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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Author: 월야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8 20:48:55

연주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강씨 집안의 담장 밖으로 발을 내딛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일 줄은 몰랐다. 혼례 날 가마를 타고 들어왔을 때는 정문으로 당당히 들어왔으나, 이제는 죄인처럼 뒷문을 통해 도망쳐야 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골목으로 나섰다.

발목이 욱신거릴 때마다 담장을 짚어야 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새벽 장사를 준비하는 상인들의 수레가 지나가자 그 뒤에 몸을 숨겼고, 길목에서 강씨 집안의 하인을 발견하면 다른 골목으로 돌아갔다.

해가 떠오를 무렵, 심씨 집안의 대문이 보였다.

연주는 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는 대문이 열리기만 해도 안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계절마다 꽃을 갈아 심던 뜰과 자신이 글을 배우던 사랑채도 그 안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문밖에 서 있는 딸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연주는 문고리를 두드렸다.

문지기가 얼굴을 내밀었다. 그는 연주를 알아보고 놀라더니 곧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한참 뒤 집사가 나타났으나 대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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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군은 형수를 품고, 나는 화리를 청했다   29화

    연주는 남편이 하인들에게 약탕의 온도까지 살피라고 지시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조용히 그를 불렀다.“부군, 제 발목도 다쳤습니다. 의원을 한 번만 불러 주십시오.”윤겸은 그녀를 돌아보았으나 상처를 확인하려 하지는 않았다.“찬물에 적신 천으로 감싸 두어라. 그 정도로 의원을 부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불에 데인 손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습니다.”“형수님께서는 본래 몸이 약하시다. 너와 비교할 일이 아니다.”그는 연주가 더 말하기도 전에 몸을 돌렸고, 그녀는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신이 피를 흘리며 서 있는 동안에는 의원 한 명 부르기를 아까워하던 남자가 형수의 속이 불편하다는 말 한마디에 그토록 다급해지는 모습이, 이제는 놀랍기보다 참담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민소란이 별채 마당으로 들어왔다.따뜻한 털외투를 걸친 그녀의 머리에는 연주가 혼례 때 받았던 봉황 비녀가 꽂혀 있었다. 윤겸은 형수를 발견하자마자 다가가 손을 잡았고, 소란이 한 걸음 비틀거리자 기다렸다는 듯 허리를 받쳐 주었다.“어찌 나오셨습니까? 몸이 편치 않으시다면서요.”“동서가 돌아왔다기에 마음이 쓰여서요. 제가 누워만 있으면 도련님께서도 걱정하실 테니까요.”소란이 연주를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자, 윤겸은 형수의 뺨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정리해 주었다. 그 손길이 지나치게 익숙하고 자연스러워 연주는 잠시 숨을 멈췄는데, 하인들이 모두 지켜보고 있음에도 윤겸은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았다.“제가 곁에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조금 전 아내를 꾸짖던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부드러운 목소리였다.소란은 윤겸의 소매를 가볍게 잡으며 상처 입은 연주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러자 윤겸은 형수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연주를 돌아보았다.“들었느냐? 형수님께서는 네가 그토록 무례하게 굴었는데도 너를 걱정하신다.”연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윤겸은 형수가 불편해하니 작은마님을 별채에 들여보내고 당분간 본채 근처에는 얼씬도 못 하게 하라

  • 부군은 형수를 품고, 나는 화리를 청했다   28화

    가마에서 끌려 내려온 심연주는 발끝이 땅에 닿는 순간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탈출에 실패한 밤부터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발목이 다시 꺾인 데다, 호위가 그녀의 팔을 거칠게 잡아당기면서 화상 입은 손등까지 옷자락에 쓸렸기 때문이다.“일어나십시오. 도련님께서 기다리십니다.”연주는 흙바닥을 짚고 가까스로 숨을 골랐으나, 무릎에 묻은 흙을 털어 낼 겨를도 없이 서쪽 별채의 낡은 대문을 바라보았다. 처마 밑에 매달린 쇠고리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마른 소리를 냈는데, 그것은 전생의 마지막 나날에도 지겹도록 들었던 소리였다.전생에 만삭의 몸으로 갇혔던 곳이 바로 이 별채였다.그때 연주는 배 속 아이의 움직임이 점점 약해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남편이 자신을 데리러 오리라 믿었다.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릴 때마다 배를 감싸고 몸을 일으켰지만, 끝내 강윤겸은 나타나지 않았고 그녀가 지켜 내지 못한 아이마저 차가운 배 속에서 움직임을 멈췄다.이번 생에는 아직 아이가 없었으나 자신을 가두는 사람도, 문밖에서 기다리는 남편도 전생과 다르지 않았다.“작은마님, 사람을 번거롭게 하지 마십시오.”호위가 팔을 비틀어 세우자 연주는 신음을 삼키며 몸을 바로 세웠다. 발목을 감싼 버선에는 피가 배어 있었고, 불길 속에서 그을린 치맛자락에서는 아직도 탄 냄새가 올라왔지만, 그녀를 부축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마당에 들어서자 처마 아래에 서 있던 강윤겸이 눈에 들어왔다.남편은 흠잡을 데 없이 깨끗한 비단 도포를 입고 있었으며, 소매에서는 민소란이 즐겨 쓰는 향낭 냄새가 풍겼다. 옷깃에 붙은 붉은 비단실까지 알아본 연주는 그가 형수의 처소에서 곧장 왔음을 짐작했으나, 이제는 그 사실을 묻는 것조차 무의미하게 느껴졌다.윤겸은 그녀의 상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이 지경이 되도록 돌아다니고도 정신을 못 차렸느냐?”연주가 피가 배어 나오는 발목을 조금 뒤로 감추며 어디를 다녀왔는지 아느냐고 묻자, 윤겸은 네 친정까지 가서 집안 망신을 시켰다는 것쯤은

  • 부군은 형수를 품고, 나는 화리를 청했다   27화

    윤겸은 천천히 다가왔다.“내 허락도 없이 집을 나가더니 여기까지 왔느냐?”연주는 입술을 깨물었다.“저를 데려가실 수는 없습니다.”“누가 그리 말하더냐? 네 아버지께서도 너를 돌려보내라 하셨다.”그는 심씨 집안의 대문을 힐끗 바라보았다.“친정에서도 받아 주지 않는 여자가 어디로 가겠다는 것이냐?”연주는 윤겸을 노려보았다.“부군께서 형수님을 품고 계시니 저는 떠나겠다고 했습니다.”윤겸의 얼굴이 굳어졌다.그는 연주의 팔을 붙잡아 끌어당겼다. 다친 발목이 꺾이면서 연주가 비틀거리자, 윤겸은 그녀를 부축하기는커녕 더 가까이 끌어왔다.“형수님을 다시 입에 올리는구나.”“제가 본 일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윤겸의 눈길이 연주의 품으로 향했다.겉옷 사이로 종이 끝이 삐져나와 있었다.그는 곧장 손을 뻗었다.연주가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윤겸은 품속의 기록을 빼앗아 펼쳤고, 별당의 출입 시각과 하녀의 이름이 적힌 글을 읽자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이런 것을 들고 친정에 왔단 말이냐.”연주는 종이를 되찾으려 했다.“제 것입니다. 돌려주십시오.”윤겸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네가 우리 가문을 망하게 할 생각이구나.”“가문을 더럽힌 것은 제가 아닙니다.”그는 종이를 구겨 쥐었다.“네가 무슨 말을 하든 이제 듣지 않겠다. 돌아가서 네가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깨닫게 해 주마.”연주는 호위들에게 붙잡혔다.그녀는 몸을 비틀며 버텼지만 다친 발목이 다시 꺾이자 무릎에서 힘이 빠졌다. 사내 둘이 양팔을 잡아 가마 쪽으로 끌고 갔고, 연주는 발끝으로 땅을 밀며 마지막까지 버텼다.윤겸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차갑게 명했다.“가마에 태워라.”연주는 가마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휘장이 내려오기 직전, 그녀는 윤겸을 바라보았다.“저를 가두실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제 마음까지 다시 부군의 아내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윤겸은 한동안 그녀를 내려다보았다.그의 눈빛에는 아내를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제 뜻을 거스른

  • 부군은 형수를 품고, 나는 화리를 청했다   26화

    연주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강씨 집안의 담장 밖으로 발을 내딛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일 줄은 몰랐다. 혼례 날 가마를 타고 들어왔을 때는 정문으로 당당히 들어왔으나, 이제는 죄인처럼 뒷문을 통해 도망쳐야 했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골목으로 나섰다.발목이 욱신거릴 때마다 담장을 짚어야 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새벽 장사를 준비하는 상인들의 수레가 지나가자 그 뒤에 몸을 숨겼고, 길목에서 강씨 집안의 하인을 발견하면 다른 골목으로 돌아갔다.해가 떠오를 무렵, 심씨 집안의 대문이 보였다.연주는 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는 대문이 열리기만 해도 안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계절마다 꽃을 갈아 심던 뜰과 자신이 글을 배우던 사랑채도 그 안에 있었다.그러나 지금은 문밖에 서 있는 딸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연주는 문고리를 두드렸다.문지기가 얼굴을 내밀었다. 그는 연주를 알아보고 놀라더니 곧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한참 뒤 집사가 나타났으나 대문은 여전히 반쯤만 열려 있었다.“아씨, 어찌 이 시각에 오셨습니까?”연주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아버지를 뵙게 해 다오. 시댁에서 있었던 일을 직접 말씀드려야겠다.”집사는 난처한 얼굴을 했다.“대감마님께서는 아씨를 들이지 말라 하셨습니다.”연주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내가 왔다는 말씀을 드렸느냐?”“예. 이미 알고 계십니다.”“그렇다면 잠시만 뵙게 해 달라고 다시 전해라. 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집사는 대답하지 않았다.연주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린 시절 자신을 등에 업어 주던 집사였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던 날에도 그는 연주의 곁에서 울었다.그런 사람이 지금은 대문 안으로 한 발짝도 들이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아씨, 강씨 집안에서 먼저 사람이 다녀갔습니다.”연주의 가슴이 서늘해졌다.“무슨 말을 하였느냐?”“아씨께서 형수를 모함하고 집안 어른의 명을 어겼다고 하였습니다. 대감마님께서는 혼맥을 깨뜨릴 생각이 없으시니 시댁으로 돌아가라 하

  • 부군은 형수를 품고, 나는 화리를 청했다   25화

    그 말에 윤겸이 고개를 들었다.“말투가 그게 무엇이냐? 형수님께서 너를 걱정하시지 않느냐.”연주는 남편을 바라보았다.그의 옷에는 소란을 안고 나오느라 묻은 그을음이 남아 있었다. 연주가 끼어 있던 난간을 들어 올린 사람들은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하인들이었다.“저를 구해 주신 분들께 먼저 감사드려야겠습니다.”연주는 몸을 돌려 하인 둘에게 고개를 숙였다.그들은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지만, 연주는 끝까지 예를 갖추었다. 윤겸이 무언가 말하려 했으나 그녀는 더 듣지 않고 마당을 떠났다.그날 저녁, 윤겸은 소란의 처소에서 밤을 지켰다.연주에게는 의원도 오지 않았다. 하녀 하나가 약초 몇 줌을 가져와 문 앞에 내려놓았을 뿐이었다.연주는 부어오른 발목을 찬물에 담갔다. 물이 상처에 닿자 날카로운 통증이 올라왔지만, 그녀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옥분은 누운 자리에서 주인의 발목을 보며 울었다.“마님, 어찌 이런 일이…….”연주는 시녀의 손을 잡았다.“옥분아, 나는 이제 이 집에서 누구의 도움도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옥분은 눈물을 닦았다.연주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불이 난 창고에서는 아직 탄 냄새가 흘러왔고, 멀리 소란의 처소에는 밤늦도록 등불이 켜져 있었다.윤겸은 그곳에 있었다. 연주는 그 사실을 확인하려고 하녀를 보내지도 않았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남편의 마음이 아니라, 이 집을 나갈 길이었다.연주는 사흘 동안 탈출을 준비했다.다친 발목 때문에 빠르게 움직일 수 없었으나, 창고의 화재로 하인들의 배치가 바뀐 것은 뜻밖의 기회였다. 뒤뜰의 작은 문을 지키던 사내가 불탄 창고의 잔해를 치우는 일에 동원되면서 새벽 한때 문이 비게 되었다.그녀는 첫날부터 뒤뜰로 향하는 길을 살폈다. 그러나 소란의 하녀들이 교대로 방 앞을 지키고 있었으므로, 옥분의 약을 달이러 가는 길에만 주변을 확인할 수 있었다.둘째 날에는 일부러 다친 발목이 심하게 부었다고 호소해 의원을 청했다. 소란은 의원을 보내 주지 않았지만, 연주가 혼자 걷기도 어렵

  • 부군은 형수를 품고, 나는 화리를 청했다   24화

    그녀는 치맛자락을 걷어 쥐고 회랑으로 뛰어들었다.뜨거운 공기가 얼굴을 덮쳤다. 연기는 눈을 찔렀고, 바닥에 떨어진 재가 신발 밑에서 바스러졌다. 연주는 소란의 치맛자락이 걸린 난간을 붙잡아 힘껏 당겼다.“형수님, 이쪽으로 나오십시오!”소란은 연주를 보자 잠시 놀란 얼굴을 했다. 그러나 곧 연주의 팔을 붙잡았다.“동서, 나를 데리고 나가 줘. 여기서 죽고 싶지 않아.”연주는 난간에 걸린 비단을 찢어 냈다. 소란이 움직일 수 있게 되자 그녀는 먼저 회랑 바깥쪽으로 몸을 돌렸고, 연주는 뒤에서 밀어 주려 했다.그 순간 머리 위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불에 약해진 들보가 갈라지고 있었다.연주는 소란을 밀쳐 냈다. 들보가 두 사람 사이로 떨어지면서 불붙은 나무 조각이 흩어졌고, 연주는 뒤로 물러나다 무너진 난간에 발목이 끼었다.뜨거운 열기가 치맛자락 가까이 밀려왔다.그녀는 몸을 숙여 발을 빼려 했지만, 나무가 깊숙이 걸려 움직이지 않았다.“형수님, 먼저 나가십시오!”소란은 이미 회랑 끝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떨어진 들보 때문에 길이 막히자 그녀는 다시 비명을 질렀다.“도련님!”윤겸이 젖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회랑으로 뛰어들었다.연주는 그를 보자 손을 뻗었다.“부군, 제 발이 끼었습니다!”윤겸의 시선이 그녀에게 닿았다.그는 연주의 다리가 난간 아래에 끼어 있는 것을 보았다. 연기가 그녀의 얼굴을 덮고 있었고, 불붙은 나무가 바로 옆에서 타고 있었다.연주는 그가 자신에게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손을 뻗었다. 사람은 죽음 앞에서 자신을 버린 사람에게조차 도움을 청하게 되는 모양이었다.윤겸은 한 걸음 움직였다.그때 소란이 기침하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윤겸아…….”윤겸은 연주에게 향하던 몸을 돌렸다.그는 소란에게 달려가 그녀를 품에 안았고, 떨어진 들보를 피해 회랑 바깥으로 나갔다. 소란은 그의 목을 끌어안았으며, 윤겸은 그녀의 얼굴을 자신의 가슴에 묻어 연기를 막아 주었다.연주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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