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강유영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답했다."어머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오늘은 몸이 한결 가벼운 걸 보니 거의 다 나은 듯합니다."사실 완전히 나은 것은 아니었으나 지난 며칠처럼 괴롭지는 않았다.공혜 부인은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혼자 속을 끓이다가 이 지경이 된 것이냐?"강유영은 고개를 숙인 채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그게……."진국공부와 얽힌 일들은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 공혜 부인에게 들려드리고 싶지 않았다.공혜 부인은 곤란해하는 그녀의 기색을 보고 시원스럽게 말했다."말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강유영은 면목이 없어 고개를 들지 못했다. 공혜 부인이 자신을 한식구로 생각하지 않아 속마음을 숨긴다고 오해할까 봐 걱정되었다.공혜 부인이 다시 물었다."조 세자와의 혼사는 없던 일로 하고 싶은 것이냐?"강유영은 입술을 깨문 채 침묵을 지켰다. 그녀라고 어찌 그 혼사를 원치 않겠는가. 그저 타고난 복이 없어 그 인연을 이어 갈 수 없을 뿐이었다.공혜 부인은 의자에 앉으며 혀를 찼다."너는 늘 이리 우유부단해서야 무슨 결단을 내리겠느냐. 이리 앉거라."강유영은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공혜 부인은 그녀를 바라보며 안쓰러운 듯 말했다."하긴 어릴 때부터 그런 대접을 받으며 자랐으니, 비뚤어지지 않고 자란 것만으로도 대견한 일이다."강유영은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내린 채 잠자코 듣고 있었다.공혜 부인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몸도 어느 정도 회복된 듯하니 나를 대신해 일 좀 처리해 주겠느냐?"강유영은 고개를 들어 공혜 부인을 바라보며 반갑게 답했다."무슨 일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어머니."그동안 공혜 부인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으면서도 제대로 보답할 기회가 없었기에 기꺼이 나설 것이다.마침 서유가 차를 내왔다.공혜 부인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뒤 천천히 말했다."매화 마을에 있는 자은사 곁에 내가 가진 별원이 한 채 있는데, 평소에는 참배객들이 쉬어 가도록 내어 주는 곳이다.
강유영은 그의 집요한 시선이 불편해 눈을 내리깔며 물었다."어서 말씀해 보십시오. 무슨 단서입니까?"서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미소를 띠며 물었다."전에 네 출생을 조사할 때 뚜렷한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만, 혹시 강남의 강씨 가문을 알고 있느냐?"강유영은 기억을 더듬으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예전에 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서준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어쩌면 그곳이 네 외가일지도 모른다. 그 강씨 가문도 상업을 크게 하는 집안이니 네 어머니가 그 집안의 딸이었을 가능성이 크지 않겠느냐.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네게 전당포를 남겨 줄 수 있었겠느냐?"강유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군요."예전에 그녀도 스치듯 생각해 본 적은 있었으나, 강남 강씨 가문에 대해서는 상업을 크게 하여 막대한 부를 쌓은 집안이라는 것 외에는 아는 바가 없었다.서준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저택에 무료하게 박혀 있을 바에야 나와 함께 강남으로 가서 외가를 찾아보는 것이 어떠하냐?"강유영은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괜찮습니다."그와는 조금도 얽히고 싶지 않고 함께 먼 길을 떠날 생각은 없었다. 다만 몸이 다 나은 뒤에 혼자 강남에 다녀오는 일은 생각해 볼 만했다. 이름 없는 가문도 아니니 찾기는 어렵지 않을 터였다. 큰 기대는 없었으나 직접 확인해 보아야 마음이 놓일 듯했다.서준은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물었다."어째서냐? 진실을 알고 싶지 않은 것이냐?"강유영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가 단호하게 답했다."한씨가 직접 입을 열게 만들 것입니다."서준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기백이 대단하구나. 헌데 끝까지 입을 열지 않으면 어쩌겠느냐?"강유영은 입술을 깨물며 서늘한 눈빛으로 말했다."결국 말하게 될 것입니다."조원철은 사람에게 누구나 약점이 있으니 상대를 굴복시키려면 그 약점을 파고들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었다. 한씨의 약점이 조원철일 수도 있었으나, 강유영이 조원철을 해치지 못한다는 것을 한씨도 알기에 통하지 않을 터였다. 그렇다면 차남
강유영은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했다."방금 그런 일을 겪었는데 당장 혼사를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게 이상합니까?"그녀는 아까부터 서준을 어떻게 거절할지 고심하고 있었다. 무턱대고 싫다고만 하면 그의 화를 돋울 터였다. 서준도 그녀와 조원철 사이의 일을 알고 있으니, 지금 혼사를 논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걸 이해할 법했다.서준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네 말도 맞구나. 어차피 조원철에게 시집갈 수는 없을 테니 나는 급할 것 없다. 얼마든지 기다려 주마."강유영은 곧장 선을 그었다."저는 아무것도 약조한 적이 없습니다."말을 하고 나니 그의 심기를 건드렸을까 봐 덜컥 겁이 났으나, 나중에 빌미를 잡히지 않으려면 확실히 해 두어야 했다.서준은 가볍게 웃어넘기며 말했다."뭘 그리 기겁하느냐. 내가 그토록 말이 안 통하는 사람으로 보이느냐?"강유영은 속으로 가슴을 졸이면서도 짐짓 태연하게 되물었다."그럼 말이 통하는 사람입니까?"서준은 한없이 너그러워 보이다가도 순식간에 무섭게 돌변하곤 해서 어느 쪽이 진짜 모습인지 알 수 없었다.서준이 문득 그녀에게 물었다."유영아, 내가 대신 한씨를 죽여서 네 어머니의 원수를 갚아 줄까?"강유영은 곧바로 거절했다."그럴 필요 없습니다."서준은 가까이 다가오며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어째서냐? 네 손으로 직접 원수를 갚고 싶은 것이냐? 원한다면 내가 한씨를 잡아다 줄 수도 있다. 어떻게 괴롭혀 주고 싶으냐? 손발의 힘줄을 끊어 놓을까, 아니면 인두로 지져 줄까? 그것도 아니면……."웃음 띤 얼굴로 잔혹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그를 보며, 강유영은 겁이 나 말을 가로막았다."그만하십시오……."그녀가 생각한 복수는 한씨를 죽게 만드는 것뿐이었지, 그토록 끔찍한 방법으로 고문할 생각은 없었다.서준은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두고 매서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원수를 갚기 싫은 것이냐? 아니면 아직도 조원철에게 시집가고 싶어서, 그 어미를 죽였다가 두 사람 사이가 완전히 끝장날까 봐 두
서준은 그릇을 창틀 위에 내려놓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내가 보기에 너는 앞으로 문밖에도 나가지 말아야겠다."강유영은 무슨 뜻인지 몰라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공혜 부인의 딸인 그녀에게 서준이 무슨 자격으로 외출을 금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서준은 바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뭘 그리 노려보느냐? 바람이 세게 불면 네가 날아갈까 봐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다."강유영은 그제야 농담이라는 것을 알고 입을 다물었다. 서준을 대할 때면 늘 경계심이 앞서다 보니 가벼운 농담에도 날을 세우게 되었다.서준은 숟가락으로 꿀빙수를 한술 떠서 그녀의 입가로 가져가며 말했다."이 무더운 날에 내가 더위 먹을 각오까지 하고 저잣거리에 나가 직접 사 온 것이니 한입이라도 맛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자, 입을 벌리거라. 내가 떠먹여 주마."강유영은 고개를 뒤로 빼며 미간을 찌푸린 채 거절했다."정말 먹고 싶지 않습니다."서준은 그릇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오려는 듯 몸을 돌렸다."그럼 안으로 들어가서 먹여 주마."강유영은 그가 방 안으로 들어와 또 소란을 피울까 봐 어쩔 수 없이 말했다."제가 직접 먹겠습니다."평소에도 서준을 자극하지 않으려 애썼는데, 지금은 마음마저 심란하여 더더욱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았다.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그릇을 건넸다."진작 그럴 것이지, 꼭 엄포를 놓아야 말을 듣는구나."강유영은 그릇을 받아 들고 작게 한술 떠먹었다. 그의 말대로 꿀과 팥소가 듬뿍 들어가 평소 먹던 것보다 훨씬 달콤했다.서준은 창틀에 팔꿈치를 괴고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맛있지 않느냐?"강유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물었다."예. 헌데 오늘 무슨 일로 오셨는지는 아직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그녀는 서준과 오래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다정한 얼굴을 할 때마다 지난번에 사납게 노려보던 모습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서준은 그녀가 빙수가 차가워서 몸을 떤 줄로만 알고 웃으며 말했다."차가우면 천천히
강유영은 창가에 기대어 턱을 괸 채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 잿빛으로 흐린 하늘이 지금 그녀의 마음 같았다.그때 처소 문 쪽에서 서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전하, 지난번에 공혜 부인께서도 별일 없거든 찾아오지 말라고 말씀드리지 않으셨습니까. 우리 군주님께서는 전하를 뵙고 싶어 하지 않으십니다."서준은 평소처럼 능청스러운 어조로 답했다."내가 작은고모를 보러 왔다는데 그것도 안 되느냐? 고모가 나를 보기 싫어하는 것이냐, 아니면 네가 가로막는 것이냐?"서유는 문 앞을 가로막은 채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말했다."군주님께서는 몸이 편찮으셔서 손님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으시니 그만 돌아가 주십시오."강유영은 그날 조원철을 돌려보낸 뒤로 한 번도 그를 만나지 않았다. 조원철도 밤에 몰래 와서 살펴보고만 갈 뿐 얼굴을 마주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런 마당에 서준을 들여보내 빈틈을 파고들 기회를 줄 수는 없었다.서준은 물러서지 않고 말했다."편찮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일부러 문병을 온 것이다. 비키거라."서유도 한 발짝도 비켜서지 않고 그의 앞을 막아서며 버텼다."안 됩니다……."강유영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절대 서준을 들여보내지 않을 생각이었다.서준은 인내심이 바닥난 듯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서유야, 계속 눈치 없이 굴면 나도 사정을 봐주지 않을 것이다."서유가 다시 입을 열려던 참에 안쪽에서 강유영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서유야."서유가 고개를 돌려 답했다."예, 군주님."서준도 강유영이 있는 쪽을 바라보며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유영아, 네가 걱정돼서 보러 왔다."강유영은 서유에게 조용히 명했다."들여보내 드려라."서준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전까지는 물러서지 않는 성정이라, 서유가 계속 막아서면 정말로 거친 수를 쓸 터였다. 마음이 심란한 상태에서 괜히 소란을 키우고 싶지 않았다.서유는 아쉬운 기색을 삼키며 옆으로 비켜섰다.서준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찬합을 들고 마당 안으로 걸어 들어
다른 일이라면 그가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으나, 그가 한씨의 아들이라는 사실만큼은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친어머니의 죽음이 가로막고 있었다.강유영은 그의 품에서 벗어나 침상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눈가를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머리카락 속으로 스며들었다.그녀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우리는…… 여기까지인 듯합니다. 우리 사이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는 서로 잘 알지 않습니까. 오라버니의 모친께서 제 어머니의 목숨을 앗아 가셨습니다."조원철은 다가앉으며 그녀를 다시 품에 안으려고 손을 뻗었다."유영아, 내가 해결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강유영은 그의 손길을 피하고 고개를 돌려 처연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어떻게 해결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저를 위해 친어머니를 죽이기라도 하시겠습니까? 오라버니를 낳고 길러 준 어머니를 차마 해칠 수 있으십니까, 아니면 돌아가신 제 어머니를 살려 내실 수 있으십니까?"조원철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두 가지 모두 그가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강유영은 몸을 돌려 그에게 등을 보인 채 울음을 삼키며 차갑게 말했다."그만 가십시오. 지난 일은 모두 없던 것으로 치고, 이제부터는 남남으로 각자의 길을 갑시다. 다시는 오라버니를 보고 싶지 않습니다."조원철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한씨가 내 친어머니가 아닐 수도 있다."강유영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허탈하게 웃었다."그 말을 오라버니께서는 믿으십니까? 그만하시고 어서 돌아가십시오."자신도 한씨의 친딸이 아닌데 조원철마저 친아들이 아닐 리가 없었다. 누구도 믿지 못할 말이었다.조원철이 다시 말했다."이미 사람을 시켜 알아보고……."강유영은 격앙된 목소리로 그의 말을 끊었다."듣고 싶지 않으니 지금 당장 나가십시오!"그녀는 다시 몸을 돌려 그를 등지고 누웠다.조원철은 침상 가장자리에 앉은 채 움직이지 않고 말했다."나는 가지 않는다."강유영은 안쪽 벽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말했다."오라버니께서 이곳을 떠
한씨가 고개를 돌려 강유영을 바라봤다.곁눈질로 보니, 조원철도 고개를 들고 이쪽을 바라보는 듯했다.강유영은 억지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떡을 다시 집어 조심스럽게 입안에 넣었다.마치 돌을 씹는 것처럼 입안이 쓰고 껄끄러웠다.‘왜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시는 거지? 뭘 알고 일부러 저러시는 걸까?’이유야 어찌 됐건 한씨가 이에 대해 굉장히 불쾌해하고 있음은 분명해졌다.조원철은 무표정한 얼굴로 되물었다.“왜 그런 질문을 하십니까?”한씨는 손을 뻗어 아들의 목에 난 자국을 어루만지더니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곱게 자란 처자라면
조원철을 따라 밖으로 나갔더니, 밖은 어느새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차가운 습기가 얼굴에 닿자, 강유영은 저도 모르게 움찔 목을 움츠렸다.“세자.”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조원철의 측근 청운이 다가와서 우산을 건넸다.조원철은 우산을 펼치고는 강유영에게 따라오라는 듯, 눈짓했다.강유영은 난색을 띠며 주저했다.“아씨, 세자께서 처소까지 모셔다드린답니다.”청운이 웃으며 말했다.“배려 감사해요, 오라버니.”강유영은 어차피 그와 따로 할 말도 있고 해서 공손히 예를 행하고는 그를 따라나섰다.청운은 빗속을 나란히 걷고 있는 두
“문을 열고 들어가 보자꾸나.”한씨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강유영은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머리털이 곤두서고 정신은 아찔해져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았다.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오직 문이 열리면 둘 다 끝장이라는 생각만 맴돌 뿐이었다. 온몸은 얼어붙은 듯, 꼼짝할 수 없었다. 그녀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손을 뻗어 조원철의 어깨를 밀었다.그녀는 안간힘을 쓴 것이었지만, 조원철에게는 그저 간지러울 정도였다.투명한 두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히고 길게 말린 속눈썹에는 눈물방울이 맺혀 처연하기 그지없었다. 축 처진
초여름의 이른 아침.경성 진국공부의 사당 주변은 아침부터 자옥한 안개로 휩싸였다.조용한 사당 안에서는 승려가 경을 읊는 소리가 이따금씩 흘러나오고, 정원 내 청동로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당을 지키는 시녀와 하인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다.강유영은 치맛자락을 들고서 처마 길을 따라 뒤뜰을 나오고 있었다. 온몸에 퍼진 근육통 때문에 걸음걸이가 다소 어색했다.좌측 쪽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커다란 손이 뻗어 나와 가늘고 여린 그녀의 허리를 가로챘다. 상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녀를 끌고 뒤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