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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4화

Author: 눈빛 속의 약속
심장이 날카로운 칼끝에 푹 찔린 듯 예리한 통증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얼굴은 이미 창백하게 질렸다.

그가 매일같이 밖으로 돌며 바쁘게 움직였던 것도 결국 소은경 때문이었던 걸까.

궁에서 술에 취해 돌아왔을 때도 그녀와 함께 술잔을 기울였을 지도 모른다

그가 그토록 노심초사하며 치밀하게 계획하던 모든 일들이 전부 소은경의 안위를 도모하기 위함이었던 걸까?

"폐하께서 단지 승은만 내리셨을 뿐, 교지조차 내리지 않으셨는데 무슨 지장이 있겠습니까."

조씨 노부인이 서둘러 해명했다.

"안심하십시오. 그녀와 우리 국공부는 이제 일말의 연관도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한씨가 맞장구를 쳤다.

"저희가 직접 폐하께 자초지종을 명백히 고했습니다. 애당초 혼사도 폐하께서 친히 내려주신 것이었고, 두 아이는 사사로이 정을 통한 적도 없었지요."

강유영은 그 말을 들으며 속이 쓰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했다.

조원철과 소은경 사이에 사사로운 정이 없었다니.

한씨는 세상 사람들을 모두 눈먼 장님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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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188화

    "며칠 전에 연극을 보았는데, 극 중 이야기가 그렇더구나."서준이 말을 이었다."네가 원한다면, 전보주를 집으로 돌려보내마. 어차피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아서 아직 순결한 몸이니 다른 데로 시집갈 수 있을 거다. 그렇게 되면…….""싫습니다!"강유영은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무엇이 싫다는 거냐?"서준이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평생 한 사람하고만 백년해로하는 거 싫습니다."강유영은 명확한 어조로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서준이 전보주를 돌려보내게 두어선 안 되었다. 나중에 강유영을 위해서 그랬다며 핑계를 댈 것이 뻔한데, 그녀는 조금도 그럴 마음이 없었다.만약 서준이 정말 전보주를 내친다면, 그는 그 책임을 강유영에게 전가할 테고 전보주와 전씨 가문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강유영은 이런 시비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오?"서준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가볍게 웃었다."그거 참 이상하구나.""아씨?"밖에서 서유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빨리 가십시오. 제 시녀가 왔습니다."강유영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급히 말했다."내 말 명심했느냐?"서준은 의자에 앉은 채 꿈쩍도 하지 않고 강유영을 빤히 응시했다."알겠습니다."강유영은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당장이라도 서준이 돌변해서 흉기를 날릴까 봐 덜컥 겁이 났다. 그저 빨리 이 상황을 모면하고 싶었다."좋다. 네 말 기억하마."서준은 강유영을 뚫어지게 보더니 짧게 웃음을 터뜨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강유영은 다급히 문을 열고 서유의 손을 덥석 잡았다. 큰 위기를 넘겼다는 안도감과 뒤늦은 공포가 밀려왔다."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씨? 오랜만에 뵈니 제가 그리도 보고 싶으셨습니까?"서유는 강유영의 다급한 모습에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그래, 무척 보고 싶었지."강유영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창문 쪽을 힐끗 돌아보았다.창문은 여전히 열려 있었다."아씨, 무슨 일 있으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187화

    강유영은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경악과 분노가 뒤엉켰다.조원철의 품에 안겨 울었다니?병주성 사찰 뒤편의 벼랑 끝 정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는 걸까?그때 그녀는 자신을 놓아달라며 벼랑에서 뛰어내리겠다고 조원철을 협박했다.그리고 중상을 입고 쓰러진 조원철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서준이 그 모습을 보았다는 뜻일까?그가 병주까지 쫓아갔다는 걸까?조원철을 협박할 때 서준은 어둠 속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걸까.조원철과 자객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두 사람은 배후가 강왕이 아니라 다른 사람일 것이라 의심했었다.이제 보니 그날 두 사람을 죽이려고 습격했던 자객들은 서준이 보낸 수하들인 듯했다.강유영은 입술을 꾹 다문 채 서준을 힐끗 보았다.예전부터 그녀는 서준의 감정 기복이 유별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는 한없이 잘해주지만, 수틀리면 광기에 휩싸여 누구든 죽이고도 남을 사람이었다.그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그날 자객들은 매서운 공격으로 집요하게 강유영만을 노렸다. 조원철은 그녀를 지키려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것이었다."왜 말이 없느냐? 정곡을 찔렸느냐?"서준이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 채 강유영을 훑어보았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시선이었다. 평소의 건들거리던 모습과는 전혀 달라 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이러지 마십시오……."강유영은 치미는 공포와 분노를 억누르며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서준은 언제 돌변할지 모를 광인이었다.지금 이 방에는 강유영과 서준 둘뿐이었다. 우선은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 급선무였기에 그를 자극할 수는 없었다."이러지 말라니?"서준이 바짝 다가와 강유영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저는 그 누구와도 혼인하지 않았습니다."강유영은 담담한 눈빛으로 시선을 마주했다.그녀는 조원철이 억지로 서명하게 한 혼인 서약서가 가짜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그러니 이 말만큼은 이치에 맞고 당당할 수 있었다.서준은 잠시 뚫어지게 보더니 돌연 픽 웃음을 터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186화

    그렇다면 그녀가 병주에 다녀온 사실을 서준도 알고 있는 것일까.강유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서준은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그는 창문을 훌쩍 넘어 책상 맞은편에 앉았다. 여전히 예전처럼 껄렁한 모습이었다.하지만 자세히 보니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며칠 밤을 설친 듯했다. 강유영을 바라보는 눈빛도 평소와 달리 서늘하고 음침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왜 자꾸 빤히 보시는 겁니까?"강유영은 주판알을 튕기며 물었다. 굳이 고개를 들지 않아도 집요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유영아."서준이 나지막이 그녀를 불렀다.그는 한참 동안 그녀를 응시했다. 오랫동안 지방에서 고생했을 텐데, 그녀는 여전히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먼 길을 재촉해 돌아왔음에도 미간에는 지친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누군가 곁에서 살뜰히 보살핀 티가 났다.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불 보듯 뻔했다.다음 순간, 서준은 주먹을 꽉 쥐었다."예?"강유영은 여전히 시선을 내린 채 무심하게 대꾸했다.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금 더 기다리던 강유영은 마침내 그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녀는 주판을 튕기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서준을 바라보았다."무슨 일 있으십니까?"그녀의 시선이 그의 얼굴에 머물렀다. 어딘가 불쾌한 표정이었고 두 눈은 붉어져 있었다."요즘 정무가 바쁘십니까? 잠을 통 못 주무신 얼굴입니다."강유영은 그의 지친 기색을 알아차리고 가볍게 물었다."하나만 묻자."서준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고개를 삐딱하게 틀어 그녀를 보았다. 앉은 자세는 평소처럼 불량했지만 눈빛이 그를 배신하고 있었다."무엇입니까?"강유영은 서준의 눈에서 전과 다른 이질적인 감정을 읽어냈다. 진지함을 넘어선 엄숙함,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듯 예리한 기운이었다.서준이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낯선 모습이었다. 강유영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으며 원인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다."너는 이미 그놈과 함께하기로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185화

    강유영은 그의 이런 배려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밤에 찾아오겠다는 그의 말에는 묘한 의미가 섞여 있었다.얼굴이 걷잡을 수 없이 또 붉어졌다."오자마자 연회가 열리지는 않을 거다."조원철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설령 궁에서 연회가 열리지 않는다 해도 동료들이 부를 겁니다. 정 안되면 국공부에서 환영 연회를 열어주시겠지요."강유영은 풍성한 속눈썹을 내리깔며 작게 말했다."신경 쓸 것 없다. 밤에 찾아갈 테니 기다리거라."조원철은 그녀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부드러운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춘 뒤에야 청운에게 마차를 세우라 일렀다.마차가 관도 위에 멈춰 섰다. 조원철은 마차에서 내리며 다시 한번 강유영을 돌아보았다.강유영은 그의 이목구비에 아쉬움이 묻어나는 것을 보았다. 입술을 꾹 다물며 미소 짓고는 옷자락을 꽉 쥔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이럴 때마다 환상에 빠지곤 했다. 두 사람이 정말로 깨가 쏟아지는 신혼부부인 것만 같았다.그녀는 다시 휘장을 걷고 밖을 내다보았다.조원철은 이미 커다란 말 위에 올라타고 위풍당당한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강유영은 순간 멍해졌다. 그는 예전의 차갑고 냉정한 모습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먼저 가거라."조원철이 고개를 돌려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말이 더 빠르니 오라버니 먼저 가십시오."강유영은 반달 눈웃음을 지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네가 성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가마."조원철은 앞을 주시하며 단호하게 말했다."알겠습니다. 출발하거라, 청운."강유영이 일렀다.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그가 뒤에서 따라가는 것을 택한 이유는 성 밖이 위험할까 걱정되어서였다. 무사히 성에 들어가는 것을 봐야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이따금 그는 벅차게 감동시킬 만큼 세심했다.마차는 천천히 상경성으로 진입하여 보흥 전당포 앞에 멈춰 섰다."세자께서 입궁하셨으니 너도 어서 따라가 보렴."강유영은 마차에서 내리며 청운에게 말했다."그럼 사람을 보내 서유를 불러오겠습니다. 서유가 오기 전까지는 함부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184화

    강유영은 순간 멍해졌다.그럼 그동안 귓가에 대고 속삭였던 말들이 진심에서 나온 말이지, 소은경을 떠올려서가 아니라는 말일까?하지만 그녀는 조원철이 소은경과 밀회하는 것을 여러 번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었다.강유영은 혼란스러웠다. 그를 믿어야 할지, 아니면 자신의 눈을 믿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무슨 생각을 그리하느냐."조원철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소은경을 부르시는 줄 알았습니다."강유영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그가 어떤 핑계든 한마디만 해준다면 믿어줄 것이다."그럴 리가 있느냐."조원철은 그녀의 코끝을 가볍게 건드리며 말했다."엉뚱한 생각만 하는구나.""알겠습니다."그 말을 들은 강유영은 그의 어깨에 기댔다.그는 더 이상 해명할 생각이 없어 보였고, 그녀 역시 굳이 캐묻지 않았다.어떤 일은 적당한 선에서 덮어두는 편이 나았다.지금 이 상태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돌아가면 폐하께 상소를 올려 도경진을 병주로 보내라 청하마."조원철은 강유영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왜 하필 그 사람입니까?"강유영은 그가 또다시 도경진을 입에 올리자 참지 못하고 물었다."네가 그 자식과 만나는 게 싫으니까."조원철은 시선을 들어 앞을 응시하며 차갑게 말했다.소주에서 그녀를 처음 찾아냈을 때의 상황이 떠올랐다.그리고 벼랑에서 뛰어내리겠다며 협박하던 그녀의 단호한 모습도 머릿속을 스쳤다.이번에 자객의 습격을 받아 중상을 입지 않았다면, 그녀는 그대로 그를 떠났을 터였다.마음속에 다른 사내를 품지 않았다면 그리 미련 없이 떠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분은 이미 조사예와 혼인했습니다. 대체 무슨 상상을 하시는 겁니까."강유영은 조원철의 가슴을 가볍게 치며 타박했다. 그의 속마음을 당최 알 수 없었다."그 녀석이 널 소주까지 데려갔는데, 내가 경계하지 않게 생겼느냐."조원철의 눈빛이 어둡게 짙어졌다."몇 번이나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친 것이지, 약속하고 동반 도주한 게 아니라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183화

    "내가 널 존중하지 않는 것 같으냐?"조원철은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시선을 맞추었다."그럼 아닙니까?"강유영은 시선을 피하며 퉁명스레 말했다.얼굴은 잘 익은 사과처럼 붉게 달아올랐다."아니다."조원철은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그저 부부간의 소소한 장난이라 여겼다. 너도 매번 좋아하지 않았느냐.""누가 좋아했다는 겁니까? 참으로 뻔뻔하십니다."강유영은 두 손으로 조원철의 눈을 가렸다.눈빛이 불처럼 뜨거워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본능적인 반응을 어떻게 좋아한다고 해석했을까?참으로 뻔뻔하고도 얄미운 사내였다.조원철은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강유영의 입가에도 미소가 그려졌다."정말 그저 장난일 뿐이었다. 어찌 그리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것이냐."조원철이 다시 다정하게 말했다."그럼 제 동의를 구한 뒤에 하셔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강유영은 모처럼 새침한 어투로 애교를 부렸다.'사실일까?'그 많은 경험들이 그녀를 가볍게 여겨서가 아니라 서로 즐겁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믿을 수가 없었다."알겠다."조원철은 흔쾌히 대답했다."약조하신 겁니다?"강유영이 고개를 갸웃하며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우선 손부터 놓거라."조원철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그의 긴 속눈썹이 손바닥을 스칠 때마다 간지러웠다.강유영은 얼른 손을 거두었다.조원철은 웃으며 다가가 그녀에게 입을 맞추려 했다."아직 대답 안 하셨습니다. 약조하신 겁니까?"강유영은 상체를 뒤로 젖히며 입맞춤을 피했다."약조하마."말을 마친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목덜미를 감싸고는 입가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일단 믿어드리겠습니다."강유영은 반달처럼 눈웃음을 지으며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럼 지금은 동의하는 것이냐?"조원철이 바짝 다가와 눈을 응시하며 물었다."싫습니다! 참으로 뻔뻔하십니다."강유영은 다시 주먹을 쥐고 가슴을 쳤다.몸이 회복되자마자 또 그런 마음을 품다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화

    초여름의 이른 아침.경성 진국공부의 사당 주변은 아침부터 자옥한 안개로 휩싸였다.조용한 사당 안에서는 승려가 경을 읊는 소리가 이따금씩 흘러나오고, 정원 내 청동로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당을 지키는 시녀와 하인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다.강유영은 치맛자락을 들고서 처마 길을 따라 뒤뜰을 나오고 있었다. 온몸에 퍼진 근육통 때문에 걸음걸이가 다소 어색했다.좌측 쪽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커다란 손이 뻗어 나와 가늘고 여린 그녀의 허리를 가로챘다. 상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녀를 끌고 뒤뜰에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7화

    강유영은 그가 왜 여기에 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뒤돌아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너무 긴장한 탓에 다리가 바닥에 꽁꽁 얼어붙은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들어오거라.”조원철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명령했다.강유영은 누가 보기라도 할까 두려워,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내실로 들어갔다.“언제 오셨나요?”잠깐 오씨 어멈의 저녁을 챙기러 나갔다 온 사이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지금쯤이면 밖에서 왕 소저와 저녁 식사를 해야 하지 않나?’조원철이 다가오더니 문을 닫았다.강유영은 뒤로 두 걸음 물러서서 그와 거리를 벌리고 고개를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6화

    “기특하기도 하지. 어서 이리 와서 앉으렴.”한씨는 웃으며 강유영을 향해 손짓하더니 자신의 옆자리를 가볍게 두드렸다.밖에서 강유영에게 잘해주는 것은 인자한 진국공 부인의 명성을 위해서였다.강유영은 약상자를 장 의원에게 건네고는 고분고분 그쪽으로 다가갔다.장 의원은 그녀와 시선을 교환하고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유영의 처지를 잘 알기에, 그녀의 거짓말을 까발리지 않았다. 장 의원은 손을 뻗어 한씨의 손목에 대고 진맥을 시작했다.한씨의 옆에 앉은 강유영은 불안하게 병풍 뒤쪽을 힐끔거렸다.조원철은 탁자 앞에 마주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5화

    “유영아? 얘네가 다 어디로 갔지?”한씨가 병풍 쪽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어머니, 오지 마세요. 제가 부주의로 우유차를 옷에 쏟아서 닦고 있었습니다.”다급한 마음에 강유영은 아무 핑계나 둘러댔다. 손바닥은 이미 땀으로 흥건했다.한씨는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네 오라비는?”강유영은 고개를 돌리고 애원에 찬 눈길로 조원철을 바라보았다. 당황하고 조급한 나머지 맑은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조원철은 그날 밤 그만하자고 애원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그는 긴 팔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잡아당겨 단단히 품에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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