다.앞으로 다가간 그녀는 계단 아래에 멈춰 서서 위를 올려다보았다.입구 위에는 금박을 입힌 검은 현판이 걸려 있었다. 현판에는 힘차고 위풍당당한 필체로 보흥 전당포라고 새겨져 있었다.한씨가 수년이나 강제로 쥐고 흔들었음에도 장사는 여전히 잘되는 듯, 문 앞을 드나드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들어가시지요. 오늘부로 이 전당포의 진짜 주인이 되시는 겁니다."하 낭자는 미소를 띠며 다가와 살갑게 강유영의 팔짱을 꼈다.그동안 거래를 트고 지내며 하 낭자 역시 강유영의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한 터였다.강유영은 씀씀이가 후하고 성품도 모난 데가 없어 상대하기 편했다. 무엇보다 전당포 경영에는 문외한이니 직접 관리하기는 벅찰 텐데, 그 자리를 자신이 대신해 줄 수 있었다.게다가 전당포를 끼고 굴릴 수 있는 다른 사업도 많았다.강유영은 일을 맡길 때마다 사례를 섭섭지 않게 했으니, 앞으로 든든한 재물신이 될 분이었다. 당연히 지극정성으로 모셔야 했다."그러지요."강유영은 머리 위의 현판을 다시 한번 눈에 담았다.한씨가 오랫동안 차지하고 있었으니, 안에서 일하는 자들은 전부 돈에 매수된 수족들일 것이다.하지만 걱정할 것 없었다.지금 한씨는 수중에 돈이 말랐는데, 점원들의 입을 막을 은자가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강유영은 달랐다.돈으로 사람의 마음을 부리는 법이라면 조원철에게 지겹도록 배웠다. 앞으로 어떻게 판을 짜야 할지 머릿속에 다 들어 있었다.전당포 안으로 들어서자, 사람 키만 한 높은 접수대가 보였다. 물건을 맡기러 온 손님 두 명이 고개를 빼들고 안을 살피는 중이었다.접수대 안쪽 진열장에는 금은보화와 옥 장신구, 고급 비단과 서화가 빼곡했다.점주는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었는데, 안에서 요란하게 주판알을 튕기는 중이었다. 점원들이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화

    초여름의 이른 아침.경성 진국공부의 사당 주변은 아침부터 자옥한 안개로 휩싸였다.조용한 사당 안에서는 승려가 경을 읊는 소리가 이따금씩 흘러나오고, 정원 내 청동로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당을 지키는 시녀와 하인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다.강유영은 치맛자락을 들고서 처마 길을 따라 뒤뜰을 나오고 있었다. 온몸에 퍼진 근육통 때문에 걸음걸이가 다소 어색했다.좌측 쪽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커다란 손이 뻗어 나와 가늘고 여린 그녀의 허리를 가로챘다. 상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녀를 끌고 뒤뜰에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7화

    강유영은 그가 왜 여기에 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뒤돌아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너무 긴장한 탓에 다리가 바닥에 꽁꽁 얼어붙은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들어오거라.”조원철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명령했다.강유영은 누가 보기라도 할까 두려워,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내실로 들어갔다.“언제 오셨나요?”잠깐 오씨 어멈의 저녁을 챙기러 나갔다 온 사이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지금쯤이면 밖에서 왕 소저와 저녁 식사를 해야 하지 않나?’조원철이 다가오더니 문을 닫았다.강유영은 뒤로 두 걸음 물러서서 그와 거리를 벌리고 고개를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6화

    “기특하기도 하지. 어서 이리 와서 앉으렴.”한씨는 웃으며 강유영을 향해 손짓하더니 자신의 옆자리를 가볍게 두드렸다.밖에서 강유영에게 잘해주는 것은 인자한 진국공 부인의 명성을 위해서였다.강유영은 약상자를 장 의원에게 건네고는 고분고분 그쪽으로 다가갔다.장 의원은 그녀와 시선을 교환하고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유영의 처지를 잘 알기에, 그녀의 거짓말을 까발리지 않았다. 장 의원은 손을 뻗어 한씨의 손목에 대고 진맥을 시작했다.한씨의 옆에 앉은 강유영은 불안하게 병풍 뒤쪽을 힐끔거렸다.조원철은 탁자 앞에 마주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5화

    “유영아? 얘네가 다 어디로 갔지?”한씨가 병풍 쪽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어머니, 오지 마세요. 제가 부주의로 우유차를 옷에 쏟아서 닦고 있었습니다.”다급한 마음에 강유영은 아무 핑계나 둘러댔다. 손바닥은 이미 땀으로 흥건했다.한씨는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네 오라비는?”강유영은 고개를 돌리고 애원에 찬 눈길로 조원철을 바라보았다. 당황하고 조급한 나머지 맑은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조원철은 그날 밤 그만하자고 애원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그는 긴 팔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잡아당겨 단단히 품에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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