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7화

Author: 레몬티
지설은 새집에 산 물건들을 정리해 두고 나서야 영민과 함께 살고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 불을 켜자마자 소파에 앉아 있던 영민이 싸늘한 얼굴로 지설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설은 신발을 갈아 신고는 그저 영민의 곁을 지나쳤고, 말을 섞을 의도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 영민이 불쑥 손을 뻗어 지설의 팔을 잡아채더니 그대로 소파 위로 내던졌다.

부딪히는 순간, 다친 팔에 통증이 번져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영민은 지설이 다쳤던 일을 까맣게 잊은 듯, 늘 그랬던 것처럼 차갑게 입을 열었다.

“오늘은 또 뭐야? 감히 날 카톡에서 차단해? 병원은 왜 안 갔어?”

지난 3년 동안, 영민은 기분이 나쁠 때마다 지설에게 화풀이했다.

말로만 끝나는 날도 있었지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손을 쓴 적도 있었다.

가장 심할 땐 지설이 가구에 부딪혀 멍든 채 사흘을 꼼짝 못 하고 누워 있어야 했다.

사과는 늘 있었다.

“미안해,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영민은 그렇게 말했다.

지설도 그가 환자라는 걸 알기에 받아들이고 참아 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영민은 이미 다시 일어섰고, 예전처럼 무기력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이유가 없어.’

지설은 차갑게 내뱉었다.

“당신이 내 번호 차단할 땐 괜찮고, 내가 카톡 차단한 건 문제예요?”

“그리고, 난 주유연 씨 간병인이 아니에요. 그 사람이 다치든 말든, 내 책임 아니에요. 나도 그럴 의무 없어요.”

영민은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고개를 젓더니, 핸드폰을 꺼내 차단 목록을 열었다.

거기엔 분명 지설의 번호가 있었다.

‘아... 내가 차단했었지.’

이유는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는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긁적였다. 피곤한 듯 지설을 바라보았다.

예전엔 언제나 순한 양 같던 지설이, 요즘엔 너무 많이 달라졌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이 해 주는 밥도 못 먹은 지 꽤 됐네.’

영민은 자신이 최근 지설을 방치해왔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목소리를 한층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좋아, 카톡 차단은 그냥 없던 일로 치자. 유연이 병원에 있는 건 네가 신경 쓸 필요 없어. 대신, 매일 밥은 세 끼 해서 유연한테 갖다줘.”

그러더니 지갑에서 가족카드를 꺼내 내밀었다.

“기분 전환하고 싶으면 옷 좀 사도 돼. 하지만 라희랑 싸우고 다니는 건 그만해. 괜히 남들 웃음거리 만들지 말고.”

“난 당신이랑 이혼할 생각 없어. 당신도 이제 그 얘기 꺼내지 마. 이 카드 받아. 매달 한도 삼천만 원이야.”

“장모님 쪽은 지금 당장 병원비 안 들어도, 나중엔 요양비가 필요하잖아. 이 카드면 급할 때 바로 쓰면 돼. 나한테 또 손 벌리지 않아도 되고.”

영민은 지설이 돈이 필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돈만 충분히 주면, 이 사람도 다시 예전처럼 순해질 거야.’

하지만 지설은 그 카드를 내려다보며 비웃음이 흘렀다.

지난 3년 내내, 생활비를 요구할 때마다 영민은 고압적인 태도로 그녀를 모욕했다.

그랬던 사람이 이제 와서 가족카드를 준다고?

‘이제 필요 없어. 엄마 병도 좋아졌고, 합의서도 끝났어.’

‘더 이상... 이런 남편이 필요 없어.’

지설은 영민의 손을 밀치며 차갑게 웃었다.

“안 받아요. 필요 없어요.”

영민의 눈썹이 미간으로 좁혀졌다.

“삼천만 원으론 부족해? 그럼 얼마면 돼?”

그는 자신이 이미 충분히 베풀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랑은 없을지언정, 지설의 생활과 장모의 뒷바라지는 기꺼이 책임져 왔다.

‘그런데 왜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거지?’

지설은 차갑게 말했다.

“당신 거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난 그저 이혼하고 싶을 뿐이에요. 어차피 이혼합의서에도 서명했잖아요. 깨끗하게 끝내요.”

“이혼합의서?”

영민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언제 그런 걸 쓴 적이 있었나?’

지설은 비웃음을 흘렸다.

“기억도 안 나요? 지난번에...”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영민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는 전화를 받았고, 라희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큰일 났어, 오빠. 유연 언니가 쓰러졌어.]

영민의 얼굴이 단번에 긴장으로 굳었다.

“뭐라고? 잠깐만 기다려. 금방 갈게.”

그는 지설을 쳐다보지도 않고 급히 집을 나섰다.

‘역시나... 가장 중요한 건 언제나 유연이지.’

지설은 마음속으로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그래, 내가 떠나면 당신도 원하는 대로 유연이랑 살 수 있겠지.’

‘나도 그걸로 충분히 자유로워질 거고.’

...

영민은 그 후로 일주일이나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설은 당연히 그의 행적을 묻지 않았다. 괜히 스스로 상처받을 필요도 없었다.

어느 날, 지설이 핸드폰을 켜자 라희의 SNS가 눈에 들어왔다.

사진 속엔 비행기 표가 찍혀 있었고, 글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너무 행복하다. 또 오빠랑 새언니 덕에 아이슬란드 가서 오로라 보게 됐어.]

지설은 그제야 알았다.

‘아... 그래서 그동안 밥도 안 챙겨오라 했구나. 여행을 한 거였네.’

인제 그녀도 질투심 같은 건 들지 않았다. 그저 생각했을 뿐이다.

‘이번에 주유연이 쓰러진 건, 그냥 좀 가볍게 넘긴 거였네.’

그때, 장경은 여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지설아, 다음 주 내 생일파티... 올 거지?]

지설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네, 갈게요.”

장 여사는 지설에게 특별히 나쁘게 대한 적이 없었다. 이혼하기 전 마지막으로 시어머니의 생신 자리에 참석하는 것 정도는, 지설에게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전화를 받은 장 여사는 기뻐 웃었지만, 곧 아쉬움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해서... 아가, 난 네가 참 마음에 들어. 그런데 우리 아들이 널 귀하게 몰라봤네.]

장 여사의 눈엔, 비록 지설의 배경은 평범했지만 누구보다도 참고 견디는 힘이 있었고, 며느리로서 유연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들을 이기진 못했다.

아들이 유연을 놓지 못한다면, 결국 장 여사도 지설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

영민과 유연이 귀국한 다음 날, 마침 장경은 여사의 생신 잔치가 열렸다.

영민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지설은 곧장 부씨 가문의 본가로 향했다.

연회장에 들어서자, 검은색 맞춤 정장을 입은 영민과 샴페인 빛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은 유연이 눈에 들어왔다.

두 사람은 다정히 팔을 끼고 서 있었고, 마치 잡지 속 한 장면처럼 잘 어울렸다.

주변 하객들이 둘을 둘러싸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정말 잘 어울린다.”

“금상첨화네, 딱 금동옥녀야.”

“...”

칭찬이 이어질수록 유연의 얼굴엔 더 환한 미소가 번졌다.

지설은 그저 연회장 구석에 서서, 말없이 그 광경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때, 영민의 시선이 지설을 붙잡았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성큼 다가왔다.

“여긴 왜 왔어?”

오늘 자리엔 K시에 이름 있는 인사들이 모였다.

영민은 그 인사들 앞에서 지설이 자기 아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게 싫었다.

지설은 담담히 대답했다.

“어머니가 오라고 하셨어요.”

“잠깐만 인사드리고 바로 가. 괜히 신분 들통나게 하지 말고.”

귀찮다는 듯 단호히 말하곤, 영민은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잠시 후 누군가 영민에게 물었다.

“방금 이분은 누구신가요?”

영민은 지설을 흘끗 바라보고는 짧게 답했다.

“비서예요.”

지설의 입술이 비죽이 올라갔다.

‘그래, 그게 당신 눈에 비친 내 자리겠지.’

영민은 지설이 아내라는 사실을 가까운 지인들 앞에서만 인정했다.

그러나 이런 중요한 연회에서 지설은 결코 영민의 곁에 설 수 없었다.

잠시 후, 무대 위에 선 유연이 피아노 건반을 눌렀다.

맑고 우아한 선율이 연회장을 가득 채우자, 하객들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연주를 마친 유연이 무대에서 내려와 자연스레 영민의 팔을 끼었다.

“주유연 씨, G국 루체음악대학 출신 맞죠? 정말 재능이 남다르네요.”

칭찬이 쏟아지자, 유연은 수줍은 듯 미소 지으며 더 바짝 영민에게 몸을 기댔다.

하객들의 찬사 속에서 영민의 얼굴도 덩달아 밝아졌다.

그리고 마음속엔 분명했다.

‘가문, 미모, 학력, 예술적 재능까지 갖춘 유연이야말로 완벽한 짝이지.’

‘심지설 따위는 그저 집 안에서 자신을 챙기는 존재일 뿐...’

‘사람들 앞에 내세울 만한 가치는 전혀 없지.’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버림받은 아내, 재혼에 눈물 쏟는 전남편   제178화

    “하지만 여자는 어때?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소문이 돌기라도 하면, 평생 씻을 수 없는 흠처럼 취급하고, 다들 달려들어서 물어뜯으려고 하지! 너도 그게 어떤 건지 똑똑히 겪었잖아!”예연숙은 한숨을 고르고 다시 말을 이었다.“그리고 너 이번 대회도, 민호안이 투표해준 덕분에 여기까지 온 거야. 그게 아니었으면 중간에서 잘렸지!”“요즘 세상은 남자가 중심이야. 네가 남자랑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다 결국 손해 보는 건 여자라고!”“그러니까 결혼해서 한 남자한테만 얽히는 게, 일하면서 여러 남자들한테 치이는 것보단 낫지 않겠어?”지설의 초점은 다른 곳에 꽂혔다.“민호안 씨가... 나한테 표를 넣어줬어?”예연숙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너한테 4억이나 썼어! 네가 좋다는 그 변호사는 한 번에 그 정도 돈을 쓰겠어? 어림도 없지. 그 변호사랑은 네가 꿈꾸는 삶 못 살아.”예연숙은 한때 부유한 삶을 누렸던 사람답게, 딸도 같은 생활을 이어가길 바라고 있었다.지설은 자리에서 일어나 단호하게 말했다.“민호안 씨한테는 확실히 말해야겠어. 더는 돈 쓰지 말라고.”영민이 지설에게 돈을 쓰는 건, 지설 입장에서 갚아야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영민이 지설에게 저지른 일들을 생각하면, 오히려 부족할 정도였기 때문이다.하지만 민호안은 달랐다.지설과 특별히 친한 것도 아니고, 민호안이 뜬금없이 돈을 쓴 건 지설에게 부담으로 다가왔다.‘이건 빚이 된다.’예연숙은 답답하다는 듯 지설을 노려보았다.“좋아하는 여자한테 돈 쓰는 건 당연하지! 네 아버지가 이 엄마 쫓아다닐 때 생각해봐. 명품이니 보석이니 집이니, 뭐 하나 허투루 쓴 게 있었어?”“내가 말했지? 돈 많은 남자 만나면 몸도 마음도 편해져. 돈 없는 남자 만나면? 데이트비 반반 내고 겨우 밥이나 먹는 거야. 정신 좀 차려!”지설은 예연숙의 끝없는 설교에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엄마, 이제 그만 얘기하고 좀 쉬어. 내가 다시 또 올게.”겨우겨우 예연숙을 달래고

  • 버림받은 아내, 재혼에 눈물 쏟는 전남편   제177화

    “가고 싶으면 말리진 않을게. 전에 네가 말했지? 내가 널 존중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생각 좀 해봤어.”“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포기할 거라고 착각하진 마. 난 평생 너 하나만을 사랑해. 이렇게 쉽게 끝낼 마음 없어.”“다시 너한테 다가갈 거고, 물론 거절해도 상관없어. 그래도, 아무리 그래봤자 날 밀어낼 순 없을 거야.”지설은 주먹을 꽉 쥐었다.“너... 참 웃기네.”딱 한 마디 남기고 돌아섰다....대회가 끝나자, 지설은 문득 오래 보지 못한 예연숙이 떠올라 병원으로 향했다.예연숙은 아직 잠들지 않은 채 병동 복도에서 어떤 환자와 이야기 중이었다.“봤지? K시 방송국에서 하는 노래대회인데 우리 딸이 3등 했어. 어릴 때부터 걱정 한 번 안 끼치고 뭐든 잘했지!”옆에 있던 환자도 감탄을 멈추지 않았다.“아유, 이렇게 잘난 딸을 뒀으니 앞으로 편하게 사시겠네!”지설은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다가갔다.“엄마.”예연숙은 지설을 보자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이 시간에 어떻게 왔어? 요즘 너무 피곤했던 거 아니야? 살도 빠진 것 같네!”지설은 살짝 안아주며 말했다.“엄마는 왜 안 자고 있어? 이렇게 늦었는데.”예연숙은 손을 흔들었다.“나이 들면 잠이 줄어드는 거야. 누우면 뒤척이기만 하는데 뭘. 잘 됐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지설은 예연숙을 부축해 1인실 병실로 들어갔다.예연숙은 의자에 앉으며 지설을 바라봤다.“요즘 남자 하나를 알았는데 알지? 민호안이라고.”“민호안?”지설은 놀랐다.“엄마가 그 사람을 어떻게 알아? 설마 병원에 온 거야?”예연숙은 고개를 끄덕였다.“전에 은화랑 같이 왔었어. 그 뒤로도 서너 날에 한 번씩은 들르더라. 내가 보기엔 그 민호안, 참 괜찮아 보여.”지설은 관자놀이를 눌렀다.“엄마, 나 그 사람 잘 몰라. 너무 잘해주지 마.”민호안의 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 자신을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지설은 그에게 마음이 없었다. 괜한 기대를 주고 싶지 않았다.예연숙의 표정이 바로

  • 버림받은 아내, 재혼에 눈물 쏟는 전남편   제176화

    도진은 지설이 다른 남자와 마주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질투가 스치지 않을 수 없었다.그렇지만 도진은 감정을 억눌렀다.도진이 지설을 사랑했기 때문이다.지설은 태어나 처음으로 누군가가 자기 이야기를 이렇게 기꺼이 들어주고, 조건 없이 받아주고, 기다려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가슴이 벅차오르며 눈물이 저절로 떨어졌다.“고마워요, 도진 씨.”...그 이후로, 지설은 계속 남아 대회에 참여했다.더 이상 곤란을 겪는 일도 없었다.늘 까다롭기만 하던 밴드 선생도 갑자기 말을 잘 들어주었고, 매일같이 연습을 도와주었다.며칠 지나지 않아, 유상철이 교체됐다는 소문이 들려왔다.이영은 한때 거만하기 짝이 없었지만 요즘은 조용히 숨을 죽인 듯한 분위기였다.무대를 거듭할수록 지설의 인기는 빠르게 치솟았다.그리고 결국 총결선에 올랐고, 최종 3위를 차지했다.지설은 이 결과를 진심으로 만족스러워했다.앞선 두 사람은 이미 프로에 가까운 수준이었으니, 지금의 실력으로 3위 성적은 충분히 높은 성과였다.무엇보다 외모와 피아노 실력이 큰 힘이 됐다.그날, 은화가 전화를 걸어 축하를 전했다.[이번에 네가 방송 나가서, 우리 학원에 문의가 폭주했어. 학부모들이 다 너한테 피아노 배우고 싶다더라.]은화 특유의 가벼운 말투였지만 내용은 진지했다.지설은 그 말을 듣자 마음이 환해졌다. 대회에 나온 것도 원래는 학원 홍보를 위해서였다.효과가 있다는 걸 확인하니 속이 시원하게 풀렸다.예전에 떠돌던 내연녀라는 지설의 소문도 점차 잠잠해졌다.학원 평판에 스며들었던 악영향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방송국 대기실을 나서려던 순간, 스태프 한 명이 다가와 말했다.“지설 씨, 오늘 밤에 프로그램 팀이랑 출연자들 전원이 마지막으로 회식을 하거든요. 꼭 참석해주세요.”지설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약속된 시간에 맞춰 지정된 번호의 룸으로 들어갔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시간을 확인하니 늦지도 않은데,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게 이상했다.‘내가... 잘못

  • 버림받은 아내, 재혼에 눈물 쏟는 전남편   제175화

    이영은 지설 곁에 신분이 만만치 않아 보이는 남자가 붙어 있는 걸 보고 마음이 급해졌다.‘혹시 심지설이 저 남자한테 뭐라도 말하면... 내가 바로 퇴출당하는 거 아니야?’하지만 곧 다른 생각이 들었다.‘그래도 유상철은 실력도 있고, 뒷배도 있는데. 유상철을 건드릴 사람이 어디 있겠어?’이영은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여유를 찾았다.곧장 유상철의 소매를 붙잡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PD님, 아까 심지설 옆에 있던 남자요. 그렇게 대단한 사람 아닌 것 같죠? PD님이 방법 좀 써서 심지설을 빨리 탈락시키면 안 돼요?”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유상철은 거칠게 이영을 밀쳐내며 욕설을 뱉었다.“다 네 탓이야. 하필이면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려서는? 심지설 뒤에 저런 인간이 붙어 있을 줄은. 너 때문에 나까지 엮이게 생겼잖아. 손이영, 내가 끝장나면 너도 같이 끝장이야.”이영의 손은 이미 다쳐 있는 상태였다.그런데 밀쳐지는 바람에 손바닥 상처가 다시 벌어졌고, 피가 흘러내렸다.이영은 겁에 질린 얼굴로 유상철을 바라보며 다시 불쌍한 척하려 했지만, 유상철은 쳐다보지도 않았다.유상철은 재수 없다는 듯이 바닥에 침을 두 번 뱉고는 이를 악문 채 자리를 떠났다.그동안 이영에게서 수모를 당했던 다른 참가자들은 숨기지도 않고 고소한 표정으로 이영을 바라봤다.이영은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아니야. 내가 이렇게까지 운이 없을 리 없어.’‘만약 내가 퇴출당하면... 심지설, 절대 가만 안 둬.’...도진은 지설을 숙소까지 바래다주었다.지설은 문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오늘 정말 감사합니다.”도진은 시계를 한 번 보고는 차분하게 말했다.“조금 있다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더 같이 있지는 못해요.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 전화 주세요. 그리고 앞으로 이런 일 생기면, 꼭 저한테 말해 주세요. 지설 씨가 저를 남처럼 대하지 않았으면 합니다.”여러 번 도움을 받은 뒤라, 지설은 더 이상 도진의 마음

  • 버림받은 아내, 재혼에 눈물 쏟는 전남편   제174화

    유상철은 심지설이 결국 고개를 숙이고 술을 마실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하지만 예상과 달리 지설은 표정을 굳힌 채 담담하게 말했다.“그렇다면 저는 이만 가겠습니다.”이 자리에 더 남아 있어 봤자 상황이 나아질 리 없다는 걸 지설은 알고 있었다.아무리 밤새 연습해도 방송 분량은 결국 잘려 나갈 가능성이 컸다.괜히 시간 낭비하고 있는 것 같아서 지설은 도진과 함께 몸을 돌려 자리를 뜨려 했다.그러나 유상철은 그걸 그대로 넘길 생각이 없었다.“야, 성질 한번 더럽네. 내가 이렇게까지 체면 세워줬는데, 감히 이러고 나가겠다고?”유상철은 방송국 내에서 입지가 탄탄했다. 친척 중에 고위 간부가 있었고, 본인도 시청률 잘 나오는 프로그램 몇 개를 쥐고 있었다.주변에서 늘 고개를 숙여왔기에, 유상철은 스스로를 ‘무시당할 수 없는 사람’이라 여겼다.유상철은 벌떡 일어나며 욕설을 내뱉었다.“심지설, 네가 뭐 대단한 줄 알아? 내가 눈 한번 안 줬으면 네가 여기까지 왔을 것 같아? 감사할 줄도 모르고 말이야 어디서 튕겨?”유상철은 옆에 서 있던 비서 둘을 향해 손짓했다.“저거 붙잡아. 술 들이부어.”비서들은 유상철이 이미 많이 취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말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유상철은 비서들이 움직이지 않자, 그대로 발길질을 날렸다.“뭐야, 말 안 들어? 너희도 잘리고 싶어?”요즘 같은 때에 일자리를 잃는 건 치명적이었다. 비서들은 얼굴이 새하얘진 채, 결국 지설 쪽으로 다가왔다.손이 지설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 비서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도진이었다.도진은 차갑게 말했다.“심지설 씨는 방송에 출연하러 온 참가자입니다. 술자리에 불려 나온 게 아닌데, 이런 행동을 해도 되는지요. 이 상황, 방송국 윗선에서도 알고 계십니까?”유상철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너 뭐야, 어디서 감히 훈계질이야?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 K시에서 못 버티게 할 수 있어!”유상철이 인맥을 들먹이며 더 떠들려는 순간, 앞쪽

  • 버림받은 아내, 재혼에 눈물 쏟는 전남편   제173화

    전화기 너머에서 우연의 숨이 한결 가벼워진 게 느껴졌다.[아, 지설 씨. 진짜 다행이다. 손이영 말이야, 웃기게도 내 옆 병실에 입원했어. 손 다쳤다고 입원까지 하는 거 보면 참 유난이야.][근데 그 인간이 나한테 뭐라 했는지 알아? 사람 보내서 나 혼내주겠대. 그리고 지설 씨도 나랑 같이 퇴출시키겠다고 했어. 진짜 조심해. 손이영은 가만히 있을 애가 아니야.]지설은 전화를 들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역시... 다 짜여 있었구나.’전화를 끊자마자 옆에 있던 도진도 상황을 어느 정도 짐작한 듯 지설을 바라봤다.“누가 일부러 노리고 있는 거죠?”지설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같이 숙소 쓰는 사람이에요. 우연이 다친 이상... 저도 곧 퇴출당할 것 같아요.”배경도, 뒤를 봐주는 사람도 없는 상태였다.이곳에서는 그런 사람이 가장 먼저 밀려났다.도진의 미간이 서서히 좁혀졌다.“여기에 갇힌 것도 그 사람이 한 거예요?”지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도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계속 참기만 해서는 해결 안 돼요. 누구인지 말해 주세요. 제가 처리할게요.”지설은 놀란 눈으로 도진을 바라봤다.“여긴 방송국이에요. 관계도 복잡하고... 괜히 도진 씨까지 이 일에 엮이게 하고 싶지 않아요.”지설은 정말로 그게 걱정이었다. 자신 때문에 도진이 곤란해지는 상황은 원치 않았다.하지만 도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믿어 주세요. 지설 씨 일이라면, 저는 물러서지 않아요. 그리고 지설 씨가 다치는 건 더더욱 보고 싶지 않아요.”그 말에 지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결국 손이영과 유상철 PD의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았다.도진의 표정이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조연출도 아니고, 고작 PD 하나 연줄 믿고 이 정도로 날뛴다고요? 그 정도면 세상이 자기들 뜻대로 돌아간다고 믿는 거군요.”마침 그날 저녁, 제작진 단체 회식이 예정되어 있다는 공지가 떴다.지설은 메시지를 보고 잠시 고민했다.‘오늘은 그냥 안 가는 게 낫겠지.’하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